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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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없게 해서 맛이 있게 먹자
2009년 05월 08일 09시 53분  조회:784  추천:38  작성자: 홍천룡

사람이 살면서 먹는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가? 없다. 그래서 세계명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세월이 좋아지니 하루 세끼니 배를 곯지 않고 먹게 되였다. 배가 부르니 좀 더 맛있는걸로 먹자는것이 사람입이 내미는 욕심이다. 옛날에는 돼지고기국을 해놓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요즘에 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돼지고기국을 먹는 사람이 있을가? 전번 날, 축하할만한 일이 생겨 남자에 녀자들 두루두루 맞춰 한상에 마주 앉았다. 녀자들 환심을 사느라 누군가 “궈보뤄(탕수육)도 청하지. 녀자들 전매특권이니까” 라고 호기를 피웠다가 그만 말밑천도 못찾고말았다.
“지금 그런걸 누가 먹습니꺄! 집에 각시가 그런걸 먹습디꺄?”
“허, 이 녀자들 입이 점점 고양이입이 되여가는구만. 그래 무얼 먹겠소?”
“남자들이 사줄 때 맛있는걸로 콱 먹어야겠는데… 야, 우리 무얼 먹을가?”
“글쎼말이, 요즘은 입에 맞는 음식이라곤 없더라.”
점점 높아가는 입덕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어간다. 랑군님의 안해로 된 새각시들, 아이들 어머니로 된 주부들, 아침상엔 무얼 올려놓을가, 저녁상준비는 어떻게 할가, 때시걱마다 근심이 앞선다. 끼니마다 맛이 있게 해서 정성껏 갖춰줘도 언제한번 맛있게 먹었다는 소릴 못들어본다. 그다음에는 돈깨나 벌려고 분식점이나 식당같은 음식업을 벌려놓은 주인들이다. 손님들 구미를 맞춰주기 점점 힘들어진다. 지금은 입이 입이 아니고 검사의기가 된듯 싶다. 먹으러 다니는것이 아니라 검식하러 다니는것 같다. 이게 이 맛이 아니고 저게 저 맛이 아니라고 송곳질 하며 꼬집어낼 때에는 정말 주인으로서는 입이 아홉개라도 할말이 없어진다. 이런저런 맛있다는걸 다 구입해다가 요런조런 조미료를 다 쳐서 이래저래 주물럭거려 삶고 삶은걸 볶으고 볶은걸 지지고 지진걸 튀기고 튀긴걸 걸러서 올려놓았는데도 맛이 없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어도 그 손님이 “황제”이니 어쩔수 없다. “먹거리업은 밑지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성지처럼 받들고 시작한 일이 아닌가! 더 맛있게, 오직 더 맛있게만 하면 손님들도 “ok!”고 주인도 “ok!”다. 그래서 골을 질끈 동이고 머리를 짜면 수가 생긴다. 그 질긴 소고기도 어찌어찌 주물럭거려놓으면 두부모처럼 몰씬몰씬해지고 튀긴걸 어떻게 또 튀기면 그 땅땅하던 닭뼈가 사각사각 씹히다가도 사르르 녹아내리기까지 한다. 끓인걸 또 끓이고도 모자라서 가스렌지까지 상우에 올려놓고 자꾸자꾸 끓인다. 거기에다 연변고추가루요 사천후추가루요 하며 푹푹 뿌려서는 훌훌 불며 먹으니 입안이 짱- 열리며 얼벌벌해진다. 세상 별맛이다.
그런 특이한 맛을 보기 위해 한두번 찾아가는것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헌데 어떤 량반들은 그런 맛에 맛을 들이면 하루이틀이 멀다하게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선동하기까지 한다.
“야, 거기 그 맛이 한절반 죽여준다. 가자, 오늘저녁은 내가 쏠게!”
모두들 우르르 쓸어가서 그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세상 별맛이라고! 그 사람들 돌아가서 또 제각기 제친구들을 꼬드긴다. 그러면 손님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그 식당엔 대박이 터지게 된다.
식당에 대박이 터져서 주인은 돈을 버는데 그 식당으로 드나드는 단골객들의 위와 간을 비롯한 장기들은 어떻게 되여갈가? 음식물을 끓이면 끓일수록, 기름에 튀기면 튀길수록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점은 이미 전문가들의 과학실험에 의해 검증되였다. 그래서 어느 한 전문가는 이렇게 대성질호하고있다.
“식당으로 한번 가는것이 무덤으로 한걸음 다가서는것과 같다”고.
좀 지나친 말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은 맛이 있을수록 독이 된다”는 말도 있는데 뭐 과학적수치로 검증해낸 결론은 아니지만 많은 실례로 증명해줄수 있는 조언은 될수 있겠다. 중국력대의 황제들 수명이 모두 길지 못했었다. 40대중반에 요절한 황제가 많았다. 그 락후했던 세월에 맛있다는걸 돌아가며 다 맛본 황제일수록 더 일찍 죽어나갔다. 지금 우리 주변을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잘먹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비례가 높다는걸 보아낼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젊어서 외국에 나가 돈을 무척 벌어온 친구가 있었다. “먹다가 죽으면 후회없다”고 늘 마음을 쓰며 놀고먹고 락천적으로 보냈는데 간암이란 진단을 받고 상해에 가서 수술까지 하고나니 그게 아니였다. 그제야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애를 써봤지만…
먹거리가 흔장만장할 때일수록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음식물도 돈처럼 많아도 탈이요 적어도 탈이다.
먹을것이 적었을 때에는 별 우수운 일들이 다 있었다. “대식품시기”에는 음식이 맛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며 먹은것이 아니라 먹을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먹었다. 무릇 먹을수 있다면 그것이 풀뿌리든 나무껍질이든 벌레든간에 가리지 않고 다 먹었다. 먹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돋굴수 있었던것이다. 먹는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다. 삶는것이 위주였다. 조미료도 소금간장뿐이였다. 멀건 푸대죽에 소금을 툭 쳐서 차려놓아도 맛이 없다고 타발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며칠씩 감자만 삶아줘도 그처럼 맛있게, 일년내내 강냉이떡만 쪄줘도 그처럼 맛있게…모든 음식이 그처럼 맛이 있었던 세월이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먹는것을 놓고 로선분석도 하고 계급투쟁도 벌렸었다. 맛이 있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주나 자본가와 같은 자산계급이고 맛이 없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로동자나 빈하중농같은 무산계급이였다는것이다.
중학시절의 어느 한 겨울방학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웅덩개”마을에서는 계급투쟁교육을 강화한다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빈농 최할아버지를 모셔다 놓고 “이쿠스탠”(忆苦思甜)활동을 조직했었다. 널찍한 우사칸회의실안에 마을의 소학생과 중학생들이 사오십명 빙 둘러앉았다. 암흑했던 구사회를 추억하는 보도가 시작되자 환한 전등을 끄고 초불 몇대를 켜놓았다. 그런다음 녀자애들이 우사칸 소여물을 끓이는 가마에다 쪄낸 겨떡을 대야에 담아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어두운 초불밑에서 그 쓰디쓴 겨떡을 먹으며 지난날의 쓴맛을 체험해보라는 뜻이였다. 나도 자그마한 걸로 골라 한입 떼여 먹어보니 입안이 껄껄해났다. 뱉아버리고싶었다. 벌써 저급학년 철부지들이 앉은 쪽에서는 퉤! 퉤! 하고 뱉아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과외보도원선생님의 준절한 질책소리도 엄엄하게 들려왔다.
“누구야? 계급감정도 없어!”
다시 조용해지면서 우물우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최할아버지의 보고는 눈물겨웠다. 과거회억부분이 끝나고 최할아버지가 “마침내 해방이 되였습니다” 라고 하시자 누군가 스위치줄을 탁 당겨 전등을 켰다. 회의실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뒤이어 녀자애들이 이번에는 대야에다 맛있는 과자를 골똑골똑 담아서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팔을 뻗쳐 한웅큼씩 쥐여다가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목이 메여 꿱꿱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새사회의 행복을 느껴보라는 뜻이였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우루루 쓸어나가자 구석구석에 먹다가 버린 겨떡들이 지저분하게 나타났던것이다. 녀자애들이 그걸 거둬서 모으니 대여섯 대야나 되였다. 그걸 중간에 놓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몇몇 학생골간들과 함께 밤중까지 로선분석을 하느라 열을 올렸었다. 아무리 열을 올린들 어찌하랴, 맛이 있는걸 좋아하고 맛이 없는걸 싫어하는 아이들의 입을!
개혁개방이 되면서 음식물도 개방되였고 또한 새롭게 많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어 먼 옛날 황제들만 맛볼수 있었던 궁전음식도 다시 개발되여 평민들도 마음대로 맛을 보게 되였다. 헌데 10년 배부르게 먹고 10년 맛있게 먹고나니 먹는 수준이 사람마다 프로급이 되였다. 외국인들도 중국에 와보고는 입을 딱 벌린다. 맛있는 먹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동북에는 동북맛이 있고 남방에는 남방맛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맛이 있다. 어느 한 고장에 가보면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한다. 한 접시에 몇만원짜리 고급료리도 있는가 하면 한개에 오십전짜리 전병도 별맛을 돋구는것이 있다. 맛있는걸 더 맛있게 해먹기 위해 벼라별 방법을 다 쓴다. 조미료도 열가지, 스무가지, 무엇이 맛을 돋굴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버무려쓴다. 삶고 닦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것도 모자라서 태우고 굽고 내굴에 그슬러 먹기도 한다. 날것, 생것 그대로 먹는것도 모자라서 동물이나 곤충을 산채로 잡아다 먹는 료리도 있단다. 지어 한때는 남방에서 원숭이를 산채로 잡아다 놓고 눈알이 판들거리는 고놈의 정수리를 뾰쪽망치로 쳐서 뇌즙을 빨아먹는 료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사람이 할 노릇인지!
