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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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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
2015년 03월 25일 08시 57분  조회:3650  추천:6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1권

                             김장혁 저

                         
                                    


     
              제
1 천하장사와 반집 아들

                      1.물레방아 힘장사

       희끄무레하고 담담한 해가 짙은 구름층을 겨우 뚫고 나왔다. 한줄기 밝고 강한 햇빛이 금빛을 반짝이며 어둠침침한 수림 속을 부채살처럼 비춘다. 그것도 잠간, 희미한 해빛은 을씨년스런 수림을 춤추며 스치고 지나가더니 인차 몽롱한 안개와 구름  바다 속에 빨려 들어갔다. 대지는 또다시 어둠침침한 흑흑칠야를 방불케 하는 어둠 속에 잠겨 버렸다. 희미한 장막이 숨 막힐 듯이 금수강산을 짓누르며 구름 밑에, 안개 속에 지지눌린 영월동을 비참하게 짓밟고 있었다. 이윽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실로 미묘한 안개 속 수림바다의 절승경개를 자랑하려는 듯이 낙낙장송이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기암괴석이 안개 속에 륜곽을 드러내려고 애쓰고 있다.
     가녀린 잔디도 돌덩이를 떠밀고 일어나려고 애처롭게 기지개를 편다. 흑흑칠야 수림 속에서도 진달래꽃, 철죽꽃, 모란꽃이 가냘프게 피어 방실방실 수줍게 웃음짓는다. 가녀린 나리꽃도 수풀 속에 숨어 이쁜 얼굴을  반쯤 내밀고 무시무시한 사위를 살피며 산바람에 가만히 한들한들 춤을 춰 본다. 
       “뻐꾹, 뻐꾹”
      뻐꾸기 처량한 울음소리가 고요한 수림 속의 정적을 가늘게 깨우고 있었다.
      따- 웅-
      이때 산중 왕 호랑이가 아직도 자기 존재를 알리려는듯 수림 속의 고요를 뒤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산새들이 놀라 나무가지에서 포로롱 포로롱 날아났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 이슬 맺힌 파란 풀을 뜯어 먹던 사슴 떼들이 놀라 수림 속으로 깡충깡충 달아났다.
      안개가 차츰 개이면서 수림의 정체가 천천히 드러났다. 아름드리나무들을 꿰뚫고 저 먼 곳에서 하얀 파도를 끊임없이 일구는 퍼런 바다가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수십 길씩이나 되는 미인송들이 비탈을 덮고 산기슭까지 내려와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와서 주춤 멈춰 서 버렸다.
    그 아래 좀 평평한 땅바닥에 통 소나무를 기둥으로 척척 세우고 지은 팔간집이 목수의 재간을 자랑하면서 우뚝 솟아있었다. 턱턱 갈라터진 뻘건 기둥들은 이 집이 지은 지 퍽 오래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 싶었다. 개마고원기슭 삼림 속에 자리 잡은 영월동 제일 서쪽 집은 산골의 독특한 멋을 피우는 듯이 통나무 굴뚝이 지붕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었다.
       건뜻 들린 지붕과 추녀 너머 뒤 산골짜기에서 맑은 벽계수가 청석옥석을 부시면서 새하얗게 물갈퀴를 일구며 쿨쿨 쏟아져 굽이쳐 흘렀다. 맑은 벽계수는 집 앞으로 굽이쳐 흐르다가 물방아 함지를 힘 있게 친다. 그 맑고 힘 있는 물을 맞아 물방아가 세차게 돌면서 쿵더쿵 쿵더쿵 쌀 방아를 찧는다.
     물방아 공이가 쿵 하고 방아 호박 안의 쌀을 치고 건뜻 쳐들리면 옆에 오또기처럼 쪼크리고 앉은 성칠의 아내 하옥이가 방아 호박 안에 흩어진 쌀을 방아 호박 복판에 쓸어 모아 놓곤 하였다. 흰 한복을 입은 김하옥은 세월과 생활난에 부대끼었지만 아직도 그제 날   예쁘던 얼굴이 엿보였다.
      복슬복슬하고 걀쭉한 얼굴에 버들잎같이 굵직한 눈썹, 정기 도는 어글어글한 두 눈, 시골 아낙네답지 않게 빨갛고 얇은 입술, 어디를 보아도 산골에서 감자를 파먹고 사는 여인답지 않게 예뻤다.
       쿵더쿵 쿵더쿵.
      방아소리가 절주 있게 울린다. 시어머니 리성희와 며느리들인 하옥과 곱단이, 사련은 추석맞이떡가루준비에 바빴다. 굴뚝 저쪽 산기슭에서는 키가 훤칠한 김병완이 지게에 땔나무 대여섯 단을 해지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내려 왔다.
      혈기 왕성한 벌건 얼굴에 짙은 눈썹아래 이글이글 빛나는 눈, 우뚝 솟은 코에 두툼한 입술, 실로 잘 생긴 사내대장부였다. 쩍 벌어진 어깨라든가 소다리 같은 팔, 큼직한 손을 보면 힘을 쓸 사내대장부라는 것이 엿보였다. 하긴 그는 나무를 하러 가면 근본 낫이나 도끼 같은 것을 가지고 가는 법이 없었다. 빈 지게에 바 줄을 얹어 지고 가면 다였다. 어진간한 팔뚝 같은 나무도 밑둥을 거머쥐고 어깨를 들이대고 “윽.” 하고 들이밀면 뚝 부러져 나가곤 하였다.
