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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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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8)
2016년 07월 21일 17시 15분  조회:2115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흐느끼는 두만강

흐리멍텅한 하늘 아래 나무숲이 점점 우거지자 백승철은 더럭 겁났다. 그는  결박된 채 말잔등에 앉아 황군을 따라가다가 똘만을 보고 주둥이를 놀렸다.
    “여보, 우리 승만 형님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지을 때부터 끼무라 국장님을 위해 밀정노릇까지 했소. 황군을 위해 일해 주겠다는데 왜 나를 묶어 가오? 당신은 조선 사람이 아니요? 좀 풀어주게 사정해주오.”
    똘만이가 대충 번역해준 말을 듣고 가메다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더니 뒤돌아보았다.
그는 마을이 보이지 않자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이. 원, 어찌 무삼이 보는데서 자넬 써 주겠다고 말해? 정체가 다 드러나면 장차 어떻게 우리 황군을 위해 일하겠는가?”
“예 - ”
가메다는 똘만을 돌아다보면서 “풀어주게.”하고 말했다.
똘만은 승철을 부축해 말에서 내리게 한 후 바 줄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승철은 넙적 꿇어앉자 가메다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었다.
“감사합구마. 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황군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겠쏘다.”
가메다는 씨물 웃으면서 지껄이었다.
“좋아, 자넨 최구장과 돌멩이 유격대 두목 진달래랑 본적이 있지 않는가? 먼저 그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게나."
“내 손으로 그 년놈들을 잡아 칼탕 치지 않고선 절대 눈을 감지 못하겠습구마.”
“요로씨이(좋아),먼저 그 놈들 행방부터 빨랑빨랑 알아내라는데. 으흠,”
가메다는 호주머니에서 엽전을 한줌 꺼내 짤그락거리더니 승철에게 훌 넌네주었다.
“진달래 년을 찾아내게. 그 놈들 오래잖아 두만강을 건너 갈거야. 간도까지 쫓아가서라도 그 몇몇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게.”
백승철은 엽전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지껄였다.
“그 놈들을 보기만 하면 도끼로 찍어죽이겠습구마.”
가메다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야,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우지 말게. 알았어?"
"예, 예. 허허."
"그 놈들 꼬리만 밟으면 돌멩이 유격대 놈들 줄줄이 걸려들게 아닌가?”
“예, 예, 예. 긴 낚시를 놓아 큰 고기를 잡자? 그겝지비. 헤헤헤.”
가메다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 놈은 턱의 한 모숨 털을 슬슬 매만지면서 백승철을 만족한 표정으로 내리보며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똑 마치 사냥군이 훌륭한 사냥개를 한 마리 얻어 웃음주머니 흔들흔들 하는 상이었다.
“자, 어서 떠나게.”
“아니, 함께 가지 않고?”
“이이에(아니), 단독으로 행동하게. 우리와 함께 다니면 신분이 드러날 수 있지 않는가?”
백승철은 어깨를 툭 떨어뜨리면서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그 놈들은 총을 가진 놈들인데. 내가 어떻게 빈손으로 그 놈들을 당하겠습둥?”
가메다는 말 잔등에서 내려 자기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백승철에게 척 건네주었다.
“자, 받게. 자넨 돌멩이 유격대에 원한이 깊어쏘까. 우린 믿네. 자네 우리 황군 위해 대단히 잘하리라고 믿는단 말이야.”
백승철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돌멩이 유격대 놈들은 불공대천의 원숩구마. 그 놈들을 붙잡지 않고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겠습구마.”
“요로씨이(좋아)!”
가메다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그는 똘만을 보고 백승철에게 권총을 쓰는 요령을 일일이 가르쳐 주게 했다.
      백승철은 일본 놈의 특무로 되여 백마를 타고 먼저 한발 앞서 떠났다.
한편 가메다는 헌병 소분대를 끌고 동북쪽을 바라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갔다.
그들은 아예 중도에서 아무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두만강 강변 변경검사소에 이르렀다.
