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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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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갈이 노래
2014년 04월 28일 16시 06분  조회:2292  추천:1  작성자: 회령

수필
밭갈이노래
                                                                    회령


    생각해 보면 나처럼 무정한 사람이 없다. 아니다. 무정하다하기보다는 사정이 딱했다고 하는것이 정확하다. 무슨일로 이렇게 심각하는가? 그것은 30여년 한번도 고향에 가 보지 못한것 때문이다. 고향마을에는 외가친척 몇집이 지금도 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고 할때도, 또 사망했을때도 나는 불효막심 가지 못하고 눈물만 주루루 흘렸다.

    수십년 고향으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딱한 사정이란 기실은 별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리유를 대며 변명을 하자면 여러가지 구실이 있겠으나 툭! 찍어서 통말을 한다면 내돈이 아까워서 고향에 가지못한 것이다.

 

지금도 시간상, 재력상 크게 여유가 있는 팔자는 아니지만 지난 30여년 나는 정말로 바쁘게 보냈다. 그때, 나는 항상 뼈물었다. 이제 꼭 어느날 돈을 한마대 가득 메고 고향에 가 보리라! 고향사람들을, 아이고 어른들이고 모두 청하여 한상 크게 차리고 “용돈”도 두툼하게 드리고 차츰 더 발전하면 “기념비적인” 무얼 해 놓고… 포부도 컸고 꿈도 많았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일이던가?!...

    나는 외사촌동생의 전화를 받고 5일간의 시간을 내여 고향에 갔다. 막내외삼촌이 회갑을 쇤다면서, 사업만 사업이라고 하지 말고… 면목도 다 잊어지겠다고 하면서… 무슨 좋지않은 일이 있는지 발길을 끊는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말한다면서… 이번만은 꼭 와야 한다는데는, 아차!하고 나는 가슴이 꿈틀 하였다. 돌아보니 30년도 넘었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갔는가! 정신없이 달렸구나… 나는 부랴부랴 회사일을 안배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안해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까지(학생이지만) “방문단”을 거느리고 고향나들이에 올랐다.

    상해에서 뜬 비행기는 기분좋게 날았다. 넓고넓은 중국대지, 나의조국, 나의활무대! 중화대지 조선족용사들 활개치네!... 주먹을 부르쥐고 분투한 지난날이 가슴뿌듯 하였다.

 

   연길에서 택시 두대를 붙잡아 타고 산골고향으로 달렸다. 그젯날 신작로는 고속도로로 아득히 쫙 뻗었는데 여기저기 농촌마을들은 아름다운 문화농촌으로 변하였다. 초가집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촌촌마다 포장도로가 들어갔다. 천지개벽이였다. 어찌 않그러랴. 옛날에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을려니 세번도 넘는 10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아름다운 연변, 고향땅이여! 우리민족 얼마나 똑똑하구 날쌔다구!... 하여튼, 한번 하자꾸나! 달라붙으면 불이 번쩍나게 해 제낀다니깐. 중국조선족은 워낙 그런 민족이니까!... 나는 환성을 련발하며 흥분해서 떠들어 댔다.

 

외사촌동생이 연길공항에 마중오겠다는것을 그만두라고 하고 출발날자도 알리지 않았다. 나는 아이때부터 엉뚱한 짓을 하기 좋아했다. 그 버릇이 지금도 살아있어 이번에도 엉뚱한 거동을 하고 싶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쳐 사람들로 하여금 입이 딱 벌어지게 하고 싶었다. 얼마나 멋진가…

    “샘물깨”, 마을이름은 변하지 않았으나 마을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규격을 맞춰 앉은 아담하고 산뜻한 문화주택, 집집마다 문앞까지 길이란 길은 모두 포장도로이고 앵두, 살구, 복숭아, 오얏(노리. 특히 흔하다.)… 과일나무 꽃나무로 길이며 집들이 꽃속에, 연록속에 묻혔다. 알뜰히 정리한 터밭, 뜨락, 온 마을이 생태체험장이 아닌가?! 별장마을이 따로 없었다!...

