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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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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절 점경
2018년 05월 25일 14시 55분  조회:519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청명절 점경
                                                                                                                 회령
천기의 조화를 변화무쌍하여 대중할수 없기에 신비스럽다고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오묘하고 복잡다단하여 알기 힘든것이 인간세상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하늘의 마음

춘추시대에 있은 일이다.

진나라 제후에게 중이라는 총명이 과인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파쟁의 암투에 걸려 중이는 사세부득 외국으로 도망하게 되였다.

중이는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망명살이를 했는데 그때 그를 따라다닌 측근들 가운데는 개자추라는 충신이 있었다.

어느해인가, 한번은 중이가 고기를 몹시 먹고싶어 했는데 어데서도 고기 한점을 얻을수가 없었다. 그때 개자추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자기의 다리살을 베여내서 대접 하였다. 중이에 대한 개자추의 충성심은 이렇게 극진 하였다. 얼마후 이사실을 알게 된 중이는 몹시 감동하였다.

중이는 타향살이 10년만에 귀국을 하고 강산을 차지하게 되였는데, 그가 바로 진문공이다.

진문공은 진나라 임금으로 된후 자기가 망명살이를 할때 따라다니며 환난을 함께 한 신하들에게 그공로에 따라 상을 주었다. 그런데, 백골난망의 개자추를 깜빡잊고 빼놓을줄이야?! 진문공은 천추에 한이 될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든 것이다.

개자추는 자기와 진문공의 인연은 이로써 끝났다고 인정하고 섭섭하고도 슬픈마음을 안고 로모를 업고 면현의 면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 갔다. 그는 거기서 막을 짓고 고생스레 살았다.

태평성대 어느 화창한 봄날에 진문공은 그젯날의 공신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즐기다가 문뜩 개자추를 생각하게 되였다.

진문공은 자기의 실수를 연신 크게 한탄하면서 제때에 한마디 귀뜀도 하여주지 않은 신하들을 몹시 책망 하였다. 연회는 기분없이 파해지고 신하들은 모두 무안해 하면서 헤여졌다.

진문공은 사람을 여러번 파견하여 개자추를 찿게 하였다. 끝내 개자추의 행적을 찿아 낸 진문공은 신하들을 보내여 그의 입궐을 초청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개자추는 진문공의 호의를 거절하고 더 깊히 숨어 버렸다.

진문공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개자추를 데려올수 없으니 한 꾀를 생각해 내였는데, 그것은 면산을 둘러싸고 불을 놓는 것이였다. 산에 불이 붙으면 개자추가 뛰여 나올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청명전날에 놓은 불은 련속 3일간이나 면산을 태우고 마감날 오후에야 꺼졌다. 말끔히 타버린 면산은 수색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수색대는 깊은 골짜기바닥에서 로모와 함께 큰 버드나무를 끌어 안고 타죽은 개자추의 시체를 찿게 되였다.

진문공은 너무도 억이 막혀 대성통곡을 하면서 그날은 우선 개자추 모자를 감장하고 간단히 제를 지냈다. 제례가 끝나자 하늘에서는 난데없이 갑자기 봄비가 수루루ㅡ 내리는게 아닌가?!

진문공은 궁궐로 돌아간후 성지를 내리여 개자추에게 현후를 추봉하고 면현을 개후현으로, 면산을 개후산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나라적으로 면산에 불이 붙은 그 3일간에는 불을 쓰는것을 일체 엄금하고 한식을 먹게 했으며 3일째 되는 날에는(개자추를 감장한 날. 한식절.) 고인들의 묘소에 성묘를 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그때가 되니 진문공이 새삼스레 몹시 비통해 한것은 물론이고 개자추의 성묘를 친히 성대히, 정중하게 거행한것은 여기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날 진문공이 성묘제례를 마치고 천사만사로 끝없이 무량한 감개에 잠겨 서 있는데, 방금까지도 말끔하던 하늘에서 작년처럼 또 봄비가 수루루ㅡ 내리는 것이 아닌가?! 진문공은 “하늘이 내마음을 알아 주는도다.”하고 길게 탄식하였다.

