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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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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59)
2016년 12월 23일 11시 51분  조회:2056  추천:0  작성자: 김장혁




                        
                        9.조우전

       상순은 로투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곧추 영월구에서 내려 령길을 타고 풍찬노숙하면서 장백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수림 속 령길에서 웬 일인지 일본 놈 새끼들을 한 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것이 더 불안하였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나무숲이 우거지고 미인송들이 하늘을 찌르고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미인 송들은 마치 항일열사들의 혼이라도 살아서 재생한 듯이 거룩하고 늠름하였다.
       상순은 옛날 장백산 밀림 속의 밀영 부근에 이르게 되자 위장하려고 괭이로 도라지와 더덕뿌리를 캐 주머니에 넣어 메고 걸었다. 그는 낫으로 고비랑 산나물을 캐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협곡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먼저 큰어머니가 묻힌 산소가 있는 산등성이로 찾아올라갔다.
        양지 바른 언덕아래 모신 큰어머니 산소에 이르자 그는 밀짚모자를 벗어 놓고 큰절부터 올렸다.
        “큰어머니, 그간 편안히 계셨습니까? 일본 놈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희생된 큰어머니, 정말 안됐습니다.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광복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한평생 고생하다가 돌아간 큰어머니 정말 안 됐습니다.”
상순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윽고 그는 산소를 여겨 보았다. 아무리 살피어 보아도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없이 봄에 가토를 해놓은 그대로였다. 그는 낫으로 산소를 썩썩 벌초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낫질을 하는데 나무숲 속에서 새들이 푸르릉 포르릉 날아나고 버스럭버스럭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낫질을 주춤 멈추었다가 혹시 산짐승이 아니겠는가고 짐작하면서도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낫질을 하였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수상한 사람도 야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큰어머니 산소 옆에 있는 검둥이 묘지의 풀도 베어주면서 중얼거리었다.
“검둥이야, 넌 오래동안 그림자처럼 우릴 따라  다니었지. 전번에는 큰어머니한테 총을 겨눈 일본 놈에게 덮쳐가 물어뜯다가 총에 맞아 잘 못 됐지. 정말 우리 가족과 같았는데. 너의 최후가 너무나도 슬프구나.”
한참 후 그는 경각성을 바싹 높이어 사위를 살피면서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가 있는 협곡으로 슬금슬금 내려갔다. 그때 노루가 큰어머니 산소 뒤로 하여 깡충깡충 뛰어 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버스럭거린 게 저 놈 노루겠다.)
상순은 숲 속으로 달아나는 노루를 바라보며 한숨을 후-  내쉬고 나서 협곡으로 내려갔다.
그는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 옆에 자그마한 구덩이를 파놓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구덩이 주위를 맴돌면서 양미간을 찌푸렸다.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 뭘 할까? 용천대장과 진달래사돈이 왔다 갔는가? 봄에 가토를 할 때 이렇게 구덩이를 파 흙을 쓴 적이 없었는데. 그럼 이 구덩이는? 아, 아니다. 그럼 유격대 외에 누가 여기 왔다 갔단 말인가?”
상순은 순간 머리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하늘땅을 진동했다. 그는 낫을 쥐고 벌초를 대충 해놓고 바삐 큰절을 올린 후 황급히 협곡을 벗어났다.
그가 사위를 둘러보면서 득호와 병수 열사의 산소가 있는 옛 밀림 속 밀영자리 부근으로 내려갔다. 산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일본 놈들의 시체가 다 썩어 유골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지러운 유골 속에 드문드문 무덤이 새로 생긴 것이 눈에 뜨이였다.
(일본 놈들이 왔다 갔구나.)
상순은 신록이 짙은 밀림 속에 숨어 여기저기 한참씩 살피다가 병수와 득호 열사의 산소로 가만가만 접근하였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그는 두 열사의 산소로 다가가 벌초를 해 주고 절을 올렸다. 일을 마치자 그는 인차 자리를 떠 수림 속에 숨어 버리었다.
그는 나무숲 속에서 도라지뿌리와 더덕 뿌리로 대충 요기를 하고 큰어머니 산소와 최구철 사돈어른의 산소 사이에 있는 협곡 부근으로 다가가 숨어 있었다.
그는 다래넝쿨 속에 들어 누운 채 다래를 뜯어 먹으면서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큰아버지는 한가위날에 맞춰 올 것 같지 않았다.
