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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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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2021년 05월 10일 13시 28분  조회:1447  추천:1  작성자: 회령
     수필
                                              형제
                                                                                                               회령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가만히 살펴보면 나쁜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고속철건설에 들어간 토지보상금 100여만원을 놓고 밭임자인 애비와 에미는 울기만하고 4남매는 동네를 부산히 굴며 한달여 밤낮 싸우다가 끝내는 법원놀음을 하고 뿔뿔히 헤여졌다는둥, 시장이요 서기요 하며 삐까뻔쩍 잘나가던 누구, 누구네 아들은 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갔다는둥, 몇억, 몇십억을 꿀꺽해 가지고 내뺀 도둑놈이 2백놈은 넘는다는둥… 혀를 찰 나쁜소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말은 바른대로, 지금 배금주의와 리기주의가 악렬한 상태인것만은 사실이다. 주변의 서민사회를 보더라도 배금주의, 리기주의가 갖은 악행을 다 피우고 있다. 변치말고 한번 잘살아 보자고 맹세를 다지며 돈벌이를 떠났든 남편(안해)이, 가짜리혼이요 가짜결혼이요 하며 부둥켜 안고 한없이 울다가 비장한 결심을 하고 돈벌이에 나섯던 가정이 “천연록색”대로 원생대로 온전한것이 몇프로가 될가… 욕심이 둥덩산만해서 산돼지 잡으려다가 집돼지 잃고, 게고 구럭이고 다 잃은 사람이 어디 한들뿐인가… 뢰물, 탐오, 사기, 협잡에 걸린사람, 일확천금몽으로 망한 사람, 몸팔고, 고리대, 도둑질, 도박질, 강도질하고… 패가망신한 사람이 적은가…

지금은 경제건설시대라 돈벌이는 열심히 해야하지만 심중히, 정직하게 해야한다. “불이지재”에 손을 대면 큰일이 난다. 경제활동에서는 꼭 “호혜호리”원칙을 지켜야 한다. 량심이 바르면 그림자가 곧고 발편잠을 잘 수 있다…

언귀정전, 나는 최근에 너무도 희한한 소문앞에서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순덕이네와 우리는 작은 산골 향에서 17년을 한동네서 살았다. 순덕의 아버지는 그때 공사(향)간부로서 당위서기를 했고 나는 공사위생원의 젊은의사였다. 우리는  공사소재지와는 5리남짓 떨어진 부흥촌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하다보니 걸어서 출, 퇴근을 하는 최서기와 나는 함께 다닐때가 종종 있었다. 나에게 부벌이 되는 최서기는 어떻게 좋은 의사로 될것인가에 대하여 자주 묻기도 하고 조언도  잘 하여주었다. 그는 나에게 령도간부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여러가지 도리를 알려주었다. 부모형제와 부부, 자식간에, 친척, 이웃간에 어떻게 처사를 해야하며 단위에서 동료지간에는 어떻게 해야하며 우리공사처럼 현병원과 200여리 떨어지고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는 위생원의 역활과 의사들의 능력이 매우 중요하기에 의덕과 의술을 부단히 제고하며 중, 서의를 결합하며 다면수가 되여야 한다는둥, 애국위생운동을 잘 전개하는것이 중요하다는둥, 자기의 정치사상각오를 부단히 제고하기에 노력해야 하며 인격수양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는둥… 대학선생급의 수준이였다.

나는 최서기를 정치사상적으로, 인간적으로 믿고 존경했으며 좋은분이라고 인정하였다. 그와 나는 땔나무철에는 함께 나무하려도 다녔고 채마전이며 집이영을 이을때면 최서기는 나를 배워주며 도와주었다. 우리는 망년지교로 가끔 술잔도 나누군 했다.

최서기네는 7남매를 두었는데 맏이가 순덕이다. 그리고 순덕의 아래로 줄줄이 딸이 다섯이고 막내가 순보다. 안해는 위염, 신염, 빈혈등으로 신체가 매우 허약한 장기환자고 농촌호구였다. 아이들도 모두 농촌호구고 시내호구로는 월급을 받는 최서기 혼자였다. 우리집은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녀동생 하나, 나와 안해는 신봉쟁이로 세살짜리 아들애가 있었다. 우리두집은 남남이다보니 형님 동생이라느니 삼촌이라느니 아재라느니 하지는 않았으나 허물없이 화목하게 지냈다. 그때세월,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다 가난했지만 최서기네는 마을에서 제일 가난했다. 허구한 날 량식고생, 입을고생, 병고생으로 쪼들렸다.

