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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6권 104 김장혁
2023년 06월 20일 11시 03분  조회:106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6
       김장혁
 
    104. 오아시스의 추장들
한치 눈앞도 헤아리기 힘든 사막에 놀랍게도 옹담샘물이 퐁퐁 솟고 천사들이 모여 사는 사랑의 오아시스가 있단 말인가.
사막에서 책짐을 메고 달리던 마라토너는 책짐을 내려놓고 얼굴의 후줄근한 땀을 팔소매로 쓱쓱 닦으면서 파란 물이 찰랑거리는 오아시스를 내려다보았다.
오아시스의 천사 순정은 종호를 뒤따라 해관 출구에까지 나오면서 나직이 말했다.
“리사장님,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이제 왕과장과 잘 말해놓을테니까.”
종호는 순정을 보고 말했다.
“감사하오. 그러나 절대 코밑치성을 하면서 저 자들과 사정하진 마오. 너무 하단 말이오. 항일투사들이 목숨 바쳐 싸운 사적을 쓴 선렬들의 피로 물든 책인데 세금을 다 물린단 말이오? 목숨 바펴 싸워 이 나라를 세운 항일투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 돈 밖에 모르는 자들, 노는 꼬락사니들 참 한심하오.”
순정은 종호를 눅잦혔다.
“경제시대 돼서 그렇지요.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 그런 거 어쩝니까? 떠든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오.”
종호는 순정을 돌아보며 투박한 소리로 두덜거렸다.
“수전노들이오. 아니, 비린내를 맡고 두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드는 사막의 악어들이오. 세금만 물리기만 해보지. 가만놔두지 않겠소. 한국에서 우편으로 부치면서 세금을 물었는데 국내에서도 세금을 내면 뭐요? 세금만 내다나면 말겠소. 그 돈이면 책 한권이라도 더 내겠소.”
순정은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방법을 대서 책을 꺼낼테니까. 기쁜 소식을 기다리세요.”
그제야 종호는 택시쪽으로 가면서 순정한테 물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순정은 뒤에 죽 늘어서서 이쪽을 할끔거리면서 기다리는 이쁜 녀성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우리 장백산예술단에서 한국공연을 떠나는 길인데요.”
종호가 여겨보니 그 미녀군단에는 인기가수 임하영도 있지 않겠는가. 그 유명짜한 가무단 부단장, 정호의 애인… ㅋㅋ
“오- 그럼 또 리정호 회장님이 요청했겠구만.”
“네. 그래요. 교통비와 주숙비를 몽땅 리정호 회장님이 부담했어요.”
종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리정호 회장님은 참 대단한 분이오. 가면 먼저 인사를 전해주오. 이 책을 내주게 주선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오. 전번에 찾으니까. 리회장님이 사양해서 인사도 방정히 하지 못했소.”
순정은 종호가 택시에 오르기 전에 부탁했다.
“리사장님, 한국에 나오게 되면 다시 련락하지요.”
종호는 순정의 길다란 손을 잡아 흔들며 대답했다.
“알았소. 나도 이제 책짐문제 순조롭게 풀리면 일주일 후에 한국에 나가겠소. 그때 다시 만나기오.”
종호는 동창생인 정호 안해 순정을 잘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순정이 차린 장백산예술단을 취재하러 갔다가 리정호 회장을 처음 알게 되였다. 리정호 회장은 정호를 통해 여러번 백두산에도 올라가 보았고 중국 각지를 유람하였다. 그는 정호의 부탁을 받고 순정의 장백산예술단에 숱한 자금을 대주었다. 또 이번에는 종호의 책을 출판하게 한국 출판사도 주선해주었던 것이다. 진짜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 일을 수없이 한 사막의 오아시스 추장이였다.
종호는 책짐을 택시에 싣고 시내로 달려오면서도 정호 회장을 떠올렸다.
엄동설한에 기승스레 불어치는 눈풍설을 무릅쓰고 종호가 십여개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책을 내지 못해 안달을 떨 때 정호 회장이 서슴없이 나섰다. 그는 여러 모로 연줄을 달다가 경기도 교육삼락회 채순목 회장이 수원에 있는 한 출판사 이 완표 사장을 잘 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하여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 종호는 리정호 회장과 채순목 회장을 따라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달려갔다.
