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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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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댓가
2014년 01월 24일 15시 33분  조회:2784  추천:1  작성자: 회령
         실화
                                         부패의 댓가
                                                                                                            회령

    “정부”라는 것이 지금 어떤사람들에게서는 비밀아닌 비밀로, 마치도 응당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개인의 은사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의 하나인듯, 행세인듯히 인정되고 있다. 그러면서 권세가 있고 돈이 있고 뒷심이 있으면 으례히 그런것으로, 그래야 하는것으로, 그래야 체면이 서는것으로 생각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적인 근거가 있다.

    나의 한 친구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개탄하며 이런말을 하였다.

    어느날, 그는 7,8명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는데 모두가 낯선 녀사들을 배동하여 왔더라는 것이였다. 나의 친구만 외톨이였다고 한다. 그날 모인 친구들은 모두가 “기”자 “장”자 아니면 “임”자, “리”자가 붙은 “어른”들이였다. 나의 친구는 작으마한 서기어른이다. 술집에서 일어서자 일행은 호호탕탕 노래방으로 직진했는데 경비는 비교적 큰 “장”자와 “임”자가 결산을 했다. 노래방에서 질탕 놀아제낀후 사우나쪽으로 향하는데 친구는 떨어졌다고 하였다. 케가 보아하니 눈치가 도끼등 같은 사람도 알아먹을수 있었던 것이다. 잔뜩 술독이 오르고 흥이 난 친구들은 “서기가 다르긴 다르다니. 녀자친구도 없이… 쯔쯔! 감춰둔게지? 친구들끼리 비밀이야?! 얌전 떨지말어. 불쌍해. 림시용을 하나 얻어줄게. 소비는 근심말고.”하며 거침없이 떠들고 웃어댔다.

    적잖은 사람들이 정부라는것이 근년에 생겨난 부패의 “신생사물”인가 하는데 그렇지 않다. 무대랑의 처 반금련은 서문경씨의 정부이고 염파석은 장삼의 정부인데 남편씨는 유명한 송강이다. 중정 장개석선생께서도 정부가 있어서 가정분란이 여러번 있었다. 근년에 와서 정부가 그어느 력사시기보다 더욱 빈번히 나타날 뿐이다. 이렇게 말해서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자주 보고, 듣게 된다. 그런데, 정부란 출발점도 불행이고 종말도 불행이라는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동한 특점이다. 세상에는 “행복한 정부”란 종래로 한명도 없다. 반금련과 염파석은 정부를 했기에 칼날밑에 귀신이 되고 장개석의 정부 진아가씨는 행방불명이 되였다.

    지금도 정부들의 팔자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것은 역시 실지 사실적인 실례가 있다.

    부흥대대(촌) 당지부서기 박대삼과 부서기 최경자는 한때 전 현이 알아봐 주는 선진적인 인물들이였다. 그들이 당원이 되고 또 대권을 틀어쥔 서기, 부서기로 된것은 순전히 문화대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대삼은 초중을 졸업하고 고급사때로부터 농사를 하였는데, 공부할때는 중간도 될가말가한 수수한 학생이였지만 광활한 천지에 나와서부터는 되똥오리가 물을 만난듯 활기를 펴기 시작했다. 대약진때 잘해서 입단을 하고 이어 단지부서기를 했는데 문화대혁명때에는 혁명중기에 입당을 하고 당지부서기가 되였다.

