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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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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0)
2016년 09월 13일 09시 45분  조회:164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2.사냥

     장백산 수림 속은 하얀 눈이 뒤덮이어 은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다만 여기저기 미인 송과 소나무들이 하얀 눈을 떠이고 있어 드문드문 수림이라는 것을 알릴뿐이었다.
      눈 덮인 밀림 속에서 낮에 밥을 짓지 못했다. 밀림 속에 연기가 자오록해지면 밀영이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성칠 대장은 유격대 여러 중대에 밥을 지을 때 여러 모로 주의를 돌릴 것을 지시하였다.
      진달래중대장을 비롯한 하옥과 은녀 등 여대원들은 늘 밤도와 이튿날에 먹을 죽을 끓여 놓곤 했다. 진달래는 성칠과 토론하고 만일을 대비하어 주먹밥을 가득 지어 얼군 다음 군영 토굴 방마다 돌아가면서 뒤울안 눈 속에 파묻어 놓았다.
      이날 밤에도 진달래와 하옥이, 은녀 등 여대원들은 샘물터에서 달빛을 빌어 쌀을 일었다. 경위원 조 꼬마와 최구철, 병수, 득호 등이 나무 위에서 샘물터 주위를 보초 서고 있었다.
      하옥은 옆에서 쌀을 이는 진달래의 단발머리와 탄력 있는 잔등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못난 계집애야, 마흔이 가깝도록 남의 유부남을 사모해 시집도 안 가? 쯧쯧쯧, 네 인생 정말 불쌍해. 애도 낳지 못한 내 빨리 자리를 내놔야 하는 건데.)
하옥은 위쪽 샘물터에서 물독에 바가지로 물을 퍼 담는 은녀를 보자 진달래도 좋은 신랑을 찾아 시집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궁리도 해보며 한숨을 호 내쉬었다.
한참 후 하옥은 쌀 함지를 이고 진달래와 함께 돌아가면서 슬쩍 속뽑이를 해 보았다.
“진달래야,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가겠어?”
진달래는 쌀 대야를 인 채 “시집 안가요.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기 전엔 절대 시집가지 않겠어요.”하고 막아 버리었다.
“여자가 나이 들면 시집가기 마련이지. 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황차 시집간다고 항일유격전쟁을 하지 못하겠어?”
“시집가 애나 덜컥 생기면 어떻게 달구 다니면서 일본 놈들과 싸우겠어요?”
말을 마치자 진달래는 빠드득빠드득 발검을 재우쳐 총총히 자기 통나무집 쪽으로 걸어갔다.
하옥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 온 말을 겨우 삼켜 버리었다.
이때 성칠이 나타나 하옥의 머리에서 쌀 함지를 받아 안고 통나무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갔다. 조 꼬마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열댓 미터 떨어져 뒤따라왔다.
통나무집에 들어가자 성칠은 “어데 좋은 신랑감이 있소? 중매를 서 주지.”라고 물었다.
하옥은 머리 위에 곱게 내려앉은 눈송이들을 털어 버리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인삼 시동생과 용천 대장 다 좋은 신랑감이지요. 진달래야 신랑 퇴를 낼 지경이지. 사달은 진달래 시집가지 않겠다는 거죠.”
성칠이 무슨 궁리를 하는데 하옥이 밤중에 불쑥 홍두깨 내밀듯이 물었다.
“어째 시집보내기 아까와요?”
“거 무슨 소리요? 이십여 년 함께 살아오고서도 날 믿지 못하오? 난 절대 조강지처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소.”
성칠이 문을 쾅 닫고 나가자 찬 기운이 통나무집 안에 확 풍기어 들어왔다.
하옥은 서러워 사슴 가죽을 깐 구들에 탈싹 드러누워 서럽게 울었다.
한편 바깥에 나간 성칠은 경위원 조 꼬마를 시켜 인삼이, 최동욱, 칠백 등 중대장을 진달래 중대장의 집에 불러 오라고 하였다.
성칠과 인삼 중대장이 진달래네 통나무집 앞에 이르러 보초병과 군호를 맞추고 통나무집 앞에 들어가자 밥을 짓느라고 불을 때던 진달래가 반겨 맞았다. 최구철은 사냥총을 들고 보초를 서러 나갔다.
