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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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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0)
2016년 05월 09일 16시 56분  조회:200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10. 효자와 사랑

        상순은 그날 밤으로 어둠 속을 꿰질러 도망치다가 유격대원 바우돌을 만났다.
        "마을로 돌아가지 말라."
        바우돌의 말에 상순은 "지 촌장 놈이 나를 의심하지 않을가?" 하고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그때 신출귀몰하는 진달래 중대장이 버드나무숲속에서 나타나 타일렀다.
        "먼저 장백산 원시림으로 들어가 피신했다가 방법을 대면 돼."
        그리하여 상순은 유격대 근거지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원래 그는 춘실을 데리고 함께 유격대를 찾아가 산에서 살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 놈들에게 춘실을 빼앗긴바 하곤 진달래 중대장을 따라 유격대에 들어가 원수를 갚으려고 했던 것이다.
(죽어도 총을 잡고 일본 놈들과 통쾌하게 싸우다가 죽자.)
그는 진달래 중대장이랑 유격대원들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죽을 각오까지 했던 것이다.
사실 그날 밤에 진달래 중대장은 양식을 구하러 함흥촌에 오다가 우연히 춘실과 은실의 통곡소리를 듣게 돼 비술나무 밑으로 황급히 접근해 매복습격을 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지는 똑똑히 보지는 못했지만 조선족 두 여성이 일본 놈들에게 잡혀가는 것만은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조선여성들이 상할까봐 진달래 중대장은 총을 뽑아들었다가 쏘지 못했다. 진달래는 기민하게 돌팔매를 날려 두 놈을 처치했던 것이다. 그때 늙은 비술나무 꼭대기에서 웬 사내가 뛰어내려 도끼로 일본 놈 한 놈을 찍어 죽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도끼를 든 상순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가 보오."
 진달래 중대장은 바위돌한테 명령했다.
    그리하여 바위돌은 상순을 뒤따라가  함께 산으로 떠나게 됐다.
     그들은 연 며칠 산속을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장행군해서야  끝내 장백산 원시림 속의 유격대 주둔지에 들어섰다.
성칠은 아주 반가워하며 상순을 자기 통나무집에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물었다.
“불시에 왜 들어왔니? 전번에 말하잖았느냐? 농사를 잘 지어서 유격대에 쌀을 보내는 것도 항일투쟁을 하는 것이라구. 응?  일가식솔들이 다 무사하냐?”
“큰일 났습구마.”
상순은 머리를 숙이고 며칠 전에 함흥촌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했다.
"일본놈들 천하에선 귀여운 딸도 지키기 어렵구나."
성칠은 앙천개탄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하옥은 상순의 파난 베적삼을 벗으라고 하여 한 뜸 한 뜸 기워주었다.
성칠은 상순의 얼굴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을 보고 “또 무슨 일이 있니?” 하고 물었다.
상순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어오른 입을 열었다.
“아버진 이해되지 않습니다. 난 춘실하구 결혼하고 싶은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명옥과 결혼하라고 강다짐을 들이댑니다. 그래 밸이 나서 집에서 달아났습니다. 나도 큰아버지 밑에서 총을 메고 일본 놈과 싸우겠습니다. 어디 장학산 밑에서 소작 농사나 지으면서 살겠습니까?”
성칠은 한참 궁리했다. 이윽고 그는 상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결혼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야. 부모들의 말대로 명옥과 결혼해라. 이미 택일하고 사돈보기까지 했다니 더욱 그러하다.”
“난 춘실과 이미, 에이. 며칠 전에 일본 놈들한테 아마 위안부로 잡혀간 거 같습구마. 이 세월에 일본 놈들의 성화에 어찌 삽니까?”
상순은 말끝을 흐리며 큰아버지를 흘끔 쳐다보더니 머리를 숙였다. 춘실과 살아서 이미 임신한 일을 말하려다가 욕을 먹을까봐 말끝을 삼켜버렸다.
그는 학식도 있고 무예도 있는 큰아버지를 아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하기에 그의 말은 어진간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늘 말만은 인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칠도 그런 눈치를 채고 일어나면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자식은 부명을 천명으로 받들어야 한다. 부모의 뜻대로 명옥과 결혼하는 것은 효자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다. 옛날 양산박 호한 로지심이나 무송은 여색을 멀리 하고 재물을 초개같이 여긴 대신 의리를 중히 여겼다. 그게 진정한 사나이야. 너도 농사를 짓고 살 애는 아닌 것 같아. 공산당을 따라 혁명하려는 사람이라면 너는 가정과 사랑에 얽매서는 안 돼. 큰 일을 할 사람은 여색을 멀리 해야 해.”
상순이 귀담아 듣는 것을 보고 “잘 생각해 보아라.”라고 하고나서 화제를 바꾸었다.
“이 먼 산 속으로 온바하고는 유격대에서 무예나 배워라. 넌 함흥촌에 돌아가면 농사만 짓지 말고 마을의 청년들을 묶어세워 민병으로 유격대 소 분대를 조직해 일제 지주 지학사 촌장 등 악질지주와 싸워라. 할 수 있겠니?”
상순은 큰아버지를 따라 바깥으로 나가면서 “큰아버지, 총만 주오. 그럼 일본 놈들과 본때 나게 싸울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성칠은 토굴을 되돌아보더니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차근차근 말했다.
“얘야, 아까 큰어머니 있어서 말하지 못하였다. 너네 큰어머니도 애를 하나도 낳지 못하지 않았고 뭐니? 그러나 난 할아버지가 정해준 색시이기에 버리지 않고 계속 데리고 산다. 내라고 자식을 보고 싶지 않겠니? 조카들을 볼 때면 나도 이제라도 떡돌 같은 아들을 하나라도 봤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비유 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상순은 그제야 큰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큰아버지, 그럼 큰아버지도 새 큰어머니를 하면 안 됩니까? 할아버지도 새 할머니를 모셔오고 작은 할아버지도 새 할머니를 모셔 왔는데.”
상순이 말하는 작은 할아버지는 성칠의 여동생의 남편 김범호를 말하는 것이다. 김범호는 곱순과 살아서 딸 하나를 낳고 10여년 동안 애를 보지 못해 첩실을 들여앉혀 오랜 만에 맏아들 동길의 뒤를 이어 명길까지 아들을 줄줄 보았던 것이다.
성칠의 대답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 항일유격대 혁명 자들은 혼인문제를 완전히 다르게 대한다. 우리 혁명 자들은 전통적인 봉건 혼인과는 달리 일부일처제를 주장한다.”
