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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69) 김장혁
2023년 03월 21일 12시 38분  조회:122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79. 무인도의 해적들

한참 쾌속정을 몰고 바다를 달리다가 저 멀리 섬 같은 것이 희미하게 시야에 안겨왔다.

“일단 섬에 오르고 봅세.”

철석은 정호를 돌아보더니 쾌속정을 그 섬으로 몰았다. 

섬에 점점 다가가면서 보니 그 섬은 녀인섬보다 그리 크지 않았으나 열대우림은 더 무성했다. 기괴하게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정호랑은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 허허바다에서 원래는 사람을 만나면 기뻐해야 할 대신 사람이 더 무섭고 싫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야수들보다 탐욕스럽고 색마 같은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였다.

피뜩 보니 코끼리 코 모양 벼랑이 서 있는 그 섬은 확실히 무인도 같았다. 

철석은 최고운전기술을 다 발휘해 용케도 부두도 없는 해변가 들쑥날쑥한 바위 틈새에 쾌속정 머리를 들이댔다.

“어서 내리우.”

정호는 허수아비처럼 돼버린 혜영을 부축해 바위에 올랐다. 혜영은 정호를 하루속히 잡아가지 못하는 것이 원쑤 돼 속으로 칼을 가는데 정호는 혜영을 인간적으로 착한 마음으로 거들었다.

(속담에도 웃는 낯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아무리 한뉘평생 사람을 잡아가두는 저승사자질 했다고 해도 사경에 처했을 때 잘 대해주면 봐주겠지.)

그것이 정호의 기대이자 막연한 바람이고 미련이였다.

철석은 쾌속정의 동아줄을 룡두처럼 생긴 바위에 단단히 매놓았다. 쾌속정만 파도에 밀려가면 망망한 바다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젤 앞에서 정호는 시퍼런 칼을 들고 수풀을 헤치면서 동정을 살피며 앞으로 나가고 뒤에서 철석이 량손에 칼과 미희 손을 잡고 뒤따랐다. 

철석은 고의로 뒤에서 느릿느릿 걷더니 미희 손을 꽉 잡으며 뭔가 암시했다.

“왜?”

미희가 주춤 멈춰서 오빠를 쳐다보았다.

철석은 식지를 입에 가져다대였다.

“쉿-”

정호와 혜영은 저 앞에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미희는 의아해 오빠를 곱게 흘겨보았다. 

철석은 미희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저 놈들을 따라가 개고생할게 있느냐? 어선을 빼앗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안돼. 난 저 사내 여자야.”

“저 놈 뭘 보고 따라다녀? 이젠 알거지 됐어. 초상집 개야.”

미희는 눈을 흘겼다.

“오빠, 량심 있어? 숱한 금은장시구 얻어가질 땐 어쩌고?”

철석은 미희 손을 훌 놓고 손을 들어 수염을 가로 쓱 닦았다.

“그때는 그때고."

철석은 나직이 말했다.

"지금 그 금은붙이도 다 어선에 두고 왔잖아? 녀인도 년들이 다 가져갔을 거야. 저놈한테선 이젠 얻어가질게 쥐 뿔도 없어. 괜히 도주범과 공범이 될게 있어?”

철석은 미희 손을 잡고 마지못해 정호네 그쪽으로 걸어갔다. 

집채 같은 파도가 해변가 바위돌을 처절썩 갈기며 하얀 물보라를 일구며 공포를 더해주었다. 무시무시한 무인도는 그야말로 염라전처럼 뒤숭숭하게 굴었다.

정호는 철석이 오누이가 다른 궁리하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걸어나가다가 주춤 멈춰섰다.

(저게 뭔가?)

한무리 사람들이 녀성 대여섯을 끌고 섬에 오르고 있지 않겠는가?

정호가 철석을 돌아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해적무리 아닌가?”

철석과 미히도 어둠이 사지를 펴는 해변가 들쑹날쑹한 바위돌 틈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총까지 멘 사내들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녀성들은 흐느끼며 해적들에게 끌려 섬에 올라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철석은 혜영과 미희를 걱정스레 뒤돌아보았다.

정호가 무릎을 탁 쳤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어.”

“뭔데?”

“저 놈들 배를 타고 어선 쪽으로 가자.”

그러자 철석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배를 빼앗자.”

미희가 손사래를 쳤다.

“오빠네 둘이 어더렇게 저 숱한 해적들을 대적해?”