진달래는 무슨 긴급정황이 생기었는가 하여 구들에 올라 왔다.
성칠은 여러 중대장들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지금 일본 놈들이 집단부락을 꾸리어 우리와 인민군중들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산을 엄밀히 봉쇄하구 있소. 그래서 전번에 상순이랑 보낸 쌀이 오래지 않으면 밑바닥이 나오.”
모두들 서로 마주 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은 과단하게 말했다.
“우린 사냥도 하고 친일주구와 친일부자들도 습격해 식량문제를 긴급히 해결해야 하겠소.”
인삼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혹시 우리 발자국을 따라 일본 놈들을 밀영에 묻혀 오면 어쩌겠소?”
칠백은 “눈 내리는 날에 행동하면 되오.”하고 계책을 내놓았다.
인삼은 “며칠이고 눈이 내리지 않으면 어쩌겠소?”하고 근심하였다.
그때 성칠이 과단성있게 말했다.
“짚신을 거꾸로 신을 수 있게 삼으라 하오. 그런 신을 신고 사냥하기요. 어쨌든 우린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인삼 중대장은 중대에서 꼴꼴한 대원들을 골라 기동부대를 조직해 친일 부자 집을 습격해 식량을 얻어 오오. 우리 명천 사냥꾼 출신들은 내일 밀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 사냥하기오.”
      칠백은 동욱을 마주보며 팔소매를 걷어붙이었다.
      “우리 오랜만에 사냥 솜씨를 피우게 됐구먼.”
회의가 끝나 흩어질 때 인삼이 코로 냄새를 맡으며 황급히 소리치었다.
“무슨 탄 냄새야!”
“에구머니, 죽이 탄 냄새구나.”
진달래가 새된 소리를 치며 일어나 가마 덮개를 열고 바가지로 물독에서 물을 퍼 마구 가마 안에 끼얹었다.
쌔-애- 앵-
가마 안에서 쌕 김이 통나무집 안이 꽉 차게 솟구치어 올랐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가물거리다가 꺼져 버리었다.
이윽고 진달래가 부엌에서 불붙은 나무를 꺼내 쳐들어서야 다들 겨우 짚신을 찾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성칠만은 가지 않고 구들에 앉아 있었다.
“그 죽 먹을 만 하냐?”
“밑이 탔지 속은 괜찮아요. 정 안 되면 물가마치처럼 먹지요. 뭐.”
       진달래는 쌀이 아까워 죽 가마를 들여다보며 밥주걱으로 자꾸 긁었다.
성칠이 짚신을 신고 나오는데 통나무집 안에서는 가마 밑굽을 빡빡 긁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려왔다.
이튿날 하늘에서 밤송이 같은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지었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먼. 아무 발자국도 남기지 않게 됐잖소.”
성칠은 개털모자에 하얀 눈을 들쓴 채 칠백과 동욱을 돌아보며 희죽이 웃었다.
“사냥하러 가기오.”
명천의 사냥꾼들은 모두 주먹밥을 몇 덩이씩 호주머니에 넣고 성칠을 따라 사냥하러 나섰다. 나이 먹은 검둥이도 오랜만에 주인을 따라 사냥하러 나섰다.
한참 눈 덮인 밀림 속으로 걷던 성칠이 두덜거렸다. 
“눈이 적게 덮이었으면 말을 타고 사냥하러 가는 건데. 이거 원, 언제 걸어서 사냥터에 가겠는가?”
동욱은 한숨을 쉬었다.
“에이, 장백산에 눈이 내리면 말은 무용지물이오. 오히려 말먹이가 없는데 저 아래 영월구 농가들에 맡긴 게 잘 했지. 이 눈에 말을 타기는 고사하고 말을 메고 다녀야겠소.”
      숱한 사람들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성칠이 우뚝 멈춰 섰다.
“아차, 사냥총을 들고 와야 하는 건데.”
칠백은 장총을 들어 보이었다.
