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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99 김장혁
2023년 06월 10일 11시 00분  조회:130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권

       김장혁

    

      99.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는 사나이

 

눈풍설이 기승을 부리며 얼굴을 에이는듯이 갉아먹으려고 이빨을 뻑뻑 갈며 언 한국 땅바닥을 핥아간다. 

야박한 인심의 세상이 린색을 베고 누워 코를 드렁드렁 군다. 남이야 얼어죽든지, 로숙자가 굶어죽든지 무슨 상관인가. 린색한 수전노들은 양옥에 들어 편안히 낮잠이나 자고 있다.

리속에 어두운 구두쇠들이 깨진 구리사발을 두드리며 수전노의 더러운 돈벌이 성경을 읊조린다.

나영은 잠실역 부근 롯데에 가서 근사한 겨울외투를 사 입고 털실수건으로 머리를 꽁꽁 감쌌다. 심한 코로나류행 때문에 마스크까지 꼭 눌러 끼니 경찰들의 눈을 가리기는 제창 좋았다.

나영은 한시름 놓으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그러나 공개수배녀도주범의 습관처럼 힐끔힐끔 뒤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잠실역 쪽으로 도적고양이처럼 발뼘발뼘 다가갔다.

그녀가 어둠을 등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신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하철 출구 아츠란 층계에서 웬 사내가 배낭을 메고 두 손으로 묵직한 트렁크를 안고 힘겹게 한 층계, 한층계 올라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숱한 사람들은 그 사내한테 막혀 주춤거리다가 옆으로 에돌아 지나가버렸다.

그때 갑자기 그 사내가 무거운 트렁크를 쥔 채 괴춤이 탁 풀리며 바지가 훌렁 벗겨졌다. 속내복이 훌렁 드러났다.

그 사내는 숱한 사람들 앞에서 창피해 트렁크를 층계에 내려놓고 괴춤을 훌 춰입었다.

웬 일일가?

그 사내는 바지멀춤을 쥐고 까딱하지 못했다. 

그저 애타게 위로 아츠랗게 뻗은 층계를 쳐다볼뿐이였다.

피뜩 보아도 중국 교포 같았다.

나영은 부지중 그리로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가요?”

“괜찮습니다.”

그 사내는 털실수건에 꽁꽁 싸인 낯모를 녀인을 마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 무거운 짐 어떻게 혼자 들고 올라가겠어요? 인줘요.”

그 사내는 좀 귀에 익은 목소린지 몸을 돌려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마스크를 꼭 눌러 낀 녀인이 누군지 몰라보았다.

“괜찮아요.”

그 사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나영은 환성을 올렸다.

“아니, 기자선생님. 어떻게 돼?”

그제야 종호는 나영을 알아본 것 같았다.

“저는 어떻게 돼?”

종호와 나영은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층계 한쪽으로 갔다. 건데 이상하게 종호는 한 손으로 바지멀춤을 쥐고 걷지 않겠는가.

“미영이, 짐 지켜주오.”

종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층계 위쪽을 가리켰다. 

“내 저기 매대에 혁띠 있는지 가보고 올게.”

그제야 나영은 종호가 왜 바지멀춤을 쥐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혁띠 뚝 끊어졌댔구나.)

나영은 허구픈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다행이였다.

“네. 갔다가 오세요.”

나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우습깡스레 바지멀춤을 쥐고 층계를 올라가는 종호의 뒷모습을 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더는 참지 못했다.

(이건 뭔데. 바지멀춤이 다 풀리게 안고 달아다니지?)

나영은 짐을 한층계라도 더 올려가려고 두 손으로 트렁크를 들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아이구,”

그녀는 외마디 질렀다.

트렁크가 어찌나 무거운지 아녀자의 힘으로는 근본 움쩍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종호가 헐금씨금 달려내려왔다. 이번엔 바지멀춤을 쥐지 않고 날래게 층계로 탕탕탕 뛰여내려왔다.

나영은 종호 어깨에서 배낭을 내리우려고 했다.

“제가 배낭을 메지요.”

“아니, 괜찮소.”

“큰짐은 못들어도 배낭이라도...”

종호는 트렁크를 훌 들어 메면서 말했다.

“금방 수술했는데 그만두오.”

종호는 트렁크를 메고 터벅터벅 층계를 올라갔다. 나영은 뒤에서 두 손으로 트렁크를 받쳐주면서 따라올라갔다.

종호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대림동으로 가야 했다.

그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나영을 데리고 장의자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어째 우리 집에서 나왔소? 내 얼마나 근심했는지 모르오.”

종호의 말에 나영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저 때문에 근심하지 말아요.”

종호는 근심에 찬 표정으로 나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요즘 어데서 잤소?”

“모텔에서요.”

“아니, 우리 집에서 잘게지. 취직도 못해가지고 모텔비를 낼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러오?”

“선생님이 찾아준 돈도 있는데요.”

종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한달에 모텔비 백만원씩 내고나면 그걸 몇참 쓰겠소? 우리 집에 가기오.”

