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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101 김장혁
2023년 06월 15일 11시 51분  조회:109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6
      
                         김장혁
 
           
              101. 리향의 넉두리소리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부엌 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 들렸다. 나영은 종호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잘칵.
     나영은 일어나 전등 수위치를 켰다.
     “잠을 깨워 미안하오.”
     종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문께로 다가갔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어디로 갑니까?”
나영이 일어나며 물었다.
“현장보초를 서러 일찍이 가야 하오.”
“아니, 제가 밥을 지어드릴테니 식사하고 가십시오.”
종호는 기어이 나가려고 했다.
“오늘 로임을 주는 날이오. 밤당직 서러 꼭 현장에 나가야 하오. 오후에는 또 저 책짐을 메고 공항에 나가야 하오.”
나영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아니, 귀국하는가요?”
“네. 국내에 부친 책도 도착하겠는데 가서 찾아 나눠줘야지. 딸애도 일요일에만 오오. 근심말고 우리 집에 있소. 어, 오늘 일요일이네. 서로 자매처럼 허물없이 보내오.”
“따님이 남자친구라도 데리고 오겠는데요. 저 때문에 불편하지 않을가요?”
그 말에 종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남자친구나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걔 때문에 정말 속타오. 한뉘 시집 안간다오. 문학박사? 박사를 해 뭘 하오? 녀자가 녀자질이나 온전히 해야지.”
그제야 나영은 엊저녁에 자기가 종각에 가서 자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종호가 억지로 눌러 앉은 것을 알 것 같았다.
종호는 나영이 미안해할가 봐 뒷말을 덧붙였다.
“현장에서 하루 세때에 간식까지 주오. 여기 쌀궤에 쌀을 퍼내 밥을 지어 잡숫소.”
“네. 알겠습니다. 부디 잘 다녀오세요.”
나영은 종호를 어둠 속에 보내놓고 이부자리에 되물앉았다. 그녀는 저도 몰래 될대로 돼라고 다리를 쭉 펴고 들어누웠다. 어느 결에 곤하게 굳잠에 빠져버렸다.
얼마나 굳잠에 빠졌을가?
어두운 부엌 쪽에서 궤를 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지 않겠는가. 바가지에 쌀을 퍼서 씻는듯한 소리도 들렸다.
꿈인가? 생신가?
눈을 번쩍 떠보았다. 날이 밝고 부엌에 웬 녀성이 쌀을 씻고 있었다.
종호의 딸 리향이였다.
리향은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이부자리를 개이는 나영을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표준적인 서울말씨로 알은 체했다.
“잠을 깨워 미안해요.”
“아니, 벌써 날이 밝았구만. 집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잤구나.”
그들 둘은 하나도 어색한 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 대했다.
리향은 밥을 지으면서 이런 속궁리를 굴렸다.
(아버진 이 녀자를 좋아하는가 봐. 집에까지 데려온 걸 보면. 저 책짐을 보면 분명 아빠와 함께 온 거야. 아직 한 구들에서 자는 사이는 아닌가 봐. 아빠가 없잖아. 아까 저 녀자 잠자리를 보니까. 베개 하나 밖에 없었잖았는가.”
리향은 달걀채를 볶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전번엔 내 오니까. 저 녀자는 총총히 가버렸지만. 또 온 걸 봐라. 후처에 감투끈이 풀어지는줄도 모른다더니, 아버진, 참, 뭐야, 엄마와 리혼하고 제 딸 같은 녀자와 좋아해. 미쳤어. 뭘 보고 공개수배도주범을 다 좋아해? 허나 별 수 없지. 아빠가 좋아하는 녀잔데야.)
그들 둘은 손을 맞춰 제꺽 아침 밥을 지었다.
이윽고 새하얀 이밥과 노란 달걀채에 노랑 명태국이 밥상에 올랐다.
리향은 찬장에서 술잔 두개와 포도주 한병을 꺼내 밥상에 놓았다.
“아침술이지만요. 포도주나 한잔 하지요.”
나영은 아닌 보살을 떨었다.
“난 술을 못해요.”
“조금만 드세요.”
리향은 두잔에 빨간 포도주를 찰찰 넘치게 부었다.
“자, 한잔 들지요.”
나영은 아니, 아니 하면서도 잔을 들었다. 한잔 마시고 그산 쌓인 스트레스를 훌 날려보내면 좋을 거 같았다.
한 서너순배 돌아간 후 리향은 잔을 놓으며 책짐을 가리켰다.
“책짐만 봐도 신경질나요.”
리향은 나영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억지로 웃어보였다.
“우리 나이도 비슷한데요. 스스럼없이 대하자요.”
“네, 좋아요. 자매처럼 보내죠.”
나영의 대답에 리향은 의아해했다.
(아니, 그럼 이 집안 촌수 뭔가?)
허나 리향은 제꺽 동을 달았다.
“그래요. 아빠와 어디까지 갔는지도 모르는데요. 버릇없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는데요.”
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우린 그런 관계 아닌데요. 리선생님은 딸 같은 아녀자가 서울 바닥에서 헤매는 거 보고 동정해서 도와줄뿐인데요.”
그러나 리향은 그렇게 소홀히 나영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몰라.)
그는 엉뚱한 책략을 들이댔다. 아빠 허물을 하며 넉두리를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저 책짐 봐요. 우리 아빤 책에 혼을 빼앗긴 사람인데요. 가정살림을 할 사람이 아니죠.”
나영은 아빠 허물을 하는 리향이 속으로 안쓰러웠다.