“에이, 장총이 좀 좋아 그러오? 탄알도 없는데 언제 화약하구 철환을 얻어 사냥총 탄알을 만들겠소?”
      성칠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혹시 밀림에서 일본 놈의 특무라도 만나면 인차 신분이 폭로될 게 아니냐?”
동욱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밀림에서 의심스러운 특무를 만나면 몽땅 쏴 버리기요.”라고 통쾌하게 귀띔했다.
성칠은 뭔가 궁리하더니 “그럼 가자.”하고 성큼성큼 밀림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썩어빠진 아름드리나무가 누워 있는 밀림 속에 이르러 성칠과 칠백이 등이 한개 소조로, 동욱과 억복, 바위돌 등이 한개 소조로 나뉘어 사냥하러 떠나기로 하였다.
갈라 질 때 성칠은 분부했다.
“적정이나 긴급정황이 있으면 연발사격으로 서로 알리기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성칠 등은 둬 식경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매다가  밀림 속에서 사냥하기 시작하였다. 먹이를 찾던 꿩이나 독수리들이 푸르릉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자그마한 사냥물을 겨눠 총소리를 내면 혹시 적들에게 노출될까봐 감히 총을 쏘지 못하였다.
성칠은 칠백을 데리고 산골짜기 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내려 갈수록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고 점점 더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앞을 막아섰다.
“살았어.”
성칠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눈 덮인 산비탈에 아름드리나무들 속에 웬 벌거숭이 구새 먹은 나무통에 꺼먼 구멍이 나타났다.
“구새통 속에 곰이 있지 않을까?”
칠백의 물음에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며 구새통 쪽으로 턱짓 하였다.그는 사냥총을 들고 눈을 헤치며 허우적허우적 구새통에 다가가 구멍을 들여다 보았다.구새통 구멍에 서리가 끼었던 것이다.
“곰이 있어.”
“허허허, 우리 유격대 먹으라고 하느님이 내린 곰이로구먼.”
“쉿-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 들어. 혹시 적들이 있으면 어찌 하느냐?”
칠백은 계집애처럼 혀를 홀랑 내밀었다.
성칠은 장총 끝의 총창으로 구새통 안을 쑤셔 놓았다. 구새통 안에서 놀란 곰이 대가리를 쑥 내밀었다. 성칠과 칠백은 총창으로 숨통을 푹푹 찔렀다. 빗 찔려 성난 곰은 구새통에서 뛰어나와 무섭게 덮쳐들었다.
땅!
성칠은 하는 수 없이 총을 쏘았다. 총소리는 눈 덮인 밀림 속 골짜기에서 오래도록 메아리쳤다. 대갈통을 맞은 곰은 당장에서 태산이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놀란 사슴이며 노루며 깡충깡충 뛰어 달아나고 산새들이 푸르릉 하늘로 풍겨 올랐다.
성칠과 칠백은 총을 쏜바하고는 사슴이며 노루며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사슴과 노루가 총소리와 함께 거의 동시에 눈 위에 푹푹 꼬꾸라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총소리가 울렸다.
“아마 동욱도 사냥을 시작한 거 같아.”
칠백이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땅! 땅!
저쪽에서 연발 사격하는 총소리가 울리었다.
“적정이 있구나. 은페해 주위를 살펴라.”
성칠의 명령에 따라 칠백 등 사냥꾼들은 모두 눈을 파고 엎드려 경각성을 높여 눈 덮인 밀림을 살피었다.
이때 빽빽이 들어선 아름드리나무사이로 사냥꾼 복색을 한 서너 사람이 사위를 기웃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할, 금방 본 사냥꾼들은 사슴이랑 잡았더구먼. 우린 사슴은커녕 쥐새끼도 못 잡았어.”
“재수 없어.”
“사냥은 아무나 하나?”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 보면 사냥꾼 같았다. 칠백이가 일어나려는데 성칠이 붙잡아 꾹 눌러 놓았다.
“잠간! 저 자들이 쥔 총은 사냥총이 아니야. 저걸 봐. 신도 일본군화야.”
칠백도 놀랐다.
“일제 장총! 쏴버릴까?”
성칠은 도리머리 질 했다.