무슨 일에나 한계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도”라고도 했다. 그 “도”를 넘으면 일은 비뚤어질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음식도 대개 먹을만한 맛이 있으면 되는건데 맛이 있는걸 자꾸 더 맛있게 해먹다보니 그 음식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있다. 맛있는 음식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나쁜점이 있다.
첫째,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더 먹게 된다. 맛있는걸 해놓으면 서로서로 더 들라고 권한다. 이것이 먹는 법도의 례절이고 우리 사회의 인품이다. 과식이 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년에 한두번이나 한달에 한두번쯤 과식하는건 별문제이겠지만 자꾸자꾸 과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하루이틀이나 일이년내에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몇년, 지어 몇십년후에 나타난다. 시간이 길게 나타나는 문제일수록 인체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될수 있다. 좋은 음식일수록 적게 먹어야 “보약”이 된다.
둘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종합적인 배합물이다. 식당에 가보면 료리사들이 조미료를 열가지이상씩 놓고 쓴다. 료리의 맛을 돋구는 가장 관건적인것은 소금이다. 국제위생조직에서는 매일 매인당 소금흡수량을 6그람으로 제한할것을 요구하고있다. 헌데 료리 한접시에 들어가는 소금량이 6그람을 초과할 때가 있게 된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면 맛이 없다는 고객들의 의견이 홍두깨처럼 들이닥친다. 그러니 맛있는 료리를 많이 먹을수록 소금흡수량이 늘어나게 된다. 소금흡수량이 늘어나면 인체에 불리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가 아닌가!
셋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연하고 부드럽고 만만하고 시원하면서도 거뿐한 자극을 준다. 지어 사르르 녹아나는 감을 주는것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발을 해친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얼마든지 씹어서 먹을수 있는것도 더 맛있게 더 시원하게 먹는다고 믹스에다 갈아서 마신다. 무슨 음식이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고 씹으면 씹을수록 묽어져서 물이 된다. 그걸 하필이면 영양세포를 파괴시키면서 이발을 무르게 하면서 전기를 랑비하면서 갈아 마실건 뭔가! 누가 승냥이가 산포도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았는가? 까맣게 무르익어 몽글몽글해진 산포도를 승냥이는 찔긴 날고기를 먹을 때처럼 텁썩텁썩 물어뜯어서는 까등까등 힘주어 씹어먹는다. 만약 사람이 그걸 뜯어먹는다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먹을것이다. 다 같은 산포도이지만 까등까등 씹어먹은것과 오물오물 녹여먹은것이 위안에 들어간다음의 효과는 다른것이다. 이것이 총명한 사람의 무지한 약점이라고나 할가!
넷째, 맛있는 음식은 조합과정에서 많은 오점이 생긴다. 례를 들면 파와 두부를 섞어먹으면 인체에 불리한 물질이 생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부를 먹을 때 양념간장에 생생한 파를 송송 썰어서 넣는다. 그래야 맛있다.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을 섞어서 만들어 먹을 때 그 영양가치나 인체에 리로운가를 따지는것이 아니라 맛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다 보니 인체에 불리한 물질을 생성시켜 먹을 때가 있게 된다. 중약재도 잘 조합시키면 약이 되고 잘못 조합시키면 독이 된다.
이밖에도 맛있는 음식에 보이지 않는 약점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음식을 맛이 없게 해서 맛이 없게 먹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어떻게 먹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 관건은 맛있게 먹는것이다. 무릇 맛있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하고 맛이 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이 없게 먹으면 병이 생긴다. 그런데 맛이 없는 음식을 어떻게 맛이 있게 먹는단말인가? 여기에 먹는 예술이 수요된다.
첫째, 음식먹는 분위기를 조성할줄 알아야 한다. 혼자 먹거나 여럿이 함께 식사를 나누든지간에 각자의 성격, 애호, 환경,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각, 청각, 후각의 작용을 동원시켜 미각을 자극할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음식량을 잘 조절할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체중이 다르고 종사하는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기때문에 공통적인 표준량은 있을수 없다. 일반적으로 식사후 서너시간이 지나면 배고파날수 있는 량으로 조절하고 습관화시키면 좋다. 배고파날가말가 할 때 먹는것이 좋다. 배고픈 시간이 길면 위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
셋째, 특수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상응한 대책을 대야 한다. 례를 들면 기름기 있고 느끼한것을 먹었을 때에는 운동량을 좀 늘이고 마른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물을 더 마시는것이 좋다. 그래야만이 다음 끼니를 맛있게 먹을수 있다.
넷째, 맛이 없는 음식일수록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무엇이나 다 맛이 난다. 문제는 맛이 없는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오래 씹기 싫어한다. 한번 쓴맛이 나는것을 오래 씹어보면 알수 있다.
이밖에도 맛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게 먹을수 있는 비결이 많다. 또한 각자가 자기의 특점에 따라 자기로서만의 독특한 비결을 찾아낼수도 있는것이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건강으로 지켜야 한다. 건강을 지키사람이 살면서 먹는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가? 없다. 그래서 세계명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세월이 좋아지니 하루 세끼니 배를 곯지 않고 먹게 되였다. 배가 부르니 좀 더 맛있는걸로 먹자는것이 사람입이 내미는 욕심이다. 옛날에는 돼지고기국을 해놓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요즘에 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돼지고기국을 먹는 사람이 있을가? 전번 날, 축하할만한 일이 생겨 남자에 녀자들 두루두루 맞춰 한상에 마주 앉았다. 녀자들 환심을 사느라 누군가 “궈보뤄(탕수육)도 청하지. 녀자들 전매특권이니까” 라고 호기를 피웠다가 그만 말밑천도 못찾고말았다.
“지금 그런걸 누가 먹습니꺄! 집에 각시가 그런걸 먹습디꺄?”
“허, 이 녀자들 입이 점점 고양이입이 되여가는구만. 그래 무얼 먹겠소?”
“남자들이 사줄 때 맛있는걸로 콱 먹어야겠는데… 야, 우리 무얼 먹을가?”
“글쎼말이, 요즘은 입에 맞는 음식이라곤 없더라.”
점점 높아가는 입덕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어간다. 랑군님의 안해로 된 새각시들, 아이들 어머니로 된 주부들, 아침상엔 무얼 올려놓을가, 저녁상준비는 어떻게 할가, 때시걱마다 근심이 앞선다. 끼니마다 맛이 있게 해서 정성껏 갖춰줘도 언제한번 맛있게 먹었다는 소릴 못들어본다. 그다음에는 돈깨나 벌려고 분식점이나 식당같은 음식업을 벌려놓은 주인들이다. 손님들 구미를 맞춰주기 점점 힘들어진다. 지금은 입이 입이 아니고 검사의기가 된듯 싶다. 먹으러 다니는것이 아니라 검식하러 다니는것 같다. 이게 이 맛이 아니고 저게 저 맛이 아니라고 송곳질 하며 꼬집어낼 때에는 정말 주인으로서는 입이 아홉개라도 할말이 없어진다. 이런저런 맛있다는걸 다 구입해다가 요런조런 조미료를 다 쳐서 이래저래 주물럭거려 삶고 삶은걸 볶으고 볶은걸 지지고 지진걸 튀기고 튀긴걸 걸러서 올려놓았는데도 맛이 없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어도 그 손님이 “황제”이니 어쩔수 없다. “먹거리업은 밑지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성지처럼 받들고 시작한 일이 아닌가! 더 맛있게, 오직 더 맛있게만 하면 손님들도 “ok!”고 주인도 “ok!”다. 그래서 골을 질끈 동이고 머리를 짜면 수가 생긴다. 그 질긴 소고기도 어찌어찌 주물럭거려놓으면 두부모처럼 몰씬몰씬해지고 튀긴걸 어떻게 또 튀기면 그 땅땅하던 닭뼈가 사각사각 씹히다가도 사르르 녹아내리기까지 한다. 끓인걸 또 끓이고도 모자라서 가스렌지까지 상우에 올려놓고 자꾸자꾸 끓인다. 거기에다 연변고추가루요 사천후추가루요 하며 푹푹 뿌려서는 훌훌 불며 먹으니 입안이 짱- 열리며 얼벌벌해진다. 세상 별맛이다.
그런 특이한 맛을 보기 위해 한두번 찾아가는것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헌데 어떤 량반들은 그런 맛에 맛을 들이면 하루이틀이 멀다하게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선동하기까지 한다.
“야, 거기 그 맛이 한절반 죽여준다. 가자, 오늘저녁은 내가 쏠게!”
모두들 우르르 쓸어가서 그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세상 별맛이라고! 그 사람들 돌아가서 또 제각기 제친구들을 꼬드긴다. 그러면 손님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그 식당엔 대박이 터지게 된다.
식당에 대박이 터져서 주인은 돈을 버는데 그 식당으로 드나드는 단골객들의 위와 간을 비롯한 장기들은 어떻게 되여갈가? 음식물을 끓이면 끓일수록, 기름에 튀기면 튀길수록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점은 이미 전문가들의 과학실험에 의해 검증되였다. 그래서 어느 한 전문가는 이렇게 대성질호하고있다.
