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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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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8)
2015년 09월 25일 16시 47분  조회:192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 피비린 보복
저목장에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며 비명소리를 냈다.
끼무라는 저목장에서 피비린 보복행위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끼무라가  군도를 빼들어 짚고 사무상에 앉아 있다. 그 옆에 야마모도가 오른손목에 흰 붕대로 팔꿈치까지 딜 딜 감아 어깨에 올려 처맨 채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콩알 눈에서는 야수와 같은 불길이 이글이글거렸다.
끼무라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간다이죠(한대장)."
“하이!”
길수가 상한 왼팔을 받쳐들고 나섰다.
“포수대 놈들은 여기서 꼭 덫에 치우게 해야 하네. 저목장과 림산파출소에 보초병을 증가하게!”
“예!”
길수가 나가자 끼무라는 은희를 끌어오라고 했다.
피로 만신창이 된 은희가 겨우 몸을 휘청거리며 끌리어 들어왔다.
 끼무라는 무섭게 쏘아보며 추상같이 고함쳤다.
“고추물 가져와!”
호령소리에 유리창문이 다 부르르 떨렸다.
가메다가 주전자에 고추물을 걸쭉하게 풀어 가져왔다.
야마모도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가메다한테로 다가가 주전자를 받아 쥐었다. 가메다와 똘만이 악착스럽게 은희 팔을 뒤로 비틀어 내리누르고 자위대원 허꺽쇠가 은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홱 젖혔다.
야마모도는 이발을 사려 물고 주전자를 흔들면서 지분거렸다.
“이년, 성칠과 내통해 우리 한 대장 집에 불을 질렀지? 말했쏘까!”
은희는 악이 치받쳐 날카롭게 쏘아볼 뿐 이를 옥물었다.
“말하지 않았쏘까!”
야마모도는 은희의 입에 고추 물을 마구 쏟아넣었다. 그러나 은희가 숨을 딱 죽이고 입을 벌리지 않았다.  고추물이 입에 들어가지 않고 입귀로 흘러 볼을 적시며 땅바닥에 좔좔 흘러내렸다.
“요 죽일 년!”
야마모도는 고추 물을 더 붓지 않고 가메다를 돌아보며 고함쳤다.
“코 꽉 집게!”
가메다가 몸부림치는 은희의 코를 꽉 비틀어 집었다.  은희는 숨이 막혀 입을 빠금히 벌리며 할딱거렸다. 야마모도는 주전자를 기울여 은희의 입과 코에 마구 부었다. 은희는 너무 매워 온몸을 바둑거리며 캑캑거리다가 꼴딱꼴딱 고추 물을 삼켰다.
야마모도는 고추물을 붓던 손을 멈췄다.
“말해! 내통했지?”
은희는 야마모도 낯에 고추 물을 퉤 뱉었다.
“죽여라! 네놈들한테 엄마, 상호가 다 목숨을 잃었다. 네놈들은 꼭 천벌을 받을게다. 성칠 오빠는 꼭 독립군을 데리고 와서 원수를 갚을게다!”
야마모도는 은희  머리를 틀어쥐어 마구 흔들었다.
“요년, 정말 지독한 년이구나.”
그는 왼손으로 은희 턱을 쳐들었다.
“말해! 성칠의 다음 계획은 뭐냐?”
그때였다. 은희는 야마모도의 손을 꽉 깨물었다.
‘아야, 이다이(아파)! 요년 죽어, 죽었쏘까!“
야마모도는 이발 새로 소리치며 오만상을 찡그리더니 군도를 쓱 뽑아들었다.
“그만!”
그때까지 음흉한 눈길로 은희를 노려보던 끼무라가 손을 쳐들며 일어났다. 그러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칼집에 꽂아 넣으면서 머리를 홰홰 휘저었다.
끼무라는 야마모도를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가서 나직이 쑤군거렸다.
“저년을 죄 짜서야 뭐가 더 나오겠어? 성칠과 내통한 게야 불 보듯 빤하지 않아.”
그제야 야마모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끼무라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야마모도도 자리에 가서 앉았다.
끼무라가 추상같이 호령했다.
“저년을 끌어내가라. 도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해. 똘만이, 운주동에 가서 성칠의 애비와 기준을 끌어오라!”
“이 밤중에?”
똘만이 불쑥 부르튼 소리를 했다.
“웬 잔소리냐? 국장 어른이 잡아오라면 잡아올 거지.”
한길수가 일어나면서 똘만을 핀잔하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자위대원들 데리고 가서 잡아오리다.”
병완 일가를 족치는 일이라면 한길수는 언제나 급선봉으로 나섰다. 길수의 거동에 끼무라 국장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잠간!”
끼무라가 갑자기 손을 쳐들었다. 한길수는 의아해하면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끼무라는 일어나 뚜벅뚜벅 거닐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린 날이 개이면 우시장 경찰국에 돌아가자. 내일 아침에 운주동에 가서 병완을 끌고 가자.”
