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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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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6)
2016년 11월 23일 08시 43분  조회:209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2. 담배론 번신할 없어

       상순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 갈 면목이 없었다.
       (큰 매형과 둘째 매형에게서 숱한 돈을 꿨기에 빚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충국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아 망했다고 하면서 다시는 상순을 따라 약 담배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집으로 돌아가 버리었다.
상순은 진수해 큰매형네 집에서 며칠 묵으면서도 돈을 더 꿔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다.
       상순은 가슴이 갑갑해났다. 약담배장사가 잘 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전번에 교하 려관 주인한테 약담배짐을 맡겨놓고 은실을 구하려고 길림에 갔다가 은실을 만나지도 못한 것이 속에 내려가지 않았다.
     위안소가 있던 부근 가게 사람들과 물어보니, 어떤 사람들은 일본놈들이 그녀들을 끌고 신경에 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본군을 따라 관내에 들어갔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 지학사 놈 탓이야. 그 놈은 내 춘실을 사랑하는 걸 알고 보복하려고 밤중에 일본 놈들을 끌고 가서 춘실과 은실을 위안소에 팔아넘긴 거야. 지학사 놈을 어떻게 하면 원쑤를 다 갚을가.)  
      상순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상순은 진수해를 돌면서 궁리하고 궁리하던 끝에 일본인들이 꾸리는 흥농합작사에 들어가 이자 돈 150원이나 꿨다.
그는 그 이자 돈을 밑천으로 몇 달 동안 조선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끈질기게 약 담배장사를 하였다. 웬 영문인지 하느님이 상순을 빚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살아라고 도왔던지 약 담배장사가 잘 돼 3,300원이나 벌었다.
어느 날 상순이가 옷장 선대에 끌로 구멍을 파고 약 담배를 밀어 넣은 후 나무쐐기를 살짝 박아 막아놓을 때었다.
기준은 상순을 보고 말려싿. 
“이젠 그만하면 됐다! 그 돈이면 저 소서구라도 사겠다. 꼬리 길면 밟힌다.”
병완도 상순을 말렸다.
“얘, 약 담배장사를 해서야 집안을 구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있느냐? 유격대를 도와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해.”
상순은 개의치 않았다.
“알만 합구마. 할아버지, 장사라는 건 될 때 바짝 해야 됩구마. 이제 좀 더 벌어서 진수해에 기와집을 사 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면서 공부를 좀 해야 되겠습구마. 약 담배장사를 한다고 유격대를 돕지 않겠다는 것도 아닙구마.”
기준과 병완은 상순의 고집을 아는지라 더 말리지 않았다.
상순이 옷장을 수레에 실을 때었다.
동남쪽에서 황둥개가 뛰어 오면서 꼬리를 저었다.
“워리- 워리-”
상순은 춘실의 황둥개 뒤대가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중얼거리었다.
“네 여주인은 날 욕해도 넌 아직도 날 반기는구나.”
명옥은 사랑에서 저녁 죽을 끓이다가 뾰로통해했다.
“아들딸이 서넛 됐는데도 춘실이야?”
상순은 황둥개 뒤대가리를 만지다가 이전에 개귀에 쪽지를 써넣던 생각을 하면서 어망 간에 개 귀에 손이 갔다.
웬걸, 뭔가 쥐이는 것이 있었다.
“이게 뭐야?”
상순이 손더듬질해 꺼내 보니 쪽지가 아니겠는가.
쪽지에는 이렇게 또박또박 씌여 있었다.
 
같은 상순아, 아들 을준이를 과부네 양아들로 보냈다.
 
(뭐라고? 을준이? 이름을 더럽게도 지었군. 남의 아버지 준 자 돌림으로 짓다니? 좋은 아들을 제 손으로 키울게지. 백과부네 집에 양아들로 보내? 미쳤어, 미쳐.)
상순은 황둥개를 보고 “너 여기서 기다려라.” 하고는 마당에서 까만 숯 쪼박을 주어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식칼로 숯 조박을 뾰족하게 깎아 가지고 쪽지 뒤에 이렇게 썼다.
 
춘실아, 말을 듣잖니? 이제 돈을 벌어 진수해나 국자가에 벽돌집을 사놓고 모자간을 데려다 갈게. 애를 남에게 주지 말라.
상순
 
쪽지를 다 써서 말아가지고 바깥에 나오니 황둥개가 어데 갔는지 없었다.
“이 놈 개새끼, 개똥도 약에 쓰자면 없다더니 원, 참.”
도리머리를 흔들며 집안을 기웃거리다가 부엌에서 갓 세살 밖에 안 되는 영자를 업고 맴도는 명옥이 띄었다.
“여보, 나오오.”
“저녁이 늦은데?”
명옥은 행주에 손을 닦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는 상순의 말이라면 죽으라는 말 외에는 일언반구 듣지 않을 때가 거의 없었다.
상순은 명옥을 바자굽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쪽지를 꺼내 주면서 말하였다.
“이 쪽지를 춘실한테 갖다 주오.”
“무슨 쪽지요?”
“글쎄 가져다주라는데.”
“계속 춘실과 좋아할 작정이오?”
“애를 남에게 주지 말라는 쪽지요.”
“남이야 애를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떠들지 말고 가져다줘. 이제 돈을 많이 벌면 당신 치마 감을 사다 줄게.”
“피- 누가 얼리울 거 같아?”
코 웃음 치면서도 명옥은 속히는 셈치고 쪽지를 가지고 춘실을 찾아가 가만히 주었다.
춘실은 명옥을 보내 놓고 다시 쪽지를 펼치어 보더니 코웃음 쳤다.
