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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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동북아시아시대의 연변과 조선족』

[단편소설]기미(홍천룡)
2010년 08월 03일 09시 16분  조회:1513  추천:24  작성자: 홍천룡

단편소설


                        기 미

                                                         홍천룡

1


옛날부터 깊숙한 봉산자락 골짜기를 따라 조용히 들어앉은 금불촌을 호박골이라고 불러왔었다. 호박이 잘되는 고장도 아니였다. 오히려 색시들이 호박처럼 둥글둥글 둥그렇게 번지여 벌방마을에서들 부지런히 뜯어들 갔던것이다. 지금은 버들가지처럼 바람에 하느작거리는 녀자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배를 채우기도 힘들었던 세월이라 호박처럼 딜딜 구을릴수 있는 색시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길 좋아했었다. 대개 그런 녀자들은 아기도 무우뽑듯 했고 살림살이도 물이 못새게 했고 도야지치기에도 매끄럽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호박골이라는 별명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척박한 호박골에 곡식은 뭐 그럭저럭 대충대충 됐지만 자식농사만은 잘되는 고장이였다.
재해가 빈번했던 세월에도 골안사람들은 제노릇을 슬밋슬밋 해가는 판국이였다. 대약진바람이 불어치던 이듬해는 기해년이라 호박골에서는 희사를 치른 집이 여러호나 되였다. 돼지해라고 복을 받는다나! 뒤마을 바가지 박씨인 금덕이네도 새며느리를 맞아들이게 되였다. 벌방에서 데려온 색시인데 호박골처녀들처럼 얼굴이 호박처럼 두리두리했고 엉뎅이가 펑퍼짐해서 마을아낙네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더구나 두 눈섭사이의 미간을 돋보이게 하는 붉은 점이 딱 중심에 박혀있어 남다른 미를 이루고있었다.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멋을 피우느라 연지분을 꼭 찍어놓았는가 했었다. 첫날 혼례마차에서 내릴 때 그걸 보고 해괴망측하다고 입을 오무리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어마나, 요귀처럼 이마빠기에다 왜 홍점을 찍었나? 나원, 별꼴 다 보겠네."
"원, 별말씀을요. 보기가 좋네요. 얼마나 고와보여요."
지난해에 시집온 젊은 각시가 끼여들었다.
"그럼, 그럼! 골안북데기들이 고운걸 볼줄 알기나 해!"
젊어서 연해주항구도시인 블라디보스또크에 가서 적사공질 해본 적이 있는 사룡이가 희떠웁게 너스레를 떤다.
"영화에서 나오는 모스크바의 미녀들이라든가 인도녀자들은 저렇게 이마에다 빨간 점을 찍어가지고 다닌다구. 그래야… 뭐, 뭐야, 영화란 무엇인가구? 아하, 이걸 어쩌누? 이 안깐덜이 한뉘 영화도 못보고 이 골안에서 썩었구만. 불쌍하구나, 가엽도다, 하느님이여! 영화란 말이야…"
사룡이가 한창 상판을 해뜩거리며 지분거리는데 뒤에선 마을의 왈패 아줌마가 그의 말을 호박 따개듯 썩뚝 짜른다.
"영화는 무슨 영화! 제혼자만 영화를 보았는가베. 색시이마에 저 홍점이 괜히 찍어놓은게 아니라 저절로 난 기미래."
"어마나, 신통하게도 박혔어요."
기미 하나가 수수한 얼굴을 한결 더 예쁘게 다듬어놓은것만 같았다.
“복짐이야, 완전히 복받을 기미라구!”
동네에서는 복덩이며느리를 삼았다고 줄레줄레 모여들어 축하해주었다. 금덕이내외간은 기분이 둥둥 떠서 그 귀한 쌀을  꿔다가 떡도 더 치고안주거리도 더 푸짐하게 차려놓고 얻기 힘든 고구마술도 더 떠왔다. 어쩌다가 배를두드리며 먹게 된 잔치객들이 새각시의 이마전 기미를 두고 덕담에 열을 올리고있을 때 “시골선비”라 불리우는 앞마을 최학빈이가 괜히 코방귀를 꿨다.
“복짐은 무슨 복짐! 길한지 흉한지 누가 알가!”
그 말에 둥굴소같이 생긴금덕이네 친척 몇이 왕― 하고감때사납게 덮쳐들었다. 미친놈이 미친 소리를 한다고. 당금 손찌검이 터지고 피를 볼건만 같아 동네나그네들이 말려나섰다. 뭐, 독한 고구마술이 은을냈다고, 술에 취하면 누군들 도깨비가 되고싶어 되겠느냐고, 도깨비와 무슨 시비가 있겠느냐고, 미친놈의 미친소리가 아니고 주정뱅이가 주정부리는거지…헌데 그 말이 미친소리가 아니였고 술에 취한 취중발설이 아니였다.
시아버지로 된 금덕이가 그해여름부터 쨍쨍 내리쬐는 해볕에 낯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더니 가뜩이나 도도록하게 뽈록진 이마가 가마밑굽처럼 반질반질해졌다. 호박이 누렇게 뻘겋게 밭고랑에 옹그리고 자리를 틀 철에는 몸이 겨릅대처럼 빼빼 말라갔다. 작년에 입던 저고리를 입고 조이밭머리에 나서니 미풍에도 헐렁해진 품이 너풀거렸고 더구나 내리드리운 소매자락이 삼각기처럼 펄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어찌보면 마른 막대기에다 헌 베옷을 걸쳐놓은 허수아비 같기도 했다. 그 형국이 가슴쓰리게 보여 한숨을 길게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벌방에서 시골로 시집온 그 이마전에 붉은 기미를 단 새 며느리―안민옥이는 여늬 색시들처럼 노오란 꿈을 안고 시집살이에 들어섰다. 신랑 박송식이를 만나기전에 그녀한테로 혼사말이 여러 집이 들어왔었다. 헌데 어머니 유씨가 맘고생이 마지막 고생이라며 골안총각 송식이를 마음에 들어했었다. 골안으로 시집간 녀자들이 마음고생하는걸 못봤다면서. 민옥이는 시집오기 전날 밤에 자기의 손목을 쥐고 간곡하게 타이르던 어머니의 말씀을 고이 간직하고있다.
"시집살이란 시부모를 잘 모시는거다. 제집부모처럼 생각하거라. 그래야 너를 친딸처럼 여길게 아니겠냐. 그이상 더 없다."
 민옥의 노오란 꿈이란 어머니처럼 자식 대여섯을 낳아 튼실하게 키우고 시부모님들과 화락하게 어울려져 사는것이였다. 시집문턱을 넘어서고보니 시집살림살이가 생각보다 궁색하기 그지 없었다. 허지만 그녀는 불만의 내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고 모든걸 달갑게 받아들였다. 시아버지 금덕이도 시어머니인 허씨도 며느리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종종 서로 지나치게 생각해주는 바람에 오히려 어색해질 때가 있었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민옥이는 시아버지의 몸이 점점 더 허약해짐을 보고 못내 불안과 근심에 쌓였다.
하루는 그녀가 빨래함지를 이고 울안에 들어서는데 삽짝문뒤에서 모이를 쫓던 알낳이 암탉이 불시에 홰를 치며 날개를 퍼득이였다. 흠칫 놀란 민옥이는 하마터면 빨래함지를 떨어뜨릴번 했다.
"괘씸한 년!"
민옥이는 발을 탁 굴렀다. 토종암탉은 살찐 궁둥이를 빼쪽거리며 저쪽으로 달아났다. 그 호함진 궁둥이를 바라보는 민옥의 목젖이 저절로 울떡거렸다. 시집와서 한번도 비비한 고기국물을 마셔보지 못했었다. 약진바람에 그 흔한 물고기도 잡을사이가 없었고 더구나 금덕이네는 잔치 때 진 빚 때문에 온집식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밤낮 눈코 뜰새없이 돌아치고있었던것이다.