(일본 놈들이 야마모도 같은 일본 장교 놈들의 시체만 골라 몇을 파묻은 거 같다. 일본 놈들이 만약 유격대원들의 산소를 여기에 쓴 걸 보고 조선족들이 청명과 한가위 날에 산소로 오는 풍속을 알고 여기에 매복 진을 치고 있으면 어쩌는가? 성칠 큰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없겠는데. 한가위 날보다도 아무 때나 산소로 오는 게 더 안전하지. 그렇지 않으면 북만에 갔다는데 이렇게 먼 산소에 올까?)
상순은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낫을 쥔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그는 낫을 쥐고 일어나 소변을 보려는데 캄캄칠야 원시림 속에서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나더니 웬 놈이 군도를 빼들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오지 않겠는가!
“아니, 저 놈이 어떻게 돼 왔지?”
여겨 보니 한철주 놈이 아니겠는가!
상순은 바삐 괴춤을 춰 입고 다래넝쿨 속에서 뛰쳐나가면서 낫을 휘둘러 그 놈과 맞붙어 싸웠다. 그때 숱한 일본 놈들이 고함치며 총창을 번뜩이며 덮쳐왔다. 철주 놈이 시퍼런 군도를 휘둘러 내리 치었다. 상순이 낫을 들어 막았지만 낫자루가 썩 뚝 잘려나갔다.
철주 놈이 재차 군도를 휘둘러 상순을 내리 찍었다.
“앗!”
상순이 버럭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보니 다래넝쿨 속에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아무리 꿈이라도 이상한 악몽이야.)
그는 낫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었다. 이때 또 수림에서 밤새들이 놀라 날아나는 소리가 들리었다.
(무슨 동정이 있구나.)
상순은 다래넝쿨 속에서 가만히 나와 협곡 쪽으로 가만히 전이했다. 그가 누웠던 다래넝쿨 쪽에서 무슨 말소리가 나직이 들리는 것 같았다.상순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정말 혹시 너무 의심하면서 도정신해 이런 착각했는가? 큰아버지가 왔을까? 아니면 정말 내 추측처럼 꿈에 본 한철주 놈이 일본 놈들을 데리고 와서 매복 진을 치고 유격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직 일본 놈들을 완전히 전승하지 못한 형편에서 상순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상순은 어둠이 깔린 밀림 속을 더듬으면서 살금살금 산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그는 나뒹구는 일본 놈들의 유골 속으로 슬금슬금 가서 슬쩍 엎드려 주위 동정을 살폈다. 여기저기에서 굶주린 승냥이들의 울음소리가 밀림 속의 공포감을 더욱 자아냈다. 그는 괭이로 부식토 밑바닥에 구덩이를 슬슬 파 놓고 그 안에 들어가 머리만 내 놓고 엎드리어 있었다…
산속에 들어온 첫 날 밤은 공포 속에 흘러 지나갔다.
이튿날도 사흘 날도 생각 밖으로 무사히 지나갔다. 상순의 큰아버지 등은 수림 속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림 속에서 일본 놈들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흘 되는 날 대낮에 뜻밖에 수림 속 산골짜기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상순이가 일본 놈들의 무덤 옆의 수림 속에 숨어서 살피어 보니 괭이를 둘러멘 조선 사람 대여섯이 약재를 캐고 있었다. 진짜 원시림 속에서 야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서웠다.
그 사람들은 도라지랑 캐면서 협곡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며칠 전날 밤에 다래넝쿨 쪽으로 다가온 게 저 사람들일까?)
상순은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더 기다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먹을 게 떨어진데다가 야수와 낯선 사람들로 하여 공포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큰아버지가 조선 고향에 나가게 되면 함흥촌에 찾아오겠지. 형만 사돈도 이계삼과 허영주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큰아버지 보낸 편지도 확실하고. 에라, 집에 가서 민병이나 잘 조직해 싸울 준비나 하자.)
그는 가을 해가 지기를 애타게 기다리었다.
이때 수림 속을 헤집는 소리가 들리더니 인기척이 또 났다. 상순은 낫을 쥐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골짜기로부터 확실히 서너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뜩 보니 큰아버지 같았다.
상순은 유격대에서 쓰던 암호를 보냈다.
