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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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고슴도치도 0거리접촉을 한다
2006년 02월 13일 00시 00분  조회:4937  추천:64  작성자: 황유복
고슴도치도 0거리접촉을 한다



일반론 보다는 특수론을 따르는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얼굴모양 못지 않게 다양한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니말이다. 나와 너 혹은 너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를 두고 말하는 이른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사귀게 되는 사람은 수십명에서 수백명, 수천명 심지어 수만명이 넘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진정한 친구도 있을수 있고 보통 친구도 있을수 있을것이며 심지어 어디에서인가 우연히 만나 인사나 하고 갈라진 사람도 있을수 있을것이다.

사람에 따라 한사람을 사귀여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고 진심으로 사귀는 사람이 있고 그와 반대로 자신의 마음을 단단한 껍질속에 감추어놓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밖에서 사람을 사귀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두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함석헌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뿐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사람/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가 있으니〉 하며 빙긋 웃고 눈을 감을수 있는 그 사람/ 온 세상 찬성보다는 〈아니오〉 하고 머리를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약 한 사람이 죽음의 위험에 놓여졌을 때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서로 양보할수 있는 친구를 가졌거나,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버려 외로울 때 내 마음을 포용해줄수 있는 친구를 가졌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스벤 레게너는 장편소설 《레만씨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이웃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주인공 프랑크 레만을 그려내고 있다. 서 베를린의 어느 술집 스텐더인 프랑크에게는 《몇권의 책과 빈 침대가 있는》 단칸방이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지만》 인생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그 거리를 빈침대가 담보해주고 있다. 《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당신과 사랑에 빠진 건 아니예요》라고 말하던 그의 애인도 결국 다른 남자의 련인이 되여버리지만 그는 그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응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프랑크 레만형 인간들을 가끔 볼수 있다. 그들에게는 삶이나 사랑이나 그 모두가 지켜야 할 《거리》일뿐이다. 《친구 없이 사는 삶은 황량한 사막에서 사는것과 다름없다.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지고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불행해지는 법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우정이라는 빛은 우리의 불행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빛이기때문이다》라고 말한 그리시앙의 잠언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지를 나는 상상조차 할수 없다.

우리는 로마법에 기준한 촌수라는 잣대로 친족성원간의 피의 농도를 잰다. 나와 내 부모, 나와 내 자식 사이는 1촌, 나와 내 친형제 그리고 나와 내 할아버지나 나와 내 손자 사이는 2촌, 나와 내 아버지 형제 사이나 나와 내 형제 자식 사이는 3촌…이렇게 친족 사이의 관계는 부단히 증가될수 있는 수자로 표시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친족이외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잴수 있는 눈금 있는 잣대는 없다. 그렇다 해서 수자로 표시할수 없는 관계가 꼭 수자로 표시할수 있는 관계보다 거리가 멀다는것은 아니다. 《신앙을 같이 하는 속에서 생긴 우정, 리념을 같이하는 곳에서 생기는 우정, 학문의 연구를 같이 하는 생활속에서 생기는 우정, 즉 가치를 같이하는 우정은 때때로 혈육의 정보다 더 뜨겁고 짙은 경우를 얼마든지 본다.》(송건호: 《우정에 대하여》) 《어미 팔아 친구 산다》든가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우리 말 속담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마음에 박힌 가시를 빼줄수 있는것은 친구의 손밖에 없다.》(엘베시우스: 《잠언과 수상》)라는 잠언의 가치기준에 따라 친구를 사귈수도 있고 프랑크 레만처럼 어머니와 애인까지 포함한 모든 《이웃들》과 적정거리를 두고 사귈수도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을 취하는가 하는것은 각자의 인생관이나 삶의 방식에 따를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친구나 심지어 부부사이에도 《적정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담론을 일반론으로 받아들일수는 없다. 너무나 가깝게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권태감이 생겨나 리혼하게 되기때문에 부부간에도 거리를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원인과 결과를 혼돈시킨 론리일수밖에 없다. 그렇게 리혼하게 된 부부는 시작부터 마음의 합일을 이루지 못했기때문에 로맨틱한 사랑을 성숙된 사랑으로 가꾸지 못했을뿐이다. 마음의 합일을 이루지 못했다는것은 《거리》를 없애지 못했다는 말인만큼 《거리》가 리혼을 부추긴것이지 《0거리》가 리혼을 불러온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슴도치에 관한 우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겨울철 서로 체온을 나눔으로 추위를 덜려고 하던 고슴도치들이 가까이 다가섰다가 서로의 가시침털때문에 상처를 입고 물러서서 적정거리에 머물수밖에 없었다는것이다. 가시침같이 날카로운 털을 곤두세운 고슴도치에 대한 선입견때문에 생긴 우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을 우화로 리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우화이상의 뜻을 부여했을 때, 례를 들어 친구사이나 심지어 사랑하는 남녀사이에도 《적정거리》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끌어낸다면, 자가당착에 빠질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고슴도치도 《0거리》 밀착접촉을 하기때문이다.

어릴 때 고향의 참외밭에서 고슴도치를 관찰할수 있었다. 고슴도치는 적으로부터의 위협을 느꼈을 때 가시침털을 곤두세운다. 먹이를 나를 때에도 가시침털을 세워 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휴식할 때에는 그 털을 신체에 평행되게 눕히기때문에 밀착접촉하는데 아무른 지장이 없다. 고슴도치도 포유동물인 이상 암수가 교미도 해야 하고 새끼들이 어미젖도 먹어야 하기때문에 밀착접촉은 불가피하다. 서양의 고슴도치를 본적은 없지만 도리는 같다고 생각된다. 《옥스포드대사전》에서 HEDGEHOG(고슴도치)란 단어를 찾아보면 커다란 채색사진이 먼저 한눈에 안겨온다. 새끼 고슴도치 세마리가 서로 더 유리한 위치에서 어미젖을 빨기 위해 서로 밀고 닥치며 어미의 몸에 올라타는 광경은 새끼고양이들이나 강아지들이 젖을 먹을 때의 풍경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고슴도치들도 0거리 밀착접촉을 하기때문에 친구 사이나 심지어 련인들 사이에도 《적정거리》를 설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펴기 위하여 흔히 사용하는 고슴도치 우화도 인간의 독선일수밖에 없다. 고슴도치는 그들의 상상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나 사랑이나 결국은 거리이다》라는 담론보다는 《참된 벗은 또 하나의 나다》라는 키케로(《우정에 관하여》)의 잠언이 더 포근하게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것은 어쩔수 없다.

20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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