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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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원일 아침 수상록
2006년 01월 05일 00시 00분  조회:6086  추천:60  작성자: 황유복
(수필)

원일 아침 수상록

남호손


1

설날 아침이다.

내가 나서 자라난 시골 고향 같으면 이 시각에 수탉의 세번째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질것이다. 이제 한창 도시의 빌딩숲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있다.
수십마리로 무어진 비둘기떼가 아빠트사이 공간과 푸른 하늘을 누비면서 빙빙 원무를 출연하고있다.

가까운 창밖에는 두마리의 까치가 앙상해진 자귀나무가지를 오르내리면서《까-악》,《까-악》요란스럽게 울어대고있다. 어제밤 자정, 요란스럽던 폭죽소리에 놀란 원숭이해는 꼬리를 감추고 영원속으로 사라졌고 을유년 닭의 해의 시작을 알리는 눈부신 태양이 빛을 발산하고있다. 12년만에 딱 한번 찾아오는 《조류(鳥類)》의 해여서인지 뭇새들이 유난스럽게 극성을 부리고있다.

닭의 해 벽두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나무군 총각이 산에서 나무를 하고있는데 포수에 쫓기는 노루 한마리가 쫓아와서 살려달라고 한다. 마음씨 좋은 나무군은 노루를 나무짐속에 숨겨두고 뒤쫓아온 포수를 속여 보내였다. 살아난 노루는 나무군을 인도하여 산속의 맑은 호수까지 간다. 그리고 래일이면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게 되는데 그중 세째 선녀의 옷을 숨겨놓았다가 그 선녀를 안해로 삼되 네 아이를 낳기전에는 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행복에 도취된 나무군은 세 아이를 낳은 선녀에게 옷을 돌려주었고 선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홀로 남아 고독해진 나무군은 수탉으로 변해버렸다. 수탉이 지붕이나 담장 높은 곳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우는것은 하늘에 있는 선녀 안해를 못잊어 그러는것이란다.

오늘, 우리는 주변에서 21세기판 《나무군과 선녀》의 이야기가 만연되여있음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 수없이 많은 《선녀》들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몰려가고 그런 가정에서는 《나무군》만 고독하게 홀로 남아 안해가 돈보따리를 이고 돌아올 날을 학수고대하고있다.

2년전 나는 서울의 어느 음식점에서 조선족《선녀》를 만난적이 있다. 함께 간 한국교수들이 음식주문을 하면서 《이 분은 멀리 중국에서 온 귀한 손님이니까 맛있는것으로 잘 대접해주세요.》라고 서비스 부탁을 하니까 주인아줌마가 30대 후반의 박씨라고 하는 조선족 웨이트리스를 보내 음식시중을 들게 했다. 식사하면서 갈비를 구워주고있는 박씨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는데 그녀는 길림성의 어느 작은 현성에서 왔다고 한다. 남편은 현정부산하 기관의 공무원이고 자신은 소학교 교사로 교직생활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돈을 벌기 위해 브로커에게 5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였다고 한다. 첫 2년동안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달고도 억척같이 일하여 한국에 나오기 위해 빌렸던 빚을 몽땅 갚았고 금년(2003년)초에는 합법로무자의 자격을 취득하였는데 명년 5월까지 애 학비나 벌어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집에 남아있는 남편외에 외지에서 대학 다니는 딸애까지 세식구가 세곳에서 생활을 하고있어 지금도 박씨는 혼자 있을 때 집생각때문에 가끔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건강하시고 열심히 돈을 벌어 될수록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라는 덕담을 남기고 박씨와 헤여졌다.

지난해 여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박씨가 일하던 음식점에 들려 식사하게 되였다.
그런데 생각밖에 박씨를 다시 만나게 되였다. 《5월에는 집으로 가시겠다고 했잖아요》라고 하니까 돌아가도 할일도 없을것 같고 그래서 2~3년 더 일해 집 살 돈까지 마련해가지고 가기로 하고 눌러앉았다고 한다.

