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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초상(2)
2012년 12월 05일 15시 18분  조회:2099  추천:2  작성자: 회령
선생님의 초상(2)


초중시절의 김정식선생님



내가 초중2학년때 가을이다. 전 교 사생들은 근공검학으로 쌀밥골산골로 가서 두주일간 로동을 하게 되였다. 감자와 콩을 걷어 들이는 로동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반년전에 소리없이 사라진 김정식선생님을 볼수 있었다. 중키에 몹시 수척해진 선생님은 더부룩한 머리에 수염까지 꺼칠해서 스물일곱살의 청년이 마치도 중늙은이 같아 보였다.


김정식선생님은 쌀밥골에서 소를 방목하며 움막살이를 하고있었다. 그때 학교에는 십여명의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반우파투쟁이 시작되자 일본 동경대학 졸업생이라는 선생님 두 사람은 조선으로 나가고(합법적임. 한분은 교도주임.) 학생들은 “4대”(대명, 대방, 대변론, 대자보)를 조금 하다가 걷어 치웠다.(중앙의 지시임.) 입에서 젖내가 나는 조무래기들에게 공산당의 정풍을 도와 의견을 마음대로 말하라고 하는것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 모양이다. 그리고 철부지 미성년 아이들이 정작 우파소리를 쥐여 친다고 해도 꽥! 소리질러 으름장을 놓으며 욕이나 퍼부을 일이지 무슨 모자를 씌워 처리한다는건 내남이 다 난증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였든것이다. 어쨌든 선생님들만 련일 오후와 밤을 비밀리에(아이들이 얼씬 거리면 쫓아버림.) 회의를 하여 대드니 비로서 우파를 잡았다는것이였다. 그 우파가 바로 감정식선생님이라고 하였다. 조선으로 나간 선생님들이 그냥 있었으면 우파로 잡는건데, 큰 성과를 올리는건데… 아쉽게 되였다고 교장선생님(당지부서기 겸임.)은 배를 앓았다고 하였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어데서 그소리를 얻어 듣고 교장선생님을 더욱 무서워 하고 미워 하였다. 하여 “빠꾸샤”(살찐 흰돼지. 서양돼지종자. 교장선생님은 그때 세월에도 무얼 잡숫는지 매우 비만했다.)라고 별명을 붙혔다. 우리는 김정식선생님과 조선으로 나간 선생님들을 매우 존경하며 좋아 했다. 학부모들도 그분 선생님들을 높히 보았다.


김정식선생님은 고중에 다니다가 항미원조를 갔다 왔는데 퇀부에서 번역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한어를 가르쳤는데 자기의 실천경력을 자주 례로 들면서 재미있게 배워 주었다. 선생님은 우리와 친구처럼 사귀기를 좋아했다. 우리가 전쟁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선생님이 먼저 성수나서 열정적이 였다. 그의 이야기는 생동하고도 흥미있어 마치도 영화를 보는것 같았다. 감동적이고 교육적이고 또 공부와도 련관이 많았다.


그가 우파로 된것은 말 한마디 때문이였다고 하였다. 그것은 “조선전쟁에서 놈들의 무기가 상당히 선진적인것을 보고 감촉이 컸는데, 우리도 빨리 많은 인재를 배양하며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놈들이 시가지같이 큰 군함에서 함포를 꽝!꽝! 냅다 갈기는데 쪽배를 타고 수류탄을 뿌려서야 당할재간이 있겠는가?!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을 더욱 많이 틀어 쥐여야 한다. 로동시간보다 학습시간이 더 많게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말이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변론하고 변론해서 그를 우파로 만들었다. 교장선생님은 우파지표를 완성한것으로 해서 좋아했다고 하였다.


우리가 감자캐려 가던 어느날 아침, 역시 그곳에서 방목하던 생산대 송아지 한마리가 커다란 저수지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송아지는 숱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몰려오자 기겁을 하며 반대쪽으로 도망쳤는데 그곳은 저수지 복판이였다. 저수지 기슭으로는 살얼음이 끼고 가운데는 수심이 깊었다. 이때! 달려온 김정식선생님은 그속도 그대로 저수지에 뛰여 들었다. 어깨까지 오는 뼈시린 물속에서 선생님은 안깐힘을 다하여 송아지를 구해냈다. 교장선생님은 언덕우에서 팔을 휘두르며 이쪽으로! 이쪽으로! 하고 소리만 질렀다.


로동이 끝나서 돌아올때 우리 세넷은 선생님의 움막에 가만히 작별인사를 갔다.(선생님들이 그와 접근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었다) 그는 우리들에게 구운감자를 두개씩 쥐여주며 학습을 잘하여 훌륭한 인재로 되라고 하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시작 되였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후에도 보이지 않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천보산 어느 농촌마을에 있는 집으로 갔다고도 하고 무슨 학교로 갔다고도 했다. 그후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김정식선생님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소식도 한마디 듣지 못했다. 무정한 세월은 어느덧 50여년이 지나갔다. 하지만 선생님이 저수지에서 박투하던 모습과 눈물이 글썽한 얼굴, 그리고 부탁하던 말씀이 하나의 동영상으로 되여 잊혀지지 않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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