철조망을 늘인 두만강 철교우의 망루 앞에는 간도로 들어가는 조선 백성들로 하얀 물결을 이루었다. 일본 군대들이 두만강변경검사소에서 두만강을 건너가는 조선 사람들의 몸을 일일이 수색했다. 가마를 빼 지게에 진 장정들로, 이부자리를 이고 애를 업고 양 손에 어린이를 이끌고 따라가는 여인들로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만주벌로 들어가는 서러운 조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
털 한 모숨과 똘만은 헌병 소분대를 이끌고 망루에 이르자마자 말에서 내려 망루에 뛰어 들어갔다.
망루를 지키던 일본 경찰은 발뒤꿈치를 척 붙이고 군례를 척 붙혔다. 그러자 가메다도 군례로 답례했다.
그는 망루에서 보초를 책임진 변경검사소 소장을 찾아 유골궤짝을 가진 최구장과 진달래를 비롯한 돌멩이유격대 정황을 일일이 말했다.
“이 놈들은 우리 우시장 헌병대의 자위대 대대장을 살해한 장백산 돌팔매유격대들이오. 꼭 협조해 나포해주시오.”
검은 경찰복을 입은 경찰소장은 머리를 조아렸다.
“와까리마시다(알았습니다). 그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꼭 나포해 헌병대에 보내겠습니다.”
검사소 소장은 이윽고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이었다.
“장백산 유격대 말은 많이 들었소. 그런데 그 놈들이 시허연 대낮에 여기 다리로 건너가자고 오겠소이까?”
가메다는 열이 부쩍 올라 사무 상을 탕 치면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돌멩이 유격대는 교활한 놈들이어서 바로 당신들이 그렇게 경계를 늦추는 코밑에 나타 날 수도 있단 말이요.”
검사소 소장은 황망히 일어나면서 손을 저어댔다.
“알았소이다. 좌우간 오늘부터 그런 자가 나타나면 붙잡지요. 당신들은 망루 안에 숨어서 바깥에 지나가는 자들을 살피란 말이요. 바깥초소에 당신들이 서 있으면야 그 놈들이 괜히 놀라 달아날게 아니요?”
“그렇게 합세.”
변경검사소의 검사는 더 엄밀해졌다. 검사소의 경찰들이 몽땅 출동해 조선 난민들의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일일이 검사하고서야 지나보냈다. 털끝만치라도 수상한 자가 발각되면 망루 안에 끌어다 고문했다.
가메다 등 일본 헌병들은 망루 안에 숨어 창문으로 바깥 초소를 지나는 조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감시했다.
그때 백성철이 나타났다.
"아니, 저 놈은 어째 여기 왔어? 똘만이, 저자를 빨리 데려오게."
"하이,"
이윽고 백승철이 망루에 들어섰다.
"우둔한 놈, 넌 진달래 패거리 눈에 띄면 안돼."
"네? 내 변장했기에 알아보지 못합구마. 여기엔 그 년놈들이 얼씬하지두 않았습구마."
 가메다는 턱의 털을 슬슬 만지다가 명령했다.
"피난민들 속에 들어가 잘 살피게."
"예."
그리하여 똘만과 백승철은 조선난민으로 가장하고 난민 속으로 왔다 갔다 하며 살폈다. 그들은 이따금 먼발치에 쭈크리고 앉아 담배를 풀썩풀썩 피우면서 두만강 다리를 건너는 난민들을 서캐 훑듯 살폈다.
한참 후에 웬 40대중반의 사나이가 고리짝 하나를 지게에 지고 허리를 굽히고 스적스적 다가왔다. 그 뒤에 자그마한 솥에 보자기를 넣어 인 아낙네가 어린것을 업고 손에 잔밥들을 하나 잡고 두 어린애들을 이끌고 뒤따라왔다.
가메다는 턱의 털 한 모숨을 슬슬 매만지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바깥쪽으로 손을 홱 저었다. 헌병들이 일제히 망루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메다는 바깥에 나가자마자 고리짝을 지게에 진 사나이를 불러 세웠다. 그 사내는 아무런 겁기도 없이 묵묵히 서서 가메다를 마주 바라보았다. 가메다가 여겨보니 최구장도 근형도 아니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육중한 몸집을 보면 힘깨나 쓸 사내였다.
“궤짝 안에 뭐 있쏘까?”
사내는 사발 같은 눈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선선히 대답했다.
“농기구요.”