돈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버리면 개도 안물어간다는 그 돈, 그러나 그 돈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수 없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 먹고 살만한 돈이 생기면 가전제품들을 갖추어야 하고 그것이 마련되면 좀 더 큰 내 집을 갖고싶고 그다음에는 자동차… 그리고 끝없는 소유욕때문에 우리는 돈의 노예로 되고있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들은 《나무군과 선녀》처럼 《리산가족》생활을 하고있다. 과연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면서 번 돈이 래일의 행복을 기약할수 있을가?

떠오르는 을유년의 저 밝은 해를 바라보면서 우리 민족의 《리산가족》들이 하루 빨리 《통일가족》으로 되기를 기원해본다.


2


《이아(爾雅)》는 주나라 주공(周公) 희단(姬旦)이 지은 책이라고 전해지는데 혹자는 공자의 제자들이 편집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아》의 《익(翼)》조에는 닭의 다섯가지 덕목을 기록해놓았다.


《머리우에 관(冠)을 썼으니 문(文)이요, 발에는 큰 발톱이 있으니 무(武)요, 적을 만나 필사적으로 싸우는것은 용(勇)이요, 먹이를 얻으면 서로 불러오는것은 인(仁)이요, 때를 맞추어 우는것은 신(信)이다.》

(《首戴冠者, 文也; 足博距者, 武也; 敵前敢鬪者,勇也; 得食相告者, 仁也; 鳴不失時者, 信也.》)


닭이 머리우에 볏을 달고있는것을 관을 썼다고 했고 관을 썼다는것은 벼슬을 하는것과 같은 뜻이니 문덕이 있다거나, 큰 발톱이 있어 무덕이 있다고 한것은 닭의 외관적 모양에서 류추된 비유이기때문에 별반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용, 인, 신은 닭의 행위에서 류추된 비유이기때문에 인간에 시사하는바가 크다.

수탉은 적을 만나면 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운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자기보다 강한 적이라 할지라도 용감하게 싸워서 쫓아내고만다. 영어에서도 《싸움닭과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말이 《투지에 불타다(feel like a fighting cock,》라는 관용구로 정착되여있다. 싸움에 림하는 수탉은 오직 투지에 불탈뿐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이아》에서 말하는 용(勇)이다.

그다음 수탉은 먹이를 발견하면 꼭꼭거리며 처자를 불러 함께 먹게 한후 새 먹이를 찾아나서는데 그것을 인(仁)이라고 했다. 그리고 수탉은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려주는 광명의 예언자이기때문에 신(信)이라 했다. 옛성인들이 수탉을 극구 칭찬하여 수탉은 처자와 가정을 지켜나가고 보호하려는 용기와 식구들에게 먹이를 배려해주는 어진 품성을 구비했을뿐만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새벽을 온 천하에 알려주는 지혜와 신의를 갖추고있다고 하면서 수탉을 리상형 남성의 화신으로 보았다.

다산 정약용은 《제변상벽모계령자도(題卞尙璧母鷄領子圖)》라는 시에서 암탉의 행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 닮았고/
제 새끼 건드리면 꼬꼬댁 쪼아대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체만 하고서/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시에서 제 새끼를 잘 보호하고 배고프더라도 먹이를 먼저 새끼들에게 먹이는 암탉은 모성의 사랑과 보호본능을 가진 리상형 어머니의 화신으로 그려졌다.

닭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닭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해 연길시 조선족의 리혼률은 68.4%, 즉 3:2를 훨씬 초과한 상태이고 리혼녀성의 50%가 해외돈벌이를 나갔다고 한다.(《흑룡강신문》05.1.26) 이제 우리는 조선족가정의 해체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 리혼률은 하늘 높이 치솟고있고 가정의 해체와 녀성의 류실로 인한 출산인구의 감소는 바닥을 내리치고있다. 중국의 대륙에서 유유히 흐르던 조선족이라는 이 큰 강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고있는 가정의 해체와 출산인구의 감소현상때문에 원천에서부터 고갈되여가고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음악가인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가족(FAMILY)》의 서문에서 《가정은 최후의 위대한 발견이자 우리의 마지막 기적이다. 가족의 사랑은 바람과 같다. 본능적이고 꾸밈이 없으며 부서질듯 연약하지만 아름답고 때로 서로에게 화를 내도 결코 멈출수 없는 사랑,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숨결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다.》라고 피력했다.

