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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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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이 어드메냐
2014년 05월 05일 15시 45분  조회:2395  추천:7  작성자: 회령
           실화
                                            황천이 어드메냐
                                                                                                                       회령

    법이 없은 문화대혁명시기(1966.5ㅡ1976.10)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무법천지였든 그 10년을 회고하면 법이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하고 귀중하며 고마운 것인가를 심절히 느끼게 될것이다. 사회주의법제가 있기에 우리들이 오늘 활개치며 살지 않는가!...

    인구가 2864명 뿐인(1966년) 두메산골 칠도공사(향)에서는 문혁의 란을 시정할때 피해 상황을 상세히 준확한 조사와 통계를 한바가 있다. 비판투쟁을 받은 사람이 73명, 맞아서 을병이 든 사람(뇌진탕후유증, 고막이 터졌거나 생이발이 부러지고 빠진 사람, 눈알이 터지고 귀가 비틀려 버리고 코등뼈, 갈비뼈, 사지에 골절 된것이 바로 붙지 못하여 병신이 된 사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 등등)이 44명, 자살 6명, 타살이 1명이였다. 귀통을 맞아 코피가 터졌거나 몽둥이 몇대를 맞았거나 발길에 채우고 멱살을 휘둘려 넘어지고 구울린것 등 이런 경한 피해는 통계에 넣지 않았다. 본인들이 “쏼라바.”(그만둬라.)해서 빼 놓았다.(21명, 곱게 투쟁당한 사람은 겨우 8명뿐임.)

    평판시정은 공사혁명위원회에서 주관 했는데, 학교마당(소학, 초중에서 함께 쓰는 운동장)에서 대회를 열고 혁위회주임(로 머슴출신. 토개간부. 즉신하게 투쟁받아 고막이 터지고 생이발이 두대가 빠짐.)이 연설을 했는데 통쾌하고도 감동적이 였다. 그의 연설요지는 다음과 같다.

    “에ㅡ 흠, 우리 다 같이 먼저 모주석의 로작을 학습합세다. '혁명위원회는 좋다.' 잠시 이만 학습하고. 에ㅡ 흠, 거밍동미(혁명동무)덜! 우리공사에서 니른서이(73명)나 되는 사람덜에게 온갖 죄명을 덮어 씌우고 달구쳤으나 죄로 될만한 것은 사실상 개뿔짝도  없지 않수?! 제길할! 씨불랑게, 일이 더럽게는 되였수. 억울하고 분하게 되였수만 다 거밍군중덜인데 량해 하우. 투쟁 받은 사람이나 투쟁한 사람이나 다 지나간 일인데 이제 무스거 어쩌겠수. 죽은사람덜은 살아올수 없구… 제길할! 씨불랑게, 다 그 요사한 림표아새끼와 새끼낳고 미친 암캐같은 강청이라는 간나새끼덜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되였으니… 제길할! 씨불랑게, 우리는 단결해서 이제부터 또 잘해보기우! 경심(점심)을 갖춰 놨으니 한잔하구 속덜을 쑤욱 푸오. 싹 잊어 버리우.”

    공사식당에는 암소 한마리를 잡아 앉히고 상마다 두부와 고구마술을 다섯사발씩 내놓았다. 그리고 국밥을 대접 했다. 그날 적지않은 산골사람들은 평생에서 처음으로 이런 희한한 공짜 대접을 한번 받아 보았다.

    을병이 든 사람들에 한해서는 공사병원에서 공비로 치료를 해주었는데 어떤사람들은 신통한 방법이 없다보니 두루두루 그러다 말았다.

    그런데, 자살한 여섯사람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대체로, 자살한것은 당과 국가를 배반한 행위라고 책망하는 눈치 였는데 이러쿵 저러쿵 캐고 들거나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영 그러고 말았다. 그러니까 죽은 정승이 산 개만도 못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살고 보는건데… 지레 겁부터 먹고 죽지 않았는가. 공연히. 그것, 참! 죽긴 왜 죽었느냐 말이다. 다만, 그들을 투쟁할때 너무 악착했든 사람 몇이 후에 슬그머니 타고장으로 이사 간것 뿐이다.

