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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항균(楊恒均, 중국 인기 인터넷 작가) 지음 / 곽명 옮김
(본 글의 중문 원본은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www.sina.com의 블로그 채널에 실려있음)
런던의 하늘은 나의 마음마냥 음침하다. 지나가는 중간역에 불과한데다가 만나려고 생각했던 두 현지 친구는 마치 둘이서 짜고 약속한 것처럼 뿔뿔이 출장 나갔기에, 아마도 나 혼자서 하루이틀 보내야 할것 같다. 나는 공항에서 임대한 눅거리 공기청정제 냄새가 풍기는 승용차를 몰고 인적이 드문 교외로 지긋이 달리여, 마침내 한 건물 색이 바랜 카모텔에 머물렀다. 투숙후에야 여기가 맑스(마르크스) 묘지에서 차로 불과 40분 거리밖에 되지 않음을 알게 되였다.
두번째로 맑스 묘지를 찾아온 셈인데, 처음 번과 4년 남짓이 지난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때는 한무리 친구들과 떠들법석하면서 묘지에 찾아왔는데, 지금은 홀로 외롭게 왔다. 너무 대조적이다. 4년이란 시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지만 세상 물정은 이미 딴 판인데, 가장 큰 변화는 나 본신에 있으리라.
내가 반날 시간을 들여서 맑스 무덤을 우러러본 것이 우연한 것 같지만 필연적인 무엇인가 있으며, 조각상 앞에 서있는 순간에 내가 지나간 몇개월간 줄곧 이번의 참배를 위하여 준비한 것 같은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금방 북경 관광을 마치고 오는 길이며,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맑스주의(마르크스주의) 정당 – 중국공산당은 이제 곧 북경에서 제17차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하게 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일은, 내가 지난 몇년동안 여러편의 짧은 글 및 본인의 소설에서 맑스와 그의 주의라는 말만 꺼내면 무엇인가 격분의 심정을 들먹이며 내가 생각해낼수 있는 온갖 풍자적인 단어들을 모두 끄집어내여 써먹었다. 최근에 한 누리꾼 친구가 질문하기를, 당신은 도대체 맑스주의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맑스주의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 문제는 정말로 대답하기 어렵다. 알고있는 바와 같이, 나는 ‘새 중국에서 태여나서 붉은기 아래에서 자랐으니’ 학교에 입학하여서부터 대학까지 맑스주의 교육을 받았으며 줄곧 윗사람 말도 잘 듣고 공부 성적도 좋았으며, 내가 주동적으로 맑스주의를 배우지 않았다 해도 거기에 슴배여있고 세뇌되였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정치 학과를 배운 내가 대학에서 6개 이상의 맑스주의 이론 과정 공부를 하였지만 기실은 맑스주의 원작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나는 몇년전이던지 겨우 ‘자본론’ 간략본을 끝까지 읽어보았으나 알둥말둥한 상태이다. 물론, ‘공산당선언’은 여러번 읽어보았으며 이해하기에도 쉬운 편이며, 특히 서두의 그 구절: ‘한 유령이……’
지금 이 시각, 나는 맑스 묘지에서 본인이 그가 창설한 이론에 대하여 별로 알지 못한데 대하여 어느 정도 난감하였지만 그의 이론이 세계에 너무나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한데 대하여 불안감을 느꼈다. 제일 나로 하여금 조물주의 조화를 느끼게 한것은 이 자본주의를 뒤엎어 버리려고 일생의 정력을 몰부은 위인이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자본주의 나라의 땅에 묻혀있는 것이다. 이 어르신님이 자신의 이론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이 최전방에서 맑스주의 추종자들이 붉은기를 버킹엄궁전의 정문에 꼽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 어르신님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자신이 죽은후 묻힐 자리도 없기를 바라지 않고 심지어 수정관에서 끌려나오는 것을 피면하기 위함이 아닌지?
이날, 의외로 중국 관광객을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였다. 전체 묘지에 중국 관광객이 없으니 쥐죽은 듯 고요한 것 같다. 나는 여기에 조용히 누워있는 맑스의 영혼이 주위에서 맴돌아치는 느낌이 확 들며 마음은 조금도 가라앉을 수 없다……
나는 금방 북경에서 왔다. 나는 천안문광장을 걸어지날 떄, 호화롭고 패기만만한 모주석기념당에 눈을 팔지 않을수 없었고 또한 수정관에 누워있으며 공화국 호위병들이 보호하고 있는 모택동의 유체를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모택동의 황제와 같은 존귀함, 세계 정상급 부자의 화려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우러러보는 규모에 대비하면 맑스의 묘지는 너무나도 쓸쓸하고 적막하여 보였다.