    내가 어리둥절 외가집을 알지 못하니 기사는 “당연히 그렇지요.”하면서 차를 “샘물깨마을활동실”이라고 멋진간판을 건 2층짜리 멋진건물앞에 세웠다. 멋을 피운 철근울타리 안 넓은 뜨락에는 건신운동기, 문구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려서자 “아이구! 형님!” 하고 소리치며 외사촌동생이 달려 나왔다. 잇따라 여러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며 달려 왔다. 막내외삼촌 내외도 거기 있었다.

    막내외삼촌의 회갑잔치는 굉장하였다.(내외분이 함께 쇰.) 축수의식은 활동실에서 거행하고 연회도 거기서 하였다.(활동실에는 도서실, 열람실, 오락실, 사무실, 회의실이 있었다.) 남녀로소 온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온갖 장끼가 쏟아져 나오고 웃고 떠들고… 오후 3시까지 잔치는 흥성흥성 하였다. 마을의 인심, 잔치풍속은 옛날처럼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했다! 굉장하게 변하고 발전했다.

 

   퉁소, 장구, 새납 농악을 울리고 음향기가 쿵작작 꽝꽝… 꽃보라를 터치고 축포를 쏘고 사진, 록화도 저절로 하고 음식상은 절반이상 남고… 시가지에서는 볼수없는 흥겨운 정경이였다. 과연 쌀독에서 인심난다. 말그대로 별장같은 마을에서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고기국 먹는다. 마을의 발전에 대하여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 하였다. 나만 괜찮게 번신한줄로 알았는데, 웬걸! 고향사람들은 모두가 “사또님”이 되였다. 시가지 사람들처럼 신경을 세우고 오글복작거리지 않는다. 느긋하게, 하하하 웃으며, 마음 편히, 흐믓하게 일하고 흐뭇하게 살아간다.

    우리 “방문단”은 련일 이집저집에 불려다니며 하루 두세번씩 연회초대를 받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짬을 내서 “방문단”을 이끌고 어머니산소로 갔다.(아버지는 상해에서 사망.) 외가집에서 돌보아 산소는 깨끗하였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럿 동행하여 주었다. 49세 아까운 년세로 문혁기간에 사망한 어머니는 그때 상여도 없이(몇개 마을에서 쓰던 상여는 상여막에 불질러 없앴다.) 달구지에 실려 여기로 왔다. 지금도 살아 계셔야 할 어머니!...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산소는 산기슭 중턱쯤에 있었는데 전망이 쉬원했다. 저 멀리로 두만강이 굽이쳐 흐르고 조선의 시가지와 뭇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샘물깨 앞으로는 논벌이 쫙 펼쳐지고 여기 산기슭 밑으로는 또 한전벌이 뉘연히 펼쳐졌다. 때는 5월중순이여서 진달래는 붉게 타고 개살구나무꽃은 하얗게 산허리를 수 놓았다. 대지는 연록으로 꽃으로 물들고 여기저기에 그림같은 마을들이 앉았다. 푸른하늘,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래… 논벌과 한전벌에서는 대여섯대의 농기계가 한창 밭갈이에 분주했다. 뜨락또르의 고르로운 동음은 고향벌에 가득차서 생기가 넘쳐나게 하였다. “뻐꾸기 울며 울며는 에루화 데루화 이랴낄낄 소를 몰아 밭갈이 가세…”하던 느러진 밭갈이노래는 이젠 고전이 되였다. 쿵짝 쿵짝작!하는 박자가 빠르고 경쾌한(무도에 맞는) 밭갈이노래가 새로 나올것이다… 마을에는 농업합작사가 서고 온 마을이 다 거기에 들었는데(33호) 힘든 농사일은 거지반 기계로 한다고 하였다. 수도화, 전기화, 가스화, 기계농사, 쌀풍년, 다각경영, 심층가공, 상품화생산, 명표브랜드 창출, 돈풍년… 마을은 그렇게 발전번영하고 있었다. 농업우혜정책, 변강소수민족에 대한 우혜시책, 과학발전관… 당과 정부의 밝고 따사로운 해빛은 여기서 활짝 꽃피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이다. 아무리 유명한 시인, 작곡가, 화가라도 이 자연을, 이 고향모습을 다는 그리지 못하리…

    떠나기 전날 나는 마을사람들께 답사연을 하였다. 그리고 고민 하였다. 마을사 람들에게 무슨 “기념비적”일을 하나 보암직하게 하긴해야하겠는데 무얼로 하면 좋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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