“좀 더 살펴보자.”
성칠은 칠백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갈라져 눈 속에 숨었다. 그 자들은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어 참, 엄청 큰 곰이구나.”
한 놈이 발로 곰을 툭툭 걷어차며 중얼거리었다.
“사냥꾼은 어데 갔어?”
그 자들이 두리번거릴 때었다.
땅!
성칠이 공중에 총을 쏘았다.
순간 그 자들은 나무 뒤에 숨으며 아우성치었다.
“유격대다!”
땅! 땅!
성칠과 칠백은 사격했다. 두 놈이 꼬꾸라졌다. 나머지 두 놈은 그제야 성칠 등을 발견하고 장총을 버리고 품속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맞불질하였다.
푱! 푱!
성칠은 왼팔에 총알을 맞고 총을 떨어뜨렸다.
땅!
위기일발의 시각에 성칠을 겨누는 놈을 칠백이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그 놈이 푹 꺼꾸러졌다. 나머지 놈은 총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쳐 골짜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때 동욱이 합세하여 이쪽으로 덮쳐 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리자 유격대 밀영은 즉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성칠은 권총을 쥔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붙잡고 명령하였다.
“산골짜기로 도망친 놈을 수색하라!”
“예!”
사냥꾼 출신의 유격대원들은 산골짜기 아래로 수색해 내려갔다. 그러나 그 놈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동욱이 총을 맞고 쓰러진 놈들의 허연 한복과 껴입은 조끼를 헤치고 보니 일본군 속벌이 드러났다.
“특무놈들이구나.”
성칠은 칠백에게 몇몇 유격대원들을 데리고 계속 밀림 속을 수색하라고 명령하고 곰과 사슴을 메고 숙영지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들이 금방 자리를 떴는데 느닷없이 “뻐꾹, 뻐꾹.”뻐꾹새 울음소리가 들리었다.
뻐꾹 뻐꾹 뻑뻑꾹
이쪽에서 화답하자 밀림 속에서 인삼이가 기동분대를 데리고 달려 나왔다.
인삼은 허연 천으로 동여맨 성칠의 팔을 보고 “김 대장, 모질 상하진 않았소?”하고 물었다.
“괜찮소. 우린 빨리 이 곳을 떠나야 하오. 한 놈을 놓쳤으니까 그 놈에게 우리를 노출시켜선 안 돼.”
“알았소.”
유격대원들은 성칠의 명령대로 놈들의 시체를 눈 속에 파묻어 버리고 노획한 권총과 장총 여섯 자루에 사냥물을 메고 밤도와 고의적으로 여러 갈래로 흩어져 군영으로 돌아왔다. 곰을 멘 유격대원들만 곧추 군영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영월구 쪽으로, 남만 쪽으로, 삼도구촌 쪽으로 흩어져 내려가다가 멀리 에돌아 이튿날에야 군영으로 돌아왔다.

                           3.특무

        눈 덮인 밀림 속의 군영은 전투 준비로 발칵 뒤집히었다. 일본 놈들이 파견한 특무놈들이 군영 부근까지 깊숙이 잠입한데다가 특무 한 놈을 놓쳤기 때문이다. 유격대에서는 더욱 경각성을 높이게 됐다.
성칠은 통나무집 안에서 한숨을 후 쉬면서 대비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하옥이가 사슴고기를 끓일 물을 길으러 물동이를 이고 나가려고 하였다.
“여보, 특무 한 놈을 놓쳤으니 각별히 주의하오.”
하옥은 옆구리에서 권총을 꺼내 보이면서 “이거 있잖아요. 나도 쏠 줄 아니깐요. 근심하지 마세요.”하고 말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성칠은 경위원 조 꼬마를 보고 “따라 가 보오.”하고 당부하였다.
“옛.”
경위원이 나간 후에도 성칠은 칠백이네가 이틀 날 밤에까지 돌아오지 않자 속에 걸리었다.
하옥과 경위원 조 꼬마가 집에 들어서자 “중대장들과 상의할 일이 있어 나가 봐야겠소.”하고 말하였다.
“왼팔을 상했는데 주의하세요.”