      “헤이 차!”
      병완은 지게를 벗어 나무무지에 기대여 놓고 머리 수건을 벗어 먼지를 툭툭 털고 얼굴과 목의 땀을 쓱쓱 닦아버리고나서 나무 잎도 수건을 휘휘 휘둘러 털어 버렸다. 검둥이는 두 다리사이에 대가리를 파묻고 마당에 엎드려 있다가 껑충 뛰어 일어나 주인에게 달려가 앞발로 주인의 품을 짚으면서 "끼잉-" 하고 서적을 부렸다.
     “이 놈 개, 저리 가!”
      검둥이는 땅바닥에 뛰어내려 서서는 “끼깅” 거리면서 병완의 바지를 들추면서 코 김을 불어넣었다.
       병완은 검둥이가 귀여워 마디 굵은 다섯 손가락으로 검둥이의 뒤 덜미를 썰썰 어루만져주었다.
      이윽고 병완은 검둥이를 밀어 보내고 나무 단을 풀어 토막나무 위에 올려놓고 시퍼런 도끼를 휙휙 휘둘러 잔 나무들을 팡팡 팼다. 맏아들 성칠은 사냥을 가고 없었고 둘째아들 창준과 셋째아들 기준은 나무 짐을 메고 오더니 나무를 패서 무지기 시작하였다.
        성희는 방아를 다 찧은 떡가루를 버치에 담아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무를 패는 남편과 아들들을 보고 반색하였다.
“땔나무를 많이 해 와서 추석을 잘 쇠겠어요.”
       성희의 본가 집은 원래 경상남도여서 남대 말을 계속 하였다. 하여 여기 함경도 아낙네들은 그를 남도치 혹은 남대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성희는 “그럼 너거는 고슴도친가 베."하고 웃으면서 말대꾸를 하군 하였다.
       "이 산골에서 어데서 하얀 찹쌀을?"
       성희는 부엌 칸으로 들어가면서 한숨 섞인 말을 하였다.
      "보리 고개도 넘기 힘들었는데 어데 가 쌀을 얻었겠어요? 저 개울 건너편 칠백이네 집에서 떡가루를 내러 왔다가 한 대야 내주더군요. 호- ”  
       “그래도 작년 추석이겠소?”
      병완은 손바닥에 침을 뱉어 양손을 쓱쓱 비비더니 도끼를 쥐여 나무를 팡팡 패서 훌훌 쌓아 놓았다. 한식경을 패니 나무토막이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는 나무토막을 와락와락 한 아름씩 안아 부엌에 들여갔다. 나머지 나무토막은 가로 세로 에를 얽으면서 척척 쌓아 놓았다.
      병완은 원래 재간이 대단한 목수였다. 나무자도 없을 때에는 나무를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가늠해가면서 찍고 깎고 밀고 닦아 문을 짜면 문이 귀 간 곳이 없이 쑥쑥 들어가 맞았다.
     그가 저 아래 산골 어귀 토성안집 부자 한길수 영감네 팔간대청을 지을 때 일이다.
     병완이 한창 문을 짜느라고 대패질을 할 때다.
     며칠 사이에 출입문에 창문을 10여개나 짠 것을 보고 한길수 영감은 길쭉한 말상을 가로 저으면서 우멍 눈을 껌벅이더니 미심쩍은 눈길로 병완이가 대패질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창문 하나를 쥐고 어슬렁어슬렁 문틀 쪽으로 가더니 들어맞나 맞춰보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창문이 문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병완이, 이걸 보게나. 숱한 문을 짜더니 이게 뭔가?!”
      병완은 대패질을 그만두고 대패 틀 안의 대패 밥을 손가락으로 파내면서 이쪽에 눈길을 돌렸다.
      “뭐 어쨌다고 그리 야단이요?”
      “문이 문 틀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니까! 흥!”
     그  말에 병완은 알만하다는 듯이 스적스적 다가가더니 창문을 들고 보았다. 그는 두말없이 창문 네 변두리의 먼지를 손으로 싹싹 닦고 입으로 푸푸 불어버리더니 창문을 들어 턱 맞췄다. 창문은 문틀 안에 들어가 딱 맞고 실오리만한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굿이나 보던 한길수 영감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면서 도리머리 질까지 하면서 통 어이없어 하였다.
     마루 돌을 메여다 올릴 때다. 작은 마루 돌은 일군들이 다 메 올렸다. 이제 네 사람이 겨우 목도를 하여 겨우 수레에 실어온 엄청나게 큰 청석 마루 돌은 누구도 메기 싫어 뻔히 보고만 있었다.
     “아니, 멍청해들 뭘 해? 엉? 당장 정문 마루 돌로 올려 앉히지 못 할까?!”
     한 영감이 막대기로 땅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땅방울같이 을러멨다. 그러자 여러 머슴들은 세줄 그물을 청석 마루 돌 밑에 들이대었다. 그러나 아무리 넷이 달려들어 한쪽 귀를 들어보려고 해도 움쩍하지 않았다.