그후에도 역시 해마다 그랬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이 진문공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런것이라고도 하고 개자추의 유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또 어떤사람들은 진나라 조정신하들의 야박한 인심에 대하여 하늘이 유감해 하는거라고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면산이 불에 탈때 비를 주지않은 하늘의 처사에 대하여 백성들이 원망하는 심정을 하늘이 사과하는 것이라고도 하며 그래서 민심을 천심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무정한 세월은 아득히 흘러가고 진문공의 어명도 지금은 형편없이 와전되였다. 간사한 자들의 작간으로 3일간의 금화요 한식이요 하는것은 언녕 오간데 없고 정작 한식날에는 비가 오며 일기가 불순하니 성묘를 청명날 혹은 그 전날에 에때워 치운다. 하여 지금은 한식절이 청명절로 바뀌여 버렸다. 이런 사정을 고인들은 아마 모를것이다.
우에 정책이 있으면 아레에서 대책을 대는 간교한 자들이 백성을 기만하고 하늘과 고인을 우롱하지만, 어찌하랴?! 민심은 천심에 닿아 해마다 한식날이 되면 하늘에서는 어김없이 봄비를 수루루ㅡ 내리니…
 
              까마귀떼들

이곳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데다가 여러개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오지의 작은 진이여서 대부분 사람들이 상호간에 비교적 익숙히 알고 있다. 그들은 거지반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토장을 하기에 진 정부에서는 일찍부터 원견성 있게 공동묘지를 지정해 놓았다. 근래에 어떤집들에서는 시구를 백여리 밖에 있는 시가지로 가지고 가서 현대식으로 화장처리를 하기도 한다.

청명절이 되면 총총한 봉분들 사이에 사람들이 가득 널려서 쓸쓸하기 그지없던 북망산이 일종의 특수한 활기로 가득 차 넘친다.

워낙 자고로 인간세상에는 별이별 희한한 일이 많은데 청명절의 북망산에도 구경거리가 많다.

나는 부친의 묘소의 사초를 마치고 성묘하려 온 몇몇친구들과 반갑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였다. 오늘의 날씨는 유난히도 화창하다.

갑자기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뿌르릉 씨르릉 줄쳐 드달려 오더니 저쪽 혼자 떨어져 있는 묘옆에 가서 여기 저기에 적당히 정차를 하였다. 이어 텅! 팅! 차문이 여닫기며 내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니 진 부서기 쑹가네 제절들이 였다.

쑹서기 부친은 작년에 사망하였는데 자녀가 적으만침 아홉이나 되여 이곳에서는 구형제패거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비록 공부는 크게 못했으나 지금 모두 괜찮게 출세를 해서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잘 살고 있다.

오늘 아버지 묘에 성묘를 왔겠는데 피뜩 보아도 잡도리가 웬간한 기세가 아니였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 된 초점에서 쑹서기네는 성묘행사를 시작하는데 그 배포유한 거동을 보면 자못 긍지와 자호감을  느끼는것 같았다.

우선 집체우사문짝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묘비를 정중히 내리우고 어데서 생긴것인지 화환 몇개를 조심히 내려 놓았다. 다음은 와당탕! 퉁탕! 기초돌이며 벽돌, 세멘트판이며 석회, 세멘포대를 부리웠다. 그리고 삽, 곡괭이, 망치, 물통따위 연장들을 든 일군들이 우르르 뛰여 내렸다.

쑹서기와 무슨장자가 붙은 동생 몇은 건축현장에 시찰을 나온 령도간부의 풍모로 근엄하게 서서 그 광경을 넌짓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진 건축대에서 대장인지 뭔지를 해 먹고 있는 여섯째만이 꿍톨과 무슨종이장을 펴들고 들여다 보며 뭐라고 말하며 분주히 돌아쳤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특히 령도들이 친히 보는 앞에서 일손을 잡은 일군들은 성수가 나서인지 솜씨가 제비같이 날랬다. 20여명이 단꺼번에 달려붙은데다가 여섯째와 꿍톨의 신칙까지 엄하다보니 쑹령감의 묘는 삽시간에 “릉묘”로 일신하였다. 이고장에서는 천지개벽이래 처음 보는 일이였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혀를 내 두르며 연신 찬탄을 금치 못해 하였다. 쑹서기네는 간단한, 보통일이라는듯 우선우선한 표정들이 였다.