“저 놈들 몰래 가만히 해적들 배에 오르기만 하면 돼.”

정호는 철석을 보고 혜영과 미희를 지키라고 하고  해적들이 사라진 수림 속으로 슬금슬금 뒤따라갔다.

혜영은 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정호를 말렸다.

"어쩌자고 그러오? 괜히 해적들한테 당하지 못해."

정호는 주춤 멈춰서 되돌아보며 말했다.

"저놈들이 소굴이 어데 있는지 알아둬야지. 해지면 파악있게 무인도를 벗어날 수 있어."

철석은 두 손 들어 동감했다.

"맞아, 가 보라구."

해변가에서 해적들은 뭐라고 쑤근거리더니 협곡 속으로 스며 들었다. 두 놈이 총까지 메고 협곡을 지켰다.

정호는 나무가지와 칡넝쿨을 잡고 벼랑 위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면서 토비들의 눈을 피해 미행하였다.

한참 뒤따라가니 협곡 막바지 수풀 속에 자연 석굴이 드러났다. 해적들은 석굴에 독사들처럼 동굴에 흘러들어갔다. 정호는 수풀을 헤치며 도적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동굴 어귀까지 접근했다.해적들은 어둠침침한 석굴에 들어가 숱한 보짐을 벗어 동굴 창고에 무져놓았다.

정호는 석굴이 너무 어두워 해적놈들이 뭘 하는지 똑똑히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공포의 석굴 어둠 속에서 녀인들의 아우성소리, 비명소리가 들릴뿐이였다.보나마나 해적들은 자기들의 전리품인 녀인들을 석굴 안에서 강간하고 있을 것이였다. 잠시후 녀인들의 비명소리에 점차 흐느낌소리로, 신음소리로 변해 들려왔다.

(해적들은 강간하는데 정신이 팔렸을 거야.이 기회에 석굴에 들어가봐야지.)

정호는 석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수풀이 바다바람에 쏴쏴- 소리치며 몸부림칠 뿐이였다.

정호는 시퍼런 칼을 쳐들도 슬그머니 석굴 어귀 들쑹날쑹한 바위 틈에 숨어들어 석굴 안을 들여다보았다.

녀인들의 흐느낌 소리를 들어봐선 석굴은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았다. 정호는 슬금슬금 석굴에 들어갔다.

한 굽이 돌아들어가자 석유등불을 밝힌 좀 넓은 석굴 안에서 해적들은 한창 집단강간하고 있었다. 녀성들은 널판구들바닥에 쭉 들어누워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인들은 사지가 꽁꽁 묶여 옴짝짝달싹 못하고 울며불며 당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석굴 어귀에서 보초를 서던 해적이 정호를 발견하고 놀라 꽥 비명소리를 질렀다.

정호는 황급히 시퍼런 칼을 쳐들어 위협하였다.    

보초병은 비명소리치며 석굴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도적이야!"

한창 재미를 보던 해적들은 황급히 바지가랭이를 춰입고 이쪽으로 달려나왔다.

해적우두머리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야?"

보초놈은 손가락으로 석굴 바깥을 가리켰다.

"두령님,웬 놈이 석굴 어귀에 나타냈댔습니다."

"그래?"

우두머리는 권총을 들고 굴 어귀에 슬금슬금 다가갔다. 보초병도 총을 들고 뒤따랐다. 

 정호는 바람결처럼 아름드리고목 뒤에 숨어버렸다.

우두머리는 벽에 붙어 굴어귀에까지 가서 바깥 동정을 살폈다. 그러나 파도소리와 해풍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해풍에 바위에 맞절을 하는 야자나무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보초놈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너털웃음을 웃더니 보초병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보게.당장 붙잡아오지 못해?”

“옛!”

“ 괜히 내 흥을 깨뜨리면서.흥!"

그는 가래짝 같은 손바닥으로 보초병의 어깨를 툭 쳤다.

"아직도 가잖고 꾸물거려?!"

"옛!"

정호는 그 놈들이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놈들이 강간하는 틈을 타 무인도를 벗어나야 해.)

그때 갑자기 엔징소리 들리더니 뒤이어 저쪽에서 쾌속정이 씽 달려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야? 쾌속정 아닌가?"

꽈르릉! 꽝! 꽝!

먹장구름 속에서 번개가 뻘건 혀를 뻗쳐 무인도를 강타하며 핥아갔다. 뒤이어 대살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정호는 황급히 칼을 들고 부랴부랴 폭우가 쏟아지는 어둠침침한 수림을 헤가르며 혜영이랑 두고 온 수림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뭐야?"