뻐꾹 뻐꾹 뻑뻑 꾹
저쪽에서 오던 사람들이 주춤 멈춰 서는 것이 나무 사이로 보였다. 저쪽에서도 인차 화답하였다.
뻐꾹 뻐꾹 뻑뻑 꾹
상순은 머리를 좀 들고 나직이 말하였다.
“군호!”
“진달래!”
“누구야? 혹시 상순이 아니야?”
상순은 큰아버지의 귀에 익은 목소리를 확인하였다.
“큰아버지!”
상순과 성칠은 골짜기 나무숲 속에서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뒤에는 용천 대장과 은녀 그리고 경위원 조 꼬마가 뒤따랐다. 그들은 모두 유격대의 옷차림새가 아니라 산골 농사꾼으로 위장하고 왔던 것이다.
이때 수림 속에서 새들이 놀라 하늘로 풍기어 올랐다.
그들은 먼저 최구철 열사를 찾아가 보려고 산골짜기를 따라 협곡으로 들어갔다.
상순은 만나자마자 궁금한 것부터 큰아버지에게 물었다.
“큰아버지, 이계삼과 허영주는 믿을만한 사람입니까?”
“옳다. 전번에 보낸 편지를 못 봤니?”
“예. 그래도 이 동란시기에 경솔히 믿을 수 있습니까?”
성칠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분들을 믿어라. 그는 당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당원들이야. 그 두 분의 영도아래 항일투쟁을 하고 장차 토지개혁도 해야 한다. 지주를 청산해 재산과 땅을 가난한 농민에게 나눠 주는 투쟁을 해야 한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일본 놈들이 망하면 우린 조선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성칠은 조 꼬마에게 보초를 잘 서라고 하고는 용천 대장을 돌아보았다.
“얘가 별 거 다 묻소.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중국 한족형제들과 함께 일본 놈들과 싸워야 한다. 유격대가 장차 어디로 가는가는 김일성 장군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이건 군사비밀이야."
용천은 희죽이 웃었다.
“상순아, 그 문제로 난 네 큰아버지가 다투기까지 했어. 난 조선에 돌아가야 한다 하고 네 큰아버지는 여기 남아야 한다구 했어.”
상순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자꾸 큰아버지한테로 물어 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큰아버지나 아버지네 형제들의 고집을 알고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협곡에 들어서서 최구철 열사의 산소 앞에 거의 이르렀다.
상순은 용천 대장을 돌아보면서“어째 진달래중대장은 오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다.
용천대장은 “아들애 경주를 금방 낳아서 불편해 오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상순은 “경하 드립니다.” 하고 나서
       “며칠 전에 내 산소에 와 보았는데 누가 사돈 산소 옆에 구덩이를 파 놓았습디다.”라고 하였다.
        용천 대장이나 성칠은 이구동성으로 “구덩이를?” 하고 말하며 상순이가 가리킨 산소 옆의 구덩이를 보며 신경을 도사렸다.
“우리를 내 놓고 또 누가 왔을까?"
"저 구덩이는 어쩌자고 파 놓았을까? 가토를 하는데 쓴 것도 아니고.”
용천 대장의 말이 채끝나지도 않았는데 너털웃음에 뒤이어 고함소리가 협곡을 쩌렁쩌렁 울리었다.
“이 놈들아, 그 구덩이는 네놈들을 칼탕 쳐 파묻을 무덤이다! 이 한철주가 아버지와 야마모도 대장의 원수를 갚으려고 여기서 네놈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어디 죽어 봐라!”
땅! 땅!
꽝!
총알이 빗발치듯 사처에서 날아 왔다. 수류탄도 마구 날아와 근처에서 폭발하였다.
성칠은 구덩이에 뛰어들며 소리쳤다.
“용천 대장은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갱도로 전이하오! 나와 조 꼬마가 엄호할 테니.”
용천은 구덩이로 굴러오면서 소리쳤다.
“안 돼! 죽어도 함께 죽어. 빨리 갱도로 철퇴하자이!”
푱! 푱!
총알이 협곡 암벽에 날아와 박히며 무서운 소리를 냈다. 한개 소대나 될 적들은 협곡을 포위하고 기관총으로 사격해댔다.
원래 한철주는 지난 겨울 전투에서 유격대에 한개 중대나 되는 병력을 잃고 처분받아 부대대장으로 강직됐던 것이다. 우시장 경찰국 스즈끼 국장도 야마모도와 별동대가 전멸당한 죄가 발각나 할복처단 당했던 것이다.
