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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5권 (72) 김장혁
2023년 04월 16일 14시 02분  조회:1113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5권

      김장혁

                       82. 초빙

거세찬 구풍이 하늘땅을 집어삼킬듯이 불어친다. 먹장구름이 몸부림치며 흩날려간다.   기와장이 마구 뒤흔들려 날려갈상 싶다. 

회사 울 안의 계화나무가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허리 부러질 지경으로 맞절을 한다.

먹장구름 속에서 뻘건 독사가 시뻘건 혀를 몇가닥 뻗쳐 회사 건물을 핥아갔다. 

번쩍, 섬광이 번쩍인다.

우르릉 꽝꽝!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드디여 회사 지붕에서 수천갈래 실폭포가 쏟아진다. 

회사 전무 군철은 오랜만에 권연을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그는 권연을 길게 빨아들였다가 속 탄 연기를 후- 뿜어냈다. 파란 연기가 타래치며 천정으로 피여올라갔다.

요즘 그는 집안 일로, 회사 일로, 사생활로 해 고민의 망망한 바다에서 몸부림치면서  헤매고 있었다.

젤 골치 아픈 일은 양아버지 문걸의 정신병이였다. 

양아버지가 짝사랑에 실련해 신경병이 도지는 바람에 고민의 절벽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처럼 양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고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길바닥에서 헤매게 하는 건 너무 한 것 같았다. 

(자칫 교통사고치거나 낯선 놈들한테 얻어맞아 상하면 어쩐단 말인가? 혹시 저라다가도 이전처럼 병원에 있다가 시간이 흘러가면 점차 호전되지 않을가? 그러나 이번엔 너무나도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웠어. 그렇게 쉽게 호전될가?)

아버지 병이 심해질수록 군철은 춘희가 원망스러웠다. 마끼마저 사기군 같고 마귀처럼 슬그머니 미워지기 시작하는 감을 어쩔 수 없었다.

(춘희는 춘희고, 마끼는 마끼지.)

군철은 군자 자태로, 회사 전무의 넓은 흉금으로, 당대표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 모녀에 대한 염오감을 어쩌는 수 없었다.

(어쩜 자기 때문에 신경병까지 걸린 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단 말인가? 량심 있는가? 박사는 무슨 개 코 같은 박사. 인정머리도 없는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어쩜 그렇게까지도 인간성이 없어. 네년도 그래 인간이냐?)

군철은 권연을 한모금 길게 빨아 담배연기를 후- 내뿜었다. 

그는 창문 밖에서 쏟아져내리는 소낙비를 하염없이 내다보면서 이전에 리문걸 양아버지와의 이왕지사를 회억하였다.

(내가 어릴 때 양아버지는 나를 친아들로 알고 그렇게 사랑했겠지. 여름이면 나를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로천수영장에 가서 헤염치며 놀았댔지. 아, 그땐 얼마나 즐거웠어? 양아버진 날 자전거에 태워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꼭 양고기뀀집에 데리고 들어가 맛나는 양고기뀀을 먹였지. 아,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보질보질 구워진 양고기를 함께 맛나게 먹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순간 군철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는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권연을 재떨이에 비벼끄고나서 웃옷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두 볼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그는 회사 일이 바빠 한주일에 한번씩 밖에 병원 살창 속에 갇혀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 보지 못하였다.

(친아버지야 어디 아버지 구실을 하나라도 했는가? 양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애지중지 길러 대학에 보냈구. 뒷바라지도 다 했지. 양아버진 나를 장가를 보내주고 상해에 그 비싼 아파트도 사주었지. 애나게 그림을 그려 자가용까지 사주었지. 아, 양아버지, 당신은 진짜 내 친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어쩜 그런 몹쓸 병에 걸렸습니까? 아버지, 꼭 치료하고 저와 함께 만년에 행복하게 삽시다.)

군철은 소리내 흐느끼며 울었다.

“으흐흑, 흑흑, 흑흑흑...”   

똑, 똑, 똑,

노크소리 조용히 들렸다.

군철은 황급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단정히 사무상에 마주 앉았다.

“들어오십시오.”

뜻밖에 불청객 가은이 밉다하니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마귀 같은 년, 보기도 싫어.)

“최전무님, 안녕하세요?”

가은은 해사하게 해쭉 웃으며 인사부터 건넸다.

그러나 군철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소?”