류강철이 통역하자 한길수는 말상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밤중에 잠자리에서 납짝 나포하는 게 좋은데.”
그러나 끼무라는 저목장 초소 안에서 뚜벅뚜벅 왔다 갔다 하면서 말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네. 혹시 자기 애비를 붙잡을 것 같아 성칠이 이끄는 포수대에서 매복이라도 했을 수도 있네.”
그 말에 한길수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순간 그는 초소 창문을 두드리는 눈보라소리에 공포감을 느꼈다. 이 죄꼬만 초소를 독립군이 들이 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때 끼무라가 거닐던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께(가자)!"
한길수도 일어나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끼무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요 죄꼬만 저목장에 저렇게 많은 헌병대와 자위대원들을 재울 순 없잖은가?"
그제야 한길수는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야마모도 소장의 낯에 겁기가 요란하게 스쳐지나갔다.
"국장님, 저목장에 스무나문 명만 남겼다가 혹시 그 놈들이 쳐들어오면…"
"우리 즉시 협공할 거네. 개울 하나 사이 두고 어린애처럼 겁나? 독립군은 우리 수가 많은 걸 알기에 서뿔리 쳐들어오지 못해. 흥!"
"핫(옛)!"
끼무라는 한길수를 데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된 토성 안에 들어갔다. 병졸들은 병완이 네 집자리 삼림경찰파출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끼무라는 한길수의 집이 잿더미로 된 광경을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한 대장, 이후에는 술을 작작 마시게나. 이게 뭐요?"
그제야 한길수는 자기가 술에 취해 늘어졌을 때 상호 네가 불을 지른 일에 연상이 가자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끼무라는 덜 탄 몸채 안으로 신을 신은채로 들어가 성냥을 득 그어댔다. 그는 성냥가치에 피어오르는 반딧불만한 불빛을 빌어 여기저기 비춰보더니 몸을 돌렸다.
“여기서 자지.”
“여기서?”
“비상시기니깐. 언제 비단이불을 덮고 기생을 끼고 잘 궁리를 하는가?”
“그래도 그렇지. 내 나가보리다.”
한길수는 바깥에 나가자 사랑방으로 가보았다. 거기에는 은희와 철규를 묶어 가둬뒀던 방이어서 성칠이 네가 불을 달지 않아 타지 않았던 것이다.
길수는 몸채에 달려 들어갔다.
“국장님, 저기 사랑방으로 갑시다.”
류강철이 통역하자 끼무라 국장은 두덜거리면서도 할 수 없이 따라 나섰다.
야밤삼경에 끼무라 국장과 한길수는 처음으로 돼지굴 같은 사랑방에서 누더기를 덮고 다리를 굽힌 채 새우잠을 잤다.
       
                 8.
총도감의 묘수


         이튿날 이른 아침 해가 뜨기 바쁘게 끼무라 국장은 야마모도를 불러들여 손가락 질 하면서 명령했다.
         “저목장을 잘 지키게. 단 한번만 실수하면 총살할 테야!”
        “하이!”
야마모도는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린 후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끼무라는 말을 타고 헌병들을 끌고 곧추 우시장을 바라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그제야 야마모도는 눈보라 속에서 멀어져가는 끼무라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두덜거렸다.
“진작 함정을 파 독립군을 빠뜨릴 예산이면 우리에게 말할 게지. 쳇, 괜히 우리만 호랑이 같은 독립군을 낚는 미끼로 됐지 뭐야? 자기들은 안전지대로 달아나고 나보고 이 사경을 지키라고? 흥!”
삼림헌병들이나 경찰들이나 대부대가 떠나가자 모두 질겁해 저목장이나 림산파출소나 한걸음도 얼씬거리지 못했다.
한길수는 자위대원들을 끌고 앞 고개를 넘어 운주동을 향해 덮쳐갔다.
눈보라 속에 삼켜진 운주동 마을 북쪽어귀에 까마귀무리가  백양나무에 앉아 요란하게 울어댔다.
까욱 까욱!
마당에서 도끼로 나무를 패던 병완과 창준은 불길한 징조도 느끼지 못하고 애꿎은 통나무토막에 도끼질만 팡팡 했다.
이때 어지러운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마당 앞에서 말 호용소리가 울리었다.
“독립군 우두머리 애비를 결박해!”
한길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병완이 머리를 들어보니 한길수가 수무나문명이나 되는 자위대 놈들을 끌고 와서 고함치는 것이었다.
자위대 놈들이 우르르 쓸어와 병완을 묶으려고 했다. 병완은 도끼를 든 채 한길수를 쏘아보며 물었다.
“무슨 짓인가?”
한길수는 불티가 튀는 외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지분거렸다.