    그먼저의 부흥대대 당지부는 하류를 좀 벗어난 중간축에 속하는 지부였다. 공사(향)당위에서는 부흥대대당지부를 토끼도 아니고 거부기도 아니고 중늙다리암소새끼 같다고 하였다. 부흥대대의 10여명 당원은 토개, 해방전쟁, 항미원조, 초,고급사때 입당한 사람이 다수고 사상은 좋았으나 민주혁명파로서 문맹을 벗은 정도의 문화수준은 낮았다. 서기는 해방전장에서 부상당해 돌아온 사람이고 부서기는 토개당원이였다. 선전, 조직위원은 초, 고급사패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고집들이 세고 농사일에는 막힘이 없어서 상급의 지시도 구미에 맞으면 듣고 자기들 생각과 다르면 통 듣지 않으면서 제 주대대로 하였다. 무서운걸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이였다. 령도와도 쩍하면 시비를 하며 제 배짱대로 해서 대약진때는 하마트면 “백기”로 뽑힐번 했다. 다들 출신, 성분이 좋고 경력이 좋아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절면에서는 옳아서(실천이 증명하다싶히.) 서기는 그냥 서기를 하고 위원들도 그냥 위원을 했다. 농촌에서는 한번 무슨벼슬을 하면 보통 줄곧 그 벼슬을 하기가 일수다. 걸리는 것이 별로 크게 없기만 하면.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민주파고 중간파인 지부에 불질이 시작 되였다. 거기서 뛰쳐나온 반란파 맹장인즉 박대삼과 최경자다. 최경자는 지식청년으로 인물은 수수해도 체격이 멋있었다. 그래서 배구선수라고 불렀는데(지금말로하면 성감이 풍부했다.) 그는 정말로 배구를 잘쳤다. 그리고 말을 잘하고 노래, 춤도 잘하고 문장도 잘쓰고 활발했다. 그때세월에 중국사람치고 말못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경자는 우선 문화수평, 리론수평이 쎘다. 또 받들리우는 하향지식청년이 였다. 말로는 재교육을 받으려 왔다고 했으나 어덴가 공작대 비슷한 감을 주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반란파들의 천하다 보니 당권, 행정권… 일체의 무산계급정권을 몽땅 그들이 거머 쥐였다. 부흥대대의 원래의 당지부는 어데서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고 얼떨떨하게 “민주파”라는 모자를 쓰고 몽땅 비켜섯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판국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쩍하면 고깔을 씌워 끌고다니며 투쟁하고 우사에 가두고 뚜드려 패는 기세에 놀라 아예 책임을 벗어메고 싶은데다가 권력을 내놓으라고 하니 얼씨구 비켜섯든 것이다. 린접대대의 서기는 고급사를 잘해서 국무원의 상장까지 받은적이 있는데, 기어코 류소기 졸개라고 닥달을하고 뚜드려패서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하지 않았는가! 비켜서라고 할때 제꺽 자리를 내는것이 약삭빠른 처신이라고 그들은 한결같은 속구구를 했든것이다. “민주파”들이 달갑게, 자진하다 싶히 온순히 권력을 내여 놓는데다가 모두가 대삼의 아버지벌들이여서 새지부는 그들을 그닥 험하게는 잡도리를 하지않았다. 대삼이는 은근히 그들을 감싸주기까지 했다. 사상이 민주혁명계단에 머물러 있어서 락후하고 형세에 따르지 못할뿐이지 빈하중농 기본군중은 넉근히 된다고 대변을 해 주었든것이다. 하여 그들은 크게 닥달을 받지 않고 군중이 되였다.

    천하는 바뀌여 부흥대대는 박대삼의 “숴라쏸”세상으로 되였다. 부서기에는 최경자가 되고 선전, 조직위원도 생기발랄한 반란파맹장출신들로 신선혈액이 토구납신 되였다.

    혁명적인 새로운 당지부에서는 부흥대대에 새로운 기상을 불어 넣었다. 그들은 저작학습으로 이끌고, 대비판으로 길을 열며, 혁명으로 생산을 촉진하였는데, 말로는 생산을 촉진한다고 하였지만 혁명에 더 열정을 집중하였다. 그들은 혁명이 잘되면 생산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그것이 곧 변증관계라고 하였다. 생산대와 대대의 사람이 자주 거치는 곳, 이를테면 탈곡장, 우사, 야장간, 위생소, 공소사, 대대판공실, 지어는 유치원 마당, 밭머리, 퇴비장똥무지에까지… 등등 공지에는 선전란을 세우고 흑판보를 꾸리는가 하면 정치구호판을 만들어 세우고, 산비탈을 깎가 내리고 나무뿌리를 뽑아던진후 대량의 사원, 학생을 동원, 돌을 주어다 영구적인 정치구호를 글자 하나가 배구장 크기로 새겨 놓았다. 그리고 확성기나발을 도처에 늘이고 집집마다 하루 세번 회보 청시하기 활동(감독원이 있었다.), 어록노래, 양반극노래 보급, 충성무 추기, 소근장을 따라 배우며 혁명이야기 하기, 전간학습, 밭머리대비판, 밭머리강용회, 홍색선전원, 대대, 생산대문예선전대, 외지의 선진경험참관학습단, 양걸대… 하여튼, 농사는 두번째고 혁명이 첯번째 특등가는 사명인데, 매일 구호가 우렁차고 나발소리, 북소리, 꽹가리 소리가 요란하였다. 조용하던 농촌마을들이 흥성흥성 북적거리며 행사도 볼거리도 많아서 지금의 무슨 유람촌 같았다.