“픽, 애 아까우면 당초에 그만 둘 거지.”
한편 상순은 옷장을 수레에 싣고 진수해역으로 올라갔다. 역무일군의 옆구리에 스리슬쩍 돈을 찔러 주고 길림에 붙이는 꼬리표를 옷장에 붙여 놓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이튿날 아침에 상순이 치분 통에 넣은 물약담배를 배낭에 지고 떠나려고 할 때다.
선준이 글쎄 약 담배를 팔러 용정에 갔다가 붙잡혀 결박당한 채 일본 놈들에게 끌려 마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차, 이게 무슨 일이야?)
겁을 집어 먹은 상순은 동불사역에 실어간 옷장을 찾으러 부랴부랴 달리어 갔다. 그런데 직접 가자다가 역에서 덜미를 잡힐 것 같았다.
동불사역 부근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는 진수해소학교 교장의 집을 찾아 갔다. 집안에는 교장부부에 구들에서 앙기장, 앙기장 걸음마를 타는 애 밖에 없었다.
그는 돈 50원을 꺼내 교장에게 주면서 지청구를 들이댔다.
 “교장 선생님, 난 함흥촌의 상순이라고 부르오. 수고스러운 대로 내 길림에 부친 옷장이 있는가 봐 주겠소?”
교장은 돈을 보고 마른 침을 꼴깍 삼키더니 물었다.
“옷장에 뭐 있소? 자기절로 알아봐도 되겠는데도 뭘 이러오?”
교장은 돈을 되밀어 주었다.
상순은 돈을 교장의 손에 쥐여주었다.
“여보게, 일본 사람과 다툰 적이 있어 가기 불편해 그러오.”
그래도 교장은 이상하해 하였다. 하긴 옷장을 팔아도 50원을 하지 않겠는데 옷장을 찾아오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가만 봐 달라면서 많은 돈을 내 놓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돈이 흑사심이요, 견물생심이라고 돈 앞에서 교장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는 아내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돈을 받아 넣었다.
“내 알아 보지. 집에서 기다리오.”
교장 선생은 그 자리로 역에 나가 알아보고 돌아 왔다.
그는 아주 긴장한 낯빛으로 상순을 보면서 말했다.
“옷장이 아직 있습데. 이제 역 전등불이 꺼지면 옷장을 훔쳐내 가지고 달아나오."
상순은 그날 저녁까지 교장의 집에서 먹고 나가 역 부근에 숨어 있으면서 전등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일각이 삼추같이 지루하게 느껴지었다.
한밤중이 돼서야 전등불이 끝내 꺼지었다.
상순은 교장이 준 집게로 철조망을 끊고 기어들어가 옷장을 찾아 미리 준비한 각반으로 묶어서 지고 살금살금 역 화물 처에서 빠져 나왔다.
무슨 힘이 그로 하여금 옷장을 지고 단숨에 걸음아 나를 살리라고 함흥촌에까지 돌아오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웃새집에 가서 집게와 못 빼기를 가져다가 빠드등 빠드등 옷장 네 각을 뽑아냈다. 그는 옷장 선대에 박은 쐐기를 집게로 빼내고 구멍에 넣은 약 담배를 털어 대야에 담았다.
그때 갑자기 일본 순사 놈들이 마을을 덮쳤다.
“주인 있소?”
누군가 울안으로 들어왔다. 피뜩 바라보니 진수해소학교 교장 같아 보였다.
(아니, 교장이 순사 놈들을 데리고 온 게 아니야?)
깜짝 놀란 상순은 못 빼기를 쥔 채 와닥닥 외양간 쪽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울안의 소구유 말뚝에 이마를 딱 쫗았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풀썩 꼬꾸라지었다.
(물앉아 있으면 잡혀!)
상순은 간신히 일어나 외양간으로 달려 들어가 뒤 문으로 빠져 나갔다. 그런데 발이 소똥물구덩이에 푹 빠지었다. 그러나 상순은 발을 탁 털고는 못 빼기를 쥔 채 영범이네 집에 달려갔다.
눈치를 차린 영범이네는 마당에 가마니를 펴 놓고 절을 하면서 제를 지내는 척하였다. 그 틈에 상순은 술을 한사발이나 쭉 들이 켜고 고방에 들어가 들어 누워 자는 척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장 새끼 순사 놈들에게 고발한 거 같아.)
상순은 세상에 정말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상순이 달아난 후 창준과 상길은 일본 순사를 외양간 쪽으로 들어 가지 못하게 막아서서 인사하는 척 하였다. 아래사랑집 석철과 석은은 창준이네 집으로 놀러 왔다가 일본 순사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술상을 차리어 대접하였다.
그 틈에 기준과 상우는 옷장을 마사 선대를 김치 움에 처넣었다. 그들은 창준과 상길이 바깥에서 지키게 하고 김치 움에 들어 가 옷장 선대 구멍에 밀어 넣은 약 담배를 하나하나 꺼내 대야에 담았다.
일본 순사 놈은 술에 취해 겨우 운신해 진수해로 돌아갔다.
       "안돼!"
      상순은 술을 마시고 자는척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추 웃새집에 달아가 사랑방 중천정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옆구리에 차고 순사놈의 동향을 살폈다. 만약 순사 놈이 자기를 나포하려고 한다면 권총으로 순사 놈과 개다리 교장을 쏴 죽이고 유격대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순사와 교장이 가버린 것을 확인한 후 상순은 웃새집 사랑방 중천정에 권총을 되 감춰놓고 집에 돌아 와 시름 놓고 기준과 함께 김치 움의 약 담배를 꺼내보았다.
