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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김장혁(28) 고양이 쥐 생각
2024년 03월 05일 18시 11분  조회:68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5. 고양이 쥐 생각
 
 
 
 
     길수와 응삼은 웃음주머니 흔들거렸다. 둥글소 같은 병완이 모르쇠를 댈까 봐 은근히 근심했댔는데 일이 술술 풀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 했다.
     길수는 막걸리 기운이 점점 피자  한시름을 턱 놓고 목침을 베고 그 자리에 스르르 쓰러져 굳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숱한 미녀들을 끼고 황제처럼 놀아대는 황홀한 꿈 속에서 자맥질하기 시작했다.
    응삼은 몸채에서 나오자 사랑채로 나갔다.
    문소리 들리자 춘선이 도도거리기 시작했다. 그 잔소리 오뉴월에 장독에 서리 낄 지경. ㅋㅋ
   “병완이 뭐 그리 대단해 주인은 하느님처럼 모신대요? 흥, 제 애비라도 그렇게 모시지 않을 거야.”
   “쉿-”
   응삼이 뾰족한 턱으로 몸채를 가리키었다.
   춘선은 눈을 흘기며 혀를 날름거리며 계속 도도도거리었다.
   “듣겠으면 들으라지. 뭐? 당신 사사건건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독집 한 채도 주지 않는대요? 병완이 뭘 했다고 도감에다가 은덩이까지  얹어 준대요? 이른 아침부터 불러다가 상빈대접하면서. 흥.”
    응삼은 여윈 주먹을 춘선의 머리 위에 쳐들었다.
    “야, 이년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들어. 작작 떠들어라. 입이 성해있는 게 원수냐?”
    춘선은 주먹을 피해 저쪽으로 드텨 앉으면서 계속 종알거렸다.
    “에이고, 바보 같은 나그네. 여편네와나 우쭐거렸지. 한뉘 꿉씬거려도 차례진 게 뭔가요? 맨 함경도 머저리들이 산골에 처박혀서 노는 꼬락서니 보기도 싫어, 진절머리 나! 흥!”
    춘선의 콧방귀에 응삼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다.
    “빌어먹을 년, 너네 남대치는 뭘 그리 잘 났냐? 굶어 죽는 거 주인이 데려다가 걷어 주고 이렇게 유식한 나그네한테 시집보내주니 어째 배때 쑤셔나니? 응?”
   춘실은  “빌어먹을 년”이란 말이 제일 귀에 거슬리었다. 그건 길거리에서 빌어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가 한길수를 따라 응삼에게 시집왔기 때문이었다. 응삼이 금방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다고 그녀는 가마뚜껑을 들었다 쟁강 놓으며 가마뚜껑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댔다. 
    “에이, 빌어먹을 년.” 
    꼴보기 싫어 응삼은 길죽한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바깥에 나가 버렸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병완은 집 식구들에게 금방 한길수에게서 들은 말을 죽 했다.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아버지, 좀 심중하게 고려하시오. 한 영감이 무슨 일로 선심을 다 쓰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난 믿어지지 않습구마.”
    그러나 병완은 자기 주견을 세웠다.
    “밑져 본 전이라구 삯전만 주면 해 볼만 해. 어금의 혼수도 마련하구. 마을 사람들도 몇 푼 되지 않는 밭을 믿고 어떻게 명년 보리 고개를 넘기겠니? 이 좋은 기회에 좀 벌어서 쌀이나 사서 보태면 좀 좋아?"
    성칠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다가 한길수 삯전을 안 주면 어쩝둥?"
   "삯전을 주지 않는 날부커 일하지 않지. 뭐.”
   병완은 벽이라도 차고 나가는 불 같은 성미였다. 그 성미를 알고 있는 성칠은 더 말리지 못했다.
   병완은 마른기침을 하며 우쭐 일어났다.
    “난 우시장 갈 차비를 하겠다. 너희들은 밭에 가서 감자나 파오너라.”
    병완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성칠을 되돌아보면서 부탁했다.
    “며칠 사냥을 못하더라도 밭일을 해라.”