한 달 전에 한철주는 원래 자기 수하였던 재1대대 대대장의 명령을 받고 야마모도 등 장교들의 시체를 묻어 주려고 왔다가 협곡과 산 둔덕, 밀영 부근 통나무집 앞의 유격대 무덤에 가토를 한 걸 보고 유격대 대원들이 왔다 간 자취를 알게 됐다. 그는 한 마을에 살던 성칠의 아내 하옥이가 기관총에 맞아 죽는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옥의 무덤이 이 묘지 가운데 있을 것인바 성칠이 청명이거나 한가위 날이면 조강지처 무덤을 찾아 올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음흉한 그는 한 달 전부터 밀림 속 무덤 주위에 매복 진을 치고 언제까지라도 유격대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약재를 캐는 척 하면서 산소 주위를 감시하던 조선 밀정들은 하옥의 무덤에서 벌초를 하는 상순을 발견하고 한철주에게 보고했다. 그때 상순은 노루가 달아나면서 산새들이 날아났는가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철주는 풀을 건드려 구렁이를 놀래지 않는 전제하에서 상순의 움직임을 밤낮 면밀히 감시하다가 나포하며 더 큰 고기가 그물에 뛰어 들기를 기다리라고 명령하였다.
적들은 산소 주위를 샅샅이 훑다가 다래넝쿨 속에서 자는 상순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상순이가 예민한 감각으로 어디론가 사라지면서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들은 상순이 골짜기 일본 놈들의 유골 속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가지를 덮고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성칠 등이 협곡에 들어서자 한철주는 때가 왔다고 사격명령을 내리었던 것이다.
성칠은 용천 대장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철퇴! 이건 명령이오. 동만에서 당신은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하네.”
용천은 별 수 없이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협곡 속으로 들어가 밀영 갱도 안으로 철퇴했다.
성칠은 조 꼬마와 함께 사격하면서 적들을 유인하려고 협곡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치었다.
“1중대는 북쪽으로 협곡을 포위하라! 2중대는 동쪽으로 포위하라! 3중대는 여기서 적들을 저격하라!”
“한철주 이 놈아! 전번에 여기서 썩어지지 않은 게 원수냐? 달려들어 봐라!”
성칠은 끊임없이 고함 쳤다.
적들은 또 유격대 덧걸이 포위에 든 것인가 뒤돌아 살피다나니 사격이 뜸 해졌다.
용천 대장이 상순과 은녀를 데리고 안전하게 좁은 협곡으로 하여 갱도에 들어갔다. 성칠은 조 꼬마에게 먼저 철퇴하게 하고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며 엄호하였다.
조 꼬마도 협곡으로 덮쳐 오는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겨 몇 놈 쓸어 눕히면서 협곡 안으로 철퇴하였다.
“김 대장! 빨리 철퇴하… 억!”
성칠이 뒤돌아보니 조 꼬마가 가슴을 붙안고 쿵 쓰러졌다.
“조 꼬마!”
한철주의 너털웃음소리가 또 들렸다.
“성칠아, 이번엔 네놈 차례다.”
성칠은 조 꼬마한테로 기어가 부르며 흔들어 보았다. 조 꼬마의 가슴에서 피가 쿨쿨 솟구쳐 진달래나무가 듬성듬성 자란 바위 돌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성칠은 벌떡 일어나 암벽에 붙어 협곡 속으로 달려가면서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사격했다.
그가 거의 갱도어귀에 달려갔을 때다. 갱도 어귀에서 용천 대장과 은녀가 적들에게 몰 사격을 가하면서 엄호하였다. 놀랍게도 상순이도 제법 모젤권총을 들고 엄호사격을 했다. 그 틈을 타서 성칠은 갱도 안에 뛰어 들어갔다.

            10. 밀림의 최후매복습격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철주 놈은 갱도 어귀까지 쫓아와 수하 놈들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댔다.
“갱도 안에 수류탄을 뿌려!”
꽝! 꽝!
“하하하, 이 독안에 든 쥐 같은 놈들아! 어디로 달아나겠느냐? 어서 나와 칼을 받아라!”
성칠도 맞고함을 질렀다.
“한철주 놈아, 기다려라! 네놈은 우리 유격대 포위 속에 빠지었다. 명년 이때는 네 놈의 제사 날이다!”