그러나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찮은 저 때문에 신경쓰지 말아요. 선생님은 저를 잘 몰라요. 저는 선생님이 관심할만한 녀자 아닙니다. 나쁜 년입니다.”

종호는 진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오? 사람이 어찌 착오를 질 때 없겠소? 잘못을 저질렀으면 잘 반성하고 고치면 되지.”

종호는 나영의 처지를 아는 것 같았다.

(하긴 한국 텔레비에 다 난 인기인물이 아닌가. 난 지구 촌 어데도 살데 없어.)

“따님이 참 인물쳐격이 물찬 제비처럼 예쁘더군요.”

 나영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화제를 돌렸다.

“이건 뭔데요? 이렇게 힘겹게 메고 다닙니까?”

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였다.

“책이오.”

“네?”

나영은 놀라했다.

“무슨 책인데요?”

종호는 긍지감에 차 말했다.

“항일렬사들의 항일투쟁사랑, 우리 조선족 이민사랑 쓴 책이오.”

“혹시 선생님이 쓴 책인가요?”

종호는 가슴을 쑥 내밀며 아주 자랑스레 말했다.

“그렇소. 내 얼마나 고생스레 쓴 책이라고. 끝내 세상에 내놓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걸 내자고 기자선생님이 건축현장에 가서 고된 일 했는가요?”

“그렇소.”

나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누가 이런 책을 본다고 이런 고생 다 합니까?”

종호는 도리여 어이 없다는듯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딸이 하는 말과 똑같구만. 걔는 두대가 문학을 하면 집 안이 망한다고 하오.”

나영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리선생님, 널리 량해하십시오. 횡설수설해서요.선생님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해요.”

종호는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

“솔직한 말 괜찮소. 사실 지금 사람들은 오늘의 행복은 항일렬사들이 목숨 바쳐 찾아온 것이란 거 생각하지도 않지. 바로 그래서 내 이런 책을 내는게오.”

종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 내 딸이나 숱한 사람들은 애잡짤한 련애이야기나 처참한 비극적 혼인사 같은 거 좋아하는 건 사실이오. 그러나 우리는 민족의 이민사나 항일투사들의 혼을 잊어선 안되오. 한 민족이 전통력사도 문화전통도 없으면 안되오. 지금 우리 조선족들의 집산지가 산산히 흩어지고 있소. 민족 대이동시기에 처했소.국외로, 대도시로 이동하고 있지. 우리 진달래 고향이 종적을 감추고 있소. 이럴수록 민족은 한데 뭉치고 전통을 바로 세워 후대들에게 넘겨줘야 하오.”

나영은 좋은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긴 하죠. 그러나 이전에 내 전람관 해설을 하면서 봐도 그랬죠. 항일이요. 해방전쟁이오. 이런 도편전람을 해선 찾아오는 사람들이 몇이 없었죠.”

나영은 종호 눈치를 흘끔 보며 뒷말을 이었다.

“지금은 온라인시대입니다.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책을 별로 보지 않아요. 서점에 선생님이 쓴 거 같은 책들이 먼지 새뽀얗게 낄 지경입니다. 누가 봅니까? 핸드폰에 올리면 그래도 보는 사람이 많아요. 선생님도 애나게 돈을 벌어 책을 내느라고 하지 말고 핸드폰에 올려 보세요.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건데요.”

종호는 허리를 꿋꿋이 펴더니 얼굴에 장엄한 빛을 띠웠다. 

“참 좋은 말이오. 이후엔 핸드폰에도 올리고 책에도 계속 내야겠소. 난 기어이 항일렬사들의 투쟁사와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계속 책으로 내겠소. 그런 책을 우리 후세에 남겨주고 싶소.”

나영은 내심으로 탄복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아 보였지만 민족을 위해서라면 이런 “바보”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지하철이 육중한 노래를 부르며 들어섰다.

종호는 우쭐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부터 다른데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오. 난 현장에 나가봐야 하오.”

(겨울에 무슨 현장인가? 또 종각에 가서 쪽잠을 자려고?)

나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종호를 창피하게, 불편하게 굴가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영은 아빠와 같은 종호의 진심어린 호의를 저버릴 수 없어,  못이기는 척하면서 종호의 배낭을 마구 벗겨 메고 뒤따라 지하철에 올랐다. 녀자 몸으로 늦겨울에 종호처럼 지하철에서 쪽잠을 잘 수도 없고 맨날 모텔방을 돌며 살수는 없었다.  

지하철에는 행인이 별로 많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과 손님 사이도 너르게 앉아야만 했다.

 나영은 종호와 나란히 앉아 나직이 물었다.

