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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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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의 초심
2022년 07월 19일 11시 22분  조회:280  추천:1  작성자: 회령
      잡문
                                                   해서의 초심
                                                                                                            회령
 
온갖 부정부패가 란무하는 때에 정부에 “죽는것을 두려워하지않으며 돈을 탐내지 않는 간부”가 있었다. 누군가? 바로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간부 해서다. 해서는 근정애민(勤政愛民)한 간부로서 인민들을 위하여 말을하고 주장을 세웠으며 누구를 떠받들며 아첨하지 않았고 과감히 사악한 기풍과 맞섯다. 그는 령도든 동사든 친척 친우 그누구와도 정직하게 바른말을 하였다.
 
해서는 회족으로서 해남도 량산 사람이다. 네살때 아버지가 죽고 집은 몹시 가난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사씨는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해서를 공부시켰다.
 
해서는 꼭 쓸모있는 사람으로 되겠다고 맹세를 다지며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는 앞으로 국가의 간부가 되면 꼭 “언행이 일치하며, 자사자리하지 않으며, 큰소리 빈소리를 하지 않으며, 상급에 아첨하지 않으며, 다른사람을 질투하지 않으며, 자기의 결함을 감추지 않으며, 탐오절도를 하지 않으며, 인민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것이다.”고 맹세를 하였다. 이것은 해서의 초심이였다. 사실이 증명하는봐 해서는 이 초심을 일생동안 실천하였다.
 
해서가 현급공무원 시험에 합격되여 복건성 남평현에 가서 어느학교의 교장을 할때다. 당시 상급에서는 자주 시찰을 내려왔다. 시찰간부가 오면 다른교장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하였지만 해서는 공수로 읍만 하였다. 그어떤급의 시찰간부가 오던 해서는 읍만 하였다. 하여 어떤상급들은 해서의 표현에 대하여 불만이 컸지만 어쩔수는 없었다. 해서는 여긴 글을 가르치는 학교지 정부청사가 아니기에 절을 올리는 례절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정부기관에 가서는 상급에게 절인사를 올려야 했다.)
 
4년후 해서는 순안현장으로 승진하였다. 순안현은 산골로서 몹시 가난한 현이였다. 하지만 국가의 세금과 부역은 매우 과중하고 거기에 지방 탐관오리들의 갈취마저 극심하여 인민들은 그야말로 도탄속에서 기진맥진 하였다. 해서는 이런상황에 몹시 가슴아파하면서 세심하고도 엄격한 조사를 거쳐 일체 비원칙적인 것들을 일률로 철저히 취소하였다. 그리고 간부들이 신봉외에 일전이라도 비법수입이 있으면 엄격히 처리하였다. 동시에 상급의 지시라도 원칙에 어긋나는것이기만 하면 견결히 거부하였다.
 
순안에서 그는 두가지의 크게 민심을 얻는 통쾌한 일을 하였다.
 
한가지일은 호씨 대 공자를 질책한 일이다. 호공자는 절강성총독 호종헌의 아들이다. 호종헌은 대 권상 엄숭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엄숭이 뒷심이기에 호종헌은 못하는 일이 없었다. 호공자는 이런 배경이 있기에 무엇이나 자기마음대로 하였다. 한번은 그가 순안현을 지나가게 되였는데 초대소의 관리원이 자기한테 접대를 잘하지 않았다고, 졸개들을 시켜 그를 거꾸로 달아매고 호된매질을 하였다. 소식을 들은 해서는 즉시 달려가서 조사를 하였다. 그는 호공자를 호되게 질책하는 한편 졸개들을 잡아갇우고 호공자의 수천량의 은전을 몰수하였다. 연후, 호종헌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어르신님께서 지방시찰시 지시하시옵기를 주, 현들에서는 꼭 근검절약을 해야하며 환영 환송을 하거나 떠벌려 랑비해서는 않된다. 고 말씀 하셧습니다. 지금 순안에 호가라는 사람이 왔는데, 어르신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초대소 공작인원을 모진 매질을 하며 초대를 바로하지 않았다고 질책하기에 조사를 해보니 이자의 소행은 완전히 어르신님의 지시에 어긋나는봐 틀림없는 가짜라고 판정됩니다. 이에 엄하게 징벌하였사오니 어르신님께옵서 마음놓으십시요.” 해서는 호종헌의 큰소리, 빈소리를 빌미로 그에게 호되게 한방 먹인것이다. 호종헌은 속은 뒤집혀 부글거렸으나 뭐라고 떠들수는 없고 벙어리 랭가슴만 앓았다.
 