만약 맑스의 재천지령(在天之靈)이 대지를 굽어본다면 아마도 자신의 묘지가 이렇게도 보잘것없지만 자기의 계승자이며 학생인 모택동의 기념당이 그렇게도 위풍이 름름한 것으로 하여 난감하기도 하고 불평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는 너무 비감해할 필요가 없다. 대영제국의 품속에 누워있는 것이 이 자본주의의 무덤꾼에게 그리도 막무가내하고 무미건조하여 보이지만 그는 이 기회를 빌려서 영원한 평화로움을 누릴수 있다.
우리는 근사한 모택동만 볼 것이 아니라 맑스의 다른 두 제자인 레닌과 쓰딸린(스탈린)을 잊어서는 안된다. 레닌은 처음으로 수정관 관안에 기여들어가서 러시아 사람들이 세세대대로 올리보고 그리워하기를 기대했던 맑스주의자이지만 그의 시체는 언녕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끌려나왔다. 레닌의 후임인 독재자 쓰딸린의 시체는 하마트면 갈기갈기 찢기울 번 하였다. 물론, 맑스주의자들은 모두 무신론자들로서 자기 손에 거머쥔 권력이 자기가 죽기전까지 빼앗기지 않고 타도당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죽은 다음 홍수,재해가 발생하고 하늘이 무너진들 별 상관이 있으랴?
그러나, 동유럽의 맑스주의자 차우셰스쿠는 운수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폭동을 일으킨 병사들에 두들겨 패여서 만신창 ‘벌집’으로 되였는바, 맑스의 제자들중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었다고 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맑스는 선견지명이 있다고 하는 원인이다. 그가 만약 영국에 누워있지 않고 그의 주의와 이론으로 정권을 성립한 나라에 누워있었더라면, 아마도 이르던 늦던 어느때인가 사회주의를 증오하는 폭도들에 의하여 그 공산당 지배자들을 죽인후에 그의 무덤도 파헤칠 것이다. 멀리 내다본 맑스는 법치를 수호하는 자본주의 영국만이 죽은 사람의 무덤이 산 사람에 의하여 마음대로 파헤쳐지지 못한다는 것을 대체적으로 보아냈을 것이다. 그의 이론으로 일구어 선 나라의 폭도들은 자기들의 조상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갈기갈기 찢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성공이라 할가, 실패라고 할가, 여하튼 지난 1세기동안, 온 세상이 여기에 누워있는 맑스와 갈라놓을 수 없으며 나와 같은 멀리서 온 노란 피부색의 중국인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13억 중국 동포들도 포함된다. 내가 생각컨대, 나는 자기의 그에 대한 태도로 하여 창피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을수도 있다. 필경, 내가 태여나서부터 우리는 여기에 누워있는 사람이 발견한 한가지 주의와 사상의 영향, 컨트롤을 받았으며, 우리의 행복과 고통, 영광, 꿈과 실망, 절망, 희노애락, 심지어 생사마저도 그와 연관이 있으니깐.
하지만, 만약 정말로 나보고 그와의 연관을 말해보라면 나는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1949년의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여기에 조용히 누워있는 그의 공로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여기에 오래동안 조용히 누워있는 그가 동방의 그 처참한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의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13억 중국 사람들이 탐구하고 있는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로 놓고보면 아직도 그와 관계가 있는지,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지, 아마도 맑스의 유령만이 우리들에게 알려줄수 있으리라.
’공산당선언’에서 언급한 ‘한 유령’ – 어느 시기인가 유럽의 상공에서 떠돌아다녔던 ‘공산주의 유령’은 일찌감치 맑스의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유럽에서 철저히 쫓겨나왔으나 이 유령은 여전히 13억 중국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수천년 문명을 갖고 있는 중화민족은 서방 인구중의 지능이 떨어지는 민족과 마찬가지로 맑스 유령의 희미한 불빛속에서 복잡다단하고도 몽롱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 몇년간, 나는 국외 학자들과 자주 중국 문제를 쟁론하였는데, 대부분 경우는 이지적이였으나 가끔 너무 격동되는 경우도 있었고 얼굴이 벌개지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함부르크의 독일학자와 쟁론하다가 내가 중국사람 일은 중국사람에 의하여 결정되여야 하며 너희들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격동된 내가 중국은 5천년 역사가 있으며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 된 시간만 봐도 당신들보다 길 것이라고 하였다…… 그 독일 학자도 만만치 않게 나서면서 비아냥거렸다. 당신들이 5천년 문명의 역사라고? 당신이 자칭하는 현대화 국가는 지금까지 우리의 백여년전의 한 이론 논자의 몇권의 책에 의하여 건립되였다. 당신들 몇천만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숙청되여 죽은 것은 우리의 한 기생집 윗층에 살던 노인이 쓴 그 몇권의 독일 사람들이 언녕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론 저작에 의한 것이다. 당신들 중화민족은 정말로 당신이 자칭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가?