“식당으로 한번 가는것이 무덤으로 한걸음 다가서는것과 같다”고.
좀 지나친 말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은 맛이 있을수록 독이 된다”는 말도 있는데 뭐 과학적수치로 검증해낸 결론은 아니지만 많은 실례로 증명해줄수 있는 조언은 될수 있겠다. 중국력대의 황제들 수명이 모두 길지 못했었다. 40대중반에 요절한 황제가 많았다. 그 락후했던 세월에 맛있다는걸 돌아가며 다 맛본 황제일수록 더 일찍 죽어나갔다. 지금 우리 주변을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잘먹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비례가 높다는걸 보아낼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젊어서 외국에 나가 돈을 무척 벌어온 친구가 있었다. “먹다가 죽으면 후회없다”고 늘 마음을 쓰며 놀고먹고 락천적으로 보냈는데 간암이란 진단을 받고 상해에 가서 수술까지 하고나니 그게 아니였다. 그제야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애를 써봤지만…
먹거리가 흔장만장할 때일수록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음식물도 돈처럼 많아도 탈이요 적어도 탈이다.
먹을것이 적었을 때에는 별 우수운 일들이 다 있었다. “대식품시기”에는 음식이 맛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며 먹은것이 아니라 먹을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먹었다. 무릇 먹을수 있다면 그것이 풀뿌리든 나무껍질이든 벌레든간에 가리지 않고 다 먹었다. 먹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돋굴수 있었던것이다. 먹는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다. 삶는것이 위주였다. 조미료도 소금간장뿐이였다. 멀건 푸대죽에 소금을 툭 쳐서 차려놓아도 맛이 없다고 타발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며칠씩 감자만 삶아줘도 그처럼 맛있게, 일년내내 강냉이떡만 쪄줘도 그처럼 맛있게…모든 음식이 그처럼 맛이 있었던 세월이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먹는것을 놓고 로선분석도 하고 계급투쟁도 벌렸었다. 맛이 있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주나 자본가와 같은 자산계급이고 맛이 없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로동자나 빈하중농같은 무산계급이였다는것이다.
중학시절의 어느 한 겨울방학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웅덩개”마을에서는 계급투쟁교육을 강화한다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빈농 최할아버지를 모셔다 놓고 “이쿠스탠”(忆苦思甜)활동을 조직했었다. 널찍한 우사칸회의실안에 마을의 소학생과 중학생들이 사오십명 빙 둘러앉았다. 암흑했던 구사회를 추억하는 보도가 시작되자 환한 전등을 끄고 초불 몇대를 켜놓았다. 그런다음 녀자애들이 우사칸 소여물을 끓이는 가마에다 쪄낸 겨떡을 대야에 담아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어두운 초불밑에서 그 쓰디쓴 겨떡을 먹으며 지난날의 쓴맛을 체험해보라는 뜻이였다. 나도 자그마한 걸로 골라 한입 떼여 먹어보니 입안이 껄껄해났다. 뱉아버리고싶었다. 벌써 저급학년 철부지들이 앉은 쪽에서는 퉤! 퉤! 하고 뱉아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과외보도원선생님의 준절한 질책소리도 엄엄하게 들려왔다.
“누구야? 계급감정도 없어!”
다시 조용해지면서 우물우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최할아버지의 보고는 눈물겨웠다. 과거회억부분이 끝나고 최할아버지가 “마침내 해방이 되였습니다” 라고 하시자 누군가 스위치줄을 탁 당겨 전등을 켰다. 회의실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뒤이어 녀자애들이 이번에는 대야에다 맛있는 과자를 골똑골똑 담아서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팔을 뻗쳐 한웅큼씩 쥐여다가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목이 메여 꿱꿱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새사회의 행복을 느껴보라는 뜻이였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우루루 쓸어나가자 구석구석에 먹다가 버린 겨떡들이 지저분하게 나타났던것이다. 녀자애들이 그걸 거둬서 모으니 대여섯 대야나 되였다. 그걸 중간에 놓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몇몇 학생골간들과 함께 밤중까지 로선분석을 하느라 열을 올렸었다. 아무리 열을 올린들 어찌하랴, 맛이 있는걸 좋아하고 맛이 없는걸 싫어하는 아이들의 입을!
개혁개방이 되면서 음식물도 개방되였고 또한 새롭게 많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어 먼 옛날 황제들만 맛볼수 있었던 궁전음식도 다시 개발되여 평민들도 마음대로 맛을 보게 되였다. 헌데 10년 배부르게 먹고 10년 맛있게 먹고나니 먹는 수준이 사람마다 프로급이 되였다. 외국인들도 중국에 와보고는 입을 딱 벌린다. 맛있는 먹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동북에는 동북맛이 있고 남방에는 남방맛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맛이 있다. 어느 한 고장에 가보면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한다. 한 접시에 몇만원짜리 고급료리도 있는가 하면 한개에 오십전짜리 전병도 별맛을 돋구는것이 있다. 맛있는걸 더 맛있게 해먹기 위해 벼라별 방법을 다 쓴다. 조미료도 열가지, 스무가지, 무엇이 맛을 돋굴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버무려쓴다. 삶고 닦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것도 모자라서 태우고 굽고 내굴에 그슬러 먹기도 한다. 날것, 생것 그대로 먹는것도 모자라서 동물이나 곤충을 산채로 잡아다 먹는 료리도 있단다. 지어 한때는 남방에서 원숭이를 산채로 잡아다 놓고 눈알이 판들거리는 고놈의 정수리를 뾰쪽망치로 쳐서 뇌즙을 빨아먹는 료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사람이 할 노릇인지!
무슨 일에나 한계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도”라고도 했다. 그 “도”를 넘으면 일은 비뚤어질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음식도 대개 먹을만한 맛이 있으면 되는건데 맛이 있는걸 자꾸 더 맛있게 해먹다보니 그 음식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있다. 맛있는 음식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나쁜점이 있다.
첫째,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더 먹게 된다. 맛있는걸 해놓으면 서로서로 더 들라고 권한다. 이것이 먹는 법도의 례절이고 우리 사회의 인품이다. 과식이 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년에 한두번이나 한달에 한두번쯤 과식하는건 별문제이겠지만 자꾸자꾸 과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하루이틀이나 일이년내에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몇년, 지어 몇십년후에 나타난다. 시간이 길게 나타나는 문제일수록 인체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될수 있다. 좋은 음식일수록 적게 먹어야 “보약”이 된다.
둘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종합적인 배합물이다. 식당에 가보면 료리사들이 조미료를 열가지이상씩 놓고 쓴다. 료리의 맛을 돋구는 가장 관건적인것은 소금이다. 국제위생조직에서는 매일 매인당 소금흡수량을 6그람으로 제한할것을 요구하고있다. 헌데 료리 한접시에 들어가는 소금량이 6그람을 초과할 때가 있게 된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면 맛이 없다는 고객들의 의견이 홍두깨처럼 들이닥친다. 그러니 맛있는 료리를 많이 먹을수록 소금흡수량이 늘어나게 된다. 소금흡수량이 늘어나면 인체에 불리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가 아닌가!
셋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연하고 부드럽고 만만하고 시원하면서도 거뿐한 자극을 준다. 지어 사르르 녹아나는 감을 주는것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발을 해친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얼마든지 씹어서 먹을수 있는것도 더 맛있게 더 시원하게 먹는다고 믹스에다 갈아서 마신다. 무슨 음식이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고 씹으면 씹을수록 묽어져서 물이 된다. 그걸 하필이면 영양세포를 파괴시키면서 이발을 무르게 하면서 전기를 랑비하면서 갈아 마실건 뭔가! 누가 승냥이가 산포도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았는가? 까맣게 무르익어 몽글몽글해진 산포도를 승냥이는 찔긴 날고기를 먹을 때처럼 텁썩텁썩 물어뜯어서는 까등까등 힘주어 씹어먹는다. 만약 사람이 그걸 뜯어먹는다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먹을것이다. 다 같은 산포도이지만 까등까등 씹어먹은것과 오물오물 녹여먹은것이 위안에 들어간다음의 효과는 다른것이다. 이것이 총명한 사람의 무지한 약점이라고나 할가!
넷째, 맛있는 음식은 조합과정에서 많은 오점이 생긴다. 례를 들면 파와 두부를 섞어먹으면 인체에 불리한 물질이 생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부를 먹을 때 양념간장에 생생한 파를 송송 썰어서 넣는다. 그래야 맛있다.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을 섞어서 만들어 먹을 때 그 영양가치나 인체에 리로운가를 따지는것이 아니라 맛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다 보니 인체에 불리한 물질을 생성시켜 먹을 때가 있게 된다. 중약재도 잘 조합시키면 약이 되고 잘못 조합시키면 독이 된다.