    부흥대대에서 무산계급정치, 사상혁명화, 혁명로선을 억세게 틀어쥐고 생기발랄하게 모택동사상으로 홍색정권을 보위 건설한다는 선진사적은 층층의 업적이 되여 상급에 보고 되였다. 공사혁명위원회에서는 자기들의 사업성과로, 그 생동한 실례로 부흥대대를 현에 보고했고 현에서는 지구와 성에 성과작으로 보고했다. 하여 산소통을 메고 다니는(천식증이 가끔 나온다던가.) 상급의 어떤모범령도간부가 시찰까지 다녀 갔는데 그는 대단히 흡족해 하였다. 그는 재료조를 파견하여 사적을 잘 작성한후 성과 중앙에 보고하여 좋은칭찬을 받았다.

    혁명활동에 따라다니면 공수는 공수대로 상등을 받고 힘든 농사일은 하지 않고 뛰놀며 구경도 하는거니까 사람마다 장끼를 발휘하여 거기에 붙어 돌아가기에 있는 창발성과 꾀를 다 하였다. 누가 농사가 어떻구 밭김이 어떻구 하면 “유일생산력론”, “홍색정권건설반대”, “사상혁명화파괴” “소근장활동파괴”… 하며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정치모자가 단통 날아 왔다. 일밭에서 일하는 자는 “5종인”, “9종인”뿐인데 그들은 몇이 되지 않았다. 페농이 되다싶이 되여 감산하고 마이너스 빚장부분배를 해도 “우리 빈하중농 호매롭게 혁명의 길로 달리네! 사회주의 풀을 요구할 지언정 자본주의 곡식은 먹지 않으리!”하였다.

    노래하고 춤추며 놀고 건달을 피우다 보니 고유의 기풍이 허물어 졌다. 사람들이 방탕해 지면서 남녀가 시근덕대고 “바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대삼은 아이가 셋이나 되였지만 입당을 시키면서 최경자를 정부로 만들었다. 그런데, 최경자뿐이 아니였다. 그와 주전부리를 하는 녀자는 대여섯이나 되였다. 그러니까 정부가 7,8명 된다는 말이다. 선전, 조직위원도 거이 마찬가지 였다. 최경자는 그사이 군인총각과 결혼까지 했으나 박대삼과 군입질을 자주 했다. 도둑질은 다 같은 도둑질이지만 “바람”쓰는 도둑질은 왜서인지 사람들 눈에 쉽게 걸린다. 하지만 화냥년놈과 도둑은 앞에서(현장에서) 잡아야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키득키득, 쉬쉬하면서도 누구하나 상급에 반영을 한다든지 오쟁이를 쓴 피해자들에게 귀뜀을 한다든지는 하지못했다. 하지만 전혀 혼자만 알고 있는것도 아니였다. 마음맞는 사람들끼리는 수군덕 거리고 키드득 거렸다. 당자들만 그런눈치를 모를 뿐이였다. 부흥대대 지부위원들의 부패행위는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다.

    일은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무슨회의가 그렇게 많은지, 밤마다 거이 빼놓지 않고 회의를 하는데 회의 뒤끝에는 거이 둥세(밤참)를 서기인 대삼이네 집에서 먹어댔다. 대삼이는 하향간부식당을 저의 집에 정하고 늙은 로모와 처를 식당일군으로 하여 상등공수를 타게했다. 밥하는 일은 전간로동보다는 쉬운것으로 그들은 신형의 농민신봉쟁이가 된 셈이였다. 그리고 화목, 쌀, 기름, 된장, 고기… 등등은 현물 혹은 현금으로 결산을 했는데 그건 대삼의 처가 명세를 작성하기에 달린것이였다. 톡톡히 재미나는 업종이였다. 하지만, 남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손님치기를 한다고, 사람들은 대삼이네를 수고가 많다고 치하를 했다.

    그건 어쨌든, 대삼이네 집에서 술추렴을하고 밥을 먹을때면 경자는 얼른 밥을 먹고는 집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의 집은 3, 4리 떨어진 이웃마을에 있었는데, 그때마다 의례히 대삼이가 데려다 준다면서 술을 먹다가는 함께 따라 나섯다. 다른사람들은 덤덤한 태도였으나 대삼의 안해는 신경이 늘 곤두섯다. 그것은 그런날이면 남편의 팬티가 꼭꼭 끈적끈적 젖어 있었고 빨래할때 보면 흰덕지가 말라붙어 있었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날밤에는 맥을 추지 못했든 것이다.

