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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8 김장혁
2023년 06월 07일 09시 50분  조회:132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8.로숙자

 별이 바르르 떨며 추워 구름으로 몸을 가리는 늦겨울의 밤하늘, 달도 한 녀인과 기자선생님의 애처로운 모습을 이슬맺힌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나영은 세집에서 나와 골목길로 사라지는 종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눈바램하였다. 그녀는 쓸쓸히 몸을 돌려 셋집 문고리를 잡았다가 손을 내리웠다.

(아니야, 좋은 기회야. 저 기자 어떤 사람인가 보자. 진짜 건축현장에 가서 자는가 봐야지. 신분에 맞지 않게. 글쎄 한국에 오면 네남 모두다 신분이 땅에 떨어지긴 하지만...)

나영은 문 자물쇠를 절컥 잠가놓고 황급히 종호 뒤를 쫓아갔다.

종호는 대림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나영은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고 종호의 눈치를 흘끔거리며 뒤따라가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이 손님이 지하철에 꽉 차서 종호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종호 어디로 가는가 뒤따라보니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에 가서 내리는 것이였다.

“혹시 내 자살하기 전에 찾았던 종각역 로숙자 우글거리는 거기 가서 자려는게 아닌가?”

그때 종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추 로숙자들이 자리다툼하는 그리로  진짜 가는 것이였다. 나영이 먼발치에서 보니 교보문보로 통한 텐넬 쪽 2층에 길다란 장의자가 놓여있었다. 어둑시그레한 층계와 장의자에 숱한 로숙자들이 들어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종호는 지하철에서 주은 것 같은 신문 몇장을 땅바닥에 쭉쭉 폈다. 아주 숙련된 솜씨였다. 그는 신문지 위에 훌 들어앉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두팔에 머리를 파묻고 쪽잠을 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마나! 기자선생님, 이건 아닌데요.”

나영은 하마트면 고함칠 번했다.

그녀는 간신히 손으로 입을 막으며 놀란 가슴을 쓰러내렸다. 

순간 나영은 코마루가 시큼해나며 눈물이 당장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자기를 편히 자게 하려고 로숙하는 종호가 감사하기보다는 죄송한 감이 가슴을 아프게 허볐다.

나영은 벽에 기대 개탄했다.

(기자선생님, 저 때문에  로숙까지 할 필요있습니까? 신분에 맞잖게. 저는 선생님 딸처럼 보호받을 년이 못됩니다. 전 색마한테 혼을 빼앗겨 졸혼하고 미쳐 나돌아다닌 못쓸 화냥년입니다. 졸혼하고 나만의 성쾌감을 느끼려고 가정을 마스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도망친 뺑덕어미입니다. 절대 저를 위해 그렇게 하지는 말아주세요. 리선생님, 전 어쩌면 좋아요?) 

그녀는 당장 달려가 종호 손을 잡아 일으켜 셋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몇발자욱 내딛다가 주춤 멈춰섰다. 종호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뒤를 밟아 따라온 자기를 발견했을 때의 종호의 난처한 기색 또한 어쩌겠는가.

(아니야, 기자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자. 못 본 척하자. 그게 상책이야.)

나영은 도적고양이처럼 발뼘발뼘 로숙자들을 깨울세라 그 어둠컴컴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종각역에서 다시 종호네 셋집으로 돌아오면서 무한한 자책감을 느꼈다.

(진짜 친딸처럼 생각하는 기자선생님을 의심하다니?”

뒤이어 이상하게 긍지감도 떠오른 것이 아니겠는가.

(참 넌 팔자 좋아 다행이야. 천하에 둘도 없는 귀인을 만난 것 같아. 네년은 남자 복이 있어. ㅋㅋ.)