“일부일처제라니?”
“남자는 아내를 하나만 하고 아내도 남편을 하나만 둬야 한다는 것이다. 첩을 둬서는 절대 안 된다. 할아버지처럼 아내가 사망한 후 후처를 두는 것은 허용한다. 아들을 보자고 이제껏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조강지처를 버리고 후처를 하거나 첩을 두는 건 혁명 자의 처사가 아니지.”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너도 그래. 부모가 이미 택일까지 했으면 부모의 명대로 명옥과 결혼하는 게 옳아. 혁명 자로 되려면 혁명자의 혼인 관을 세워야 한다. 개인의 감정을 억제하고 도리에 맞게 혼인을 대해야 한다. 모든 일에서도 개인의 감정이나 기분을 억제하면서 조직의 기율대로 처신할 줄 알아야 하지.”
상순은 마음속에서 잘 납득되지 않았다.
성칠은 옷을 슬슬 벗어버리더니 상순에게 덤비라는 시늉을 했다.
“자, 보자, 막내조카 권투기술이 늘었는가?”
상순은 이전에 큰아버지에게서 여러 번 배운 동작대로 주먹을 쳐들고 8자를 그으면서 번개 불이 나게 덮쳐들었다. 상순이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성칠은 몸을 낮추며 상순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나가면서 오른 주먹을 바람개비처럼 날려 상순의 아래 배를 슬쩍 갈겼다.
“억!”
상순은 외마디소리와 함께 배를 끌어안고 앞으로 쓰러졌다.
성칠이가 매가 쥐를 덮치는 동작으로 날아 들어가며 주먹을 재차 쳐들 때였다. 상순은 공중에서 덮쳐드는 매를 두발로 차는 토끼 동작으로 성칠의 가슴팍을 탕탕 차며 뛰어 일어났다.
“하하하. 그놈이 제법인걸.”
성칠은 금방 있은 접전을 총화면서 권술을 가르쳤다.
“급급히 이기려고 서둘면 자기 허점을 드러내게 되여 반격을 맞게 된다. 때문에 변화 속에서 상대방의 허점을 유도한 후 일격을 가해야 한다. 말하자면 주먹을 들고 자세를 취한 후 상대방의 주위를 재빨리 맴돌다가 상대방의 자세가 흐트러질 때 번개같이 덮쳐들어 일격을 가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반격을 피할 준비도 해야 한다. 알만하지?”
성칠은 직접 동작을 해보이면서 배워주었다.
“이렇게 해라.”
상순은 주먹을 쳐들고 배워 준 대로 해보았다.
“맞아. 상대방을 단매에 쳐 눕히지 못하면 치곤 즉시 옆으로 혹은 뒤로 피했다가 인차 연속 공격을 들이대야 해. 그래야 공격하면서도 반격을 피할 수 있는거야.”
상순이가 따라 하는 힘 있고도 날랜 동작을 보고 성칠은 엄지를 내둘렀다.
“넌 정말 전도 있는 권투수다. 그러나 한 가지만 잊지 말아라. 지금 배우는 권투는 권투시합에 쓸 권투가 아니라 죽기내기를 건 권투다. 일본 놈들과 싸우려면 권투기교가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건 목숨을 내걸고 싸울 용기와 담이 있어야 한다. 무쇠주먹을 연마해라. 단매에 일본 놈을 쳐 죽이지 못하면 그 놈의 총이나 칼에 내가 죽는다는 거 각오하고 생사결단하고 싸워야 해.”
상순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성칠은 밀림 속에서 대야만큼 한 둥글 넙적한 돌을 주어 들고 오더니 너럭바위 우에 놓았다.
성칠이가 기합을 단전에 모았다 손에 기를 넣더니 “얏!” 소리와 함께 주먹을 휘두르자 둥글 넙적한 돌이 세 토막으로 박살났다.
“와~ 어떻게 이런 무쇠주먹을 연마했습니까?”
성칠은 돌가루가 묻은 자기 주먹을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루 이틀에 연마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뒤이어 그는 종아리에 처맨 납작한 모래주머니를 풀어 상순에게 주면서 “처음에는 이런 모래주머니를 주먹으로 치고 점차 딴딴한 마른 나무도 치고 아름드리나무도 치면서 무쇠주먹을 연마해라.”
상순은 모래주머니를 주어들고 보더니 “함흥촌 옆의 태평강 모래바닥에 가서 모래나 자갈을 치면서 무쇠주먹을 연마하면 안 됩니까?” 하고 물었다.
“좋지. 아무도 몰래 무쇠주먹을 연마해라. 속담에 평소에 흥 소리도 없던 소가 뜬다고 했다.”
상순은 큰아버지의 깊은 말뜻을 알아듣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번엔 권총을 쏴 봐.”
성칠은 땅바닥에서 자기 옷 위에 벗어놓은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탄창을 뺀 후 상순에게 넘겨주었다.
상순은 제법 안전장치를 누른 후 아름드리나무를 겨눠 방아쇠를 절컥 당겼다. 그는 각종 자세를 취하면서 여기저기 겨누면서 방아쇠를 절컥, 절컥 당겼다.
“참 멋지군.”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리면서 이런 청을 드렸다.
“큰아버지, 권총 한 자루만 주시요. 내 지학사 같은 악질지주를 처단해 버리고 쌀을 빼앗아 유격대에 가져 오겠습니다. 지학사를 봅소. 남의 귀한 딸들을 글쎄 일본위안소에 팔아넘기지 않겠는가 인피를 쓴 승냥입니다. 춘실과 은실은 어떻게 됐는지 알수조차 없습구마. 내 언제든지 내 손으로 지학사를 죽여 치우겠습구마. ”
“안 돼.”
이때 인삼이가 희죽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왜?”
“유격대 대장들도 지금 권총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야. 또 네게 권총을 줬다가 밀정들에게 들키는 날엔 함흥촌 일대 항일 근거지가 타격을 받을게 아니야? 그리고 네 일가가 몽땅 연루될 수도 있지.”
상순은 답답해 머리를 홰홰 가로 저었다.
“총이 없이 어떻게 총을 쥔 지학사랑 진수해분주소 경찰 놈들과 싸우오?”
성칠은 “저 인삼동생의 말이 옳다. 먼저 넌 마을사람들을 묶어세워 소작료를 적게 내구 쌀을 유격대에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해라. 그것도 우리 유격대 항일투쟁을 돕는 게야. 이전에 인삼 중대장이 직접 그 일을 했지만 지금 네가 맡아 하도록 해라. 잘 할 수 있느냐?”