“아닌 보살하겠는가? 성칠 놈은 마을 사람들로 포수대를 무어가지고 날뛰더니 독립군으로 끌어갔어. 내 집에 불을 지르고 우리 헌병들과 자위대원들을 대여섯이나 살상했다. 이젠 잡아가도 되겠지? 흥!”
그는 눈보라 속에 입김을 씩씩 내뿜으면서 호통 쳤다.
“내 네놈의 구족을 멸망시키지 않는가 봐라!”
자위대 놈들이 병완에게 덮쳐들어 결박했다. 그러나 병완은 몸부림도 치지 않고 순순히 포박 당했다.
병완의 성격과는 이상할 정도였다.
“손을 떼라!”
이때 울타리 밖에서 갈범의  울부짖음 소리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모두 머리를 들어보니 기준이 도끼를 쥐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기준은 아버지와 창준형님을 도와 나무를 패주려고 오는 길이였다. 그런데 자위대원들이 집에 들이닥친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 오는 길이였다. 고함소리를 듣고 최구장네 집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울바자 밖에 와서 웅성거렸다.
한길수는 삽작문 앞으로 다가오는 기준을 보더니 을러멨다.
“잘 왔다. 저 놈도 포박해라!”
자위대원 대여섯이나 이리떼처럼 덮쳐들었다.
그러나 기준은 끄떡하지 않고 고함쳤다.
“우리 부자가 네놈들을 도와 경찰국을 짓고 큰길을 닦았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이야?”
한길수는 말이발을 사려물고 냉소했다.
“소보다도 우둔한 놈! 성칠이 지금 독립군에 들어가 마을 포수대를 무어가지고 우리 림산파출소를 치고 헌병과 우리 자위대원 대여섯을 다치게 했다. 네놈들의 구족을 멸해도 원수를 다 갚지 못한다. 내 토성 안 집도 다 타버렸다.”
기준은 도끼를 쥔 채 몸부림치면서 아버지 병완의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가 손을 쓰면 합세해 몇 놈 쳐 눕히고 도망칠 수 있었다.
“아버지, 그저 이렇게 잡혀 가겠습둥?”
그러나 병완은 허구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명은 하늘이 정해준 거야.”
기준은 헐떡거리다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도끼로 몇 놈 찍어 넘긴다고 해도 포박당한 아버지께 해가 더해질 까봐 걱정됐다. 하여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내도 마지못해 그만두었다.
한길수는 득의양양해 병완의 아내와 성칠의 아내를 둘러보면서 을러멨다.
“저년들도 포박해라!”
자위대원들이 욱 달려들었다. 창준의 아내 김수월과 맏아들 상훈이 그리고 맏며느리 리신옥이가 아우성쳤다.
수월이 나서서 한길수에게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한 영감, 한 마을에서 오래 산 친분을 보더라도 제발 살려줍소.”
한길수는 코웃음 쳤다.
“한 마을에 산 친분? 흥! 그래 친분이 있지. 네 시형은 우리 토성안집을 불태웠고 나를 잡아 죽이려고 눈에 쌍불을 켜고 미쳐 날뛰어. 배은망덕할 놈들이라고. 이 영월동과 운주동 골 안에 누구 덕에 와서 살면서. 흥! 길러준 개 발뒤축을 물어?! 쳇.”
그는 말 잔등에 올라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몽땅 끌고 가자!”
그때 최구장이 하얀 수염을 흩날리며 말 잔등 위의 한길수에게 사정했다.
“공자 성인께서 가로사대 자기를 억제하여 예에 맞게 행동하라고 했네. 길수, 우리 사돈을 좀 놔주게나.”
길수는 말채찍으로 최구장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고함쳤다.
“어째 네놈도 잡혀가고 싶은가? 옛날부터 우리 조선 법에 한 놈이 죄를 지으면 팔촌까지 연루된다는 말이 있지비. 병완 영감네 성칠이란 녀석이 포수대하구 독립군 끌고 와서 영월동에서 우리 집을 불태워버렸어. 자위대원과 헌병을 대여섯이나 죽이고 총까지 빼앗아갔다. 생사결판에 누가 원수를 용서한대? 흥!”
길수는 말 배때를 발로 툭 차며 고함쳤다.
“썩 피해. 이제 두 말 했다간 두상도 잡혀갈 줄 아오.”
그래도 최구장은 손을 들면서 한길수에게 뭐라고 사정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한길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채찍을 쥔 손을 앞으로 홱 저었다.
“가자!”
자위대 놈들이 병완과 기준 등을 포박해 말 뒤꽁무니에 매 끌고 눈보라 속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져갔다.
아낙네과 애들이 삽작문을 나서 동구 밖으로 따라가면서 아우성쳤다.
최구장은 사라져가는 병완이 쪽에서 눈길을 떼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저면서 경숙과 경민에게 타일렀다.