     “이봐라, 지레대로 떠들어라! 에이, 머리통은 뒀다 뭘 하느냐?”
     칠백의 애비 덕성과 용칠의 애비 성팔이 목도채로 한쪽 귀씩 떠들어 겨우 큰 쇠줄그물에 청석 마루 돌을 담았다. 그리고 앞뒤에 둘씩 목도를 멨다. 그들 넷이 목에 손가락만큼 한 피 줄을 일구면서 상통을 찡그리며 목도를 떠 메여 드니 우드득 우드득 목도채에서 소리 났다. 그들 넷은 힘겹게 한발자국한발자국 대뜰 아래로 다가갔다. 
     앞에서 비칠거리던 덕성이 갑자기 푹 꺼꾸러졌다. 그러자 한영감태기는 씽 달려들어 벼락같이 을러메면서 덕성을 마구 막대기로 후려 갈겼다.
     “손을 떼오! 남은 쓰러졌는데도 때리다니? 흥.”
     반공중을 짜개면서 울리는 병완의 천둥 같은 웅글진 목소리.
     “이 놈이, 뉘 하고 큰 소리냐? 제 집 머슴을 치는데 상관이냐?”
     한영감은 막대기로 병완의 앞에 대고 휘휘 삿대질하면서도 비실비실 뒷걸음 질 쳤다.
     “마루 돌을 옮겨가면 되지 사람을 칠 건 뭔가? 흥! 퉤!”
     병완은 버릇처럼 손바닥에 침을 뱉어 쓱쓱 비비더니 팔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성큼성큼 청석 바위 돌 쪽으로 다가갔다. 성팔과 덕성이 거들어주려고 하니 병완은 한손으로 밀어 부쳤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꿈틀거리는 용 같은 두 팔로 청석바위를 끌어안아 한쪽을 움쩍 쳐들어 어깨에 기대 세웠다. 그는 “끙” 소리와 함께 그 큰 청석 마루 돌을 어깨에 둘쳐 메고 엉덩이를 일으켰다.
     한영감의 눈이 다 새 똥그래졌다.
      “아니, 저게 사람인가? 황소인가?”
      병완은 청석 마루 돌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 대뜰아래에 슬쩍 내려놓았다.
      쿵!
      순간 바람이 쉭 일면서 먼지가 마루 돌 밑에서 일었다.
      모두들 그 장면을 보고 입을 짝 벌렸다. 눈이 새 똥그래졌다. 그들은 어깨 먼지를 툭툭 터는 병완을 쳐다보았다.
     손에 비지땀을 그러쥐고 뒤따라가던 덕성과 성팔 등 머슴들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들은 욱 병완한테 밀려가 함께 지레대로 청석 마루 돌을 바로잡아놓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이 영월동에서는 병완을 천하장사라고 혀를 끌끌 찼다…
    성희는 병완이 패 들여온 나무를 아궁이에 꽉 쑤셔놓고 불을 그어댔다. 쏴- 소리와 함께 불이 일면서 구들 고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떡가루를 물에 반죽해 솥 안의 시루 위에 얹으니 이윽고 가마에서 김이 문문 났다.
     시루떡이 다 돼 가는데 사냥을 나간 맏아들 성칠이 돌아오지 않았다. 병완은 마루에 걸터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여 물고 자꾸 산 쪽을 올려다보았다. 속이 탄 연기가 입안에서 꾸역꾸역 풍겨 나왔다.
 
              2. 곰과 생사박투

     성칠은 추석을 쇠려고 사냥총과 요도를 차고 사냥에 나섰다. 하늘아래 첫 동리인 영월동을 벗어나 산등성이 몇 개를 타고 넘으니 무시무시한 원시림이 나졌다. 호랑이와 이리떼들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무시로 들이닥칠 야수들을 경계하면서 성칠은 살금살금 원시림 속을 누비면서 헤쳐 나갔다. 그러나 점심이 되도록 꿩 꼬리도 만져보지 못했다.
      “후~”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사냥총을 푸른 이끼 낀 너럭바위에 기대 세워놓고 기대앉았다.
     순간 노린내가 물씬 풍기어오면서 코를 찔렀다. 성칠은 노련하게 본능적으로 손을 사냥총에 가져갔다. 그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볼 때였다.
    “에크! 저게 뭐야?”
     너럭바위 앞 낭떠러지에서 얼룩 곰 한마리가 커다란 바위 돌을 들고 앉아 있지 않겠는가.
     어미곰이 쳐든그 바위 돌 밑에서 새끼 곰 두 마리가 짐승의 뼈다귀를 아드득아드득 널고 있었다. 이 놈의 곰은 짐승을 잡아 각을 뜯어 너럭바위를 겨우 들어다 짓눌러놓았다. 어미 곰은 새끼 곰들을 데려다 바위 돌을 들고 먹이고 있었다.
     성칠은 민첩하게 바위 뒤에 숨어 사냥총을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야무진 총소리가 원시림의 고요를 깨뜨리며 메아리쳤다.