검사소 소장도 다가와 그 사내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을러멨다.
“궤짝을 내려놓으란 말이야.”
사내는 두말없이 지게를 땅바닥에 내리워 손에 쥐였던 받침대를 받쳐놓고 고리짝을 조심스레 내리워놓았다.
검사소 소장이 군도 끝으로 고리짝을 가리키면서 을러멨다.
“히라이데(열엇)!”
똘만이가 옆에서 번역해주었다.
“열라.”
사내는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씩씩거리며 고리짝을 열었다. 가메다가 들여다보니 안에는 보습 날이며 낫이며 괭이 날이며 식칼이 들어있었다.
변경검사소 소장은 시퍼런 식칼을 쥐여 쳐들고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칼날에 대고 슬슬 쓸어보았다.
“날이 선뜩선뜩해. 이걸로 살인도 할 수 있다.”
똘만이가 옆에서 번역해주자 그 사내는 픽 코 방귀를 뀌었다.
“아니, 그까짓 식칼을 가지고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굽니까? 빨리 건너가게 해줍소. 만주에 가서 땅을 일궈야 죽물이라도 먹지.”
“이 놈, 입을 벌리면 다 말인가 하는가?”
가메다는 군도를 빼들고 그 사내 목에 대고 호령했다.
“웃통을 벗어!”
“벗으라면 벗지.”
그 사내가 웃통을 벗어버리자 가메다는 실눈을 해가지 양어깨를 살펴 보는 것이었다.
“봐라, 양어깨 다 뻘건걸 보니 총을 메고 다닌 게 틀림없다. 네가 돌멩이 유격대 놈이야!”
가메다의 말에 사내는 억울하여 픽 코웃음 쳤다.
“아니, 이보, 우리 조선 사람들은 지게를 메고 다니다나니 어깨가 뻘겋소. 총이란 게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는데 날 보고 총을 메고 다녔다고? 나 원 참, 한심하기 짝이 없소.”
“뭣이?”
가메다는 군도를 쳐들면서 버럭 고함쳤다.
“이 놈이 감히 나한테 대들어? 죽고 파?”
아낙네가 두 팔을 벌리며 남편 앞을 막아 나서면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황군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우리 여섯 식솔은 다 이 나그네 두 손을 바라 보고 농사를 지어 삽구마.”
가메다는 아낙네의 꽤나 예쁜 얼굴을 쳐다보더니 쳐들었던 군도를 내리우면서 희죽이 웃었다.
“우쯔꾸씨이 온나요.(고운 계집이군) 이년, 이후에 황군의 말을 많이많이 잘 들었쏘까. 빠가요로(멍청이야).”
아낙네는 고맙다고 두 손을 싹싹 빌면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낙네가 남편을 보고 빨리 지게를 지고 다리를 건너자고 눈짓했다. 사내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면서 고리짝을 지게에 올려놓고 지고 떠나려고 했다.
천하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변경검사소 소장 놈은 군도로 아낙네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자 잔밥들은 겁을 집어먹고 어머니의 양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소장 놈은 음충한 눈길로 아낙네 엉덩이를 노려보면서 지껄였다.
“넌 만주에 못 가. 우리 변경검사소 밥을 지어.”
“아니,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립네까? 애들 넷이나 키우는 에미를 떼 내면 우린 어떻게 사오?”
아낙네가 솥을 인 채 입을 딱 벌렸다. 사내도 억이 막혀 흐린 하늘만 쳐다보며 황소숨을 몰아쉬면서 씩씩거렸다.
그러건 말건 소장 놈은 아낙네를 자기 여편네나 다 된 것처럼 망루 안으로 마구 끌고 들어갔다.
아낙네는 끌려가면서도 나그네를 돌아보면서 통곡 쳤다.
“여보, 여보~”
사내도 눈물을 흘리면서 처량하게 고함쳤다.
“여보, 점순이!”
차마 보지 못할 그 참경을 보고 두만강을 건너려던 아낙네들은 모두 자기 머리를 수그리면서 자기 얼굴을 감추었다. 어떤 아낙네들은 밉게 보이려고 땅바닥의 흙먼지를 낯에 마구 쳐 바르기도 했다.
