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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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2006년 01월 26일 00시 00분  조회:4892  추천:59  작성자: 황유복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나는 항상 삶을 하나의 행운으로 생각한다. 빈곤과 풍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이 모든것을 떠나서 나는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봄날, 눈 녹은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풀들의 싱그러움에 취해버릴수 있는것도, 여름날 땀을 흘리며 등산한 끝에 산등성이의 고목 그늘에 누워 시원한 바람으로 목욕하면서 내 자신도 이 아름다운 자연에 녹아 들어간듯한 느낌을 느낄수 있는것도, 가을날 락엽이 쌓여있는 공원 벤치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드높아진 하늘과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볼수 있는것도, 그리고 눈 오는 겨울날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리유없이 기분이 상쾌해질수 있는것도 우선 내가 살아있기때문이다.

만약 내가 죽어서 한 오리의 연기가 되여 대기속에 사라지고 한 줌의 재가 되여 어디인가에 뿌려진다면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볼수도 느낄수도 없을것이다.

살아있기때문에 나는 강의를 할수 있고 제자들을 가르칠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수 있고 쓰고 싶은 글을 쓸수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의 애환에 따라 울수도 웃을수도 있다. 또한 여행을 다닐수도 있고 등산을 하고 수영을 하고 스케트를 탈수도 있다.

내 가족이나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할수 있고 나를 관심하는 사람들에게 때아닌 성을 낼 경우도 있으며,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구에게 들이닥친 불행때문에 슬퍼할수도 있고 또 옛 동창이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가질수도 있다.

살아있기때문에 나는 사랑할수 있다. 나는 내 안해와 자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와 인연이 닿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가 일하고 주거하는 생활공간과 주변 자연환경, 인문환경도 사랑한다. 내 민족과 내 나라도 사랑한다. 나는 항상 사랑할수 있어 행복하다.

만약 내가 죽어서 한 오리의 연기와 한 줌의 재가 되였을 때 나는 분명히 이 모든것들을 할수 없을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삶을 우리는 수십년정도밖에 누리지 못한다. 간혹 백살을 넘게 사는 사람도 있으나 너무나 드물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귀중히 여길수밖에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죽음은 수시로 우리의 삶을 빼앗아갈수 있다. 전쟁, 질병, 재해와 사고 등 수없이 많은 함정들이 인간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이나 그러한 함정에 빠져든적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여나서 두번째 생일을 맞이하던 날, 갑자기 일어난 화재로 나는 머리에서 손에 이르는 부위까지 중화상을 입게 되였다. 지금도 내 얼굴의 왼쪽 부분과 왼쪽 손등에는 그 때의 화상흉터가 력력히 남아있어 나는 추남(醜男)으로 일생을 살아왔다. 사고 당시 마을에 유일한 한의사가 와보고 살릴수 없는 애니까 포기하라고 할머니에게 권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온갖 정성을 몰부으시면서 나를 지켜주셨다. 약이 없어 상처에 된장을 발라 감염을 막아주었고 오직 사랑이란 약으로 나를 치유시켰다. 아무리 추남의 삶이라 해도 나는 저승사자의 손에서 생명을 다시 찾아준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삶에 충실하려고 한다.

또 한번은 1996년에 학술조사를 나갔다가 강서성 경내에서 내가 타고 가던 승용차가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사태여서 《아차!》할 겨를도 없이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를 구조하여 근처 병원에 옮겨주었고 병원에서 이마 가장자리에 난 상처를 봉합하여 지혈시킨 후 구급차로 남창시에 있는 성립병원으로 옮겨갔다. 이튿날 나는 비행기로 북경에 이송되여 치료 받게 되였다. 첫 이틀동안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간간이 의식이 회복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있었던것이다.

흉터투성이인 나의 얼굴에 그것도 이마의 가장자리에 초승달모양의 흉터를 추가시킨 이번 사고로 나는 매일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았다는 인도의 어느 국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였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삶과 죽음사이는 《아차》 할 겨를도 없는 순식간일수도 있다. 죽음이 접근한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상황에서 죽어간 사람들에게 《준비된 죽음》 이라든가 《죽을 때 후회가 없도록》한다는 식의 설교는 아무런 련관성도 없는 빈말일수밖에 없다. 설사 불치병으로 장기 투병하다가 죽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림종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건강할 때부터 《죽음을 준비》 한다면 그러한 삶은 너무나 소극적일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매일 죽는 련습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가 없을가를 생각하거나 매 하루를 인생을 마감하는 날처럼 산다 할 때, 그러한 삶에 무슨 꿈이 있겠고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을수 있으며 원대한 계획과 도전이 있을수 있겠는가. 죽음과 관계없이, 살아있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보면 살아있든 죽게 되든 언제나 떳떳해질수 있다고 생각된다.

종교인들은 래세가 있다고 믿고 있기때문에 짧은 인생을 어떻게 리해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종교인이 아니기때문에 내 삶의 시간적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럴수록 삶의 귀중함을 더 자주 되새기게 되고 살아있는 한 그 귀중한 삶을 죽음과 련관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열심히 일하면서 진실된 사랑을 나누면서 생활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할뿐이다. 설령 내가 래일 아침 죽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있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꾸준히 일하겠지만 결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일은 하지 않을것이다. 《비록 래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한 루마니아 문학가 게오르규의 말에 나는 동감한다.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태여난다. 모든 생명의 최종 귀추는 죽음이지만 한 마리의 쥐에서부터 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은 죽기 위해 태여나지 않는다.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지 삶의 목표가 아니다. 때문에 죽음을 위한 삶은 있을수 없다. 《우주에는 많은 생명이 있다. 생명의 본질은 살고자 하는것이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들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은 고귀한것이다》.《아프리카의 태양》 으로 불리우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프랑스 의사 시바이쩌의 명언이다. 의사였으며 동시에 철학가였던 그는 아프리카의 꺼져가는 생명을 구제하는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나는 살아서 숨쉬는 동안만은 죽음을 거부하고 싶다. 죽음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죽음에서 공상적인 요소를 제거해버린다면, 자연적인 현상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보귀한 삶의 시간을 죽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현상을 갖고 호들갑떠는데 랑비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나는 영원한 죽음으로 귀의하게 될것이지만 그러나 나의 생물적 생명은 유전자 형태로 자식을 통해 연연해질것이고 나의 학문의 생명은 나의 글과 제자들을 통해 이어질것이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여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나는 금방 피여난 꽃에서 찾아볼수 있는 삶의 발랄한 생기를 만끽하게 된다. 그래서 살아있는 나의 하루하루는 즐겁기만 하다.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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