    어느날 밤, 남편이 또 데려다 준다며 나간후 대삼의 처는 옆에 있는 사촌네 집으로 불이나게 뛰여가서 알렸다. 사촌네 부부는 미행을 나섯다. 경자와 대삼은 흘금슬금 대대판공실로 들어갔다… 이런정경을 사촌네는 처음 보았지만 어떤사람들은 이미 여러번 보았다. 선전, 조직위원도 누구누구와 수작질하는 수상한 거동을 사람들에게 여러번 들키웠었다. 하여 사람들은 “바람쟁이지부”라느니 “오입쟁이간부”라느니… 뒷말을 하였든 것이다. 대삼의 처는 집이 밤낮없이 분주하다보니 큰소리 지르며 앙탈 한번 써보지 못했다. 그는 잠자리에서 남편을 꼬집어 뜯으며 분풀이를 했다. 그리고 이제 경자를 한바탕 조겨 놓고 “거기”도 페물이 되게 할거라고 이발을 갈았다. 안해는 능히 그럴 녀자였다.

    대삼은 온갖 구변을 다 하여 안해를 구술리는 한편 경자를 도시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는 웃어른께 입쌀자루를 갖다주고 공인모집지표를 하나 얻어왔든 것이다. 경자는 궁둥이를 툭툭 털고 거뿐히 집으로 갔다. 워낙 입당도 정부도 이걸 견주고 한 노릇인데, 그는 리상을 앞당겨 실현해서 날것만 같았다. 대삼이 따위가 다 무엇인가.

    그러나 앞에서는 천길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경자는 그걸 알지 못했다.

    어느날 대삼과 선전, 조직위원께 7,8명되는 사내들이 단체로 달려들었다. 오쟁이를 졌다고 달려든 사람들이였는데, 딱 잡아쥔 사실적 근거는 없고 이사람 저사람들의 입에서 얻어들은 소리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다마토리 강술냥이나 마이고 분통이 터져서 달려든 그들은 대삼네들의 변명에 주먹행사를 들이댔다. 확실한 근거는 없고 분통은 상투밑까지 치밀어 오른 그들은 생활작풍이 어떻구 주풍이 어떻구 일처리가 어떻구 사상이 어떻구 저떻구 하면서 기세가 잔뜩올라 달려들었다가 되려 몰리게 되였다. 벙어리가 파리 삼킨듯 속은 뒤틀렸지만 직방 치부를 드러내고 “네새끼가 내 안해를 건드려!”하고 따질수는 없고 이것저것 집탈을 하다가 나중에는 낡은지부 말을 꺼내 시비를 걸고 들었다. 이것이 한때 원근에 소문이 들썽한 “환향단”, “역청산”, “우경번안풍”이다. 한줌도 못되는 계급의 적들이 문화대혁명기간에 잡혀나와 납작하게 되고 나떨어진 “민주파”, 수정주의 졸개들을 위하여 억울하다고 웨치며 “환향단”을 무어 역청산을 하며 혁명적 간부들에게, 무산계급전투보루에 무단적인 진공을 들이댔다는 것이였다. 그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보니 대삼이네들은 늘씬히 부쉬웠든것이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이여서 공사에서는 단단히 버르장머리를 떼겠다고 윽윽 했지만 부흥대대당지부가 가로막고 나섯다. 모두가 빈하중농들인데 인식문제일뿐, 계급적보복은 아니라고, 소근장활동을 심입전개 해서 자체로, 단결의 념원에서 인민내부모순으로 능히 잘처리할수 있다는 것이였다. 다른때는 방귀 뀐 것도 적아모순이라고 우기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인민내부를 들고 나와 극력 상급을 설복했다. 거기에는 선진전형의 형상, 체면을 고려한 인소도 작용을 해서… 그번 “환향단”풍파는 그리그리하고 말았다. 모순이 악화되면 대삼이네들에게 좋을것이 없었든 것이다. 군중들은 그속내를 알기에 입을 비죽거리고 코를 싸 쥐고 웃으며 속이 쉬원해 하였다. 사단을 이르킨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루까나 쎄루까나 서울만 까문 되는커니켜. 당신들이 이번에 봉창을 꽤 했닥꼬 널리덜 생각덜 허시께. 그게 뭐 다스는꺽두 아닝께루. 참는게 할애빙께.”하며 되지도 않는 앞대말로 위문인지 조롱인지 시까슬렀다. 더 말하면 밑이 드러나서 제 망신뿐이고 하여 “환향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못들은척하며 입만 찝찝 다시였다. 이젠 비밀아닌 비밀로 되였다. 그들에게는 쩍하면 “오줌깨”, “요강떠깨”라는 별명이 겉 롱담 속 진담으로 날아들었다. 그런 걸죽한 롱담판이 벌어질때마다 당사자들은 대범한듯 했으나 “령도”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롱담”이 더 험상해지면 무슨판이 되겠는지… 36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얼마후, 4인패가 꺼꾸러지고 삐뚠것을, 억울한것을 바로잡는 바람이 기세높히 드닥쳐 왔다.