      순간 깜짝 놀란 얼룩 곰이 바위를 뚝 떨어뜨렸다. 얼룩 곰은 자기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도 모르고 낑 하고 고함치면서 어디에 사람이 있나 껑충껑충 뛰면서 헤덤볐다. 그러나 바위 뒤에 숨은 성칠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자 어미 곰은 다시 돌아와 금방 떨어뜨린 바위 돌을 움쩍 들었다. 그제야 새끼가 바위 돌에 깔려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얼룩 곰은 꽥 삼림이 떠가갈듯이 비감하게 소리쳤다. 그 놈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올라 새끼 곰의 각을 앞발로 쭉쭉 뽑아 사처에 던졌다.
     성칠은 너무 우스워 목구멍을 마구 떠미는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낭떠러지 아래를 살폈다. 얼룩 곰은 새끼 곰들의 각을 다 뜯어 사처에 쥐여 뿌린 후 끼깅거리면서 산중턱을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도 성칠은 얼룩 곰이 돌아올 까봐 아주 노련하게 낭떠러지아래 수림 속을 한식경이나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는 얼룩 곰이 확실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새끼 곰의 각을 주으러 조심조심 내려갔다. 그는 주위를 예리한 눈길로 살펴본 후 아무런 기척도 없자 새끼 곰의 다리며 갈비뼈며 주섬주섬 주어 주머니에 넣고 아구리를 바줄로 꽁꽁 묶었다.
       “끼깅!”
       갑자기 등 뒤에서 얼룩 곰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주머니를 활 던지고 사냥총에 손이 갔다. 몸을 홱 돌려보니 간 것 같던 얼룩 곰이 시뻘건 혀와 톱날 같은 이빨이 다 보이게 뾰족한 주둥이를 짝 벌리고 덮쳐왔다.
      성칠은 총을 쏠 새도 없어 사냥총을 쥔 채 몸을 훌 날려 얼룩 곰의 잔등을 뛰어넘어 갔다. 얼룩 곰이 둔중한 몸을 훌 돌리면서 덮쳐들 때다. 성칠은 땅을 구르면서 척 나무 가지를 하나 잡아 쥐었다. 뒤이어 발을 우로 걸더니 쉭 나무우로 올라갔다. 얼룩 곰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나무 위를 멍해 쳐다보았다. 얼룩 곰은 원쑤를 갚으려고 악을 딱딱 쓰면서 나무를 안고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성칠은 나무 가지를 발로 구르면서 다른 나무 가지 위로 날아가 서서 사냥총에 총알을 재워 넣었다. 곰은 또 이쪽 나무에 따라와 아득바득 기여오르려고 악을 썼다. 그는 얼룩 곰이 가까이 엉금엉금 기어오르기를 기다렸다. 짝 벌린 곰의 아가리에 대고 “땅!” 총을 놓았다.
      얼룩 곰은 아가리에 명중탄을 맞고 피를 튕기면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둔중한 얼룩 곰은 아주 교활했다. 성칠이 사냥총을 안고 땅바닥에 뛰어 내렸다. 죽은 것처럼 너부러져 있던 얼룩 곰은 벌떡 일어나 성칠한테 덮쳐들어 사냥총을 덥석 틀어쥐었다. 성칠은 얼룩 곰에게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틀어쥐고 안간힘을 다 썼다. 헛수고였다. 얼룩 곰은 아주 쉽게 사냥총을 빼앗아 뚝 끊어버렸다. 얼룩 곰은 아주 장난이나 칠 듯이 사람처럼 앞발을 들고 직립하여 덮쳐들었다. 그 찰나에 성칠은 옆구리에 찼던 보도를 쑥 뽑아 얼룩 곰의 숨통을 콱 찔렀다. 그런데 얼룩 곰은 날쌔게 오른 앞발로 보도를 콱 쳐버렸다. 뒤이어 얼룩 곰은 성칠을 안아 쓰러 눕히고 깔고 들어앉아 장난이나 치듯이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성칠은 아무리 일어나려고 악을 써도 육중한 얼룩 곰의 엉덩방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칠은 그만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올똘히 차리면 살 구멍이 있다고. 성칠은 땅바닥에 떨어진 보도를 피뜩 보았다. 그는 너무 숨이 막히고 아파 상을 찡그리면서도 얼룩 곰이 엉덩이를 들 때마다 간신히 조금씩 보도 쪽으로 기어가 손에 보도를 덥석 잡아 쥐었다. 그는 보도로 엉덩방아를 찧는 곰의 사타구니 새의 불 중태를 힘껏 찔렀다. 한 번, 두 번. 연속 칼질에 얼룩 곰은 모진 비명을 지르더니 성칠의 팔을 앞발로 내리쳤다. 성칠은 머리를 옆으로 탈면서 날아드는 얼룩 곰의 앞발을 보도를 쥔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날아드는 곰의 앞발을 피하지 못하고 팔을 썩 긁히었다. 순간 찢겨진 그의 팔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얼룩 곰이 자기 쪽에 돌아앉는 순간 불 중태에 보도를 쑥 박아 넣고 마구 휘저었다. 얼룩 곰은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성칠을 깔고 들어앉아 놓지 않았다. 성칠은 몸을 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육중한 얼룩 곰에게 깔리어 몸을 뺄 수 없었다.
그때 난데없는 병완이 쏜살같이 달려오면서 고함쳤다.
     “이 놈 곰놈아! 어디 죽어봐라!”
