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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은 있어도 효성은 없다
2018년 07월 25일 14시 34분  조회:455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모성은 있어도 효성은 없다
                                                                                                                  회령

일전에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마주 앉았는데 안해가 웃어대며 핸드폰을 내 밀었다. 이걸 보라며, 아주 재밋다는 것이였다. 나는 핸맹이여서 전화를 걸고 받고 할줄은 알지만 다른건 모른다. 그러다보니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거, 정신이 잘못됐군.’하고 측은하게 생각했는데, 꼭 그런건 아니였다. 나의 안해는 핸드폰 박사다. 상해 가서도 핸드폰으로 장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손가락 한개로 사통팔달이 였다. 하여 나는 계발과 교육을 많이 받고 배우려고 결심 했다 그런데 지금도 유치원 정도여서 안해가 나를 많이 보살펴 주고 있다.

안해가 주는 핸드폰을 들여다 보니, 참으로 기막히게 재미 있는 록상이였다. 우리가 대학 다닐때 꼬량밥과 시래기국을 한데 담아서 먹던 대짜배기 고뿌와 똑 같은 고뿌에 욜(먹이)을 담아서 닭을 먹이는데 엄지로는 수탉 한마리와 암탉 한마리고 애기 주먹만한 노랑병아리 알록병아리가 십여마리 되였다. 그런데 재미 있는 화면으로는 병아리들은 키가 안되여 욜을 먹지 못하고 안달아 하는데, 암탉은 욜을 물어내서는 땅바닥에 놓아 병아리들이 먹게 하지 않는가?! 수탉은 고뿌에 주먹만한 대가리를 꾹 들이 박고는 그야말로 제정신 없이 욜을 먹어대고 있었다. 수탉의 가슴팍 밑에서 안달아 하던 서너마리 병아리들은 부성애에 실망하고 격분하고 어미곁으로 쪼르르 달려 갔다. 그놈들이 오자 암탉은 특별히 그들에게 욜을 물어 주었다. 수탉 곁에 있던 병아리들이 부성애에 실망하고 격분 했다는건 그들이 수탉의 종아리와 발을 쪼아놓고 엄마쪽으로 “기이”하는 행동에서 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탉은 부지런히 욜을 먹어대고 있었다. 암탉의 모성애는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병아리들은 뱅글뱅글 돌면서 어미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놈들의 거동도 너무 신통했다. 글쎄! 한입 먹은놈은 물러서고 다음놈이 먹고… 그러는게 아닌가?! 하, 고것 참!... 아이때 나도 우리집 마당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적이 있다. 그날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닭이 독수리와 결사적으로 싸웠는데, 우리집 검정개(새끼를 낳은지 얼마간 됐었다.)도 합세를 해서 독수리를 물리쳤다.

우리는 웃으며 감탄하며 록상을 반복해서 보았다 누가 제작한 작품인지 너무도 생동하고 진실하고 고상하고 예술적이고 흥미진진 하면서도 교육적이여서 참말 고맙고 감사했다.

짐승의 모성애도 숭고하지만 인간의 모성애는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위대하고 강렬하고 강대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에서 제일 선천적인 훌륭한 정이다. 나는 이전에는 녀성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녀성숭상주의자다. ㅎㅎㅎ.

그날 아침후에도 나와 안해는 록상에 대한 감상을 말하며 다시 보기도 했다. 그러던중 우리는 저도 모르게 북경서 목격한 한 사실을 회고하게 되였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도 충격적이 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들집에서 손녀애를 돌보고 있었다. 손녀애가 나서부터 고중갈때 까지 우리는 여러해를 북경에서 살았는데, 옆집 즉 이웃집은 절강에서 온 한족 장씨 였다. 장씨네는 형제자매가 여덟인데 상당한 부자인것 같았다. 호주인 장복은 아들로서는 막내고 항렬로는 여섯째라고 하였는데 아버지는 이미 작고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아이는 소학생 오누이가 있었다. 장복의 어머니는 성이 진씨 였다. 진씨도 우리처럼 “후근부장”이였다. 그는 여덟자식을 돌보며 “전근”해 다니다가 여섯째네가 곧 샛째를 낳게 되여 다시 여기로 “전근”해 왔다고 하였다. 풍더분한 로친네가 무던해 보였는데 나이는 우리보다 네살이 위 였다. 우리두집은 아주 화목하게 치우재를 (거래하다. 사귀다.) 하였다.

장복의 셋째아이(녀자애)가 네살 되던 해다. 초겨울인데 어느날 진씨가 풍을 일궈 풍대인민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에서 치료를 잘 했는지 아니면 본래 풍울 그정도로 맞았는지 진씨는 죽지 않고 두어달 후에 집으로 실려 왔다. 우리가 볼바에는 갈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것 같았다. 진씨는 전혀 운신을 못했다. 장복은 이미 전탁보모를 구해놓고 있었다. 우리는 장복내외가 효성을 제대로 한다고 감탄하였다.