"아니, 이게 뭐야?"
옷장 선대 구멍에서 얼었다 녹았다 해 약 담배가 변질해 팔 수 없게 돼버리지 않았겠는가!
병완은 상순을 교양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내 뭐라더냐? 그만하면 됐다는데도. 30원이면 소를 살 수 있는데 3, 300원이면 땅 몇십헥타르도 살 수 있지 않느냐? "
"이젠 손을 싹 씻고 그만둬라. 이젠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구 유격대를 도와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구 나라를 찾아 잘 살 궁리나 해라. 오직 유격대를 따라 혁명해야만 나라를 잃은 우리 조선 사람들은 살 길이 있느니라.”
상순은 기가 꺾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에 도리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는 웃새집 중 천정에 다시 감춰둔 권총을 생각하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래, 먹을 게 없으면 유격대를 따라 일본 놈들을 쳐 몰아내구 지주, 한간 놈들을 청산해 살아야지.)
상순은 속으로 윽벼르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3.효자

상우는 소서구에 되돌아가 토벌 때 불을 맞은 집을 손질하고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상순은 집도 없이 계속 웃새집 손바닥만 한 사랑방에 들어서 갑갑하게 살았다.
명옥은 빚에 깔리어 막막한데 먹을 쌀마저 떨어져 큰집, 작은집을 돌아 다니면서 쌀을 찧어 주거나 떡을 쳐주거나 두부콩을 갈아주고 콩물이나 죽물이나 얻어먹으면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갔다.
명옥이 영수를 업고 속에 애를 밴 몸으로 큰 매돌 돌리노라고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원래 당나귀나 끌고 돌아가면서 굴릴 큰 매돌 밀어 굴리노라고 굶은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명옥은 매돌 자루를 놓으면 넘어질까 봐 꼭 붙잡고 간신히 돌고 또 돌았다. 배고프다 못해 배가 쓰려나고 아프고 나중에는 메스껍고 눈앞이 아물거리더니 아찔해났다. 그래도 그녀는 입을 꼭 옥 물고 끝까지 콩을 다 갈았다.
지새금은 명옥을 보고 “젊은 각시 콩을 이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할 수 없이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간 콩을 담은 함지를 새금이 이워주자 이고 한 걸음 한 걸음 간신히 걸어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웃새집으로부터 시준네 작은집으로 가자면 얼음 강판을 건너야 하였다.
(남의 콩물함지를 떨어뜨려 마스면 어쩌겠는가?)
애를 업고 속에 애를 밴 명옥은 콩물 함지를 이고 이를 옥 물고 얼음 강판을 내려다보면서 한 발 한 발 종발걸음을 치며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명옥은 너무 도정신해 콩 함지를 이고 시준네 작은집에 다 가서 콩물함지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눈앞이 아찔해나 물앉고 말았다.
그래도 그 집에서 끓인 콩물이나마 둬 그릇 얻어먹고 나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어느 하루, 지새금은 금재를 보내 명옥을 불러 오게 했다. 국자가에 내려 간 큰집 상철아주버니와 조카 형내 그리고 손자 영기까지 놀러 왔는데 명옥더러 소서구에 와서 밥을 지어라는 것이었다.
명옥은 큰집 일이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애를 업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소서구에 있는 큰집으로 갔다.
명옥은 형님 지새금과 손을 맞춰 기장밥에 두부까지 앗아 큰집 상철이네 조손 3대를 잘 대접하였다. 그런데 지새금은 밥이 모자란다면서 명옥에게 밥을 먹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기준은 위방에서 듣다못해 “맏며느리, 작은며느리를 밥을 주오.” 라고 하였다.
“저녁밥이 모자라는데도 그럽둥? 시아버지는 좀 조왕간 일을 작작 삐칩소. 그저 약방 감초처럼 뭐나 다 삐칩둥?”
기준은 상우를 쏘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어진 상우는 그저 자기 밥이나 먹으면서 안해한테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기준은 “음~” 하더니 “내 밥사발을 내려다 주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시아버지와 형님이 싸울 것 같아 밥도 먹지 않고 애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아버님, 감사합구마. 집에 가 밥을 먹겠습구마.”
기준은 “집에 가 먹을 밥이 어디 있다고 그러오?” 라고 하며 반 남은 밥그릇을 기어이 들고 나왔다.
지새금은 시아버지한테 눈을 샐쭉 흘기면서 두덜거리었다.
“에이고, 그저 작은며느리, 작은며느리 하면서. 데리고 들어 온 며느린가?”
상철은 제수가 너무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리며 밥맛을 다 잃었다.
기준은 듣지 못한 척 하면서 명옥을 가지 말라고 자꾸 말렸다. 그러나 명옥은 애를 업고 밥술도 들지 않고 기어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풍설이 하도 윙- 윙- 기승스레 일어 굶은 명옥은 주린 배를 끌어안고 장개골 묘지가 가득한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 와서 눈앞이 가물거려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갔을까?
맵짠 추위에 얼어들어 견디기 힘들어 우는 어린 애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명옥은 깨났다. 그녀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쓰러져 있으면 애까지 다 얼어 죽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간신히 걸어 집으로 한발자국한발자국 나아갔다. 걸음마다 배고프고 가난한 고달픈 인생의 힘든 걸음발이었다. 앙상한 버드나무와 비술나무를 구분하기 힘들고 빙글빙글 돌고 하늘과 땅이 맞붙는 상 싶었다.
