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삼복염천에도 상순은 근본 집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당장 교하에까지 쳐들어올 국민당 군을 무찌를 후비군양성에만 열성을 올렸다.
상순은 각 촌에 민병련을 건립한 토대 위에서 진수해구 민병 련장, 패장 골간훈련반을 열었다. 훈련반에서는 군사과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정치형세교육, 마레주의 모택동사상, 사회주의 리론 등 정치과도 가르쳤다. 교원은 물론 상순이 직접 맡았다. 그는 군정대학에서 배운 그대로 골간들에게 가르쳤다. 상순은 진수해에서 배양된 민병 골간들을 부단히 해방전쟁 전선으로 내보냈다.
군사과를 가르칠 때 그는 육박전, 보총과 기관총 사격, 수류탄뿌리기 등을 가르친 외에도 탱크폭파특별과도 설치하였다. 당시 국민당군과의 전쟁에서 우리 인민해방군에는 탱크가 적거나 없다싶이 했기에 주로 국민당군의 탱크를 폭파를 가르쳐주었다. 우둔한 놈이 범을 잡는다고 상순은 기발한 궁리를 했다. 당시 국자가 비행장 서쪽 7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일본군 비행장 기름창고가 있었다. 상순은 자동차를 몰고 기름창고에 가서 희수, 태수와 함께 지하기름창고 덮개를 열고 휘발유를 초롱에 퍼내 휘발유통에 몇통 담아 싣고 삼도만으로 달려갔다. 그는 토비숙청 때 삼도만으로부터 평강촌으로 토비를 추격하다가 휘발유 없어 버려진 탱크(땅크)를 시골길 가에서 찾아냈다. 탱크를 두루 살펴보니 어데 마사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 사람들은 괴물 같은 탱크를 감히 만지지도 못했다. 상순은 탱크 기름통 덮개를 열고 휘발유를 부어넎고 운전석에 들어가 발동을 걸어보았다.
따따땅, 따따땅, 부릉부릉
탱크 발동이 걸렸다.
"살았어."
상순은 희수와 태수를 싣고 당년에 토비를 추격하듯이 사기나 탱크를 몰고 진수해에 돌아왔다.
그날부터 그는 군사골간들에게 탱크 폭파기술도 가르쳤다. 자동차운전기술이 있는 희수와 육박전능수 병수, 명사수 태수한테는 특별히 탱크운전도 배워주었다.
상순은 이른 아침부터 민병골간들을 진수해 토성 안 마당에 불러다 훈련시켰다. 상순은 어떤 때 자기가 다망할 때면 육박전은 병수를 보고 가르치게 하였고 사격은 명사수 태수를 보고 가르치게 하였다.,
“앞으로 찔러!”
민병들은 상순의 명령에 따라 총창으로 앞으로 찔렀다.
“싸(杀)!)”
“옆으로 비껴 찔러!”
“싸(杀)!)”
한창 훈련할 때다.
현당위 조직부로 올라간 이계삼이 구위서기로 올라간 허영주와 함께 마을로 찾아왔다.
그는 몇 십 명 민병들을 훈련시키는 상순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허영주 서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상순은 당의 참 훌륭한 재목이요. 잘 배양하면 큰 짐을 질 수 있소.”
허영주 서기도 “그렇습니다. 머리도 총명하고 민병들을 통솔하는 능력이나 무기를 다루는 재간이나 다 대단하지요.”라고 칭찬했다.
상순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를 보자 훈련을 그만두고 민병들을 보고 “해산!” 하고 명령했다.
민병들은 땀을 훔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상순은 뛰어와 “안녕하십니까?” 하고 군례를 척 붙였다.
이계삼 서기는 “요긴한 일이 있어 왔소. 할아버지 있소?” 하고 물었다.
“예. 촌공소에 계십니다.”
상순의 대답에 이계삼 서기는 “촌공소에 가서 이야기를 하기요.”라고 했다.
“옛! 알았습니다."
이계삼 서기는 허영주 서기와 함께 촌공소에 들어가 병완을 만났다. 그들은 그간 마을 형편을 이것저것 묻고 나서 기준과 상순이 들어서자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사람마다 뜻이 다르고 갈 길이 다릅니다. 상순은 농사나 짓고 살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기준은 한심해 뭐라고 말하려는데 병완이 앞질렀다.
“상순은 총이나 다루면서 살면 좋을 겁니다.”
기준은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이계삼 서기는 병완 삼대 부자를 둘러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상순 동무는 전도가 유망한 간부 감입니다. 구당위와 현당위에서는 상순동무를 군정대학에 보내 학습시킬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상순은 어찌나 놀랍고도 기쁜지 몰랐다.
“감사합니다. 이서기, 허서기.”
그가 어찌 기쁘지 않으랴. 어려서부터 얼마나 공부하고 싶었던가. 그런데 소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자기를 당조직에서는 군정대학에 보낸다고 하지 않겠는가!
후에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장, 상장을 지낸 조남기 장군, 선후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을 지낸 조룡호 동지도 일찍 동북군정대학에서 학습하였었다. 그 동북군정대학에 상순이 학습하러 가게 됐다.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허영주는 상순을 높이 칭찬했다.