“저래서 공자 성인께서는 중용지도를 제창한 거야. 사람이란 너무 앞찔러 나갈 필요도 없고 너무 뒤떨어질 필요도 없단다. 중용지도를 지켜야지.  맞설 필요 없다. 두루두루 지내면 저렇게 잡혀가는 일도 없었겠는데 말이다. 쯧쯧쯧, 너희들은 꼭 명심해라. 일본 놈들과도 등진 일을 할 필요 없고 못 본 척 하면서 자기에게 차례진 밥이나 먹고 살아라.”
경숙과 경민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울뚝불뚝한 넷째 경욱과 다섯째 경석은 툴툴거렸다.
“저런 놈들에게 허리를 굽힐수록 더 업신여김을 당하는데도. 언제까지 허리를 굽혀야 합둥? 흥!”
해질녘에야 한길수 무리는 우시장경찰국에 이르렀다.
그들이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뜻밖에도 끼무라 국장은 대문 밖에까지 와서 영접했다.
낯에 독기가 서릴 대신 만면에 춘풍이었다.
“오, 한 대장 왔는가? 참 수고했네.”
끼무라는 머리를 돌려 병완과 기준이네 일행을 보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이게 뭐야? 우리 총 도감을 결박해 모셔오다니?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어?”
류강철의 통역을 듣고 한길수나 병완이네 부자나 모두 어안이 벙벙해 두리번거렸다.
“뭘 하는가? 당장 풀어주지 못할까? 가족까지 모셔오다니? 우리 총도감을 이 지경으로 푸대접해서야 되겠는가?”
“옛!”
자위대원들은 황급히 병완만 풀어주었다.
끼무라가 또 을러멨다.
“몽땅 풀어주고 안방에 정중히 모셔라!”   
뜻밖에 병완 일가의 결박을 몽땅 풀어주었다.
그러자 한길수는 어이없어 도리머리 질 하면서 끼무라 국장의 뒤를 따라가며 두덜거렸다.
“아니, 끼 국장님, 이건 너무 합니다. 저 놈들은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만두지 못할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
끼무라 국장은 수갑을 벗어 바지에 묻은 눈가루를 툭툭 털더니 병완을 돌아다보며 구슬렸다.
“총도감, 고생이 많았네. 사무실에 들어가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어 모셔오라고 했더니. 참.”
한길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끼무라 국장이 장갑을 쥔 손을 밖으로 흔들면서 한길수를 막았다.
“이이에(아니), 간상은 오지 마.”
“예? 뭐랍니까?”
한길수는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못 들었는가? 김병완 총도감과 단둘이서 의논할 일이 있네. 자넨 빨리 자위대원들을 보고 빈 칸에 불을 때고 밥과 안주를 갖춰 우리 총도감 일행을 상 대접할 준비나 하게나.”
“예?!”
한길수는 그 말에 초풍 할만치 놀라 외눈깔이 데꾼 해졌다. 그는 병완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끼무라의 뒤 잔등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욕했다.
(저 자식, 정신 나갔어? 얼빠진 놈, 누굴 믿고 살려는 거냐? 흥! 낮은 돌을 디뎌도 유분수지.)
한편 이층으로 올라간 끼무라는 병완에게 자기 앞 벽에 기댄 걸상에 자리를 권했다. 그는 한참이나 병완을 내려다보면서 속궁리를 굴렸다.
(저 우둔한 놈 어디를 찌르면 순순히 우리 말을 들을까?)
하긴 끼무라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때부터 큰길을 닦을 때에 이르기까지 병완에게 총도감을 시키면서 얼려보았다. 그런데 병완은 삯전을 주지 않는다는 구실로 총도감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쓸모없게 됐다고 느낀 끼무라는 술책을 바꿔 야마모도 소장과 한길수를 시켜 병완의 집을 빼앗아 림산파출소를 들여앉혔고 그의 밭을 빼앗아 나무를 심게 했다. 살기 힘들게 핍박하면 허리를 굽히겠는가 했더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먹고 살겠다고 사냥질하던 성칠의 사냥총을 뺏는 바람에 상우남면 영월동 부근에서 사냥대가 조직됐고 나중에 독립군에 흡수되지 않았는가! 저 놈들은 한길수의 집을 두 번이나 불태웠고 이번에는 헌병과 자위대를 여섯이나 살상하고 총 여섯 자루를 빼앗아갔다.
(그래, 얼리고 닥쳐도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 놈들이 중국 만주 청산리에서 독립군이 우리 황군을 참패를 시킨 일을 알고 독립군에 다 들어가면 큰 일이야. 몇 해 전부터 독립군 놈들은 국내에도 24차나 무장기습하지 않았는가? 절대 독립군에서 저런 힘장사를 끌어가게 할 순 없어. 미운 놈 떡 한개 더 주라는 조선 속담이 있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얼려보자.)
