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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에 대한 재인식
2014년 02월 03일 10시 17분  조회:2665  추천:1  작성자: 회령
       수필
                                    안해에 대한 재인식
                                                                                                      회령 

    주제넘은 소리지만 나는 모택동사상이 꽤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활동성”이 부족해서 재직당시 한자리를 크게 해 먹지는 못했다. 나의 안해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다. 부부는 서로가 닮는다더니 아마 그래서 그런건지…

    우리는 처녀, 총각시절부터 그러니까, 사회에 첯발을 들여놓을 때로부터 한단위에서 근 40년을 사업 하였다. 원앙새나 기러기 같은 극진한 한쌍은 못되지만 하여튼, 밤낮 그냥 함께 있었다. 그런데 령도급에 들어가서는 안해가 나보다 반급이 더 높았고 입당도 나보다 2년을 먼저 했다. 부서는 달랐다. 그러나 실제 령도권은 내가 쥐고 있었다. 집에서도 단위에 나가서도 지어는 잠자리에서도 내가 상급이였다. 안해의 입당지원서, 자전서, 사업계획, 총결재료 등등 중요한 것은 내가 심사 수개를 해 주었고 밥이나 국, 고기반찬은(어쩌다가 먹지만.) 수뎃것으로(숫것) 알뜰한건 으례히 내가 먼저 먹었고 내가 수저를 두어번 든 다음에라야 안해와 아이들이 먹었다.

    나에게는 모택동사상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말해서 사실은 “남존녀비”, “가장독재” 같은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가풍을 은근히 흐뭇해 하면서 습관이 되고 령도버릇이 자랐다. 그건 순전히 안해가 미인계를 쓰며 아첨하여 조장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수년을 이러다 보니 무슨일이나 나의 구미가 원칙이였다. 안해의 처사가 나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즉각 고치게 했고 그러면 안해는 대부분 경우 나의 의견에 따라 주었다. 아주 성근한 태도로, 나의 기분에 맟추어 주었다.

    안해는 특히 가정살림에서, 큰일은 말할것도 없고 깨알만한 일도 모두 나에게 통보를 해 주었고 부지런히 회보하고 청시를 했다. 나는 그의 고분고분, 나긋나긋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슬그머니 내가 똑똑한것 같아 자존심이 무둑해서 코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잔뜩 높아 졌다. 단위에 나가서는 내가 “숴라쏸”(내말이면 다다.)이 아니지만 여덟식구 대가정에서는 모든일이 내가 숴라쏸이 였다. 기실은 잡다한 가정일을 대부분은 안해가 자기 마음대로 처사해 놓고는 나에게 통보를 하고 청시하는드키 “예술”(수단)을 썼는데 나는 거기에 미혹되여 “응, 잘했어. 응, 그렇게 해.”하고 비준을 했는데 그 멋이 좋았다. 정작 나의 주의대로 한것은 수십년 동안에 몇가지가 안된다. 나는 가정일에 대해서는 아주 부담이 없이 단위사업에만 몰두 했다. 안해가 경영을 제대로 하기에(나의구미에 맞게, 나의생각과 같게.) 가정의 운행은 원활 했다. 나는 집에서도, 단위에서도 방침, 정책, 대방향을 그것은, 세절까지도 아주 능란하게 다루는 유능한 간부라고 은근히 자부하기까지 했다. 가정재정은 안해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나는 용돈도 그에게서 타서 썼다. 그는 수중에 현금이 있든 없든 얼마를 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갖다 바치었다. 나는 나의 권위에 늘 흐믓해 하며 령도틀거지가 습관이 되였고 안해는 괜찮은 내조쯤으로 얕잡아 치부를 했다. 여러해를 살아 가정구성원은 많이 변동이 되였으나 안해의 내조작풍은 의연히 일관적이 였다. 그야말로 부창부수의 부부생활이 였다.

    그런데, 안해에 대하여 크게 재 인식하게 된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정년퇴직을 한 해의 일이다. 정년퇴직을 한 날인즉 내 생일날인데, 그날에 나의 회갑연을 할것이라고 안해가 청시를 하듯이 의논조로 말을 했으나 본질상에서는 일방적인 강력한 통보였다. 하여 우리부부는 처음으로 련 며칠 공방설전을 전개 하였다. 나는 지금의 류행에 따라 70대에 가서 함께 회갑을 쇠자고 주장하고 안해는 회갑이라는 것이 그런거가 아니라고 아주 나를 우습게 보며 지시를 묵살 했다. 이런일은, 특히 이런 중대사안 앞에서 안해가 이렇게 령도에 대여든 일은 참으로 난생 처음이였다. 나는 너무도 억이막히고 가슴이 떨려서 두눈을 딱! 부릅뜨고 입을 하ㅡ 벌리였다. 밸은 치밀었으나 일순간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안해를 노려 보기만 하다가 놀란 가슴이 좀 진정이 되니 그제야 말이 나왔다.