민옥이는 친정어머니가 닭을 잡던 정경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몸져눕거나 아버지의 몸이 허약해지실 때면 꼭 살찐 암탉을 잡아서 고와드렸던것이다. 사람의 몸이란 먹새가 관건인 것 같았다. 닭을 고와드리면 어른들은 인차 몸이 개복되군 했었다. 어머니와 자기네 형제자매들은 국물만 마셨지만 그렇게도 구수할 수가 없었다.
민옥이는 빨래함지를 내려놓고 그 토색암탉을 붙잡느라 몸과 머리에 검불을 뒤집어쓰기까지 했다…
금불골안에서 돼지치기능수로 손꼽히는 시어머니 허씨가 지게문에 들어서 밭머리에서 캔 능쟁이를 마루바닥에 쏟다가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쳐들고 코를 벌름거렸다. 명절날에나 맡아볼수 있었던 냄새가 너무나도 강렬하게 허씨의 코를자극했던것이다. 허씨는 능쟁이주머니를 활 뿌려치고 늦김에 쌕쌕김을 뽑고있는 가마뚜껑을 열어젖혔다. 뽀얀 뜬김속에서 노란 닭이 뽀질뽀질 익어가고있었다. 허씨의 상판이 독이 오르기 시작한 고추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고, 알낳이 암탉을 잡으면 어떡해?”
허씨가 처음 새 며느리를 보고 낯을 붉혔다.
“아버님께 좀 몸보신해드리려구…”
이 집에서 알낳이닭이 귀한걸 모르는 민옥이가 아니다. 잔치때 진 빚을 갚기위해 돼지도 정성껏 치고닭들이 알을 낳으면 한알한알 깰세라 모아두고있는것도 안다. 허지만 시아버님의 기체가 하루하루 안녕치 못해가시는걸 보고 어찌…
저녁늦게야 일밭에서 돌아오신 시아버님이 자기때문에 며느리가 알낳이 암탉을 잡았다는 말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것이였다. 오늘따라 얼굴이 더 새까매진것 같았다.
“요즘 닭알이 십전까지 올라갔다는데 후―”
시아버지는 웃방에 올라가 올방자를 틀고 앉아 마분지 쪼박에다 말린 엽초를 부시여 말아물고는 푸―푸― 태우기만 하셨다.
이 집안에 처음으로 시작되는 “랭전”상태였다.
대대민병련의 집중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온 신랑 송식이가 이 난처한 분위기를 깨뜨리며 어색하게나마 넉살을 부려서야 네 식구는 겨우 저녁밥상에 마주 앉게 되였다. 닭은 옹배기에 담아 밥상가운데 놓았다. 허나, 서로 낯빛이 뚝뚝해서 사양하는 바람에 닭곰에는 수저를 대는둥마는둥 했다. 이튿날 아침상에서도 닭곰은 그대로 남게 되였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사흘째되는 날 저녁에 민옥이는 닭고기를 잘게잘게 찢어서 다시 푹 삶은다음 시아버님께 따로 독상을 차려올렸다.
“아버님, 이 닭고기국을 드세요. 더 둘수가 없어요. 제가 철딱서니 없이 놀아서…”
시아버지의 검스레 움푹하니 꺼져들어간 눈확에서는 이슬이 반짝이였다. 목젖이 둬어번 울꺽거리고나서 시아버지는 천천히 숟가락을 드시였다…
한밤중에 “거 옹배기가 없느냐!” 하는 시아버지의 부름 소리에 민옥이는 송식의 품을밀치고 일어나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느새 아래방에서 허씨가 불을 켜고 세수대야를 찾아들었다. 시아버지 금덕이가 전신을 구불떡거리며 왈왈토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낮다란 집안에는 시크무레한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허씨가 령감의 이마전을 붙잡고 민옥이가 시아버님의 잔등을 토닥여주었다. 뒤늦게 일어난 송식이가 두눈을 흡떴다.
“아부지, 웬일이세요?”
“에구에구, 그 닭고기가 끝내 재를 쳤구나. 한뉘 토하시는 법을 모르시던 량반이…”
허씨가 눈물범벅이 된 면상을 둘레둘레 굴리며 넉두리를 피루어댔다. 그 넉두리가 뾰쪽한 송곳날이 되여 민옥의 가슴을 짜릿짜릿하게 콕콕찔렀다. 괜히 닭을 잡아가지고 이런 부산을 피우게 했는가 하는 후회가 가슴을 허비였다.
한참 토하고난 금덕이는 맥이 쭉 빠지는지 물먹은 솜처럼 해나른해지며 잦아들듯 잠자리에 쓰러졌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을 때 미구에 그는 또 되살아나는 뱀처럼 전신을 구불떡거리더니 다시 일어나 목을 늘어뜨리며 왝! 왝! 마른 구역질을 했다. 그러다가 왈칵! 하고 시뻘건 피를 토하는것 이였다…
그날 밤부터 금덕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공 사위생소의 마의사가 와보고는 연길에 있는 큰병원에 가야 한두해 더 살수 있겠는지 하는혀아래소리를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민옥이는 자기때문에 시아버님의 병이 중해졌다고 눈두덩이 벌겋게 되여 울었다. 그래서 무작정 시아버지를 큰병원으로 모시자고 주장해나섰다. 큰병원에 가면 시아버지의 병이 치료될것만 같았다.
동네이웃간에 서로들 찾아와서 은근히 뒤를 당겨주었다. 살릴수만 있다면 연길이 아니라 북경이라도 가야겠지만 환자의 병세가 불보듯 뻔한일이 아닌가! 괜히 공돈만 팔고사람도 구하지 못하고 길가에서 환자만 고생시킨다는것이다. 마지막 길에 무슨 그런시달림을 받게 하겠느냐고. 오히려 집에다 편안하게 모시고 잡숫고싶은걸 다 대접시키면서 무슨 소원이 있으면 그 소원을 풀어드리면서 마지막 길을 즐겁게 보내시는게 좋겠다는것이다. 그것도 그랬다. 교통이 불편한 호박골에서 공사마을까지는 소수레에다 모시고 꼬불꼬불 달구지길로 이삼십리 가야 하고거기에서 하루밤 자고 하루에 한번밖에 통하지 않는 복잡한 뻐스를 타고 백리밖에 있는 현소재지에 가서또 하루밤 자고 새벽기차를 갈아타야 했으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정말 무리가 아닐수 없었다.
또 바쁜 가을철이 드닥쳐 사원들에게 숨돌릴 기회조자 주지 않았다. 금방 세워진 인민공사의 집체화위력을 과시하느라 철마다 돌격전이다. 생산대에서는 새벽부터 종을 뗑! 뗑! 치며 사원들을 추수돌격전에 몰아붙였고 집집의 아낙네들의 할일도 많아졌다.
그럭저럭 며칠이 지나니 금덕이의 까만 얼굴에 누런 밑바탕이 드러나더니 전신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넓죽하던 가래발이 아기발처럼 통통 부어올랐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세치네탕(물고기국)”을 끓여먹던 이야기를 해서 민옥이는 온동네 집집이 다 돌며 “새벽발(초저녁에 도랑물에 퉁발이나 채발을 놓았다가 새벽녘에 나가 걸려든 물고기를 건져오는 고기잡이)”을 쳐서물고기를 잡은 집이 있는가고 알아보았다. 눈코 뜰새없는 가을철이라 “새벽발”을 놓는집이 한집도 없었다. 할수없이 뒤집 장철이네 반두를 빌려가지고 강가로 나섰다. 몸이 오싹해나는 찬물에 들어서서 반나절이나 철벅거려서야 겨우 반사발쯤 잡았다. 그걸 정성껏 끓여서 대접했더니 시아버지는 땀을 줄줄 흘리며 겨우 반공기쯤 축내고 숟가락을 놓으며 게면쩍게 웃었다.
