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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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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차일시 피일시
2017년 03월 03일 12시 16분  조회:1478  추천:0  작성자: 회령
          잡문
                                       문단의 차일시 피일시
                                               ㅡ김학철선생에 대한 인상 두어가지
                                                                                                               회령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김학철선생은 원로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광복전부터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80여고령의 지금도 열심히 붓을 달리고 있다니 창작생애가 환갑이 넘었다. 그런데 금상첨화로 선생의 가슴에는 또 여러가지 문학상이 주렁주렁 훈장처럼 빛나고 있다하니 성과작이 적지않은 모양이다.

    그뿐인가! 선생은 항일투사이고 로당원이다. 인생경력도 마치 깊은 산골짜기에 든 사람같이 험난하고 굴곡적이고 역경과 순경, 고통과 기쁨, 치욕과 영예… 전기적색 채가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금년초에 “연변일보”에서 보았는데, 선생께서 스스로 “영예와 치욕이 점철된 인생이였다.”고  자신을 말헸는데 내 짐작에도 신통히 맞는 말인것 같다.

    경력이나 자격이나… 여러면에서 선생은 원로대접을 받을만한 분이시다.

    내가 김학철선생을 알게된것은 아니, 명함을 보게된것은 초중학교시절ㅡ 바로 코흘리개 아이때다.

    그때 무슨일로 교원실에 갔는데 선생님들만 보는 책장에서 “해란강아 말하라”라는 소설책을 발견하였다. 두꺼운 소설책이 작으만치 1,2,3권이나 되였다. 나는 반주임선생님께 졸라서 그 소설책을 빌려보게되였는데 먼저 제1권을 가져다 보게 되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인상은 그때 그 소설이 너무도 재미가 없어서 얼마보지도 않고 팽개친일이다. “림꺽정”, “손오공”, “수호전”, “삼국연의”보다는 너무도 멋대가리가 없었든 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에 아이때 한번체한 음식은 평생을 두고 다시는 먹지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때 “해란강아 말하라”에 체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그후부터는 김학철이란 명함이 붙은 글이기만 하면 길든 짧든 일률로 풀꺼덕ㅡ 건너 뛰였으니까.

    그렇게 30여년이 지나간후 나는 선생의 글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문단에서 너무도 “김학철! 김학철!”하고 소리를 지르고 또 “김학철문학연구소”라는것까지 성릴했다고 하니… 또 듣는말에 남조선에서 김학철선생을 하늘만큼 올리 받든다고 하니… 이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해서 선생의 글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 사람을 말할때는 사실로 말해야하고 작가를 론할때는 작품으로 론해야 하는거니까, 나는 선생의 작품을 만나는대로 열독을 하였다. 그러기를 여러해 선생에대한 편단적인 새로운 인상을 몇가지 가지게 되였다.

    우선, 선생의 끈질긴 문학열정에 감탄하게 되였고 왕성한 정력과 비상한 기억력, 대담무쌍한 필봉을 탄복하게 되였다. 그리고 글이 재미있다고 느끼였다. 나는 잡문, 수필, 실화, 력사물을 좋아하는데, 근년에 내가 접촉한 선생의 작품들이 거개 다 그런것들이여서 보기 좋았다. 선생의 글은 감각과 묘사가 사실주의적이여서 리해하기 쉬웠다. 어떤이들의 글을 보면 감각과 묘사가 너무도 시적이여서(몽롱신지 환상신지 무슨 하이펀가 뭔가 한) 무슨뜻인지 지어는 뭘말하는지조차 도저히 리해할수가 없어서 왈칵! 짜증을 내며 보지도 못한 도깨비를 여울건너는 소리같다고 욕하며 책을 팽개치는데, 동시에 나의 우둔함을 한탄하기도 하는데… 선생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30여년전의 체증이 결국은 선생의 손에서 떨어진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깊은인상은 선생은 글로 남을 욕하는데 이골이 텄구나! 하는것이다.

    문학작품은 체재에 따라 크게는 두가지로ㅡ 산문과 운문으로 나누고 성격에 따라서는 찬미, 폭로, 서정… 등등으로 나눈다고 하는데 폭로를 욕이라고 해도 뜻은 통할것이다. 말씀이 고상한가 상스런가 하는 다름이지 그말이 그말인데 선생의 작품에는 욕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하자고 하는것은 선생의 욕작품에서 극히 적은것이긴 하지만 중국조선족문단과 관련이 있는 몇마디욕에 대한 소견이다.