    부흥대대에서는 낡은지부를 밀어던지고 새지부가 올라선것이 제일 큰 잘못된 안건, 억울한안건이라고 군중들이 떠들어 댔다. 이런 와중에 최경자의 남편이 퍼러등등해서 친구 서넛을 끌고 부흥으로 찿아 왔다. 그는 제대된후 시내 방직창에 배치를 받았는데 안해를 리혼하고 대삼이를 한바탕 패 주겠다고 윽벼르며 달려 왔던것이다. 무지막지한 경자의 남편은 회의장소에 뛰여들어 박대삼을 개 두드려 패듯 두드려 팼다. 대삼은 호되게 물매를 맞은것도 여지없는 체면랑패였지만 그보다 는 더욱 지독한, 벌거벗기우고 온갖 악담에 가래침을 받는 등 개골망신을 했다. 그는 그길로 천방지축 강으로 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선전, 조직위원은 “동풍”의 기세를 타고 다시 달려드는 “환향단”에게 물매를 맞고 자리에 누워 녀편네들의 닥달을 또 매일 받았다. (그들은 얼마후 출당처벌을 받고 후에 다른고장으로 이사를 갔다.) “환향단”네 가정들도 무사치 못했다. 이번에는 대삼이처를 맹장대장으로 선전, 조직위원의 처가 반란돌격대원이 되여 “보복단”을 무어가지고 “환향단”패들의 아낙네들을 돌아가며 조기는 판이 였다. 동시에 “환향단”과 “보복단”집들에서는 울며불며 악다구니를 쓰며 리혼풍파가 터졌다. “정부”질한 댓가가, 엎음갚음이 그야말로 푸짐했던 것이다. 부흥대대는 매일 전쟁판으로 아우성을 지르는데, “문공무위”때보다 더 치렬했다. 말그대로 생사판가리 였다. 하여 공사와 파출소에서는 화급히 달려와 여러날 무진애를 쓰며 노력한 끝에 겨우 진화를 해 놓았다.

    경자는 개가를 소리높히 부르며 돌아간 남편에게 뼉다구도 추리지 못하게 뚜드려 맞고도 코까지 뜯여 졌는데, 쥐약을 먹고 죽어 버렸다. 그는 도시로 간 후에도 정부의 재미를 버리지 못했든 것이다.

    새월은 그런대로 많이 갔다. 그러나 그번의 “정부”전쟁에서 요행 살아남은 당사자들의 가슴은 그냥 요강뚜께로 물떠먹은 기분이 가셔질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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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부패척결
날자:2014-01-24 19:51:03
좋은 글이다. 시진핑 주석이 부패척결의 기치를 높이 드는때 이런 글들이 시류에 맞춘 조흔 글이라 본다.
근데 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 한때 연변작가협회 주석으로 으시대던 김학천이 공금탐외, 공물독점, 공금유람죄로 당적 처분을 받고 처리된 사건을 왜 매체나 작가협회서는 덮어 감추는가?
조선족 문단 나아가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응당 단죄해야 한다.
1   작성자 : 충고
날자:2014-01-24 15:53:44
이 긴 문장을 단락으로 끊지 않고 쓰시다니 대단...
이 글은 끝까지 읽을 사람은 필자밖에 없다고 100% 장담

올리신 필자의 사진은 셔츠에 단추를 안하고 가슴을 풀어해쳐 놓았는데 한국에서는 교육 못 받은 무식한 양아치들이 하는 옷차림으로 간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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