최서기는 군중태도가 좋고 사업작풍이 좋아서 “토개간부”라느니, “연안간부”라느니 하며 호평을 받았는데 현에서 모범당위서기라고 하였다. 산골사람들은 최서기를 “사람이 좋다!”고 하였다. 그렇던 최서기가 비명횡사를 할줄이야?!......

최서기가 죽은날의 그 참담하고 비참하던 정경은 일구난설, 잊을수 없다. 시신을 웃켠으로 놓고 아주머니는 기절해서 대대(촌)위생소 의사가 링겔을 달아놓고 애들은 이리저리 구들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때 순덕이는 나이가 18살이고 순보는 7살, 형제는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순덕이는 덕, 지, 체가 훌륭해서 초중을 졸업할때 현성에 있는 한족고중에 추천생으로 뽑히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폭발했기에 그는 고중문앞에 가보지도 못하고 초중가방을 벗은 그날부터 생산대(촌민소조) 일에 나섯다. 아래 녀동생 다섯은 초중이며 소학교에 다니다가 모두 학교를 그만두었다. 순보는 아예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매일 빠짐없이 생산대일이며 집안일을 하고 엄마는 앓아누웠다.

무정한 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딸들은 다 시집을 갔다. 순덕이가 녀동생들을 다 자기가 책임지고 시집을 보낸후에 자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고집해서 어머니는 어쩔수 없었다. 하다보니 순덕이는 29살 로총각이 되였다. 그간, 순덕이는 순보를 초중과목까지 꾸준히 배워줬다. 순보의 글눈도 비상히 밝아서 형제는 고중과목까지 자습을 하였다. 유감이라면 순덕이가 그간 코병치료를 하지못한 것이다. 코안에 살이 살아나면서 코로는 숨을 쉬지못하고 입으로 숨을 쉬는데, 그 괴로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순덕은 수술비를 장만하려고 겨울마다 생산대 김대장을 따라 목재판 민공으로 부업을 갔다. 그러나 번마다 어머니와 딸들의 일이 더 급하게 닥치군해서 자기병치료는 명년으로 미루군 미루군 했다. 

순덕이는 아버지문제가 정책락실이 되여 공사 중심공소합작사(상점) 보조회계로 취직을 하게되였다. 그후 인차 주관회계로 되였다. 그는 이미 다년간 생산대회계를 한 경력이 있었는데, 현공소합작총사에서 그의실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보았든 것이다. 이듬해에는 코병도 치료했다. 순덕이는 너무도 기쁘고 좋아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것이 코로 숨쉬는것이라고 하며 자랑하였다. 그후 순덕이는 이웃공사 중심공소사에서 영업원을 하는 처녀에게 장가까지 갔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몇해후 지구공소합작총사에서는 공소사간부학교를 설립하고 학생모집을 하였다. 모집에서는 공소사직공가족을 우선으로 했다. 순보는 일등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3년후 그는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웃향 중심공소사에 직방 주관회계로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두해후에는 함박꽃 같은 산골처녀에게 장가를 갔다.

개혁개방정책과 시장경제환경은 시집간 딸들이 모두 활개를 치며 잘살게 하였다. 한결같이 워낙 똑똑하고 부지런한 그들은 때를 만났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시가지에 들어가 나름껏 자영업을 하였는데 사엄이 잘되고 있었다.

그간, 순덕이네는 오누이를 보았고 순보네도 아들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로망끼를 보이다가 아주 넋을 놓았다. 하여 순덕의 안해는 앞당겨 내부퇴직을 하고 가무로 들어앉았다. 순보네는 공소사의 불경기로 월급을 제때에 받을수 없는 상황이 점점 더 엄중해 갔다. 순덕의 내외는 순보네 두살짜리 애를 안아오고 순보내외를 한국로무로 보냈다.

순덕이네와 순보네가 그담부터는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같은 평범한 일상이여서 길게 말할것은 없다. 구태여 한마디를 보탠다면 그들형제는 “열심히 살았고 서로 극진히, 진심으로 관심하며 사랑했다.”는 것이다.