“어, 시원하다. 고맙수. 그리구 이봐, 며느리, 나 손주놈이나 보고죽고싶은데…”
국이 반쯤 담긴 공기를 들고 일어서려던 민옥이는 몸을 흠칫 떨었다. 시아버님의 정기없는 눈이 자기를 멀거니 바라보고있었다.
“네, 아버님, 꼭! …”
시아버님이 불쑥 손주가 보고싶다는 말을 하자 민옥이는 가슴속으로부터 뜨거운것이 욱 치밀어올라 눈굽이 젖어올랐다. 순간, 민옥이는 시아버님을 병마에서 꼭 구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쭉 일어서며 숭엄해졌다.
그날 저녁 민옥이는 시어머니앞에 시집올 때의 뉴똥이요, 베르베또요 하는 례장감을 몽땅 내놓았다. 그걸 처분해서 시아버지를 큰병원으로 모시자것이였다. 허씨는 잠시어쩔줄 몰라했다. 아직 숨이붙어있는 시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며느리의 그 마음을 어찌 막으랴! 신랑 송식이도 안해의 거동에 놀랍기도 하고 감동되기도 했다.
“오냐, 나라고 령감을 잃고싶겠냐!”
나중에 허씨는 며느리의 손을꼭 잡아쥐고 락루하였다.
떠나는 날 이른 아침에 마을사람들이 배웅하러 금덕이네 울안으로 웅기중기 모여들었다. 삶은 닭알을 가지고 온 아낙네들도 있었고 시루떡을 보자기에다 싸가지고 온 로친네들도 있었다. 남정네들은 오십전짜리나 일원짜리를 꺼내 송식의 호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생산대에서 수레와 둥굴소를 내놓았다. 수레에다는 짚을 펴고 그우에다 담요를 깔고 민옥이가 첫날이불을 내왔다. 면상이 검누렇게 된 금덕이가 그우에 눕자민옥이가 이불을 턱밑까지 꽁꽁여며주었다. 그 정경을 바라보며 쿨쩍거리는 아낙네들도 있었고 돌아서서 눈굽을 찍는 남정네들도 있었다. 마지막 길이되지 않을가 하는 슬픔이 속에서 여울쳤던것이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여 송식이가 둥글이의 고삐를 잡았다. 시골농의 도회지행차라 송식이는 장가들 때의 “세비로(신사복)”에 캡을 썼다. 그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이랴!” 하고 웨치려는 순간이였다. 난데없는 골안바람이 휙- 돌개치며 송석의 도끼머리변두리에  삐딱하게 얹은 캡을 훌 날려버렸다. 캡은 나비연처럼 반공중에서 둬어번 너울거리더니 이어 팽그르르 돌며 급격하게 하강하여 길가 언덕비탈에 떨어져 대굴대굴 굴러갔다.
“젠장! 여보, 이걸 쥐오.”
송식이는 소고삐를 곁에 선 민옥이한테 넘겨주고는 캡이 떨어진 언덕아래로 달려갔다. 시집오기전에 두엄수레를 자주 몰아본적이 있는 민옥이라 자연스럽게 소고삐를 넘겨받고는 역시 “이랴!” 하며 담차게 소수레를 몰려고 했다. 헌데 둥굴이가 대가리를 움츠리며 앞발을 내뻗치고 퉁방울 같은 눈을 뚝 부릅떴다. 녀석이 녀자라고 골리는것일가! 민옥이가 다시 소고삐를 드세게 잡아채려고 두손으로 그걸 모아쥐려는 순간에 둥굴이가 움츠렸던 상체를 쑥 앞으로 내밀었다. 소의 거대한 몸체가 민옥이를 밀박아쳤다. 민옥이는 어쩔사이도 없이 저만큼 뿌리워나갔다. 둥굴이가 용을 쓰며무작정 앞을 박지르며 내달렸다. 둥굴이에게 메운 수레도 널뛰듯 덜컹거리며 끌려나갔다. 수레에 누운 금덕이가 “어이쿠!” 하고 비명소리를 애처롭게 질렀다. 배웅하러 나왔던 동네사람들이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지며 입을 딱 벌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장면이였다.
“날래! 날래!”
“저 둥굴이를 붙잡아라!”
남정네들이 두주먹을 부르쥐고 내달았다. 성난 둥굴이는 점점 더 미친듯이 내달렸다. 소궁둥이에 매달린 수레가 좌우로 흔들거리며 기우뚱거렸다. 분홍색나는 민옥의 첫날이불이 기폭처럼 수레우에서 너펄거렸고 그속에서 시커먼 금덕의 몸체가 구불떡거리고있었다.
“저런, 저런! ”
아낙네들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질렀다. 수레우에 올려놓았던 옷보자기며 떡보자기들이 불쑥불쑥 튕겨올랐고 닭알이며 떡부스레기며가 길바닥에 돌돌 떨어져 나뒹굴었다. 마을어구 굽인돌이에서 오른쪽 수레바퀴가 큼직한 청석돌에 튕기여 수레가 일찍선을 이루며 허공에 떴다. 그 순간에 담요에 감긴 금덕이가 뿌리워나가 반공중에 포물선을 긋더니 그대로 길가 언덕배기에 홀쭉한 쌀자루처럼 털썩 떨어졌다…


2


령감을 북산에다 모셔놓고 돌아온 날 저녁에 허씨는 전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이발을 덜덜 떨었다. 이불을 두채나 겹덮고 후꾼해나는 가마목에 누웠으나 소용없었다. 령감을 따라 이 골안에 온후부터 앓음이란 모르고 살아온 허씨였다. 송식이가 한밤중에 아래마을 청인집 왕씨네 댁에 가서쭈글쭈글 말라빠진 생강 두쪽을 얻어왔다. 민옥이가 그걸 정성껏 달여서 생강물을 허씨에게 대접시켰다. 그걸 마시고 땀을 내니 몸이 좀 거뿐해나는지 허씨는 미구에 잠이 들었다.
  호주(户主)가 없는 집안은 기둥이 빠진 집과도 같다. 시아버님을 잃은 민옥의 가슴도 공허하기 그지 없었다. 그해 겨울부터 민옥의 몸에서는 임신오조가 나타나며 입맛이 떨어졌다.
어느 날, 민옥이가 없는 틈을 타서 허씨는 아들 송식이를 조용히 불렀다.
“안되겠구나. 아무래도 돌려보내야겠다!”
“돌려보내다니? 뭘 말이오?”
허씨는 두눈을 쪼프리고 둥굴넙적한 아들의 면상을 올려다보며 아래 입술을 감쳐물었다.
“네 각시말이다. 둘이 더는 같이못산다.”
“엄마!?”
송식이는 아닌 밤중에 이게무슨 홍두깨냐는듯 입을 딱 벌렸다.
“이 에미가 요즘 밤잠도 못잤네라. 네 애비가 잘못된것도 그저일이 아니다. 전번날 뒤집 장철에미가 병문안 왔다가 하는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 그날 순돌이였던 생산대의 둥굴이가 용을 쓰게 된것도 네 각시의 그 이마전에 난 기미를 보고놀란거란다. 수다쟁이 학빈령감의 말이 맞는것 같구나. 조만간에 그 기미때문에 우리 이 집안이 망하고말겠다. 네 애비를 잡아먹었으니 인젠 이 시에미를 잡아먹자고 병마를 끌어다 내몸을 문거지. 그다음에는 네 차례일거고 그다음에는…”
“엄마, 정신이 있소없소? 대약진시기에 인민공사까지 선 오늘날 무슨 그런 미신소리를 하고있소?”