애들은 어시 손을 놓지 않고 떼를 쓰면서 울었다. 나그네는 끌려가는 아내를 놔달라고 똘만을 보고 사정했다.
똘만인들 어떻게 하랴. 황군 소장의 말 한마디면 시퍼런 대낮에도 남의 아낙네를 빼앗아가는 판인데.
아낙네와 사내가 애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널 때에는 건너가지 못하게 하더니 인제는 아내를 빼앗더니 사내를 강제로 다리목에서 쫓아 두만강을 건너가라고 몰아세웠다.
이윽고 변경검사소 소장 놈이 망루에서 나오더니 사내를 보고 지껄였다.
“여편네 근심하지 말어. 황군이 밥을 입빠이(많이) 준다. 빨랑빨랑 만주국에 가. 돈이나 많이 벌어서 여편네 찾아가.”
사내는 일본 놈들의 총칼 앞에서 별수 없이 아내를 멍해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여보, 당신을 두고 어떻게 가라오?”하고 애달프게 한마디 내뱉었다.
소장 놈은 졸개들을 시켜 그 사내를 총칼로 두만강 다리 쪽으로 마구 밀어냈다. 그 사내는 아내를 빼앗긴 원한을 한가슴 가득 안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두만강을 건너 만주벌에로 들어가야만 했다.
사내는 총박죽에 떠밀리어 몇 걸음 비칠비칠 걸어 나갔다.
다리목에서 아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대성통곡 치면서 “여보! 얘들아!”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그 사내는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내 꼭 당신을 데리러 올게!”
무쇠 같던 사내도 참지 못하고 고함치면서 두 볼에 피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애들은 두 팔을 벌리고 “어머니-!”
하고 부르며 애처롭게 대성통곡 쳤다.
“하야꾸 이께(빨리 갓)!”
일본 놈들이 총 박죽으로 사내의 엉덩이를 탁 밀쳤다. 사내는 총 박죽에 떠밀리어 지게를 진채 애들을 양손에 하나씩 거머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걸어 두만강다리를 건너갔다.
두만강도 흐느끼며 그 사내와 처자의 이별의 피눈물을 싣고 철썩 철썩 노호하면서 흐르고 있었다.

            8.두만강 나루터

한편 두만강다리 근처에 다가와 동정을 살피던 진달래 등은 변경검사소 일본 놈들의 검사가 심한 것을 발견했다. 하여 부득불 다리를 건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들은 산기슭 수림 속에 숨어서 철썩철썩 사품치며 감때사납게 흐르는 시퍼런 두만강을 내려다보면서 도강계획을 세우고있었다.
진달래의 철색얼굴에는 준엄한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큰아버지, 우린 대담히 대낮에 나루터를 건너야겠어요. 등잔불 밑이 더 어둡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최구장은 아버지 유골이 담긴 벌건 상자를 매만지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래보자. 건데 군마랑 어쩌지?”
진달래는 결단성이 강했다.
“큰아버지랑 건넌 후 우린 두만강 상류로 가서 건널 예산인데요.”
“음, 그게 비슷해.”
최구장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턱을 홰홰 저었다.
“야, 야속하다, 야속해. 어쩜 아버지 유골을 제대로 모시자고 해도 죄 취급을 당한단 말이냐?”
진달래도 눈시울에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일본 날강도 놈들은 나라마저 빼앗아갔는데 조상들을 잘 모시게 하겠어요? 일본 날강도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편히 살 수 있어요.”
최구장도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여직껏 너희들한테 ‘공자’ 왈, ‘맹자’ 가라사되, ‘지호자야’를 가르쳐오면서 중용지도를 주장했지. 허나 이제야 새 도리를 하나 알게 됐다. 날강도 놈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어선 안 돼. 총칼을 든 날강도 놈들은 총칼로 몰아내야 해.”
그는 기침을 쿨룩쿨룩 했다.
진달래가 옆에서 큰아버지 잔등을 톡톡톡 다독여주었다.
최구장은 흰 머리카락을 마른 생강 같은 손으로 훔치고 나서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우리 진달래는 참 장하다. 머슴아도 아닌 게 총을 메고 일본 날강도 놈들과 싸우고 있지 않나. 나도 늙지만 않았어도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우겠다. 근형도 이제 만주에 들어가면 진달래를 따라 총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워라. 그게 효성을 다하는 거야.”