“릉묘”건설이 끝나자 맵짠 새납소리와 폭죽소리가 한바탕 들썽하는 가운데서 쑹서기네 형제들은 봉분에 뗏장을 올리였다. 뗏장은 일군들이 사처로 뛰여다니며 떠 왔는데 봉분에 입히는 일만은 쑹서기형제들이 경건한 태도로 친히 하였다. 그사이 일군들은 꿍톨의 지휘하에 아이들의 키 만큼한 소나무를 여러구루 뽑아다가 “릉묘”담장 밖으로 옮기느라 열성을 다 하였다.

“릉묘”는 규정이고 뭐고 상관없이 터를 넓직히 차지했다. 묘지기 왕가는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창발정신을 발휘 했는지 하여튼 작년에 쑹령감을 여기에 매장한후 그 주변에 다른 묘소는 일률로 쓰지 못하게 하였다. 묘를 쓸때는 반드시 왕가가 비준하는 자리에 감장을 해야 하는데 묘와 묘 사이는 전후좌우가 먹줄을 친듯히 가쭌하고 정연한것이 마치도 군대 대렬 같았다. 작년에 동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쓴 쑹령감의 묘는 마치도 무리에서 쫓겨난 닭처럼 외롭고 가련해 보였는데 오늘은 사태가 급변하여 열병부대 앞에 선 장군의 지휘차처럼 위풍이 름름해 보였다.

사전의 제반 일들이 결속되자 이번에는 장중한 추도곡소리가 높히 울리는 가운데서 성묘제례가 진행되는데 그것은 신, 구례식이 범벅식으로 혼합이 되여 과연 볼만한 정경이였다. 사진사와 록화촬영사는 그 심원한 의이가 있는 력사적 귀중한 장면들을 포착하느라 바삐 돌아쳤다.

쑹령감은 한뉘 막로동으로 고생을 했는데 도둑질 하는 버릇이 있어서 생전에 평판이 좋지 못했는데 죽어서 자식들 덕에 호강을 하는 셈이 였다.

쑹서기네 성묘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운전수 몇이 우리네 좌석으로 와서 이야기에 끼여 들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오늘 이 행사에 동원이 된 모든 비용은 다 “부조”에 의한것이고 이제 내려가면 “부림문술집”에서 연회를 먹는데 그것도 몇개 식당에서 “약소한표시"로 차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제 한밥 잘 먹겠노라고 하면서 우리가 권하는 술잔을 사양하였다.

술에 거나해진 한 친구가 크게 감동이 되여서 시인보다 더 격정에 넘쳐 말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자들이군! 망할놈들! 나중에는 죽은 애비낯짝에 까지 똥칠을 하며 지랄이네. 엑, 퉤! 고수레ㅡ”

그는 그쪽에 대고 술 한잔을 쫙ㅡ 뿌렸다.
 
              망나니무리들

술이란 묘한 물건이다. 한순배 더 돌고나니 좌중의 이야기는 더욱 활기를 띄였다.

“참! 전대미문의 경탄할 일이란 말일세. 저ㅡ기, 우리어머니 산소 곁에 두칠령감 노친네 산소가 있는데 그것참, 묘하더란 말이요.”

“무스게?”

좌중의 흥미는 대뜸 말꼭지를 뗀 친구에게로 쏠리였다.

“두칠령감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지않소? 그런데 그들이 지에미 산소 성묘를 딱 삼분의 하나씩 하는데, 그 경계가 38선보다도 더 엄격하더란 말이요. 하ㅡ 그런데 재작년 추석에 막내가 와서 제몫의 벌초를 하고 간후 작년부터는 한놈도 오지 않더란 말이요. 하ㅡ”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우?”

“왜 모르겠소? 금방 곁인데. 전해에 막내가 남겨놓은 쑥이 그대로 자라서 오늘 와 보니까 키들이가 됐는데, 막내 몫도 애들키만큼은 되고… 마치도 더벅머리를 한쪽만 갂아 놓은것 같아서, 너무도 보기에 않돼서 오늘 내가 벌초구 가토구 한꺼번에 다 해 버렸소.”

“술은 부었소?”

“제대로 다 했소.”

“참,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군. 그런데 두칠령감두 작년인가? 사망하셧지? 로인의 산은 어드멘가?”

