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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 김장혁
2023년 12월 11일 10시 34분  조회:97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7. 민족의 성산 백두산
 
 
 
 
     치마봉 아래 산기슭은 벌써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고 마른 풀잎들이 선들바람에 흐느적거렸다. 영월동 앞의 적송과 백송, 미인송이 빼곡히 들어선 원시림과는 달리 치마봉 기슭에는 잡목이 빼곡히 들어섰다.
    푸르른 하늘에서 매가 돌개바람에 휘감겨 날리는 연처럼 빙빙 선회하다가 줄 끊어진 연처럼 내리 꽂힌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칠은 누렇게 번진 풀 속으로 검둥이를 추겼다. 검둥이가 코를 풀 속에 파묻고 냄새를 맡으면서 내달리다가 매가 돌던 하늘아래에 가서 멈춰서더니 꼬리를 휘청휘청 저어댔다.
    “킁킁!”
    개 코 방귀 소리를 들으면서 성칠은 그리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웬걸!
     알락달락 무늬 간 장 꿩 한 마리가 긴 꼬리털을 흐느적거리면서 까투리와 함께 뭔가 주둥이로 쪼고 있었다.
     “휙~”
     성칠이 휘파람을 불자 검둥이가 슬슬 그 자리를 피한다.
     땅! 땅!
     까투리는 폴싹 쓰러졌다.
     푸드득!
     총알을 빗맞은 장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땅! 땅!
    장꿩은 맥없이 내리 꽂히더니 풀숲에 퉁 떨어졌다.
    검둥이가 씽- 풀숲 속에 달려나가  꿩과 까투리를 한입에 물고 되돌아와 꼬리를 저어댔다.
    성칠은 장 꿩과 까투리를 받아 쥔 후 요도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검둥이에게 주고 그물가방에 그 두 마리 꿩도 걷어 넣었다.
    이젠 해도 숫구멍을 내리쪼이기 시작하였다. 그물가방을 툭툭 치던 성칠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멧돼지나 곰이나 호랑이라도 잡으려고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원시림을 걷고 걸어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을 때였다.
     웬 일가?
      불시에 수림속이 어두워지더니 때 아닌 안개가 뒤덮였다. 희끄무레하고 담담한 해 빛이 짙은 구름층을 겨우 뚫고 나왔는데 몽롱한 안개바다 속에 빨려 들어가 대지는 어둠속에 잠겨있다. 숨 막힐 듯이 구름 밑에 안개 밑에 지지눌린 산봉우리가 삼라만상을 두꺼운 안개 속에 감춰버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천길 절벽의 천년 이끼 낀 청석 낭떠러지를 보일락 말락 하게 씻어 올리고 있었다. 참말로 미묘한 절승경개에 성칠은 가슴 뿌듯해 혀를 끌끌 찼다. 그 바위 틈 사이로 노란 잔등에 토색 줄이 쪽 간 다람쥐가 깡충깡충 뛰놀다가 쪼르르 나무우로 기어오른다.
     자오록하던 안개가 기암괴석에 빨려들어갔는지 수림 속에 스며들었는지 차츰 하늘이 개이었다. 그런데 9월말 날씨에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웬 일일까? 혹시 꿈을 꾸는 게 아닌가? )
    성칠은 검둥개를 앞세우고 한참 눈 덮인 수림을 빠져나가니 수림이 끝나고 애나무가 자란 앞에 눈 덮인 깎아지른 절벽이 앞을 막았다. 그는 절벽을 톺아 올라 넘으면 사냥할 산짐승들이 있을 것 같았다. 절벽너머 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과 충동에 의해 그는 돌 뿌리를 잡고 바위틈에 손톱과 손가락을 박으면서 눈 뿌리 아찔한 천길 절벽을 톺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절벽에 부석부석한 돌 뿌리는 훌렁 빠져 나왔다. 결국 그는 한길 너머 올라갔다가도 눈 덮인 땅바닥에 퉁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포기할 성칠이 아니었다. 그는 완강한 의력으로 손가락이 긁히어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의악스레 절벽을 톺아 올랐다. 검둥개는 절벽에 올라가지 못하고 절벽 우에 올라간 주인을 쳐다보면서 “왕왕!” 짖어댔다.
