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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2) 호랑이와의 박투 김장혁
2024년 01월 11일 14시 10분  조회:86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2장
 
 
            3. 호랑이와의 박투
 
 
 
      이튿날 창렬은 성칠이 준 곰의 열을 내놓으면서 명순에게 분부했다.
      “여보, 이제 늙은 게 더 살아 뭘 하겠소. 이걸 팔아서 빚을 갚고 은녀를 데려 내오오.”
      때마침 성칠이가 문안하려고 집안에 들어서다가 창렬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은 얻기 힘든 귀중한 약잽구마. 곰의 열을 잡숫고 페병을 치료합소. 내 오늘부터 사냥해서 그 빚을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그 곰의 열은 꼭 잡수시오.”
     창렬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꼬장꼬장 마른 곰의 열을 들고 쳐다보였다.
     “이걸 먹기보다 이걸로 은녀를 데려 내오면 얼마나 좋겠소. 쿨룩, 자네가 황소 네 마리 값에 맞먹는 쿨룩, 쿨룩 빚을 어떻게 갚는다고 그러오?”
      그러나 성칠은 억대우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고집썼다.
      “은녀 아버지, 곰의 열을 달여 잡숫고 몸조리를 잘 하시오.”
    성칠은 밖에 나가 적토마에 훌쩍 뛰어올랐다.
    은희는 바깥에 나와 바랬다.
   “오빠, 잘 다녀오세요.” 
     “응, 잘 있어라.”
    성칠은 은희와 상호를 돌아보며 명순에게 다시 인사하고 말을 달려 산으로 올라갔다.
    명순은 은희와 함께 낫과 새끼를 들고 버치 골 쪽으로 내려갔다. 동네 집 성칠이가 사냥해서 자기 집 빚을 무는 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버들을 베다가 버치라도 틀어 팔아서 보태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가을이었건만 참나무가지는 봄기운을 잃지 않은 듯이 물빛이 어려 있었다. 줄기에만 버드나무 잎이 몇 개씩 매달려있는 앙상한      버드나무가지들이 한길수에게 은녀까지 빼앗기면서 당하고 있는 명순 일가의 처지와 같아 가엽게만 생각됐다.
   그들은 물기가 파란 버드나무가지들을 한 줌 한 줌 베여 땅바닥에 모아놓았다.
   한참 낫질을 하다가 명순은 허리를 펴고 팔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이런 생각을 다했다.
    “호- 성칠에게도 아들이나 하나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옥은 어쩜 애도 하나 못 낳아?”
     그녀는 너무 싱거운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허리를 굽히고 낫질을 하여댔다.
    한편 사냥을 나선 성칠은 노루와 꽃사슴을 보고도 범이나 곰을 놀랠 까봐 총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곧추 령을 몇 개 넘어 한 달전에 암 콤을 잡은 그 낭떠러지 위로 말을 타고 올라갔다.
    한참 달리다가 그는 나무에 말고삐를 슬쩍 매놓은 후 바위 위에 앉아 한식경이나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곰이 얼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검둥이가 귀를 곤두세우더니 벌떡 일어나 사위를 쳐다보면서 끼깅거렸다. 뒤이어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성칠은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노린내를 맡자 호랑이가 부근에 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인차 총에 장탄한 후 바위 옆의 큰 나무 우에 올라가 주위를 신경을 도사려 살폈다.
    “따 웅!”
    얼룩호랑이 낭떠러지 아래로 성큼 뛰어 내렸다. 분명 주린 호랑이가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검둥이가 낭떠러지 아래에서 왕왕 짖으면서 호랑이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유인해갔다.
    호랑이도 그리 쉽게 얼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검둥이를 덮쳐드는 척 쫓아버리고는 곧추 성칠이 바라 올라간 나무 밑에 어슬렁어슬렁 기어오더니 사발 눈으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호랑이는 나무 우에 걸터앉아 총을 겨냥하고 자기를 노려보는 성칠을 발견하자 “따 웅— ” 하고 울부짖었다.
    땅!