    자살한 네 사람은 그아말로 하찮은 일에 신경이 곤두서서 자살하고 말았다. 소학교 처녀교원은 생산대 풋강냉이 몇이삭을 훔쳤는데 반란파 골간 두엇이(련애를 걸었다가 퇴자를 맞은바가 있다.) 작란 삼아 개패를 걸고 투쟁한 것이 그날밤으로 목을 매 달고 죽었다. 남자 세 사람은, 한사람은 조선특무혐의 때문에,(조선에 꽤 높은간부 친척이 있었다.) 또 하나는 해방전에 일본, 남조선, 길림근처 국민당 구역 등 곳에서 품팔이 로동을 하면서 떠 돌아 다닌것이 역시 2중3중 특무혐의를 받아 자살 했다.(이 두 사람은 순 농민이다.) 다른 한사람은 어느 대대위생소의 늙은 로 중의인데 부농성분이 였다. 그는 고정한 사람으로 의덕도 괜찮은 의사였다. 그런데 죽은 환자가족 몇이 기어코 “혈채”를 갚으라고 달려 들어서 자살하고 말았다.

    다른 두 사람은 한쌍의 남녀로서(대대지부서기와 부녀주임. 유부남 유부녀임.) 간통한 추행이 들통나서 투쟁 받다가 자살 했다. 그들은 개처럼 끌려 다니며 온갖 모욕과 뭇매질을 당했는데 더는 세상에 얼굴 들 체면이 없어서 죽고 말았든 것이다. 이상 여섯사람중 간통한 두 사람은 누구나 증오하는 치사스러운 죄가 있기에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화간이든 강간이든 천하에 용납 못할 패덕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사람의 죽음은 너무도 허무맹랑한 것이여서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찿다. 특히 처녀교원의 죽음은 사람마다 애통해 하였다. 인물도 고왔거니와 심성은 또한 얼마나 참했든가!... 그는 배고파 하는 두셋아이에게 옥수수를 구워주며 자기도 반이삭을 먹은 죄를 지었든 것이다.

    맞아 죽었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은 중년으로서 초중학교 지리교원 마명춘이다. 가정성분은 하중농인데 그 자신은 중공당원이였다. 그는 일본특무, 쏘련특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뻗치다가 끝내는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마명춘은 중국 도문 사람으로 조선 회령에서 중학을 다니다가 1944년11월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 갔다. 그는 흑룡강 쌍하진에 있는 일본군 비행장에 가서 보초를 서다가 이듬해 8월 쏘련홍군에 포로되여 원동 포로집중영에 갇히였다. 쏘련홍군의 포로집중영에 대한 관리는 매우 엄혹 했다. 과중한 로역은 보통 12시간 이상이였고 숙식조건도 매우 렬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부터는 차츰 많이 개선 되였다. 포로집중영에는 소대마다 홍군정치간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정치사상 교육을 주입하는 사람들이였다. 마명춘은 로어기초가 있는데다 순진하고 총명 했다. 그는 공산주의사상과 혁명적 세계관, 인생관을 재빨리 터득하고 흡수하기 시작 했다. 1947년부터 마명춘은 중대포로민주위원회주임으로(포로들이 선거함.) 되여 로동을 탈리한 간부로 되였다. 민주위원회는 3명인데 다른 두 사람은 로동을 탈리하지 못한다. 마명춘의 임무는 포로들에게 공산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쏘련의 우월성을 선전 주입하는 것이였다. 그는 사업을 참답게 적극적으로 하였다. 하여 1948년에는 원동군구 정치학습반에 가서 두달동안 “쏘공당사” “변증유물주의와 력사유물주의” “공산당선언” “국가와 혁명” “레닌주의 기초” “쓰딸린 전” 등 저작들을 학습 하였다. 집중영에 돌아온후에는 영에서 전직 정치교원을 했는데, 1949년말에는 입당까지 하였다. 일본군 포로들이 선후로 다 귀국하자 마명춘은 쏘련에 정착하였다. 그는 원동지구 당교에서 정치교원으로 사업하다가 1955년에 귀국하고 연변의 모 고중에서 로어교원을 하였다. “반우파 투쟁” “교원정풍” “민족정풍” “사회주의 교육” 등등 정치운동에서 마명춘은 밀리고 밀려 이 산골공사까지 왔다. 무슨 모자는 쓴것이 없었으나 “일본군 학도병”, “일본군 포로병”, “수정주의쏘련에서 왔다”는 도장이 그를 내리먹게 하는 쪽자루가 되게 하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계급투쟁각오가 가장 먼저 발달 제고 된 사람들은 바로 반란파들이 였다. 마명춘은 대뜸 그들에게 일본특무, 쏘련수정주의특무로 락인 찍혔다. 그런데, 특무활동을 했다는 근거로는 일어, 로어를 알고(그것도 아주 류창하게) 원문 책자를 막힘없이 볼수 있다는 그것뿐이 였다. 꼭 왜놈들과 마우재들 한테서 특무훈련을 받고(장기적인) 임무를 맡아가지고 온 놈임은 백번 틀림이 없는데, 새끼도 많이 쳤겠는데… 고것을 밝히는게 애간장이 타고 울화가 치밀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되게 족치는것 뿐이였다.