가은은 서성거리다가 맞은 쪽 쏘파 앞에 두 손을 잡고 선 채 무겁게 입을 뗐다.

“최전무님, 믿고 찾아왔는데요. 저의 어머니를 회사 위생소에 받아주시겠나요?”

“뭐라고?”

군철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반문했다. 

(우리 널 제명해버려도 모자라겠는데 에미를 초빙하라고? 흥!)

그러나 군철은 인차 너무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침착성과 랭정성을 되찾으면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버릇처럼 대머리 위의 몇카락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가은을 뜯어보았다. 

뒤이어 우멍눈을 딱 감고 어떻게 응부할가 한참이나 궁리했다.

무거운 침묵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공포스레 흘렀다. 가은은 저승사자 같은 군철의 딱 감아버린 우멍눈을 훔쳐보며 바늘방석에 앉은듯이 조마조마해 두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야 군철이 우멍눈을 번쩍 뜨더니 틀스레 물었다.

“이전에 높은 경제대우로 위생소에 초빙하려고 해도 저네 엄마는 응하지도 않았잖소?   건데 이번엔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불쑥 오겠다고 하니깐. 도대체 웬 일이요? 우리 회사 오자면 오고, 가자면 가는 정거장인가 하오?”

가은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간신히 입을 뗐다.

“미안해요. 그땐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서 제가 고향 병원에 가라고 권고했는데요.”

군철은 가은을 경멸에 찬 우멍눈으로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그런데 지금은 왜 오려 한다오?”

가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 서성거렸다.

(엄마 고향 병원에서 제명된 말을 할 순 없어. 그럼 괜히 엄마 몸값만 내려갈게 아닌가?)

그녀는 에둘러대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코로나가 심한데요. 어머니는 우리 위생소에 와서 최군철 전무의 영명한 지도아래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공장을 차리자고 그래요. 중국의 숱한 코로나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 체면이 깎이줄 알면서도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돌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코로나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오겠다? 참 고상하구만. 인도주의정신이 다분하구만.”

가은은 제 좋은 생각을 했다.

“그럼 저의 어머니를 위생소에 받아주는 거죠? 전무님,”

군철은 하품을 길게 했다.

“그게 뭐요?”

“네?”

가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박사님이 무슨 일을 이렇게 처사하오? 저네 엄마는 뭐 하고  저를 보냈소? 저는 뭐 우리 회사 인사과장이오?  무슨 자격이 있어?”

뒤이어 전무어른은 나가라고 문 바깥 쪽으로 손짓했다.

“네, 미안합니다. 제가 곧 어머니를 보내겠습니다.”

가은의 말에 군철은 시끄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바쁘니깐. 먼저 어머니를 인사과장한테 데리고 가오. 뭐나 순서가 있는게지. 일본까지 류학갔다가 온 석사생이 그게 뭐요? 일본에서 그따위로 양성받았어? 섬나라 석새생은 자질이 고작인가?”

가은은 몸둘바를 모르고 뒤로 슬슬 물러서며 말했다.

“예. 알았습니다. 리화언니한테 데리고 가지요.”

군철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가는 가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랍을 열고 뭔고 뒤적였다.

한참 후, 전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군철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인사과장 리화한테서 온 전화였다.

“김춘희 박사를 데리고 가랍니까? 네. 등록을 다 했습니다.”

“데리고 오오.”

군철은 한마디 하고는 송수화기를 덜컥 놓고 자리에 앉아 우멍눈을 딱 감아버렸다. 그의 눈 앞에는 춘희 모녀의 지나간 일들이 피뜩피뜩 떠올라 괴롭혔다.

(어쩜 자기를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한 내 양아버지를 버리고 훌 떠나간단 말인가? 당신도 사람인가? 춘희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진짜 군철에게는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를 생각하면 춘희 같은 의학박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양아버지를 배신한 걸 생각하면 괘씸하기로 그지없었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군철에게는 더 궁리할 시간적 여지가 더 없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인사과장 리화와 비서 경희가 춘희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군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김박사, 참 오랜만인데요.”

춘희는 선뜻이 인사부터 하면서 마주 걸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최전무님,”

군철은 춘희 내민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회피하면서 맞은 켠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앉으십시오.”

경희가 커피 두 컵을 들고 들어와 군철과 춘희 차탁 앞에 놓고 나갔다.

그 사이 리화는 춘희 서류를 사무상에 가져다 놓았다.