   “예,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몸조심 합소.”
   성칠도 우쭐 일어나 바깥에 나갔다.
   그는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풀어내다가 소 수레에 메웠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를 수레에 앉히고  감자밭으로 떠나갔다.
   
     한참 후 응삼이 영팔을 데리고 헐레벌떡거리면서 올리막으로 올라왔다.
    “김 도감, 주인어른께서 허리 아파서 오시지 못하고 분부를 전하라고 하시여 왔습네다. 헤헤헤.”
    병완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세 귀 눈으로 응삼을 건너다보았다.
    “금방 다 말했는데 또 무슨 잔소리 그리 많느냐?”
    이번에는 영팔이 썩 나서면서 대답했다.
    “저, 주인어른은 김도감이 혼자 우시장에 가지 말구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랍디다.”
    병완은 목수도구를 넣은 멜 통을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가면서 대답했다.
    “알았네. 내 저기 덕성과 덕팔이, 창렬이, 동훈이랑 다 데리고 가지.”
   응삼과 영팔은 기뻐서 병완의 앞에서 춤이라도 출 듯 껑충껑충 뛰어 개울물 쪽으로 달려갔다.
    영팔은 징검다리를 단숨에 달아 건너갔다. 그런데 응삼은 징검다리를 토끼새끼처럼 뛰어 건너가다가 그만 돌을 빗 디뎌 그만 개울물에 풀러덩  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물병아리를 방불케 하는 응삼은 실 돌피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저 멀리 뛰어간 영팔에게 손을 휘저으면서 토성 안으로 오소리처럼 쫑드르르 달려갔다.
    병완은 그 우스운 모양을 보고 피씩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먼저 덕팔네 집을 찾아갔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덕팔은 기침을 쿨룩쿨룩 하며 시름시름 앓는 노친으로 하여 속을 여간만 태우지 않았다. 며칠 전에 병완은 덕팔에게 둬 냥짜리 은덩이를 가져다주면서 노친을 데리고 운주동에 있는 신설 집 자기의 관준 형님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병완의 형님 병관의 맏손자 관준은 이조말년 궁정의 어의였던 할아버지 김승중의 한의술을 물려받아서 어진간한 병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도 척척 진단해 처방을 떼였는데 약이 병에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리하여 병완이가 한번 관준 손자를 찾아가보라고 하는데도 고지식한 덕팔은 말을 들을 염을 하지도 않았다. 하긴 덕팔은 천생 남의 빚을 지거나 공짜를 얻어먹으면서 살지 않으려는 외고집쟁이였다. 그는 병완이 공짜로 주는 은덩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관준 의사를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하나 이번에 덕팔도 돈을 벌어 노친의 병을 치료하게 해야겠는데.)
    병완은 이런 생각을 구을리면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덕팔의 낮다란 초가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때 때마침 덕팔이 넓은 어깨에 통나무를 메고 뒤울 안에서 앞마당으로 나왔다.
    병완은 삽작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서면서 덕팔의 어깨 우에서 통나무를 받아 내려놓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시장에 좋은 부업거리 생겼네. 우리 함께 가 보기오. 한두 해 일하면 노친의 치료비두 벌게 아닌가?”
    덕팔은 통나무를 턱 깔고 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세히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가을걷이도 하지 않고 우시장 한끝으로 가겠소?”
   병완은 덕팔의 옆에 나란히 앉으면서 담배물주리를 꺼내 담배를 꿍꿍 다져넣고 붙여 물었다.
   “한길수가 우시장에 가서 층집짓기를 맡아 왔다오.”
   덕팔은 네모 번듯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쳇, 한길수를 믿고 돈 벌자구?  한길수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소. 죽게 일해서 그 놈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쳇!”
   “길수는 달마다 품삯을 딱딱 주겠다고 했소. 한마을 사람들인데 선전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구먼.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오면 되지. 뭐?”
   병완의 말에 덕팔도 담배를 붙여 물더니 담배연기를 후 길게 내뿜었다.
   “그럼 한번 가 본다? 가을은 철규와 점순에게 맡기지.”