이밖에도 맛있는 음식에 보이지 않는 약점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음식을 맛이 없게 해서 맛이 없게 먹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어떻게 먹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 관건은 맛있게 먹는것이다. 무릇 맛있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하고 맛이 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이 없게 먹으면 병이 생긴다. 그런데 맛이 없는 음식을 어떻게 맛이 있게 먹는단말인가? 여기에 먹는 예술이 수요된다.
첫째, 음식먹는 분위기를 조성할줄 알아야 한다. 혼자 먹거나 여럿이 함께 식사를 나누든지간에 각자의 성격, 애호, 환경,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각, 청각, 후각의 작용을 동원시켜 미각을 자극할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음식량을 잘 조절할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체중이 다르고 종사하는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기때문에 공통적인 표준량은 있을수 없다. 일반적으로 식사후 서너시간이 지나면 배고파날수 있는 량으로 조절하고 습관화시키면 좋다. 배고파날가말가 할 때 먹는것이 좋다. 배고픈 시간이 길면 위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
셋째, 특수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상응한 대책을 대야 한다. 례를 들면 기름기 있고 느끼한것을 먹었을 때에는 운동량을 좀 늘이고 마른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물을 더 마시는것이 좋다. 그래야만이 다음 끼니를 맛있게 먹을수 있다.
넷째, 맛이 없는 음식일수록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무엇이나 다 맛이 난다. 문제는 맛이 없는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오래 씹기 싫어한다. 한번 쓴맛이 나는것을 오래 씹어보면 알수 있다.
이밖에도 맛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게 먹을수 있는 비결이 많다. 또한 각자가 자기의 특점에 따라 자기로서만의 독특한 비결을 찾아낼수도 있는것이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건강으로 지켜야 한다. 건강을 지키자면 먹는것이 관건이다. 관건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학이다. 과학적으로 음식을 만들자면 우리의 입맛과 달라질 때가 많게 된다. 일반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이 인체에 리롭다. 마치도 “쓴것이 약”이라는 도리와 같다고나 할가!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음식은 간단하게 만드는것이 좋다. 대개 간단하게 만들어낸 음식이 맛을 돋구지 못한다. 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것을 맛이 있게 먹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먹는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가? 없다. 그래서 세계명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세월이 좋아지니 하루 세끼니 배를 곯지 않고 먹게 되였다. 배가 부르니 좀 더 맛있는걸로 먹자는것이 사람입이 내미는 욕심이다. 옛날에는 돼지고기국을 해놓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요즘에 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돼지고기국을 먹는 사람이 있을가? 전번 날, 축하할만한 일이 생겨 남자에 녀자들 두루두루 맞춰 한상에 마주 앉았다. 녀자들 환심을 사느라 누군가 “궈보뤄(탕수육)도 청하지. 녀자들 전매특권이니까” 라고 호기를 피웠다가 그만 말밑천도 못찾고말았다.
“지금 그런걸 누가 먹습니꺄! 집에 각시가 그런걸 먹습디꺄?”
“허, 이 녀자들 입이 점점 고양이입이 되여가는구만. 그래 무얼 먹겠소?”
“남자들이 사줄 때 맛있는걸로 콱 먹어야겠는데… 야, 우리 무얼 먹을가?”
“글쎼말이, 요즘은 입에 맞는 음식이라곤 없더라.”
점점 높아가는 입덕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어간다. 랑군님의 안해로 된 새각시들, 아이들 어머니로 된 주부들, 아침상엔 무얼 올려놓을가, 저녁상준비는 어떻게 할가, 때시걱마다 근심이 앞선다. 끼니마다 맛이 있게 해서 정성껏 갖춰줘도 언제한번 맛있게 먹었다는 소릴 못들어본다. 그다음에는 돈깨나 벌려고 분식점이나 식당같은 음식업을 벌려놓은 주인들이다. 손님들 구미를 맞춰주기 점점 힘들어진다. 지금은 입이 입이 아니고 검사의기가 된듯 싶다. 먹으러 다니는것이 아니라 검식하러 다니는것 같다. 이게 이 맛이 아니고 저게 저 맛이 아니라고 송곳질 하며 꼬집어낼 때에는 정말 주인으로서는 입이 아홉개라도 할말이 없어진다. 이런저런 맛있다는걸 다 구입해다가 요런조런 조미료를 다 쳐서 이래저래 주물럭거려 삶고 삶은걸 볶으고 볶은걸 지지고 지진걸 튀기고 튀긴걸 걸러서 올려놓았는데도 맛이 없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어도 그 손님이 “황제”이니 어쩔수 없다. “먹거리업은 밑지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성지처럼 받들고 시작한 일이 아닌가! 더 맛있게, 오직 더 맛있게만 하면 손님들도 “ok!”고 주인도 “ok!”다. 그래서 골을 질끈 동이고 머리를 짜면 수가 생긴다. 그 질긴 소고기도 어찌어찌 주물럭거려놓으면 두부모처럼 몰씬몰씬해지고 튀긴걸 어떻게 또 튀기면 그 땅땅하던 닭뼈가 사각사각 씹히다가도 사르르 녹아내리기까지 한다. 끓인걸 또 끓이고도 모자라서 가스렌지까지 상우에 올려놓고 자꾸자꾸 끓인다. 거기에다 연변고추가루요 사천후추가루요 하며 푹푹 뿌려서는 훌훌 불며 먹으니 입안이 짱- 열리며 얼벌벌해진다. 세상 별맛이다.
그런 특이한 맛을 보기 위해 한두번 찾아가는것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헌데 어떤 량반들은 그런 맛에 맛을 들이면 하루이틀이 멀다하게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선동하기까지 한다.
“야, 거기 그 맛이 한절반 죽여준다. 가자, 오늘저녁은 내가 쏠게!”
모두들 우르르 쓸어가서 그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세상 별맛이라고! 그 사람들 돌아가서 또 제각기 제친구들을 꼬드긴다. 그러면 손님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그 식당엔 대박이 터지게 된다.
식당에 대박이 터져서 주인은 돈을 버는데 그 식당으로 드나드는 단골객들의 위와 간을 비롯한 장기들은 어떻게 되여갈가? 음식물을 끓이면 끓일수록, 기름에 튀기면 튀길수록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점은 이미 전문가들의 과학실험에 의해 검증되였다. 그래서 어느 한 전문가는 이렇게 대성질호하고있다.
“식당으로 한번 가는것이 무덤으로 한걸음 다가서는것과 같다”고.
좀 지나친 말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은 맛이 있을수록 독이 된다”는 말도 있는데 뭐 과학적수치로 검증해낸 결론은 아니지만 많은 실례로 증명해줄수 있는 조언은 될수 있겠다. 중국력대의 황제들 수명이 모두 길지 못했었다. 40대중반에 요절한 황제가 많았다. 그 락후했던 세월에 맛있다는걸 돌아가며 다 맛본 황제일수록 더 일찍 죽어나갔다. 지금 우리 주변을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잘먹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비례가 높다는걸 보아낼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젊어서 외국에 나가 돈을 무척 벌어온 친구가 있었다. “먹다가 죽으면 후회없다”고 늘 마음을 쓰며 놀고먹고 락천적으로 보냈는데 간암이란 진단을 받고 상해에 가서 수술까지 하고나니 그게 아니였다. 그제야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애를 써봤지만…
먹거리가 흔장만장할 때일수록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음식물도 돈처럼 많아도 탈이요 적어도 탈이다.
먹을것이 적었을 때에는 별 우수운 일들이 다 있었다. “대식품시기”에는 음식이 맛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며 먹은것이 아니라 먹을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먹었다. 무릇 먹을수 있다면 그것이 풀뿌리든 나무껍질이든 벌레든간에 가리지 않고 다 먹었다. 먹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돋굴수 있었던것이다. 먹는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다. 삶는것이 위주였다. 조미료도 소금간장뿐이였다. 멀건 푸대죽에 소금을 툭 쳐서 차려놓아도 맛이 없다고 타발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며칠씩 감자만 삶아줘도 그처럼 맛있게, 일년내내 강냉이떡만 쪄줘도 그처럼 맛있게…모든 음식이 그처럼 맛이 있었던 세월이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먹는것을 놓고 로선분석도 하고 계급투쟁도 벌렸었다. 맛이 있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주나 자본가와 같은 자산계급이고 맛이 없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로동자나 빈하중농같은 무산계급이였다는것이다.
중학시절의 어느 한 겨울방학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웅덩개”마을에서는 계급투쟁교육을 강화한다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빈농 최할아버지를 모셔다 놓고 “이쿠스탠”(忆苦思甜)활동을 조직했었다. 널찍한 우사칸회의실안에 마을의 소학생과 중학생들이 사오십명 빙 둘러앉았다. 암흑했던 구사회를 추억하는 보도가 시작되자 환한 전등을 끄고 초불 몇대를 켜놓았다. 그런다음 녀자애들이 우사칸 소여물을 끓이는 가마에다 쪄낸 겨떡을 대야에 담아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어두운 초불밑에서 그 쓰디쓴 겨떡을 먹으며 지난날의 쓴맛을 체험해보라는 뜻이였다. 나도 자그마한 걸로 골라 한입 떼여 먹어보니 입안이 껄껄해났다. 뱉아버리고싶었다. 벌써 저급학년 철부지들이 앉은 쪽에서는 퉤! 퉤! 하고 뱉아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과외보도원선생님의 준절한 질책소리도 엄엄하게 들려왔다.