군철은 춘희 서류를 펼쳐보지도 않고 우멍눈으로 춘희를 쏘아보았다.

“고향으로 훌 떠나가더니 어떻게 돼 되찾아왔습니까?”

춘희는 리화 눈치를 흘끔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최전무님, 사실 모녀간이 한 위생소에서 일하기 불편해 고향 병원에 돌아갔댔습니다.”
        군철은 조소를 입귀로흘리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우리 자그마한 위생소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지금은 모녀간이 콧구멍만한 위생소에서 머리를 맞대고 일해도 괜찮겠습니까?”

춘희는 병원에서 제명당했다는 말은 못하고 얼버무려고 들었다.

“그땐 반도체회사에서 백신제약공장을 차려낼 수 있겠는가는 고려도 있었습니다. 그래 두루해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신제약공장을 차릴 신심이 있습니다. 저와 황선희 언니가 최첨단의약제조기술을 제공하고 최전무가 제약공장 건설에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면 성공할 거 같습니다. 황차 지금은 코로나환자가 급증하기에 세계 선진적인 백신수요량이 급증하고 있잖습니까? 판로도 있잖습니까? 인도주의 정신으로 제약공장 차리면 됩니다.”

군철은 사무상에 돌아가 앉아 엄숙히 춘희를 내려다보았다.

(양아버지를 버리고 달아난 조 뺑덕이에미를 어쩌겠니? 량심을 버린 걸 생각하면 초빙하긴 고사하고 당장 사무실에서 쫓아내고 싶어.)

갑자기 군철의 눈에서 무서운 번개가 번쩍였다. 뒤이어  우뢰가 울리는듯한 고함소리 터졌다.

“당신도 인간인가?! 앓는 사람을 훌 버리고 도망치다니. 그러고도 내 앞에서 언감 인도주의 정신을 담론합니까? 당신도 의학박사입니끼? 개똥박사라고나 해라. 자기를 그렇게 사랑한 사람을 헌신짝 차버리듯한단 말인가? 앓는 사람을 치료해줄망정 그게 뭔가? 최저한도의 의료일군의 직업도덕마저 꼬말치도 없는 인피를 쓴 쓰레기야!”

춘희는 모든 것이 틀려간다고 여기고 자리에서 우쭐 일어났다.

“초빙문제를 담론하지 않고 욕설이나 퍼붓자고 저를 오라, 가라 했습니까?”

리화는 깜짝 놀랐다.

군철은 사무상을 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빙은 둘째입니다. 사람의 량심부터 짚고 넘어가야지.” 

리화는 둘 다 이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춘희는 문께로 나가면서 말했다.

“위생소에 받지 않겠으면 마십시오. 내 이 위생소 아니면 살지 못할 거 같습니까?”

군철은 무서운 빛이 번쩍이는 우멍눈으로 무뚝뚝하게 춘희를 쏘아볼 뿐이다.

춘희는 문꼬리를 잡았다가 천천히 되돌아섰다.

“당대표까지 한 전무라고 믿고 찾아왔더니만요. 옹졸하게 사적인 앙갚을 할줄은 진짜 몰랐군요.”

말을 마치자 춘희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잠간만요.”

리화가 쫓아나가면서 춘희를 말렸다.

“가겠으면 가라지. 놔둬! 인간의 량심을 버린 자는 쓰지 못해! 인간성도 없는 놈들이 무슨 약을 만들면 뭐 쓰게 만든다고? 흥!”

군철은 벌떡 일어나 사무실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거닐었다.

리화는 두 손을 벌려보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여보세요. 지금 백신제약공장을 세우려면 황선희 혼자 믿고 됩니까? 좀 참으면 어때요?”

“그만해! 저런 인간성도 없는 개똥박사 없으면 우리 회사에서 백신을 생산하지 못할 거 같아? 흥! ”
        군철은 계속 저주했다.
"최저한도의 인간성마저 없는 개똥박사야. 그런 개똥박사 우리 회사를 위해 온전히 일할 거 같아?! 사기군 같은게. 믿기 어려운 떠돌이야. 어디 잘 되는가 두고 보자."

창문 밖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사무실 안에까지 번개 쑥 들어왔다가 나갔다. 퍽 공포스러운 분위기다.

꽈르릉, 꽝꽝! 

우뢰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어 놓았다. 

폭우가 앞을 가리지 못하게 억수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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