    해님이 방실 웃음 지을 때 칠성은 피 나는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절벽 앞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눈앞에는 백설을 뒤집어 쓴 산봉우리들 복판에 웬 바다같이 넓고 푸르른 천지물이 나타났다.
    (하늘에 닿은 높은 산봉우리 복판에 바다와 같이 넓은 푸르른 천지가 있다니? 참 괴이한 일이 아닌가!)
    성칠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말로 인간세상에서 보기 드문 절승경개었다. 눈 뿌리 아찔하게 솟은 산봉우리들이 눈꽃노을을 쓰고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고 발밑에 있는 맑고 푸른 거울 같은 천지물이 파란 빛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게 아버지 늘 말씀하시던 천하절승 백두산이 아닌가?”
    성칠은 두 손을 입가에 벌려대고 목청껏 고함쳤다.
     "야- 백두산아! 내가 왔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백두산에 성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검둥개도 벼랑아래에서 “왕 왕 왕!” 하고 요란하게 짖어댔다.
    성칠은 백두산 꼭대기의 청신한 공기를 가슴 뿌듯이 한껏 들이마시고 자기가 선 봉우리를 둘러보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백두산인가! 백설이 뒤덮여있는 산봉우리아래 얼음굴이 숭숭 뚫린 곳에서 선인이 금단을 구웠다는 관면봉, 안개와 구름이 감도는 저 가마 덮개와 같은 화개봉,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은 예리한 두 암석이 치솟은 천곡봉, 천층만층 절벽으로 이루어진 신비석 같은 용문봉, 용이 드나드는 문이었다고 하는 용문봉 남쪽으로 하여 빨간 노을이 비낀 자하봉, 눈 밑에 절벽이 드문드문 검푸르게 치솟은 철벽봉, 옥기둥처럼 서있는 석벽 우에서 은실 같은 하얀 실 폭포가 쏟아져 천지에 흘러드는 옥주봉, 잔등에 사닥다리폭포를 업고 있는 제운봉, 눈을 뒤집어쓴 호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것 같은 와호봉, 하늘에 장검을 찌른 것 같은 백운봉…
     성칠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백두산의 절경을 둘러보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어떤 봉우리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바위에 날아내려 앉은듯하고 어떤 봉우리는 용녀가 거울을 마주하여 머리를 빗는 듯했다. 어떤 것은 흉측한 사자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원숭이가 장기 쪽을 들고 앉아 있는 것 같았으며 어떤 것은 큰 눈을 부릅뜬 백발 로인과도 같았다.
     천변만화하는 백두산의 하늘에는 안개가 또다시 뭉게뭉게 피어올라 뭇산 봉우리들에 베일을 씌어 주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갑자기 까만 구름이 서북쪽으로부터 둥둥 떠오더니 천지 못 속으로 스며들었다. 뒤이어 동남쪽으로부터 흰 구름송이가 떠올라 천지를 한 바퀴 빙 돌더니 천지 못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흰 구름과 검은 구름이 천지 못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더니 한데 뒤섞여 타래 쳐 오르더니 우르릉 꽝꽝 하고 우레 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것은 똑 마치 서북쪽의 흑룡과 동해바다의 백룡이 천지의 용과 천지에서 만나 잔치를 벌리었다가 영토분쟁이 생겨 싸움판이 벌어 것 같이 보였다. 뒤이어 하늘에서 눈 덮인 백두산과 퍼런 천지에 밤송이 같은 박재를 마구 쏟아부어댔다.