그래도 명옥은 애를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의악스레 걷고 걸어 끝내 웃새집 사랑 간으로 집이라고 돌아 왔다.
“작은 며느리, 저녁을 먹었소?”
“예-”
명옥은 맥없이 대답하고는 애를 내리워 놓기 바쁘게 폭 꼬꾸라지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할까?
일본 놈들의 철 발굽 밑에서 중국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를 받을 대로 받아 쌀 고생을 할 때여서 그럴까?
아무튼 새금은 동서를 부려 먹고 밥도 주지 않고 죽을 끓여 놓고 혼자 조왕 간에 돌아 앉아 후룩후룩 잘 먹어댔다.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 온 남편과 시아버지는 반사발 하나면 족하였다.
어느 날 밤, 상순이 함흥촌 남쪽의 묘지를 지나는데 누군가 쿨쩍쿨쩍 우는 소리가 쓸쓸히 들리었다.
“이 밤중에 누가 이런 묘지에서 울까?”
상순은 누군가 다가가 보고 깜짝 놀랐다.
글쎄 아버지가 묘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 웬 일입둥? 또 아주머니한테 괄시당했습둥?”
기준은 막내아들을 보더니 울음을 그치고 일어났다.
“얘야, 옛날부터 황제도 집안과 여편네를 잘 다스리지 못했단다.”
“대체 무슨 일입둥?”
“얘, 이제껏 말하지 않았는데. 난 맏며느리 손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그래 여기 와서 죽어 버리자고 했다.”
“예?”
영웅호걸이던 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당하고 살 용기마저 잃어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상순은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 우리 집에 가 삽시다. 우리 부모를 모시겠습구마.”
기준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나를 죽게 놔둬라. 너넨 둘짼데다가 숱한 빚을 졌는데 맏이보다도 더 가난한 너넬 어떻게 고생시키겠니?”
상순은 황급히 “아버지, 내 아무리 가난해도 부모를 못 모시겠습둥? 갑시다.”라고 하며 아버지 팔을 부축하며 집 쪽으로 끌었다.
“집도 없어 큰집 사랑 간에 들어 사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니?”
기준은 뒤로 뻗치며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상순은 아예 잔등을 들이대더니 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얘, 날 내려 놔라. 작은며느리와 토론도 하지 않구 어떻게 가니?”
상순은 아버지를 내려놓으면서 “근심하지 맙소. 명옥은 마음이 비단이어서 절대 반대하지 않을겝구마.”라고 하였다.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럼 가자. 그런데 맏아들하구 며느리 너희 집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가서 되겠니? 말썽이라도 생기면 어쩌니?”
“토론은 무슨 토론입둥? 잘 모시지도 못하는데 우리 모시면 오히려 부담을 덜어준다고 좋아할 겁구마.”
기준은 한숨을 연신 토해냈다.
“난 이젠 맏며느리를 보기만 해도 진저리난다.”
상순은 아버지를 모시고 웃새 집 사랑 간으로 들어갔다.
“명옥이, 우리 부모를 모시자고 아버지를 모셔왔소.”
명옥은 죽을 끓이다가 부엌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시아버님, 왔습둥? 어서 구들에 올라 갑소.”
이윽고 명옥은 다 끓은 죽을 사발에 듬뿍 담아 상에 올리었다.
“시장하겠는데 듭소.”
“둘째며느리를 어떻게 고생시키겠소?”
기준은 숟가락을 들면서 근심하였다.
명옥은 반겨 맞으면서 “둘째아들며느리는 자식이 아닙둥? 근심하지 맙소. 우리 잘 모시겠습구마.”라고 말하였다.
상순은 명옥의 처사에 고마웠다.
“여보, 아무래도 엄마도 모셔와야겠소.”
남편의 말에 명옥은 “시누이도 모셔오오.”라고 하였다.
“금옥이까지?”
기준은 죽을 맛있게 먹으면서 막내아들에게 부탁하였다.
“얘, 금옥인 놔둬라. 네 아주머니 좋아하지 않겠다.”
그러나 상순은 그 자리로 나가 큰집 소 수레에 소를 메우더니 소서구로 떠났다.
그는 소서구에 가서 큰집에 들어서자마자 형님 부부에게 이실직고하였다.
“그간 형님과 아주머니 쌀 고생을 하면서 부모를 모시느라고 수고했소. 둘째아들은 자식이 아니오. 이젠 우리가 부모를 모시겠소. 달리 생각하지 마오.”
그 말에 지새금은 세 귀 눈을 흘기면서 야단쳤다.
“시동생,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맏이가 부모를 모시는 게 도리지. 우리보다 어느만큼 더 잘 모시자고 그러오? 동네를 웃기지 않겠소?”
“좌우간 다른 말 할 게 없소. 부모하구 금옥은 우리 집에 데려 가겠소. 엄마, 가기요. 금옥아, 너도 가자.”
최사련은 구들에서 일어나면서 “아버지하구 작은며느리하구 토론했니?”라고 물었다.
“양, 아버진 벌써 우리 집에 가 있소.”
“야, 좋아라.”
금옥은 좋아라고 둘째오빠와 함께 가려고 서둘렀다.
그 말에 새금은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영감쟁이, 저렇게 새끼들을 리간 놓고 살면 얼마나 잘 살겠는가?”
뒤이어 어머니와 여동생을 모시고 바깥에 나가는 상순의 뒤 잔등에 대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거지 같은게 부모를 더 잘 모실 상 하긴? 저 것들이 한 날 한 시에 싹 썩어 지었으면.”