상순은 주먹을 쳐들어보였다.
“할만 합니다. 유격대를 위하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성칠은 상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좋아. 우리 항일유격대에서는 너를 믿어. 총이 없어도 비수나 주먹이 어떤 땐 감쪽같이 없앨 수 있어. 독불장군이라고 혼자 경거망동하지 말고 함흥촌의 청년들을 묶어세워 유격대에 쌀도 지원하고 유사시에 일본주구들도 처단해라. 그러나 모든 군사행동은 우리 유격대 명령을 기다려라.”
“옛, 알았습니다. 한 가지 요구 있습니다."
"뭐야?"
"일본놈들한테 잡혀간 춘실과 은실을 구해 줍소.”
"그래, 언제든지 기회를 보아 은실을 구해야 해."
"감사합니다!"
상순은 제법 유격대원들처럼 군례를 올렸다.
그때 진달래가 와서 상순이 늙은 비술나무에 숨어있다가 용감하게 뛰어내려 일본 놈을 찍어 죽이고 장총을 로획한 일을 죽 이야기했다.
인삼은 미더운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유격대에 후계자가 생겼군그래. 먼저 여기 있으면서 유격대와 함께 군사훈련도 하도록 해라.”
“옛,”
차렷 자세를 하고 군례를 올리는 상순을 보고 성칠과 인삼은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우리 집안에 또 항일유격대 꼬마대장이 나타났구먼.”
“허허허. 참말 장하오.”
저쪽에서 하옥도 시조카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가리운 밀림속에서는 유격대원들의 격투련습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는 유격대원들이 투지도 높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혁명투지에 마음속 깊이 감동됐다.
(항일유격대원들은 정말 목숨을 내걸고 일본 놈들하구 용감히 싸우는 투사들이야!)
상순은 두 달 동안이나 성칠과 인삼, 진달래를 스승으로 모시고 권투와 총 쏘기, 돌 뿌리기를 익힌 후 장백산 밀림의 항일유격대 군영에서 나왔다. 그는 성칠 큰아버지가 시켜준대로 산 약재 캐러 간것처럼 위장하려고 시오랑 도라지랑 산 약재를 두루 캐서 광주리에 담아 지게에 얹어 지고 함흥촌으로 돌아 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멍지뫼산 그리고 칼산과 패랑천산의 절벽과 나무숲을 서서히 뒤덮어 갔다.
상순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토성 동남쪽에 있는 자기 집 울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온 집 식구들이 사랑 칸 쪽에 우두커니 모여 서서 떠들썩했다.
       "무슨 일입둥?"
상순이 황급히 집식구들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오, 상순이 왔구나.”
기준은 막내아들이 온 것을 보고 무등 기뻐했다.
상순이가 사랑 칸 안을 들여다보니 황소가 쓰러지어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또 콩을 먹었습둥?”
기준은 소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콩을 먹은 게 아니야. 구유에 매 놓은 채로 있는데 주지도 않은 콩을 먹었겠니? 뭘 잘 못 먹었는지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있다. 손지주네 주재소를 이걸 어쩌니?”
상순은 구유 안을 들여다보더니 손을 넣어 옥수수장이랑 풀이랑 썰어 넣은 소여물을 휘저어 보았다. 소여물을 쥐여 코에 가져다 씩씩 냄새를 맡아 보고 혀끝으로 냄새를 맡아보던 그가 상을 찡그리면서 소리치었다.
“무슨 독이 들어간 거 같습구마.”
“뭐라고? 독이?”
“예. 옥수수 대는 달겠는데 씁구마.”
“그럴 리 있겠느냐?”
그런데 둥글소는 눈을 감더니 숨마저 거두었다.
“에이, 또 손지주 와서 야단치겠구나.”
기준은 상순을 보고 “손 지주 뭐라고 해두 꾹 참아라.  항상 너 그 불 같은 성깔이 근심된다. 낮은 문턱일수록 머리를 숙이어야 머리가 맞아 터지지 않는 법이야.”
상순은 억지로 밸을 참으면서 사랑 칸에서 나갔을 때었다. 난데없는 황둥개가 씽- 달려 와서 상순의 바지를 물어 당기었다.
“지개!”
기준은 위방 쪽을 쳐다보면서 퉁명스레 쏘아 부치었다.
“황둥개 또 꼬리를 친다. 쯧쯧쯧.”
상순은 개의치 않고 황둥개가 뛰어 가는 대로 뒤 집 쪽으로 굽어 들었다.
“형님! 여기 빨리 오오.”
갑자기 상순이 새된 소리를 치면서 손을 저었다.
“무슨 일이야?”
기준과 상우는 황급히 달리어 갔다. 그들이 보니 뒤 집 구새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어 거의 넘어 가고 있었다. 군선이가 혼자 안간힘을 다해 넘어 지는 구새를 받치어 보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구새목에 배가 남산만한 춘실과 머리를 싸맨 해금이가 용빼는 수가 없어 맴돌았다.
(아니, 춘실이 돌아왔어?)
상순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 뒷집으로 달려갔다.
"춘실이!"
 그러나 춘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외면한 채 어깨를 들먹이며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상순은 춘실이 우는 걸 보고 체면 따위는 다 벗어버리고 춘실을 와락 끌어안았다. 춘실은 손으로 상순을 밀어버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저쪽 토성안 집 토성 우에서 지학사란 촌장놈이 이쪽에 도끼눈을 흘기며 으르렁거렸다.
"아니, 춘실이, 저년이 어떻게 돌아왔어?"
지학사는 심술이 났다.
"개쌍년을 일본 놈들한테 괜히 줬어. 개 놈들, 여기 와서 배부른 흥정을 다 해? 나도 데리고 놀지 못했는데. 저 고운 년을 어쩌면 좋을가?"
지학사는 사다리를 타고 토성에서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일본놈새끼들, 안 가져가겠으면 말어. 내 먹어버려야지. 상순, 저 놈 새끼한테 춘실을 넘겨줄순 엇어. 흥! 어디 두고 보자."
그때 춘실이네 구새는 거의 번져 지고 있었다.
“기다립소!”
상순은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어깨로 번져 지는 구새를 떠받치었다. 뒤에 들이닥친 기준과 상우까지 합세하여 구새를 떠밀자 구새는 도로 곧게 서기 시작했다.
구새통을 곧게 세운 후 기준이가 도끼와 못을 가지고 와서 받침목을 대고 고정시키어 놓았다. 그리하여 군선이네는 한차례 위험을 모면했다.