“누구야? 계급감정도 없어!”
다시 조용해지면서 우물우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최할아버지의 보고는 눈물겨웠다. 과거회억부분이 끝나고 최할아버지가 “마침내 해방이 되였습니다” 라고 하시자 누군가 스위치줄을 탁 당겨 전등을 켰다. 회의실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뒤이어 녀자애들이 이번에는 대야에다 맛있는 과자를 골똑골똑 담아서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팔을 뻗쳐 한웅큼씩 쥐여다가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목이 메여 꿱꿱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새사회의 행복을 느껴보라는 뜻이였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우루루 쓸어나가자 구석구석에 먹다가 버린 겨떡들이 지저분하게 나타났던것이다. 녀자애들이 그걸 거둬서 모으니 대여섯 대야나 되였다. 그걸 중간에 놓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몇몇 학생골간들과 함께 밤중까지 로선분석을 하느라 열을 올렸었다. 아무리 열을 올린들 어찌하랴, 맛이 있는걸 좋아하고 맛이 없는걸 싫어하는 아이들의 입을!
개혁개방이 되면서 음식물도 개방되였고 또한 새롭게 많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어 먼 옛날 황제들만 맛볼수 있었던 궁전음식도 다시 개발되여 평민들도 마음대로 맛을 보게 되였다. 헌데 10년 배부르게 먹고 10년 맛있게 먹고나니 먹는 수준이 사람마다 프로급이 되였다. 외국인들도 중국에 와보고는 입을 딱 벌린다. 맛있는 먹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동북에는 동북맛이 있고 남방에는 남방맛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맛이 있다. 어느 한 고장에 가보면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한다. 한 접시에 몇만원짜리 고급료리도 있는가 하면 한개에 오십전짜리 전병도 별맛을 돋구는것이 있다. 맛있는걸 더 맛있게 해먹기 위해 벼라별 방법을 다 쓴다. 조미료도 열가지, 스무가지, 무엇이 맛을 돋굴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버무려쓴다. 삶고 닦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것도 모자라서 태우고 굽고 내굴에 그슬러 먹기도 한다. 날것, 생것 그대로 먹는것도 모자라서 동물이나 곤충을 산채로 잡아다 먹는 료리도 있단다. 지어 한때는 남방에서 원숭이를 산채로 잡아다 놓고 눈알이 판들거리는 고놈의 정수리를 뾰쪽망치로 쳐서 뇌즙을 빨아먹는 료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사람이 할 노릇인지!
무슨 일에나 한계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도”라고도 했다. 그 “도”를 넘으면 일은 비뚤어질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음식도 대개 먹을만한 맛이 있으면 되는건데 맛이 있는걸 자꾸 더 맛있게 해먹다보니 그 음식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있다. 맛있는 음식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나쁜점이 있다.
첫째,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더 먹게 된다. 맛있는걸 해놓으면 서로서로 더 들라고 권한다. 이것이 먹는 법도의 례절이고 우리 사회의 인품이다. 과식이 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년에 한두번이나 한달에 한두번쯤 과식하는건 별문제이겠지만 자꾸자꾸 과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하루이틀이나 일이년내에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몇년, 지어 몇십년후에 나타난다. 시간이 길게 나타나는 문제일수록 인체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될수 있다. 좋은 음식일수록 적게 먹어야 “보약”이 된다.
둘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종합적인 배합물이다. 식당에 가보면 료리사들이 조미료를 열가지이상씩 놓고 쓴다. 료리의 맛을 돋구는 가장 관건적인것은 소금이다. 국제위생조직에서는 매일 매인당 소금흡수량을 6그람으로 제한할것을 요구하고있다. 헌데 료리 한접시에 들어가는 소금량이 6그람을 초과할 때가 있게 된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면 맛이 없다는 고객들의 의견이 홍두깨처럼 들이닥친다. 그러니 맛있는 료리를 많이 먹을수록 소금흡수량이 늘어나게 된다. 소금흡수량이 늘어나면 인체에 불리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가 아닌가!
셋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연하고 부드럽고 만만하고 시원하면서도 거뿐한 자극을 준다. 지어 사르르 녹아나는 감을 주는것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발을 해친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얼마든지 씹어서 먹을수 있는것도 더 맛있게 더 시원하게 먹는다고 믹스에다 갈아서 마신다. 무슨 음식이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고 씹으면 씹을수록 묽어져서 물이 된다. 그걸 하필이면 영양세포를 파괴시키면서 이발을 무르게 하면서 전기를 랑비하면서 갈아 마실건 뭔가! 누가 승냥이가 산포도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았는가? 까맣게 무르익어 몽글몽글해진 산포도를 승냥이는 찔긴 날고기를 먹을 때처럼 텁썩텁썩 물어뜯어서는 까등까등 힘주어 씹어먹는다. 만약 사람이 그걸 뜯어먹는다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먹을것이다. 다 같은 산포도이지만 까등까등 씹어먹은것과 오물오물 녹여먹은것이 위안에 들어간다음의 효과는 다른것이다. 이것이 총명한 사람의 무지한 약점이라고나 할가!
넷째, 맛있는 음식은 조합과정에서 많은 오점이 생긴다. 례를 들면 파와 두부를 섞어먹으면 인체에 불리한 물질이 생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부를 먹을 때 양념간장에 생생한 파를 송송 썰어서 넣는다. 그래야 맛있다.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을 섞어서 만들어 먹을 때 그 영양가치나 인체에 리로운가를 따지는것이 아니라 맛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다 보니 인체에 불리한 물질을 생성시켜 먹을 때가 있게 된다. 중약재도 잘 조합시키면 약이 되고 잘못 조합시키면 독이 된다.
이밖에도 맛있는 음식에 보이지 않는 약점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음식을 맛이 없게 해서 맛이 없게 먹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어떻게 먹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 관건은 맛있게 먹는것이다. 무릇 맛있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하고 맛이 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이 없게 먹으면 병이 생긴다. 그런데 맛이 없는 음식을 어떻게 맛이 있게 먹는단말인가? 여기에 먹는 예술이 수요된다.
첫째, 음식먹는 분위기를 조성할줄 알아야 한다. 혼자 먹거나 여럿이 함께 식사를 나누든지간에 각자의 성격, 애호, 환경,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각, 청각, 후각의 작용을 동원시켜 미각을 자극할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음식량을 잘 조절할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체중이 다르고 종사하는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기때문에 공통적인 표준량은 있을수 없다. 일반적으로 식사후 서너시간이 지나면 배고파날수 있는 량으로 조절하고 습관화시키면 좋다. 배고파날가말가 할 때 먹는것이 좋다. 배고픈 시간이 길면 위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
셋째, 특수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상응한 대책을 대야 한다. 례를 들면 기름기 있고 느끼한것을 먹었을 때에는 운동량을 좀 늘이고 마른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물을 더 마시는것이 좋다. 그래야만이 다음 끼니를 맛있게 먹을수 있다.
넷째, 맛이 없는 음식일수록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무엇이나 다 맛이 난다. 문제는 맛이 없는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오래 씹기 싫어한다. 한번 쓴맛이 나는것을 오래 씹어보면 알수 있다.
이밖에도 맛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게 먹을수 있는 비결이 많다. 또한 각자가 자기의 특점에 따라 자기로서만의 독특한 비결을 찾아낼수도 있는것이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건강으로 지켜야 한다. 건강을 지키자면 먹는것이 관건이다. 관건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학이다. 과학적으로 음식을 만들자면 우리의 입맛과 달라질 때가 많게 된다. 일반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이 인체에 리롭다. 마치도 “쓴것이 약”이라는 도리와 같다고나 할가!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음식은 간단하게 만드는것이 좋다. 대개 간단하게 만들어낸 음식이 맛을 돋구지 못한다. 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것을 맛이 있게 먹어야 한다.