송식이가 어이 없다는듯 눈을흘기며 어머니를 꾸짖는다. 그러건말건 허씨는 팔을 내저었다. 주름이 잡힌눈가에 눈물이 찔끔 솟더니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어이구, 미신이 아니구 귀신이야. 그래 귀신이 이 에미를 잡아먹겠다는데도 넌 가만있겠다는 말이냐?”
“엄마, 그게 그런게 아니구…”
“아니구뭐구 있냐? 네가 이 에미를 살리구 너도 살구 이 집안을 지키겠으면 어서 갈라져라. 한시 급하다.”
“안되오, 엄마. 그건 안될 소리요. 민옥이가 지금 임신했는데 어떻게…”
“뭐, 임신?”
허씨는 소스라치며 놀라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아들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그게 정말이냐? 어이구, 아이까지 배면 더구나 큰일이다. 귀신이 붙은녀자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그 혼을 달고 나오는거란다. 어쩌겠냐. 저 시가지 큰병원에 가면후과없이 깨끗하게 밀어낼수 있다는데…”
“엄마, 그게 사람이 할 소리요. 점점 귀신에 미쳤구만. 에익!”
송식이는 잔뜩 낯을 찡그리며 벌떡 일어섰다. 생각같아서는 모든걸 마구 들부시고싶어졌다.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허씨가 불쑥 그의 왼쪽 허벅다리를 끌어안았다.
“송식아, 아들아, 이 에미가 네앞에서 이렇게 빈다. 제발, 제발!”
송식이는 왼쪽다리를 빼려고 힘껏 들며 앞으로 내밀었다. 허씨가 집게처럼 꽉 끌안고있었다.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허씨가 앉은뱅이 그대로 질질 끌려왔다. 송식이는 고개를 외로 탈며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자기를 애처럽게 올려다보는 얼굴은 정녕 눈물범벅이 되여있었다. 가슴이 시큰해나며 눈앞이 흐려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앉아 어머니의 섬약한 어깨를 끌어안았다. 모자간은 서로 끌어안고 한동안 흐느껴 울었다.
“엄마, 녀자치고는 민옥이만한 녀자도 없소. 초롱불 켜들고 찾아다녀도 찾기 힘든 녀자오. 맘씨 얼마나 곱소. 더구나 임신까지 한 녀자를… 엄마, 이렇게 하기오. 민옥이와 방법을 대서 그 이마전의 기미를 없애버리라구 하기오.”
나중에 송식이는 이런 절충방안을 내놓았다. 그 말에 허씨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동의한다는 말도 없고 묵인한다는 고개끄덕임도 없었다.
이듬해 봄부터 송식이와 민옥이는 기미를 없애는데 무슨 비방이 있겠는가고 여러모로 수소문해보았다. 수술해보라는 사람도 있었고 뜸을 떠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수술하자면 돈이 들어가야 했기에 먼저 뜸을 떠보기로 했다. 뜸은 들판에 나는 개쑥으로 떠야 좋다고 하기에 송식이는 쑥을한아름이나 베왔다. 헌데 누군가 햇쑥은 독이 있기에 삼년이상 묵은쑥으로 뜸을 떠야 좋다고 의사같은 잔소리를 해서 송식이는 묵은쑥을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아래마을 청인집 왕가네 조카가 몇년전에 웅박골에서 양몰이할 때 지은 움막집이 있는데 그 집 마당가에 태우다가 만 쑥태가 있었던것이다.
뜸을 뜨기전에 민옥이는 깨끗한 우물을 떠다가 몸도 씻고 머리도 감았다. 기실 민옥이는 뜸을뜨고 싶지 않았고 그 기미를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민옥의 얼굴은 전체가 동글동글하고살결이 두부모처럼 희였지만 곱게 생긴 축은 아니였다. 눈이 가늘고 코가 납짝하고 입이 작았다. 그래서 피끗 보면 늦가을에 익어가는 점박이 호박같다는 련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더구나 거기에 눈섭꼬리가 아래로 처져 밉상이나 울상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 헌데 넓고 반듯한 이마에 앵두알만한 기미가 딱 박혀져있어 전반 홍안을 인상깊게 고쳐준것이다. 뭐, 한어에서 하는 왈(曰), 화룡점정(画龙点睛)이라 할가. 아무튼 그 기미가 얼굴의 귀염성을 돋구어주고 복성을 부여해주는것만 같았다. 처녀시절에도 집안에서 제일 벌수가 높은 할아버지께서 요망해보인다고 그 기미를 없애라고 했지만 민옥이가 딱 떼질을 썼다. 그 누구도 감히 다치게 못했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먼저 그 기미가 깜찍하게 안겨들어 녀자로서의 일종 만족감을 느껴보군 했었다. 그런 기미였기에 원래는 일생동안 복스럽게 달고가자고 했었다. 헌데 지금은 어쩔수 없는상황이였다. 그것 때문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모대기고있었고 시어머니의 꼿꼿해나는 눈길이 점점 더 무서워났던것이다. 그리고 동네에서도 뒤공론이 쉬쉬하다. 기미에 귀신을 달고다니는 녀자라고. 그래서 남편이 기미를 없애자고 했을때 고통스럽게 고개를 숙이는것으로 수긍했던것이다.
송식이와 민옥이는 허씨가 잠든다음에 뜸을 뜨기로 했다. 무슨 시끄러운 일이라도 생겨 속을더 심란하게 해드릴가봐서였다.
모든것을 다 갖춰놓고 기다리다가 아래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오자 송식이는 민옥이를 반듯하게 눕혔다. 잔뜩 긴장해진 민옥이는 눈길이 꼿꼿해졌다. 송식이는 손끝으로 뜸쑥을 몽굴하게 비벼 꼬아서 민옥의 이마전 검붉은 기미우에 얹어놓았다. 그리고는 엽초를 부셔서 마분지에다 말아물고 불을 붙였다. 둬어모금 뻐금뻐금 길게 빨고는 불끝에 생기는 하얀 재를 훅 불어버리고 빨간 불을 뜸쑥에 갖다대였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가늘게 피여오르며 쑥향기를 풍겼다. 민옥이가 몸을 떨었다. 송식이가 인차 그녀의 두손을 꼭 쥐여주었다. 뜸쑥의 빨간 불띠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우에는 까만 재가쀼죽하게 남았다.
“앗, 따가와!”
“쉬―”
민옥이는 참기 어려운 통증이 빚어내는 비명이 뿜겨져나갈가봐 입술을 감쳐물었다.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뾰족뾰족 돋았다. 이발사이로는 신음소리가 끙끙거리며 새나왔다.
“참아! 조금만!”
송식이는 민옥이의 손을 꼭 잡아쥐고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민옥이의 전신이 바르르 떨렸다. 미구에 민옥이가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송식이가 고개를 들고보니 뜸쑥이 다 타들어가고 까만 재만모록이 남아있었다. 그는 마분지로 재를 닦아내고 그 뜸자리에 흰 천쪼박을 얹어놓고 그걸 고정시키려고 그우로 빨간 비단자락을 둘러서 머리뒤에다 매놓았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민옥이도 시원해나는지 해시시 웃었다. 이어 둘은잠자리에 들어 코를 쌔근쌔근 골았다.
새벽녘이였다. 아래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아이구! 아이구!” 하는 신음소리에 민옥이는 눈을 떴다. 동틀무렵이라 방안은 어둑컴컴했다. 민옥이는 손더듬으로 스위치줄을 찾아 잡아당기면서 남편을 깨웠다. 눈을 부비며 깨여난 송식이는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듣고는 팬티바람으로 아래방으로 뛰쳐들었다. 불을 켜자15촉짜리 벌그스름한 불빛아래서 허씨가 두손으로 머리를 마구 붙잡고 몸부림치고있었다. 머리가 빠개진다는것이다. 송식이는 급히 안해를 불렀다.