       “아니! 이거 눈 덮인 천지간에 우박이 쏟아지다니!”
     칠성은 놀란 소리를 지르면서 그물망태기를 들어 우박을 막았다.
     아, 천하절승 백두산!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는 하늘아래 어깨 겯고 우뚝우뚝 솟아 금수강산을 지켜선 대장부들 마냥 어깨 겯고 천지의 물을 굽어보고 있었다.
     성칠은 청신한 산 공기를 마음껏 가슴 뿌듯이 들이켜고 나서 백두산의 천하절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에 한 도인이 하루는 눈이 뒤덮인 절벽을 내려 천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헌데 못 속에서는 몇 마리의 잉어가 새빨간 꼬리를 하느작거리면서 헤염쳐 다니고 있었다. 도인이 잔파도에 들어서 잡으려 하니 그 고기는 하느작거릴 뿐 달아나지 않아 단번에 붙잡혔다. 이어 또 다른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꿈꾸던 도인은 발이 미끄러져 물에 쑥 빠져 들어가 다시 나올 수 없었다. 그가 바위를 붙잡고 백 길을 더 내려가니 돌층계가 사다리처럼 놓여있었다. 사처로 두리번거리며 여겨보니 전각과 용을 새긴 옥기둥이 금빛이 반짝거리는데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가 한가운데 화려한 궁전으로 들어가니 백발이 성성한 한 로인이 수정 침대 우에 누워 우레 소리같이 요란하게 코를 고르고 있었다. 도인은 더 앞으로 못 다가가고 옥전에서 뒷걸음을 치다가 돌아서서 못 속에서 헤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백발자국 와서 머리 돌려 궁전을 바라보니 오색영롱한 것이 눈을 부시면서 은파 속에서 번쩍이는 것이었다. 도인은 사지 나른해지면서 맥이 없었다. 그는 돌층계에 기대서서 숨을 돌렸다. 그러나 온 몸이 한 토막의 나무와 같은 감이 들더니 파도에 따라 둥둥 뜨면서 불씨에 잠이 오는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그의 곁에 사냥꾼 둘이 서 있었다. 눈을 번쩍 크게 뜨고 바라보니 자기는 이미 승자하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두 사냥꾼은 못에서 한 사람이 둥둥 떠오자 원래는 서쪽비탈에서 동쪽비탈에로 헤엄쳐 가는 사람인가 했는데 건지고 보니 못에 빠진 도인이었다고 하였다. 사냥꾼에 의해 구원된 도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천지에 용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고 한다.
성칠과 검둥이는 넓은 보천석 위에 올라가 앉아 한참 쉬다가 승자하를 따라 내려갔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천지 용궁에는 용왕의 다섯 마리 태자교룡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온 몸에서 린광이 번쩍이었는데 바람을 불러오고 비를 몰아 올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봄, 배꽃이 키 다툼하며 피어날 때 이 다섯 형제는 가만가만 못 우에 떠올랐다. 아, 보지 못했으면 몰라도 이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구름과 안개를 잡아타고 백운봉에 올라 천지의 물에 굴절돼버렸던 열여섯 봉 절승경개를 보고 완전히 도취돼버렸다.
      그들이 지난 자리에는 다섯 갈래 깊고 깊은 골짜기를 남겼다. 그러나 봄빛은 좋으나 오래있지 못하게 됐다. 맏이는 사형제를 데리고 용궁에 되돌아가려 하였다. 그중에서 삼태자만은 인간춘색에 미련을 두고 도주에 슬그머니 사형제를 떨어져 달아났다.
     꽈르릉!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산봉우리가 갈라지면서 한 가닥 빛이 서북쪽으로 날아가고 깊고 깊은 협곡이 하나 생겼다. 하여 천지의 물은 그 협곡을 따라 흐르게 되였으며 은파가 번쩍거리게 되였다. 이것이 바로 성칠이가 본 오늘의 승자하인 것이다.
