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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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 (강룡운9)
2007년 03월 09일 03시 59분  조회:3533  추천:130  작성자: 강룡운


                           얼음낚시 하는 사람들
     
                                                 강룡운
                                 

    조양천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강바람에 소대가리도 얼어터진다는 대소한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길 부르하통하 빙판우에선  얼음낚시군들의 겨울낚시가 한창이다.  하남다리를 지나다니면서 다리 량켠을 아래우로 둘러보면 하얀, 노란, 빨간, 파란색 텐트들이 알록달록 옹기종기 주런이 널려져 있는 모습이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마냥  예전엔 연길에서 볼수 없었던 겨울풍경을 연출하고있다.
    몇해전엔 겨울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멀리 오도저수지쪽에 가 얼음낚시를 했었는데 연길시에 부르하통하 다단계 물막이땜이 건설되면서부터 낚시군들은 멀리 가지않고도 집 가까이에서 얼음낚시를 즐길수 있게 됐다.
    이곳 연길 얼음낚시군들의 모습을 스케치해 보려고 컴퓨터속에 있는  지난 겨울 <일기책>을 펼쳐보았다.
  ......

    2003년 12월 25일 목요일 구름 많음

    오늘은 크리스마스. 며칠전까지만해도  겨울답지 않게 따스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졌다.  오후 3시, 산책하려 강뚝에 나가보니 이 추운 날씨에도 낚시군들이 강추위를 피해 언몸을 텐트속에 감추고 얼음낚시를 하고있었다.  내가 산책하는 구간에만해도 낚시군들이 쳐놓은 텐트가  28개나 눈에 띄였다...

    2004년 1월 2일 금요일 흐림

    오늘은 신년련휴 두번째 날. 강에는 얼음낚시군들이 전에 없이 많아졌다. 하남다리 서쪽엔 낚시군들의 텐트가 10개, 하남다리와 연동교 사이에는 34개, 연동교 동쪽에는 16개...  하루에 적어도 60여명 낚시군들이 얼음낚시에 투신하고있는 셈이다...