“어째 국내에서 책을 못 냅니까? 이걸 국내에 가져가자고 해도 운비랑 들겠는데요.”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렇소. 한국 출판사 사장들도 도리머리질하면서 이상해할 정도요. '어째 국내에서 내지 않는가?” , '당신들 중국 조선족이민사 우리 한국 무슨 관계 있어?' 그들은 주산알을 딸깍딸깍 튕기면서 퇴자를 놓지 않겠소? 다행히 민족의 정의감이 있는 한국 리완표 사장이 이 책을 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몇백 책은 우정국에 가서 부쳤는데 국제우편이다 보니 우편료만 해도 백만원도 넘어 들어갔소. 우편세에 해관세까지도 물리지. 비용이 국내만 못잖게 들어갔소."
   나영은 의아해했다.
"그럼 국내에서 책을 내면 낫잖은가요? 운비나 해관세도 들지 않겠는데요."
종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국내에서 내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출판비용이랑 엄청 비싸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어데서 내자 하겠소? 지금 출판사들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오. 출판사에서 책을 얼마 팔아야 내 책 출판비용을 대주겠소? 지금 책이 어디 팔리오? 특히 이런 책 말이오. 이게 우리 출판시장의 현실이오. 그래도 출판사에서 어려운 형편에도 전문번역일군을 배치해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를 한어로  번역해 중점도서항목으로 세우고 우에서 돈을 얻어다가 내준다오. 출판사 사장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오. 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출판사에서 나서는데 내라고 가만 앉아 있어 되겠소? 그래서 난 집을 다 팔아 책을 냈소.이젠 국내 출판사 사장들한테 손을 내밀기도 미안하오. 그래서 한국 출판사들을 찾아 다니지.”

나영은 의아해 물었다. 

“집을 다 팔다니요? 책이 그렇게 중합니까?"

종호는 책짐을 매만지더니 대답했다.

"그렇소. 집이 없는 것보다 민족의 전통력사가 사라지는게 더 큰 일이오.한 민족이 혼이 날아나는 것 만큼 가슴 아픈 일이 어디 더 있겠소?"

나영은  다가앉으며 물었다.

"책이 안 팔리면 이 숱한 책을 어쩌자고 그럽니까?”

종호는 안타까운 현실을 토설했다.

“누가 사서 보오. 훌훌 나눠줘야지. 이 책을 봐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지금 마작을 놀면서 한판에 몇십원씩 떼워선 씁쓸해도 책을 사는데 들어가는 돈은 아까워하잖고 뭐요?” 

나영은 안타까워 종호를 따라 한숨을 호- 내쉬였다.

집에 이르자 종호는 책짐을 구들구석에 내리워놓고 나영을 보고 말했다.

“다른 생각말고 이젠 여기서 자오. 난 현장에 바삐 나가봐야 하오.”

나영은 종호를 측은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겨울에 현장일을 하다니오?”

종호는 아닌보살을 떨었다. 

“아니, 현장에 가서 밤보초를 서야 하오.”  

“선생님이 정 여기서 쉬지 않으면 제가 종각역에 가서 쪽잠을 잘게요.”

그 말에 종호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걸 어떻게…?”

나영은 종호의 손을 잡고 애원하다싶이 말하였다.

“선생님, 딸 같은데요. 뭐랍니까? 여기서 쉬세요.”

“그렇긴 하오. 부녀간처럼 모든 건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지내기오.”

종호는 그날 밤 부엌에 내려가 이불을 훌훌 펴고 드러누웠다. 나영은 미안한대로 구들에 이불을 들쓰고 다리를 꼬불뜨리고 누웠다. 그러나 둘 다 밤이 깊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반토굴 집에는 달빛에 비낀 책짐이 덩그렇게 놓여 그들의 어색한 첫날밤을 지켜고보고 있었다...  

어디라 분간하기 어렵게 모래폭풍이 불어치는 사막이다. 웬 사나이가 바보처럼 묵직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땀을 뻘뻘 흘리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힘겹게 한발자욱한발자욱 걸어나간다.

누가 물 한방울도 주지 않는 야박한 사막에서 뭘 보고 터벅터벅 힘겹게 걸을가?

 모래알이 눈을 못뜨게 아프게 덮쳐들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갈증이 나서 목 안이 타는 것 같아도 필승의 신념으로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의 눈 앞에는 그 책을 가져다 눈뿌리 아찔하게 쭉 뻗은 모래언덕을 넘어 저 멀리 민들레 흩날리는 고향마을에 가져다 주면 어두운 마을에 환한 등대를 밝히리라 믿는 것 같았다.그 사내는 물 한방울도 없는 사막에 샘물이 퐁퐁 솟는 개똥녀네 동화 같은 오아시스를 가꿀 것만 같은 그런 꿈으로 가슴이 설레이고 있었다.  

아, 십자가를 메고 힘겹게 골고다언덕을 올라가던 그 성인의 화신인가.아니면 분신인가? 왜 그렇게 신념이 강하다 못해 사막의 사나운 모래폭풍에도 책의 향연의 신념을 굽힐줄 모를가?그러나 그 사내는 만민이 우러러보는 그리 위대한 인물도 아니다. 그저 책을 애나게 써서 나눠주는 "바보짓"을 하는 그런 "바보" 사내일뿐이다.

꿈인가?

나영이 깨나보니 희읍스름한 달빛이 반토굴 집 안을 들여다 보며 울고 있지 않겠는가.

나영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호 내쉬였다.

(기자 선생님은 집을 팔아 책을 만드는 바보. 물 한방울도 주지 않는 사막에서  책짐을 메고 마라톤을 하는 사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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