마음을 정하자 끼무라는 교활한 낯에 나오지 않는 웃음을 게 바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병완이, 난 지금도 천하장사인 당신을 흠상하네. 전번에 자넨 이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때도 멋지게 했네. 길닦이에도 한몫 했고. 한길수는 안 돼. 채찍을 휘두를 줄 밖에 몰라. 자넨 참 아까운 사람이지. 우리 일본제국의 벼슬을 해보지 않겠는가? 집도 주고 쌀도 대주고 임금도 푼푼히 주겠소?”
병완은 경찰국 사무 청사가 눈을 감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뜻밖의 말에 눈을 천천히 뜨고 끼무라를 쳐다보았다.
(날 뭘로 보고 하는 소리야? 소나 말처럼 일하다가 굶어죽을지언정 네 놈의 수하가 돼 잘 살기를 바랄 것 같으냐?)
병완은 속으로는 욕하였지만 온 집 식구들의 목숨이 걸려있는지라 입 밖에 한마디도 번지지 못할 처지였다.
“난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거네.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 벌주를 들겠는가?”
끼무라의 말에 류강철은 한마디 더 보태 통역했다.
“마지막 기회오. 벼슬을 하면 좀 좋아서 그러오? 빨리 대답하오. 그래야 당신 온 집 식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소. 한 고향 조선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충고하오.”
병완은 한참이나 속궁리를 굴렸다.
(야, 이게 망국노의 설음이구나. 내 조국이여, 말해다오. 내가 어찌해야 하는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허나 방안에서는 끼무라와 병완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번쩍였다. 들리지 않는 우레 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이때 이따금 대들보와 기둥 여기저기서 까드득 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병완이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이게 나무벌레가 대들보하구 기둥을 파먹는 소리가 아닌가? 조만간에 일이구나. 경찰국은 무너지겠구나.)
병완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뿜겨 나오고 있었다.
병완의 속내는 모르고 끼무라는 병완의 표정변화를 오해해 읽고 의자등받이에서 어깨를 슬그머니 떼고 사무 상에 팔굽을 대더니 물었다.
“뜻을 정했는가?”
병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키자고 그러오?”
그 말을 통역 받은 끼무라는 아주 흡족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병완의 앞에까지 뚜벅뚜벅 다가와서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자위대 부대장!”
끼무라는 병완이 만족해하겠는가 하였는데 천만뜻밖에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관직이 낮은가?”
병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자위대 대장을 시키지.”
병완은 코웃음을 쳤다.
“한길수는 어쩌고?”
“난 자네와 한길수를 저울질하여보았네. 한길수는 재목이 아냐. 자초에 그를 선택한건 잘못이었네. 황차 한길수는 이젠 외눈깔박이 폐물 짝이 됐네.”
병완은 끼무라가 가소로워 “허허허.” 하고 허구한 웃음을 지었다.
“알만합니다. 난 큰길닦이나 시키겠는가 했더니만.”
끼무라는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제자리에 가 천천히 앉으면서 말했다.
“오, 이이에(아니), 큰 재목을 어찌 부지깽이로 쓰겠는가?”
그러나 병완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내 맏아들은 독립군에 들어갔소다. 날 차라리 죽이십시오. 자위대 대장을 맡기다니. 말도 안 됩니다.”
끼무라는 의자에 앉은 채 앞뒤로 몸을 흔들거리더니 병완의 속을 꿰뚫어 볼 듯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성칠을 독립군에서 나와 대일본제국에 귀순하라고 권하게나. 그럼 난 성칠까지 용서하구 우리 자위대 중대장쯤은 시킬 테니.”
병완은 끼무라가 벼슬로 자기 깨끗한 마음을 유린하고 기를 꺾어놓자고 드는 것을 간파했다.
“끼무라 국장님, 날 잘 모르는 것 같군요. 난 한뉘 농사나 짓고 나무 깎개질이나 하면서 살았습구마. 총칼을 휘두르면서 사람을 죽일 재료가 아닙꾸마. 자위대 대장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을. 건 한길수 같은 자나 할 짓이지. 어질고도 어진 내가 어찌 하겠소?”
그러자 끼무라도 더 강권하지 않았다. 그는 병완이 같은 자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기가 죽고 마는 자이구나고 생각하자 병완을 다스릴 새로운 방도가 눈앞에 가물거렸던 것이다.
“좋네. 총칼을 휘두르지 못하겠다니 강권하지 않겠네. 대신 큰길닦이 총도감을 맡기겠네. 우시장 한길수 대장네 옆에 팔간기와집을 마련해놓았네. 여종에 머슴도 둘을 보내겠으니 복이나 누리게나. 기준이네와 창준이네 두 집 식구들은 집에 돌려보내겠네. 단 맏며느리를 자네 집에 두게나. 보초병까지 파견해 주야로 보위할거니 아주 안전할 거네. 황차 한길수대장도 옆에 있으니까.”
병완은 끼무라의 속심을 간파했다.