“상순동무는 총명해 한어도 잘하는데다가 군사재능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세에서 큰 짐을 지려면 정치와 문화 지식을 학습해야 합니다. 지식만 갖추면 상순동무는 큰 짐을 얼마든지 질수 있는 지도자로 될 수 있습니다.”
병완은 이계삼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고맙소. 이 서기, 허 서기, 우리 상순을 꼭 훌륭한 간부로 배양해 주오.”
기준도 기뻐 손'벽까지 쳤다.
“내 아비 구실을 제대로 못했소. 어찌 가난했으면 저 애가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소학교 문 앞에도 보내지 못하고 여덟 살부터 일을 시켰겠소. 공산당 덕분에 대학에 보낸다니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것보다 정말 더 기쁘오.”
그때 허영주가 기준을 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농망기에는 맏아들 상우를 보고 좀 도와달라고 하오.”
기준은 농사말이 나오자 그저 한숨만 후 내쉬었다.
병완은 기준과 상순을 보고 말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예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을 공부시켰다. 지어 자식 공부를 위해 목숨 같은 부림소마저 팔았느니라. 우린 농사일과 살림살이가 아무리 바빠도 상순을 꼭 군정대학에 보내 공부를 시켜야 한다.”
상순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꿇어앉았다.
“감사합니다. 내 공부하고 돌아오면 꼭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효성을 하고 당조직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일을 잘 하겠습니다.”
병완과 기준은 상순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 어쩜 군정대학 대학생이 다 나왔느냐?”
이계삼 서기는 상순의 손을 굳게 잡고 부탁했다.
“군정대학에 가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과 군사지식을 잘 학습하오. 중국에서 무슨 사업을 하든지 한어공부를 잘 해야 하오. 상순동무는 한어 통역능력이 대단하기에 잘 배울 수 있을게요.”
상순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꼭 이 서기와 허 서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학습을 잘하겠습니다.”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는 병완과 상순과 함께 마을의 목책과 갱도, 지어 전호까지 쭉 돌아보고 돌아갔다.
이튿날 동녘하늘이 푸름이 밝아왔다.
상순은 일찍이 일어나 우물에 가서 드레박을 왕왕 잣아 올려 우물을 두 초롱에 담아 들고 씨엉씨엉 집 부엌으로 들어왔다.
명옥은 몸이 남산만한 해 가지고 돌이 지난 둘째딸 금숙을 업고 밥을 짓다가 물독에 물을 붓는 상순을 보고 말렸다.
“여보, 가는 날까지 물을 긷겠소? 내 천천히 긷지 않을라고.”
상순은 무던한 아내 명옥을 건너다보면서 “이렇게 가면 언제 올지 모르오? 이제껏 집 안 일을 하지 않아 아버지와 당신 고생 많았소.”라고 했다.
명옥은 바가지로 남편이 길어온 물을 퍼서 가마에 쏟아 넣었다.
가마 안에서 김이 확 풍겨 오르며 “챙―” 하고 소리 났다.
그녀는 바가지에 장을 떠 놓고 주물럭주물럭 주물러 물에 풀어 가마 안에 부었다. 그리고 칼 모태에 감자를 돔박돔박 썰어 넣고 감자장을 보글보글 끓였다. 군정대학으로 가는 남편에게 오랜 만에 감자장을 끓여 대접하려는 것이었다.
명옥이 밥을 짓는 새 상순은 물독에 물을 길어다 꼴딱 채워 놓고 장작도 가득 패 쌓아놓았다.
아침밥상에 마주 앉은 상순은 아버지를 보고 무거운 입을 뗐다.
“아버지께 무거운 농사일을 다 떠밀어 놓아서 미안합니다. 이제 공부를 다 하면 마을에 돌아와 효성을 다 해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다.
기준은 “집 근심은 하지 말고 공부나 잘해라.”라고 단마디로 말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상순은 위방 앞에서 낫을 가는 아버지에게 인사한 후 이불 짐을 둘러메고 마을을 떠났다.
명옥은 금숙을 업고 숙자의 손을 잡고 함흥 촌 동구 밖에까지 따라 나와 바래였다. 상순은 숙자와 금숙의 얼굴에 뽀뽀 해주고 진수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명옥은 돌아서며 저고리 동전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명옥이 텅빈 집에 돌아오니 이학수가 돌도 안 된 주봉을 안고 동냥젖을 먹이러 왔다.
“주봉아, 어서 오라. 배고팠니?”
명옥은 두 말 없이 주봉을 받아 안아 젖을 물리었다.
“에구, 어미 없는 주봉이 숙자 엄마 아니면 굶어 죽겠소.”
명옥은 금숙과 주봉을 한쪽 젖에 하나씩 물리고 젖을 오물오물 빨아 꼴깍꼴깍 넘기는 주봉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주봉의 아버지, 근심하지 마오. 주봉이 우리 금숙과 함께 한쪽 젖씩 먹으면 되오.”
학수는 두 손을 비비면서 속심의 말을 했다.
“아예 주봉을 양아들로 삼아 주오. 혹시 이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아들이라도 있으면 든든하지 않소?”
명옥은 주봉을 내려다보면서 “그러면야 얼마나 좋겠소?”라고 했다.
“그렇게 하오. 이제부터 주봉은 이 집 숙자 엄마 양아들이오.”
