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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이야기(17)
2023년 04월 09일 12시 12분  조회:346  추천:3  작성자: 회령
           실화
                                              모택동의 이야기(17 )
                                                                                                                         회령
 
민족자존심
 
모택동의 애국주의와 민족자존심은 하나의 유기체다. 물론, 핵심은 민족자존심이다. 1958년부터 중쏘관계는 파렬되기 시작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쏘련의 위협공갈과 협박앞에서 모택동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엄정히 맞섯다.
 
산고기만 먹는다.
 
1949년 1월 쓰딸린의 파견을 받고 정치국위원인 미꼬양이 중국으로 왔었다. 하북성 평산현 서백파촌에서 모택동 등 중공령도들은 그들일행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초대연에서 쏘련의 번역이 상에 오른 훙쏘잉어를 가리키며 갓잡아온 산 잉어인가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미꼬양일행은 비로서 먹기시작했다. 이 오만한 거동은 모택동의 민족자존심을 심심히 건드렸다.
 
1년후 모택동은 쏘련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때, 모택동은 수행료리사에게 엄숙히 지시하였다. 우리에게 물고기료리를 할때면 반드시 산물고기로 하라. 죽은물고기를 가져오면 그들앞에서 던져버리고 모택동은 죽은물고기로 한 료리는 먹지않는다고 설명하라.
 
며칠후 과연 죽은물고기를 가져오자 료리사는 당장에서 던져버렸다. 쏘련인원은 너무도 당황하여 번역에게 물어서 연유를 알게되였다. 쏘련인원은 산물고기를 즉시 가져오겠다고 정중히 보증하였다. 이일은 클레물리궁에서 인차 널리 소문이 퍼졌다. 모택동은 산물고기료리고야 먹지 죽은물고기로 한 료리는 먹지않는다고. 매우 따진다고. 1957년 모택동의 방문시에는 쏘련에서 미리 산물고기를 준비했었다.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중쏘관계처리에서 모택동은 시종 민족리익과 국가리익을 중히여겼다. 중쏘관계가 “밀월”일때도 그는 쏘공이 “형님”이라고 우쭐렁거리지 못하게 하였다. 하여 쓰딸린은 모택동에게 불만이 있었다.
 
어느날 쓰딸린은 갑자기 파이내플통조림이 생각나서 비서 말렌꼬브에게 지시하기를 “즉시 중국에 전보를 쳐서 내가 중국땅에 파이내플통조림공장을 세우려 한다고 알리라.”고 하였다. 이때 곁에 있던 흐루쑈브가 “쓰딸린동지! 그렇게 하면 모택동이 불쾌해 할것입니다.”하고 귀띔을 하였다. 쓰딸린은 그따위소리는 듣는체도 안하고 전보를 보내게 하였다.
 
이틀후 쓰딸린은 모택동의 답장을 받았다. “우리는 당신들의 제의를 접수한다. 당신들이 파이내플통조림에 흥취가 있다면 우리에게 대출을 달라. 우리가 공장을 세우고 생산한 통조림으로 대출한 돈을 갚기로 하자.” 이대답은 기실은  타국의 존엄을 무시하는 쏘공의 태도에 대한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거절의 대답이였다.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다.
 
1958년 쏘공총서기 흐루쑈브가 중국으로 왔었다. 그는 쏘중이 련합함대를 만들자고 하였는데 당연히 모택동의 거절을 당했다. 이에 그는 달갑지 않아 계속 모택동에게 압력을 가했다. 모택동은 랭정하게 “가장좋기는 당신이 중국의 해양을 몽땅 가져가는것이다.”고 대답하였다. 흐루쑈브는 무슨말인지 몰라서 정말로 그런다면 어쩔건가고 물었다. 이에 모택동은 내색을 하지않고 “다시 산에올라 유격전을 할것이다.”고 대답하였다. 뻔뻔스러운 흐루쑈브는 “유격전은 현대세계에서 시장이 없다.”고 말했다. 모택동은 대수롭지 않아하면서 “당신들이 기어코 중국사람들의 코를 꿰여끌자고 하면 그외에 무슨방법이 있겠는가?”하고 말하였다. 흐루쑈브는 그제야 말귀를 알아듣고 시무룩해 하었다.
 
1960년 흐루쑈브는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와의 회담이 끝나자 중국으로 왔었다. 그는 중국에서 붙잡은 조선전쟁시 포로와 특무 8명을 석방하라고 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중국의 법률에 않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흐루쑈브는 얼굴을 붉히며 아이젠하워와 회담에서 결정한 문제라느니 뭐니하면서 계속 졸라댔으나 모택동은 응대도 하지않았다.
 
흐루쑈브는 철면피하게도 또 인도 네루총리의 설객으로 나섯다. 그것은 변경에 있는 무인 불모지인 중국땅을 인도에 조금 떼여주라는 것이였다. 이에 모택동은 그들이 그곳에 들어와서는 무장집탈을 하는데 한치도 않되며 견결히 반격해 물리친다고 대답하였다.
 
중국은 쑈련의 방조를 많이 받았고 형제적 우호관계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쑈련의 패권주의 정서에 경각성을 시종 잃지 않았고 털끝만치의 양보도 하지않았다. 그는 위대한 국제주의자 였고 애국자 였고 민족존엄수호자 였다.
 
                                                                                                                    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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