    성칠은 선제공격했다. 철알에 빗맞은 호랑이는 성난 사자마냥 픽 돌아섰다. 사발 눈에서 불이 이글거렸다. 호랑이는 저쪽으로 달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덮쳐왔다. 그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나무에 올라탄 성칠의 발밑에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성칠의 발밑을 스치면서 바위 저쪽에 풍덩 뛰어넘어갔다. 이렇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날뛰어 풍덩 떨어지군 했다. 세 번 덮쳐 아가리로 물지 못하자 날아지나가면서 쇠꼬리 같은 꼬리를 휘둘러 성칠을 땅 쳤다. 다행이 꼬리가 먼저 나무줄기에 맞은 후 성칠의 얼굴을 때렸다. 성칠은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대번에 눈앞에서 번개치는 듯 하더니 코앞에서 따뜻한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는 저쪽 낭떠러지아래까지 달아나서 사발 눈을 슴벅이면서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칠은 사냥총을 겨냥했다.
      땅!
    호랑이는 또 빗맞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호랑이가 날린 꼬리에 맞아 성칠은 눈에 별찌가 일어나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칠은 팔소매로 뻘건 코피를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참 재수 없군. 끝내 놓쳐버렸군.”
    그는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지어 내리었다. 검둥이가 달려와서 꼬리를 휘청거리면서 문안이라도 하는 듯이 피 묻은 코앞을 핥았다.
    “검둥아, 일없다. 어서 이곳을 떠나가자.”
    성칠은 말고삐를 풀고 말 잔등에 올라 검둥이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속을 살피면서 수림 속을 빠져나왔다. 가을하늘도 높아진 듯이 명랑해졌다. 저 건너 쪽에 나무가 없는 곳에 감자밭이 보였다.
    “옳지, 놀란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바에는 해 지기 전에 멧돼지라도 잡아가야지. 전번에 덫을 놓은 게 걸렸는가도 가보자.”
    그는 말에서 내려 검둥이 뒤통수를 다독이고 나서 감자밭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볼라니 덫에 거먼 무엇이 걸린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겠지. 아무튼 빈손으로야 돌아갈 수 없지.”
    성칠이가 다가가 보니 검둥이만한 중멧돼지 한마리가 덫에 걸려있었다. 성칠이가 그 놈을 덫에서 풀어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 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크!”
    성칠은 저쪽에서 삐죽한 주둥이로 땅을 뒤지면서 감자를 파먹는 송아지만큼 한 암 멧돼지를 보고 황급히 감자밭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적송나무밭 쪽으로 뛰어갔다.
    멧돼지도 이쪽 인기척을 느끼자 감자를 파먹다 말고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상하게도 멧돼지의 잔등에 애솔나무가 자라나있었다. 분명 멧돼지는 사냥꾼들의 총알이 싫어서 소나무밭에 가서 송진에 대고 몸뚱이를 비비다가 모래밭에 가서 딜딜 굴렀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멧돼지의 온몸은 송진과 모래알이 들어붙어 철갑을 두른듯하게 됐다. 그 놈 멧돼지는 솔 씨가 송진과 함께 잔등에 들어가 박혀 애솔나무가 자랐던 것이다.
    성칠은 멧돼지가 자기를 완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감자를 파먹는 틈을 타서 뒤로 살금살금 달려갔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멧돼지 배때기에서 파란 불티가 일었다. 그러나 모래 철갑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총소리에 놀란 멧돼지는 몸뚱이를 홱 돌렸다. 화약 냄새를 맡은 그 놈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성칠에게 덮쳐왔다. 성칠은 미처 장탄을 할 새 없어 총을 버리고 장딴지에 찬 비수를 쑥 뽑아들었다. 멧돼지가 곧게 덮쳐들자 성칠은 옆으로 살짝 피했다가 비수로 멧돼지 배때기를 푹 찍었다. 철갑 같은 모래철갑을 꿰뚫고 멧돼지 배때기에 비수가 박혔다. 그러나 비수를 되빼기 전에 멧돼지는 홱 돌아서 재차 공격하여왔다. 이때 검둥이가 멧돼지 뒤 다리를 물어뜯고 적토마가 뒤 발질로 멧돼지를 차댔다. 그 틈을 타 성칠은 재차 습격해오는 멧돼지를 피했다. 그는 인차 사냥총을 집어 들고 나무 밭으로 달아났다. 그는 적송나무를 안고 빙빙 돌면서 장탄했다. 멧돼지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덮쳐드는 찰나였다.
    땅!