학수는 그래야 젖을 먹이기 시름이 놓이는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
명옥은 주봉을 쓰다듬어주면서 “그래지 않아도 내가 어련히 젖을 먹여주지 않으리라고 그러오? 어미 잃은 얘가 얼마나 불쌍하다고. 내 양아들 주봉을 친아들처럼 젖을 먹여 잘 키워줍지. 근심 하지 마오.”라고 했다.
그제야 학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편 군정대학 개학식 날이었다. 각지 당 조직에서 추천돼 온 백여 명 청년들이 학교 마당에 앉았다.
주석 대 위에는 주보중 장군과 주덕해 동지 그리고 군정대학교 책임자가 앉아 있었다.
먼저 주보중 장군이 연설했다.
“동지들, 동지들은 연변 각지에서 온 우수한 학원들입니다. 동지들은 오늘부터 군정대학에서 군사를 배울 뿐만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을 학습하여야 합니다. 맑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으로 자기 두뇌를 무장하고 군사이론도 학습해 우리 당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골간으로 돼야 합니다…
동지들은 국민당반동파를 물리치고 우리 해방구와 고향을 지킬 신성한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각종 학습임무를 원만히 완수해야 합니다. 동지들,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학원들의 우렁찬 대답소리는 장내를 떠나갈듯이 우레와 같이 울렸다.
뒤이어 연변전원 공서 주덕해동지가 연설했다.
캡을 쓴 그는 연설에서 먼저 국민당과 공산당 양당 관계와 해방전쟁 형세를 이야기 하고나서 군정대학의 학원들은 우리 중국공산당의 골간으로서 중대한 역사 사명을 짊어지고 우리 당의 사업을 한몫씩 감당해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다른 학원들은 모두 목책에 적는데 상순은 한자를 모르다나니 머리에 기억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상순이네 반장 박우성은 영월구에서 온 학원이였는데 한어를 꽤나 잘했다.
그는 개학식이 끝나자 상순을 조용히 찾아 말했다.
“상순동무는 어째 장군과 지도자의 연설을 필기하지 않소? 필기장도 없지 않소?”
그러자 상순은 덜미를 긁적거리면서 “급급히 오다나니 필기장과 연필을 준비하지 못했소. 난 이 머릿속에 다 기억해 두었소.”라고 대답했다.
박우성은 희죽이 웃으면서 “머리가 아무리 총명해도 어떻게 다 기억해 두겠소. 이후엔 꼭 명심해 중점을 적어두오.”라고 하더니 호주머니에서 필기장과 연필 한 대를 주었다.
“옛소. 이걸 쓰오.”
“아니, 인차 시내에 나가서 사겠소.”
허나 박우성은 “공산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혁명동지들은 네 것 내 것 따지지 말아야 하오. 쓰라니까.”라고 하며 밀어주었다.
상순은 “감사하오.”라고 했다.
상순은 군사과에서는 사격이나 투탄이나 실력이 뛰여났다.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는 시간이면 상순은 대머리를 수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도정신해 들었다.
그러나 선생은 교탁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고 “상순동무, 동무는 왜 시간이면 잠을 자오?”라고 지적했다.
“예?!”
상순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자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숱한 학생들은 모두 상순을 돌아다보았다.
“왜 필기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소?”
상순은 진심으로 “도정신해 듣느라고 눈을 감고 있었지 자느라고 감은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
선생은 자기 지적을 듣지 않고 딱딱 들이대는 것에 불쾌하여 상순을 버릇을 떼려고 들었다.
“상순동무, 오늘 강의한 사회주의 이론을 한번 얘기해 보오.”
그러자 상순은 그 시간에 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이 염불하듯이 줄줄 이야기했다.
학원들은 선생의 강의를 또다시 한번 쭉 듣는 것 같아 입을 딱 벌렸다.
선생은 상순의 “강의”에 흠잡을 데 없는 것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에서 혀를 끌끌 차며 웅성거렸다.
"기억력이 대단해!"
"대단히 총명해!"
“조용하십시오.”
선생은 손으로 교탁을 두드렸다.
“상순동무, 몰라 봐서 죄송하오.”
선생은 먼저 자세를 낮추더니 상순을 꼬챙이에 꿰여 쳐들었다.
“허나 상순동무는 이렇게 중요한 이론,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맑스 -레닌주의 진리를 필기장에 적어두지 않았다는 것이 참말로 유감스럽습니다. 이후에는 꼭 명심해 적도록 하시오.”
상순은 대머리를 숙이면서 나직이 “예.” 하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실 말해 그는 소학교 문에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근근이 서당 방에서 천자문에 언문을 배우네 마네 한 그가 선생님이 강의하는 것을 조선어로도 따라 적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난생처음 듣는 숱한 정치경제학 술어를 기억할 수도 따라 적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필기하느라고 하면 강의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고 강의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노라면 필기를 따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아예 필기는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을 감고 골똘히 들으면서 기억해 두려고 했던 것이다.
선생의 비평을 받은 후 상순은 애써 필기하느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따라 기록하지 못하고 대충 중요한 부분만 띄여가면서 단어식으로 적고 동그라미와 밑줄을 쳐놓았다. 그러다나니 시간에 뭘 들었던지 아리송했다.