(교활한 놈, 나와 며느리를 볼모로 잡아두고 성칠을 유인해 붙잡으려는 게구나. )
끼무라는 자기 좋은 생각을 하면서 헌병들과 류강철을 시켜 병완 일가를 몽땅 한길수의 옆에 마련해놓은 기와집에 데려갔다. 아니, 그것은 감옥이 아닌 감옥에 압송된 것이었다.
         
                            9.
잠복


       끼무라 대군과 접전하던 용천과 성칠은 진달래 등을 보낸 날밤에 이 지역 포수대 출신 독립군 병사들을 데리고 영월동 부근 수림에 잠복했던 것이다.
      용천과 성칠은 한자두께나 된 굳은 눈 속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마른 나무 잎을 깔고 덮고 새우잠을 잤다. 그들은 이젠 눈구덩이에서 자는 것이 습관돼 그리 추운 감도 없었다.
      수림 속에서는 눈보라가 무섭게 아우성치며 불어치며 눈가루를 흩날려 그들이 숨어들어간 눈구덩이를 판 흔적들을 메워주었다. 바깥에서 병수가 나무 우에 올라가 나무 가지를 가로 타고 앉아 보초섰다. 굳어진 눈을 얼핏 보아서는 그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굳어진 눈구덩이에 주먹만큼 한 공기통을 뚫어놓아 숨도 막히지 않았다.
       성칠은 언 주먹밥이나 누룽지로 때를 에우네 하였지만 배가 촐촐했다.
용천과 성칠은 두 눈구덩이 사이의 눈을 파내 구멍을 내고 서로 통화했다.
칠흑 같은 눈구덩이 안에서 용천은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했다.
“잠이 오지 않지?”
“그래. 부모형제들과 마을 사람들이 근심되네. 림산파출소에 갇힌 은희가 놈들에게 능욕당할 걸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네.”
“근심하지 말게. 놈들이 도정신하는 초저녁에 자고 놈들이 굳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신출귀몰하면서 가족들을 구해내고 놈들을 족칩세.”
“좋은 전략전술이구먼.”
성칠은 독립군 중대장 용천은 농사군인 자기들과 다르긴 퍽 다르다고 속으로 못내 감탄했다.
“일본 놈들이 조선을 먹어치우고도 간도까지 쳐들어갔다면서?”
성칠이 묻자 용천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래. 그 놈들은 우리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중국 대륙까지 삼켜버리자고 하네.”
“섬나라 오랑캐들, 욕심이 시꺼먼 구새통 같구먼.”
“그래.”
“중국은 나라도 큰데 그래 자그마한 섬나라 일본 놈들을 가만 놔둔단 말이요?”
“지금 중국에서는 군벌내전을 하다나니 만주로 일본 놈들이 침입하는 걸 관계할 새 없어. 만주에는 장작림이라는 군벌이 있는데 일본 놈들과 꽤나 기 싸움을 하는 모양이네. 그의 아들 장학량은 더구나 일본 놈들과 생불을 켠다네. 그러나 아직은 정면충돌을 극력 피하고 있네.”
용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뒤 말을 이었다.
“일본 놈들이 중국 만주로 쳐들어갈 때 얼마나 묘한 수를 썼다고 그래. 1920년 10월 2일 새벽에 일본 놈들은 400여명이나 되는 한 무리 토비들을 추겨 두만강 하류에 자리 잡은 훈춘시내를 들이치게 했네. 그 통에 일본 영사관이 불타버리고 일본인 11명이 피살됐지. ‘훈춘사건’ 당일로 일본군은 만주 영사관과 일본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실로 경찰수비대를 선봉으로 만주에 침입하기 시작했어. 건데 중국 군벌들은 눈을 뻔히 뜨고서도 일본 군대가 들어가는 것도 구경만 했다네.”
“별 머저리들을 다 보겠어.”
“그래. 중국 군벌은 명철보신했지만 있자노. 우리 조선독립군은 일본군들을 좌시하지 않았네. 훈춘사건이 발생해서 일주일후네. 그러니까 아마 10월 9일일 거야. 일본 육군 대신 명의로 일본군은 조선독립군 사령부를 습격하라는 출병명령을 하달하였네. 간도에 침입한 동쪽지대는 17일 화룡현 청산리와 이도구 일대에 반일부대들이 집결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선후하여 토벌대를 파견해 청산리일대 김좌진 장군의 부대를 추격하였지. 한 갈래 놈들은 또 이도구에서 남완루와 북완루라는 곳에 주둔한 홍범도 연합부대를 포위하였네. 그래서 우리 독립군에서는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토벌하러 온 일본 놈들을 매복 습격했네. 화룡현 삼도구와 이도구 일대에서는 백운평전투를 내놓고도 약수동전투, 완루구전투, 맹가구전투, 어랑촌전투, 고동하곡전투, 맹가구전투, 서구전투, 천보산전투까지 해 10여 차례 치열한 싸움을 벌렸어. 그때 나도 중대를 이끌고 그번 매복습격전투에 뛰어들어 싸웠네. 일본 놈들은 청산리전역에서 수백 명 살상당했어.  참패당했어. 우리 매복습격전투에 일본 놈들 대가리가 가을 호박밭의 호박처럼 널려 있었네.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
성칠은 용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얼마나 통쾌했겠소. 우리도 언제 또다시 대부대를 이끌고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통쾌하게 족치겠소.“ 
         용천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근심하지 말게나. 꼭 일본 놈들을 통쾌하게 족칠 날이 올 거네. 우린 우시장일대 뿐만 아니라 경성군, 회령군 그리고 경주의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내야 하네. 장차 우리 모두의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깡그리 몰아내자고. 우리 조국을 되찾는 그 날까지 싸워야 하네. 그래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행복하게 살 수 있네.”
