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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9) 진달래와 사냥군 김장혁
2023년 12월 13일 09시 58분  조회:1118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9 .사냥꾼과 진달래
 
 
 
 
    햇빛도 비껴들지 못하는 원시림은 다시 무서운 정적을 되찾았다.
    구철과 성칠은 발구에 곰과 이리 몇 마리를 싣고 귀로에 올랐다. 말을 탄 진달래는 앞에서 혹시 야수들이 덮쳐들까봐 앞길을 살피면서 달려 나갔다.
    집에 돌아와 곰을 부리어 창고에 끌어 들여가고 나니 어느 덧 점심 때도 훨씬 지나갔었다.
    성칠은 구철을 보고 “집식구들이 기다릴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구철은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극구 말렸다.
    “이 사람아. 숱한 짐승을 잡아 놓고 고기 한점도 먹지 않고 가겠나? 며칠 묵게나.”
   성칠은 “아닙구마. 집을 떠나온 지 오래기에 가야 합니다.”라고 하며 기어이 떠나려고 했다.
    “그럼 저 곰 고기와 멧돼지 고기를 얼마간 가지고 가게나.”
   구철은 딸을 돌아보았다.
   “멧돼지야, 오빠를 배랠 차비를 해라.”
    “예, 알았어요. 아버지.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요.”
     멧돼지는 구철을 보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왜 그래?”
    구철은 나무장작을 안아 부엌에 들여가다가 몸을 뒤로 반쯤 탈면서 물었다.
    멧돼지는 몸을 흔들어댔다.
    “아버지, 이젠 멧돼지라고 부르지 마세요."
     구철은 씨무룩이 웃었다.
      "왜?"
      진달래는 입이 뽀로통해 종알거렸다.
     "성칠 오빠 나한테 고운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뭐겠공?"
      구철은 성칠과 진달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뭔데?"
     "진달래, 어때요?”
    “그래?  참 좋구나. 백두산의 진달래는 눈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지. 진달래야, 해가 지련다. 어서 오빠를 모시고 갈 준비를 해라.”
    “예.”
    진달래는 생글방글 웃음 지으면서 나무장작을 한 아름 안고 아버지를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 이윽고 그녀는 집안에서 호랑이가죽옷을 한 견지 들고 나왔다.
    “오빠. 이걸 바꿔 입어요. 가죽옷이 다 째졌어요.”
   진달래는 성칠의 째진 웃옷을 봇기고 새 가족옷을 갈아입히면서 마음이 아파했다.
   "에이고, 잔등이 멧돼지 이빨에 깊숙이 긁히었어요. 쯧쯧 , 피고드름이 다 맺혔어요.”
    성칠은 호랑이가죽옷을 갈아입은 후 검둥이를 불러 뒷간 쪽으로 데리고 가서 검둥이의 째진 귀에 대고 오줌을 쌌다.
     그러자 검둥이는 대가리를 흔들어 오줌을 털어버렸다.
     “검둥이야, 오줌은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온 명약이다. 아까운 약을 털어버릴게 뭐냐?”
      진달래는 피씩 웃었다.
     (오줌이 무슨 명약이람? 진짜 명약은 우리 백두산 약초인데.)
      구철은 벌써 곰의 각을 뜯어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성칠은 구철을 도와 각을 뜯고 진달래는 나무토막을 안고 집에 들어가 물을 끓인다, 쌀밥을 짓는다 하면서 복숭아이마에 땀방울을 줄줄 흘렸다.
     한참 후 성칠은 쌀밥에 멧돼지고기장국을 두 사발이나 먹었다. 
     구철은 더 만류할 수 없음을 알았다.
      “성칠이, 저 곰 두 마리와 이리 두 마리를 가지고 가게나.”
      그러나 성칠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많이 어떻게 가지고 가겠습둥? 이 심산 밀림에서 굶어 죽을 번 했는데 덕분에 살아 남은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구철은 아주 통이 큰 사내대장부였다.
      “에끼, 이 사람아. 야수들에게 죽을 번 하면서 숱한 야수를 잡았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보내겠나. 저기 적토마 옆구리에 싣고 가면 돼. 곰의 열도 둬 개 빼놓았는데 가지고 가게나. 내장 병에 참 좋은 약이지.”
     성칠은 한 마을에 사는 엄창렬이 폐병이 심한 것이 머리에 또 올라 곰의 열 두 개는 받아두었으나 적토마마는 재삼 사양하였다.
    “적토마를 보내고 뭘 타고 사냥하겠습니까?”
    구철은 손까지 내저었다.
     “적토마 두 마리나 되는데 걱정인가. 저 적토마는 새끼를 밴 암말이네. 명년 봄이면 망아지를 낳을게야. 근심두 팔자야. 곰 네 마리나 잡아두고 가는데 말 한필을 주는게 무슨 그리 대순가?”
     구철은 통쾌하게  “허허허” 웃었다.
    성칠은 적토마에 곰의 고기를 백여 근 달고 떠나게 됐다.
    진달래가 고개를 갸웃하고 궁리하다가 성칠을 따라 나섰다.
    “오빠를 바랠 게요. 가다가 또 야수무리를 만나면 어쩌겠어요.”
    성칠은 말 잔등에 오르면서 히쭉 웃었다.
     “근심하지 마오. 사냥꾼이 야수를 두려워 처녀의 호송을 받겠소? 소 웃다가 꾸러미 터지겠소.”
     “멧돼지야! 아니, 진달래야. 조심해 갔다 오라!”
     “예.”
    성칠은 구철에게 큰 절을 올리고 진달래와 함께 적토마를 타고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떠나갔다.