군선은 맥없이 구새 목에 물앉으면서 “야, 아들이 없는 게 한이로구나.” 하고 장탄식했다.
“아버지, 딸은 자식이 아닙둥?”
춘실은 훌쩍이며 돌아서더니 마주 보는 상순한테 눈을 흘기며 외면했다. 춘실의 어머니는 상순을 쏘아 볼뿐 행악질은 하지 않았다.
상순은 춘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돌아왔어? 네가 살아왔으니 살맛이 있구나. 지학사 촌장이 또 붙잡으러 오지 않을가?"
춘실은 전날 상순이 목숨을 걸고 구해준 일이 있는지라 그를 미워하진 않았다.
"아마 내 몸이 이런걸 보고 그만둔 거 같아."
사실 춘실과 은실은 모두 지학사란 촌장놈의 밀고로 해 밤중에 일본놈들에게 붙잡혀갔었다. 지학사는 상순을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다. 그는 상순과 붙어다니는 춘실 자매를 일본 놈들한테 팔아버려 상순의 기를 꺾어놓자고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악귀 같은 지학사의 밀모에 의해 춘실과 은실 자매는 진수해 북쪽 어귀에 있는 높은 토성 안에 있는 위안소라는곳에 붙잡혀 들어갔다.
      위안소 소장 놈은 아랫배가 부어오른 것도 모르고 이뻐보이는 춘실을 다짜고짜 끌고 작은 방에 들어갔다.
"오, 우쯔꾸씨이 온나(이쁜 여자)!"
      그 놈들은 다짜고짜로 춘실을 깔고 들어앉아 저고리를 와락와락 벗기었다.  춘실이 아무리 발버둥질을 치면서 발악해도 악귀 같은 그 놈을 당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춘실의 하신에서 어찌나 피를가 많이 흘러나오는지 더러워 코를 싸쥐였다.
"흥! 퉤!"
      재미없었다. 소장 놈은 괴춤을 춰올리면서 춘실을 툭 차버렸다.
소장놈은  이번엔 은실을 강제로 끌어내 독방에서 이른바 신체검사를 하는 척 하면서 짓밟다가 아연실색했다.
"나니까(뭐야)? 빠까요로(제밀할), 이시무스메(돌처녀)!"
그 놈은 아무리 야욕을 채우려고 해도 은실의 몸속으로 그게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지독한 그 놈은 다른 일본 놈들을 시켜 은희를 짓밟게 했다. 야욕이 발정한 야수 대여섯이 연이어 은실을 짓밟았다. 은실은 너무 아파 대성통곡 치면서 "엄마! 엄마!" 하고 죽어가는 신음 섞인 소리로 고함쳤다.
      일본놈들이 은실한테 덮쳐드는 틈을 타서 춘실은 도망쳤던 것이다. 그러나 춘실은 창피해 상순한테 그 내막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소장 놈은 은실의 방에 계속 야욕이 발작한 놈들을 십여명씩 밀어넣어 무참히 짓밟았다. 그래도 은실의 하신이 째지지 않자 소장놈은 뾰족하게 깎은 참대칼로 은실의 하신을 미친 듯이 찔렀던 것이다.
      소장놈은 피묻은 참대칼을 쳐들고 징글맞게 웃어댔다.
"네 년이 아무리 돌처녀라고 해도 참대칼을 당할 수야 있어? 으하하하"
은실은 기혼하고말았다. 그러나 야수 같은 소장님과 색마들은 은실의 피흐르는 하신을 구경하면서 "오, 이시무스메!" 하고 변태적으로 으르렁거리며 지껄여댔다.
색마 같은 일보 놈들은 춘실이 임신부라는 것을 발견한 후 아쉬운 대로 며칠 잡일을 시키다가 쫓아냈던 것이다.
"개놈새끼들, 이 원쑤는 꼭 갚아야 해!'
상순은 주먹으로 애꿎은 벽을 퉁 쳤다. 흙벽이 움푹 주먹자리가 나면서 마른 흙벽가루가 흩날려 떨어졌다.
춘실은 상순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어떻게 유격대에 연락해서 은실을 위안소에서 구해내지 못할까?"
"글세, 기회를 보자."
상순은 어깨를 들먹이는 춘실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괴어 번지어 자리를 떴다.
그가 울타리를 금방 나설 때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지학사 놈과 딱 마주쳤다.
밸 같아선 한주먹에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상순은 용케도 꾹 참고 능청스레 인사했다.
"지 촌장, 무사합둥?"
지학사는 개화장을 휘두르면서 우멍눈을 가슴츠레 뜨고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이 촌장어른께 청가도 맡지 않고 요새 어디에 갔어?"
"오, 그래잖아도 지촌장한테 산 약재를 가져다 드리자고 캐왔는데. 에헴, 내 따라 옵소. 그간 내 산에 가서 장수약재를 캐왔수다. 허허허."
"뭐라고? 너 약재를 캐왔어?"
"우리 마을에 유격대 쳐들어온 일 몰라? 웬 놈이 도끼로 일본 황군을 찍어 죽였어."
"모릅구마. 누가 감히 그런 짓을 다 해?"
상순은 능청을 떨었다.
"산약재나 어디 보자구나."
지학사는 상순을 따라 앞집에 갔다.
어둑시그레한 사랑칸에 들어가 보니 아닌게 아니라 지게 위 광주리에 도라지랑 시오랑 더덕이랑 한 광주리나 있지 않겠는가.
"허허허. 너 이런 재간도 있어?"
지학사는 광주리채로 들어가려고 했다.
"가만, 이 좋은 약재를 우리 아버지한테도 주게 좀 남기요."
상순은 도라지 몇뿌리를 쥐어냈다.
 "놔둬. 자식,"
지학사는 가슴츠레한 실오리눈깔을 해가지고 상순을 쏘아보았다.
"늙은 비술나무에 귀신이 붙었어? 똘만경찰도 늙은 비술나무 아래서 돌멩이에 맞아 죽었고 이번에도 거기서 사단났거든. 그놈 늙다리비술나무를 송두리채 뽑아버려야지.흥!" 
지학사는 한바탕 으르렁대다가 상순을 놓아주고 약재광주리를 안고 헐레벌떡 가버리었다. 아무 꼬리도 밟지 못하자 이빨을 쁙쁙 갈았다.
(아무대든 내 손에 죽을줄 알아! 흥!)
그때 상순도 윽윽 별렀다.
"개놈새끼, 언제든 피빚은 피로 갚아야 해!"
상순은 뒤에서 살기찬 눈길로 지학사의 뒤잔등을 노려보았다.