“허허허. 네 놈의 허장성세를 내 모르는 거 같으냐? 무슨 3중대까지 있냐? 다섯 놈 밖에 오지 않은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갱도도 한 달 전부터 몽땅 수색해 출구를 다 알고 있다. 어디로 도망치겠느냐?”
뒤이어 갱도 밖에서 한철주가 일어로 지껄여대는 고함소리가 들리었다.
“갱도 어귀마다 한개 분대씩 나뉘어 쥐새끼도 드나들지 못하게 지키라.”
“하이!”
용천은 시꺼먼 갱도 안에서 성칠의 손을 더듬어 잡고 귀속 말을 했다.
“이대로 있으면 독안에 든 쥐로 되고 말거네. 내 뭐라고 하던가? 열사들을 묻어 주었으면 됐지. 이번에 와서 벌초까지 할 게 뭔가? 적들은 꼭 산소를 쓴 거 발견하면 매복해 우리를 기다릴 수 있다니께.”
성칠은 용천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나도 짐작했네. 우린 두개 소조로 나뉘어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포위를 뚫고 나가기요. 내 상순을 데리고 먼저 갱도어귀를 나가면서 적들을 유인할 테니 김 대장은 은녀를 데리고 남만 쪽으로 철퇴하오. 우리 살기만 하면 북만 유격대 근거지에서 다시 만나기오.”
성칠은 용천의 귀에 대고 뭐라고 쑤군거렸다.
“오, 알았네. 이번엔 우리가 엄호할 테니 성칠 대장이 무송을 거쳐 남만으로 철퇴하랑께.”
성칠은 용천 대장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하였다.
“이럴 새 없어. 우린 탄알도 거의 떨어지네. 명령에 복종하게. 어서 철퇴하라!”
갱도 안에서는 한숨소리가 길게 들렸다.
은녀는 성칠의 손을 더듬어 쥐고 “오빠, 꼭 북만에서 만나요.”라고 하였다.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응, 그래. 우린 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광복을 봐야 하구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우린 그 날을 위해 싸워 오지 않았더냐?”
그들은 즉시 두개 소조로 나뉘어 밤이 오기를 기다리었다.
캄캄한 갱도안에서는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성칠은 권총을 쥐고 굽이진 갱도바닥에 엎드려 갱도어귀를 지키었다.
그는 상순에게 “너 권총은 어데서 난 거냐?”라고 물었다.
상순은 더는 속일 수 없어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아주머니가 희생될 때 아주머니 권총을 주어 봇나무에 싸서 파묻어 두었댔습니다.”
       욕을 먹으려니 했다.
        그런데 성칠은 “잘 했다. 그랬기에 이럴 때 잘 써 먹지.”라고 하면서 뒷말을 이었다.
“이후에도 전쟁터에서 적들의 손에서 무기와 탄약을 노획해 쓸 줄을 알아야 한다.”
“예, 알았습니다.”
“그래 마을의 민병대오 조직은 잘 됐느냐?”
“예. 괜찮습니다. 전번에 민병들을 조직해 가지고 악질지주의 쌀 창고를 털어다 함흥촌 군중들에게 나눠 줬습니다. 그런데 이계삼은 그런 일을 하면 이후에는 회보하라고 합디다. 어떻게 무슨 일이나 다 회보하겠습니까?”
“회보해야 한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너도 이계삼과 허영주를 잘 받들어 적후공작을 하면서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야 한다.”
“큰아버지도 중국 공산당원입니까?”
“응, 난 원래 조선 독립군이었다. 후에 김일성 장군을 따라 조선 유격대에 들었댔지. 지금은 중국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꼭 빠른 시일 내에 입당해야 발전도 빠르다.”
“예. 용천 대장도 공산당원입니까?”
“아니다. 그는 조선 지주의 아들이라서 중국 공산당이나 조선 공산당이나 꺼린다. 공산당에 들어 자기 아버지를 타도하겠나 하면서 공산당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광복을 맞으면 고향 경주로 돌아 갈거 같다. 이런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갱도 어귀쪽이 어두워지더니 우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좋아, 포위를 돌파하라고 하늘이 우리를 돕는구나. 소낙비 소리에 탈출해도 적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할 거야.”