성칠은 웃으면서 “양, 내 오른팔이면 둬 놈쯤은 문제없소. 근심하지 마오.”하고 장담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경위원이 따라 나오려는 것을 성칠은 “동문 집에서 아주머니를 지키오.”라고 지시하였다.
“옛.”
성칠은 곧추 진달래네 통나무집으로 찾아 갔다.
그가 들어서니 최구철은 보이지 않고 진달래가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진달래는 일어나면서 “오빠, 어서 올라 가세요.”라고 인사하며 쌕 김이 쌕 뿜기는 가마 덮개를 바로 잡아 덮어 놓았다.
성칠은 곰과 호랑이 가죽을 깐 구들에 앉자마자 구들에 올라오는 진달래를 보고 입을 열었다.
“군영을 버리고 동만이거나 북만 쪽으로 전이해야 될 거 같아.”
진달래는 구들에 쪼그리고 앉으려다가 철색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만간에 일본 놈들이 토벌하러 오겠지요. 어제부터 계속 궁리했어요. 어찌 이 좋은 군영을 그저 버리고 달아나겠어요? 견고한 밀림 속의 군영을 이용해 일본 놈들을 몇 놈이라도 죽여 치우고 떠났으면 좋겠어요.”
성칠은 너무도 기뻐 진달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옳다. 어쩜 내 생각하구 똑같니?”
진달래는 쑥스러워 머리를 좀 숙이면서도 손을 빼가지 않았다.
이때 바깥에서 빠드득빠드득 다급하게 눈 밟는 소리 들리었다.
“군호!”
“장백산!”
군호를 맞추는 소리에 뒤이어 문이 벌컥 열리었다.
성칠은 손을 스르르 놓았다.
인삼과 동욱이 들어왔다.
“김 대장, 칠백중대장이 특무 놈을 붙잡아 가지고 돌아 왔소.”
“양?”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칠백과 억복 그리고 바위 돌은 특무를 끌고 들어 왔다. 그런데 억복의 종아리 각반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억복은 특무의 엉덩이를 총 박죽으로 툭 쳤다.
“이 놈이 눈 속에 숨었다가 선제사격을 하는 바람에 장딴지를 빗맞았습니다. 다행이 칠백 중대장이 이 놈을 뒤에서 깔고 들어 앉아 제압했기에 큰 일은 없었습니다.”
“음, 다행이오.”
성칠은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며 바닥에 선 특무 놈을 쏘아보았다.
“네 놈은 누가 파견한 놈이냐?”
“말해!”
억복은 악이 나 총 박죽으로 그 놈의 종아리를 툭 내리쳤다.
“앗!”
특무 놈은 비명을 지르며 물앉았다.
성칠은 손을 들어 억복을 제지시키고 나서 위엄 있게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말하지 못할까?”
특무 놈은 피 말라붙은 입술을 감빨며 벼룩 눈으로 성칠의 독기어린 세 귀 눈을 쳐다보고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죽고 말해두 죽을 판인데. 어서 죽여라!”
“닥쳐!”
성칠은 구들을 꽝 치며 호통 쳤다.
“우리 유격대는 종래로 말하면 말한 대로 한다. 낱낱이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총살해 버릴 테다!”
특무 놈은 벼룩 눈을 깜짝이더니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장관, 제발 살려 줍소.”
성칠은 허리를 펴며 심문하였다.
“네놈은 이름이 뭔데?"
" 누가 파견한 특문가?”
특무 놈은 머리를 뚝 떨어뜨리며 탄백하기 시작하였다.
“난 박응세라고 하는데 우린 우시장 경찰국 스즈끼 국장이 파견한 특무입니다.”
“닥쳐! 우시장 경찰국 국장은 끼무란데? 스즈끼라니?”
“끼무라는 할복해 죽고 헌병총대 부대장을 하던 스즈끼가 강직돼 우시장 경찰국 국장으로 왔습니다.”
“우린 진작 다 안다. 네 놈을 떠본 거다. 한마디만 거짓말을 했다간 목을 베 버리겠어."
"너희들 모두 몇이 왔는가? 두목은 누구냐?”