그러나 나영은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라지 않는가. 정호를 봐라. 처음에야 얼마나 날 생각하는 것처럼 했는가? 날 부관장으로 제발시키고 그러나 결국엔 그놈이 날 무참히 유린하고 해치잖았어? ”

순간 정호가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밤중에 목숨걸고 흑인강도의 손에 걸린 자기를 구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밤 나영은 정호와 함께 해변가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그들이 십자길에서 금방 큰 길가 가로수 밑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꺼먼 구새통 같은 육중한 체구의 흑인강도가 뛰쳐나왔다. 그 놈은 승냥이처럼 덮쳐들어 나영의 목을 끌어안고 뒤통수에 권총을 들이대고 정호한테 을러멨다.

“딸라를 내놔!'

문학과 대졸생인 나영은 그 흑인강도가 영어로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마나!”

나영은 비명을 질렀다.

“딸라를 달라고 해요.”

불시에 일어난 사태에 정호도 처음엔 어정쩡해 두 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인차 정신을 차렸다.

“딸라를 꺼내 주오.”

나영은 영어로 “딸라를 줄게.” 하고 말하고나서 핸드빽에서 딸라를 두툼하게 꺼내 흑인강도한테 주었다.

흑인강도놈은 잠간 나영을 놓고 딸라를 챙기고는 또 어두커니 서 있는 나영의 목을 끌어안고 이번엔 정호한테 총을 겨누고 을러멨다.

“네놈 딸라도 몽땅 내놧!”

정호는 바지엉덩이 호주머니에서 딸라를 꺼내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그놈 보고 가져가라고 하오.”

흑인놈이 나영의 말을 듣고 권총으로 정호를 겨눈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놈이 땅바닥의 딸라를 주으려고 허리를 굽힐 때였다. 

정호가 갑자기 홱 돌아서며 발길로 그 놈의 시꺼먼 대가리를 걷어차올렸다. 그 놈이 “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엉거주춤 일어나려고 했다. 정호는 그 놈 꺽다리 무릎을 딛고 씽 날아올라가면서 무릎으로 그 놈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그 놈은 맥없이 푹 엉덩방아를 찌으며 쓰러졌다.

정호는 흑인강도 권총을 탁 차버렸다.

 “얏!”

야무진 고함소리와 함께 하늘공중에 후닥닥 날아올라갔다가 날아내리며 무릎으로 그놈의 고무풍선처럼 불룩한 배때기를 꽝 깔아뭉갰다.

“어우예!'

흑인 강도놈은 비명소리와 함께 반주검이 돼 까딱하지도 못했다. 

“태권!”

정호는 호랑이처럼 고함치며 발길로 연신 흑인강도놈의 낯빤대기며 배때기를 걷어찼다.

“최국장!”

나영은 정호의 품에 와락 안겨 발을 구르며 통곡쳤다. 

“내 있는 한 무서워 말아라. 목숨 걸고 널 지킬테니까.”

정호는 딸라를 주섬주섬 주어 나영의 핸드빽에 쑤셔넣어주었다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땐 정호는 얼마나 세상 둘도 없는 사내였던가. 날 구해준 은인이였지. 그는 날 위해선 목숨도 바칠 것 같았잖아. 그러나 뒤에선 날 함정에 빠드리고 고발하고 육신을 유린할 대로 다 하지 않았던가. 세상 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어.)

나영은 한숨을 호 내쉬며 셋집에 들어섰다.

그는 코구멍만한 셋집 구들에 벌렁 드러누워 어두운 천정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쪼각달은 서쪽에 기운지 오래건만 나영은 종각역에서 로숙자들과 함께 자고 있을 종호를 생각하면서 잠들래야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반토굴 셋집 구들에 다리를 옹송그리고 누운 채 언제 쪽잠에 빠졌는지 몰랐다.

이튿날은 신경을 느슨하게 하는 일요일이였다.

나영은 어젯밤에 편이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로 아침끼니를 대충 에때우고 텔레비죤을 켰다. 

그녀가 금방 뉴스를 볼 때였다. 문께에서 문 자물쇠를 여는 절그럭 소리 나는 것 같았다. 뒤이어 나직이 들리는 노크소리.

나영은 깜짝 놀랐다.

(리선생님이 건축현장에 가잖고 왔을 린 없겠는데. 경찰이 또 추적해왔어?)