“여보, 거 빼랍안에 정통편을! 어서!”
남편의 부름소리에 민옥이는 털실내의를 대충 걸치고 경대서랍에서 정통편 두알을 찾아들고 허둥대며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머리를 싸쥐고있던 허씨가 민옥이를 보자그만 머리에서 두손을 떼며발딱 일어나 앉는것이였다. 두눈이 공포에 질려 동그래지면서 흰자위가 번뜩이였다.
“귀신이야!”
귀청을 째는듯한 악청이 허씨의 입으로부터 튕겨나갔다. 송식이도 와뜰 놀랐고 민옥이는 “어마나!”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어머, 어머머, 귀신이야! 송식아, 날래!”
허씨는 와들와들 떨며 아들의 등뒤로 몸을 감추려고 허우적거렸다. 아닌 밤중에 무슨 귀신소리냐고 송식이는 고개를 돌려 방문쪽을 내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도 휘둥그래졌다. 입이 저절로 딱 벌려졌다. 벌거스름한 불빛아래 이마에 붉은 천을 두른요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뻘건 입을 함독스레 쫙 벌리고있었던것이다.
“으흑!” 송식이도 몸에 찬물을 끼얹은듯 소름끼치여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움추러뜨렸다. 아직 잠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환각이였을가! 식은 땀을쫙 흘리고나서야 송식이는 제정신으로 돌아올수가 있었다.
“씨, 그렇게 퀭―해 서있으니 사람이 놀랄수 밖에. 어서!”
귀신소리에 민옥이도 가슴이 콩닥거리고있었다. 그녀는 오돌오돌 떨면서 남편한테 다가섰다.
“어마나―, 귀신이야! 사람잡는다! 아―”
허씨는 다가서는 민옥이가 자기한테로 덮친다고 아들의 등을 마구 두드려대더니 그만한쪽으로 스르르 쓰러지는것이였다.
“엄마, 엄마!”
송식이는 쓰러지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입가에서는 흰거품이 부질부질 끓고있었다…
민옥의 뜸자리에는 까만 딱지가 앉았다. 원래는 뜸을 열번이상 떠야 효과를 볼수 있다고 하는데 뜸을 뜰수가 없게 되였다. 허씨가 며느리를 보기만 하면 “귀신이야!” 하고 소리치며 거품을 물고 나눕는 바람에 민옥이는 아래방출입도 못하게 되였다. 그녀는 아침일찍 생산대에 나가 일했고 저녁늦게 일밭에서 돌아오면 정지간으로 들어못가고 고양이처럼 웃방문으로 들어서서는 죽은듯이 누워만 있어야 했다. 아래방에서 웃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송식이가 대못을 쳐서 고정시켜놓았다. 송식이가 죽어나게 되였다. 가무일에는 손도 대보지 못했던 그가 어설프게 밥을 해서는 어머니께 대접시켜야 했고 안해한테는 따로 떠와야 했다. 
모든것이 후딱 뒤집혀졌다. 그런 광경을 차마 보아낼수가 없어 민옥이는 혼자 눈물을 흘리군 했다.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일밭에 나가서도 눈물을 흘려야 했다.
동네에서는 이상한 풍문이 돌고있었다. 송식이네 새각시가 이마전에 기미를 없애려고 뜸을 떴는데 기미에 붙어살던 귀신이 궁둥짝이 뜨거워난다고 노발대발해서 작간을 부린 시어머니와 대들어 조화를 부리고있다는것이다. 아침이면 생산대 김대장이 하루일을 배치한다. 동네처녀들이고 아낙네들, 그리고 로친네들이고 모든 녀자들이 다 민옥이와 같이 일하기를 꺼려하였다. 우사마당에서 아침조간회의를 할 때면 민옥이는 그래도 젊은각시들 축으로 가서 앉는다. 헌데 조금만 지나면 하나 둘 자리를 옮겨앉는 바람에 나중에는 민옥이 혼자 그 자리에 댕그랗게 앉아있게 된다. 사람이 사람의 버림을 받는것보다 더 섧은 일은없다.
오직 밤중이 되여 송식이가 곁에 와서 누워주는것만이 큰 위안이 될뿐이였다. 송식이는 부풀어오는 민옥의 아래배를 슬슬 어루만져주며 애기가 태여나면 튼실하게 키워 생산대 일등 공수벌이군으로 만들자는 앞날을 속삭이기도 했다. 그러면 민옥이도 송식의 꺼실꺼실한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군 한다. 아기만 태여나면 모든것이 행복해질것만 같았다. 순간적이나마 서로의 애무에 정열을 불태우고나서는 송식이는 어머니의 병환때문에 한숨을 지였고 민옥이는 이마전 기미때문에 한숨을 내쉬군 했다. 약진시기의 젊은 각시로서 미신을 믿는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 기미가 앞으로 태여날 아기한테도 무슨 루가미칠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때문이였다.
허씨의 병은 점점 더해갔다. 시도 때도 없이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기도 하고 가끔 귀신이 온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기도 했다. 송식이가 중돼지를 팔아 첩약을 지어다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루는 생산대에서 저수지공정에 갔다온 일군들을 위로한다면서 돼지를 잡아엎었다. 일년에 돼지고기를 한두번밖에 먹어보지 못했던 시기라 돼지추렴이 있는 날이면 동네명절날이 되여 들끓는다. 민옥이는 순대를 특별히 즐겨 자시던 시어머니가 생각히워서 제발제발 사정하여 왕래장부에 기입하기로 하고 순대밸을 둬어근 가지게 되였다. 민옥이는 시어머니께서 어서 빨리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고대하고있었다. 아기가 태여나기전에 완쾌되여야 할텐데 하는 근심이 앞섰다. 맛있는 순대를 대접시키면 시어머니의 병이 절반쯤은 나아질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마대쪼박에다 돼지밸을 싸가지고 집으로 향한민옥의 마음은 즐거워났다. 오랜간만에 이런 심정을 가져본다. 그녀는 둥싯한 몸을오리처럼 뚱기적거리며 걸음을 재우쳤다.
그 시각, 가마목에 누워있던 허씨가 어쩌라고 정신이 좀 나는지 벌벌 기여서 마루바닥을 넘어 정지문을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몸을 문설주에 기대고 해볕쪼임을 하고있었다. 몸이 바짝말랐고 눈확이 움푹 꺼져들어가 보기에도 무서웠다. 돼지우리쪽에서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허씨는 문설주를 짚고 간신히 일어섰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집벽에 가리워 돼지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민옥이가 울바자 삽짝문을 밀고 들어섰다. 정지문에 기대여 서있는 시어머니를 보고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걸 어쩌나!) 원래는 시어머니가 가마목에 누워있으면 “조앙간(동쪽 사랑채)”시렁우에 살그머니 놓고나오려고 했던것이다. 민옥이가 황급히 돌아서려고 할 때 인기척을 들은 허씨가 삽짝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옥이를 보는 순간에 허씨는 몸을와뜰 떨었다.
“어마나, 귀신이야―”
또 귀신소리를 내지르며 팔을둬어번 허우적거리던 허씨는 몸을 비탈며 문턱뒤로 서서히 넘어지면서 민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마이!”