    “원, 어처구니두 없는 한심한 소리를, 다시는 입두 뻥끗 말아요. 소갈머리가 없어두 여분수지.”
    “회갑이란게 무엇입니까. 만 예순살 자기 생일에 쇠는것이 회갑이랍니다. 날자를 하루라도 어기여 쇠는것은 둔갑이라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이 어느때오? 바지 벗고 춤을 춰두 다 제멋인데. 흥! 누가 회갑이 무엇인지 그걸 모르는가. 회갑을 일찌기 쇠면 일찌기 죽는다오. 그래서 다들 80대, 90대에 가서 죽기 전날에 회갑을 쇠는게오. 자기야말로 쥐뿔두 모르면서.”
    “쥐뿔을 봤습니까? 그걸 나두 좀 구경 합시다. 호호호. 한뉘 령도를 하더니 아는것이 정말 많네요? 호호호.”
    “쳇! 누구 면전이라구 또박또박 대꾸질이야. 한심하군. 무조직 무기률루. 안돼!”
    “첯날 색시처럼 얌전하게 앉아서 주는 떡이나 받아 잡수시요. 눈을 부릅뜨면 누가 겁낼줄 아나 봐.”
    “글쎄, 안쇤다니까! 무슨말이 그리 많아.”
    “아이구! 호호호. 아무때라두 쇠야 할것 간단히 제대루 합시다. 더 말씀 말아요.”
    “안된다는데두. 엑, 그것 참! 고집 쓸줄 다 알구? 튀슈를 했다구 업신 여기는가. 드러봐서… 그럼 회갑이구 둔갑이구 밸대루 하오. 매일 쇄 주오. 여북 좋아서!”
    시비를 하다보니 차츰 안해의 말에 웃음집이 흔들거렸으나 나는 체면상 엇먹어 보았던 것이다. 자식들까지도 어미와 맞장구를 쳐 대니 우습고도 좋았다. 지들이 내 령도수완에 넘어 갔지. 갈데 있나… 나는 아큐의 정신승리법으로 그래두 내가 한수 더 높다고, 이겼다고 흐믓해 하며 슬그머니 물러 섯다. 제때에 후딱 치뤄버리는 것이 질질 끌기보다는 부담스럽지두 않구 거뿐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든 것이다.

    회갑후 어느날, 안해는 기세 등등해서 한바탕 “후라까이”(휘뜩 뒤집는다.)를 단행 했다. 이번에는 상론은 커녕 아주 독단적으로 과감히 용감무쌍하게 “쪼반”(반란)을 감행 했다. 그것은, 언제부터 내가 “해야지! 이제부터는 꼭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한일ㅡ 금주, 금연이라는 중대결행이다.

    재직에 있을때 공짜로 술과 고기와 고급담배를 입에 달고 있었는데 혈압이 오르내리며 파동이 심하고 임신배가 되였는데 의사들은 동맥경화, 지방간, 알콜간, 관심병, 뇌출혈, 중풍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위혁을 했다.(저희들도 술, 담배를 좋아 하면서.) 하지만 나는 비타민씨나 생각나면 몇알씩 먹는둥 마는둥 대수로와 하지 않았다.(집에 20여가지 무슨 약, 무슨 보건품이 가득하다.) 그날 안해는 각종 고급술, 고급담배(거지반 가짜겠지만, 아까운걸), 지어는 내가 애용하는 금붕어가 헤염치는 술잔, 도자기재떨이, 찔리깨라이타까지 단꺼번에 몽땅 무차별 료정을 냈다.

    그뿐이 아니다! 그날부터 고기와 기름튀기, 닭알, 젓갈 등 알뜰한 반찬은 일체 철거하고 시래기국, 김치, 콩나물, 비지장따위만 그것도 겨우 야박하게 한공기만 먹이는게 아닌가! 이렇게 먹고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굶겨 죽일 작정인가… 나는 삐뚜렁 소리를 하면서도 과학리론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해에게 단호한 결단력과 주대가 있다는 것을, 고집이 세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크게 놀랐을 뿐만아니라 좀 겁을 먹기까지 하였다. 이제부터는 주의 해야지…나는 그의 관리대로 수굿하고 따랐다. 우파때 개조에 복종하듯히.