성칠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때라고 생각한 성칠은 포위를 돌파하자고 용천대장에게 기별하라고 상순을 보내었다. 그런데 얼마 안 돼 은녀가 이쪽으로 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용천 대장은 나를 보내 포위를 돌파하자고 기별하라 했소.”
“그럼 돌아가라. 이젠 포위를 돌파하자. 우리 이쪽에서 총소리 울리면 놈들이 이쪽으로 올 거야. 그때 너네 그 쪽에서 포위를 뚫고 남 만 쪽으로 가는 수림 속으로 달아나라.”
이때 은녀가 온 쪽 갱도 안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들렸다.
“아차, 용천 대장이 먼저 손을 썼구나. 적들을 자기 쪽에 유인해 가는구나.”
“나는 어쩔까?”
“돌아 갈 새 없다. 우리와 함께 포위를 뚫고 나가자.”
저쪽에서 일본 놈들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수류탄이 폭발하는 굉음이 들리었다.
성칠은 은녀와 상순을 데리고 갱도어귀로 살금살금 뛰어 갔다. 바깥을 살며시 내다보니 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상순과 은녀를 데리고 갱도 어귀로 뛰어 나갔다.
땅! 땅!
적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사격하였다.
“유격대 놈들이 갱도에서 나왔다.”
성칠도 사격하며 수림 속으로 뛰쳐나갔다.
푱! 푱!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은녀가 총에 종아리를 맞고 푹 꼬꾸라졌다.
적들이 무리 승냥이들처럼 그들에게 덮쳐 왔다. 성칠은 은녀를 둘쳐 업고 아름드리나무를 은폐물로 삼아 이리저리 빠지면서 철퇴하였다. 뒤에서 상순은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며 철퇴하였다.
탄알이 다 떨어지었다. 상순은 큰아버지에게서 은녀를 받아 둘러메고 앞에서 닫고 성칠이 뒤에서 엄호하며 사격하였다.
그들이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한참 적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철퇴할 때다.
땅! 땅! 땅!
난데없는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갱도어귀를 지키던 놈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웬 일일까?
“1소대는 김 대장을 엄호하고 2소대는 산등성이를 점령하고 3소대는 적들을 포위 섬멸하라!”
귀에 익은 인삼 중대장의 목소리였다.
적들은 번쩍이는 섬광을 보고 대뜸 수십 명의 유격대가 온 것을 알고 철퇴하기 시작하였다.
한철주는 또 절망에 빠졌다.
“또 성칠 놈의 유인 술에 걸렸구나. 한달동안 까딱 하지 않던 유격대가 하늘에서 날아 내렸나? 땅속에서 솟아났나? 아이고, 하늘이 날 죽이는구나!”
그는 소낙비 속에서 군도를 하늘에 쳐들고 휘두르며 비명소리를 질렀다.
“철퇴!”
 그는 군도를 맥없이 내리 드리더니 뒤로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한철주 놈아, 어디로 도망쳐?!”
성칠은  유격대를 지휘해 적들을 포위하면서 소멸하였다.
적들은 숱한 주검을 남기고 몇 놈이 살아남지 못하고 협곡으로 해 도망치었다.
어두운지라 성칠은 적들을 그만 쫓고 뻐꾹새 울음소리를 냈다. 여기저기에서 뻐꾹새 울음소리 들렸다.
어둠 속에서 성칠과 인삼은 감격의 상봉을 하였다.
“김 대장, 다친데 없습니까? 늦어 와서 죄를 지었습니다. 처벌하십시오.”
“괜찮네. 이번 포위소멸전도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네.”
“어째 김용천 대장이 보이지 않습니까?”
“포위를 돌파하구 남만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헤이,  아마 잘 못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아까 총소리에 뒤이어 수류탄 폭발 소리가 들렸네. 일본 놈들이 꽥꽥 거리더군. 찾아 보기요.”
그들은 인차 용천 대장이 포위를 돌파한 갱도어귀에 가 보았다. 그러나 갱도어귀가 다 폭파되고 용천 대장은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손으로 파보아도 일본 놈의 시체만 나오고 용천 대장의 머리카락 한 오리마저 찾을 수 없었다.
“십중팔구는 마지막 수류탄을 안고 적들과 함께 희생된 듯하오. 만약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면 남만으로 에돌아 북만 유격대 근거지로 올 거요.”