민옥이는 마대쪼박에 싼 돼지밸을 활 팽개치고 다급히 달려갔다. 문턱뒤로 넘어진 허씨는 네각을 벌리고 마루바닥에 쓰러진채 입을 벌리고있었다. 민옥이가 허둥대며 허씨의 상체를 끌어안아 일쿼세우니 머리에서 피가 뚝뚝떨어지고있었다. 만져보니 뜨근뜨근해나는 머리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마루바닥에는 땔나무를 패던 도끼가 누워있었다. 아마도 넘어지는 순간에 도끼등에 뒤통수를 맞은것 같았다. 민옥이는 허씨를 안아다 가마목에 눕혀놓고 찬장에서 된장을 한국자 떠다가 상처에 붙인다음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놓았다. 그리고는 동네에 나가 사람들께 알렸다. 기별을 받고 송식이가 달려왔을 때는 허씨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3


송식이가 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되였다. 똑똑하게 변한것이 아니라 멍청하게 변해갔다. 꾹 다문 입이 온종일 가도 열려지질 않는다. 밥을 먹을 때만 열려졌고 술을 마실 때만이 열려졌다. 술이 알딸딸하게 들어가야 말을 했고 술이 거나해지면 말이 많아졌다. 원래는 술상을 피해다닌 군자였지만 지금은 술상을 찾아다니는 주정뱅이가 되였다. 술이 귀한 때라 술상이 쉽게 갖춰지지 않았지만 동네어느 구석집에서 술상이 생기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꼭 찾아가군 했다. 원래는 체신스럽게 놀던 량반이였는데 지금은 술이라면 체면불구하고 달려드는 애물이 되였다. 처음에는 창피스럽게 밀막아내면 좀 주저주저했는데 후에는 낯가죽이 두꺼워져 몇마디 욕설같은것은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어떤 집에서는 괘씸하다고 술상에 앉은 그를 마구 끌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딱한잔만 더!” 하고빌붙는데야 어쩌는 수가 없게된다. 원래 시골에는 음식상에서 사람을 쫓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마을안팎에서 얻어먹는 술도 모자라는지 웃마을과 아래마을로 드나들며 술상을 찾아다녔다.
민옥이의 이마전 붉은 기미는 검은 점으로 되였다. 뜸자국이 이쁘기만 하던 기미를 오히려 더 흉하게 만들어놓았다. 완전히 떼버리려면 몇번 더 뜸을 떠야 하지만 허씨마저 세상을 뜬 마당에 기미와 더 싱갱이질 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게다가 송식이가 점점 페인이 되여가면서 그 기미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
민옥이는 민옥이대로 고생이 막심해졌다. 아래배가 점점 부풀어올랐다. 배속에다 호박을 품고있는것 같았다. 돼지우리의 굴암퇘지도 배가 점점 더 처졌다. 생산대 김대장이 생산대일에는 빠지라고 했지만 민옥이는 나갈수 있는 날까지 나가려고 했다. 생산대에다 진 빚이 아직도 백원을 넘었다. 거기에 송식이가 일을 제대로 해재끼지 못해 제공수를 받지 못했던것이다. 허씨가 돌아간 다음 민옥이네 부부간은 잠자리를 웃방에서 아래방으로 옮겼다. 인젠 민옥이가 가마목을 차지하게 되였다. 저녁이면 송식이가 어디서 술을 얻어마시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면 민옥의 입이 터지게 된다. 어떤 때는 채찍처럼 쨍쨍 울렸고 어떤 때는 도끼로 장작을 패듯툭툭 울렸다. 송식이는 말이되여 그 채찍질에 몸을맡겼고 가둑나무토막이 되여 그 도끼질에 몸을 내맡기군 했다. 송식이에게는 한가지 특점이 있었다. 아무리 채찍질 해도 아프다고 아우성치지 않았고 아무리 도끼질 해도 죽는다고 고아대지 않았다. 다른 웬간한 남정네들처럼 우락부락 대들었으면 볼만한 “전쟁”이 벌어지군 했었을텐데… 민옥이는 오히려 그것이 더 괘씸하다고 련주포를 쏘며 더 극성을 부리군 했다. 허지만 나중에는 제풀에 물앉고만다. 민옥이는 간혹 모든걸 다 팽개치고 본가집으로 돌아갈가 하는 생각도 해보군 했다, 하지만 농촌에서 리혼률이 1프로도 안되였던 그 세월에 시집간 녀자가 되돌아오면 그것은 부모에 대한 제일 큰 불효였던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죽어도 부모님들한테는 보이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민옥이는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지간에 자기의 몸에 귀신이 붙어 어떤 조화를 부리든지간에 이를 옥물고 뻗쳐내리라고 속다짐했었다. 그녀는 앞으로 생의 희망을 배속의 아이한테 걸고있었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밤이였다. 민옥이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창밖으로는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비소리가 주르륵주르륵 들려온다. 고독하고 쓸쓸해났다. 그녀한테는 남편밖에 없다. 점점 미워지는 남편이지만… 동네에 나가면 누구도 그녀와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어 코를 질질흘리는 코풀레기들마저도 그녀를 보면 공포에 질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슬슬 피해달아난다. 아이들이 점점 더 고와보이는 그녀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눈앞이 저절로 흐려오군 했다. 바야흐로 태여날 아이의 앞날이 근심되기도 했다.
민옥이는 따끈따끈한 가마목에 누워 아래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피곤한 몸이라 눈까풀이 자꾸 저절로 내려앉았다. 잠이 들가말가 할 때 우당탕! 하고 정지문이 활 열리며 찬기운이 훅 끼쳐들었다. 민옥이가 놀라 소스라치며 일어나 앉았다.
“아이구, 이게 웬꼴이람?”
문가에 나타난 송식이는 두손으로 문설주를 부여잡고 몸을 가누지 못해흔들거리고있었다. 어제 금방 빨아 오늘아침에 갈아입힌 작업복은 진흙에 게발리고 비물에 젖어 범벅이 되여있었다. 어디서 술을 얼마나 얻어마셨는지 낯이 퍼렇게 질려있었다. 민옥이가 엉기적엉기적 달려가 오른팔을 붙잡아주었다. 송식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신 울꺽울꺽 게트림을 해댔다. 역한 술냄새가 민옥이의 얼굴에 훅 끼쳐 메슥메슥해났다. 겨우 작업복을 벗겨내고 끌다싶이 해서 가마목에다 눕혀놓았다. 그런데 속이 볶아치는지 가만있지를 못했다. 이불이며 담요며 끌어안고 이리뒹굴고 저리 뒹길고 했다. 나중에 구석쪽에 가서 토끼처럼 몸을 잔뜩 옹송그리고 눕더니 그만잠잠해졌다. 잠시 지켜볼려니 이윽토록 감감해있었다. 잠이 들었으면 코를 골텐데 코도 골지 않았다. 별로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구석쪽 찬구들에 오래 누워있으면 감기에라도 걸릴가봐 민옥이는 다가가서 송식의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했지만 미동도 없다. 안되겠다고 민옥이는 가마목쪽으로 잡아끌자고 송식의 어깨를 잡고힘껏 당겼다. 그 순간에 송식이는 구불떡거리며 상체를 올리 뻗치고 왜가리처럼 목을 길게 드리우더니 욱―하고 토했다. 배설물이 뽐프아구리에서 뿜기는 물처럼 뿜겨져나와 그대로 주르륵 돗자리우에 쏟아져 쫠 퍼졌다. 시큼한 냄새가 고약하게 민옥의 코를 찔렀다. 가뜩이나 메슥메슥해서 속이 울컥거리던 민옥이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앉아 왝왝토했다.
잔뜩 토하고난 송식이가 곁에서 무엇인가 꾸물거리고있는것 같아 고개를 탈며 눈길을 돌렸다. 흐릿해지는 눈확으로 웬 녀자가 입으로 물을 콸콸 토하고있는 장면이 안겨들었다. 그는 눈을흡뜨며 술에 취한 사람같지 않게 발딱 일어섰다.
“어, 귀…귀…”
송식이는 후들거리며 피한다는것이 그만 자기가 토해놓은 배설물을 딛고 쭉 미끌어서 뒤로 나동그라졌다.