이때 두만강 나루터에 건너갔던 나룻배가 천천히 다가왔다.
진달래가 근형을 보고 포치했다.
“먼저 큰조카가 내려가 봐라. 알아보는 사람이 있나 떠 보자.”
“알았소. 내 먼저 가서 동정을 살피고 올게.”
근형은 말을 마치자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스적스적 산기슭을 내려 나루터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두만강 물은 연 며칠 억수로 쏟아진 장맛비로 하여 흙탕물이 사납게 사품 치며 흐르고 있었다.
나루터에는 남루한 한복을 입은 조선 아낙네들이 애들의 손목을 쥐고 바구니에 주먹밥인지 뭔지 이고 나루쪽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일본 놈 두 놈이 장총을 둘러메고 나룻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짐과 몸을 수색하고 있었다. 소용돌이를 만나 나룻쪽배는 뒤꽁무니를 자꾸 물에 떠밀리면서 겨우 나루터에 다가섰다.
근형이 다가가자 일본 놈이 경계하는 눈길로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 놈은 근형의 꾹 눌러쓴 밀짚모자를 훌 벗기었다.
“아, 이 놈이?!”
“앗! 털 한 모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두만강나루터에서 털 한 모숨이 가메다와 근형의 눈길이 딱 마주쳤던 것이다.
“네놈들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니 나루터에 나타날 줄 알았어. 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가메다 놈이 근형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근형은 콱 떠밀어버리고 두만강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장총을 메고 보초놈으로 가장했던 가메다 놈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 사품 치며 흐르는 두만강 물을 겨누었다. 근형이가 머리만 들면 방아쇠를 당길 판이었다.
“아니, 저 놈이!”
그 위기일발의 시각에 진달래가 주머니에서 닭 알만 한 돌멩이를 꺼내 날렸다.
“아이쿠!”
딱 소리와 함께 가메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두만강 물에 떨어뜨렸다. 그 놈은 피 낭자하게 흘러나오는 뒤통수를 싸쥐고 나루터에 보기 좋게 쓰러졌다.
다른 한 일본 놈이 장총을 벗어들고 이쪽을 겨냥했다.
“땅!”
고요하던 두만강가 수림 속에 야무진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십여 명 헌병대 놈들이 총을 들고 초소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진달래는 황급히 자기 말의 고삐를 최구장에게 쥐어 주면서 말했다.
“큰아버지,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해요. 빨리 말을 타세요.”
“너희들이나 타고 빨리 가라. 이 늙은게 무슨 죄 있다고 저 날강도 놈들이 이다지도 못살게 군대?”
진달래는 수하의 유격대원들을 보고 “시간이 없어요. 빨리 큰아버지를 모시세요.” 하고 명령했다.
최구장은 유격대원들의 부축임을 받으면서 진달래의 말에 올라탔다. 모두들 말에 올라 그 자리를 떴다. 다급한 형편에서도 진달래는 말배에 처 맨 유골상자가 제대로 있나 살피면서 수림 속으로 달렸다.
나루터에서는 일본 놈들이 대적이나 만난 듯이 왝왝 고함치고 총을 쏘면서 진달래 등이 숨었던 수림 속으로 돌격해왔다. 그러나 놈들이 산기슭의 수림 속에 이르렀을 때는 진달래 등이 두만강 상류 쪽으로 바람결처럼 사라진 뒤였다.
닭 쫓던 개 신세로 된 일본 놈들은 그제야 두만강에 뛰어든 근형의 생각이 떠올라 총구멍을 두만강 쪽으로 돌려대고 두만강 나루터로 되돌아갔다.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린 가메다는 뒤통수를 싸쥐고 상을 찡그리면서 기여 일어났다.
“물에 뛰어든 그 놈, 그 놈은 최구장네 맏손자야. 놓쳐선 안 돼!”
놈들이 한참 두만강수면을 살펴보았지만 근형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가메다가 그래도 머리가 베아링처럼 빨리 돌아갔다.