그때의 쟁론으로부터 말다툼으로 번져진 일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그 독일 학자의 말은 지금도 나의 귀에 쟁쟁하다. 사회주의 국가는 확실히 지금까지 유일하게 한 이론 논자의 이론 저작에서 제출한 규정에 의거하여 설립되였으며, 이 점은 의심할 나위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 서서 그의 비석에 새긴 생졸년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부터 다시 한번 불안감이 치솟았다. 맑스의 주의와 이론은 그의 생전에 실시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별반 중시도 받지 못하였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는 그저 독특한 이론가이며 출중한 학자이며 대단한 철학가일 뿐이다. 그와 일반 이론가, 학자 및 철학가와의 차이점은 별로 큰 것도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누구도 맑스 이론의 위대함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의 학설중의 약자에 대한 동정과 배려는 역사상의 모든 이론가들을 합하여도 그의 발밑에도 닿지 못할 것이다. 맑스의 인류 최종 사회 –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구상과 기획은 더우기 획기적이며 나는 지금도 믿어마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물질 생활이 석유 생산국처럼 풍부하고 금전도 또한 땅속의 석유처럼 끊임없이 솟아나오며, 우리 모두의 사상이 원시 사회 부락의 사람들처럼 순결하고 사악한 마음이 없게 되는 날이면, 사유제를 소멸하고 가정을 소멸하고 무한히 아름다운 재산 공유, 처가 공유의 공산주의 사회는 어느때든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이러한 이론에 매혹된 영수와 인민들을 보면 그들이 만장일치로 맑스의 몇권의 책에 의거하여 하나 또 하나의 정권을 열심히 설립하는 과정에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은 도리여 선후로 인류 역사의 대립면에 서게 되였다. 여기에서 동유럽의 새로 일떠선 국가 거리의 탱크차 및 살인에 눈 한번 깜빡이지도 않는 소련 독재자 쓰딸린을 더 말하지 않더라도,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에서 저지른 하늘에 사무치는 대학살, 현재 가장 사악한 독재자인 KJI은 아직도 거기서 자고자대하면서 자기만이 가장 그럴듯한 맑스주의 후계자라고 하며, 그리고 쿠바의 카스트로는 어떻게 그의 동생 혹은 자녀가 계속 맑스주의가 그들 가족에게 가져다준 부귀영화와 절대적인 권력을 향수할 것인지를 한창 기획하고 있다……
그래 맑스의 주의와 이론이 처음부터 틀리는가? 아니면 맑스주의 이론을 높이 치켜든 자들이 사도에 들어섰는가?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해석할 방법이 없으며, 맑스주의 권위자들도 확실히 설명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나는 심지어 생각하기를, 만약 여기에 누워있는 맑스가 다시 무덤에서 헤여나와도 우리에게 이 답안을 줄수 있을지?
그가 우리에게 알려줄수 있는지? 전 인류를 해방하기로 맹세한 맑스주의, 공평과 평등을 가장 우선시하는 맑스주의가 중국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큰 나라중의 하나로 되게 한 것은 무엇때문인가? 중국 현재의 공유제가 그의 ‘공산당선언’에서 억만 인민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 공유제인가? 혹은, 그가 우리에게 무엇때문에 국유대기업과 독점 업체는 모두 한줌도 못되는 이익집단과 공산당 고급간부 자녀들의 손에 집중되였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가? 소외 계층을 최고로 관심한 맑스가 현재 제일 큰 사회주의 국가에서 소외 계층이 갈수록 많아지는데 대하여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맑스는 또 그가 뒤엎어 버리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일반 사람들이 모두 자기 손으로 투표하며 나라의 주인이 되였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북조선의 두 독재자는 후세대의 쿠바와 조선 인민들을 위하여 그들을 통치할 지배자를 물색하고 있음을 예측하였는가?!
맑스가 부활되여 무덤에서 헤어나온다 해도, 그는 대답하지 못하거나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물질 생활 수준이 올라갔으니 현대인의 두뇌는 그보다 좋을 것이며 당신들은 자체로 자기들 문제를 생각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이가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그가 발명한 주의와 이론은 여전히 중국 사람들의 두뇌를 통치하고 속박하고 있으며 건너갈 수 없는 금지 구역으로 설정되여 중국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으며 독립적인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한 생각에 불과하다.
이 모든것이 도대체 맑스의 서글픔인가, 아니면 우리 민족의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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