그들은 최구철의 무덤 옆에 무덤을 하나 더 팠다. 성칠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조꼬마 시체를 거두어 손수 협곡의 맑은 물에 염습한 후 봇나무에 싸서 통나무를 가로 세로 쌓아 만든 “관”에 안아다 놓았다. 전우들은 피눈물과 함께 조 꼬마를 잘 묻어 주고 묵도를 드렸다.
추모의 총소리가 장백의 협곡과 밀림에서 오래도록 메아리치었다.
원래 성칠은 북만과 장백산 밀림이 거리가 너무 멀어 용천과 은녀만 데리고 산소에 가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용천 대장이 자꾸 적들의 매복습격에 걸릴까 봐 근심하는 바람에 인삼 중대장과 미리 토론하고 임기응변하여 적들을 이 협곡에 유인해 재차 매복습격 전을 벌리기로 했던 것이다.
인삼 중대장은 너무 늦을 것 같아 영월구를 지나자 마을에 들어서 백마들을 타고 길을 떠났다.
원래 백두산 밀영에서 기르던 백마들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전투에 쓸 수 없는데다가 말먹이 풀이 없어 장백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줘 사양하였던 것이다.
유격대는 백마를 타고 재빨리 성칠 등을 쫓아 와 성칠 등을 구하고 매복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사후에 성칠은 너무나도 모험적인 유인전술을 썼다고 김장군으로부터 표창과 함께 비평도 받았다.
동녘 하늘이 희붐히 밝아 왔다. 아아한 장백산 원시림은 다시 아름다운 삼라만상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아침 해살을 맞으면서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적들의 총과 탄알을 거두어 둘러멨다. 칠백은 적들의 손에서 경기관총 한 자루를 주어 둘러멨다. 바위돌과 억복은 권총을 한 자루씩 주어 허리춤에 찼다. 상순은 일본 장교놈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끌러내고 권총 탄알띠도 풀어 허리춤에 찼다.
"흐흐, 이젠 나한텐 권총 세자루나 있어."
성칠은 조카가 좋아하는 걸 보고 권총을 유격대에 바치라는 말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상순이 민병들을 조직해 지주무장과 싸우려면 권총 몇자루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임호 분대장은 협곡 갱도 어귀에서 박산난 안경알을 주었다.
“이건 분명 한철주 놈의 안경이겠는데.”
성칠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임호는 원래 가마골 구장이었는데 후에 일본 놈들의 갖은 유린에 견디기 어려워 성칠의 유격대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이 수림 속을 샅샅이 뒤지었지만 한철주의 시체는 끝내 찾아 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적들의 역습을 당할까봐 장백산 밀림 속에서 인차 먼저 무송 쪽으로 철거하였다.
그들은 연 며칠 수림 속 령 길로 강행군해 무송현을 지나 돈화 벌판을 거치어 경박호에 무난히 이르렀다.
그때 푸르른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 왔다. 모두들 일본 놈들의 비행긴가 하여 수림 속에 납작 엎드리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하늘에서 선회할 뿐 그들에게 폭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다시 그들의 우로 선회하면서 날아 지나갔다. 성칠이 뒤에 또 날아오는 비행기를 찬찬히 여겨 보니 일본 놈들의 고약딱지 기발표식이 아니었다. 오각별이 박혀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북만 유격대 근거지에 도착한 후 그 비행기는 쏘련 홍군의 비행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소련 홍군이 동북으로 쳐들어와 일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며 추격해 왔다는 것이었다.
성칠 대장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유격대원들에게 새로운 지시를 전달하였다.
“오래지 않아 조선인민과 형제적인 중국 인민은 광복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우리 항일유격대는 김장군의 명령에 따라 소련 홍군을 협조해 동만을 경과해 조선으로 도망치는 일제 침략자들을 추격하여 모조리 소멸하여야 합니다. 그 놈들을 중국의 광활한 대지와 사랑스러운 조선 반도에서 깡그리 몰아내고 항일전쟁의 철저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
여명의 전야는 아직도 칠칠흑야처럼 어둡기도 하였다. 반백년을 이 땅과 하늘을 뒤덮었던 먹장구름이 가시어지고 푸르른 가을 하늘에 찬란한 태양이 서서히 동녘 하늘에서 솟아올랐다.
성칠의 출발명령에 따라 항일유격대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새로운 전투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령길을 타고 씩씩하게 동만 쪽으로 진군해 일제 놈들을 추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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