     병완은 쇠 발족 같은 무쇠주먹으로 얼룩 곰의 대가리를 연신 떵떵 쳤다. 얼룩 곰은 눈 통에서 피가 마구 튕겼다. 얼룩 곰은 드디어 입을 쩝쩝 다시더니 몸뚱이를 홱 돌려 병완한테 달려들었다. 그때 병완은 어데서 그런 힘이 났던지 날쌔게 얼룩 곰의 잔등에 돌아가 곰의 목을 끌어안고 홱 뿌리쳤다. 성칠도 그 틈을 타서 보도로 목 아래 시허연 삼각형 명줄에 콱 박아 넣었다. 얼룩 곰은 병완의 부자 앞에 쿵 쓰러졌다.
       병완은 육중한 얼룩곰에게서 눈을 떼고 성칠에게 눈을 돌렸다.
        “괜찮니?”
       “아이고, 아파 죽겠습니다.”
      성칠은 피 범벅이 된 오른 팔을 감싸 쥐고 상을 찡그리면서 발로 곰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곰은 대가리가 피 못이 된 채 꿈쩍도 하지 못하였다.
      원래 병완은 무슨 감각이 갔든지 나무를 패서 다 쌓아놓자 맏아들이 근심돼 찾아 떠났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이나 찾아서야 여기서 곰에게 깔려 봉변을 당하는 성칠을 찾았던 것이다.
      “얘, 그 긁힌 팔에 오줌을 눠라.”
      “예? 피 나는데 오줌을 싸면 아리지 않습니까?”
     병완은 성칠의 팔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줌 약은 조상들이 물려준 밀방이다. 오줌은 소염을 해. 손을 벴거나 긁을 디뎠을 때 오줌에 불구면 인차 지혈이 되고 독을 뺄 수 있다. 자, 여기에 오줌을 눠라.”
     성칠은 돌아서서 팔에 대고 오줌을 누웠다. 처음에는 좀 아린 감이 나더니 대번에 팔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아픈 감이 덜 났다. 참말 신기하였다.
    병완은 옷깃을 쭉 찢어 성칠의 오른팔을 꽉 싸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노할아버지 김수종과 할아버지 김승중은 모두 대대로 이씨 왕조 궁중 어의였다. 한번은 왕실의 어린 왕자가 저 서울에 있는 창덕궁 뒤 산에서 뛰놀다가 묵은 나무 긁을 딛여 발바닥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아파서 발을 싸주고 땔, 땔 굴면서 대성통곡 쳤단다. 그래서 시종들이 그 어린애를 업고 어의인 너의 증조부한테로 찾아왔단다. 그때 너의 증조부는 미리 받아둔 오줌을 담은 그릇을 꺼내 오줌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 왕자의 발을 불궈 주었단다. 그러자 대번에 피가 멎고 한 반시간 불구니 발에서 피가 더 나지 않고 애도 아프다고 더는 울지 않았단다. 그런데 후에 왕실의 어른이 치아가 통세 나서 증조부가 그 오줌 약을 입에 물게 했다가 들통이 나서 화를 입었단다. 미리 받아놓은 오줌이 없어서 증조부는 약방 뒤 문으로 나가 오줌을 눠서 도자기그릇에 쏟아 줬는데 그만 오줌이라는 것이 들통이 나서 곤장 20대를 맞고 궁중에서 쫓겨났단다. 그러나 그 왕실의 어른은 오줌을 입에 물고 치아 병을 치료했다는 말을 하면 왕실의 위엄에 손상이 갈 까봐 까딱 말을 내지 않았단다. 후에 왕의 동생이 그만 위병과 대장염에 걸려 항상 배를 끌어안고 땔, 땔 굴렀단다. 그래서 왕궁에서는 다시 증조부를 불렀으나 증조부는 다시 궁중에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러자 황궁에서는 만약 다시 왕궁에 들어오지 않는 날엔 구족을 멸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내렸단다. 그래도 증조부가 가지 않아서 대신 할아버지가 왕궁에 들어가 그 왕제의 동생을 치료해주었단다. 그런데 후에 또 왕의 동생에게 오줌을 대접해 위병과 대장염을 치료한 것이 드러나 할아버지는 황궁에서 곤장 50대를 맞고 쫓겨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왜서 왕은 우리 증조부나 할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게야 더러운 오줌을 대접받았지만 병이 나았으니 죽이지 않았겠지.”
     “그럼 왕궁에서 쫓지 말 것이지.”
     “그러나 왕실의 위엄을 보이느라고 내쫓았겠지. 자 , 팔에다 한 번 더 오줌을 눠라.”
    “할아버지가 계속 왕궁에서 어의를 했으면 우리도 서울에서 계속 살았겠는데. 참, 이런 산골에서 산단 말입니다.”
    “얘, 우린 이 산골이 딱 제일이다.”
     “글쎄 골안에서 살아도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의사를 하면서 서울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큰아버지는 의사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왜 하지 못합니까?”