또 한가지 일은 다음과 같다. 중앙도찰원 수장인 언무경의 행차때다. 언무경은 조정대신일 뿐만아니라 권상 엄숭의 양아들이다. 언무경은 탐오수뢰는 말할것도 없고 극도로 사치하고 횡포오만 하였다. 어느한번, 명 세종황제가 그를 흠차대신 신분으로 파견하여 염정(소금 상황)을 총 시찰하게 하였다. 언무경은 처첩과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시찰을 떠났다. 그의 처는 꽃가마를 탔는데 12명의 녀자가 가마를 메였다. 행차는 호호탕탕, 굉장하고 위세가 등등하였다. 행차가 지나가는 곳 마다에서는 주, 현관원들이 흠차대신 나으리께 죄를짛지않고 잘 보이기 위하여 있는힘껏 초대를 하였고 떠나갈때에는 대량의 금전과 재물을 례물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인민들에게 풍기였다.
 
언무경이 순찰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갈때다. 마침 엄주부를 지나게 되였는데 순안현은 엄주부에 속하였다. 엄주부 지부는 각현에 통지를 내여 흠차대신을 각별히 륭중하게 잘 영, 송(迎送)하라고 하였다. 조금이라도 소홀했거나 태만했을 경우 엄중히 처리한다고 하였다. 해서는 민페를 주지않기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않았다. 그는 언무경에게 다음과 같은 청시보고를 보냈다. “비천한 직무인 제가 어르신님의 포고를 보았는데, 어르신님께옵서는 영,송을 간단히 하라고 하셧고 어르신님께옵서 지나가는 곳마다에서는 극히 호화롭게, 륭중하게 영송을 했다는데, 우리순안현은 십분 가난한 고장이여서 어떻게 해야하겠는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르신님께옵서 가르켜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언무경은 대단히 불쾌했지만 자기가 낸 포고를 위반할수는 없고, 이제 해서의 처사를 보면서 흠집을 잡으면 호되게 결산하리라 마음 먹었다.
 
포고대로 하라는 언무경의 회시를 받은 해서는 하루먼저 선발대로 온 간부들이 흠차대신을 등대고 날치는 것을 엄격히 제지하고 곤장을 때리였다. 흠차대신이 배로 순안에 이르자 해서는 현의 간부 몇을 데리고 마중을 했다. 흠차대신의 일행은 큰배가 20여척이였지만, 영접하는 일행은 너무도 초라했다. 숙식도 극히 간단하고 초라했다. 이런대접을 언무경은 처음으로 당했다. 분통은 상투밑까지 터져올랐으나 트집꺼리가 없으니 발작할수는 없었다. 떠나는 날에는 숱한 인민이 동원되여 배를 끌어줘야 했지만 농망계절이여서 해서는 한명도 동원하지 않았다. 그는 현의 간부 몇을 데리고 나가서 직접 배를 끌어줬다. 하여 언무경이 아주 난처하게 하였다.
 
언무경은 앙앙불락해서 엄주부에 들르지도 않고 다른길로 북경으로 돌아갔다. 전후사연을 다 알게된 엄주부 지사는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해서는 말할것도 없고 자기도 이젠 벼락을 맞게 되였다고 락심천만이였다. 지사는 해서를 불러다 줄욕을 퍼부었지만 해서는 듣는체도 하지않았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해서를 닥달해봤자 아무 쓸모도 없고, 지사는 어떻게 하든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궁여지책으로 심복을 파견하여 례물과 돈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먹이는 한편 사태를 렴탐하였다. 썩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언무경은 해서가 괘씸하기는 짝이 없었으나 흠집을 잡을데가 없고 또 자기가 이번행차에서 뢰물을 너무도 지나치게 받았는데 그것을 해서가 적발할가봐 우려되여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세종황제에게 고자질도 하지않았던 것이다.
 