그녀는 쿵쿵 뛰는 심장을 눅잦히며 문께에 다가갔다. 

감시구멍으로 내다보니 웬 새파란 30대 중반녀성이 아니겠는가?

“누군가요?”

“어마나, 딸인데요. 어서 문 열어요.”

“네. 잠간 기다리세요.” 

나영은 역으로 돌린 잠금쇠를 열어주었다.

셋집엔 엄청 훤칠한 녀성이 들어섰다.  그녀는 궁금증이 스치는 어글어글한 쌍까풀눈으로 나영의 아래위를 쓸어보면서 물었다.

“누구신지요? 혹시 아빠 전화한 미영씨인가요?”

“그래요. 종호선생님이 구해준 불쌍한 녀자입니다.”

“네. 전  딸인데요. 리향이라고 불러요.”

“리선생님의 박사따님이군요.”

그제야 리향은 한숨을 호- 내쉬더니 더 캐묻지 않았다.

(아빠한테 이렇게 새파란 여자 생겼어? 딸 같은 후처? ㅋㅋㅋ. 후처에 감투끈이 풀리는줄도 모른다더니. 아빠 엄마하고 리혼하더니 새파란 녀자 운이 텄나?)

리향은 바줄에 걸린 부래지어가 눈에 거슬렸는지 아님 민망했던지 걷어 멜가방에 쑤셔넣었다.

그때 텔레비죤에 다음과 같은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나영이라고 부르는 중국 교포 공개수배범이 어제 밤 모텔방에서 도망쳤습니다.”

리향과 나영의 눈길이 거의 동시에 텔레비죤에 쏠렸다.

텔레비죤 화면에 나영의 사진도 올랐다.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뒷창문과 가스관을 가리키는 장면이 나탔다.

“공개수배범은 바로 이 뒷창문을 열고 가스관을 타고 도망쳤습니다. 진짜 정탐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야간탈주였습니다. 공개수배범 나영은 중국에서 전람관의 돈 5만원, 한화 약 천만원 좌우 떼먹고 애인 정호와 함께 일본으로 도망쳤다가 우리 나라에 숨어들었댔다고 합니다. 최정호는 중국 모  시 문화국 국장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중대부패분자여서 홍색공개수배범으로 한국 인터폴에 나포된 적이 있습니다. 최정호는 홍대입구 부근에서 인터폴의 손에서 벗어나 한국 기생 미희 오랍누이의 도움을 받아 어선을 타고 남태평양까지 도망쳤다가 최근에 끝내 중국 녀검사한테 나포돼 중국에 인도돼 투옥됐다고 합니다. 지금 공개수배범 나영은 최정호가 탐오, 남용한 숱한 돈과 금은장신구를 탕진한 중대범죄혐의를 가진 인터폴 공개수배범입니다. 나영은 서울 모처에 종적을 감추었을 것입니다. 경찰 부문에서는 전체 시민들에게 공개수배범 나영 나포에 협조할 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나영은 텔레비에서 눈을 떼 리향을 쳐다보았다. 리향과 나영의 눈길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뻘건 불찌가 튕겼다.

나영은 오쫄 일어나 외투를 주섬주섬 주어입고 핸드백을 주어들고 리향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한테 전해줘요. 저는 도와줄 필요없는 녀자라고, 경찰들이 추적 중인 죄인을 로숙까지 하면서 자기 집에 재울 가치 없는 녀자인데요.”

말을 마치자 나영은 문을 훌 열고 나왔다.

뒤에서 리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간! 아빠를 만나 직접 말하세요. 오늘 아빠와 만나기로 했기에 이제 곧 올건데요.”

나영은 돌아서서 허리굽혀 인사했다.

“ 고맙습니다. 당신들 부녀까지 련루시키고 싶지 않아요.”

나영은 셋집에서 나가자  선불맞은 노루처럼 공포에 찬 골목길을 꺾어들어 도망쳤다. 멀리 갈수록 더 좋았다. 
    어디든지 자유를 위해서라면 도망갈 수 있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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