“누구 앞이라고 언감 거짓말을 하겠습니둥? 우린 모두 일곱이 왔는데 두목은 백승철입니다.”
“엉?!”
“사실인가?”
“예.”
성칠은 속으로 놀라 인삼과 칠백을 둘러보았다.
“거짓말! 일곱이 온 게 셋이나 격살됐는데 왜 나머지 네 놈은 대가리도 내밀지 않았는가?”
“사실입구마. 장관. 우린 두개 소조로 나뉘어 정찰했는데 왜 백승철 소조장은 우릴 보고 누가 격살당하든 몽땅 나서지 말고 한사람이 살아남더라도 돌아가 스즈끼 국장께 보고 해야 한다고 명령했는데.”
성칠은 일부러 건너짚기를 했다.
“우린 네 놈들의 정체를 다 안다. 백승철이라면 함경도 경성 지나 웅진 부근에서 날강도질이나 하던 놈 아닌가? 그 형은 우리 유격대에 둘이나 죽고.”
“그 놈이 여기까지 특무를 파견해 뭘 하라던가?”
특무는 말하기 시작한지라 술술 대답하였다.
“별동대를 파견하기 전에 우리 보고 장백산 기슭의 유격대 군영하구 병력과 무기 배치, 쌀 정황을 구체적으로 잘 정찰해 오라고 했는데.”
“별동대는 모두 몇 명이나 되는가?”
성칠은 중대장들과 눈을 맞추며 물었다.
박응세는 벼룩 눈을 끔적이더니 “한 30여명 되는 모양입디다.”라고 이실직고했다.
“30명? 흥! 30명이 아니라 300명이 오라구 해라. 몽땅 소멸해 버릴 테야!”
성칠은 코 방귀까지 뀌면서 놈들을 멸시하였다.
“네놈들이 동만 관동군과는 연계 없었는가?”
“예. 있었습구마. 동만 관동군 부련대장 한철주 양반이 우리를 접견하고 관동군이 유격대 군영을 토벌하자면 우리가 잘 정찰해 와야 한다구 하면서 구체적으로 포치했는데.”
“한철주? 그 놈은 명천 우시장 자위대 대대장 한길수의 맏아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어떻게 생긴 자인가?”
“안경을 건 우먹한 눈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연설도 참 잘하고.”
“키는 훤칠한 편이 아닌가?”
“맞습니다. 잘 아시는구먼. 장관. 제발 날 살려 줍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한 가지만 더 묻겠다.”하고 더 심문했다.
“한철주 놈이 우리 군영을 언제 토벌하겠다던가?”
“구체적인 날자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력설 전에 한개 대대 병력을 파견해 우시장 별동대의 기습에 배합해 토벌하겠다고 했습구마.”
“음. 우시장 별동대 대장은 누군가?”
박응세는 벼룩 눈을 굴리었다.
“야마모도 소장입니다.”
“림산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아닌가?”
응세는 깜짝 놀랐다.
“장관님은 어쩜 일본 군관을 그렇게 잘 압둥? 보쇼. 난 거짓말을 한마디도 한 적이 없습구마. 장관, 제발 살려줍소.”
성칠은 눈을 감고 뭔가 궁리하더니 인삼 중대장과 뭐라고 귀속 말을 하더니 특무를 쏘아보았다.
“네 놈은 죽어 마땅해. 그러나 탄백했기에 살려둔다.”
억복과 바위돌이 끌고 나간 후 성칠 대장은 경위원을 불러 특무를 어찌어찌 하라고 가만히 귀띔해 주었다.
경위원 조 꼬마까지 나간 후 성칠 대장과 중대장들만 남았다.
통나무집 안의 등잔불이 가물거리었다. 그들은 밤중까지 반 토벌작전계획을 반복적으로 작성하고 검토해 보았다.
나중에 성칠 대장이 허리를 펴면서 일어났다.
“좋소. 우리 작전계획을 북만으로 간 김용천 대장에게 알리기요. 여러갈래 유격대들이 연합작전을 펼쳐야 섬나라 오랑캐들의 대토벌을 분쇄할 수 있소.”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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