    성칠은 멧돼지의 아가리 안에 사냥총을 넣을 지경으로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멧돼지가 송곳니로 깨무는 바람에 총대는 부러지고 멧돼지는 맥없이 성칠의 앞에 털썩 쓰러졌다. 성칠도 멧돼지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검둥이는 멧돼지가 숨을 쉬는 것을 보고 목을 깨물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았다.
     한참 후 성칠은 멧돼지 배에 꼽힌 비수를 뽑아 배를 가르고 염통과 간, 폐를 꺼내 검둥이에게 줘 먹이고 몸뚱이를 반쪽씩 갈라 말 잔등 양쪽에 척 걸었다.
     그가 말고삐를 잡고 감자밭을 떠나려고 할 때다.
     “그 놈 멧돼지들이 감자밭을 도륙냈구나.”
    백발이 성성한 한 영감이 호미를 쥐고 거의 절단 난 감자밭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백발영감 뒤에 젊은이 대여섯이 호미와 괭이를 쥐고 걸어오고 있었다.
    “감자밭을 밟아 못쓰게 만들어 미안합구마.”
    작달막한 영감은 말에 처맨 멧돼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오. 멧돼지들을 잡아서 감사하오."
    성칠은 중멧돼지를 말 잔등에서 내리워 놓았다.
    “이 멧돼지들은 이 감자밭을 파먹고 자란 멧돼지입니다. 가져갑소.”
    그러나 영감은 받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잡은 멧돼지를 가지고 가오.”
    성칠은 “원래 다 드려야 하겠지만요. 남에게 진 빚이 있어 이 작은 멧돼지만 드립니다. 꼭 받아주시오.”라고 했다.
    “보아하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성칠은 한길수네 빚 대신 부엌 여로 들어간 은녀를 빼내오려고 사냥하게 된 경과를 죽 이야기했다.
    백발영감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멧돼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성칠이 억지로 밀어주었다.
     백발영감은 마지못해 멧돼지고기 반쪽을 받으면서 물었다.
    “젊은이, 고향이 어딘가?”
    “이 산 너머 영월동입니다.”
    “오, 그렇구먼.”
   백발영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인사했다.
   “난 운주동 최구장이오. 얘들은 다 내 아들들이요.”
   성칠은 말고삐를 놓고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아니, 젊은이, 이게 웬 일이가?”
    최구장이 바삐 성칠을 붙잡아 일으켰다.
   성칠은 일어나며 “혹시 최구철이라고 압니까?”
   최구장과 아들들이 놀라운 기색을 띠었다.
    “그래. 내 동생이지. 어데서 본적이 있소?”
    성칠은 최구장의 두 손을 잡았다.
   “이전에 구철 삼촌의 신세를 많이 졌습구마.”
   그는 백두산에 갔을 때 있은 일을 죽 이야기했다.
   최구장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정말 넓고도 좁은 게 세상인가 보오. 일본 놈들에게 쫓긴 동생이 백두산까지 들어가 숨은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내게 연루될 까봐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요.”
    최구장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에 맑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성칠은 최구장과 갈라지면서 인사했다.
    “삼촌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최구장은 성칠의 두 손을 잡고 반가와 했다.
    "후에 다시 구철을 보면 놀러 오라고 전해주오."
    "예."
    성칠은 최구장 일행과 갈라져 말고삐를 잡고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최구장의 맏아들 경숙은 메 부리 코를 쓱 문지르면서 “그 형님이 인심도 후하오. 멧돼지고기 반쪽이나 주다니.”라고 했다.
    둘째아들 경인이 맞장구를 쳤다.
    “함경북도 사람들이 원래 인심은 후한 거야.”
    한편 성칠은 검둥이와 적토마를 이끌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지 않는 수림 속을 걷고 걸어 어느덧 샘물터에까지 왔다.
    그제 날에는 이 샘물터에서 은녀가 떠주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풀었는데 오늘 샘물에는 낙엽이 둥둥 떠 있을뿐이었다.      은녀가 없는 텅 빈 우물을 내려다보노라니 성칠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검둥이는 은녀의 체취를 맡아 보려는 듯이 킹킹거리면서 은녀가 앉아 샘물을 퍼주던 샘물터의 납작한 바위돌이며 흐르는 샘물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었다.