수림에는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 속에 철석과 미희는 꼬리도 보이지 않고 혜영이 상반신이 벌거숭이 된 채 나무에 꽁꽁 묶여 있지 않겠는가!

사실, 철석은 정호가 해적무리를 뒤쫓아간 후 칼로 혜영이 다 해진 적삼을 벗겨내 오리오리 베내서 바줄을 깠다. 그 바줄로 미희와 합세해 혜영을 꽁꽁 결박지워 나무에 묶어놓고 도망쳤던  것이다. 

혜영은 정호를 보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뭐라고 코소리를 쳤다. 그녀는 입이 천에 틀어막혀서 말하지 못하고 코방귀만 꼈다.

정호는 황급히 칼로 혜영의 결박을 잘라 풀어주고 나서 자기 적삼을 벗어 혜영에게 입으라고 건넸다.

"철석이랑 어데 갔소?"

"그 년놈들이 날 묶어놓고 쾌속정을 타고 혼자 도망쳤소.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니 아마 녀인섬에 가는 것 같았소. 뭐, 어선을 몰고 한국에 돌아갈 모양입데. 미희 그 개쌍년, 변강쇠 아까운지 발버둥질치며 울며 불며 기다리자 합데. 건데 철석이 미희를 마구 끌고 갔소."

"그랬구나. 개새끼,량심없는 개놈새끼!제명에 썩어지지 못할 거야!"

정호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그는 해변가를 두루 살피다가 질겁해 바들바들 떠는 혜영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겁나 마오. 내가 살아있는 한 혜영을 꼭 지켜낼 거요.”

“고맙소. 그 은공 잊지 않을게.”

혜영은 살고팠다.

“빨리 이 무인도를 떠나야 하오."

"무슨 수로?"

혜영은 반신반의했다.

"해적놈들의 배를 몰고 달아나야지."

땅! 땅!

갑자기 폭우 쏟아지는 열대우림을 찢으며 총소리 울렸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수풀 속에서 뛰쳐나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크! 빨리 뛰자!”

정호는 혜영의 손을 잡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수풀 속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런데 수풀 속에서 시꺼먼 총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땅!

“앗!”

뒤에서 혜영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뒤에서 해적이 혜영을 쏴눕혔다.

정호는 허리를 굽히며 앞에선 검은 그림자한테 덮쳐들어 총구를 하늘공중에 쳐들었다.

땅! 땅! 땅!

야무진 련발총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하늘로 불찌가 날아올라갔다. 

정호는 검은 그림자를 어깨에 떠메 해변가 절벽 아래에 내리메쳤다.

“악!”

비명소리와 함께 해적놈은 파도 속으로 내리꽂혀 버렸다. 

정호는 몸을 홱 돌려 자세를 낮추며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돌면서 연신 검은 그림자를 차 눕혔다. 그는 칼을 휘두르며 갈범처럼 싸우면서도 혜영을 찾느라고 눈길을 날렸다. 

저쪽에서 혜영의 아우성소리 애처롭게 들렸다.

“정호! 제발 날 버리지 말고 살려주오!”

정호가 대살처럼 창창 쏟아지는 폭우를 무릅쓰고 어둠컴컴한 수림을 살폈다.

꽈르릉, 꽝! 꽝!

번개불을 빌어 몇몇 해적들한테 결박돼 끌려가는 혜영을 볼 수 있었다.

“혜영이!”

정호는  땅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어들고 생사를 가릴 새 없이 쏘아대며 해적들에게 덮쳐갔다.

몇몇 해적들은 맹호처럼 덮쳐드는 정호 기세에 눌려 헛총질을 해대며 혜영을 둘러메고 수림 속으로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그러나 몇몇 해적들은 수림에서 총질하면서 대들었다.

정호는 혜영을 구하려고 필마단기로 결사적으로 해적들에게 뎦쳐들었다. 그러나 수림 여기저기서 총소리를 듣고 점점 더 많은 어두운 그림자들이 꽥꽥 고함치며 덮쳐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격발기를 당겨봐도 절컥거릴뿐 탄알마저 다 떨어졌다.

 “살려달라! 구해달라!”

저쪽에서 혜영이 단말마적으로 고함쳤다. 정호는 하는 수 없이 혜영을 구하지 못한 채 해변가 절벽에서 바다에 풍덩 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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