상순은 그 날 강의가 끝나자 선생을 찾아가 자기 고충을 말했다.
그러자 선생은 도리머리 질 했다.
“진수해구 당위와 현 당위에서는 어떻게 소학교 대문도 나오지 못한 동무를 추천한단 말이오? 맑스- 레닌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은 최저한도로 베껴 두었다가 잘 복습해야 하오. 헌데 동무는 필기를 하지 못하니 이 다음 기층에 내려가서 어떻게 사회주의 이론을 선전하겠소?”
상순은 불쑥 한마디 했다.
“이 다음 기층에 가서 꼭 선생님이 강의한대로 선전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재료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비 티 나는 선생은 대뜸 기분이 상해했다.
“동무는 아직도 그 소리요? 어떻게 하나 명심해 필기를 하오. 이제부터라도 조선어와 한어를 잘 배우오. 그래야 이담 사업할 때 자료도 쓰고 연설문도 써가지고 사업하지.”
“예, 알았습니다. 명심해 한어와 조선어를 배워 필기하겠습니다.”
선생은 멀쑥하게 생기긴 하였지만 문화지식이 차한 상순이가 답답하여 도리머리 질 했다.
상순은 숙사에 돌아와서 옆에 있는 반장 박우성과 자기 고충을 말했다.
그러자 박우성은 상순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너무 근심하지 마오. 동무는 선생의 강의내용을 머리에 다 기억하지 않았고 뭐요? 오늘 시간에 우린 몽땅 놀랐소. 그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였소. 정말 총명하더구먼. 필기야 어떻게 불시에 따라 하겠소? 시간에 계속 동무가 기억하기 좋은 방법대로 머리에 기억하오. 그리고 필기는 차차 조선어와 한어를 잘 배운 후에 하오.”
상순은 너부죽하게 생긴 박우성 반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헌데 선생님은 노여워하던데. 시간마다 어떻게 선생님의 지적을 받으면서 공부하겠소?” 하고 근심했다.
“근심하지 마오. 선생과는 내 말할게. 다신 시간에 동무를 지적하지 말고 눈을 감아달라고. 선생님도 동무의 문화수준을 안 후에는 다른 동무들처럼 높은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거요. 지금은 강의시간에 먼저 머리에 기억해 두는 것을 중점에 두오. 그리고 필기는 중점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이거나 새로운 중점단아를 적어두오. 그리고 숙사에 돌아와서 내 필기장을 보고 다시 베껴 넣으란 말이오.”
그 말에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게 그럴 듯 하구만.”
그날부터 상순은 정치이론 선생님의 강의시간이면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도 중점단어나 구절을 필기장에 적어 넣었다. 그러자 선생님도 별로 상순을 눈에 거슬려 하지 않았고 상순은 강의내용을 기억도 제대로 하고 필기능역도 눈에 뜨이게 늘어 갔다.
상순은 사회공작을 하려니 자기가 공부를 못한 것을 통탄할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모를 정치경제학 새 술어를 적어두었다가도 하학하여 시간만 있으면 박우성에게 묻거나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그리고 숙사에서 박우성에게서 짬짬이 한어와 조선어를 익혀나갔다. 그리하여 상순의 문화지식과 정치이론 수준은 눈에 뜨이게 높아 갔다.
상순은 다른 학원들에 비하여 한어회화수준이 높았기에 우세도 있었다. 사실 말해 당시 조선에서 이주해왔거나 조선마을에서 살아온 대부분 학원들은 한어수준이 낮았다. 허나 상순은 즉석에서 조선말 연설을 듣고 한어로 통역하고 한어 연설을 듣고 즉석에서 조선말로 통역할 수 있어 군정대학에서 소문이 높았다.
군정대학에서 시험 칠 때 상순은 과목마다 만점을 맞았다. 선생은 다른 학원들과는 달리 서면시험을 친 것이 아니라 따로 불러놓고 구두로 시험을 쳤다.
선생은 상순을 교무실에 불러다 구두로 맑스- 레닌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을 시험 쳤다. 그런데 상순은 선생의 질문에 얼음 우에 바가지를 밀듯이 줄줄 대답했다. 똑 마치 선생님이 강의하는 것 같았다.
숱한 이론 선생님들은 총명한 상순에게 감탄의 눈길을 보내며 혀를 끌끌 찼다.
담당 이론 선생님은 상순의 이론학습필기장을 가져오라고 번져보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좋소. 그간 애썼구먼. 명심하오. 동무가 아무리 총명해도 사람의 기억력은 제한돼 있소. 세월이 지나면 많은 혁명이론은 잊어진단 말이오. 이렇게 필기장에 중점이라도 적어두면 금후 기층사업을 할 때 기억나지 않으면 다시 들춰보고 써먹을 수 있소. 이후에도 시간을 타서 꼭 한어와 조선어 공부를 잘 하오. 그래야 훌륭한 지도일군으로 될 수 있소.”
상순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나서 엄숙하게 결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교육이 없었더라면 전 문화지식 공부를 소홀히 할 번 하였습니다. 꼭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명심하고 한어와 조선어를 힘써 공부하겠습니다.”
교무주임과 선생님들은 상순이 교무실에서 나간 후 칭찬이 자자했다.
“상순동무는 참말 총명하고 유망한 학원이오.”