   이렇게 돼 병완은 덕팔을 데리고 떠나게 됐다. 
   병완과 덕팔이 목수도구상자를 메고 개울을 건너 둔덕에 올라서는데 창렬이 허리를 구부정하고 나왔다.
    “형님네는 어디로 가오?”
   병완은 걸음을 멈추었다.
   “우시장에 집짓기부업을 하러 가는 길일세. 그런데 몸은 어떤가?”
   덕팔도 시시콜콜 앓는 창렬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창렬은 삽작문을 열고 나와 기침을 쿨룩쿨룩 깇으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래도 병완 형님이 준 은덩이로 약을 지어다가 먹었더니 많이 낫소.”
   그는 덕팔한테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혹시 흙짐이나 멜게 있으면 나도 좀 부르오.”
   병완은 생강처럼 바짝 마른 창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동생, 이 몸으로 어데 가서 일을 한다고 그러오. 집에서 병 치료나 잘하게나.”
   창렬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부탁했다.
  “저 상호라도 좀 데리고 가면 좋겠는데.”
   은녀와 상호가 삽작문을 나서더니 허리를 굽히면서 이구동성으로 곱게 인사했다.
    병완은 상호를 대견스레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얘들, 이젠 어른이 다 됐구나.”
    창렬은 집안형편이 가난하여 겨우 늦장가라도 들어서 얻은 은녀와 상호를 바라보면서 희죽이 웃음을 지었다.
    순간 그의 이마에 난 밭고랑 같던 주름살이 쭉 펴졌다.
    “우리 먼저 가서 품삯을 제대로 받게 되면 상호도 데리고 가지.”
    
   병완과 덕팔은 곧장 토성 안에 있는 길수네 팔간대청으로 들어갔다.
    그때 대문 앞에 진작 한길수와 응삼, 영팔이 진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병완은 걸어 나가 문안부터 했다.한 영감,  밤새 허리 아파 고생이 많았겠소.” 
    한길수는 반색을하였다.
   “자네가 일하러 가겠다니 허리 병이 뚝 떨어 기는 것 같네. 흐흐흐.”
   뒤이어 그는 개화장으로 땅을 짚고 서서 말했다.
   “아무튼 우시장에 가서 응삼과 합작해 일군들을 잘 관리해서 집짓기를 잘하게나. 내 여기서 마을사람들을 더 동원해가지구 며칠 후에 따라가겠네. 그럼 어서 길을 다그치오. 난 집에 들어가 좀 누워야겠소.”
    병완은 덕팔, 최동욱과 함께 병수가 모는 마차에 앉아 우시장으로 떠났다.
    개화장을 짚고 대문어귀에 선 한길수의 우멍 눈에는 살기에 찬 음흉한 눈빛이 서려있었다.
    (은녀를 당장 빼앗아 와야지. 아니야, 괜히 병완과 성칠이 펄쩍 날뛰겠다. 그러면 집짓기가 끝장나고 내 창창한 앞길이 막힐게 아닌가? 안되지. 꾹 참아야지. 내가 이 영월동과 운주동을, 아니야, 온 상우남면 나가서 우시장까지 쥐락펴락 할 때는 은녀 하나뿐이겠는가? 온 우시장의 계집들을 몽땅 내 집에 잡아와야지. 으흠!)
    한길수는 제 좋은 궁리를 하면서 대문어귀에서 떠나 집울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병완이네는 경찰국 대문 앞에서 총창을 비껴든 일본 헌병들에게 몸수색부터 당했다. 병완은 머리가 썩둑 잘리어 나간 것 같은 일본 놈 군모 밑의 짧은 머리를 보니 사람 같지 않아 보이었다.
   응삼이 무슨 종이장을 꺼내 일본놈 한테 건네고나서 뭐라고 손방아를 찧어댔다. 헌병은 종이장과 응삼이네와 병완이네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응삼을  2층집 대문 안에 들어가게 했다.
   한참 후 응삼이 강철을 데리고 나왔다. 강철은 병완을 보고 아는 척 했다.