“산이 다 뭐요. 당날로 날려 보냈는데,”

……

두칠령감 먼저 장기 지병으로 누워있던 로친은 끝내 령감 먼저 사망했다. 삼형제는 어머니의 치료비, 생활비 등 소비로 해서 하루건너 싸움질을 하며 동네까지 부산하게 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한후 그들은 어머니의 묘소관리를 세몫으로 나누어 했다. 처음 얼마는 돌개돌이로 하는것 같았는데 그후에는 분공제로 하다가 이젠 아주 파산을 해 버린것이다.

로친이 사망한후 두칠령감은 근근득식으로 고생고생하며 죄롭게 살다가 작년겨울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였다. 어느날, 드문드문 놀러다니던 로인이 발견해서 알았던 것이다. 삼형제는 아버지를 화장으로 날려보낸후 집을 팔아 나누어 가지고는 완전히 남남이 되여 버렸다. 원래는, 큰아들이란 녀석이 집을 손자에게 물려준다고 했다며 혼자 삼키려 했는데 증거가 없어서 무효가 되고 셋이 나눠 가졌다. 큰아들은 법원놀음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동네사람들과 증명을 서 달라고 하기까지 했는데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두칠령감이 그런말을 하는것을 들은 사람이 정말로 없었다.

이때, 저쪽에서 돌연히 박장대소하며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좌중의 시선은 일제히 그쪽으로 쏠리였다. 그곳에서는 10여명의 남녀가 빙 둘러앉아서 술판을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제찬소물을 한마당 질펀히 펴 놓았는데, 한쪽에서는 젊은녀자 둘이 양뤄촬을 부지런히 구워대고 있었다.

지금은 뚱뚱한 젊은이가 넥타이를 펄럭거리며 뭐라고 하는데 좌석에서는 손벽을 치며 그 야단들이 였다. 이어 뚱보가 노래를 하는데, 한 사내녀석은 녀자를 업고 묘소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었다. 사내녀석은 두손을 하늘로 뻗치고 무엇을 안타까이 호소하는 형국이고 업히운 계집은 한팔로는 사내의 목을 휘감아 안고 다른 한팔로는 사내의 엉덩짝을 연신 갈겨대는데 마치도 군대말을 채찍질 하는것 같았다. 또 다른 한 사내는 그 뒤를 따르며 술병을 들고 술을 따라 올리는 시늉을 하였다.

“어머니! 대답이 없네. 저 하늘 끝까지 업고 갈테야.” 뚱보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데 그 구절이 후렴인지 아니면 제일 마음에 드는 대목이여선지 자꾸만 되풀이를 하였다.

그곳에서는 포복절도를 하며 곁사람의 등줄기를 갈기며 흥겨워 야단법석이였지만 우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멍해 있었다.

“저런, 미친 망나니 같은 놈들이라구야! 아니? 저게, 두칠령감네 큰아들 아냐?!(술병을 든 자.) 원, 별꼴을 다 보겠네.”

“아까 내가 봤소. 어마니 산소에 왔는가고 물으니 어마니 산소는 작년부터 파산했다고 아바지두 쉬원히 날궈버리구… 오늘 가시에미 비석을 세우기에 왔다고 하더구만.”

한 친구가 그쪽에 대고 액막이를 하듯 “엑, 퉤! 고수레ㅡ”하고 웨치며 술 한잔을 쫙ㅡ 뿌렸다.
 
               백성의 마음

가는이, 오는이들로 성묘객은 련락부절이고 북망산은 사람들로 분비였다. 여기저기서 간혹씩 들려오는 구슬픈 울음소리, 파파늙으신 저 할머니, 젊고 젊은 저 아낙네 누구를 그리도 슬퍼하는고… 쓸쓸한 이곳의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누구며 절세가인은 또 누구던가?!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것이니… 에라! 만수ㅡ 조상들이 신통히도 잘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으면 북망산의 한줌 흙으로, 아니면 화장터의 한줌재를 남기고 사라진다. 유체를 영원히 보존한다는 것도 산사람을 위한것이지 고인에게는 한푼의 의이도 없는것이다…

오늘 여기로 온 사람치고 누군들 추모의 심정이 없으랴… 그런데, 아까부터 저쪽에서 할머니 한분이 외롭게 홀로 앉아서 울다가는 사설을 하고 사설을 하다가는 또 울고… 비통이 망극해 하였다.

“저 로인님은 누구신지…”

“김해방네 로친이야.”