    성칠은 말고삐를 쥐고 샘물가에 와서 적토마에게 먼저 시원한 샘물을 실컷 들이켜게 한 후 자기도 두 손으로 샘물을 퍼서 둬 모금 들이켰다.
    그는 손으로 입술을 쓱 닦으면서 저 아래쪽의 한길수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내려다보노라니 이가 갈렸다.
    그는 적토마와 검둥이를 끌고 곧추 엄창렬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마루에서 명순이 치마폭으로 무릎을 덮고 창렬과 마주 앉아 버치를 틀고 있었다.
    서산 버치골 쪽을 바라보니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여보, 성칠이 우리 은녀를 좋아하는 거 같소.”
    “그럼 어떻소?”
    “우리 은녀를 내오면 성칠의 작은댁으로 들여보내면 어떻소?”
    창렬의 말에 명순은 덴겁해서 도리머리질 했다.
    “우리 아무리 못 살아도 본댁이 새파래 살아있는데 첩으로야 못 주지요. 법이 없이도 살 병완 영감도 차마 우리 은녀를 아들의 첩으로 삼자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창렬은 고집했다.
   “쳇, 모르는 소리. 지금 맏며느리 하옥이가 십여년이 넘도록 애를 낳지 못해 속이 타 죽는데 작은며느리를 두지 않고 되겠소. 은녀를 지킬 사람은 성칠 밖에 없소.”
   명순은 영감을 외까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입귀를 비쭉했다.
   “당신네 영월 엄씨와 영월 김 씨는 옛날부터 통혼하지 않는 한 집안 같은 사람들이라면서?”
   그 말에 창렬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버치 골짜기 쪽으로 해 치마 봉을 올려다보니 벌써 치마봉 위의 구름송이에 불이 달린 듯이 저녁노을이 곱게 피고 있었다.
    “성칠은 언제 오겠냐? 후- 쿨루쿨룩.”
    그때였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성칠이 적토마 고삐를 잡고 마당에 들어섰다.
    창렬의 내외간은 동시에 환성을 질렀다.
   명순이 먼저 버들가지를 놓고 치마폭을 한손으로 걷어쥐고 마루에서 황급히 내려왔다. 창렬은 그제야 버들가지를 쥔 채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마당에 내려섰다.
    “잘 있었습둥?”
    창렬은 가냘픈 가슴에 성칠을 안고 떡판 같은 잔등을 어루만지였다.
    “그래,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먼. 이 가슴에 묻은 피는 웬 일인가?”
    “호랑이를 잡지도 못하고 꼬리에 빗맞아 코피를 흘린 것이니 일없습니다.”
    “에이, 안전에 주의하게나.”
    “예.”
    성칠이 말 잔등에서 멧돼지고기를 부리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힘을 보태주지 못하는 창렬은 안타깝기만 했다.
    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 모양이였다.
     “가만, 성칠이. 여기다 멧돼지고기를 부리지 말고 아예 실은 채로 한 영감네 집으로 가져가고 은녀를 데려 내오게나.”
    성칠은 도리가 있는 듯 해 부리던 멧돼지고기에서 손을 뗐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는 중 멧돼지고기 반쪽을 부리어 부엌에 들여갔다.
    “이건 잡수시오. 한영감이 멧돼지 한마리만 받고 은녀를 내놓겠습니까?”
    그러나 창렬은 숨이 차 헐헐거리면서 고집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어. 쿨룩쿨룩, 저 전번에 나를 준 곰의 열까지 다 가지고 가서 통사정해보게나. 난 곰의 열을 먹기보다 은녀를 데려 내왔으면 심병이 뚝 떨어질 것 같네.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을 빼앗기니 가슴이 답답해 죽겠네.”
     성칠은 생각을 고쳤다.
    “곰의 열만은 그만 둡소. 한영감이 내놓지 않으면 내 이제 사냥을 더 해서 한 달 안에는 은녀를 꼭 데려 내오겠습니다.
   명순도 부엌에 들어가 함지에 물을 퍼들고 나왔다.
   “성칠이, 은녀 아버지 말을 듣소. 은녀만 데려 내오면 저영감의 병이 나을게요. 곰의 열을 가지고 가게나.”
   성칠은 함지 물에 손의 피를 썩썩 씻으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이 한 영감의 집으로 떠난 후 명순은 멧돼지고기를 베여 함지에 담아 이고 개울 건너 병완이네 집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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