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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102 김장혁
2023년 06월 17일 10시 16분  조회:102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6
                             김장혁

 
                      102. “바보기자


      쥐굴에도 해볕이 들 때 있다고 아침해가 반토굴셋집에 한발이나 비껴들었다. 셋집 천정과 벽에 비샌 흔적이 더덕더덕하고 반토굴 벽에는 곰팡이 말라 붙었는가, 아니, 서리가 들어붙은 것이 보였다.
     헐망한 셋집에서  아침 밥상을 마주한 나영은 상이 서리맞은 호박처럼 돼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리향의 넉두리소리는 끝날줄 몰랐다.
     “아빠는 참 책쓰기에 미쳤어요. 날마다 건축현장에 가서 밤보초를 서고 집에 돌아오면 눈을 좀 붙이네 하고는 글을 씁니다. 날마다 아마 일여덟 시간은 글을 쓰는 거 같아요. 얼마나 피곤하게 글을 썼으면 왼눈에 피지다 못해 고기 다 살아났지요. 눈에 쓰인 고기는 동공을 거의 덮을 지경이였지요. 눈 수술을 두번이나 했지요.”
    리향은 아버지를 추화해 나영과 갈라놓으려고 줄 아빠 허물질했다.
   “글에 어찌나 미쳤는지 어떤 일이 다 있었는지 아는가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리향은 달걀볶음을 저가락으로 집어 입에 홀랑 넣고씹으면서 말했다.
    “언니도 달걀 좀 들고 내 말 들으세요. 한번은 인천공항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다나니 글쎄 귀국 항공편마저 다 놓쳐버렸지요.”
리향은 손사래를 치며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빠는 완전히 머리 돌았어요. 글쓰기 늪에 너무 깊숙이 빠져버렸지요.”
   나영은 리향의 넉두리소리를 들으면 들을 수록 종호한테 반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리해가 가는 점도 있었다.
    “그래도 바람 피우는데 빠진 것만은 훨씬 낫지요.”
   나영은 리향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물었다.
    “저네 아빠는 퇴직 전에 뭘 하는 기자였소?”
   리향은 좀 취기가 보였다. 걀죽한 얼굴마저 발가스름해졌다.
    “아, 포도준데도 취기 오르네요. ㅋㅋ. 우리 아빠는 퇴직 전엔 바보 같은 기자였지요.”
   “왜?”
   나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바보라니? 신문사 기자는 아무나 하오? 기자라면 일반기자라도 사회에서 모두 존중하는데…”
    리향은 손사래를 쳤다.
    “아빠는 재직일 때 글쎄 전문 사회 문제보도를 써서 말썽을 일으켰지요. 그래서 처분도 여러번 받았지요. 하필 말똥벌레둥지를 들출게 뭔가요? 기자가 세상만사를 다 여론감독하고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가요? 아빠는 정의감에 차넘쳐 부패분자들의 문제랑 폭로하는 글도 신문에 냈지요. 그래서 부패분자들한테 정치보복을 당하기도 했지요. 또 로백성들을 대표해 눈꼴사나운 기관이나 부문 책임자들의 문제를 폭로했지요. 그랬다가 깡패들이 신문사에 찾아와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었지요.”
리향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빠는 바보예요. 그저 말썽을 일으키지 말고 편안히 보내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광고나 슬슬 해서 돈이나 벌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광고공사 총경리 아무나 합니까? 그 좋은 직권을 빌어 돈을 많이 벌게지. 저렇게 퇴직한 후에 한국에 나와 신분에 맞잖게 3D일을 할게 뭔가요? 정교수급 기자라는 량반이. 흥, 글쎄 퇴직한 후 책 낼 돈이 모자란다고 집까지 팔아버렸지요. 그래서 엄마한테 욕설을 먹고 리혼까지 당하지 않았겠어요?”
     리향은 잔을 쭉 굽내고 밥상에 잔을 달랑 내려놓더니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넉두리를 계속했다.
     “하이고, 아빠 엄마 일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아요. 우리 엄마 진짜 불쌍해요. 국장의 딸이 글쎄 조선족 바보기자한테 시집와서 얼마나 속을 태웠겠어요. 아빠는 국장 외할아버지 덕분에 신문사 기자로 됐지요.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엄마 책 내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헌신짝 차 버리듯 해버렸지요. 아빤 량심없는 남잔데요. 으흐흐. 아빠는 그저 일반기자 아닌데요. 신문사 부사장에 광고공사 총경리였지요.”
     나영은 깜짝 놀랐다.
     “네? 대단한 분이군요.”
     나영은 종호한테 궁금한 것도 많고 종호가 리해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한가지 리해되지 않는게 있소. 그만한 지위와 직업이면 돈도 재직일 때 많이 벌었겠는데. 딱 집을 팔지 않으면 책을 못 낸다오?”
“무슨 돈을 벌어? 원칙과 당성을 지키는 아빠죠. 자기에게 차려진 돈만 가지지 위법해서 돈을 챙기지 않았지요. 광고공사에서 돈 버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요. 아빠는 광고공사 일은 리승호라는 동창생 부총경리한테 맡겨놓고 시간을 빼서 항일전적지를 현지답사하고 취재해 글을 썼지요. 돈도 얼마간 차례지면 다 책내는데 처넣었지요. 숱한 책을 낼 돈이 어디 공 생기는가요? 그래서 저렇게 신분에 맞지 않게 건축현장에 가서 보초 서고 책짐을 메고 달아다니지요.”
     그때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찾아온다고 종호가 들어섰다.