“한어통역도 잘하고 언변도 좋지. 훌륭한 지도일군 재목이오.”
후에 군정대학에서 대회를 열고 지도자들이 한어로 연설할 때면 상순을 내세워 당장에서 조선족학원들한테 조선말로 통역해주게 했다.
상순은 우수한 성적으로 군정대학을 졸업했다. 상순은 군정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가 진짜 전쟁터에서 기관총을 쥐고 일본 놈들이나 국민당 토비들과 싸울 때보다도 더 힘들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학습을 마치고 나니 눈앞이 환해지는 감이 났다. 앞으로 빈부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주의 나라, 압박과 착취가 없고 모든 사람들이 땅을 똑같이 나눠가지고 있는 힘껏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살기 좋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목표가 뚜렷하게 안겨 왔다.
5. 영월구공안국준비소조
군정대학 졸업식 때 연변전원공서 전원 주덕해동지가 연설했다.
“동지들, 지금 우리 동북민주연군은 이미 인민해방군에 편성됐습니다. 영용한 중국인민해방군은 교하의 적을 격퇴하고 길림을 해방했으며 장춘과 심양, 할빈의 몇 십만 대군을 독 안에 든 쥐처럼 포위하고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동북이 해방되고 전 중국이 해방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주석의 지시대로 동북에 공고한 근거지를 건립해야 합니다. 지금 전쟁은 가장 관건적인 형세에 직면하였습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경각성을 높여 해방전쟁의 승리 열매를 보호해야 합니다…”
뒤이어 주덕해 동지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동지들은 군정대학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 그리고 군사지식을 배웠습니다. 이제 동무들은 당이 가장 수요되는 지방에 가서 기층해방구 토지개혁사업과 치안사업을 잘 해야 하겠습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골간이기에 당에서 맡겨준 사업을 훌륭히 하리라고 우리 당에서는 믿습니다…”
주덕해동지의 연설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졸업식이 끝난 후 상순은 교무장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주임은 캡을 쓰고 앉아 있는 분을 소개했다.
“상순동무, 인사하오. 연변전원공서 전원 주덕해동지오.”
상순은 허리를 굽히면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드렸다.
주덕해는 상순과 악수를 나누면서 “앉소.”라고 하더니 상순의 아래 우를 훑어보더니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들과 교무주임한테서 동무 말을 들었소. 동무는 어려서부터 항일유격대에서 일제 놈들과 싸웠고 민주연군 기관총 반 반장으로부터 련 지도원까지 담임해 토비숙청에서도 용감히 싸웠지. 지방당조직의 수요에 의해 민주련군 영장도 그만두고 진수해구 민병영 영장을 했다는데 대단하오. 벼슬도 따지지 않는 당원의 고상한 품격이 고귀하오. 이번 군정대학 학습을 거쳐 동무는 높은 이론수준도 갖췄소. 연변전원공서에서는 동무를 영월구에 보내 현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을 맡기기로 결정하였소. 영월구는 장춘과 길림, 교하를 거쳐 우리 연변에 들어오는 군사요충지요. 영월구에는 국민당 특무들이 창궐하게 지하활동을 하는 곳이요. 영월구의 치안사업은 우리 전 연변의 안전에 아주 중요하오. 때문에 현 공안국을 군사요충지인 영월구에 세우기로 하였소. 동무 의견은 어떻소?”
상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조금 주저했다.
“당 조직의 신임에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소학교 문도 못 나왔고 치안사업을 해 본적이 없어 잘 할 수 있겠는가는 것이 근심될 뿐입니다.”
주덕해 동지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동무는 잘 할 수 있소. 뭐나 어찌 처음부터 경험이 있겠소. 사업실천가운데서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서 일해 나가야 하오. 또 서면지식만 지식인가 하오? 동무 머리는 마레주의 모택동 사상으로 잘 무장됐다는 걸 아오. 허허허.”
이전에 최낙현 퇀장이 하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었다.
상순은 이전에 최낙현 퇀장이 자기를 보고 영장을 하라면서 그렇게 간곡히 부탁한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여 이번에는 그런 유감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상순은 똑바로 서서 “당 조직에서 맡긴 치안사업임무를 꼭 잘 완수하겠습니다.”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좋소.”
교무장은 그 자리에서 영월구 당위에 보내는 소개 신을 써서 상순에게 주었다.
“이 소개신을 가지고 영월구 당위에 가오. 상순동무를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으로 파견하니까. 공안일군을 모집해 공안국을 세우고 국민당 특무들을 몽땅 숙청해버리오. 두 동무를 조수로 보내는데 데리고 가오. 허만호동무는 용정에서 온 당원이고 김창남동무는 태평구에서 온 당원이요. 두 동무 다 민병 연 연장을 하던 동무들인데 공안사업을 잘 할 수 있는 동무들이오. 허만호동무는 대성중학교를 졸업한 동무요.”
“예, 알았습니다.”
주덕해동지는 일어나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아주면서 신신당부했다.
“현공안국과 영월구당위는 평단위오. 그러나 가서 꼭 영월구 당위의 책임자들과 관계를 잘 처리하고 모든 사업을 당지 당위와 잘 토론하여 하오. 수고하겠소.”
상순은 두발꿈치를 딱 붙이고 오른 손을 들어 군례를 척 붙였다.