성칠은 용천의 말을 듣고 이제껏 자기 부모형제와 고향사람들만 생각하고 자기 고향의 일본 놈들만 몰아내려고 한 자기 흉금이 얼마나 좁았는가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용천도 일본 놈들이 욱실거리는 고향 경주에 큰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을 두고 왔지. 용천이라고 그들을 근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고향보다 더 큰 우리 모두의 고향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는 날을 위해 모든 걸 잊고 참으면서 싸우지 않는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수림속의 눈구덩이에 누워있어도 앞으로 싸워나가야 할 길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난 자네를 따라 우리 고향, 아니, 우리 조국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찾는 그날까지 싸우겠네.”
“고맙네. 암, 그래야지.”
용천은 성칠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때 눈구덩이 옆에서 나무잎을 파헤치는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났다. 아마 다람쥐들인 것 같았다.
밤중이 되여 눈보라가 더 기승을 부렸다.
“이젠 놈들이 곯아떨어졌을 거네.”
성칠은 용천의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구덩이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툭툭 털었다. 칠백과 동욱도 뒤이어 눈구덩이에서 나왔다. 병수도 망을 보다가 나무 가지에서 뛰어내렸다.
용천은 성칠을 돌아보면서 나직이 물었다.
“먼저 운주동에 자네 집식구들 쪽으로 갈가?”
그러나 성칠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먼저 덕팔의 처와 은희를 먼저 구하기오. 상호시체부터 눈에라도 묻어주고.”
용천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고 손을 저었다.
“먼저 덕팔의 처부터 빼내기요.”
이리하여 그들은 수림속의 어둠을 빌어 영월동에로 접근해갔다.
용천의 지휘아래 그들은 영월동 서쪽 수림에 이르러 눈 위에 납작 엎드렸다.
찬찬히 살펴보니 저목장과 성칠의 집 자리에 있는 림산파출소에는 광솔 불과 모닥불이 대낮같이 환한데 헌병들과 자위대원들이 삼엄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보초병 놈들은 아예 쭈크리고 앉아 꺼떡꺼떡 자불고 있었다.
성칠은 용천의 귓속말대로 덕팔과 함께 덕팔이네 집으로 접근해갔다. 사위를 둘러보니 숨 막힐 듯 조용하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덕팔은 울바자를 조심스레 헤치고 구새 목으로 다가갔다. 그는 벽에 붙어 서서 슬금슬금 고방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당겨 보았다. 안으로 노끈으로 매 걸어 놓았다.
바스락!
덕팔은 숨을 딱 죽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5미터 뒤에 성칠이 울바자 옆에 붙어 서있었다. 쥐 새끼 놀라 울바자 안에서 쪼르르 달아났다. 성칠과 덕팔은 서로 마주보고 나서 머리를 끄덕였다.
덕팔은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구멍 내고 손을 넣어 노끈을 풀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고방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기침을 쿨룩거리면서 일어났다.
“누구야?”
“나요, 나.”
어둠 속에서 필순은 덕팔에게 다가와 찬 몸에 기대서 흐느꼈다.
“이게 꿈이 아닌가요? 낮에도 자위대 놈들이 우리 집에 왔다 갔어요. 남정네가 잘못 됐나 했어요.”
“그래, 난 무사하오. 길게 말할 새 없소. 빨리 날 따라 만주로 가기요.”
그 소리에 놀란 필순은 덕팔의 품에서 머리를 떼더니 “어디로 간다고 그래?” 하고 물었다.
그 소리에 점순도 깨나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조용히 일어나 덕팔의 손을 잡았다.
덕팔은 필순과 점순의 손을 잡아 고방문 쪽으로 끌면서 말했다.
“길게 말할 새 없소. 빨리 만주로 가자.”
“그 낯선 만주로 간다고? 난 안가. 죽으면 죽었지 어데로 가?”
“여기 있으면 일본 놈들에 죽어.”
점순마저 몸을 탈며 끼어들었다.
“죽긴? 지금까지 멀쩡한데도.”
필순과 점순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걸 덕팔은 한손에 하나씩 끌다 싶이 고방 문까지 갔다.