자면 먹는것이 관건이다. 관건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학이다. 과학적으로 음식을 만들자면 우리의 입맛과 달라질 때가 많게 된다. 일반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이 인체에 리롭다. 마치도 “쓴것이 약”이라는 도리와 같다고나 할가!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음식은 간단하게 만드는것이 좋다. 대개 간단하게 만들어낸 음식이 맛을 돋구지 못한다. 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것을 맛이 있게 먹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먹는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을가? 없다. 그래서 세계명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세월이 좋아지니 하루 세끼니 배를 곯지 않고 먹게 되였다. 배가 부르니 좀 더 맛있는걸로 먹자는것이 사람입이 내미는 욕심이다. 옛날에는 돼지고기국을 해놓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요즘에 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돼지고기국을 먹는 사람이 있을가? 전번 날, 축하할만한 일이 생겨 남자에 녀자들 두루두루 맞춰 한상에 마주 앉았다. 녀자들 환심을 사느라 누군가 “궈보뤄(탕수육)도 청하지. 녀자들 전매특권이니까” 라고 호기를 피웠다가 그만 말밑천도 못찾고말았다.

“지금 그런걸 누가 먹습니꺄! 집에 각시가 그런걸 먹습디꺄?”

“허, 이 녀자들 입이 점점 고양이입이 되여가는구만. 그래 무얼 먹겠소?”