     “예로부터 맏이에게 재간을 물려주는 법이다. 난 병권형님의 의사공부 뒷시중을 하느라고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에 있을 때 어려서부터 일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힘이 센들 왕이 되겠니? 그래도 할아버지 김수종 대로부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비방 책을 물려받은 병권형님이 더 잘 살게 됐지. 병권 형님네 큰집조카 관준이나 어린 큰집손자 형내까지 대대로 그 밀 방을 이어받아갔다. 나는 힘깨나 쓰니까 씨름판에나 돌아다녀 황소나 타고 말았지. 다 팔자 소완이지. 난 네가 맏이지만 사냥하는 재간밖에 물려 준 게 없다. 둘째 창준이나 셋째 기준에게는 물려준 재간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 힘을 물려받았으면 됐습니다. 허허허.”
     “그래?”
    병완은 해를 피뜩 올려다보더니  뒤 말을 이었다.
     “가을해는 짧기도 하고나.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서지 못하겠다.”
    병완은 성칠이가 오줌을 팔에 다 누자 천으로 싸매주고 나서 3백 근 되는 곰을 척 들러 메더니 앞에서 산아래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은 보도를 허리춤에 찬 후 왼손에 총을 주어들고 뒤따랐다. 아버지의 잔등에 척 내리 드린 곰의 반 몸뚱이와 사람 발 같은    곰의 발을 보면서 성칠은 아버지의 근력에 저도 몰래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이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에는 그들의 그림자가 몇 백미터 되게 길어보였다. 산들도 긴 그림자를 남기면서 영월동을 뒤덮어 놓고 있었다.
      이때 검둥이가 뛰어와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 끼깅거리며 그들 부자를 반겨 맞았다. 원래 성칠은 사냥할 때면 검둥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오늘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것은 검둥이는 쩍 하면 조심하지 않아 꿩이랑 날아나게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곰에게 물린 성칠은 검둥이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여간 후회하지 않았다.
     (검둥이를 데리고 갔더라면 되돌아선 곰의 자취를 미리 알 수 있었을 걸.)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도 마지막 황혼 빛을 뿌리면서 구름까지 태우는 듯 저녁노을을 붉게 불태웠다.
 
                3.달밤의 북장구소리

      그들이 집에 돌아오자 성희는 성칠의 상한 팔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성칠의 아내 하옥은 부엌쪽으로 돌아서서 저고리 고름으로 눈 굽을 찍었다.
    드디어 하옥은 눈물을 훔치고나서 얼른 치마자락을 쭉 찢어 달려나와 성칠의  팔을 싸매주었다.
    성칠은 히죽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괜찮아요. 아버지가 오줌 약을 쓰라 해서 지혈시켰어요.”
    "그래, 오줌은 참 좋은 약이지. 나도 한산 이 씨 가문에서 이 영월 김 씨 가문에 들어섰을 때에는 네 할아버지 오줌 약을 곧이듣지 않았던 거야. 후에 써보니 참 좋은 약이데. 나도 한번은 나무하러 갔다가 생 긁을 밟았어. 건데 할아버지 말씀대로 따뜻하게 덥힌 오줌에 발을 잠그니 인차 지혈되고 소염 되잖았겠나? 자, 빨리 집에 들어가 이 팔의 상처를 오줌 물에 씻어."
     어머니 말에 성칠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내 하옥도 뒤따라 들어갔다.
    병완은 마당에서 곰을 튀 하면서 오줌에 아들의 팔을 씻어주는 며느리를 보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 식경 후 병완은 곰을 다 튀를 해 각까지 뜯어 얼마간 갈라 바깥에 임시로 건 큰 가마에 넣었다.
     그때 동산마루 소나무 숲에 구리바라 같은 둥근달이 걸려 영월동에 금빛을 내리비췄다. 둥근달은 밝은 얼굴을 내리드리워 성칠 일가의 동정에 살폈다. 
    병완은 곰의 각을 뜯다가 기준을 보고 부탁했다.
“저 개울 건너 덕성과 성팔을 놀러 오라고 해라. 저 토성 안 한길수 주인영감도 오라고 해라. 곰의 고기 생겼을 때나 함께 한잔 하야지.” 
     “예. 알았습꾸마.”
    기준은 인차 개울 건너로 뛰어갔다.
     이윽고 이웃들인 덕성과 성팔이 등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아따, 이 집에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초저녁에 온 동네가 떠나가게 야단법석이오?”
    성팔이 길쭉한 얼굴을 잔뜩 쳐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다.
    병완은 바깥 부엌아궁이에 나무토막을 넣다가 호랑이 몸뚱이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우리 맏이가 곰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나눠 먹자고.”
    얼굴이 네모 둥글하게 생긴 덕성은 코까지 벌름거리면서 사람좋게 웃었다.
    “흠흠, 무슨 구수한 냄샌가 했더니 곰의 고기 익는 구수한 냄새구먼. 허허허.”
     "건데 왜 한길성인 안 보이는가?"
     병완은 기준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한영감이 집에 없데?"
   기준은 서성거리며 대답했다.
   "있습데. 건데 가난뱅이들 하구 안 논답더구마."
   "뭐라고?"
   "흥!"
    덕성과 성팔은 콧방귀를 뀌었다.
     병완은 주춤 일손을 멈췄다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어느새 병완은 다리 두개씩 넣은 마대를 덕성과 성팔의 앞에 척 가져다 놓았다.
    “자, 많지 못해. 가져다 먹게나.”