“왜 이러세요?”
민옥이가 자빠진 그를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으악!”
송식이는 덴겁해서 그 손을쳐버리고는 벌떡 일어나 정지문을 박지르고 나가며 웨쳤다.
“엄마, 귀신이요!”
밖은 칠흙같이 캄캄한데 여전히 비가 줄줄 내리고있었다. 구들목에 우뚝허니 선 민옥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구에 민옥이도 뻘건 풀깍종이우산을 펼쳐들고 집문을 나섰다. 비물이 우산을 우두둑 우두둑 때렸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 발더듬으로 삽짝문까지 가서야 점차 야경에 비낀 물체가 눈에 우렷이 익혀왔다. 한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흙탕길이 질척거려 미끄러움을 탔다. 그녀는 똥기짝거리며 마을복판길에 들어섰다. 캄캄칠야에 불을 켠 집이라곤 없었다.
(어디로 갔을가?) 민옥이는 신랑 송식이가 길가에라도 쓰러져있는가 해서 길량켠을 유심히 살폈다. 민옥이에게는 지금 그 신랑 송식이밖에 없다. 송식이마저 잘못되는 날엔… 문뜩,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주위를 눈여겨 살펴보니 길녘집 순철이네가 울바자삼아 쪼로롱 심어놓은 잔비술밑에 거뭇한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것만 같아 보였다. 민옥이는 조심스레 다가서며 부드럽게 불렀다.
"여보! 여보!"
그 거뭇한 물체가 움찔거리자 비술나무가 우시시 떨며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신랑 송식이가 틀림 없었다. 일시 반가움이 북받쳐 민옥이는 우산을 활 내뿌리고 쫑드르르 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몸을 쭈크리고 손을 내밀어 어듬속을 더듬었다. 순간, 그 거뭇한 물체가 휙- 하고 어둠속을 빠져나갔다. 와뜰 놀란 민옥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폭 물앉고말았다. 뒤이어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뉘집 돼지우리에서 뛰쳐나온 꿀꿀이였다. 말할수 없는 설음이 또다시 몸을 적셨다.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퍼더버리고 앉아 이윽토록 흐늑흐늑 흐느껴 울었다…
비물에 눈물에 촉촉이 젖어든 몸을 끌며 밤길을 더듬어 마을을 한바퀴 돌았으나 송식이를 찾지 못했다. 비가 점차 그치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찬기운이 서리는 이슬비가 이따금씩 얼굴에 훅 끼쳐들며 몸이 오싹 떨렸다.
방향없이 걷다가 오똑 멈춰선 곳이 내봉하기슭이였다. 굼실굼실 흐르는 내봉하가 안겨들었다. 거폭의 이불천이 바람에 펄럭이는것만 같기도 했다. 허지만 펄럭거리는 소리는 없었다. 강물은 쉬임없이 부지런히 흐르고있었다. 민옥이는 우산을 가두어 바위돌우에 놓고 두손으로 머리를 정히 추슬려올렸다.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진 이마전의 기미가 손끝에 껄끄럽게 맞쳐왔다. 손거울이 있으면 한번 어둠속에서라도 비춰보고 싶어졌다. 일찍 자기의 못난 얼굴을 이쁘게 장식해주었다고 고맙게 여겼던 그 기미, 지금 그 기미가 자기의 일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금불골에서 농사에 미립이 터 "꼬리없는 소"라고 불리워왔다던 시아버지도 그 기미 때문에 돌아가셨다지, 도야지 한마리라도 더 치겠다고 이악스럽다 할만치 아득바득 살아오셨던 시어머니 허씨도 그 기미 때문에 돌아가셨다지, 마음씨 고와 "법 없이도 산다"는 신랑 송식이도 지금 그 기미 때문에… 당금 태여날 배속의 아기 또한 그 기미 때문에 어떻게 될런지?
(민옥아, 넌 왜 이 세상에 기미를 달고 태여났느냐!)
시집오기전까지 민옥이는 남한테 해가 끼치는 노릇은 절대 하지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한 가정을 망쳐먹고있지 않는가! 그냥 살아가야 하는가? 하루라도 더 살면 그만큼 남에게 더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어릴 때 마을의 농민야간강습소에 문화교원으로 있던 민선생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갈래갈래 강물은 나중에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일망무제한 바다는 끝이 없다는것이다. 지구에서 땅보다 바다가 더 크고 넓다고 했다. 그 바다속에는 룡궁이 있고 룡궁속에는 룡왕이 있는데 룡왕은 아주 인자한 왕이여서 무슨 요구나 다 들어주고 그 요구대로 실현시켜 준다고 했었다…
민옥이는 다시한번 굼실굼실 흐르는 내봉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감쳐물었다. 민옥이는 두손을 들어 다시금 머리를 추슬려올리고 쓰다듬은다음 옷깃을 여미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둬어발자국 떼고나서 바위돌우에다 놓은 우산이 생각히웠다. 돌아서려다가 자기에게 우산이 더는 필요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그대로 내처 걸었다.
강가로 내려가는 숲속오솔길에 들어서니 자갈이 밟혀오면서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민옥의 눈앞에는 이 자갈길로 신랑 송식이와 함께 물고기를 잡아가지고 오던 정경이 떠올랐다. 송식이는 물고기잡이에 능수였다. 다래끼안에서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송식이와 깔깔거리며 웃어대던 장면도 떠올랐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만 있다면… 민옥이는 또다시 눈물이 솟구치며 눈앞이 흐려왔다.
텀벙텀벙 걸어가니 강변습기가 서늘하게 안겨왔다. 드디여 강가에 이르렀다. 고무신을 벗어 자갈우에 가지런히 놓고 강물에 들어선 민옥이는 두손으로 강물을 떠서 푸푸거리며 둬어번 얼굴을 문댔다. 눈물도 씻기고 서러움도 씻기였다. 모든것이 담담해지는상 싶었다. 앞으로 몇걸음 더 들어서니 물이 정갱이를 넘으며 아래배를 처절썩 쳤다. 차거움이 뼈에 젖어들며 배안이 꿈틀거렸고 약간의 진통이 느껴졌다. 민옥이는 잠시 서서 망설이였다. 그러다가 다시 입술을 감쳐물고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엄마, 귀신이야, 물귀신!"하는 웨침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강기슭으로부터 울려왔다. 분명, 신랑 송식이의 웨침소리였다.
민옥이는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는 절랑절랑 강물을 헤가르며 기슭으로 되나왔다. 웨침소리는 마을쪽으로 사라지고있었다. 민옥이는 맨발바람으로 그 웨침소리를 따라갔다…
민옥이와 송식이는 이삼일이나 들어누워 앓았다. 앓고난 민옥이는 겨우 몸을 움직일수 있었고 송식이는 찐만두처럼 팅팅 붓겼다. 발바닥도 밋밋하게 되여걷기 힘들었고 눈두덩도 부어서 실눈이 되여버렸다. 또 서너날 그냥 집구석에 박혀 몸조리를 해서야 말린 시라기배추처럼 시들시들해졌다. 시들해지니 또 술생각이 나는모양이였다. 그는 민옥이의 잔소리도 마다하고 어정어정 동네에 나가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술냄새를 맡았다.
해산 막달이 되니 민옥이는 몸을 움직이기도 가빠졌다. 가끔 진통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집안이며 뜰안이며 말이 아니였다. 잡동사니들이 자질구레하게 널려져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송식이는 매일 동네와 아래부락으로 술마시러 다녔다.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얼굴이 늦가을 호박처럼 누렇게 누물누물해졌지만 몸은 점점 말라갔다. 바람부는 날이면 몸을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처럼 고대하며 기다리던 첫아이의 출산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졌다. 밤이면 가끔씩 헛소리를 내질러 민옥이를 놀래우기도 했다.