    2004년  1월 25일 토요일 맑음

    오늘은 음력 정월 초사흘. 음력설련휴기간인데도 강심 빙판우에는 얼음낚시군들의 텐트가 14개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찌하여 저렇게 낚시에 미쳐서 설명절도 쇠지 않고 빙판우에서 고생을  찾아 하고있을가?  나는 돈을 주면서 하라고 해도 이 추위속에서 저 고생을 찾아 하지는 않을텐데...
    ......
    나는 나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올겨울에도 지난 겨울처럼 매일 한시간씩 강뚝에서 산책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일기를 쓴다.
    올겨울에 쓴 "일기책"을 읽어보면 얼음낚시에 "미친" 낚시군들이 지난 겨울보다 더 많아진것 같다. 하남다리 서쪽켠만 봐도 어림짐작으로 하루에 적어도 크고 작은 텐트들이 30개는 넘어 보인다.  나는 날마다  낚시군들이 또 얼마나 출동했는가를 알아보기나 하려는듯  빙판에 널려있는 텐트들을 하나하나씩 세여본다.
    나도 어렸을 땐 낚시를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한때는 "강태공"이란 별칭까지 붙여지기도 했었지만 겨울낚시는 한번도 못해봤다. 그래서 겨울낚시가 얼마나 재미있고 또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모른다.
    어느날,  강뚝산책길에서 중학교 때 나와 절친한 사이였던 한 동창생을 만나 그한테 물어보았더니 겨울낚시는 몹씨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그가 처음 얼음낚시와 인연을 맺게된것은  그 무슨 심심풀이나 재미에서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장의 비장한 생존투쟁이였으며 무가내하의 선택이였다고 했다. 그의 얼음낚시엔 도대체 무슨 기막힌 사연이 깃들어 있길래 이토록 심각하게 얘기하는것일가?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
    퍼구나 오래전의 일이였다고 한다. 연변농기공장에서 근무하던 그는 공장이 조업중단상태에 들어가게되자 이태동안이나 낚시를 해서 생활고를 이겨나가게되였는데 공장 출근이 불가능해지고 생활비마저 끊기게 된 상황에서 위로는 로모를 모셔야하고  아래로는 두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를 책임져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는 휴일 때만 즐겨오던  낚시를 부득블 생업의 수단으로 삼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여서 놀라지않을수 없었다.  글쎄 바다가도 아닌, 또 큰 호수나 큰 강에 근접해있는 곳도 아닌 연길에 살면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는것이 도통 믿겨지지 않는 일이였지만 이것은 분명 엄연한 사실이였음을 나는 그 공장에서 그와 같이 일하던 다른 한 동창생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그는 처음엔 부르하통하를 따라 오르내리며 강에서 낚시를 해보다가 몇마리 잡히지 않는 그 물고
기를 팔아선 도저히 돈이 되지 않으므로 입장료를 내면서 저수지 낚시를 시작했다고 한다.  무슨일이든 꾸준히 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미립이 생기는 법. 그의 낚시질도 차츰 미립이 트면서 날씨가 나빠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남들보다 고기를 많이 낚는 편이여서 그날그날 잡은 물고기를 팔아서 겨우겨우 밥을 먹고 살았다는것이였다. 물론 추운 겨울에도 생계를 위해선  얼음낚시를 해야만 했고 1년 사계절 쉬임없이 낚시대를 들고 다녔으니 그가 겪은 고생인들 오죽하였으랴만 그때 그시절을 회고하는 그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모진 시련을 이겨낸 굳센 의지의 소유자들의 얼굴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그런 특유의 표정이였다고나 할가.
     낚시는 원래 우리 인류가 머나먼 유년시기 석기시대로부터 장악해온 일종의 생존수단였다. 그러나 력사의 흐름속에서 인간의 생활에 차츰 여유가 생겨나면서부터 일부 한가한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멀리하고 살아가려는 은둔자들이 낚시를  한적한 생활의 소일거리로 삼기도 했지만 후날  적지않은 사람들은 낚시를 숨가뿐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의 안정을 찾거나 여가생활을 즐겨보려는 레저의 일종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오늘 연길시의 얼음낚시군들을 두루 살펴보면 거개가 생계형낚시군은  아니고 심심풀이삼아 재미로 낚시하는 사람이 더 많은것 같다.
     "이놈이 녀편네가 인제는 돈도 안 보내고 전화도 안 친다. 한국에서 다른 놈하고 같이 산단다. 그래서 이렇게 홀애비 신세가 됐는데 아이가 학교에 간 다음 집에서 혼자 뭘 하겠니?..."
     "도박을 놀자니 돈이 없고, 책을 보자니 공부할 대가리가 아니고,  또 텔레비를 보자니 재밌는게 별로 없고..."
     "그 마작판에 가면 그저 매캐한 담배 연기만 나는데 여기 이 얼음판에만 나오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공기도 시원하고..."
     "할일은 없고 놀기도 심심한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겠니? 맨날 앉아 마작을 놀아봤자 돈이나 잃고 허리가 쑤셔나지만 그래도 낚시질하면 몸도 안 아프고 병원에 가서 약 사먹는 돈도 절약하니 이거야말로 꽁먹고 알먹기지... "
     얼음낚시군들의 곁을 지나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주어들은 얘기들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 잃은 사람이 많아지고 해외로무송출인원이 증가되면서 안해는 해외로 나가 돈벌이 하고 남편이 집을 지키면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점점 많아진 이 시점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는 모두 외면할수 없는 현실이고 또한 오늘 연변의 적지않은 가정의 현주소임은 틀림없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련속극이다.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한생을 살아가면서 여러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진학할 때 학교와 전공분야를 선택하는것도 선택이고 취업할 때 직장과  직종을 선택하는것도 선택이며, 연애할 때 애인을 선택하는것도 선택이고 결혼할 때 배우자를 선택하는것도 선택이다. 기업이 조업중단했거나 일자리를 잃었을 때 삶의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 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생업수단을 찾아 새롭게 거듭나느냐도 선택이고, 날마다 빈들빈들 놀기만 하느냐  아니면 몇푼짜리 일거리라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느냐도 선택이며, 밥술만 떨어지면  마작판에 나가 담배연기만 마시느냐  아니면 시원한 강변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얼음낚시라도 하느냐  하는 이런 모든것이 다 일종의 선택이다.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두말할것 없이 인생드라마에서  승자가 되려면 이와같이 선택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슨 일이든 해내고 말겠다는 집착과 온갖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그런 의지력과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한겨울 엄동설한속에서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며 옷속까지 파고드는 혹한도 감내하면서 얼음낚시하는 그런 강인한 의지와 억센 투지, 그리고 언제 물릴지도 모르는 그 미지의 물고기를 기다리면서 강추위도 참고 견뎌내는 그런 집착과 인내심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못해낼 일이 어디 있으며 또 이루지 못할 꿈이  어디 있겠는가?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의지와 노력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나는 강뚝에서 산책하면서 얼음낚시군들의 텐트를 볼 때마다 부질없이 이런 생각을 하군 한다.


2005년 3월 18일 <연변일보> <주말특간> <해란강>제123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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