상순은 성이 꼭뒤까지 치밀었지만 이상 아주머니라고 억지로 꾹 참았다. 그는 어머니를 부축해 수레에 모시고 여동생 금옥도 싣고 소서구를 떠났다.
상우는 멀리 떠나가는 어머니와 금옥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죽물도 마시기 어려운 세월에 형제간에 서로 부모를 모시자고 앞다투다니? 얼마나 효성스럽고 고상한 효자 형제들인고?
                  
                      4.
가난과 무지가 낳은 악과


상순이네 식구는 불었는데 빚은 이자에 이자까지 자꾸 늘어만 갔다. 장학산 지주네 빚은 이자에 이자까지 하면 농사를 지어서는 한평생 다 갚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누나네 돈을 꾼 건 그래도 이자가 없어 다행이었다.
최사련은 궁리 끝에 술을 거르기로 하였다. 그는 막내며느리를 데리고 여 싹을 키우고 누룩을 만들어 가지고 술을 거루었다. 기준은 눈 가슴에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왔다.
상순은 살림살이에는 관심이 없고 할아버지와 성칠 큰아버지의 포치대로 마을의 흥수, 학수, 성수 삼형제와 충국이네 형제, 고모사촌인 동길, 명길 등 10여명 청년들에게 권투를 배워준다, 날창찌르기를 배워준다 하면서 데리고 다녔다.
      그 중에서도 전라도 남대 쪽에서 류리걸식하면서 여기까지 들어온 흥수는 상순의 꼬리를 물고 졸졸 따라다녔다. 상순이 가시할아버지 최구장 일행을 모시고 두만강을 건널 때 피뜩 흥수와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 서로 풋면목이나마 있었다. 흥수가 알아듣기 힘든 남대말을 하는데다가 생김새도 우습게 남북골에 우먹한 빈대눈이여서 마음에는 안 들었다. 하지만 어데 안착하지도 못하고 떠돌이하는 그가 불쌍해 상순은 아버지와 할아버지한테 비난사정을 해 마을에 받아주게 하였고 자기들이 붙이는 장학산의 밭도 몇마지기 떼서 흥수한테 농사지으며 살아라고 주었다. 그리하여 흥수 일가 삼형제는 상순 일가를 구명은인처럼 여기고 따랐다.
      어느 하루, 상순의 어머니와 아내가 술을 거르다가 불을 너무 많이 때 웃새집 사랑채 나무구새에 불이 달리었다.
“불이야!”
“불이야!”
웃새집 식구들과 기준은 대야와 함지에 물을 담아 들고 나가 퍼 치었다. 다행히 불은 구새만 태우고 꺼지었다.
사련과 명옥 고부는 첫 가마에 35원을 번 후 웃새집 사랑채를 태울까봐 다시는 술도 거르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섬나라 오랑캐 촌장 지학사는 상순을 없애 버릴 음흉한 계책을 꾸미며 이를 쁙쁙 갈아댔다. 악질지주 지학사는 마을에서 상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고 해치려고 들었다.
관동군은 간도 조선족청년 가운데서 강제로 특설부대 강박군인을 뽑았다. 지학사는 이번 기회에 상순을 제거하려고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함흥촌 청년들 가운데서 상순을 보고 강제로 특설부대로 가라고 을러멨다.
상순은 일본 놈들의 특설부대에 가기 싫어 구실을 만들려고 궁리를 하였다.
무릎을 탁 치고 난 상순은 맵짠 겨울 추위에 집 문창에 구멍을 내고 엉덩이를 들이대 얼군 후 면도 칼날로 항문 왼쪽 편의 가려운 데를 자꾸 긁어 치질을 앓는 것처럼 부어나게 만들었다.
상순은 지학사를 찾아갔다.
“지 촌장, 난 치질로 아파서 특설부대에 가지 못하겠소.”
지학사는 엉거주춤 서 있는 상순을 믿지 않는 눈길로 흘끔 쳐다보면서 “어데 보자. 정말 치질을 하는가?” 라고 하며 다가왔다.
상순은 “봅소.”라고 하면서 바지를 훌 내리우고 팅팅 부어 오른 엉덩이를 내밀었다.
팅팅 붓긴 항문을 보더니 지학사는 “에이, 안 되겠구나. 엉덩이가 팅팅 부은 걸 보냈다가 내 목이 날아 나라고.”라고 하였다.
상순은 살았다고 좋아하며 바지를 춰 입고 달아났다.
마을 청년들은 서로 가기 싫어 제비를 만들어 뽑았다. 하여 마을에서 상순을 따라 다니지 않던 김금산이란 청년이 뽑혀 특설부대에 나갔다.
며칠 후 상순은 믿을만한 흥수와 동길 등 몇몇 청년들을 데리고 밤중에 머나먼 성산 골 안에 가서 지주 집을 털어 양식을 탈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를 자기 집에도 얼마간 가져 왔다.
어느 날, 영자가 볼을 긁으면서 울었다.
“엄마, 볼이 가렵소.”
“응? 어디 보자.”
명옥은 갓난애를 업고 죽물을 끓이다가 그만 두고 영자를 안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뭐냐?”
영자가 애고사리손으로 가렵다고 긁어대는 볼에 벌건 부스럼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부스럼 끝을 누르니 고름이 질질 흘러 나왔다.
“이걸 어쩌니? 애들이 셋이나 되니 등한했구나.”
사련도 다가와 보고 야단쳤다.
“이게 홍진이라는 게 아니야? 잘 치료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
기준은 사랑채 위방에서 “막내며느리, 무슨 일이냐?” 라고 물었다.
“영자 볼에 벌건 큰 부스럼이 생기었습구마.”
