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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23) 읽기 힘든 경 김장혁
2024년 03월 05일 11시 05분  조회:65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6. 읽기 힘든 경

 
 
     자오록한 안개 카텐이  서서히 걷히며 하루 서막을 멋지게 열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화가가 파란 하늘 도화지에  꽃구름도 둥실 띠워 놓고 자취를 감춘다. 아침 햇살이 은침, 금침으로 이영납새를 송곳질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기지개를 켠다.
    병완은 마루에 앉아 대통을 뻑뻑 빨면서 먹장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변화 무쌍한 하늘을 내다보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안돼. 우리 집 대 끊기게 할 순 없어. 첩을 들여앉혀서라도 성칠한테 떡돌 같은 손자를 안겨 줘야지.)
       마당 백약나무 가지에 난데 없는 까치 날아와 꽁지를 달싹이며 까깍, 까깍 울었다. 
      (오늘 무슨  기쁜 소식이 있다고? 흥, 누가 오겠는가? 옛날부터 여자가 애를 낳지 못하는 건 칠거지악중의 으뜸가는 죄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옥은 시집 온지 10년이 넘도록 애를 하나 낳지 못하지 않는가.)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병완은 하옥이 애를 낳지 못해 속이 다 대통 속 불처럼 빠직빠직 타들어갔다. 대통을 마룻바닥에 탁 털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장손을 안아보지 못하구 말겠다. 그만 기다렸으면 잘 기다렸지. 흥!”
     그는 지난해 가을 달밤에 성칠과 은녀가 한길수네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방둑 버드나무아래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본 후에는 착잡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은녀 영월 엄 씨만 아니어도 진작 새 며느리로 맞아들여 왔을 걸.)
     성칠의 일에 골머리가 아픈데 설상가상으로 막내딸 곰순마저 운주동의 전주 김씨네 맏며느리로 범석에게 시집 간지 석삼년이 지나가도록 태기가 보이지 않아 큰 근심거리였다.
     단오명절에 병완의 4대 스물일여덟이나 되는 식구들이 몽땅 영월동에 다시 모여 명절을 쇠게 됐다. 그런데 이튿날에 운주동의 최구장이 사촌동생 최구철과 조카 진달래, 맞아들 경숙과 둘째아들 경인을 데리고 영월동으로 찾아왔다.
    병완의 온 집안 식구들이 몽땅 나가서 마중하여 인사를 나눴다.
    특히 성칠은 구철의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까지 올렸다.
    그때 얼굴이 가맣게 탄 진달래가 나와서 성칠의 손을 잡고 생글방글 웃으며 반기었다.
     "오빠, 그간 잘보냈는가요?"
    하옥은 먼 발치에서 두 손을 앞섶에 모아쥐고  멍해 서있었다. 성칠은 아내 하옥을 보기 민망하여 뒤를 흘끔 돌아보면서 인차 손을 뺐다.
      모두들 집안에 들어와 좌석을 정하자 최구장이 염소수염을 슬슬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지난해 이 집 맏아드님 신세에 감자농사도 지켜내고 멧돼지고기도 잘 먹었어요. 참말로 감사해요.”
    “천만의 말씀을. 우리 두 집안이야 진작 서로 사돈이 아닌가요. 내 막내며느리 최사련이는 개성 최 씨 아닙니까? 그 집과 한집안 사람들이 아니고 뭣이요.”
     한참 족보를 따지더니 최구장은 최사련이 자기 집안 누이벌이 된다는 것을 인차 확인했다.
     작달막한 막내며느리 최사련은 임신한 몸으로 최구장과 최구철에게 인사를 올린 후 부엌에 내려가 동서들과 함께 점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후 병완은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또 인사를 올렸다.
     “어느 해 가을에 내 맏아들 성칠이 백두산까지 갔다가 최구철 영감의 신세를 많이 졌더구먼. 정말 감사하오.”
      최구장과는 달리 억대우같은 최구철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단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우리 사냥꾼들이야 세상을 다 자기 집으로 여기죠. 수림 속에서 서로 만나면 형제처럼 생각하지요.”
     진달래는 성칠의 처 하옥만 자꾸 쳐다보았다.
    사실 최구장이 이번에 진달래까지 데리고 온 것은 진달래의 청에 못 이겨 성칠의 집안형편 특히 성칠의 아내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다.
    최구장은 확실히 성칠에게 예쁜 아내가 있는 것을 보고 진달래의 혼사말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때 최구철이 형님에게 눈짓했다.
    최구장은 뜻밖의 혼사 말을 꺼냈다.
    “김 영감, 우리 두 집안은 세세대대로 피를 나눈 형제처럼 보냅시다. 하긴 이번 걸음에 우리 집 둘째아들 경인과 이 집 맏손녀와의 혼사 말을 하러 왔소이다.”
   병완은 놀랍기도 하고 기뻐서 바로 앉으면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저, 칼을 잘 쓰던 총각과 말이요?”
    최구장은 “예, 그렇소이다.”라고 대답했다.
    병완은 경인을 마주 보면서 거듭 치하했다.
    "전번에 청명절에 굿 구경을 하다가 보니 칼도 잘 쓰고 날래더구먼.” 
    경인은 제꺽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며 겸손하게 답례했다.