지학사가 말하는 늙다리나무란 조개덕과 함흥촌 동구에서 뻗어나간 길이 합해지는 길목에 있는 늙은 비술나무를 가리키는것이였다. 그 나무는 몇백년이나 살았는지 키는 그리 높지 않아도 둘레길이는 장정 대여섯이 팔을 펴고 손잡고 둘러서야 다 안을수 있는 엄청 실하고 늙은 비술나무였다.
기준은 어둠속에서도 구새 받침대에 못을 땅땅 박으면서 군선에게 말했다.
“군선이, 우리 상순이 돌아오는 음력 10월 10일에 결혼하니까 잔치 술이나 마시러 오오.”
그 말에 군선은 구새를 잡은 채 맥 없이 말했다.
“내 만났을 때 하는 말이지만. 아니, 그 집 막내 놈과 우리 애가 사고를 친 거 같소. 이 일을 어쩌오?”
“양? 사고라니?”
군선은 나지막이 “우리 애가 배 남산만큼 부어오른 걸 보지 못했소?” 하고 말했다.
기준은 또 못을 단단히 박았다.
“자식 놈들이 덤벙댄 거 용서해 주오. 춘실을 좋은 신랑감을 찾아 잔치를 시키우.”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남의 애를 낳은 딸이 시집을 온전히 갈 거 같잖소.”
기준은 마지막 못을 땅, 땅, 땅 박았다.
“미안하오.”
춘실은 아버지와 기준이 구새 목에서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듣고 이불을 와락와락 내려 들쓰고 들어 누워 섧게 울었다.
해금은 딸이 불쌍해 훌쩍 일어나 쌩 구새 목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기준은 보이지 않고 영감만 구새 목에 맥없이 물앉아 있었다.
“이 오줌 깨 같은 영감이, 앞집영감하구 찍 소릴 못 하구 마오? 내 오늘 가만 놔두는가 봐라.”
그녀는 홱 돌아서더니 앞집으로 씽 달리어 나갔다.
뒤에서 군선은 손가락질 하면서 “저, 저, 또, 또.”라고 할뿐이었다.
해금은 앞집에서 한창 저녁 숟가락을 드는데도 정지에 들어가 떠들어댔다.
“앞집나그네, 우리 딸을 내놓소! 우리 딸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 날엔 내 가만 있나 보오! 흥!”
사련은 엉거주춤 일어나 “어쨌다고 이러오? 올라 와 저녁이나 들면서 천천히 얘기하오.” 하고 말하면서 바닥에 내려가 해금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걸 놓소. 남의 딸을 배 남산만큼 만들어 놓고 다른 집 딸과 잔치 하면 되오? 춘실의 배 속에는 이집 새끼가 자라고 있소.”
기준은 숟가락을 탕 놓았다.
“뭐라오?”
“그래 몰라 묻소?”
해금이 행악질하는데 새금이 막아 나섰다.
“그만 하오. 삼촌댁, 아무 말씀이나 할 게 아니오.”
그는 자기 삼촌댁의 손을 잡아 구들에 올라오게 하고 뒤 말을 이었다.
“동네에 소문이 나면 어찌오? 그러지 않아도 동네서 쉬쉬 하는데 창피해 어떻게 사오? 어찌 하겠소? 시아버지 고르고 골라 쥐며느리를 삼자고 그러는 거. 우리 지씨 네 딸들이 어떻다고 나무라는지 모르겠소.”
기준은 등잔불 밑에서 맏며느리를 흘기어 보았다.
상우도 너무한 것 같아 핀잔을 주었다.
“여보, 아버지와 무슨 말버릇이오?”
그러나 새금은 공혁을 안고 바깥에 횡 하니 나가면서 끊임없이 도도도 거리었다.
“개성 최 씨네 시어미에 며느리까지 들어와 이 집안이 재미 있겠소. 난 이 집 쥐며느린 게 무슨?”
기준은 훌쩍 일어나 위방으로 들어 가버리었다. 상순은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바깥으로 나가더니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었다.
기준은 위방에서 바로 앉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맺고 끊듯이 말했다.
“좌우간 그 집과는 혼사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만 두고 가오. 우리 상순이 뭣이 모자라 데릴사위로 들어 간답데? 염치없는 집안이라구야, 원, 흥!”
      해금은 가슴에 못이 꽝꽝 박히고야 말았다. 성이 날대로 난 그녀는 위방으로 씽 달려들어 가 기준의 멱살을 틀어쥐고 늘어지며 행악질했다.
“이 더러운 영감두상, 개소리를 치지 말구. 내 딸을 처녀로 돌려 달라. 우리 집에 아들이 없다고 업신여기는가? 엉?”
“콱 신어놓기 전에 놓지 못하겠는가?! 그 쌍년 어미에 상년 딸이지. 우리 집에 와서 종질을 하겠다고 해 봐라. 데려 오는가?!”
기준은 고래고래 고함치며 해금의 손을 풀어 활 떠밀었다. 해금은 저만치 벽 구석에 뿌리어 나가 나뒹굴었다.
상우도 해금을 말리어 위방에서 모시고 나갔다.
“작은 가시엄마, 우리 아버지 고집을 돌리지 못합구마. 내 처제한테 상순이보다 더 좋은 신랑감을 얻어주겠습구마.”
“관두오. 저 배속에 애는 어찌 하오? 누가 남의 애를 가진 계집애를 데려 가자 하겠소?”
“바깥에서 떠들지 맙소. 누가 듣겠습구마.”
상우는 해금을 부축해 뒤 집으로 들어갔다. 새금도 공혁을 안고 훌쩍거리면서 뒤따라나갔다.
그제야 토성안집 동쪽이 조용해지었다.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우는 뻐꾹뻐꾹 소리가 들리어 왔다.
해금과 상우는 이불을 들쓰고 누운 춘실을 불쌍하게 내리 보았다. 그러나 춘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불이 풀럭거리며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태평강가의 아름드리버드나무가 무섭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씩씩거리면서 태평강 가에 달리어 갔다.
“아, 아버지는 어째 내 춘실과 살지 못하게 합니까?”
그는 장백산 밀림 속에서 큰아버지가 하던 말을 생각하고서야 겨우 고민 속에서 해탈되어 그간 배운 권술을 연습했다. 한참 발딱거리면서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더니 성이 좀 풀리었다.
그는 먼 동산에 걸린 먹장구름 속의 초생 달을 쳐다보면서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1937년 음력 10월 10일, 결혼식 날은 끝내 돌아 왔다.