   “아니, 이거 퍽 눈익은 분이구먼."
   응삼은 실돌피 같은 허리를 쭉 펴고 병완을 춰 올렸다.
   "이 분은 씨름장수 김병완 어르신님이네."
   "오- 글쎄 면목 있다니까."
   강철은 병완의 두툼한 손을 잡아 흔들었다.
   "장사님, 반갑습니다.”
   수다스러운 그 인사수작에 병완은 그저 눈인사를 할 뿐이었다.
     응삼이 어색한 기분을 깨려고 병완과 강철의 앞에서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꼽싹거렸다.
     “김령감, 이 양반은 내 동창생 류강철입구마. 이전에 운주동의 최구장에게서 천자문이랑 함께 배운 동창생이오. 류 선생은 일본까지 유학갔다가 와서 우시장에서 아주 갑부로 됐지요. 그래서 이번에 3층집을 짓게 됐소.”
     강철은 없는 배를 쓱 내밀고 어깨가 으쓱하여 부자인 척하면서 거들먹거렸다.
     “집만 잘 지읍시우. 삯전은 근심하지 맙소.”
    사실  일본 경찰국을 짓는 일이라면 병완이랑 목수를 그만 둘 것은 불 보듯 빤했다.  그래서 응삼과 한길수는강철의 집을 짓는다고 거짓을 꾸며댔던 것이다.
    병완은 그 놈들의 수다에 시끄러워 묵묵부답하고 돌부처처럼 덤덤히 앉아 있었다.
    그는 류강철이 일본 헌병군복을 입은 것을 보고 눈에 거슬렸다.
    (이 놈도 일본 사람들의 덕분에 갑부로 된 게 아닌가?)
    류강철과 응삼은 병완 등을 마차에 싣고 경찰국에서도 한 1리쯤 떨어진 뒤 산 쪽으로 달려갔다.
     둔덕진 곳으로 올라가 한참 걸으니 평평한 땅이 나졌다.
     류강철은 모자를 벗어 땀을 씻으면서 가죽장화를 신은 발까지 탕탕 구르며 지껄여댔다.
    “바로 이곳이네. 풍수쟁이를 청해 우시장 주변산수를 답사시켰지. 풍수쟁이는 이곳이 바로 우시장에서 집을 지을 천하제일 명당자리라더구먼.
     병완이 그 곳을 둘러보니 참말로 명당자리인 것 같았다.
      동쪽과 북쪽에는 기운봉에서 뻗어 내려 온 깎아지른 듯 험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었다. 서쪽에는 남대성하 지류가 흘러 지나가고 있었으며 둔덕아래 남쪽으로는 우시장 시내가 한눈에 안겨왔다. 참말로 우시장 시내에서 개미새끼가 기어가도 손금 보듯이 환히 살필 수 있는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다.
     병완은 류강철을 피뜩 곁눈질해보며 속궁리했다.
     ( 저눔이 갑부는 갑분 모양이지. 무슨 돈으로 3층집이나 짓는단 말인가?)
     병완은 류강철에게 “그래 집 도본은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류강철은 없는 배를 쑥 내밀고 날카로운 낯을 이쪽에 돌렸다.
      “도본이라니?”
   그는 의아해 병완이를 돌아다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머리를 꺼떡거렸다.
   “아, 설계도를 그러겠구먼. 근심하지 마시오. 이제 일본 설계사가 설계도를 가지고 올겝구마.  오늘은 공지나 돌아보고 푹 쉽소. 요 사람들로야 어떻게 일을 시작하겠습둥?”
   그러나 병완은 조급해났다.
    “이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우린 밭에 강냉이하구 감자를 걷어 들이지 못하고 널어 놓은 채 하루 품삯이라도 더 벌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대뜸 붉으락푸르락해 지는 병완을 보자 강철이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눈알을 굴리면서 떽떽거렸다.
   “이 영감이, 어느 안 전이라고 함부로 고함질인가? 품삯은 무슨 엿 먹을 품삯이란 말인가? 일하기 전부터 품삯을 달라고? 흥!”