며느리 말에 기준은 엉거주춤 내려와 영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들고 보더니 “응, 일없다. 단침을 발라줘 봐라. 따뜻한 오줌을 발라줘 봐라.”라고 하였다.
명옥은 인차 손가락을 입에 넣어 단침을 묻혀 영자의 볼에 발라 놓았다.
바깥에서 상순이 들어오자 명옥은 영자를 안고 가서 볼을 보이었다.
“얘를 진수해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상순은 “고까짓 부스럼 때문에 무슨 놈의 병원! 병원의 의사란 일본 놈들은 몽땅 돈을 떼먹는 나쁜 놈들이오. 좋은 조상이 물려 준 오줌 약이 있잖소. 오줌이나 발라 주오." 하고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다.
명옥은 영돌과 갓난애 선돌을 제쳐 놓고 대야를 들고 변소에 가서 따뜻한 오줌을 받아다 영자의 볼에 발라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영자의 볼에 난 부스럼은 낫지 않았다. 볼에 난 부스럼은 벌겋던데로부터 검붉어지면서 고름이 점점 더 많이 질질 흘러 내렸다.
“안되겠다. 병원에 가 봐야지.”
명옥은 상순이 어디로 나간 틈을 타서 영자를 업고 진수해 쪽으로 허둥지둥 달리어 갔다.
“서라!”
뒤에서 상순이 헐금씨금 쫓아 왔다.
“어디로 가니?”
이제껏 한마디도 대들지도 않던 명옥은 물러서지 않았다.
“애 볼에 고름이 나다 못해 썩어 떨어질 지경인데도 병원에 가지 말라오?”
상순도 고집을 부리었다.
“집에 먹을 쌀이 없는데 일본 놈 의사들이 좋은 노릇을 하자고 병원에 가니?”
그래도 명옥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 죽는 애를 보고 있겠는가?”
“이년이 집으로 못 가겠니?!”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라리면서 길옆의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영자를 업은 명옥을 마구 후려쳤다.
영자는 잔등에서 울면서 “아버지, 왜 엄마를 때리오?” 하고 소리치었다.
상순은 들었는지 마는지 마구 후려치면서 명옥 모녀를 양을 몰듯이 집으로 몰았다. 명옥은 남편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었다.
그제야 상순은 나무 가지를 놓고 어디론가 일을 보러 떠나갔다.
“다시 병원 소리만 해 봐라. 종아리를 분질러 놓겠다.”
상순이 떠나간 후 영자는 까만 포도알눈으로 명옥을 쳐다보면서 “엄마, 아버지 어째 엄마를 때리오?”라고 물었다.
명옥은 영자의 고름이 질질 흐르는 볼을 들여다보다가 수건을 가져다 닦아 주면서 “병원으로 간다고 그랜다.” 하고 대답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어린 영자는 “그럼 병원으로 가지 말기요.”라고 말하였다.
명옥은 속으로 요렇게 귀한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용빼는 수가 없었다.
상순인들 자기 맏딸이 귀엽지 않았겠는가? 아니다. 그는 맏딸을 매우 귀해 했다. 다만 그의 머리에 의학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학지식이 없기에 미신을 믿으면서 무당에 의지해 영자를 구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무지가 낳은 죄악이었다.
그는 함흥촌 동쪽에 있는 절당에 가서 무당을 데려 왔다.
무당의 말대로 마을에 나가 닭을 사다가 잡아 삶은 후 삶은 닭고기를 무당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무당은 명옥을 보고 영자를 업고 벽을 마주 해 구들바닥에 꿇어앉으라고 해 놓고 북채로 소고를 두드려대면서 굿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당은 영자를 업은 명옥의 잔등을 회초리로 쨕쨕 치면서 굿을 하였다.
“여자귀신이면 다발을 틀어 이고 가고 남자귀신이면 짐바를 갖춰가지고 지고 가라.”
뒤이어 삶은 닭고기를 뜯어 사처에 뿌리면서 또 같은 굿을 해댔다.
그러나 굿은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였다. 영자의 볼에 난 부스럼은 곪아서 고름이 나다 못해 구멍이 나서 볼이 썩어 들어가면서 넌들넌들하게 되었다.
영자는 밤잠도 자지 못하고 볼이 아프다고 울었다. 부모로 생겨서 애 볼이 썩어나가는 것을 어떻게 차마 눈뜨고 본단 말인가?
명옥은 몇 번이고 병원으로 가보고 싶었건만 독고래 같은 상순이 무서워 가지 못하였다.
(굿을 할 게면 그 돈으로 병원에 갔더라면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겠니?)
그녀는 원망하면서 가위를 얻어다가 영자 볼의 썩어 넌덜거리는 살가죽을 싹싹 베 버리었다. 순간 베 버린 구멍으로 빨간 혀와 이가 다 들여다보였다. 명옥이 죽물을 떠 넣으니 입으로 아니라 볼 구멍에서 죽물이 괴어 나왔다. 차마 눈 뜨고 애의 볼을 더 볼 수 없어 명옥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눈물을 탐방탐방 쏟아냈다. 그녀의 가슴이 마구 뭉개지고 썩어 떨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영자는 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 하고 아파 발버둥질 치다가 숨지었다.
아, 가난이 죄악이고 무지가 죄악이었다. 병원에 갈 돈만 푼푼히 있었더라도, 조금만 의학지식이 있었더라도 병원에 갔더라면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귀여운 영자를 이렇게 볼이 다 썩어 나가다 못해 온 몸이 다 썩어 처참하게 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 야속하다. 야속해.