마을 사람들과 기준의 온 집 식솔들은 밸 때기 더러운 상순이가 백마를 타고 명옥을 가마에 앉혀 데려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안사람들은 곱게 단장한 명옥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새각시 너무나 곱구나.”
“춘실과 자꾸 비해 그렇지. 저만하면 상순이 각시 복이 있지 뭐.”
백마를 탄 상순은 원래 벗어진 이마나 짙은 눈썹아래 예리하게 번쩍이는 세 귀 눈이라던가, 날이 선 코나 맵짠 입은 정말 호남아였다.
그러나 상순은 웃음 한 점 없이 머리를 숙인 채 묵묵히 백마를 타고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가마를 탄 명옥을 보고 “첫날 새 각시도 저만하면 곱다야.”라고 했다.
“응아-” “응아-”
이때 뒷집에서 갑자기 갓난애 우는 소리가 울리었다.
춘실은 앞집 상순이가 백마를 타고 가마를 탄 각시를 데리고 집안에 들어설 때 애를 낳았던 것이다. 춘실은 앞집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를 듣고 애비 없는 애를 가엾이 내려다보더니 돌아누워 어깨를 들먹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쓰라린 눈물이 흐르고 흘러 베개 잇을 적시었다. 처량한 달빛이 춘실의 모자간이 가엾어 은빛으로 감싸 주었다.
      첫날밤에 상순은 어머니와 여동생 금옥이가 펴 놓은 누더기 첫날이불 속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숨을 후 내쉬더니 새 각시 명옥의 옆으로 가지도 않고 훌 돌아누워 버리었다.
      명옥은 오히려 편히 잠을 잘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사랑방이 어찌나 비좁았으면 옆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누워 돌아누울 자리조차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웃새집에 들어갔기에 넷이 누울 자리가 났던 것이다.
      초겨울 밤의 희읍스름한 달빛이 첫날이불을 쓸쓸히 비췄다…
 
 
 
 
 
 
 
 
 
 
 
 
 
 
 
 
                                                               15 피눈물 젖은 고향
                                                                                     





                                                                      1.
유격대 군량미

        상순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간도에 들어 와 새로 닦은 터전인 함흥촌을 돌아보자 코마루가 시큼해 났다.
       (뼈 빠지게 황무지를 개간해 곡식을 심어도 중국 지주 장학산에게 소작료를 바치고 나면 어디 유격대에 가져 갈 쌀이 남겠는가.)
      상순은 토성 안 집에 살다가 허망 나앉은 큰아버지가 근심스러웠다. 그러자 인삼 중대장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주나 부자 놈들의 쌀을 빼앗아내 가져가야지. 먹을 게 없는 농민들은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지주와 부자 놈들의 재산을 몰수해 나눠 가져야 진정 땅의 주인이 돼 떳떳하게 살 수 있다. 이게 바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을 따라 혁명을 하는 도리이다.)
상순은 높다란 토성 밑에 와서 토성 안 집 자리에 독사처럼 들어앉은 촌공소를 들여다보는 순간 눈에 불티가 번쩍이었다.
“지학사, 네 이 놈, 지금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우쭐거린다만 오래 가는가 두고 보자. 어느 땐가 내 유격대를 데리고 와서 네놈을 처단하고 재산을 청산해 버릴 줄 알아라. 이게 인삼아저씨네 토성안집이지 네 집이야? 바로 자기 집인 거처럼 개지랄이야. 흥!”
상순은 토성 대문 안에 소홀히 들어가지 않고 기웃거렸다.
(유격대에 쌀이 당장 떨어지는데 얻어다 줘야지. 저놈 토성 안 촌공소를 들이쳐서 쌀을 빼앗아 가져갈까?)
그러나 한참 궁리해 보니 자칫하면 그들 삼대가 와서 개척해 놓은 함흥촌이 또 일본 놈들의 토벌을 맞을 수도 있었다.
(토끼도 자기 굴 앞의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는 강가의 너부죽한 너럭바위 우에 앉아 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일어났다.
“옳지, 구촌 아저씨 선준을 따라 다니면서 약 담배 장사를 해 유격대에 쌀을 사가자.”
이튿날, 상순은 선준을 찾아 갔다.
인사수작이 끝나자 상순은 단도직입적으로 “삼촌, 나도 약 담배 장사를 하고 싶소. 좀 도와주오.” 하고 간청했다.
그러자 선준은 위방 문부터 닫아걸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 나.”
선준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바빠 맞은 상순은 선준의 손을 꽉 붙잡고 애원했다.
“사몬, 우리 집에서 손 지주네 주재소를 죽이었는데 어찌 하오? 당장 소를 사줘야 하겠는데 목숨을 걸고서라도 장사를 해야 하겠소.”
선준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궁리하였다.
등불이 가물거리는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선준은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상순을 마주 바라보았다.
벗겨진 이마에 독기서린 세 귀 눈, 베적삼 팔소매 밑으로 드러난 울뚝불뚝한 팔 근육… 어디를 보아도 씩씩하고 믿음직한 조카였다.
“밑천도 없는데 처음부터 어떻게 약 담배장사를 하겠니? 우리 약담배짐이나 메고 호위나 해 달라.”
“감사하오. 삼촌.”
상순은 선준의 두 손을 꽉 잡았다.
며칠 후 상순은 호미를 들고 기음매러 가는 척 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는 미리 약속한대로 조개덕 아래 늙은 비술나무 밑에서 구촌 아저씨들인 선준과 두준을 만났다. 선준과 두준은 사촌형제였는데 기실 상순보다 서너 살 이상이었다.
“괜찮다. 호미는 왜 가지고 왔니? 저기 길옆에 파묻어 두구 가자.”
상순은 호미를 쳐들어 보이면서 호언장담했다.
“이걸 보면 누가 우릴 약 담배장사군으로 보겠소? 또 강도떼를 만나면 호미로 단매에 쳐 죽일 수도 있소.”
그 말에 선준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남집 조카는 머리가 비상하다니까.”
그러나 두준은 입귀를 비쭉거리었다.
“그까짓 호미로 어떻게 호위한다고? 쯧쯧쯧.”
선준은 성격이 활달하고 남을 쉽게 믿지만 두준은 조금 우울한 편인데다 남에게 마음을 쉽게 주지 않았다.
상순은 호미를 쥐고 앞뒤를 살피면서 령길을 앞장서 걸었다. 가시덤불을 만나면 앞에서 호미로 길을 헤치어 나갔고 어두운 밤이면 뒤에 서서 두 삼촌을 지켜 주었다.
