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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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의 언어학
2006년 02월 06일 00시 00분  조회:5492  추천:56  작성자: 황유복
사랑의 언어학



내가 미국 하버드 대학 교환교수로 가 있던 1987년 가을이였다. 칼·메세이라고 하는 하버드대 언어학 박사과정생이 자신이 작성한 《 IN ABOUT 310 LANGUAGES (310가지 언어로 말하는 <아이 러브 유>)》라는 론문을 갖고 나의 연구실을 찾아왔다. 그 론문은 310개 민족언어와 방언으로 된 사랑을 전달하는 말들을 수집한뒤 적당한 문법해석을 가한 글이였다. 그의 글에 따르면 사랑을 고백하는 말들은 어순의 형태로 보아 아래와 같은 두가지가 주종을 이루었다.

①《나 사랑 너》류형
인도-유럽어족의 다수언어와 한-장어족 다수언어가 본 류형에 속한다.
《아이 러브 유》(영어), 《워 아이 니》(한어).

②《나 너 사랑》류형
알타이어족 언어와 우랄어족언어가 본 류형에 속했다.

《비 심베 하이람비》(만주어), 《마 알마스탄 신드》(에스또니아어).
그 외에도 《사랑 나 너(사랑해 내가 너를)》류형 (아프로아시아티크 어족 일부), 《너 사랑 나(너를 사랑해 내가)》류형 (오스트로네시안 어족 일부), 《너 나 사랑(너를 내가 사랑해)》류형 (오마하어) 등 여러가지 류형이 있어 세계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어란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되여 있어 론문이 수집한 언어들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였다.
《조선어는 어떻게 수집했습니까?》
《같은 대학원에 다니는 한국 류학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를 지적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영어 ⟨아이 러브 유⟩에 대한 번역문으로는 인정이 되나 조선말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들이 사용하는 말로는 적합한 말이 아닙니다.》

《왜 적합하지 않습니까?》
조선말을 전혀 모르는 칼에게 왜 우리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리였다.
《그렇다면 코리언 남녀들은 어떤 말로서 사랑을 주고받습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금방 말문이 막혔다. 사랑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우리 민족 련인들은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종래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나는 말을 얼버무려 《우리 민족 련인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의 말로써 사랑을 고백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곧바로 옌칭도서관으로 쫓아가서 《춘향전》을 찾아놓고 리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을 훑어보았다. 우리 민족의 《로미오와 쥴리엣》이라고 하는 고전 《춘향전》에서 《사랑한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찾을바 없고 《이성지합(李成之合, 二姓之合) 조흔 년분(緣分) 평생동락(平生同樂)하여 보자…》(리몽룡), 《한번 탁졍(託情)한 연후의 인(因)하야 바리시면 일편단심 이 내 마음 독숙공방(獨宿空房) 홀로 누워 우는 한(恨)는…》(성춘향) 그리고 《우리 두리 인연 매질 져그 금석뇌약(金石牢約) 매 지리랴》(리몽룡) 등 우회적 언어로 사랑의 관계설정 과정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 고전의 《금병매(金甁梅)》로 일컬어지는 《가루지기타령》에서도 변강쇠가 옹녀에게 《당신은 과부지요? 홀아비니 둘이서 살면 어떠하겠소?》라고 말하면서 두사람의 관계가 이루어 진다. 결국 양반계층이나 최하층의 천민계층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셈이다.

우리가 현재 널리 사용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낱말이 자전(字典)이나 자학서(字學書)에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1583년에 석봉 한호가 왕명을 받들어 《석봉천자문》을 편찬하면서 《애(愛)》를 《사랑 애》라고 주석한것이 처음이다. 그후에 편찬된 《왜어류해》(1720), 《신증류합》(1756), 《전운옥편》(1799)에서 1908년에 간행된 《자전석요》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랑 애》라는 한석봉의 주석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그러나 《석봉 천자문》보다 더 앞서 편찬된 《훈몽자회》(1527)에서는 《애(愛)》를 《다슬 애》라 주석을 달았는데 《닷다》,《닷을》은 《사랑》이라는 낱말에 밀려 지금은 없어진 사랑이란 뜻의 우리 민족 고대어이다. 만주어에도 《총애한다》의 뜻으로 《도손》, 《도소롬비》라는 낱말이 있어 《다슬》은 알타이어 어원임을 간파할수 있다.

《사랑》이란 낱말의 어원은 《생각하여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에 두고있음을 《광주본 천자문》이 《사(思)》를 《사량(思量) 사(思)》라고 한 주석에서 읽을수 있다. 그런데 그 《사량(思量) 사(思)》가 《룡비어천가》,《월인석보》, 《목우자》 등 문헌에서 《사랑(思) 사(思)》로 변모되였다가 《석봉 천자문》에서 《다슬》을 쫓아내고 《사랑 애》로 뜻이 바꿔지고 그 대신 《사(思)》는 《생각 사》로 주석이 변해졌다.

영어의 《아이 러브 유》나 한어의 《워 아이 니》는 가장 간편하게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언어라 할수 있다. 《나》와 《너》 사이에 《사랑》이란 단어가 아무런 문법적 수식이 없이 끼여진 그 말은 사랑을 전달하기 위하여 특별히 규격화된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마치 규격화되여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된 공업제품과 같아 개개인의 개성이 완전히 함몰된 상태일수 밖에 없다. 남과 녀, 로와 소, 허와 실 그리고 상하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아이 러브 유》이고 《워 아이 니》이다. 아주 쉽게, 그래서 애쓴다거나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련발할수 있는, 한번 구해놓으면 변하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쓸수 있는 조화(造花)와 같은 언어, 그러나 그기에는 생기도 향기도 없다.

그 대신 우리 민족 언어에는 그런 규격화된 사랑 전달어가 없기때문에 우리 말로 사랑을 전달해야 하는 남과 녀는 개개인의 문화적 개성을 추구할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는 《사랑을 어떻게 전달할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범답안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랑에 한해서만은, 어떻게 표현할것인가를 묻지 마라》라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두 사람만의 언어로 두 사람만의 비밀이나 즐거움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을 때이다》라고 한 괴테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누구나 입만 벌리면 튀여나올수 있는 규격화된 사랑 전달어보다 개성이 있는 두 사람만의 언어로 사랑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남녀가 훨씬 돋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동포인 피터 훼셜레는 《코리언은 사랑을 곡선적으로 은밀하게 표현할 줄 아는 슬기를 지니고 있다. 녀자 친구와의 은밀한 사이를 아무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사랑의 편지를 봉하고 나서 뒷면에 <만리상사(萬里相思)>나 <월제숙군사(月際夙君思-떠오르는 달을 보니 님 생각 먼저 나네)>라는 봉인을 살짝 누를수 있어 슬기롭다》라고 우리 민족 남녀들의 사랑 표현법을 극찬했다.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사랑의 표현은 진한 향기로 되여 상대에게 전해질수 있다.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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