    응삼은 실눈으로 병완의 노한 얼굴을 살피더니 손으로 강철의 허벅다리를 스리슬쩍 툭 치며 뱁새눈을 찔끔해보였다.
    “김 도감, 노여워하지 마오. 오늘 놀아도 삯전은 우리 한 어른께서 다 주오. 삯전 근심은 하지 마오. 오늘은  이제 일군들이 오면 그들을 지휘해 먼저 토성을 파면 되오.”
   덕팔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강철과 병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근심에 찬 그림자가 얼굴에 흘러지나갔다.
   강철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씨근덕거리다가 발로 돌 쪼각을 탁 차버리고 “흥!” 하고 코 방귀를 뀌더니 저 멀리로 가버렸다.
    바빠 맞은 응삼은 강철을 따라가 팔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나무람했다.
    “자네 어째 일을 망치자고 이래? 지금 일손을 하나 얻어 온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인 걸 모르는가? 우리 주인어른이 손이 발로 되게 빌어서 데려온 일군들이네. 우리 주인어른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품삯을 주기로 했네.”   
    강철은 침까지 퉤 내뱉었다.
    “대일본제국의 경찰국을 짓는데 무슨 놈의 삯전인가?”
   “언성을 좀 낮추게나. 저 영감들이 듣겠네. 성질이 불 같아. 벽이라도 마구 박차고 나갈 령감이야.”
   응삼은 뱁새눈으로 힐끔 저쪽 병완을 훔쳐보았다. 다행히도 병완과 덕팔도 뭐라고 쑤근거리면서 이쪽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덕팔은 병완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다.
   “저 일본 군복을 입은 치머리가 삯전을 정말 주지 않으면 어쩌겠소?"
   "삯전을 주잖으면 그만 둘판이지.뭐."
    "저 말하는 거 보오.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하지 않소?”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못 들었겠지. 우시장에 경찰국이 있는데 또 무슨 경찰국을 짓는다고 그러오? 우리 처음 들렸을 때 일본 헌병이 총창을 꼬나들고 보초를 서던 대문 안 집이 바로 일본경찰국이라던데.”
   그러나 덕팔은 계속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살림집터가 이렇게 엄청나게 클 수 있소?”
  병완도 반신반의했다.
   “글쎄 일본 사람을 초과하는 부자가 우시장에 있을 수 있소?  이제  도본이 오면 대개 알 수 있겠지.”
    “삯전을 주기만 하면 뭘 짓던지 관계는 없지.”
    덕팔은 더부룩한 구레나룻을 매만지면서  땅바닥에 누워있는 너럭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품삯을 주지 않으면 돌아가 한 영감과 따지겠소.”
    병완의 그 말에 덕팔과 동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때 응삼과 강철은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가 버렸다.
     한참 후 류강철과 응삼이 일본 군복을 입은 자와 함께 마차에 앉아 달려왔다.
    마차에서 내린 일본 사람이 누런 종이 장을 꺼내들고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하자 류강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응삼이 병완과 덕팔을 불렀다.
     그들은 일본 설계사의 설계도대로 먼저 동서가 한 150미터, 남북이 한 100여미터 되게 말뚝을 박고 하얀 실을 쭉쭉 쳐 놓았다.
     한참 역사를 하고나니 해가 중천에 둥실 걸렸다.
     응삼이 우시장에 내려가더니 뭔가 한보자기를 사들고 왔다.
    “자, 풍찬노숙하면서 우리 동창의 집을 짓느라고 고생들이 많소. 오늘은 이걸로 점심과 저녁이라고 먹소.”
    응삼이 보자기를 풀자 누런 강냉이떡에 마늘짠지였다. 병완이네는 집을 떠난 이상 별수 없이 그들은 강냉이떡도 맛있게 먹었다.
    덕팔은 강냉이떡을 한입 뚝 떼여 씹으면서 또 근심을 털어놓았다.
     “이제 해가 저물면 밤에 어데서 자오?”
    응삼은 뱁새눈을 한껏 크게 뜨면서 대답했다.