    언젠가 선생의 글에ㅡ 문단내부에서 서로 물고 뜯고, 비방 중상하고, 지어는 무함 고자질까지 해가며 다른사람을 더럽히거나 모해하는 현상, 패거리를 짜고 몇사람이 지면을 독점하고, 먹이지 않으면 실어주지않는 현상, 모자를 씌우고 때려눕히는 현상… 소인배의 광채롭지 못한 행위를 근절하자고 질책하고 호소한것을 본일이 있는데 매우 쉬원했다.

    그때, 나는 우리문단내부에 그렇게 너절하고 창피스러운 현상이 있다는것에 아주 크게 놀랐다. 나는 “문인상경”(문인들은 서로 깔본다.), “니전투구”(진흙탕에서 개들처럼 싸운다.)라는 옛글을 본 일은 있어도 그것을 우리문단과 련계시켜 본적은 없었다. “인류령혼의 공정사”라고 하는 작가들을 나는 고상한 인격자로, 특수한 지성인으로 보아왔고 믿어왔든 것이다. 선생의 글을 본후 나는 착잡한 심정에서 “그것 참! 이럴수가 있나… 이러면 안되지… 욕한번 쉬원하다.” 하고 여러번 중얼거렸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서다. 기업가의 실화를 써준 사람을 “어용문인”이라고 신랄하게 풍자하고, 고인이 된 시인에게 비석을 세워준 일을 아주 못마땅해 한 남어지 “여기에 개를 묻었다.”고 쓴 비석을 세우라고 한 대목, “토끼를 다 잡아먹고 사냥개를 구워먹었다.”는 대목, 선생의 글을 실어준 사람과 거절한 사람을 운운한 대목… 등등의 글을 본 후에는 머리가 기우뚱거려졌다. 어쩐지 이런욕을 지상(사회)에 내여놓는것이 마음에 뜨뜨미지근 하였다. 학술적인것보다 인신공격이 주선률 같았든 것이다.

    최근년간에 우리문단에서는 보기드믄일이 나타났다. 그것은, 김학철선생에게서 무슨일로 욕을 얻어먹은 사람이 젊은혈기를 이기지 못하여, 배가 잔뜩 부어서 “엄정성명”을 발포(發砲)한 것이다. “엄정성명”의 골자는 “금후 우리편집부에서는 다른사람을 빗대고 욕한 글을 싣지도 않을것이며 받지도 않을것이니 당신 그런줄 알어라.”라는 것이였다.

    그때, 사태가 이렇게 번져가니 나는 조마조마해 났다. “엄정성명”은 김학철선생에게 직방 대여든 것인데, 이거, 큰일이 터졌군. 범에게 콧침을 놓다니… 하, 그것 참… 나는 가슴이 후두두 해 났다. 아니나 다르랴! 김학철선생께서 “폭로문학”이라는 거대한 명제를 휘두르며 버르장머리 없는 되지못한 “엄정성명”을 냅다 깔아뭉개며 아갈잡이를 해 놓았다. 문인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내부싸움이 본격적으로 터질판이니… 이런 변이라구야! 나는 긴장해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냐?! “엄정성명”이 입을 꾹 다물어 버린것이다. “엄정성명”은 자신의 성명을 솔선수범 지킨것이다. 다행히 내부싸움은 한합만 붙고 끝났다. 나는 식은땀을 쭉ㅡ 흘리고 안도의 숨을 씨익ㅡ 내 쉬였다. “엄정성명”이 잘했다고 긍정했다….

    “엄정성명”건이 진정되여 얼마후 문단에는 또 싸움이 터졌다. 이번에는 원로 대 원로가 붙었는데, 그것은 김학철선생과 김철선생이 한판 배뜨기를 붙은것이다.

    김철선생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시문학으로 대단한 분이라고 하는데, 나는 “노랑꿈”이요 “빨강꿈”이요 하는 시어들이나 “태양을 먹었다!”느니 “산이 웃는다.”느니 하는 시감각을 모르다 보니 시는 재미가 없어서 보지 않는다. 하다보니 물론 김철선생에 대해서도 일자 면무식이다.