후에 해서는 더욱 승진하여 북경에 가서 호부주사(중앙의 한개 기관.) 사업을 하게 되였다. 그는 여기서 황제 세종이 미신짓거리에 빠져 정사는 뒷전이고 대신들은 황제의 비위에 맞춰 돌면서 나라와 인민의 질고는 전혀 관계치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황제에게 반영 비평한 어사 양작을 8년이나 감옥에 갇우고 목숨까지 잃을번 했다는 사실, 그로부터 20여년 황제에게 바른말을 간하는 신하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해서는 한심하고 통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나라의 실정을 황제에게 실사구시적으로 반영하는 보고재료를 작성하였다. 해서는 진심으로, 간절히 세종황제가 회과자신하며 나라를 잘 다스릴것을 바랐다. 이에 많은 벗들이 그러지 말라고, 이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그를 극구 만류하였으나 해서는 듣지않았다. 그는 벗들에게 말하기를 “국가간부로서 황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나라와 인민이 어떻게 되겠는가?!”고 하였다.
 
해서는 정부에서 일하는 동향 간부인 왕씨에게 20량의 은전을 주면서 “내가 죽으면 이돈으로 나를 고향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복무원에게 “관을 사온후 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잘 위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말을 마친후 해서는 곧바로 통정사(재료를 황제에게 전달하는 기관)에 가서 재료를 넘겨주고 조방(심문실)에 가서 처벌을 기다렸다.
 
명 황제 세종은 해서가 올린 재료를 보고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재료에는 “목전 조정에는 황제의 정사가 바르지 못하고 신하가 직책을 똑똑히 알지못한다. 황제께서 20여년 조정을 관계치 않아 법규가 물러지고 관리들이 나빠지고 재정이 붕괴되고 나라가 빈곤해지고 인민들이 가난해 지었다. 가난하기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제는 태자의 성장을 관계치 않아서 부자의 정이 결핍하다. 그리고 다른사람의 비방과 자신의 의심, 추측으로 신하들을 죽이거나 욕 보이는데, 이것은 군신의 정이 결핍한 탓이다. 또 장기간 서원에 거주하면서 신을 믿고 미신놀이를 하고 약을 먹으며 장생불사를 추구하면서 궁에는 들지않고, 이것은 부부의 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모든것은 신선과 귀신만 믿기 때문이다… 황상의 착오는 참으로 많다. 페하께서 완연히 심각하게 느끼고 철저히 개정하기를 진심으로 간청한다.”라고 하였다. 명 세종은 재료를 땅바닥에 힘껏 팽개치고 책상을 뚜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빨리가서 해서를 잡아오라! 이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세님께 아룁니다. 해서는 근본 도망치려고 안합니다. 그는 재료를 올리기 전에 이미 관을 삿고 시종들을 다 가버리게 했답니다. 지금 심문실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 세종은 한식경이나 멍해서 아무말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해서의 말이 틀린건 아니였다. 그는 자기의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해서를 죽이지도 않았고 감옥에 잡아넣지도 않았고 곤장을 때리지도 않았다. 오직 언사가 불경하다고 트집을 잡고 파직시켜 버렸다. 해서는 곧바로 고향에 가 버렸다.
 
중국력사에서 해서와 같은 관원은 극히 매우 적다. (고대 하나라 국왕 하걸시절에 하걸의 숙부인 비간이 조카 하걸에게 여러번 간하여 심장을 도려내는 죽임을 당했다. 현대에 와서 팽덕회원수(공화국 국방부장)를 해서와 비겨 론한적이 있다.)
 
                                                                                                           2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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