    반란파 골간들은 전국을 아니, 세계를 진동하는 특등공을 세우기 위하여 그야말로 말그대로 혈안이 되여 발광을 하였다. 그들의 원시적인 고문은 우직하고도 혹독하고 악착했다. 고추물을 코구멍에 부으면 효과가 좋다해서, 손톱눈에 참대침을 박으면 은이 난다고 해서, 집계로 아래배 가죽을 뜯으면 꼼짝 못할거라고 해서… 현총부에 넘겼다 끌어 왔다 두세번을 번복해도 마명춘은 죽기를 결심 했는지 그냥 반항 하였다. 반란파들은 대단한놈이라고(큰 놈) 더욱 발악을 하고 마명춘은 공산당원의 절개를 굽힐수 없다고 더욱 도리를 떨었다.

    그러기를 넉달이 지나서 어느날, 현총부에서는 군중심판에 맡긴다며 마명춘을 공사로 끌고 왔다. 그들은 학교 마당에서 투쟁대회를 열고 전 공사의 군중들을 동원해 왔다. “무공대”가 장총을 메고 뻗찌른 기상이 무슨 큰 거조를 낼듯 위풍을 과시하는 가운데 책임자가 목이 터지게 소리를 쳤다.

    “무산계급 혁명파 전우들! 일본특무, 쏘련수정주의특무 마명춘은 오늘도 우리와 대항하고 있습니다. 이 완고한 특무놈에게 무산계급의 무쇠주먹 맛을 보여 줍시다! 지금부터 용약 투쟁하기 바랍니다.”
    “네놈의 죄장을 탄백해라!”
    “졸개들을 교대해라!”
    “마명춘의 개대가리를 짓부시자!”
    ……

    공사내 반란파들은 기세를 올리며 고함을 지르고 십여명은 달려들어 뭇매질을 하여댔다. 마명춘이 땅에 쓰러지자 그들은 마구 짓밟고 걷어 찼다. 마명춘은 기절하고 말았다. 현총부 반란파들은 마명춘을 트럭에 올리 던지드니 공사병원에 갖다 팽개쳤다. 현총부의 책임자는 “공사의 혁명적 반란파들에게 영광스럽고도 간거한 혁명적 임무를 맡긴다. 만난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하라! 기쁜소식을 기다린다.”하며 너스레를 떨고는 급급히 달아났다.

    마명춘은 그날 저녘켠에 복강내 대량출혈로 죽었다.

    무법천지세월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 였다.

    마명춘의 부인 백로씨야 녀자 유리야노브 . 싸샤(사람들은 마우재녀 자라고 불렀다.)는 아이 셋을 데리고 쏘련으로 돌아 갔다.(마명춘은 쏘련정부에서 백로씨야족을 은근히 경계하므로 시끄러움을 피하여 귀국 하였다. 그루지야족 쓰딸린의 협애한 민족주의정책 영향이였다.)

    그후 사람들은 차츰 정신들이 맑아 졌다. 참으로 한심한 지랄들을 했다고 혀를 차며 망인들을 애석해 하였다.

    4인패가 꺼꾸러 지자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리었다.

    중국은 10년만에 다시 법이 있는 나라로 되였다.ㅡ

    황천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그들의 혼백이 있다면 많은 위로의 말을 하련만… 그리고 세상이 좋아졌다고, 바로 잡혔다고 알리련만… 죽은자만 불상할 뿐이 아닌가!...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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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연길현팔도공사
날자:2014-05-06 07:30:55
우리 큰아버지도 그때 조선특무로 몰려서 덕신공사에서 맞아서 돌아가셨지.. 그덕에 우리아버지는 조선특무가족으로 몰려 저녁마다 불리워가서 투쟁맞고..후에는 평판이 돼서 죄를 씻어줬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말이 없고 우리아버지의 억울함은 하소연할데가 없었지.. 휴 ~ 동란의 년대가 다시 올가봐 겁난다.. 물론 그런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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