    “재간 없는 놈을 치하해주어 고맙습니다.”
   병완은 인사를 받고나서 기준을 돌아보았다.
    “ 좋은 일이오. 그러잖아도 맏손녀가 이젠 시집갈 나이도 돼서 신랑감을 찾아주자고 하였소이다. 이제껏 혼사 말이 많이 들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는데 잘 됐소이다. 어금이 애비는 어떻소?”
    기준은 경인을 다시 여겨보더니 시원하게 한마디로 뚝 찍어 말했다.
    “아버지 의향을 따르겠습구마. 아버지께서 결정을 내립소.”
     “이 일만은 아비가 결정하오.”
    그때 부엌에서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하던 어금은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병완은 원래 불같이 급한 성미인지라 이 혼사 말을 응낙했다.
    “좋소이다. 귀 댁 둘째아들을 둘째 손녀 신랑으로 맞아들이겠습구마.”
    “감사하옵니다. 경인아, 이젠 가시조부모부터 인사를 올려라.”
    최구장이 부탁하자 경인은 가시집 어른들에게 순서대로 일일이 큰절을 올렸다.
    병완은  성희를 보고  술상을 차리게 했다. 이윽고 뜨거운 사돈의 정을 나누는 술판이 벌어졌다. 
    운주동에 돌아온 최구장은 둘째며느리를 삼게 되여 속이 흐뭇하기로 더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정작 사돈보기를 하고 결혼잔치를 치르자니 돈이 없어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나갔다.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이 있다고 최구장의 집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다섯째아들 경석은 막내라고 응석받이로 자랐다. 그는 장가를 든 지 몇 해 되건만 어찌나 약 담배를 피웠는지 집 안에 큰 경을 칠 지경이었다.
    경석은 최구장의 집 앞 몇 집 건너 세간나서 살았다.
    최구장은 경석이 서당방을 나온 후 형내 할아버지 관준에게 보내 형내와 함께 한의를 배우게 했다.
    경석은 게을러 공부나 일이나 다 하기 싫어 했다. 그는 관준 스승한테서 귀동냥이나 해 침도 놓고 한의 처방도 좀 뗄줄 알게 됐다.
 그런데 량혜자한테 장가를 들어 세간 난 후부터 가장이노라고 병이나 봅네 하면서 집 일에는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후 우연히 약 담배에 맛을 들인 후부터 집구석에 들어 누어 약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혜자는 게으름뱅이 남편을 믿고 살기 힘들다고 내내 시아버지한테 찾아와서 고청을 들이군 했다.
    어느날 혜자는 경석이 시아버지 질책했건만 계속 집구석에 들어누워 약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는 것을 보고 눈이 퉁퉁 붓게 대성통곡쳤다.  나중에 그녀는 애 띠를 들고 뒤 산으로 스적스적 올라갔다. 그녀는 이를 옥물더니 정말 나무에 올가미를 매놓고 목을 턱 걸고 매달리고 말았다.
    경숙이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뒷산에 뒤쫓아올라갔다. 제수는 글쎄 나무 가지에 애 띠로 목을 매 둥둥 달려 있지 않겠는가.
    경숙은 황급히 축 늘어진 제수 몸을 무릎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목을 맨 띠를 풀었다.
   그는 지체할세라 제수를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왔다.
   제수 몸이 축 처져서 자꾸 내려가 춰 업느라고 엉덩이에 두 손이 가닿았다. 그러자 혜자의 몸이 옴찔 움직이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걸 아는 거 보니 살아났구나.”
   경숙은 중얼거리면서 제수를 업고 집에까지 돌아왔다.
   시어머니 성단은 작은며느리를 경숙의 잔등에서 받아 함께 가마 목에 눕혔다.
   성단과 옥실은 혜자의 손을 주물러 준다, 수건을 젖혀 이마를 닦아준다 하면서 분주히 서둘렀다.
   소문을 들은 형내가 달려와서 발바닥과 코에 침을 몇 대 놓았다.
    한참 후 혜자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젠 살았구나. 아가야, 물을 받아넘겨라.”
     혜자는 시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 넣는 물을 받아 겨우 넘기었다.
     그녀의 눈귀로부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양 볼을 적시면서 베개 잇에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최구장은 며느리 옆에 다가앉아 달래였다.
     “아가야, 내 경석이, 그 놈을 톡톡히 혼내 줄 테야. 다신 멍청이 짓 하지 말라우."
     혜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간신히 띠염띠염 말했다.
    "아,아버님, 어, 어떻게 저런 나, 나그네를 믿고 살아-요. 죽, 죽기보다 못 해-유. 흐흐흑, 흑흑.”
     “쯧쯧쯧,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새파란 나이에 이를 악물고라도 살아야지.”
    최구장은 답답해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집 안에서는 여인의 흐느껴 대성통곡 소리가 동네 떠나가게 끊임없이 울렸다. 애닲은 울음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에이며 깊숙이 파고 들었다. 딱 마치 초상난 집 같아 스산하기 그지없다.
     집 앞의 살구나무에 웬 비둘기가 앉아 날개를 파닥이며 하옥의 처지 불쌍해 굿이나 하듯 섧게 꾸- 꾸-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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