    또 더 있다. 산으로 들로, 장마당이며 상점, 공원, 강변으로 소를 끌고 다니듯히 끌고 다니는데, 활동시간, 자는시간이 군대규률처럼 엄격했다. 나는 코꿴 송아지처럼 욕사발을 얻어 먹으면서(어떤때는 게두덜거리며 싫다고 떼질을 써서.) 따라 다녔다. 반항하면 안해가 신경질을 내는데, 그러면 신체에 불리하다 하지 않는가… 나는 일약 군중신분이 되고 안해는 횡포한 독재자처럼 군림을 했다. 보아하니 나를 단단히 틀어쥘 잡도리 였다.

    몇달후, 권위를 부려 볼 기회가 왔다. 그것은 안해의 생일이 눈앞에 다가 왔든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안해에게 공개적인 생일상을 차려 준 적이 정말로 한번도 없었다… 나는 이제부터는 안해의 생일상을 나와 꼭 같은 규모로 공개적으로 차려 주리라 작정을 했다. 남들은 언녕 그렇게 했는데 나라고 못할것이 있는가. 이전에는 안해가 쑥스럽다느니, 돈벌이를 하자고 생일을 쇠는가? 그러지 말라고 자꾸 강조를 하는데… 하면서 거절하기에 나도 그게 옳다고 칭찬해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지금은 나의 비위짝도 두꺼워 졌든 것이다. 정년퇴직후 탕개가 풀어져서 꺼리는것이 없어 졌는가…

    재직에 있을때 나는 지천명이 썩 지나서 그러니까 개혁개방이 15년도 더 지나서부터 공개적으로 생일연회를 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많이 파란 령도동지들도 생일연을 누구에게 질세라 굉장히 차리는데 나만 가만 있자니, 믿지기만 하는것이 반발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생일상을 차리고 축하금일봉을 받아 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생일떡보다 그것이 더 맛있었다. 안해는 군말없이 나의 지시를 관철 했으나 번마다 계면쩍어 하면서 송구해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해마다 생일연을 포치 하였다. 흥! 내가 뭐, 남없는 짓을 하나?!... 손가락질 하며 웃겠으면 웃으라지. 개코는 아니구. 나는 대수로와 하지 않았다.

    안해의 생일을 앞두고 내가 결정을 자식들에게 선포를 하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찬성을 하는데 안해가 대뜸 반대를 할줄이야! 웬 망발이냐고, 어째 벌써 치매가 오는가고, 호되게 쏘아 붙히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권위를 세우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에 나도 벌컥 언성을 높히며 련줄포를 쏘았다.

    “찍소리 말구 그전처럼 좀 얌전하오. 내가 튀슈한후부터는 무스게나 다 제맘대루 숴라쏸을 하자구 들면서. 어따대구! (오래간만에 큰소리를 쳐보니 속이 다 쉬원했다.) 안되우! 이번에는 내 말을 따르오.”
    “아이구! 이거 좀, 남 웃길 소리를 작작 하세요. 녀자가 생일술상을 차리고 동네방네를 청한다면 세상이 번져지겠습니다. 창피하게스리. 할일이 없으니 심심합니까. 별생각을 다 하고.”
    “창피는 무슨 생뚱같이 창피야! 남들은 언녕부터 부인님, 부인님 하면서… 그것이 지금은 신식이구 고상하고 젊잖구 신사적이구 서양식으루 고급류행이라는데… 가시에미사촌이 죽어두 다 알리는데… 내가 그간 등한했던건 미안하구… 자식들 위촌(존중)두 이젠 받을때가 됐지. 받을줄두 알아야 하오. 안 그렇소?”
    “됐습니다. 부인님, 부인님 하던 어른들이 오망은 더 씁데다. 당신이 내생일을 다 생각하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은 당신의 생일마다 함께 쇳는데 뭘 또 그럽니까.”
    “무슨 왕청같은 소리를. 언제?”
    “당신이 생일을 쇨 때마다 교배주를 마이라고 해서 함께 마이지 않았습니까? 그럼 됐지. 나도 축하를 받았는데. 나는 당신이 생일을 쇠면 나도 쇤거라고 생각했어요. ”
    “이런! 그게야 작란이지… 안되우! 이제부터는 꼭꼭 당신두 생일을 크게 쇠야하우. 그렇게 알구 있두룩!”
    “쇠는가 보시요. 정말 그러는 날에는 달아납니다.”
   
