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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증씨에 대한 생각
2022년 09월 15일 16시 46분  조회:290  추천:0  작성자: 회령
           수필
                                         포증씨에 대한 생각
                                                                                                             회령
 
포증은 중국력사에서 명성이 혁혁한 국가간부다. 많은 사람들은 예나지금이나 포증이라고 하면 아리숭해 하지만 “포청천”(包淸天)이라고 하면 “아! 그분을 말하는가.”하면서 대뜸 숭경해 마지않는다. 지금도 “철저한 포청천! 충신 간신 밝히네.”라는 노래말이 전해지고 있다.
 
포증이 재세당시 북송정권은 황제로부터 중앙급, 지방급정권과 각급간부들의 부정부패가 로골적이고 창궐하기가 짝이없었다. 거기에 황친국척, 부랑배(깡패, 흑사회), 망나니들까지 내놓고 횡행하다보니 도대체 나란지 란장판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포증이 갓 벼슬길에 들어서서 천장(지금의 안휘성 천장시)현령(현정부수장)으로 있을때의 일이다. 그는 숱한 가렴잡세를 일시에 취소하고 안건은 법과 원칙에따라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어느날, 한 농민이 안건을 보고해 왔다. 아침일찍 밭갈이를 가려고 외양간에 갔는데 소는 쓰러져 있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소의 입을 벌리고 보니 이럴수가 있는가?! 소의 혀가 뭉텅 끊기여 없어졌던 것이다.
 
포증은 농민에게 이사실을 또 누가 아는가고 물었다. 농민은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당신과 원쑤 진 사람이 없느냐고 포증이 또 물으니 농민은 그런사람은 없지만, 주변마을의 부랑배 몇이 얼마전에 소를 잡아먹자고 하며 자기를 시까슬며 지분거린적이 있다고 하였다. 포증은 농민에게 집에가서 누구도 모르게 소를 잡으라고 하였다.
 
얼마후, 불량끼가 잔뜩보이는 청년 두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아무개가 가만히 소를 잡아먹는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북송법에는 역축을 현령의 비준없이 잡으면 감옥에 잡혀갔다. 포증은 당장에서 이 청년 둘을 심문했다. 안건은 인차 파안되였다. 포증은 이 안건을 고리로 부랑배세력을 일거에 섬멸해 버렸다. 백성들이 쉬원해 하며 포증을 칭송한 일은 여기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가는곳마다에서 백성들의 리익을 보호하고 억울한 일들을 시정하였다.
 
포증이 광동 단주에서 지방수장으로 있을때다. 그곳에서는 특산물로 벼루돌이 아주 유명했다. 하여 특별히 정밀가공 정선을 하여 조정에 얼마의 수량을 상납하여야 했다. 그런데 부자와 토호, 세력가들이 이것을 명의로 백성들에게서 몇십배의 수량을 수탈해서는 저들의 리속을 챙기는것이 아니겠는가?! 포증은 이런 강도행위를 철저히 단속하였다. 임기를 마치고 단주를 떠날때 포증은 그유명한 벼루를 한개도 가지지 않았다.
 
포증이 개봉부 지부로 사업할때다. 그때 소위 나라의 수도라는 개봉부의 사회질서는 문란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포증은 사회의 질서와 치안을 바로 잡으리라 마음먹었다.
 
당시, 나라규정에는 백성들이 정부에 무엇을 고소하려면 먼저 신소국에 가서 고소장을 써야하며 그런후 그것을 일반간부가 지부나으리께 친히 가져다 올려야 했다. 이 한단락의 간단한 순서에서도 유관간부들은 백성들을 괴롭히며 뢰물을 뜯어 먹었다. 포증은 이런규정을 단번에 취소하고 정부앞에 큰 북을 세워놓게 하였다. 그누구든지 신소할 일이 있으면 북을 울리게 하였다. 북이 울리면 유관관리는 즉각 신고자를 접대하여야 했다.
 
어느해 여름, 개봉부에는 특대폭우가 쏟아졌다. 그런데 도시는 배수가 제대로 되지않아서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게 되였다. 조사해 보니 도시의 배수역활을 하는 혜민하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권세가들이 화원이며 정자며 루각, 술집 등등을 하도(河道)에 마음대로 만들었기 때문이였다. 이에, 포증은 통고를 내려 기한내에 본인이 자기것을 몽땅 철거하라고 하였다. 지부 포증이란 어떤사람인가를 잘 아는, 비록 권세가들이지만 그들은 찍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당장 철거를 하였다. 그러나 물은 여전히 잘 통하지 못했다. 그것은 황제의 가시애비ㅡ장인어른이 하도를 굉장히 길게 점령하고 이건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자기네 소유지 땅이라는 것이였다. 그는 땅문서까지 가지고 있었다. 포증은 문서가 가짜임을 밝히고 정절에 따라 그를 엄중히 처리하였다.
 
포증은 가족, 친척, 친우, 권세가… 그누구에게도 사심을 쓰지않았다. 하여 지금도 이런 노래말이 전해지고 있다. “ 뒷문거래가 쓸모없는 곳은 염라대왕과 포어른 두곳뿐이다.”
 
포증은 대관(大官. 고급간부)이였지만 시종일관 백성들과 친밀했고 근검소박했다. 얼마전에 계위한, 정사에 밝은 북송황제 인종은 그를 몹시 귀중히 여기며 중용하였다. 그러나 로고에 지친 포증은 많은 사람들의 애통을 자아내며 5년후에 세상과 하직하였다. 포증은 사망할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하였다.
 
“후대에 벼슬하는 자들중에서 탐오죄를 범한 자는 고향(老家)에 들어오지 못한다! 죽은후에는 포가 선산에 묻히지 못한다!”
 
포증씨의 후손들이 그의 유언을 얼마나 받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2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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