“예, 수장동지, 꼭 노력하겠습니다.”
상순은 가슴이 한껏 부푼 채 소개신을 깊이 간직하고 숙사에 돌아오자 이불 짐을 지고 떠나가려고 서둘렀다.
그러자 박우성은 상순에게 “어디에 배치 받아 가오?” 하고 물었다.
상순은 별로 개의치 않고 “영월구에 공안국을 세우러 가오.” 라고 대답했다.
“그래? 내가 가려고 해도 보내지 않고 왕청 같은 데로 보내더니.”
상순이가 보니 박우성의 눈빛이 이상했다.
“영월구가 그렇게 좋소? 그럼 우에 가서 말해 반장과 나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박우성은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 아니오. 우린 조직의 결정에 복종해야 하오. 내 고향이 영월구여서 하는 말이오.”라고 했다.
박우성은 원래 제정 때 일본 나고야에 유학까지 갔다 와서 일어와 한어, 영어까지 아는 먹물이 꽉 찬 진짜 선비였다. 그러나 군사에 대해선 문외한이여서 상순의 상대가 아니였다.
상순은 말수가 적은 편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한어를 배워준 작은 선생이나 다름없는 박우성이 뭐라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
그는 속으로 박우성 반장이 영월구에 가면 고향 형편을 잘 알아서 좋을 것을 그랬다고 생각됐다. 허나 조직의 결정은 어찌 할 수 없었다.
상순이 만호와 창남을 데리고 기차에 앉아 영월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숨도 돌릴 새 없이 영월구 당위 사무실로 찾아갔다.
당위 사무실은 옛날 일제 때 일본 파출소 자리 옆에 새로 지은 이층집에 있었다. 이층에 올라가 당위 서기 사무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뜻밖에 토비숙청 때 허백호 연장이 있지 않겠는가!
“허 연장! 그간 안녕하십니까? 전선에 나가지 않고 여기 계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허백호 연장도 몇 해만에 만난 수하를 보고 기뻐했다.
“아니, 우리 기관총반장, 반갑소.”
허백호는 상순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끔 곁눈질하더니 한마디 툭 내쏘았다.
"상순동무, 동문 여기 아서두 삼도만 때 상을 하지 마오. 아래 위도 없이 상관 앞에서 너덜대고, 제 설 자리도 모르고 납뜨지 말란 말이오. 난 여기 영월구 취고지도자 당위 서기란 말이오.
상순은 당년의 허연장이 영월구 당위 서기라는 것을 알고 실례했음을 느꼈다.
“허 서기, 서긴줄 몰라서 그만, 미안합니다. 방조를 많이 받아야 하겠습니다.”
상순은 소개신을 꺼내 보였다.
허백혼느 소개신을 대충 보네하고 사무상 한쪽에 훌 쥐여뿌렸다.
상순은 뒤에 선 만호와 창남을 인사시켰다.
“허 서기, 이 두 동무들은 모두 민병연 연장을 하던 동무들입니다. 공안국 사업을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오, 그래. 환영하오. 자, 자리에 앉소.”
때는 겨울인데 당위 서기 사무실은 난로를 피운 것도 꽤 싸늘했다. 상순은 장작을 난로에 몇 개 더 넣었다.
허 서기는 상순을 보면서 평급인 것도 상관이 수하를 대하듯 했다.
“ 동무들은 알아야 하오. 우리 영월구 시내에는 조선족이 위주로 살고 주변 삼림 속에는 산동과 하북 지구에서 들어온 한족들이 많이 살고 있소. 그 한족들 속에는 관내에서나 기타 지역에서 도망쳐온 친일지주거나 국민당 군이 파견해온 특무들도 혼입해 있을 수 있소. 그 놈들을 샅샅이 수사해내 숙청해 버려야 하오. 동무들의 어깨가 아주 무겁소.”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호와 창남은 일어나기까지 했다.
“꼭 적들을 몽땅 숙청해 버리겠습니다!”
허 서기는 그들을 앉으라고 손짓하고 사무상에 앉더니 뒷말을 이었다.
“지위에서 훌륭한 동무들을 보내겠다더니 상순동무를 보낼줄은 몰랐소. 그러나 저러나 이젠 시름 놓겠소.”
뒤이어 그는 그들 셋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구 당위의 동지들에게 일일이 인사시키고 나서 바깥으로 나가 옆의 일제 때 파출소 자리 앞으로 갔다.
그는 상순이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벽돌집은 옛날 일제 때 파출소 자리오. 이 집에 공안국을 차리고 사업하오.”
“예.”
상순은 허 서기와 악수를 하고 갈라진 후 인차 창남과 만호 두 동무를 데리고 공안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온 하루 사무실부터 정리하고 난로를 놓고 장작을 해다 패 난로에 불을 피워 놓았다.
상순은 한참 저물어 간 창밖을 내다보며 이튿날 해야 할 사업을 궁리하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하늘에서 눈사태가 무너져 내리듯이 큰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상순은 만호와 창남과 함께 빵 쪼각이나 먹네 하고는 밤이 깊도록 공안일군 모집과 국민당 잔여세력과 악질지주들을 청산할 문제, 치안사업 계획을 토론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상순은 영월구 당위 서기 사무실로 찾아갔다.
