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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기록》제1집 -> 박규식 편

6. 나의 가정
2020년 11월 26일 05시 23분  조회:483  추천:0  작성자: 기록
6. 나의 가정
 
남아가 크면 장가 가고 녀자가 크면 시집을 간다. 나는 1962년 12월에 우리 마을의 처녀 리춘자와 부부가 되어 46년을 보냈다. 그동안 부인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했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꾸준하고도 열심히 살림을 꾸리면서 나의 사업을 지지하였다. 그런 연고로 나는 언제나 미안하고 량심의 가책을 받는다.   
                       
우리는 결혼한 후 두 곳에서 생활을 하였다. 부인은 큰 아들이 10살, 작은 아들은 3살 때까지 친정에 있으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무리 친정부모라 하지만 시집 가서 십여년을 부모에게 의탁하여 사는 것은 어느 정도로 고통스럽고 처가집에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주었다. 
 
내가 사업의 수요로 해외방문을 갔기에 1년에 한번의 가족방문휴가를 받을 기회도 없다. 1972년 여름, 두 지역의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5.7”간부학교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 정식으로 조직에 전근신청을 했다. 반년이란 어려운 기다림 끝에 조직에서는 끝내 나의 전근신청을 비준하였다. 1972년 12월 26일, 연구소 인사부문은 길림시 혁명위원회의 동의를 거쳐 1973년 1월 3일에 나의 당안을 길림시혁명위원회에 부쳤다. 길림시혁명위원회의 연구를 거쳐 1월 9일에 전근령을 내렸고 나는 1973년 3월에 길림시 혁명위원회 생산지휘부 계획조에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두 지역의 생활은 해결했지만 발을 붙이고 잘 집이 없어 나는 시혁명위원회 남성숙사에, 부인은 녀성숙사에서 잠을 자고 밥은 식당에서 먹었다. 부인은 길림시 룡담구 제3초등학교(기반가)에서 글을 가르쳤는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야 돌아왔기에 몹시 힘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단위 숙사에서 1년 넘게 계속 두 곳 생활을 하였다. 1974년 여름에 조직에서 두칸짜리 집을 나눠주어 결혼후 처음으로 집이 있게 됐다. 우리의 살림은 아주 단촐하였기에 이사하는 날에 니야까(手推车)를 빌려 두 사람의 옷과 책 같은 물건을 한차에 실었다. 그리고 북산 석탄소매부에서 석탄 한 니야까를 샀다. 밥상과 장롱을 사고 싶었는데 결혼증을 내놓으라 한다. 그러나 동란시기 결혼증을 어디에 놓았는지 찾을 수 없어 구들 우에 종이장을 깔고 밥상을 차렸다. 그래도 심정만은 좋았다. 이 광경을 본 장인은 느릅나무로 서랍이 3개가 달린 책상과 작은 의자 4개를 만들어주었다.
 
         
약혼사진                       


회갑때 부인과 함께
 
가을이 되면 석탄배(煤坯)를 디디야 하며 가을배추를 사야하는 일들이 많아 바삐 서둘렀다. 우리 집에서 기관으로 출근을 할 때 자전거가 없어 매일 40분을 걸어야 했다. 기관의 마흥주는 이 광경을 보고 나에게 자전거를 살 수 있는 표를 주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월급은 56원, 부인은 37원이니 156원을 달라는 <26>봉황패 자전거를 사기에는 무척 어려웠다. 나는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나의 부담을 들려고 부인은 처가에 가서 돈 100원을 꾸어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장인이 일찍 세상을 떠서 갚아주지 못하여 감개무량하다.         

가난하면 손님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더니 내가 중년이 되여서야 완전한 집이 있게 되니 친척과 친구들이 집 구경하러 많이 왔다. 한달에 매인당 육류 반근과 콩기름 석냥을 공급했으니 손님 대접에 부인이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을가...