조선 명천에 거의 들어서자 두준은 별 말을 다 했다.
“팔촌형 때문에 고향에서 살지도 못 하구 간도에 쫓기어 가서 이게 뭐야? 옛날 조선 법에 한사람이 죄를 지으면 팔촌까지 누명을 쓴다더니 어쩜 일본 놈들 법도 똑 같니?”
선준은 묵묵히 걸었지만 두준은 계속 두덜거리었다.
“기준 형님네 부자간이 우시장 경찰국이 무너지게 짓지 않았더라도 우린 고향에서 쫓기어 나지 않았겠는데…”
선준이 참다 못 해 한마디 툭 내쏘았다.
“기준형님 덕분에 우리 큰집 작은집이 몽땅 함흥촌에 발을 붙이게 됐는데 어째 자꾸 형님 네를 헐뜯소? 상순을 옆에 두고.”
“야, 임마, 고향에서 살면 살았지. 누가 함흥촌에서 살고 싶어 사니?”
두준은 계속 말하려다가 상순이가 호미를 쥐고 되돌아보자 허 벌렸던 입을 천천히 닫아버리었다.
밀림 속은 찌는 듯이 무더웠다. 여기저기에서 놀란 새들이 푸르릉 푸르릉 날아 푸르른 나무 잎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하늘로 날아갔다.
그들은 명천 시내에 들어가지 못하고 산골짜기를 넘어 동남쪽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적송이 우거진 박달령을 넘어서자 깎아지른 듯한 산과 협곡이 나타났다. 몇 시간이고 령을 타고 산을 넘고 산골짜기를 몇 개 건너가자 은띠 같은 은주하가 산굽이를 굽이굽이 에돌아 뻗어 내리어 간 것이 눈에 띄었다. 강물을 끼고 산 아래 마을이 보이었다.
선준은 산 아래 마을을 가리키면서 “저게 네 고향 운주동이야.” 하고 알려 주었다.
“내 고향이라고? 저 고향 마을에 가보기오. 무너진 우리 집 자리라도 있는지 가봐야겠소.”
“에끼, 이 놈, 환장했니?”
두준은 상순을 흘겨보면서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였다.
 “지금 일본 놈들이 너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잡지 못해 피 눈이 돼 날뛰고 있는데 고향으로 가? 자칫하면 우리까지 작두에 목이 썩 뚝 잘리겠어.”
상순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발에 뿌리 내린 듯이 멈춰 서서 고향 마을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선준은 상순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이담 일본 놈들을 몰아 낸 후 고향에 와서 살아도 돼. 가자.” 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그제야 상순은 할 수 없이 경각성을 높이어 사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앞길을 헤치며 나갔다…
명천 시내에 들어서자 선준은 상순에게 귀속 말을 했다.
“우리 물건을 하는 새 너는 썩 떨어져 따라 오라. 만약 우리 뒤를 밟는 놈이 있으면 가차 없이 해치워야 한다. 알만하니?”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호미자루를 거머쥐고 선준과 두준의 뒤에 한 일여덟 발자국 떨어지어 따라 가면서 사처를 두리번두리번 살피었다.
선준과 두준은 우시장에 들리어 이전에 거래하던 약 담배 장사꾼들에게서 약 담배를 사 들이었다.
그들은 소금주머니 속에 약 담배를 감춰 가지고 시내를 벗어나자 또 령 길을 잡아타고 북으로, 북으로 걸어갔다.
연 며칠 산속에서 헤매 끝내 회룡 부근에 이르렀다.
선준은 잔등에 지었던 소금짐을 끌러 내리우더니 약 담배를 꺼내며 상순에게 말했다.
“이대로 가져가서는 안 돼. 좀 보초 서라.”
       선준은 미리 사둔 일본제 치약을 짜 버리고 치약 안에 약 담배를 쑤시어 넣는 것이었다. 두준은 치약에 넣고도 약 담배가 남자 나무숲에 가서 뒤를 보고 돌아왔다. 그는 약 담배를 비닐로 감더니 바지를 벗고 낑낑거리며 항문에 쑤셔 넣었다.
두준은 나머지 약 담배를 상순에게 건네주었다.
“너도 항문에 넣어라. 강도도 없는데 공 짐삯을 받지 말고."
상순은 이제껏 공밥을 먹고 공 짐삯을 받을 것 같아 약 담배를 받아 이를 악물고 항문에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문이 어찌나 아픈지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에이, 이 놈 약 담배 장사도 쉽지 않구나.)
선준과 두준이 일본 놈들이 총칼을 쥐고 지키는 두만강 나루터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상순은 멈춰 섰다.
“어째 하필 일본 놈들이 지키는 나루터로 가오? 놈들이 없는 데 가서 고기 배라도 얻어 가지고 건너지.”
선준이 다가와 상순에게 나직이 귀속 말을 했다.
“어떤 때엔 놈들을 피해 가면 더 의심받을 수 있다. 저 놈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아니? 고기 배 주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유격대나 약 담배장사를 붙잡으라고 매수했어. 알만 해?”
나루터에서 몇몇 일본 놈들이 총칼을 비끼어 들고 간도에 들어가는 조선 사람들의 몸과 짐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가마를 빼 지게에 진 사내로, 애를 업고 함지를 인 아낙네로 떠들썩했다.
선준 등의 차례가 되자 콧수염을 기른 일본 놈이 도끼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두 팔을 벌리어 들게 한 후 온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잔등에 진 짐을 벗기어 치약 대여섯개를 쥐여 만지작거리면서 선준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 했다. 선준은 일부러 고개를 들어 먼 북산을 쳐다보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 했다.
“고레와 나니까?(이건 뭐야?)”
선준은 일본 말을 꽤나 하였지만 대답 대신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시늉을 했다.
헌병 놈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선준의 볼을 잡고 “아~” 하고 “구찌오 히라께(입을 벌려)!”라고 명령했다.
선준의 벌린 입안을 들여다보더니 버럭 고함쳤다.
“빠가요로(바보), 이발이 싯누런데 칫솔 약을 저렇게 많이 사 갔소까?”
헌병 놈은 치약 마개를 일일이 열어 쭉쭉 짜보았다. 그런데 안에서 하얀 치약만 괴어 나왔다. 그래도 시름 놓지 못하고 일본 놈은 소금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넣어 이러 저리 헤쳐 보기도 하고 총창 끝으로 소금을 이리저리 헤치어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께(가라)!”
선준은 소금 짐을 지고 나루 배 쪽으로 갔다. 두준의 차례가 됐다. 일본 놈은 소금 짐을 들춰 보고 치약이 나오자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준을 끌고 한쪽으로 갔다.