     “웬 허물질이냐? 너네 엄마하고 리혼한 건 너네 엄마 할머니 생사를 다투는데 주사 한대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종호는 리향을 아니꼽게 흘겨보며 구들에 올라왔다.
    “웬 말인가요? 책내게 못한다고 리혼한게 아니고?”
    리향이 의아해하자 종호는 뒷말을 이었다.
    “모르는 소리. 너네 엄마는 의학원 졸업생이지만 할머니 하루 빨리 죽으라고 주사도 놓아주지 않았다. 인도주의가 꼬물만치도 없는 년이야. 어쩜 죽어가는 사람한테 주사도 놓아주지 않니? 내 그래서 약방에 가서 간호원을 찾아 할머니한테 주사를 맞혔다. 그것도 너네 엄마 중학교 동창생이였다. 그래서 말이 나간 거야. 그런데 너네 엄만 내 소문 퍼뜨렸다고 리혼했어.”
    “금시초문인데. 엄마 진짜 그랬어? 전화로 확인해야지.”
    리향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종호는 황급히 말렸다.
    “그만둬라. 미영이 여기 있는 걸 보면 또 쌍불을 켜고 달려들겠다.”
    그는 미영한테 눈길을 돌리며 리향한테 부탁했다.
    “미영은 문학전업출신이야. 문학이야기나 해라.”
     리향은 밥상에서 뒤로 물러나면서 종호한테 자리를 내주었다.
    “아빠도 한잔 하세요.”
    나영은 찬장에 가서 술잔과 수저를 찾아 가져다 밥상에 놓았다.
    리향은 아직도 따끈한 명태국을 한사발 퍼서 밥상에 올렸다.
    리향은 종호한테 빨간 포도주를 부어 포도주잔을 내밀었다.
    종호는 마지못해 술잔을 들었다.
    “미영이, 한잔 들기오.”
   셋은 포도주잔을 들고 서로 바라보다가 한잔씩 쭉 마셨다.
   종호는 명태국을 한술 떠 후후 불며 맛있게 먹고 숟가락을 살랑 내려놓고 말했다.
   “난 요즘 이른바 글 쓴다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오.”
    나영은 무엇때문가는듯이 종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종호는 거침없이 말했다.
    “어쩜 시를 쓰네 하면서 쓸데 없는 음풍영월이나 하고 미사려구로 글장난을 한단 말이오? 어떤 문인들은 로골적으로 색정을 늘여놓으면서 독자들을 유혹한단 말이오. 그래 문학이란 건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하게 하는 색정묘사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오? 그 음풍영월하고 미사려구로 글장난하는 정력과 지면이 아깝소. 그럴게면 항일투사적이나 우리 조선족이민사 같은 걸 써서 책으로 내면 얼마나 좋겠소? 모택동 주석이나 주덕 원수님의 이야기 같은 위인들의 이야기랑 번역해 책으로 내면 얼마나 좋겠소? 편집들도 문제오. 지나치게 문학성만 강조하고 사상내용을 홀시하는 페단도 있단 말이요. 편집은 작가를 기를 수도 있지만 명작을 죽일 수도 있소. 편집들이 직업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그저 지면만 랑비하고 지저분한 글로 지면이나 채우게 되지. 지금 음풍영월이나 하고 미사려구나 늘여놓고 색정에 빠져 헤맬 때오? 참 답답하단 말이오."
     리향은 뭐라고 하려다가 입술을 감빨다가 용케도 그만두었다.
     “밥이나 가져오너라. 난 급히 저 책짐을 메고 귀국해야겠다. 넌 요먼저 맡긴 걸 빨리 영어와 일어로번역해라.’
    종호는 5만원권 몇장 꺼내 리향한테 주었다.
     “이건 지난 달 번역료야. 용돈으로 써라.”
     리향은 돈을 받아쥐고 발간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며 반색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보스아빠님. 다그쳐 번역할게요.”
      종호는 나영을 건너다보며 말했다.
     “난 아마 이번에 귀국하면 일주일 걸릴 거 같소. 우리 집에 있소. 리향은 일요일에나 오니깐. 서로 불편할 것도 없잖소?”
     그러자 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고맙긴 한데요. 장구지책은 아닌 거 같아요. 저한테 선생님 이름으로 월세집을 하나 맡아주세요.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저에겐 려권도 없고 또 처지가 불편해 그래요.”
    종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을 거 같소. 혹시 경찰들이 내 꼬리를 밟을 수도 있으니까. 내 돌아온 후 맡아도 되오. 근심말고 그 새 일주일이라도 우리 집에 있소.”
     말을 마치자 종호는 묵직한 책트렁크를 끌고 길을 떠났다.
     나영과 리향은 책짐이라도 거들어주려고 따라나갔다. 그러나 종호는 기어이 밀막아버리고 혼자 책배낭을 메고 책트렁크를 끌고 귀국의 길에 나섰다.
    “택시라도 타고 가세요.”
     미영이 말하자 종호는 그저 뒤돌아보더니 희죽이 웃어보이고는 책트렁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택시는커녕 무거운 책짐을 끌고 메고 지고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타고 인천에 갔다. 그는 공항에 가서 비행기 탄게 아니라 한푼이라도 남으려고 인천 부두에 가서 륜선을 탔다.
     코로나가 심해 항공편도 한달에 몇번 없었다. 비행기표도 만원 웃돌 정도로 엄청 비쌌다. 당시 항공편은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그 돈이면 책 한권이라도 더 내겠다. 흥.)
      "바보기자"는 바다에 아무리 파도가 험난하고 사막에 모래바람이 아무리 기승스레 불어쳐도 기어이 책짐을 지고 메고 가람 건너려고 또 고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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