먼저 순덕이네를 보면, 순덕의 안해는 치매가 본격적으로 심해가는 시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가장 큰 일이고 다음은 순보네 아이까지 세아이들을 거두는 일이였다. 그러기를 6년후에는 시어머니가 풍을 맞아 아주 운신을 못하며 자리에 누웠다. 어페긴 하지만, 시어머니가 풍을 맞은후 순덕의 안해는 한시름을 놓게되였고 부담은 퍽 쉬워졌다.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이젠 식사를 시키고 위생을 시키고 욕창을 예방하면 되였든 것이다. 천방지축 헤덤비기에 순간도 눈을 뗄수없던 어제와는 달리 시어머니는 갓난애기처럼 조용히 자는것이 주로였다. 순덕의 부부는 그런 어머니를 보살피며 얼마나 쓸쓸하였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욕창 한곳도 없이 8년을 조용히 누워 계시다가 역시 조용히 서산으로 가셨다. 복잡하고 할일이 많은것은 아이들이 였다. 옛날에는 아들 셋을 키우면 입이 삐뚤어 진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아이 하나를 키워도 임이 영 삐뚤어 진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은 세상이 넓어지고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옛날보다 백배는 더 복잡해 졌기 때문이다. 다행한것은 부모를 닮아선가, 가르킴이 좋아선가 아이셋이 모두 잘 자라 주었고 대학공부까지 하였다.

순보부부는 한국에 일하려 간후 형님네 부탁을 깊히 명심하며 실천하였다. 그것은 “부부가 꼭 함께 한집에서 살며, 힘에 맞는 일자리를 잡은후 참답게 열심히 일하며, 딴눈길을 팔지말라.”는 세가지 부탁이였다. 순덕부부는 돈벌이에 나선 많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이런 경험과 교훈을 찿아 이같은 부탁을 동생부부에게 엄숙히, 극진히, 각별히, 거듭 당부했든 것이다.
둘이 안고자야하는 협착하고 루추한 셋집에서 순보부부는 24년을 살며 일했다. 무슨 유람이며 구경이며 한우불고기며 쇼핑이며… 그런걸 그들부부는 자기네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들의 일로 보았다. 그들은 생일이며 구정, 대보름, 추석 등 명절날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명절이면 돈을 더 벌수있었다. 순보는 간날부터 오는날까지 줄곧 아빠트단지위생반에서 쓰레기청리일을 하는 한편 페물을 모아 팔았고 안해는 모텔청소부로 일했는데, 더럽고 힘들긴 했으나 수입이 좋았다. 하긴, 네번 일자리를 옮기긴 했다. 그것은 순보의 안해는 예쁘고 한창나이여서 돈을 내밀며 집요하게 치근덕거리는 “수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부부는 서로 이런말로 신칙하며 격려하였다. “우리부부는 한국에 돈벌러 왔지 생활하려 온게 아니다!”

세월은 쏜살깉이 지나고 순보내외는 24년만에 형님네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 순덕의 아들부부는 대련에서 미국회사에 다니는데 손자애를 낳았고 딸부부는 일본에서 산다. 순보네 아들과 며늘애기는 대학졸업후 사업단위에서 일하다가 2년전에 공무원시험에 합격되여 지금은 시정부에 출근하고 있다. 지금 바로 그들의 결혼식을 하게되여 순보내외는 한국로무를 깨끗히 정리하고 영 돌아왔다. 그들은 개선장군처럼 성수나서 활짝웃으며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형제들이 장알이 박히고 매듭진 손을 쓰다듬으며 연신 “고생했다! 고생했다!”고 말하니 순보는 “사람이 일을해서 죽는법은 없다.”고 하며 그간의 기나긴 “고난의 행군”을 한마디로 대범하게 일괄하는 것이였다. 그날저녘 식사자리에서 형제들은 몹시 서먹서먹해 하며 어색해 하는 순보네 부자를 놓고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군 하였다… 그럼, 순보부부는 얼마를 벌었을가? 이것은 선생께서 백만단위로 짐작해 보시라.

순보아들의 잔치후에 들은, 지금세상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할 너무도 희한하고 놀라운 소문은 순덕이형제가 이제부터는 실내2 층짜리 호화로운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고진감래를 맞았다. 퇴직금이 있고 보험이 있고 “용돈”도 근심걱정이 없고 사회는 날따라 좋아가고 그리고 한결같은 형제의 정!… 건강관리를 잘하며 취미생활을 하며… 유쾌하고 행복한 만년을 그들은 살게 되였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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