 
70년 동안 온갖 풍파를 겪고 나니 나는 이미 황혼에 접어들어섰지만 자손들은 대성황이다. 두 아들은 공무원이고 두 며느리는 직원이며 손녀는 대학을 다니고 두 손자는 초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만리장성에서 부인과 함께                


천지에서 부인과 함께
                                    
나의 작품- <겪어온 지난 세월>이 곧 마무리를 하게 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지 말라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태산 같은 당의 은덕이다. 만약 당이 없었다면 나의 일체가 없다. 나는 또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된다. 나의 경력은 험난했지만 항상 험난한 어려움 속에서 전화위복이었다. 나는 또 근심걱정이 없고 자손이 가득하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나는 만족하며 비록 생활은 부유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대사기

 
1936년 7월 6일(음력 5월 18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 3리에서 출생.
1943년 1월, 안평면 국민우급초등학교 입학.
1944년 4월, 영길현 오리하자향 백마부촌으로 이사.
1944년 4월, 오리하자향중심완소에 입학.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고 휴학
1945년 9월, 집에서 일함.
1946년 가을-1948년 3월, 백마부촌에서 아동단 단장을 맡았다.
1948년 4월, 오리하자중심완전소학교에 다시 들어가 공부했다.
1950년 12월, 오리하자중심완전소학교 졸업.
1951년 2월, 길림시조선족중학교에 입학
1951년 12월 신민주주의청년단에 가입.
1953년 7월,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초중졸업.
1953년 9월, 길림시 조선족중학교(고중)에 입학.
1956년 7월,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고중) 졸업.
1956년 9월, 중국인민대학 농업경제학부에 입학.
1957년 6월, 반우파투쟁에 참가.
1960년 7월, 중국인민대학 졸업.
1960년 8월, 대학 졸업할 때 중국과학원 세계경제연구실에 분배.
1961년 8월, 중국공산당에 가입.
1961년 10월, 하북성 창려현 통계과에서 기층단련.
1961년 10월, 모친 리화로(李花露 1893년 5월 25일-1961년 10월 6일)별세.
1962년 12월, 리춘자와 결혼.
1964년 3월, 중국기업고찰단 비서. 통역으로 조선 방문.
1964년 5월, 중국무역대표단 통역.
1964년 9월, 북경세계과학토론회 통역.
1964년 11월, 료녕성 금현 대고산공사에서 “4청”사업대를 책임짐.
1965년 10월, 북경 방산현 남상악공사에서 “4청”공작대 지도원.
1966년 6월, 중국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에서 문화대혁명에 참가.
1970년 3월, 하남 식현 “5·7” 간부학교에서.
1970년 9월, 아버지 박재성(1892년 12월 27일-1970년 9월 13일) 별세.
1971년 6월, 하남성 명항에서 계급대오 청산에 참가.
1972년 6월, “5·7” 간부학교에서 중국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에 돌아옴.
1973년 3월, 길림시 계획위원회로 조동.
1983년 7월, 길림시 계획위원회당조 성원, 부주임. 
1985년 5월, 길림시 계획위원회당조 서기, 주임.
1986년 9월, 미국 방문.
1989년 3월, 한국, 태국, 홍콩, 오문 방문.
1990년 12월, 투자유치를 위해 한국 방문.
1991년 6월, 《대외경제 업무지침》이란 책을 편찬함. 길림성과학기술출판사에서 발간.
1992년 12월, 로씨야 방문. 
6, 7, 13차 시당대표대회 대표, 7차 중공길림시위원회 위원, 시10, 11차 인민대표, 시 7차 정협위원. 시택시협회, 시통계협회, 시환경과학협회 명예회장, 시장애인협회 부회장, 시경제계렬 기술직무(职称)평가위원회 주임.
1993년 1월, 11차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 당조성원.
1996년 8월, 로씨야 방문.
1998년 7월, 퇴직.
2000년 3월부터 2014년까지 길림시차세대관심위원회 주임

 
프로필
 
이름: 박규식(朴奎植)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창길 3리에서 출생.
길림시 조선족중학교(6년제) 졸업.
중국인민대학 농업경제학부 졸업.
중국과학원 세계경제연구실 사업.
길림시 계획위원회당조 서기, 주임.
길림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 당조 성원.
2000년 3월-2014년 길림시 차세대관심위원회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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