명옥과 상순은 영자를 붙안고 얼마나 대성통곡 쳤는지 모른다.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영자를 동산마루에 가져다 파묻었다. 자그마한 봉분 앞에 쭈그리고 앉은 상순과 명옥은 오래도록 떠나가지 못하고 땅을 치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영자의 부스럼이 영돌한테 전염되었는지 영돌도 볼에 부스럼이 나면서 앓기 시작하였다.
그때도 명옥은 상순을 보고 “얘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기요. 양? 이래 뒀다간 또 죽이어 내 가겠소."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릅뜨고 떽 소리쳤다.
“너 또 그 말이냐? 병원엔 무슨 병원? 돈 떼먹는 일본 놈 의사 좋은 노릇 하자고?”
설상가상으로 기준까지 말렸다.
“병원에 가지 마오. 약 담배를 풀어서 먹이면 부스럼에 일 없다오.”
“약 담배를?”
명옥은 눈이 떼꾼해졌다.
“어린 애한테 어떻게 약 담배를 먹입둥? 형내라도 옆에 있었으면 물어보겠는데.”
명옥은 영돌을 둘쳐 업으면서 “내 영돌이를 데리고 국자가 형내한테 찾아가 보이겠소. 형내는 숱한 병으로 앓는 환자들도 치료했는데 제 팔촌동생을 치료하지 못하겠둥? 형내야 우리 돈을 떼먹을 사람이 아니지.” 하고 말하였다.
그 말에 상순은 마음이 좀 돌아 섰던지 주춤 멈춰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기준은 상순을 보고 “얘, 먼저 약 담배를 써보고 낫지 않으면 형내한테 가 봐라.”라고 말하였다.
“예.”
상순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약 담배 가루를 가져다가 따가운 물 사발에 풀어 놓았다.
기준은 “애기네 애를 가져 오오.”라고 하였다.
명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아버지 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띠를 풀고 잔등에서 영돌을 내리워 상순에게 넘기어 주었다.
영돌은 애고사리 손을 뻗쳐 어머니 쪽에 대고 흔들면서 “엄마, 난 약 담배를 먹지 않겠다. 아버지. 싫소.”라고 버둥댔다.
기준이 영돌의 가슴에 다리를 놓고 누르면서 안 먹겠다고 도리머리 질 하는 머리를 붙잡았다. 상순은 약 담배 물을 도리머리 질 하는 영돌의 입에 부어 넣었다. 명옥은 긴장한 얼굴로 애를 지켜보았다.
“아, 그, 그, 큭…”
영돌은 두 다리를 가둥대더니 거시기가 꼿꼿이 일어났다. 영돌의 두 다리가 바둑거리다가 맥없이 쪽 펴지면서 바둑대기를 그만 두었다. 거시기도 옆으로 스르르 쓰러지는 것이었다.
기준은 손을 놓고 다리를 치우면서 “이젠 약 담배를 먹였으니 낫겠지.”라고 하면서 엉거주춤 일어나 위방으로 올라갔다.
명옥과 상순이 애를 끌어 당겨다 보니 숨이 없었다. 영돌은 상을 일그러 뜨린 채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명옥은 영돌을 안고 “영돌아, 영돌아, 애고, 귀여운 영돌을 이게 무슨 일입둥? 병원에 보내자는데 이게 뭡둥?” 하고 대성통곡 쳤다.
그제야 상순은 머리를 푹 숙이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후회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려 두 볼을 적시었다…
그 후 반달도 되지 않아 갓난애 선돌도 나오지 않는 명옥의 젖을 빨고 빨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사실 명옥은 애를 연속 둘이나 죽여 내가다나니 속을 태울 대로 태워 젖가슴이 메말라 젖 한모금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은 연속 애들을 셋이나 죽여 야단인데 소서구에 있는 새금은 문안은커녕 빗자루로 구들을 쳐대면서 쾌자를 불렀다.
“봐라! 봐! 네 년 놈들이 시부모를 더 잘 모실 상 하더니 하늘이 생벼락을 쳐서 한 구들에서 셋이나 썪어졌지. 이제 네 년 놈들도 주둥이에 곰팡이 낄 게야. 어디 두고 보자…”
그러자 상우는 여편네를 가로 보며 욕하였다.
“그만 두지 못하겠소? 형제간에 돕지 못할망정 그게 무슨 욕지거리요?”
새금은 남편을 흘기어 보면서 앵돌아져 줄 욕을 퍼부었다.
“항상 동생, 동생 해도. 그 잘난 시동생은 우릴 형으로 보오? 우릴 쫄딱 망신시키지 않았습둥? 어떻게 우리하구 토론도 하지 않고 시부모를 마구 빼앗아가오? 남들은 우릴 시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고 볼 게 아니오?”
상우는 “그만 두지 못 하겠소? 동네 영상하게.”라고 하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래도 새금은 계속 도도도거렸다.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없는데 내라고 시부모를 굶기고 싶어 그랬겠소. 쌀독이 텅텅 빈 살림살이를 어떻게 하라오? 내 원, 원통해 원, 못 살겠다.”
새금을 탓해 뭘 하랴?
당시 일본 놈들은 할빈 교외에 자리잡은 731공정에서 만든 전염병균을 비행기로 여러차례 동북각지에 살포해 실험했다. 그리하여 동만지구에도  몇해동안 전염병이 확산돼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무리로 죽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극악무도한 일본 놈들의 죄악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편 지학사는 상순이네 연속 애 셋이나 죽어 나가자 속으로 상순의 기를 꺾어 놓은 것 같아 속이 시원해 하였다. 전번에 특설부대에 보내자 하다가 못 보냈는데 망하는 꼴을 보고 깨 고소해 하면서도 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졸개들을 데리고 가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개화장을 휘둘러대며 고래고래 고함치었다.