소낙비는 택시 앞유리를 창창 들부셔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채순목 회장은 당뇨병이 심해 점심때가 거의 되자 불시에 혈당이 내려가 머리가 어지러졌다. 그러나 그는 종호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리회장과 함께 벤체벨리 4층에 올라가 사장실 문을 떼고 들어가 이완표 사장을 만났다.
채순목 회장은 이완표 사장한테 종호를 소개했다.
“이분은 중국에서 신문사 부사장을 지낸 량반이네. 당신들 글 쓰는 사람들끼리 통하는게 있을 거네. 이번에 리사장은 항일투사들의 이야기책과 이민사를 썼는데 어떻게 이사장이 힘껏 도와 주게나.”
보통키인 이완표 사장은 꺽다리 종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러나 얼굴에는 퍽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가 력력했다.
종호는 인차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출판비용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자비로라도 출판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이완표 사장은 인차 대답은 못하고 그저 원고부터 보자고 했다.
종호는 유판을 꺼내 건넸다.
이완표 사장은 유판을 꽂고 원고를 대충 내리보고 말했다.
“원고를 저장해뒀어요. 이제 우리 편집들이 원고를 먼저 심열해보고 출판비용문제는 천천히 상의하지요.’
그러자 리정호 회장은 보다못해 한마디 했다.
“이사장, 통쾌하게 내주겠으면 내주겠다고 대답하게나. 출판비용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잖아?”
이완표 사장도 난감해했다.
“알았어요. 원고에 문제 없으면 내도록 하지요. 지금 국가에서 북방사회주의 심열제도가 엄해요. 한국 땅에서 한 한국 항일투사이야기면 모르겠는데요. 중공의 령도아래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사를 쓴게 돼서 좀…”
채회장도 한마디 했다.
“지금 어느 땐가? 민주주의 한국에서 웬 그리 까다로워? 중국 조선족들이 한 항일투쟁은 항일투쟁이 아닌가? 뭘 중공이고 뭐고 하는가? 웬간하면 책 내라구.”
“알겠어요. 될수록 내는 쪽으로 하지요.”
이완표 사장은 머리말을 읽어보고 종호의 책을 내기로 결단  내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도만토비숙청 취재과정이야기를 보고 너무나도 감동됐습니다. 리사장님, 이 책을 쓰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리사장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창작정신에 너무너무 감동돼 이 책을 꼭 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그런데 한국과는 표기법도 달라 한국 출판사 편집들이 교정을 보는데도 애를 먹었다. 도합 8권이나 돼서 편집 3명이 초심만 해도 반년 너머 걸렸다.
종호는 택시를 타고 달리면서 책짐을 매만지며 홀가분한지 몰랐다. 사물어운 한족안해 류려평과 졸혼하지 않았더라면 집을 훌 팔아 책을 낼 수 있었겠는가.
그는 한편 사막과도 같은 한국 세상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을 잊을 수 없었다-리정호 회장, 채순목 회장, 이완표 사장...
종호는 책이 나오자 채순목 회장한테 드리려고 했다. 눈풍설이 기승스레 이는 날에 전화로 찾았는데 글쎄 당뇨병으로 세상떴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완표 사장의 말에 의하면 채회장은 생전에 여러번 전화로 책을 꼭 내주라고 부탁했다고 하지 않겠는가.
(채회장님이 글쎄 책이 나온 걸 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다니? 참, 세상도 야속하다, 야속해.)
사막의 문턱에 동전이 딸랑딸랑 떨어지는 소리 처량하다. 주산알을 튕기는 소리 요란히 귀전을 울린다. 산더미 같은 책 무더기로 사막의 모래바람에 휘날려간다.
마라토너는 인심이 야박한 사막에서 마음씨 착한 오아시스의 추장님 한분을 잃은 것으로 해 마음이 아팠다. 그는 코마루가 시큼해나면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 세상도 무심하지. 어쩜 사막의 길목을 지키면서 문턱세나 받아먹는 악어나 전갈, 독사들을 수태 두고,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삼는 오아시스의 추장님, 마음씨 착하기로 천사 같은 채회장님을 그리도 일찌기 데려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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