     “덕분에 잘 먹겠소.”
     덕성과 성팔이 가려고 하자 병완은 말렸다.
     “그걸 가져다 두고 인차 와서 곰의 고기에 한 잔씩 마시이요.”
     “이 집 아주머니 거룬 막걸리가 시원하던데. 곰의 고기에 시원히 마시지 뭐.”
     성희가 생글 웃으며 반겼다.
     “그래요. 어서 갔다가 동서랑 식구들을 다 데리고 오세요.”
     “그럽세.”
     덕성과 성팔은 흐뭇한 지 코 노래까지 흥얼흥얼 부르면서 곰의 다리 든 마대를 메고 둔덕 아래로 내려갔다.
    성희는 남편을 보고 “저 고개 너머 시아주버니네 식구들은 어쩔까요?” 하고 물었다.
     병완은 좀 궁리하다가 두툼한 입을 열었다.
     “내일 제사에 가겠는데 이 밤에 어떻게 승냥이들이 욱실거리는 령 길을 형님이 어떻게 넘어온다고 그러오? 저 창준을 보고 곰의 고기를 가져가게 하기요.”
     “예, 알았어요.”
    성희는 곰의 고기보따리를 챙겨 둘째아들 창준에게 줘서 보냈다.
    “령 길을 주의해서 갔다 오너라.”
    “예, 이걸 보세요.”
     창준은 방망이를 들어보였다. 그래도 성희와 둘째며느리 곱단은 못내 시름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다.
     “늦은데 돌아오지 말고 큰집에서 쉬고 내일 그 길로 산소에 오너라.”
    “예. 알아서 하겠습니다.”
    병완은  “어째, 한 영감은 까딱 하지 않을까?” 하고 의아한 눈길로 개울 건너 토성 안의 덩실한 팔간 집 쪽을 내려다보았다.
    “어이구, 저 한영감댁이야 부자노라고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자 하겠어요?”
    성희  말에 병완은 “글쎄-” 하고 말하면서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붙여 물고 뻑뻑 빨았다.
    “그래도 미운 걸 떡을 더 주라고 기준에게 곰의 고기를 좀 들려 보내오.”
    “예. 알았어요.”
    성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수긍하였다.
    그는 언제 남편의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욱 하면 벽이라고 차고 나가는 남편의 성미를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 남편의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을 숙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 병완의 큰며느리 김해 김 씨 하옥과 둘째 며느리 전주 김 씨 곱단이, 셋째며느리 개성 최씨 사련은 벌써 서늘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큰상 세 개를 벌려놓고 식기며 수저를 가져다 놓느라고 치마 자락을 날렸다. 기준의 처 사련은 가마뚜껑을 열고 김을 호호 불면서 식칼을 넣어 곰의 고기가 익었나고 콕콕 찔러보았다.
    “익었느냐?”
    “예. 익었습구마.”
    사련이 허리를 굽히면서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시어머니와 작은며느리는 곰의 고기 덩이를 꺼내 통나무칼판에 놓고 찬물에 손을 묻혀 호호 불면서 곰의 고기를 돔박돔박 썰었다.
    병완은 성칠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장작개비를 모아놓고 우등불을 피웠다. 우등불은 마당을 너머 저 멀리 산발을 따라 수림까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혜 놓았다. 침침한 어둠이 한순간에 모두 놀라 도망가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윽고 덕성과 성팔이 네가 식솔들을 다 데리고 왔다. 성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우등불 옆에 큰상 세 개를 차려놓았다.
    상좌에는 병완과 덕성, 성팔, 엄창렬이 앉고 아래 상에는 성칠과 기준 그리고 덕성의 아들 칠백과 칠성이, 성팔의 아들 용철과 용구가 앉고 말상에는 성희를 비롯해 하옥이, 곱단이, 사련이, 기준의 여동생 곰순 등 아낙네들과 상우, 상훈 등 애들이 죽 둘러앉았다. 실로 큰 잔치나 벌어진 것 같았다. 밤하늘의 별들도 내려와 밥상을 기웃거리며 군침을 흘린다. 
    병완은 소발굽 같은 손으로 막걸리 동이를 들어 덕팔과 성팔, 창렬의 잔에 차례로 돌아가면서 붓고 잔을 높이 들었다.
    “자, 내일 추석인데 오늘 저녁에 곰의 고기에 막걸리를 마음껏 마시고 춤도 추고 놀아 보기요.”
    “들기요.”
    잔을 딱딱 마주치고 여럿은 허허 호호 웃으면서 떠들썩하게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문문하게 삶은 곰의 고기를 맛나게 먹었다.
    구중천의 달도 막걸리아 곰의 고기 먹고 싶어 군침을 흘리면서 밥상에 슬밋슬밋 다가앉는다.
    “옛소. 이게 웅담이요.”
    병완은 거의 주먹만큼 한 웅담을 담은 사발을 성팔과 창렬의 앞에 밀어놓았다.
    “웅담이 쓰지 않소?”
    “쓴 게 약이라오. 위장이 좋지 못한데 먹소. 만 병 통치약이요. 창렬이, 자넨 페가 좋지 못한데 웅담을 먹소.”
    “야, 이걸 팔면 명년 식량은 해결하겠는데 내 어찌 혼자 먹는단 말인가?”