“이 놈 집은 전염병 굴이야! 어서 새끼를 두르고 누구도 나오지 못하게 막아라!”
“옛!”
졸개들이 달려들어 상순이네 사랑채를 돌아가면서 나무말뚝을 박더니 새끼줄을 몇 겹으로 줄줄 띄워 놓았다.
상순이 바깥에서 집으로 돌아와 세 길 네 길 날뛰었다.
“어느 놈이 감히 우리 집 앞길을 가로 막아?!”
상순이 지학사에게 단말마적으로 달려들자 지학사의 졸개들이 앞을 막아 나섰다.
지학사는 뒤로 물러나며 개화장으로 상순을 푹푹 찌를 상을 하며 휘둘러댔다.
“이 무지막지한 놈아, 네 여편네까지 전염병에 걸렸는데. 온 마을에 전염되면 어쩌니? 온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예산이냐?”
상순은 물러서지 않고 시비를 걸었다.
“그래 우리 집 식구들이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면 굶어 죽어란 말인가?”
지학사는 “그럼 전염병에 걸린 네 여편네만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넌 나 다녀도 된다.”라고 타협하였다.
지학사는 그 쯤 해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순도 온 동네에 전염병을 전염시킬까봐 아내를 나가지 말게 하고 달아 다니면서 먹을 걸 얻어다 먹이었다.
어느 날, 기준은 진수해에 내려가 목수 일을 해 번 돈 10원을 명옥의 손에 쥐어 주었다.
“며느리, 이 돈으로 약을 져다 먹고 몸을 춰 세우오. 애들을 셋이나 죽이었는데 애기 네까지 약 한 첩 써 주지 못하고 죽일 순 없네.”
“고맙습구마. 시아버님.”
명옥은 돈을 받아 쥐고 감격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었다.
그는 정지에 내려오자 남편한테 돈을 주면서 부탁하였다.
“시어머니 앓아 누웠는데 약을 써 드리오. 시아버님이 팔소매 다 떨어진 웃옷을 입고 추워서 두 팔을 맞붙잡고 우둘우둘 떨면서 다니는데 차마 두고 보지 못하겠소. 옷감을 떼 오오. 내 웃옷을 지어 아버님께 드리고 싶소.”
그런데 새금이 시아버지 진수해에 가서 목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어데서 들었는지 소서구로부터 달리어 내려 왔다.
그는 집 문을 떼고 들어서자마자 야단치었다.
“시아버지, 돈을 벌어서 작은 며느리만 주구 어째 맏며느리는 주지 않습둥? 그래 맏며느리는 며느리 아닙둥?”
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맏며느리를 내리쏘아볼 뿐이었다.
명옥은 남편을 보며 주라고 눈짓을 하였다.
순간 상순은 조선에서 자기를 업고 간도에 들어 와서 부모처럼 자기를 아끼던 형님과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는 품에 넣었던 돈에서 절반 꺼내 아주머니한테 주었다.
“엄마한테 약을 사다 주자고 했는데 가져가오. 아주머니를 미처 생각하지 못해 미안하오.”
펄펄 날뛰는 호랑이 같은 상순도 부모와 형님네 앞에서는 양처럼 순하였다. 위방에서 기준은 못 마땅한지 건 가래를 떼었다.
새금은 돈을 받아 쥐고 위방에 대고 입귀를 비쭉하더니 떠나 가 버렸다.
상순은 명옥과 토론하고 나머지 돈을 가지고 진수해에 가서 아버지 옷감을 사고 너머지 돈으로 어머니 약을 지어 가지고 왔다.
명옥은 손수 바늘로 한 뜸 한 뜸 기워 웃옷을 지어 시아버지한테 입혀 드리었다.
기준이 동네로 나가 막내며느리 자랑을 어찌나 하였던지 동네방네 노인들이 엄지손가락을 내두르면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 집 막내며느리는 엄지 며느리오.”
명이 길어서일까 효녀여서 그럴까. 명옥은 약 한 첩도 사 먹지 못 하고서도 구사일생으로 전염병을 이기고 살아났다. 그러나 사련은 약을 달여 대접했지만 가석하게도 시시콜콜 계속 앓아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명옥은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누룩을 잡아서 술을 걸었다. 상순이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오면 기준은 부엌에서 그 땔나무를 무릎에 대고 뚝뚝 끊어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때었다.
명옥은 동네방네 노인들을 청해다 술을 대접하였다. 노인들은 술맛도 좋지만 인품 좋고 효성이 지극한 명옥의 마음이 고마워 모두들 술을 사가서 장사가 잘 되었다. 명옥은 술을 팔아 번 푼돈을 모아 가지고 시어머니에게 보약을 손수 지어다 달여 대접하였다.
사련은 누운 자리에서 명옥의 손을 꼭 잡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었다.
“막내며느리, 자네 효성에 난 죽어도 원이 더 없네.”
       정성이 지극하면 고목에도 꽃이 핀다고 사련은 막내며느리 효성에 받들리어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허약한 몸으로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쓰다듬더니 팔을 걷고 막내며느리가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술을 거르는 것을 거들었다.
       상순이네는 집도 없이 큰집인 웃새집 사랑방에 들어 부모를 모시면서 살았지만 구차한 살림에 부모자식 간에 서로 끔찍이 사랑하고 고부 사이에 화목해 동네에 효자들이라고 소문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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