“아빠는 흩어지는 우리 조선족의 미래를 생각해 책을 써서 애나게 찍어 메고 다니는 거 같소.”
리향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누가 저런 책을 본다고 그래요? 온라인시대인데 책을찍어 나눠주기보다도 인터넷과 핸드폰에 올리는게 낫다는데 통 말을 안 들어줘요.”
리향은 나영의 잔에 또 포도주를 찰찰 넘치게 붓고 나서 넉두리를 이었다.
“아빠는 숱한 책을 찍느라고 집을 다 팔아먹고 허망 나앉았어요. 아빠는 집 한채를 두기보다 책을 내서 백성들의 마음 속에 항일투사들의 기념비를 세워주는게 낫대요. 무슨 민족의 혼에 기념비를 세워준대요.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가정도 안해도 모른다고 리혼했지요.  아빠 엄마 리혼하는 걸 보고 난 혼인과 가정에 너무나도 실망했어요. 난 죽어도 시집 안가요. 시집 가 뭘 해요? 좋구 나머지 애들을 버리고 리혼하자고? 아빠 엄마를 보세요. 뭐 졸혼하고 제마끔 자기 삶을 산다고 애들의 마음에 시퍼런 비극의 비수를 박으라고? 내 가슴엔 아빠 엄마 남긴 상처차국이 더덕더덕해요. 난 절대 시집 안가요? 아빠 엄마처럼 졸혼하고 살자고? 아빠는 책 내는데 미치고 엄마는 마작이나 땅땅 치고... 사람의 인생이란 참 처참해요. ”
리향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넉두리를 했다.
그때 나영은 문뜩 이렇게 리향한테 말해주고 싶었다.
"이젠 나이도 먹었는데 련애도 하고 사랑도 해보오. 사랑하면 더욱 큰 자기를 발견할 거요. "
그러나 나영은 불행한 자기 혼인과 졸혼 후 초상개처럼 쫓겨다니면서 사는 처지를 생각하고 차마 "시집가"란 말을 할 용기 없었다.
리향은 나영을 아빠한테서 떼놓고 싶어 아빠 숱한 허물까지 마구 하였다.
(아빠가 절대 인터폴에서 공개수배하는 녀도주범과 좋아해선 안돼. 후처는 절대 안돼.)
리향은 나영의 감수가 어떤지도 않고 뒷말을 이었다.
“아버지 하는 꼴을 보고 나는 두대가 문학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걸 깊이 느꼈어요. 아버지는 날 보고 자기 뒤이어 조선족이민사를 쓰는 조선족작가로 육성하려고 날 한국에 류학보냈지요. 아빠는 숱한 고생을 하면서도 날 자기 후계자로 배양하려고 해요. 그래서 저도 한때는 문학을 하자고 나섰지요. 처음으로 과학환상동화를 썼는데요. 그걸 내자고 국내 한 출판부문에 갔는데요. 문학편집이 하는 말 얼머나 웃겼는지 알아요?”
리향은 술잔을 놓고 코웃음쳤다.
“ ‘리향이, 고양이 어떻게 핸드폰과 컴퓨터를 다루오? 아무리 과학동화라고 해도 이 따위로 써서야 어떻게 우리 신성한 아동문학잡지에 발표하오?’ 이러지 않겠어요. ㅋㅋㅋ.”
나영도 문학 본과생이기에 제꺽 알아들었다.
“그 편집은 고양이를 동화속의 의인화된 인물로 본게 아니라 그저 집 고양이로 봤구만. 진짜 문외한이구만. ㅎㅎㅎ.”
나영의 말에 리향은 손을 들어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렇죠. 바로 그거죠. 그 문학편집은 의인화동화만 알았지. 현시대 과학환상동화를 잘 모르고 있었죠. 현시대 과학기계를 도입해 의인화된 작중 인물 고양이를 무장시킨 걸 깜깜부지었지요. 현시내 날로 발전하는 과학동화의 추세도 모르고 있었지요. 통 말이 통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퇴고맞고 너무 어처구니 없었죠. 편집은 작가를 육성할 수도 있고 명작을 죽일 수도 있죠. 너무 실망해 다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건데 지금 저의 문학박사 도사교수는 저의 그 동화를 보고 아주 훌륭한 과학환상동화라고 평론까지 써서 한국 한 아동문학잡지에 저의 동화까지 한데 냈지요.”
“참 상반된 평가구만.”
“그래요. 그 동화로 저는 인기동화작가로 지금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데요.”
 리향은 안경 너머 나영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저의 어머니는 한족인데요. 어머니는 중국에서 전도를 개척하려면 한국 류학보다 북경대학 같은데 가면 낫다고 했지요. 에이, 아빠 엄마 일 생각하면 골치 아파요.”
나영은 리향이 늘어놓는 넉두리를 들으면서 종호를 새롭게 알게 되였다.
“우리 아빠는 참 재밌는 분입니다. 저의 류학뒷바라지를 하면서 어쩌는지 아는가요? 학잡비는 공짜로 대주지만 용돈만은 공짜로 안줘요. 알바를 하라요. 그것도 아빠의 비서격으로 아빠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하래요. 그 번역비로 용돈을 쓰래요.”
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희죽이 웃었다.
“아빠는 저 조선족항일투쟁사사책과 조선족이민사를 몽땅 한어, 영어, 일어로 번역출판해 조선족후대들에게 나눠줄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널어놓을 예산인데요.”
나영은 저도 몰래 탄복했다.
“참 웅대한 계획인데요.”
리향의 넉두리는 끝이 없었다.
아침해도 반토굴에 기웃거리며 리향의 넉두리소리를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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