     성팔이  웅담그릇을 들고 아래 상에 가더니 성칠의 앞에 놓았다.
     “옛다. 웅담은 상한 팔에 좋아. 팔을 긁어 놓은 곰의 웅담을 먹으면 팔이 인차 나을 게다.”
     성칠은 우쭐 일어났다.
     "아니, 이래서야 되겠어요? 나눠 잡숩깁소.”
   그는 기어이 웅담을 숟가락으로 끊어 덕팔과 성팔이, 아버지 앞의 접시에 놓았다.
    “야따, 거 웅담이 뭐 그리 맛있겠다고 그리 야단이여? 그럼 서로 사양하지 말고 조금씩 맛이나 보세."
   덕성은 둥글넙적한 얼굴에 난 수염을 손으로 쓱 닦으면서 저가락으로 웅담 꼬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야, 쓰다.”
    “쓰거운 게 약이라오.”
    병완은 껄껄 웃었다.
    “자, 막걸리를 들라고. 인차 씻어 내려가게. 쓴 게 밸에 들어가면 잡 벌레가 다 죽을게요.”
     제일 아래 상에 앉은 하옥과 사련이, 곱단이 네는 곰의 국을 몇 술 뜨다가는 놓고 곰 고기를 썰어 국물에 담아 이 상 저 상에 올리느라고 행주치마를 두른 채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손으로 훔쳤다.
    나그네들은 달빛이 담긴 막걸리 사발을 들어 마시니 가슴에 달이 뜨고 흥이 저절로 났다.
    어린 상우와 상훈이 등은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라고 짝짝 쿵을 쳐대면서 먹어댔다.
   한참 후 술이 거나하게 된 성팔이 길쭉한 턱을 잔뜩 쳐들고 마당에 쫙 깔린 달빛과 우등 불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홀 잊었구먼. 그렇지, 거 병완이, 자네 집에 북이 있잖소? 그걸 내다 치면서 한바탕 춤을 추며 놀게나.”
   “그래, 좋아, 놀아보세.”
    춤을 추면서 논다는 말에 애들은 좋다고 밥상에서 일어나 우르르 마당에서 빙빙 돌면서 뛰놀았다.
    병완이가 북을 내오자 성팔이 받아 쥐어 둥두둥 둥두둥 가락맞게 두드리면서 마당 한가운데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그러자 덕팔도 일어나고 병완도 일아나 함께 도라지를 부르면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자, 젊은 각시들도 일어나 춤을 추오.”
    성팔이 말하자 색시들은 부끄러워 옷고름으로 낯을 가리면서 슬슬 뒤로 좀 물러나 얌전하게 도라지를 추었다. 애들도 어머니들을 따라 아기장 아기장 걸으면서 그것도 도라지라고 팔을 나풀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아낙네들은 하나둘 부엌에 들어가 그릇들을 부시고 바깥 암시부엌 아궁이에 토막나무를 더 서리어 식은 곰 고기 국을 덥혔다. 성희와 곱단은 큰집에 간 창준이가 언제 돌아오겠는가고 개울 건너 쪽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남정네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춤을 추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술상에 돌아와 앉았다.
    병완은 잔을 들고 “자, 또 한 사발 듭세.” 하고 덕팔과 성팔의 막걸리사발과 마주쳤다.
성팔은 한 사발 들고 막걸리사발을 상에 내려놓으면서 피뜩 무엇이 떠오른 모양으로 우쭐 일어났다.
    “내 집에 가서 피리를 가져다 불게.”
    그러자 성팔의 아들 용철이 따라 일어섰다.
     “아버지, 어두운데 내 갔다가 오겠습니다.”
    “오, 그래.”
    성팔이 떠나간 후 덕팔이 술상을 저 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노래를 흥얼흥얼 불러댔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소냐?
          소랑당 고개 마루 나귀마저 울고 가네
          춘향아 울지 마라 얼싸 안고서
         그립던 이 내 마음 아서 아서라
          어느 때 어느 날자 함께 즐겨 웃어 보랴
 
      덕성의 걸걸한 노래를 들으면서 막걸리를 둬 사발 드는 새에 이윽고 용철이 대나무피리를 가지고 왔다. 성팔은 피리를 입술에 대고 몇 번 불어보더니 제법 맑게 불렀다. 덕성이 드문드문 북을 둥둥 피리 절주에 맞춰 두드려 흥을 돋우었다.
      달빛이 깔린 시골마을에 맑고 부드러운 피리소리가 북장구에 맞춰 곱게 울리었다. 그 은은한 피리소리와 가락 맞게 울리는 북장구소리가 밤 정적을 조용히 깨우며 수림 속으로 오래도록 메아리쳐갔다. 물레방아 쪽으로 벽계수가 달빛과 구름을 싣고 피리소리에 맞춰 촐랑촐랑 노래하면서 흘러갔다.
     마당 한가운데 피워놓은 우등 불도 흥겨워 가을미풍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은빛 달님도 마당에 내려와 색시들과 함께 그 아름다운 선율에 도취돼 예쁜 얼굴로 웃음 지으며 춤 추고 있었다. 
     밝은 달빛 아래 시골 농가 오락판풍경은 진짜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방불케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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