“남자들이 사줄 때 맛있는걸로 콱 먹어야겠는데… 야, 우리 무얼 먹을가?”

“글쎼말이, 요즘은 입에 맞는 음식이라곤 없더라.”

점점 높아가는 입덕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어간다. 랑군님의 안해로 된 새각시들, 아이들 어머니로 된 주부들, 아침상엔 무얼 올려놓을가, 저녁상준비는 어떻게 할가, 때시걱마다 근심이 앞선다. 끼니마다 맛이 있게 해서 정성껏 갖춰줘도 언제한번 맛있게 먹었다는 소릴 못들어본다. 그다음에는 돈깨나 벌려고 분식점이나 식당같은 음식업을 벌려놓은 주인들이다. 손님들 구미를 맞춰주기 점점 힘들어진다. 지금은 입이 입이 아니고 검사의기가 된듯 싶다. 먹으러 다니는것이 아니라 검식하러 다니는것 같다. 이게 이 맛이 아니고 저게 저 맛이 아니라고 송곳질 하며 꼬집어낼 때에는 정말 주인으로서는 입이 아홉개라도 할말이 없어진다. 이런저런 맛있다는걸 다 구입해다가 요런조런 조미료를 다 쳐서 이래저래 주물럭거려 삶고 삶은걸 볶으고 볶은걸 지지고 지진걸 튀기고 튀긴걸 걸러서 올려놓았는데도 맛이 없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다. 어처구니 없어도 그 손님이 “황제”이니 어쩔수 없다. “먹거리업은 밑지는 법이 없다”는 명언을 성지처럼 받들고 시작한 일이 아닌가! 더 맛있게, 오직 더 맛있게만 하면 손님들도 “ok!”고 주인도 “ok!”다. 그래서 골을 질끈 동이고 머리를 짜면 수가 생긴다. 그 질긴 소고기도 어찌어찌 주물럭거려놓으면 두부모처럼 몰씬몰씬해지고 튀긴걸 어떻게 또 튀기면 그 땅땅하던 닭뼈가 사각사각 씹히다가도 사르르 녹아내리기까지 한다. 끓인걸 또 끓이고도 모자라서 가스렌지까지 상우에 올려놓고 자꾸자꾸 끓인다. 거기에다 연변고추가루요 사천후추가루요 하며 푹푹 뿌려서는 훌훌 불며 먹으니 입안이 짱- 열리며 얼벌벌해진다. 세상 별맛이다.

그런 특이한 맛을 보기 위해 한두번 찾아가는것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헌데 어떤 량반들은 그런 맛에 맛을 들이면 하루이틀이 멀다하게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선동하기까지 한다.

“야, 거기 그 맛이 한절반 죽여준다. 가자, 오늘저녁은 내가 쏠게!”

모두들 우르르 쓸어가서 그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세상 별맛이라고! 그 사람들 돌아가서 또 제각기 제친구들을 꼬드긴다. 그러면 손님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그 식당엔 대박이 터지게 된다.

식당에 대박이 터져서 주인은 돈을 버는데 그 식당으로 드나드는 단골객들의 위와 간을 비롯한 장기들은 어떻게 되여갈가? 음식물을 끓이면 끓일수록, 기름에 튀기면 튀길수록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점은 이미 전문가들의 과학실험에 의해 검증되였다. 그래서 어느 한 전문가는 이렇게 대성질호하고있다.

“식당으로 한번 가는것이 무덤으로 한걸음 다가서는것과 같다”고.

좀 지나친 말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식은 맛이 있을수록 독이 된다”는 말도 있는데 뭐 과학적수치로 검증해낸 결론은 아니지만 많은 실례로 증명해줄수 있는 조언은 될수 있겠다. 중국력대의 황제들 수명이 모두 길지 못했었다. 40대중반에 요절한 황제가 많았다. 그 락후했던 세월에 맛있다는걸 돌아가며 다 맛본 황제일수록 더 일찍 죽어나갔다. 지금 우리 주변을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잘먹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비례가 높다는걸 보아낼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젊어서 외국에 나가 돈을 무척 벌어온 친구가 있었다. “먹다가 죽으면 후회없다”고 늘 마음을 쓰며 놀고먹고 락천적으로 보냈는데 간암이란 진단을 받고 상해에 가서 수술까지 하고나니 그게 아니였다. 그제야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애를 써봤지만…

먹거리가 흔장만장할 때일수록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음식물도 돈처럼 많아도 탈이요 적어도 탈이다.

먹을것이 적었을 때에는 별 우수운 일들이 다 있었다. “대식품시기”에는 음식이 맛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며 먹은것이 아니라 먹을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먹었다. 무릇 먹을수 있다면 그것이 풀뿌리든 나무껍질이든 벌레든간에 가리지 않고 다 먹었다. 먹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돋굴수 있었던것이다. 먹는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다. 삶는것이 위주였다. 조미료도 소금간장뿐이였다. 멀건 푸대죽에 소금을 툭 쳐서 차려놓아도 맛이 없다고 타발하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며칠씩 감자만 삶아줘도 그처럼 맛있게, 일년내내 강냉이떡만 쪄줘도 그처럼 맛있게…모든 음식이 그처럼 맛이 있었던 세월이였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먹는것을 놓고 로선분석도 하고 계급투쟁도 벌렸었다. 맛이 있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주나 자본가와 같은 자산계급이고 맛이 없는것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로동자나 빈하중농같은 무산계급이였다는것이다.

중학시절의 어느 한 겨울방학이라고 기억된다. 우리 “웅덩개”마을에서는 계급투쟁교육을 강화한다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빈농 최할아버지를 모셔다 놓고 “이쿠스탠”(忆苦思甜)활동을 조직했었다. 널찍한 우사칸회의실안에 마을의 소학생과 중학생들이 사오십명 빙 둘러앉았다. 암흑했던 구사회를 추억하는 보도가 시작되자 환한 전등을 끄고 초불 몇대를 켜놓았다. 그런다음 녀자애들이 우사칸 소여물을 끓이는 가마에다 쪄낸 겨떡을 대야에 담아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어두운 초불밑에서 그 쓰디쓴 겨떡을 먹으며 지난날의 쓴맛을 체험해보라는 뜻이였다. 나도 자그마한 걸로 골라 한입 떼여 먹어보니 입안이 껄껄해났다. 뱉아버리고싶었다. 벌써 저급학년 철부지들이 앉은 쪽에서는 퉤! 퉤! 하고 뱉아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과외보도원선생님의 준절한 질책소리도 엄엄하게 들려왔다.

“누구야? 계급감정도 없어!”