허백호 서기는 희죽이 웃으면서 사무상 앞의 자리를 가리켰다.
“일찌기 왔구먼. 그래 사업계획이 나왔소?”
“예. 초보적으로 계획이 나왔는데 구 당위에서 많이 지도하고 도와주십시오.”
상순의 말에 허 서기는 옆에 와서 나란히 앉았다.
상순은 단도직입적으로 계획을 말했다.
“현 당위에서는 우리를 영월구에 보내 공안국을 세우고 치안사업을 하라고 파견하였습니다. 먼저 공안일군들을 모집해야 하겠습니다. 제 생각엔 전 현 민병 패장과 연장들을 조직해 군사훈련을 하면서 골라내야 할 거 같습니다. 친일주구와 국민당 잔여세력, 악질지주들을 숙청하려면 군중들을 발동하여 그런 놈들을 검거, 적발하는 군중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허 서기는 머리를 끄덕였다.
“음, 참 좋소. 동무 사업계획대로 하오. 내일 우리 구 민병 패장과 연장을 다 불러 오지."
"감사합니다."
상순도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제가 이계삼 서기와 허영주 서기를 통해 진수해 등 전 현 민병련장을 군사훈련에 보내달라고 하겠습니다. 진수해구는 제가 있던 곳이기에 민병련장들도 잘 압니다."
허백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 눈이 와서 어떻게 군사훈련을 하겠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악렬한 환경에서 사람을 더 잘 고찰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허 서기는 상순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상순동무는 계획 있게 사업하는데 좋소. 이후에는 뭐나 구두로만 사업토론을 하지 말고 서면계획서를 작성한 후 사업하기를 바라오.”
그 말에 상순은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예, 알았습니다. 지금 돌아가서 재료를 작성하겠습니다.”
허백호 서기는 사무실에서 나가는 상순을 보고 희죽이 웃는 것이었다.
상순은 돌아오자마자 만호와 창남에게서 글자를 물어가면서 필기장에 연필로 한어와 조선어를 섞어 사업계획을 몇 줄 작성했다.
상순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오전이 다 가서야 사업계획을 다 작성해 허 서기에게 가져다 바쳤다.
허 서기는 상순이 삐뚤삐뚤하게 쓴 크고 작은 글씨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됐소. 처음부터 어떻게 다 잘 하겠소. 차차 일하면서 배우면 되오.”
상순은 허 서기가 별로 만족해하는 것 같지 않아 사무실에서 나오면서도 속이 거뿐하지 못했다.
이튿날 전 현 민병연장 70여명이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 앞에 모였다. 상순은 창만과 만호를 시켜 그들을 네 줄로 줄을 서게 했다.
허 서기는 그들의 반열 앞에 나서서 상순과 만호네를 돌아보며 우렁차게 말했다.
“오늘 나는 기쁜 심정으로 동무들에게 우리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동지들을 소개하겠소.”
그는 상순의 손을 쥐어 들면서 소개했다.
“이 동지는 영월구 공안국 준비소조 조장 김상순 동지입니다. 김상순 동지는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민병 연장 출신입니다. 일찍 삼도만 토비 숙청전투 때 우리 련 기관총 반 반장입니다. 그때 난 상순 조장의 상관 련장이였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허서기 수하구만."
"허서기 대단하오."
뒤이어 허 서기는 만호와 창남도 소개했다.
“만호동무와 창남동무도 민병연장 출신입니다. 이들은 모두 용정 은진중학교와 동북군정대학 졸업생들로서 지식이 많고 이론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여기저기서 또 웅성거렸다.
그때 창남이 한발 나섰다.
"허서기, 민병연장 여러분, 한가지 보충하겠습니다."
그는 상순을 가리키며 뒷말을 이었다.
"우리 김상순 조장은 민주련군 때 기관총반 반장으로부터 패장, 련 지도원을 했습니다. 영장을 하라는 걸 그만두고 진수해구 민병영 영장을 한 분입니다. 김상순 조장은 기관총 명사수일뿐만아니라 자동차, 탱크도 몰줄 압니다. 군사실력이 대단한 분입니다. 그는 탱크를 몰고 토비들을 족친 실전경험도 아주 풍부한 분입니다. "
그러자 연장들은 혀를 끌끌 찼다.
"참 대단해!"
"땅크까지 몰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허 서기는 창남을 아니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만호가 웨쳤다.
"아래에 김상순 조장으로부터 군사훈련 동원을 하겠습니다."
민병 간부들은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상순은 민병간부들의 앞에 나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지들, 우리 민주연군은 길림과 장춘과 심양을 이제 곧 해방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온 우리 연장들은 영월구 후방 군사골간들입니다. 우리 영월구는 연변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든든히 지키자면 이 곳의 친일주구와 국민당 잔여세력, 악질지주들을 몽땅 숙청해 치안사업을 잘 해야 합니다. 영월구의 치안사업을 위해 오늘부터 동무들은 군사훈련을 하게 됐습니다. 눈이 쏟아지고 날씨가 추운데 동무들은 훈련을 잘 할 신심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상순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가슴을 쑥 내밀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껏 민병들을 지휘해온 동무들이 꼭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사훈련을 잘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군사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뒤이어 상순은 민병 골간들을 지휘해 대열연습으로부터 시작해 사격, 격투 등 훈련을 했다.