민옥이는 생산대일에 더 나갈수 없게 되였다. 돼지는 금방 새끼를 낳게 될 굴암퇘지만 남기고 나머지 두마리는 팔아버렸다. 그 돈으로 해산한다음 쓸 용품이며 아기의 옷견지며 두루두루 갖추고 나머지는 송식이에게 약을 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산같이 부푼 배를 내밀고 돼지죽통도 들기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와서 거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편지를 띄워 본가집 어머니나 올케를 오게끔 생각했다가도 포기했다. 본가집에서 자기가 지금 처해있는 궁상을 보게 되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가! 민옥이에게는 그것이 더 가슴 아픈일이였다. 오직 아이만 낳으면, 아이만 있으면 모든것이 다 편안해질것만 같았다.
우르릉― 꽝! 요란한 우뢰소리에 아기를 안고 놀던 민옥이가 꿈속에서 깨여났다. 아직 해가 넘어가기전인데 창밖이 시커매났다. 급기야 문을 열고 내다보니 검은구름이 뭉게뭉게 밀려왔고 고개너머로 번개불이 하늘을 찢어놓고있었다. 민옥이는 돼지굴꼭대기우에다 펴놓은 겨가루가 생각났다. 좀벌레가 생겨서 말리우느라 헌돗자리를 깔고 펴놓았던것이다. 문턱을 넘어서는데 아래배가 찢어지는듯 아파났다. 숨이 넘어갈듯해서 그녀는 문설주를 부여잡고 서서 아래배에다 힘을주며 진통을 억제시키려고 했다. 이윽토록 서있었지만 진통은 그냥 참을수 없이 밀려들었다.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는 기다릴수 없어 민옥이는 가까스로 마루터에서 내려 엉기적엉기적 걸었다. 번개불이 날카롭게 번쩍이더니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우 돼지우리까지 가서 란간을 붙잡았다. 피끗 돼지우리안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이상한 감을 느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굴암퇘지가 비스듬히 누워서 숨넘어갈듯이 헐떡거리고있었다. 눈알이 당금 튕겨나올듯이 충혈되였다. 아래쪽을 여겨보니 꼬리밑이 피범벅이 되여있는데 그속으로 해말간것이 꼼지락거리며 나올듯말듯 하고있었다.
“어마나, 끝내…”
민옥이는 우리안으로 들어가려고 쪽문삼아 빗장살삼아 가로 걸쳐놓은 널판자쪽으로 몸을 옮기려고 했다. 헌데 다리가 움직일수 없게경직되였다. 뒤이어 극심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입술을 옥물고 다시 왼다리를 들려고 하니 하신이 찢어지는듯 숨이꺽 막혀왔다. 누군가 량쪽에 갈라서서 다리를 잡아당기는것만 같은 감이 들었다. 두손으로 아래배를 끌어안으며 내려다보니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허연 코신을 붉지그레 물들이고있었다. 너무도 아파서 눈을 찔끔감으며 아래배에다 힘을 주었다. 하신이 스르륵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두마령 내리막길에서 뻐스에 앉은 감각이였다. 뒤이어 사타구니밑이 후끈해났다. 눈앞이 아물아물해졌다. 죽는것만 같아소리치려고 했다.
“아, 아-”
숨이 차올라 소리가 나가지 못했다. 겨우 숨을 돌리고 뒤집쪽에 대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허나 육중한 우뢰소리가 그녀의 가냘푼 비명을 말아먹었다…
그 시각, 송식이는 아래마을 청인집 왕가네 뜨락에서 왈왈 토하고있었다. 왕가네는 오늘 둘째며느리를 맞아들이고있었다. 호박골 몇개 부락치고 한족이 그 한집밖에 없는데다가 평상시 마음을 후하게 써서 잔치객들이 많았다. 송식이는 점심부터 술상에 앉아 연신굽을 냈다. 낯이 새파랗게 질려가는걸 보고 한상에 앉은 동네사람들이 그를 밀어냈다. 그는 다른상에 옮겨앉아 또 연신굽을 냈다. 곁사람들이 보기조차 무섭게 마셔댔다. 마지막까지 이상 저상돌아앉으며 마시다보니 나중에는 흙이 되고말았다. 집안에서 토하기 시작한걸 누군가 잔치집을 어지럽힌다고 밖으로 끌어냈던것이다. 온몸을 구불떡거리며 토하던 송식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몇발자국 비틀거리더니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엎어져서도 계속 꾸역꾸역 토했다. 동네 젊은이 박철이와 종수가 각각 그를 겨드랑이에 껴서 일쿼세웠다. 더 토할것이 없는지 누런열물만 게질게질 나왔다. 번개치고 우뢰소리가 터지니 그들은 송식이를 왕가네 마구간으로 끌고들어갔다. 짚덤불우에다 비스듬히 눕혀놓으니 잠시 잠잠해졌다. 헌데 미구에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뻘건 피를 콸콸 토했다. 당황해난 박철이가 뛰쳐나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년세있는 나그네들이 들어와 보고는 역시 놀라서 일시 어쩔줄 몰라했다.
“이거 큰일 나겠구나. 박철이와 종수가 냉큼 돌아가서 김대장과 이집각시한테 알려라. 어서!”
박철이와 종수는 두주먹을 불끈쥐고 달음박질 쳤다. 둘이 동네어귀에 들어설 때 소낙비가 좌르르 쏟아졌던것이다. 박철이가 김대장이네 집으로 향하고 종수가 송식이네 집으로 향했다. 종수가 질척거리는 진탕길로 철버덕철버덕 달려서 송식이네 집에 이르렀을 때에는 정지문이 활 열려져있었고 집안은 텅 비여있었다.
밖에 나와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고 몇번 불렀는데 응답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채마전 한쪽끝에 세워놓은 거적같은 변소앞에 가서도 몇번 불러보았다. 역시 응답이 없었다. 하늘가에서 우뢰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였다. 할수없이 돌아가려고 삽짝문을 나섰다가 이 집에 돼지우리가 있고 또한 금방 새끼를 낳을 굴암퇘지가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피뜩떠올랐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집뒤에 있는 돼지우리쪽으로 돌아갔다. 돼지우리앞에 이른그는 아연해지고말았다. 눈앞에 나타난 참상에 그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다시 떴다. 돼지우리안에서는 굴암퇘지가 새끼를 낳고있었고 돼지우리밖에는 민옥이가 쓰러져있었다. 비물이 그녀의 하반신으로부터 슴배여나온 피를 씻어내리고있었다. 오른쪽 팔소매를 꽉 앙다문 민옥이가 눈을꼭 감고있었다. 비물이 얼굴에 떨어지면서 뽀얀 물보라를 일구고있었다. 종수는 주춤주춤 하다가 끝내는 민옥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민옥이는 천천히 눈을 뜨면서 팔소매에서 입을 뗐다.
“아주머니, 송식형님이 지금 왕가네 집에서 피를 토하고있소.”
민옥이는 그 말을 들었둥말았는둥 팔을내밀어 뒤집 장철이네 집을가리켰다.
“저… 가위를…”
종수는 인차 그 뜻을 알아차리고 날렵하게 울바자를 뛰여넘어 뒤집 장철이네 정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뒤이어 장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허둥지둥 뛰쳐나왔고 종수와 장철이도 그뒤로 따라나왔다. 그들은 두집사이에 경계선인 울바자를 활활 번져놓고 민옥이를 안아다 장철이네 가마목에 눕혔다. 미구에 집안으로부터 “응아!” 하는 아기의 첫 고고성이 터져나왔다. 호박같이 생긴 아들이였다.
그 시각, 왕가네 마구간에서 피를 다 토하고난 송식이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있었다…


[<장백산> 2009년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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