    그 후 셋째태자 용남은 용궁에 오래간만에 돌아왔다. 용왕이 그를 용궁의 규례를 어겼다고 쫓아버리자 배 한척을 무어가지고 그 우에 앉아 승자하를 따라 동해 바다 속의 용왕을 찾아가려고 하였다.
     원래 천지 용왕과 형제간인 동해 용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맏아들을 보내왔다. 천지동쪽으로 커다란 흰 구름송이가 날아오더니 셋째태자 용남이가 탄 배가 머무른 승자하 상공에 둥둥 떠 내려왔다. 구름 속에서 숱한 채색구름이 내려왔다. 그것들이 차츰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입은 선녀로 변해 내려와 용남의 둘레에 달려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그를 옹위하였다. 뒤이어 흰 구름이 둥둥 떠내려와 용남과 선녀들을 감싸더니 하늘로 솟아올라 동해바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용남이가 탔던 그 배는 주인이 없어 방향을 잃고 물길에 떠밀려 승자하 동쪽 기슭에 걸쳐 있었던 것이다.
      성칠은 썩은 배를 총탁으로 두드리면서 개탄하였다.
      “어허, 네 처지 가련하구나. 주인 잃고 물에 밀려 바위 우에 걸쳤으니까. 제 어이 동해바다에 떠가서 만리 창해를 헤가르며 달리랴. 오늘은 썩은 나무로 돼 어이 하여 후세사람들의 의논거리로 돼 답답한 한탄만 자아내는가!"
     성칠은 바위를 부시면서 소리치며 급물살을 타는 승자하를 따라 한 3 리를 내려갔다. 갑자기 발밑에 우당탕퉁탕 천둥소리와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천천히 바위 돌을 잡으면서 절벽 굽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백길 절벽에서 거센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늘 외우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폭포구나!”
     백설 같은 폭포수는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는 듯이 청석옥석을 부시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절경은 마치 흰 용 두 마리가 백설을 쏟아 붓는 것 같기도 하고 흰 한복을 입은 백화암의 궁녀들이 절개 굳게 뛰어내리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맑은 물은 부서져도 흰 물 바래로 쏟아지고 물갈퀴와 안개를 사처로 펼치면서 아치교처럼 칠색무지개를 꽃피웠다. 아마 견우와 직녀도 여기 아름다운 아치교 같은 칠색무지개를 보면 은하수에서 만나 부둥켜 안고 울기 전에 먼저 여기 백두 폭포에 와서 아름다운 절승경개에 취해 웃고 떠들면서 놀리라!
      폭포 옆 절벽 길을 내린 후 성칠은 한숨을 후- 쉬면서 폭포를 돌아다보았다.
     “아, 참말로 백두폭포는 천하절승이구나.”
      성칠은 폭포와 그 주위의 절벽을 둘러보면서 눈 덮인 바위 우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런데 사냥꾼 성칠은 별스럽게 노린내가 어디선가 풍겨와 코를 간질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왕 왕 왕!”
    성칠은 대뜸 주위에 뭐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냥총을 들고 날카로운 눈길로 검둥개가 짖는 쪽을 바라보았다.
     “에크!”
    그리 멀지 않은 너럭바위 우에 얼룩호랑이가 우뚝 서서 불지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칠이 사격거리를 줄이면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앞으로 나갈 때었다.
     “따 웅!”
     백두산이 떠나갈듯이 호랑이가 울었다. 호랑이는 성칠이 다가가자 팔뚝 같은 꼬리를 휘젓다가 꼬리 빳빳해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성칠이 보니 호랑이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어느새 산비탈에 오르더니 흐릿한 하늘과 눈 덮인 산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성칠은 맥이 진해 호랑이를 뒤쫓지 않고 검둥이와 함께 산 아래로 부랴부랴 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두폭포에서 쏟아진 맑은 물은 집채 같은 청석바위를 부시면서 흰 물갈퀴를 일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쏜살같이 흐른다. 마치 성난 백마가 수없이 청석바위우로 달리는 듯 쏴-쏴 소리치며 산기슭으로 굽이굽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오- 이 강이 바로 천지 동북쪽에서 흐르는 백하겠구나. 저 내륙에 가서는 송화강이고.”