    검둥이와 얼룩이는 신이 나서 앞에서 쌍쌍이 꼬리를 휘저으면서 달려 나갔다.
     그들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고 말을 타고 원시림 속을 달렸다. 적토마를 탄 성칠과 백마를 탄 진달래는 참말로 한 쌍의 백마왕자와 백마공주 같았다.
     성칠이 피뜩 보니 말을 타고 개털 모자를 쓴 진달래의 얼굴은 눈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매화꽃송이 같았다. 진달래는 성칠의 눈길을 느끼자 부끄러운지 두 다리로 말배를 툭 차더니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들은 눈보라 속을 헤가르면서 원시림에서 한참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한식경이나 달리니 눈 덮인 수림이 사라지고 단풍이 든 원시림이 나타났다.
     성칠은 말고삐를 낚아채더니 진달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진달래, 이젠 해가 져가는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오.”
    진달래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면서 개털 모자를 벗어 다시 꾹 눌러썼다.
     “괜찮아요. 여기부터 야수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인데요. 좀 더 바래드릴게요.”
     성칠은 진달래를 쫓아가면서 “아니야. 이젠 돌아가라고.”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달래는 계속 달려가면서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또 한참 내리달렸다. 이젠 원시림이 끝이 나고 가둑 나무와 싸리 밭이 나타났다.
     성칠은 또 말렸다.
     "진달래, 이젠 돌아가오.”
     그제야 진달래는 닫는 말을 천천히 멈춰 세웠다.
     그녀는 개털 모자를 벗어 쥐고 성칠을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성칠은 곰의 고기를 넣은 가죽주머니를 바로잡아놓으면서 물었다.
      “뭘?”
      진달래는 먼 수림 속을 바라보다가 성칠에게 철색얼굴을 돌렸다.
       “집에 어린애 몇인가요?”
      성칠은 말채찍을 매만지면서 반문했다.
      “아, 그걸 왜 묻소?”
      진달래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쌍태 머리를 매만졌다.
      “물으면 안돼요?”
     성칠은 한숨을 후- 길게 내쉬더니 솔직하게 말하였다.
     “어, 괜찮지? 난 아직 자식이 없소.”
      그 말에 진달래는 숙였던 고개를 들면서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왜요? 오빠는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는가요?”
     그러자 성칠은 솔직히 대답하였다.
      “아니요. 장가를 간지 15년이 되는데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했소.”
      “그래요?”
      진달래도 한숨을 호- 내쉬였다.
      “형님은 아주 예쁘지요?”
     성칠은 헤벌쭉 웃었다.
     “어? 저, 그저 그래. 옛날부터 아내 자랑을 하는 건 상 머저리지.”
     그러자 진달래는 손으로 입을 싸쥐고 사내애처럼 깔깔깔 웃었다.
     “알았어요. 묻는 내가 우둔하지요.”
     성칠은 원시림 쪽으로 되돌아보더니 물었다.
     “진달래, 이젠 야자 해도 되지?”
     진달래는 호호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되고말고요. 열두 살이나 이상 오빤데요. 얼마나 어색하구 장벽이 있는 것 같았는지 몰라요.”
     성칠은 또 재촉했다.
     “이젠 어서 돌아가라. 이 다음 사냥하러 이 근방에 오면 내 꼭 여동생 집에 올 거야.”
    진달래는 떠나려 하지 않고 흉금을 털어내놓았다.
    “오빠, 난 이 인적 없는 원시림이 싫어요. 생각 같아서는 나서 자란 고향으로 가고 파요. 어려서 돌 뿌리기를 연습하던 고향의 강가로 돌아가고 싶어요. 눈 감으면 고향의 강이 막 떠올라요. 그러나 아버지가 일본 놈을 쏴 죽인 죄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오빠네 명천 산골에라도 가서 살고 파요. 그 곳에 큰아버지도 계시거든요. 아버지는 일본 놈들에게 잡힐까봐 이 산속을 떠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짐승처럼 원시림에서 한 발작도 못나가고 5년 동안이나 갇혀 살았어요.”
      성칠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아직 우리 명천에는 그 쪽발이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잘 대해주면 그렇게까지 악독할까?”
      진달래의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오빠는 그 놈들을 몰라요. 얼마나 악독한 놈들이라고.”
      “알았다. 내라고 그 쪽발이들을 고와 그러겠니? 그저 지껄이지 말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자는 거지.”
      이어 그는 진달래의 손에서 말고삐를 잡아 채 말머리를 돌려놓으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젠 돌아가라. 시간이 나지면 우리 명천에 아버지와 함께 놀러 오렴. 구장 큰아버지도 만나고. 빨리 돌아가라.”
      진달래는 갈라지기 아쉬워하면서 이슬 맺힌 깜장 눈을 끔쩍이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오빠네 일가와 구장 큰아버지를 보면 인사를 전해줘요. 잘 돌아가세요. 오빠!”
      “다시 만나자!”
     적토마와 백마도 갈라지기 아쉬워 “오 호 홍!”, “투루루!”하고 투레질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서로 응시하였다.
     적토마와 백마는 주인들이 박차를 가하자 남북으로 갈라져 천천히 달려 나갔다. 백마와 적토마는 점점 멀어져가고 말 잔등의 남녀는 자꾸 서로 뒤를 돌아보았다. 서로 흑점이 돼 아물거리다가 진달래는 눈 덮인 원시림 속으로 사라지고 성칠은 누런 개마고원 산기슭으로 사라졌다. 
     사냥군과 진달래는 공간적으로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앞을 갈릴 수 없는 눈보라 속에 진달래와 사냥군의 알고도 모를 정은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씨를 뿌리고 점점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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