“고노 빠까야로라(이 바보같은 놈들아), 그 놈이 물에 뛰어든 지도 오랜데 아직도 여기 강물을 사발눈깔로 쏘아봐서야 어떻게 찾아내느냐? 빨리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찾아봐!”
그제야 일본 놈들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맞다. 그 놈이 아래로 떠내려간 지도 오래 되잖아!”
놈들은 총을 꼬나들고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사품 치며 쏜살같이 흐르는 두만강 급류에 떠내려간 근형을 따라잡겠는가!
근형은 진작 가메다 놈이 진달래가 날린 돌멩이에 맞아 쓰러진 순간 물 위에 머리를 내밀어 숨을 돌린 후 물속으로 자맥질하면서 두만강급류를 타고 몇 리 아래에서 만주 쪽의 강기슭에 올랐던 것이다.
한편 두만강변의 변경검사가 심한 정황에 대비해 진달래는 일행을 이끌고 두만강 강변을 달리지 못하고 내지 쪽으로 에돌아 두만강 상류의 한 마을에 이르렀다.
진달래가 말을 탄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두만강 강변에 가 정찰했다. 그 곳 두만강은 하류 쪽보다 강폭도 넓지 않고 물살도 잔잔했다. 게다가 산골 쪽이어서 일본 놈들의 검색도 심하지 않았다. 다만 반나절에 한번 정도로 일본 헌병대가 지나다녔다. 그런데 만주 쪽의 정황은 위만 괴뢰군들이 자주 출몰하여 이쪽보다 경계가 삼엄해보였다.
(아무리 지킨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위만 괴뢰군이야 쉽게 따돌릴 수 있을 거야.)
저녁에 그들은 마을에 들어가 가져온 죽으로 야외에서 저녁을 대충 요기했다.
진달래는 입가심으로 샘물에 양치질을 하는 최구장에게 다가가 무릎을 굻고 주저앉았다.
“큰아버지, 지체할 수 없어요. 빨리 도강합시다. 도강할 좋은 방도가 없어요?”
최구장은 천천히 구부정한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다시는 나루터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보아하니 일본 놈들은 나루터마저 지키고 있는 거야. 마을에 들어가서 좋기는 고기잡이꾼들의 쪽배를 얻었으면 좋겠는데. 안되면 문짝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버지 유골만 무사히 건너가면 돼. 우리야 말을 타고 저 상류 쪽으로 건너가도 되겠는데 말이다. 저 유골이 우리 표적이 돼 놈들에게 계속 꼬리를 잡힌 거야.”
한참 궁리하던 진달래가 무릎을 치면서 일어났다.
“큰아버지, 그렇게 하자요. 큰아버지는 바위돌과 함께 고기잡이꾼으로 가장해가지고 먼저 할아버지 유골을 쪽배에 싣고 건너면 돼요. 만일 일본 놈들이 나타나면 우리가 더러 여기서 막고 더러 말을 타고 상류 쪽으로 건너가서 마중하겠어요.”
“그런데 만주 쪽 정황을 모르고 건넜다가 큰 코 다칠라. 세밀히 계획을 짠 후 도강하자.”
“그래요. 그럼 억복이란 대원을 파견해 대안의 정황을 알리라고 하지요.”
그리하여 진달래는 대부분 유격대원들을 보고 군마를 지키게 하고 억복을 불렀다. 훤칠하게 생긴 억복은 장수다웠다.
“억복 동무, 헤엄칠 줄 아오?”
억복은 가슴을 치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강원도 영월부근의 북한강에서 헤엄치면서 자라서 헤엄만은 자신이 있어요.”
진달래는 억복을 엄숙하게 바라보면서 명령했다.
“좋소. 대안의 정황을 정찰하러 가오. 만약 대안에 일본 놈들과 위만 괴뢰군들이 없으면 초롱불을 세 번 켰다 껐다 하는 것으로 암호를 보내오. 만약 정황이 좋지 않으면 초롱불을 한번만 켰다가 꺼 버리오.”
“알았습니다.”
억복은 인차 두만강으로 가서 세찬 물결에 첨벙 뛰어들었다. 진달래는 억복이 뱀장어처럼 슬슬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가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뒤이어 진달래는 농촌아낙네차림을 하고 최구장과 함께 마을로 쪽배를 빌러 들어갔다. 물론 백여 미터 뒤에는 바위돌이 보위하면서 뒤따랐다.