“지금 놈들은 당신 모녀를 미끼로 나를 붙잡으려고 잠시 놔둔 거야. 은희랑 상호 때문에 지금도 갇혀 갖은 능욕을 다 당해.”
그제야  필순은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래?” 
그는 점순에게 “아버지를 따라 가자!” 하고 마구 끌고 따라나섰다.
“우메, 사냥은 무슨 사냥한다고 그래? 괜히 일본사람들 비위를 거슬려놔 고향서두 살지 못함매.”
“빨리 가자! 잔말 말고.”
덕팔이 필순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잠간! 저기 궤안의 걸 가지고 갔제이.”
“또 뭐야?”
“이 고방 까래 밑에 둔 걸 잊었어요?”
필순은 덕팔의 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병완 아주버니가 준 금덩이.”
“오, 깜빡 잊었군.”
덕팔은 까래를 훌 들고 구석에 천으로 싼 성냥 곽만 한 금덩이를 척 주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성칠은 주위를 면밀히 감시하다가 덕팔이가 필순과 점순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고 뒤로 돌아서서 용천 쪽을 뒤돌아보았다. 용천은 한 30미터 떨어진 동욱의 집 쪽에 숨어 이쪽 동향을 살피였다. 그들은 이쪽에서 이변이 생기면 엄호하면서 접응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윽고 덕팔과 성칠이가 필순을 데리고 다가왔다. 그런데 필순은 기침을 콜록콜록 하며 야단났다.
“기침을 작작 해라. 놈들이 듣겠소.”
필순은 성칠과 용천을 쳐다보더니 손으로 입을 싸쥐었다. 그래도 기침은 계속 나와 나직이 콜록거렸다.
성칠은 필순을 구출하자 한시름 놓았다. 그는 자기가 포수대를 조직하였기에 상호네 일가가 피해를 입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다가 또 다른 집에 피해를 줄까봐 여간 속이 타지 않았다.
용천은 성칠과 함께 그들을 이끌고 영월동 서산에 올라 수림속 으로 사라졌다.
안전한 지대에까지 가자 용천은 덕팔을 돌아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덕팔 형님은 처자를 데리고 수림 속에 숨어있어요."
뒤이어 성칠과 바위돌을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우린 은희를 구출합세.”
그리하여 덕팔은 필순과 점순을 데리고 밤중까지 숨었던 수림 속에 가서 눈구덩이를 파고 숨어 있었다. 거기에는 병수가 서성거리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산바람이 무섭게 아우성치면서 불어쳐 눈보라가 휘몰아쳐 눈구덩이를 삼켜버렸다.
한편 덕팔 등을 보낸 후 용천은 성칠과 동욱, 바우돌을 데리고 은희가 갇힌 성칠의 집 자리를 향해 조심스레 접근해갔다.
왕 왕 왕!
갑자기 성칠의 집 서쪽 수림에서 개가 요란스레 짖어댔다.
“엎드렷!”
용천은 손을 홱 젓더니 눈 우에 살짝 엎드렸다. 모두들 따라 엎드리면서 성칠이네 집 쪽으로 총을 겨냥하면서 동향을 살폈다. 바깥에서 서성거리던 자위대 놈들이 우뚝 멈춰서더니 우뚝 멈춰서 수림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때 성칠은 호주머니에서 주먹밥 하나를 꺼내 누렁이에게 던졌다. 검둥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에 미립이 튼 그는 개를 얼릴 줄 알았다.
개들은 왕왕 짖으면서 달려와 주먹밥을 둘러싸고 꼬리를 젖더니 짖어대지 않았다.
“뭐야? 분명 사냥개 짖었잖았느냐?”
이쪽을 기웃거리던 보초병 놈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잖아. 괜히 산짐승이 뛰여다니는 소리에 놀란 거 같아."
집 안에서 우두머린 것 같은 놈이 뛰어나와 권총을 뽑아 휘두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소. 이 자식이 제 방귀에 놀라서.”
“뭐 분명 사냥개 누렁이들이 짖었댔는데. 꼬리를 흔들면서 뭘 먹는 거 같소.”
그러자 우두머리도 이쪽 개들이 모인 곳을 두리번거리더니 을러멨다.
“개미 하나 얼씬 해도 저목장과 저 아래 토성 안 알리라 했네. 그래야 야마모도 소장과 끼무라 국장이 대부대를 인차 파견해 우릴 구하지.”
       용천은 팔꿈치로 옆에 엎드린 성칠의 팔을 슬쩍 건드리더니 손을 성칠의 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끼무라 놈과 야마모도 놈의 대부대가 아직 저목장과 토성안집에 있네. 서뿔리 건드렸다간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네. 철거했다가 내일 밤에 다시 봅세.”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눈 우에서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히고 수림 속으로 철거했다.
      뒤에서는 또다시 누렁이들이 왕왕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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