    “옳소. 오후에는 저기 가져온 재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초막을 짓소.”
    병완 등은 점심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먼저 토성을 쌓기로 한 북쪽에 인부들이  들 수 있는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해질 때까지 경사진 둔덕을 파고 반토굴 움막을 대충 지어놓았다.
 
    엿새 후에 한길수가 직접 마차를 타고 공지로 찾아왔다. 그는 개화장을 짚고 다 지어놓은 인부가 들 움막을 둘러보더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이, 수고 많았네. 먼저 엿새 품삯을 주겠소.”
    보통 하루품삯이 8전이나 10전이면 대단했는데 한길수는 한마을의 사람들이라면서 20전씩 주는 것이었다.
    병완은 한길수를 보고 “허리는 괜찮소?” 하고 문안부터 했다.
    한길수는 허리를 만지면서 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조금만 힘써도 아프오.”
    병완은 대통을 꺼내 담배를 쑤셔 넣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좌우간 품삯을 주니 고맙소. 그런데 어째 류 통역이 삯전을 주지 않고 한영감이 주오?”
    한길수는 그들이 든 움막 구들에 걸터앉더니 둘러댔다.
    “류 통역이 돈이 바빠서 그러는데 좀 기다리오. 그건 그만두고 병완이, 자네는 아직 목수 일을 할 게 없으니까 토성을 쌓는 일에서 손을 떼게나. 우리 마을 일군들로는 근본 이 집을 명년까지 다 짓지 못하오. 운주동과 신흥동, 가마골로 나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일군들을 더 모집해 와야겠네. 자네 아들과 손자들까지 다 데려오오.”
     한길수는 우멍눈으로 묵묵히 앉아있는 병완의 눈치를 힐끔 살피였다.
    거부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자 뒷말을 이었다.
    “거 최구장이 아들이 여럿이 되던데. 사돈인 자네가 나서서 좀 동원해보게나.”
    병완은 귀가 솔깃해하겠는가 하였는데 병완이 벌컥 성을 낼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한영감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얕잡아보기 시작했소? 내가 그까짓 도감을 바라고 여기로 왔는가 하오? 삯전이라도 벌어서 맏손녀 혼수 감이나 마련할 까고 온 게지.”
    한길수는 번들 이마에 송골송골 돋아난 땀방울을 팔소매로 뚝뚝 찍었다.
    “허허허, 김 영감, 내 말을 잘못해 미안하오. 품삯은 꼭 줄 테니 좀 동원해주오. 하루에 쌀 너 근씩 버는데 좀 좋아서 그러오? 한 일 년 일하면 농사 질을 하기보다 훨씬 낫게 벌게 아니오?”
    “에헴!”
    병완은 마른 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품삯만 주면 누군들 일하러 오지 않겠소?  동원해 보지.”
     “알았네."
   한길수는 개화장을 짚고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이유, 요 허리가 아파서.”라고 하면서
     한길수는 움막 앞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병완을 되돌아보았다.
    “내 마차에 앉아 집에 갔다가 오오.” 
    병완은 덕팔과 동훈을 되돌아보면서 작별을 고했다.
    “내 집에 갔다올테니까. 마가을 추위에 몸 주의하게나.”
    덕팔은 “형님, 잘 갔다가 오오. 우리 집사람과는 무사하다고 잘 전해주오.” 라고 말했다.
    그는 삯전 1원 20전을 병완한테 건네주면서 부탁했다.
    “내 노친한테 전해주오. 삯전을 버는데 철규도 오라고 전해주오.”
     그러나 최동훈은 자식을 하나도 보지 못해 그저 삯전만 병완의 손바닥에 달랑 올려놓았다.
     “이거나 우리 집 사람에게 주오.”
    병완은 품삯을 잘 건사한 후 한길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서산을 바라보니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땅에 얼굴을 비빌 지경이었다. 마차는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산둔덕을 내려 영월동을 바라고 달려간다. 비굴한 친일 아첨군들의 아부가 마차 뒤를 쫓아가며 뽀얀 먼지를 일구면서 코노래를 흥얼흥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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