    김철선생이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든 그건 다른문제고, 김학철선생의 잡문에서 보면 40여년전 반우파정치운동에서 김철선생이 되게 잘못한 일이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고것을 뼈가 저리게 반성하고 참회하고 눈물코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빌고해도 모자랄판인데 스리슬쩍 간지러울 지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였다. 김학철선생은 이점을 틀어쥐고 김철선생을 냅다 조기였는데 그 정도가 얼굴을 들고 다닐수 없을 지경이였다. 이럼에도 선생은 성차지 않아서 “꽁꽁 적어둔 분이 있는데 이제 세상에 나올것이다!”하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영원히 번신하지 못하게 납작하게 만들려는것 같았다. 김철선생의 대꾸도 물론 우아할수 없었다… 싸움은 서너합 치렬하게 붙은것 같다.(뒷부분은 보지않았다.)

    김학철선생은 그이의 수필에서 보면 원통한 일이 많고도 많은 분이다. 주의며 사상이며 하는것은 그만두고 단순히 인간적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벌써 서른살이 되기도 전에 왜놈들에게 귀중한 다리 한짝을 떼우지 않았는가… 공산당세상에서는 24년간이나 글 한자를 못썼다고 하니… 작가의 황금시기는 다 지나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속에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10년옥살이까지 끼여있다. 억울하게 당한 그 치욕과 모진고통, 통분을 어찌 한입으로 다 말하랴!

    사람은 리지도 있고 감정도 있다. 인지상정으로 김학철선생과 같은 그런불행을 겪었다면 누군들 그것이 잊혀지며 격분의 불덩이가 가슴에서 치워지겠는가. 비리와 교활, 사악, 부정부패… 온갖 틀린것을 극도로 미워 내지 증오하며 추호의 용서도 없는 선생의 심경과 칼끝같은 필봉은 이십분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선생은 우리문단의 원로이다. 그리고 항일투사이며 로당원이다. 지금 우리문단을 빛내이며 맹활약을 하고있는 작가들은(김철선생을 포함해서 선생한테서 욕을 먹은 모든 작가들도.) 모두 선생의 후생들이다. 그들에게는 정도부동의 미숙으로 인간적으로 문학적으로 이런저런 착오와 결함이 있었거나 있을수 있다. 그러나 필경 우리문단을 신근한 로동으로 가꾸며 꽃피워가는 인재들이다. 네가 나를 치고 내가 너를 박는다면… 그어떠한 명분에서 하는 내부싸움이든 그것은 우리문단, 우리모두에게 망신이며 불행이다.

   만약 백가쟁명이라면 백가쟁명답게 엄숙하고 허심하고 화해롭고 진지한 학술태도로 림해야 할것이다. 백가쟁명이 아니라면 지면(사회)에 올리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선생은 내부싸움의 질곡을 골수에 사무치게 겪은 분이다. 내부싸움을 앞장서서 막아야 할 분이고 막자고 이미 오래전에 호소한 분이다…

    나는, 원래 이런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이 글도 결국은 누구를 욕하는 글이겠다고, 훈장님 앞에서 문서질하듯 돼먹지못한, 버르장머리없는 소행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분 김원로분들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주 삼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단에서 또 싸움이 터졌다.

    이번전투에는 팔팔한 젊은선생과 나이지긋한 선생이 뛰여들었다. 전쟁은 시작부터 백열화되였다. 오가는 대포알을 보면 “건달작가”라느니 “류망시인”이 어쩌구 저쩌구… “네따위가 아무리 많은 책을 써낸들…”, “개방귀같은 헛소리를 작작 줴쳐라!”… 나는 생각하기를 쟁명은 어디까지나 좋지만 싸움은 말리는게 도리라고, 문단에서 이런풍기는 극복하고 단결을 도모해야함이 마땅한것 아니겠는가… 하여 이런글을 쓰게 되였다. 나는 중국조선족작가선생들의 단결된 힘과 노력으로 중국조선족문단이 더욱 아름다운 화원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2000.10.1

    후기: 인터넷에서 우리글 “조글로”에 들어가면 중국조선족작가넷을 만날수 있다. 나는 이 무대를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거기에는 댓글광장도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활무대이다. 거기서 백가쟁명을 보면 학습할점이 많다. 그런데 때로는 비문인적, 비지성인적, 인신공격, 인신모욕… 댓글을 보게된다. 나는 이런 댓글을 올린 선생들께서 자신의 자존심절반만큼 다른 선생들을 조금 존중하는 배려를 하였으면 좋지않겠나… 참고로 건의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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