그해 음력설이다. 장복의 형제자매들이 우르르 륙속 모여 오는데 아이들 까지 20여명은 되는것 같았다. 장복이네는 집이 커서 우리집 방을 쓰라해도 괜찮다고 하였다. 여기서 요점만 말한다면, 후에 알았지만 그들이 어머니가 풍을 맞아 넉달이나 되여 이번에 처음으로 이렇게 모여 온 것은 부담문제를 담판하기 위해서 였다. 물론 어머니도 한번 보고 겸사겸사 해서 왔겠지.

3, 4일 지나니 모두가 돌아가는것 같았다. 어느날 장복이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나간후 우리는 진씨를 보러 갔다. 집에는 발목을 접지른 큰애가 있었다. 보모가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진씨의 방에서는 악취가 정말 지독했다. 보모는 설쇠려 가고 장복은 어머니 시중을 건성으로 했는지… 우리는 모르는척 내버려 둘수는 없었다…

진씨는 풍을 맞았지만 정신만은 말짱 했는데, 그날 진씨는 아이처럼 여러번 흑! 흑! 흐느껴 울면서 신세 한탄을 끝없이 하였다. 듣지 않을수도 없고 듣자니 들을수록 기가 막히고 원통 하였다.

진씨부부는 산전수전 소갈데 말갈데 가리지 않고 년년생의 여덟자식을 키워냈다. 그들부부는 번갈아 가며 비렁뱅이업(거지)을 하고 지어는 바다로 나가 밀수를 하기도 하며 그야말로 천신만고를 다하여 자식들을 키웠다고 하였다. 남편은 밀수길을 트자 거기에 열중하다가 그만 풍랑으로 죽었다. 아버지의 목숨으로 자식들은 한밑천씩 잡고 지금 살만하게 되였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에 모여들어 계속 싸우다가 뿔뿔히 달아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장복은 어머니 생활비를 한달에 2천씩 공평하게 안자고 주장하고 형제자매들은 너네집에서 고역에 시달리다가 풍을 맞았으니 당연지사 두말할것 없이 네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몰아 부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이며 원칙이며 인간의 도덕이며 도리며 량심이며… 많은 말들을 하며 밤낮 시비를 하고 싸우다가 헤여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풍을 맞았으면 제꺽 죽을게지 살아가지고서는… 그만 살았으면 잘 살았지… 하며 에미가 빨리 죽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시비가 없더라고 했다. 돌아갈때 자기를 들여다 본 자식은 손군들 까지도 한놈 없었다고 하였다. 자식들의 얼굴은 오든날 한번씩 보았지만 손군들은 보자고 불러도 방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끝내 귀여운 고것들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진씨는 “사람이 늙으면 곱다는 사람이 없다.”느니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느니 하며 자식들의 부담으로 되지말고 이젠 어서 죽었으면 제일 좋겠으나 셋째아들과 막내딸이 가슴에 걸린다고 하였다. 다른 자식들은 다 근심 걱정 되는것이 없으나 셋째는 상처하고 딸을 데리고 홀애비로 살고 있고 막내는 리혼하고 딸애와 함께 혼자 사는데 그것이 자꾸 가슴에 걸리며 아프다고 하였다. 우리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글의 제목에 “모성은 있어도 효성은 없다”고 한것은 진씨네를 두고 한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그런건 아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나의 장모님의 생신일이다. 이번 생신은 장모님이 95세가 되는 큰 경사여서 우리는 온 집 식구가 출동 하였다. 장모님의 생신은 그야말로 성대 하였다. 생신후 아들과 며느리는 사정으로 이틀후에 돌아가고 우리는 고향 연변에서 한달거이 더 놀았다.

북경으로 돌아갈때 우리는 장모님의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큰절을 올렸다. 장모님은 우리 부부의 손을 잡고 끝내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다… 떠날때 안해는 동생들에게 백당부를 하였다. 어머니가 편치 않으면 조금도 지체말고 즉시 전화를 하라고… 우리는 아버지 때도 그랬고 그래서 림종을 지켜 드릴수 있었다. 뱅기안에서 안해는 어머니의 옛말을 끝없이 하였다. 어떤것은 나도 잘 아는 것이지만 들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감격이 느껴 졌다. 주정뱅이 시아버지와 풍을 맞은 시어머니를 16년을 하루같이 욕창 한번 없이 깨끗하게 모셧다는 장모님이시다. 안해의 형제자매는 모두 아홉인데, 안해가 맏이고 그들은 몽땅 출세(국가간부)를 했다. 그젯날 산골농촌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의 가시집은 마을에서 특등 가난뱅이 였지만 장모님은 “모범며느리”, “모범학부모”로 상장이 많았다.

내가 장인과 장모를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고 감탄하니 안해는 동감을 하면서도 처연한 기색이였다. 그렇다. 장인님은 칠년전에 돌아가셨고 장모님의 년세는 백수에 가까우니… 로인님들의 일을 어찌 알랴. 그래서 안해는 처연한 심정인가 보다…

우리가 북경으로 돌아 와서 어느날이다. 복도에서 장복의 안해를 만났는데, 퍼퍼의 문안을 하였더니 그는 해짝 웃으며 “쓰라!”하였다.(69세) 우리는 더 긴말을 하지 않았다…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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