다시 조용해지면서 우물우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최할아버지의 보고는 눈물겨웠다. 과거회억부분이 끝나고 최할아버지가 “마침내 해방이 되였습니다” 라고 하시자 누군가 스위치줄을 탁 당겨 전등을 켰다. 회의실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뒤이어 녀자애들이 이번에는 대야에다 맛있는 과자를 골똑골똑 담아서 군데군데 나눠놓았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팔을 뻗쳐 한웅큼씩 쥐여다가는 볼이 미여지게 먹었다. 목이 메여 꿱꿱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새사회의 행복을 느껴보라는 뜻이였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서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우루루 쓸어나가자 구석구석에 먹다가 버린 겨떡들이 지저분하게 나타났던것이다. 녀자애들이 그걸 거둬서 모으니 대여섯 대야나 되였다. 그걸 중간에 놓고 과외보도원선생님이 몇몇 학생골간들과 함께 밤중까지 로선분석을 하느라 열을 올렸었다. 아무리 열을 올린들 어찌하랴, 맛이 있는걸 좋아하고 맛이 없는걸 싫어하는 아이들의 입을!

개혁개방이 되면서 음식물도 개방되였고 또한 새롭게 많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어 먼 옛날 황제들만 맛볼수 있었던 궁전음식도 다시 개발되여 평민들도 마음대로 맛을 보게 되였다. 헌데 10년 배부르게 먹고 10년 맛있게 먹고나니 먹는 수준이 사람마다 프로급이 되였다. 외국인들도 중국에 와보고는 입을 딱 벌린다. 맛있는 먹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동북에는 동북맛이 있고 남방에는 남방맛이 있고 북방에는 북방맛이 있다. 어느 한 고장에 가보면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한다. 한 접시에 몇만원짜리 고급료리도 있는가 하면 한개에 오십전짜리 전병도 별맛을 돋구는것이 있다. 맛있는걸 더 맛있게 해먹기 위해 벼라별 방법을 다 쓴다. 조미료도 열가지, 스무가지, 무엇이 맛을 돋굴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버무려쓴다. 삶고 닦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것도 모자라서 태우고 굽고 내굴에 그슬러 먹기도 한다. 날것, 생것 그대로 먹는것도 모자라서 동물이나 곤충을 산채로 잡아다 먹는 료리도 있단다. 지어 한때는 남방에서 원숭이를 산채로 잡아다 놓고 눈알이 판들거리는 고놈의 정수리를 뾰쪽망치로 쳐서 뇌즙을 빨아먹는 료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사람이 할 노릇인지!

무슨 일에나 한계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도”라고도 했다. 그 “도”를 넘으면 일은 비뚤어질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음식도 대개 먹을만한 맛이 있으면 되는건데 맛이 있는걸 자꾸 더 맛있게 해먹다보니 그 음식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있다. 맛있는 음식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나쁜점이 있다.

첫째,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더 먹게 된다. 맛있는걸 해놓으면 서로서로 더 들라고 권한다. 이것이 먹는 법도의 례절이고 우리 사회의 인품이다. 과식이 불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년에 한두번이나 한달에 한두번쯤 과식하는건 별문제이겠지만 자꾸자꾸 과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가 하루이틀이나 일이년내에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몇년, 지어 몇십년후에 나타난다. 시간이 길게 나타나는 문제일수록 인체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될수 있다. 좋은 음식일수록 적게 먹어야 “보약”이 된다.

둘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종합적인 배합물이다. 식당에 가보면 료리사들이 조미료를 열가지이상씩 놓고 쓴다. 료리의 맛을 돋구는 가장 관건적인것은 소금이다. 국제위생조직에서는 매일 매인당 소금흡수량을 6그람으로 제한할것을 요구하고있다. 헌데 료리 한접시에 들어가는 소금량이 6그람을 초과할 때가 있게 된다. 소금이 적게 들어가면 맛이 없다는 고객들의 의견이 홍두깨처럼 들이닥친다. 그러니 맛있는 료리를 많이 먹을수록 소금흡수량이 늘어나게 된다. 소금흡수량이 늘어나면 인체에 불리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가 아닌가!

셋째, 맛있는 음식은 대개 연하고 부드럽고 만만하고 시원하면서도 거뿐한 자극을 준다. 지어 사르르 녹아나는 감을 주는것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발을 해친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얼마든지 씹어서 먹을수 있는것도 더 맛있게 더 시원하게 먹는다고 믹스에다 갈아서 마신다. 무슨 음식이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고 씹으면 씹을수록 묽어져서 물이 된다. 그걸 하필이면 영양세포를 파괴시키면서 이발을 무르게 하면서 전기를 랑비하면서 갈아 마실건 뭔가! 누가 승냥이가 산포도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았는가? 까맣게 무르익어 몽글몽글해진 산포도를 승냥이는 찔긴 날고기를 먹을 때처럼 텁썩텁썩 물어뜯어서는 까등까등 힘주어 씹어먹는다. 만약 사람이 그걸 뜯어먹는다면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녹여먹을것이다. 다 같은 산포도이지만 까등까등 씹어먹은것과 오물오물 녹여먹은것이 위안에 들어간다음의 효과는 다른것이다. 이것이 총명한 사람의 무지한 약점이라고나 할가!

넷째, 맛있는 음식은 조합과정에서 많은 오점이 생긴다. 례를 들면 파와 두부를 섞어먹으면 인체에 불리한 물질이 생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부를 먹을 때 양념간장에 생생한 파를 송송 썰어서 넣는다. 그래야 맛있다.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을 섞어서 만들어 먹을 때 그 영양가치나 인체에 리로운가를 따지는것이 아니라 맛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다 보니 인체에 불리한 물질을 생성시켜 먹을 때가 있게 된다. 중약재도 잘 조합시키면 약이 되고 잘못 조합시키면 독이 된다.

이밖에도 맛있는 음식에 보이지 않는 약점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음식을 맛이 없게 해서 맛이 없게 먹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어떻게 먹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 관건은 맛있게 먹는것이다. 무릇 맛있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하고 맛이 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맛이 없게 먹으면 병이 생긴다. 그런데 맛이 없는 음식을 어떻게 맛이 있게 먹는단말인가? 여기에 먹는 예술이 수요된다.

첫째, 음식먹는 분위기를 조성할줄 알아야 한다. 혼자 먹거나 여럿이 함께 식사를 나누든지간에 각자의 성격, 애호, 환경,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각, 청각, 후각의 작용을 동원시켜 미각을 자극할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음식량을 잘 조절할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체중이 다르고 종사하는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기때문에 공통적인 표준량은 있을수 없다. 일반적으로 식사후 서너시간이 지나면 배고파날수 있는 량으로 조절하고 습관화시키면 좋다. 배고파날가말가 할 때 먹는것이 좋다. 배고픈 시간이 길면 위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

셋째, 특수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상응한 대책을 대야 한다. 례를 들면 기름기 있고 느끼한것을 먹었을 때에는 운동량을 좀 늘이고 마른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물을 더 마시는것이 좋다. 그래야만이 다음 끼니를 맛있게 먹을수 있다.

넷째, 맛이 없는 음식일수록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무엇이나 다 맛이 난다. 문제는 맛이 없는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오래 씹기 싫어한다. 한번 쓴맛이 나는것을 오래 씹어보면 알수 있다.

이밖에도 맛이 없는 음식을 맛이 있게 먹을수 있는 비결이 많다. 또한 각자가 자기의 특점에 따라 자기로서만의 독특한 비결을 찾아낼수도 있는것이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건강으로 지켜야 한다. 건강을 지키자면 먹는것이 관건이다. 관건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학이다. 과학적으로 음식을 만들자면 우리의 입맛과 달라질 때가 많게 된다. 일반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이 인체에 리롭다. 마치도 “쓴것이 약”이라는 도리와 같다고나 할가! 영양학적으로 따지면 음식은 간단하게 만드는것이 좋다. 대개 간단하게 만들어낸 음식이 맛을 돋구지 못한다. 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것을 맛이 있게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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