최구장은 마을 동구 밖에 이르러 마을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을 앞에 있는 저 높다란 토성을 두른 집에 가 빌어보자. 부자네만이 고기배가 있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기 배 있겠니?”
그러자 진달래는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부자들이란 다 깍쟁이들인데요. 쉽게 훌훌 빌려 줄까요?”
“돈은 귀신도 매돌을 돌리게 한다는데 돈을 줘보자. 빌려 주지 않는가?”
그제야 진달래는 머리를 끄덕였다.
“글쎄요.”
그들은 두만강 변을 따라 마을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다가 피뜩 두만강 물에 둥 둥 떠있는 쪽배에서 어부 같은 중년사나이가 고기그물을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최구장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다가가 물었다.
“여보, 배를 좀 빌려 쓸 수 없어요?”
중년사나이는 흘끔 이쪽을 쳐다보면서 쓴 웃음을 날렸다.
“당신들을 빌려주고 난 뭘로 고기를 잡겠소. 주인영감께 혼나라구?”
그러자 최구장은 다가가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이 가득 담긴 쪽배를 들여다보면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배 값은 우리가 푼푼히 물게.”
그러자 중년사나이는 힐끔힐끔 최구장과 진달래를 번갈아보더니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내 고기배도 아닙구마. 주인영감네 걸 세 맡았수다. 허창수 영감은 얼마나 깍쟁이라고 빌려 줄 것 같소? 고뿔도 남을 그저 주지 않을 영감태기구마.”
“주인영감과 말해 빌려줘요.”
중년사나이는 뒤따라온 바우돌을 힐끔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오후에 일본 놈들이 두만강변을 따라 여기까지 달려와서 혹시 벌건 상자를 싣고 건너려는 늙은이가 있으면 고발하라고 했소. 만약 그런 사람을 건너 주었거나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목을 쳐서 대가리를 두만강 물에 처 녛겠다고 한바탕 을러메고 갔단 말입구마.  내 골이 몇개라구 배를 빌려 주겠습둥."
그러자 최구장은 막막하여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더니 진달래를 되돌아보면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최구장이 언덕우로 올라오자 바우돌은 허리에 찬 권총을 만지여보이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한방이면 알아볼 걸 가지구. 흥!”
그러나 진달래는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안돼요. 우리 유격대는 백성의 유격대인데 백성을 다쳐서야 돼요? 지주 영감과 말해서 안 되면 그때엔 마지막수를 쓰기요. 바위돌은 멀찍이 서서 저 고기 배를 지키오.”
최구장과 진달래는 별수 없어 요행을 바라고 마을 앞에 있는 토성 안 집으로 찾아갔다. 그 뒤에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바위돌이 뒤따라갔다.
높다란 토성을 두른 큰 집 앞에 이르자 최구장은 커다란 구리문고리를 잡아 대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계십니까?”
“해두 다 넘어가는데 웬 놈이 시끄럽게 굴어?”
이윽고 토성 안에서 신발을 짝짝 끄는 소리가 들리었다.  대문중간의 작은 문이 삐꺼덕 열리면서 머슴 같아 보이는 중년사나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웬 일이요?”
“아니, 주인 영감을 만나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러오.”
머슴은 최구장과 진달래 아래위를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요?”
“아따, 이 양반, 주인과 만나야 말한다고 하지 않았소?”
이때 토성 안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리었다.
“무슨 일이냐?”
머슴이 머리를 돌리면서 시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기어이 주인을 만나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합구마.”
 “들여보내라."
최구장은 머슴을 따라 대뜰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에는 곰방대를 문 뚱뚱한 영감이 앉아 그들의 아래위를 가슴츠레 뜬 눈으로 훑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입둥?”
최구장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난 지나가던 길손인데요. 이 집 배를 세내 타고 두만강을 건너가려고 그러오. 세는 푼푼히 줄 테니까.”
영감은 곰방대를 뿍 길게 빨아 후 연기를 내보내더니 일어나 앉았다.
“혹시 무슨 짐을 싣고 건너가려는 게 아니요?”
최구장은 진달래를 되돌아보면서 말했다.