우리 민족 남자들은 이 《최후의 위대한 발견이자 마지막 기적》을 지켜나가고 보호하려는 용기도, 능력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민족 녀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의 근원인 모성의 보호본능을 상실했단 말인가?

옛 선비들이 칭찬한 닭의 덕목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반성해야 하지 않나싶다.


3

한족(漢族)문화의 뿌리는 지신(地神)계렬에 두고있다. 염제(炎帝)는 그의 어머니가 화양(華陽)이란 곳에 놀러 갔다가 신룡(구렁이)의 머리에 교감이 되여 염제를 낳았다. 황제(黃帝)족은 곰도템씨족(有熊氏)과 뱀도템씨족(蛇氏)이 결합하여 생겨났다. 염황자손(炎黃子孫)인 한족은 한나라 후기 이전에는 구렁이를 룡이라 하여 도템동물로 숭배하다가 불교가 전해오면서 인도의 룡과 구렁이룡을 결합하여 오늘의 룡을 만들어내였다.

우리 민족 문화는 천신(天神)계렬에 뿌리를 내리고있다. 단군은 천제(天帝)의 아들과 웅녀사이에서 태여났고, 주몽은 천제의 아들과 하백의 딸 사이에서 태여났다. 신라의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여났고 그의 왕후 알영은 닭의 화신이였다. 김알지왕의 탄생도 흰 닭과 관련된다.

그래서 한족문화에서는 땅의 색갈인 검은 색이 숭상(한나라때까지도 황제의 면복은 검은색이였다)되였고 땅에서 기여다니는 구렁이(불교가 전해진후에는 룡이)가 도템동물로 숭배되였다. 그대신 우리 민족은 하늘을 대표하는 밝은 색갈인 흰색(백의민족의 옷, 조선조의 백자)을 선호하고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숭배하며 조상이 알에서 태여났다(삼국시대)고 하거나 새를 수호신으로(솟대, 목안, 닭) 모시는 문화를 창조하였다.

중국 고대에 만들어진 천간(天干), 지지(地支)의 12지에는 뱀과 룡이 동시에 선정되여있지만 그 많은 새들가운데서 유독 닭만 선정된것도 한족의 지신숭배문화와 관련되지 않을수 없다.

어제까지도 닭의 해가 시작되기전에 결혼을 서두르는 커플들이 몰려들어 결혼등록기관이 붐비고 결혼례식장, 웨딩 포토 스튜디오 등 결혼과 관련되는 업체들이 호황를 누렸다고 한다. 을유년에는 립춘이 빠졌기때문에 불길한 《과부의 해》라는 민간속설때문이였다. 그런데 이제 바야흐로 시작되고있는 을유년은 미래형이여서 단언할수는 없지만, 어제밤에 사라진 갑신년 원숭이해는 《립춘》이 두번이나 있어 《대길(大吉)》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불길한 해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수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전쟁의 해였고, 쓰나미 지진해일로 25만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중국에서만 해도 지난 한해 각종 사고로 13만7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개의 립춘을 가진 원숭이해에 얼마나 많은 과부들이 생겼을가?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원숭이해가 마감하기전까지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것을 보면서 한족들에게 있어서 전통문화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하게 된다.

한족문화의 속설과는 달리, 을유년 닭의 해는 우리 민족 민족사나 민족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운의 한해였다. 60년전, 그러니까 지난번 을유년 닭의 해에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우리 민족은 34년11개월 보름만에 나라를 찾았고, 식민지시대에 금단되였던 우리의 성씨와 우리 말, 우리 글도 함께 찾았다. 중국 조선족도 일제와 위만주국의 통치에서 해방되여 처음으로 자신들이 개간한 땅의 주인으로 되였고 정권수립에 참여하여 나라의 주인으로 되였다.

60년만에 다시 돌아온 을유년 닭의 해를 맞이하여 조선족 모두가 힘을 합쳐 희망의 홰불을 다시 밝히고 가정의 해체와 출산인구의 격감 등 위기상황을 극복할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으면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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