자세히 바라보니 총총한 봉분들 사이에 끼여 있는 김해방의 분묘는 여느 분묘와 다름이 조금도 없었다. 림시로 세운 나무묘표는 다 삭아서 형체만 알리고 제단은 퇴락해서 폴싹 내려앉았다. 김해방은 2중전투영웅이다. 상급에서는 그의 묘소를 릉원식으로 잘 돌보라고 지시를 했지만 진 정부에서 대답만 하고 아직도 락실을 하지 않은 것이다. 상급에서도 사업이 바쁘다 보니 검사 독촉은 말할것도 없고 한번 외우거나 묻는 사람도 없었다.

김해방은 이 진에서 광복을 맞았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 혈혈단신 고아로 제지공장에서 원목 목도일을 하고 있었다. 광복이듬해 그는 해방군에 참군하였는데 해방이란 이름은 그때 누가 지어준 것이다. 김해방은 참군한 날부터 싸움터에서 뛰여 다녔는데 우직하고 용맹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별로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항미원조 보가위국”이 시작되기 전에 김해방의 부대는 조선으로 나갔는데 그들은 어느날 하루밤 사이에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였다. 그는 조선인민군 에서 줄곧 중기사수를 했는데, 그 육중한 물중기(막씸중기)를 따발총 다루듯 하며 힘차게 잘 싸웠다.

김해방은 부대에서 분대장 한자리도 못했지만 무슨임무를 주면 무슨임무를 억척스레 완수히였다. 그는 조선의 전후 3년복구건설까지 하고 다시 이 산골 진으로 돌아 왔다. 그에게는 그래도 이곳이 정든 고향이였다. 그는 제지공장 원목차간에서 원목 목도를 하며 그간 농촌처녀에게 장가까지 들었다.

인민공사가 실시 된 이듬해 김해방에게 조선으로부터 불쑥 전투영웅 칭호와 금메달이 전달되여 왔다. 그때, 그 희한하고도 경사스럽던 일을 이곳 사람들은 오늘도 잊지않고 옛말처럼 외우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크던 작던 간부란 간부는 우선 다 때려부쉬고 보는 판인데 김해방은 알지도 못하면서 “해방전에 혁명에 참가한 사람은 다 좋은 사람들이다.”하고 공개적으로 소리치며 집권파들을 역성들어 나섯다. 하여 그는 “보황파”라는 모자를 쓰고 반란파들의 투쟁을 받았다.

다른 “보황파”들은 몇번 두들겨 부쉬면 립장을 바꾼다고 성명을 했지만 김해방은 검정쇠심줄 보다도 더 질기고 완고 했다. 반란파들은 그를 반란파감옥에 가두고 집중해서 죄증재료를 만드는데 다른것은 너무도 빤한 것이고 오직 력사를 캘수밖에 없었다. 중점은 조선특무라는데 두었다. 반란파들은 혈안이 되여 특무증거를 찿느라고 뛰여 다녔다. 그런데, 이런 복창이 터져 죽을 노릇이라구야?! 군 정치부 당안에서 김해방이 전투영웅이며 중공당원이라는 재료가 불쑥 튀여 나올줄이야?! 군부수장들은 김해방이 지금 살아 있다고 하니 너무도 기뻐 어쩔줄을 몰라 하였다.

반란파들은 김해방에게는 인식상에서 좀 문제가 있지만 인민내부모순으로 처리한다 면서 두번째 해방을 주니까 일을 잘 하라고 하며 그를 감옥에서 풀어 놓았다. 김해방은 코방귀를 뀌면서 너들의 코나 씻으라고 소리 질렀다.

김해방은 해마다 공장에서 모범이 되며 일을 잘 하였다. 그런데 리직을 한 후 부터는 이병 저병 시름시름 자주 앓아 누웠다. 그는 공장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말며 하다가 사망 하였다. 큰병원에 가 본적도 없고 좋다는 약이나 영양제 한병 써 본적도 없다.

옛날, 진나라 개자추는 진문공에게 다리살 한점을 베여 먹인 공로로 현후의 작을 받고 한식절에 고인에게 성묘를 하는 민속을 남기기 까지 하였다.(지금은 청명으로 바뀌였지만.) 거기에 비하면 김해방에게는 릉원 한자리를 만들어 주는것이 너무도 지당한 일이다.

다시 바라보니 사람들이 뛰염뛰염 김해방의 묘소에 참배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참배를 갔다.

                                                                                                       96(병자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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