    성칠은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그 백하에 다가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퍼 시원히 마셨다. 그러니 가슴에 백두 열여섯 봉이 솟는 듯 새 힘이 솟구쳤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백하는 천고의 원시림을 적시면서 흘러지나 동북평원을 적시면서 송화강으로 탈바꿈하여 나중에 흑룡강과 우쑤리강과 합쳐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백두산 동남쪽기슭에서 발원한 700리 두만강은 동해바다로 흐르고 백두산 서쪽기슭에서 발원한 푸르른 압록강은 서쪽으로 흘러 발해와 황해 어구에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그렇다, 송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원동의 이 땅을 적시면서 흐른다. 더 많은 수난사를, 더 높은 소리로 두런두런 아야기를 나누려고, 민족의 빛나는 력사를 더 높이 노래 부르려고 골짜기 어구에서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더 크고 세찬 강을 이루면서 바다로  몇천년, 아니, 몇만년 줄곧 흘러갔다.지만 끝내는 넓은 바다에 가서 만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바다에 오는 길에 수많은 수난을 겪은 이야기하면서 대성통곡치지 않는가.
     백두산은 줄기줄기 뻗어 개마고원의 수많은 산과 태백산과도 이어졌고 북으로 줄기줄기 뻗어져 대흥안령과 소흥안령과 이어졌으며 서북쪽으로 료동 반도와 발해에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동으로는 장고봉을 넘고 우쑤리강을 넘어 저 동해에까지 천고의 비밀을 안고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이때 검둥이가 또 앞으로 뛰여나가면서 “왕!왕!” 짓기 시작했다.
    성칠은 어께에서 총을 내리어 개가 짖는 쪽으로 겨냥하면서 살펴보았다. 금방 달아났던 호랑인가고 경계하였는데 웬 사슴이 절룩거리면서 김이 물물 나는 강물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검둥아! 축!”
    성칠이 지령을 받고 검둥이가 사슴을 쏜살같이 쫓아갔다. 사슴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절룩거리며 눈밭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상한 다리를 가지고 뛰면 어디로 뛴단 말인가! 검둥이가 사슴을 거의 따라 잡을까 말까 할 때 사슴은 김이 물물 나는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 건너갔다.
    웬 일일까?
    그 김이 물물 나는 강물을 건너더니 사슴은 다리를 절룩거리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검둥이가 아무리 쫓아가도 거리는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멀어졌다.
     “제길! 그럴 줄 알았더면 총을 갈겼겠는걸.”
     성칠은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듯 하였다.
     “검둥이야! 돌아오너라. 호랑이라도 만나겠다.”
     검둥이는 꼬리를 흔들거리면서 뛰어왔다. 사슴을 놓쳐 미안하다는 듯이 검둥이는 대가리를 눈밭에 파묻을 상하면서 엎드린 채 끼깅거렸다.
    “괜찮아! 어서 내려가자! 날이 어두워지는구나!”
    백두산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고 풍설이 일면서 무서운 귀신의 곡소리와 같은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칠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일어나고 허기지면 그물 속에서 꿩 다리를 빼서 검둥이와 함께 끊어 먹고 갈증이 나면 눈을 한 움큼 움켜쥐어 먹으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산 아래로 걷고 또 걸었다.
    마가을 해는 빨리도 지고 있었다. 벌써 해는 빛을 거둬가지고 물러서고 어둠이 원시림에 도사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휘파람을 불려 여기저기 수림에서 으르릉거리는 이리떼들의 소리와 무시무시한 죽음의 노래를 연주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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