“후꾸오 누게(옷을 벗어)!”
두준은 눈이 휘동그래졌다.
(‘똥을 누게’? 큰 일 났는데.)
“하야꾸 누게(빨리 벗어)!”
“금방 누게.”
두준은 옷을 쫄딱 벗으면서 앉아 똥을 누는 시늉을 했다.
헌병 놈은 두준이 앞에서 앉았다 섰다 하는 시늉을 하며 을러멨다.
 “고레요우니 야루(이렇게 해)!”
순간 숱한 눈길들이 이쪽으로 쏠리었다. 선준은 두준이 근심돼 나룻배에 오르지 못하고 서성거리었다. 그때 상순이가 두준 쪽을 주시하는 다른 헌병 놈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치약 깍지를 꺼내 슬쩍 선준에게 건네 주었다. 두준은 항문에 넣은 약 담배가 빠져나올까 봐 천천히 앉았다 섰다 했다.
두준이 항문이 아파 오만상을 찡그리자 헌병 놈은 헤벌쭉 웃으며 지껄여댔다.
“하야꾸(빨리), 하야꾸(빨리)!’
두준이 빨리 일어났다 섰다 해도 밑구멍에서는 다행히 피가 섞인 똥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헌병 놈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그러나 그쯤 해 그만 둘 놈이 아니었다.
“왜 상을 찡그려?”
몇 해 동안 나루터에서 두만강을 건너는 조선 사람들을 검사해 온 그 놈은 조선말도 놀랄 지경으로 꽤나 잘하는 것이었다.
“설사를 만나서 죽겠소.”
그제야 헌병 놈은 머리를 끄덕이며 코를 싸쥐었다.
그 놈은 상순을 오라고 손짓했다.
헌병 놈은 건장하게 생긴 상순이 아래 위를 살피었다. 아무래도 예지로 번쩍이는 세 귀 눈과 불뚝불뚝한 팔뚝과는 달리 호미를 쥔 상순이가 잘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상순의 손을 쥐더니 손바닥을 만지어 보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군살이 박힌 걸 보면 농사군 같은데 비범한 생김새를 보면 아무래도 거저 농사나 지어 먹고 사는 놈 같지 않아. 이름이 뭐냐?” 하고 물었다.
상순은 처음 헌병과 띄운 일이어서 조금 긴장했다.
“김진.”
“김진? 어데 살아?”
상순은 제대로 대지 않았다.
“태평거우.”
헌병 놈은 꽤나 긴장해 하는 상순을 보고 자꾸 물었다.
“뭘 하러 조선에 갔어?”
“소금과 치약 장사 하러 갔소.”
“호미는 왜?”
“호미 사다가 기음매자구. 강도도 막구.”
상순은 얼버무리면서 헌병놈을 곁눈질했다.
“호미로 날강도의 비수를 당하는가? 총을 쥔 강도도 많은데.”
상순은 점점 침착성을 되찾았다.
“우리 농사꾼들은 보지도 못한 총보다두 호미가 제일 좋은 호신봉이요.”
헌병 놈은 아무 말꼬리도 잡지 못하자 “옷을 벗어!” 하고 눈깔을 부라리었다.
상순은 두덜거리면서 한쪽에 가서 옷을 벗었다. 또 두준에게 하던 것처럼 앉았다 섰다 하라고 손시늉 했다.
상순은 앉았다 일어났다 하다가 약 담배가 빠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앉았다가 일어나 오줌을 싸면서 엉덩이에 힘을 주어 약 담배가 항문 속으로 되들어가게 했다.
헌병 놈은 둬 번 더 앉았다 섰다 하게 해보고 상순도 건너가라고 손을 홱 저었다. 상순은 바삐 옷을 주어 입고 소금 짐을 잔등에 지고 선준 등이 탄 배 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배에 오른 후에도 겁을 집어먹고 손마저 부들부들 떠는 두준을 보고 선준과 상순은 희죽이 웃었다.
공포와 살기 넘치는 두만강을 건너 나루터를 벗어나 버드나무숲 속으로 숨어 들어간 그들은 한숨을 활 내쉬었다.
선준은 “살았다, 살았어!” 하고 좋아 야단이었다.
두준은 상순의 항문에서 약 담배를 빼내 챙기면서도 두덜거리었다.
“내 뭐라데? 호미를 가지고 오지 말라는데도. 하마터면 내 약 담배를 빼앗기고 목이 떨어질 번했다.”
선준은 두준을 흘겨보았다.
“형님도, 쯧쯧, 걔 덕에 약 담배를 숱해 건네오고도 그러오? 짐삯이나 푼푼히 주오.”
“주지 않으리? 우리 둘이 가도 되겠는 걸 돈이나 축냈지.”
두준은 대답은 선선히 해놓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짐삯을 공 주는 것 같아 아까워 끝내 선준보다 적게 주었다.
약 담배 짐을 날라 준 삯으로는 유격대에 가져갈 쌀을 쉰 근도 살 수 없었다.
(안 되겠다. 큰아버지랑 애타게 기다리겠는데 먼저 쌀을 가져가고 보자.)
그는 궁리하던 끝에 선준에게서 돈 50원을 꿔 쌀을 사 상우 형님을 시켜 수레에 실어 유격대에 실어가게 하었다.
당시 상순이네는 손지주네 소가 독약을 먹고 죽어 숱한 빚을 걸머지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죽은 소고기를 팔고도 모자라 집마저 팔아 손지주네 소 값을 물어 주었다. 그러고 나니 웃새집 헛간에 되들어가 구들을 놓고 사는 구차한 형편이었다.
한편 밀림 속에서 버섯이랑 고사리와 더덕 등 산나물이나 캐먹던 유격대는 상우가 싣고 간 하얀 입쌀을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옥과 은녀는 오랜만에 쌀알을 넣고 죽을 끓이면서 못내 상순 형제네 지원에 코마루가 시큼해 났다.
성칠은 입쌀마대들을 보고 인삼을 돌아보면서 혀를끌끌 찼다. 
“상순이 그 놈이 끝내 일을 해냈구먼. 잘 배양하면 장차 훌륭한 유격대 골간이 될 거 같네.”
인삼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우리가 함흥촌을 떠난 후 산 속의 유격대는 쌀 고생을 많이 했소. 이젠 상순이 내 뒤를 이었으니 시름 놓아도 되겠소.”
그들의 말에 화답이나 하는 듯이 장백의 밀림도 초가을 바람에 너울너울 설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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