“예. 이 애 애비에게 뭔가 줘 보내야 할 게 있습구마.  이 애는 원래 만주에 사는데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그만 큰물이 져서 그만, 헛참,  고기 배에 이 애를 잠간 건네주고 오려고 그러오.”
부자 영감은 곰방대를 툭툭 재떨이에 털면서 말했다.
“안되오. 내일 저 아래 나루터로 가서 건너면 될 걸 가지구. 자꾸 시끄럽게 구지 마오. 우리 집 쪽배는 고기잡이로 세를 주고 없소.”
진달래는 듣다못해 허리춤을 만지었다. 눈치 챈 최구장이 진달래의 손을 잡아 내리웠다.
허창수는 눈치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구장은 마지막으로 지주 영감에게 말했다.
“영감, 내 실토정을 하오리다. 사실 내 동생을 따라 처자들을 데리고 만주에 들어가 살려고 하오. 그런데 어찌 아버지 산소를 여기 고향에 두고 간단 말이요? 아버지 산소를 파서 유골을 상자에 담아 모시고 만주벌로 들어가려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유골을 모시고 만주벌로 들어가려는 것도 막고 있소. 좀 내 딱한 사정을 봐주오.”
허창수는 맨 발 바람으로 마루에서 내려와 최구장의 손을 잡고 마루 우로 안내했다.
“야, 그런 줄도 모르고. 빌려주지, 빌려주지. 듣고 보니 당신은 효성이 대단하구만. 만주에까지 아버지 유골을 모시고 가다니. 쯧 쯧 쯧.”
부자 허창수 영감은 최구장을 안방에 모시고 들어가 자리를 정해 앉은 후 인사수작을 걸었다.
“길주에서 이사온 허창수라고 부르오. 이름도 괴상하지. 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창고에 자꾸 뭔가 끌어들인다고 이름도 창수라고 졌다고 놀리오. 심지어 ‘깍쟁이영감’이라고까지 별명을 달아 부르오.”
그러자 최구장도 속이지 않고 답례했다.
“난 명천에서 온 최구장이라고 부르오. 어떻게 쪽배를 빌려주오. 내가 마지막효성을 다하게 말이요.”
그러자 허창수는 개기름이 유들유들한 낯에 억지로 웃음을 띄우며 시원히 대답했다.
“좋소. 알고 보니 우린 한 고향 친구로구먼. 당신 효성에 감복되오. 세구 뭐구 다 그만두구  배에 아버지를 잘 모시고 두만강을 건넙소.”
최구장은 “고맙소.”라고 하면서 동전 열 몇 닢을 내놓았다.
“아니, 이건 뭐, 쯧쯧, 한 고향 친구네 집에 왔다가 저녁도 먹지 않구 가겠수?”
허창수는 인사말을 하면서도 어느 결에 동전을 까래톱 밑에 스리슬쩍 쓸어 넣었다.
이때 때마침 두만강 변에서 만났던 어부사나이가 성큼성큼 들어섰다.
“어, 마침 잘 왔다. 고기는 얼마 잡았는가?”
“날씨 차지 흙탕물이 져서 몇 마리 잡지 못했습구마.”
그 사내는 고기 대여섯 마리를 내놓았다. 허창수는 대뜸 눈을 치켜뜨면서쏘아보다가 곁에 최구장이 있어 억지로 성을 참았다.
“자네, 좀 수고하게나. 이 분들을 쪽배로 두만강을 건늬워주게나.”
사나이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주인님, 일본 놈들에게 들키면 목이 떨어지자고 이럽둥? 난 못하겠습구마.”
“이 배운 게 없는 쌍놈아, 웬 잔소리냐? 목줄을 끊어 놓기 전에 얼른 갔다 오지 못할까?”
어부사나이는 목을 움추리더니 마지못해 최구장 등을 데리고 두만강 변으로 나갔다. 뒤에서 허창수는 그들을 아주 인정스레 바래주었다. 그리고 최구장네가 대문을 나서기 바쁘게 집안에 들어와 까래 밑의 동전을 허벼내 세여 보았다.
허창수는 불시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황급히 엽전을 농궤에 집어넣고 중절모를 쓰고 휭하니 어디론가 바람결처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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