    아이쿠! 케를 보니 안해의 태도는 확고했다. 밸머리가 정말로 그럴수 있다고 판단 되였다. 달아나면 큰일이다. 북경이나 상해는 너무 머니까 안 가겠지만(아들과 딸의 집) 가까운 룡정에 막내딸이 있고 또 친척집도 여렀이다. 어데로 도망을 하는 날이면 독수공방도 문제지만 당장 누가 밥을 끓여 줄것인가. 큰코 치겠다… 나는 달래고 설복을 하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였다. 안해에게 숨은 밸이 있다는건 이미 명확히 알았으나 이렇게 땅고집일줄이야!... 나는 더는 어쩔수 없어서 두손 두발을 들고 머리까지 흔들었다. 한번 본때스레 권위를 세워 보자던 노릇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되려 부옇게 몰리우기만 했다. 나는 뿔빠진 쇠 상통을 하고 풀풀 한숨을 쉬며 툴툴거리긴 했으나 별수가 없었다.

    근래에 와서 가만 보니까 안해는 고분고분, 나긋나긋한 일면도 있고 원칙과 주대도 상당히 센 일면이 또한 있었다. 이래서 우리 녀성들을 “외유내강”이라고 했는가…

    그후, 나는 여러날 안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사색하여 보았다. 부부로 산지가 이젠 40년 세월도 거이 되지만 이렇게 심각해 보기는 처음이다.

    기나긴 세월! 나의 안해는 과연 어떤 녀성이였든가?!... 돌이켜 보니 나의 안해도 현모량처라고 할수 있었다.
   
    첯째로, 그는 맡은봐 사업을 잘 하였다. 현과 주의 표창도 여러번 받았지!...
    둘째로, 그는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한몸을 아낌없이 헌신했다. 꽃다운 어린나이에 째지게 가난한 산골집에 맏며느리로 들어선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는 너그럽고 무던하게, 그리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따뜻하게 식구들을 안아 주었다. 시부모로부터 시동생 시누이… 누구도 차별을 두지 않고 받들고 사랑했다. 친척들에게도 있는껏, 힘껏 베풀었다. 정신상 물질상에서 성심껏 최선을 다 하여 관심하고 방조를 하였다. 하여 가까운 친척집에 놀러왔던 친척들도 우리집에 묵기를 더 편해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팬티도 깁고 또 기워 입었다.(안해의 별명은 큰집맏며느리감.)
    셋째는, 나다. 내가 바람을 피워 개골망신을 하며 피둬(비판과 투쟁)를 받을때 그는 이불속에서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등뒤에서는 그의 뜨거운 눈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도 단위에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가장 뜨거운 교육을 받았다. 가정은 평온하게 대해항행을 계속할수 있었다…
    넷째로, 그는 자식들을 모두 바르게 키웠다. 큰 아들애가 생산대 옥수수 이삭을 두개 뜯어 왔을때 그는 아이를 데리고 교장선생을 찿아가서 교육을 받게 하였다. 아이들에게 숙제를 한후에는 닭먹이풀(세투리, 돌피 등)을 뜯어 오게 임무를 주었고(닭알은 반알도 먹지 않았다. 닭고기탕을 하면 감자나 무우 건데기에 국물만 먹었다.) 휴일에는 딸애들을 데리고 웃으며 말하며 빨래를 한 함지씩 하였다. 밝고 엄하고 또 자애로운 어머니를 자식들은 무척 존경하며 사랑한다.
    다섯째, 그는 매사에서 원칙을 지키면서 령활하게 처사하는 총명과 능력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의 잘못을 발견한것이 없다. …

    나는 생각 된다. 기실은 녀자들이 남자들보다 백배는 더 총명하고 강하고 훌륭하다고!(제일 크다는 산고를 이겨내는 것만 보더라도.) 녀성은 꽃이며 또 우리를 품어주는 집이다. 남자들은 흔히 녀성을 꽃으로만 보며 포근하고 아담하고 안온한 요람ㅡ가정은 자기의 덕으로 생각한다. 아니다. 집은(가정은) 녀자가 관건이고, 꾸려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님들은 한 집이 잘 되자면 녀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한것 같다. 한 가정, 한 가문의 흥망성쇠는 녀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의미심장한 교시도 있다.(나라도 그렇지 않은가!) 앎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있는데 녀성의 중요성, 품행, 덕성, 위력을 일컷는 말일게다.

    녀성은 인류의 어머니다. 세상에서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 어찌 존중하고 애대하지 않겠는가!...

    사내대장부들이 나를 치관얜(공처가), 팔부, 애처가라고 놀린대도 할수 없는 일이다. 안해들에 대한 나의 진솔한 인식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사실이 그런걸 달리 말할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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