연 며칠 도시락을 싸가지고 군사훈련을 하면서 상순은 몇몇 골간들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영월구 천용구라는 청년이 날래고 군사실력이 있고 뭐나 시키면 땡 소리 나게 완수하는 것이었다.
보름 동안의 군사훈련을 거쳐 상순은 준비소조의 만호와 창남과 내부로 토론한 후 70여명 민병골간 가운데서 천용구 등 10여명 민병골간을 남겨 계속 고찰한 후 최종 공안일군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상순이 허 서기한테 명단을 작성해 가지고 가니 대뜸 이마의 정맥마저 퍼렇게 번져 지며 펄쩍 뛰었다.
“상순동무, 동무는 너무 독단독행하는구먼. 어찌 공안일군을 구당위 서기와 토론도 하지 않고 정한단 말이오. 동무는 무슨 일이나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급급히 해재끼더니 공안국을 세우는 일은 왜 그렇게 느리오? 보름동안 지내 봤으면 됐지 질질 끌어서야 언제 공안국을 세운단 말인가?! 저 안보촌의 허영호 연장도 공안일군을 하기 적합한 동문데 어째 빠졌소?”
상순은 옛 상관이건만 그 호랑이 같은 호령소리에도 얼굴색 한 점 흐트러짐이 말했다.
“지금 허 서기와 토론하러 온 게 아닙니까? 허 서기 명단을 본 후 비준하십시오. 허 서기 추천한 허영호동무를 다시 조사해 보겠습니다. 군사훈련만 해서야 어찌 공안사업을 할 동무들을 제대로 골라낸다고 그럽니까?”
허백호 서기는 호랑이처럼 펄쩍 뛰며 씩씩거렸다.
“동무, 지금 누구와 대꾸질이오? 허영호를 넣으라면 넣을 게지.”
상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공안국과 구당위는 평급 단위입니다. 군관제를 실시하는 당전 전시에는 현 공안국이 구지방당조직보다 반급 높다는 걸 아십시오. 그래 저는 자기 견해도 말하지 못합니까? 허 서기는 당의 민주 집중 제 조직원칙도 모릅니까?”
그 말에 허 서기는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책상을 꽝 쳤다.
“동무, 감히 나를 뜨겠소? 보자보자 하니 버릇없이 노는구먼. 이전에 삼도만 토비숙청전투 때도 최 퇀장한테 나를 고자질해서 꼴을 먹게 했지. 그 덕에 난 최 퇀장한테 잘 못 보여서 장춘해방전투에도 참가하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이렇게 다리 부러진 노루처럼 지방에 물앉았단 말이야. 동무 뭐 당장 공안국 국장이라도 된 거요? 그까짓 조장 돼가지고 우쭐거리긴? 흥, 주의하라고. 사람이 옛 상관을 존중할 줄도 모르면 어떤 끝장을 보게 되는 줄도 알아야지. 흥!”
상순은 날을 세우려다가 말았다. 그의 귀전에는 주덕해 동지와 교무주임이 떠나기 전에 영월구 당위와 관계를 잘 처리하라던 말이 귀선을 때렸던 것이다.
그는 억지로 참으면서 부드러운 말로 말했다.
“허 서기, 미안합니다. 제가 공작경험이 없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후에는 주의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울뚝밸이 있는 상순으로서는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허나 허 서기는 스스로도 속을 너무 번져 보이는 것 같아 어조를 좀 바꿨을 뿐 계속 잔소리를 했다.
“자네가 영월구 정황을 더 잘 알겠는가? 영월구에 탯줄을 묻은 내 말을 좀 들으라고.”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는 허 서기를 보고 상순은 머리를 숙이며 당위 사무실에서 훌 나갔다.
상순은 공안국 준비소조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의 뒤로 차가운 바깥바람이 김처럼 서리서리 쓸어 들어왔다.
그는 눈보라치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성이 나 씩씩거리며 욱 치미는 밸을 겨우 참아냈다.
이윽고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창남과 만호를 데리고 안보 촌으로 가서 민병연장 허영호를 찾았다.
“김 조장이 어떻게 돼 왔습니까?”
인사를 하는 허영호는 작달막한 키가 첫눈에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허나 허백호 서기가 추천한 사람이기에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허영호의 집은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이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본 놈들의 포위토벌 때 비참하게 살해됐고 어머니는 다리를 살짝살짝 절고 있었다. 허영호의 출신은 빈고농이여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힘도 쓸 것 같이 못해 마음에 걸렸다.
(조 작달막한 게 어떻게 민병 연장으로 됐을까?)
상순은 영호네 집에서 나와 촌장을 찾아가 허영호를 조사해보았다.
박위훈이라고 부르는 촌장은 상순에게 “허영호는 품질이 좋소. 일본 놈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애기에 애증이 분명하고 공산당을 열애하고 충성할 것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치안사업을 하자면 힘깨나 써야 하겠는데 덩치가 작아서 근심됩니다.”라고 하자 박 촌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영호는 덩치는 작아도 보기와는 다릅네. 전번에 영월구 씨름대회에서 우리 마을을 대표해 나가서 2등을 한 적도 있다오. 흥기촌의 천도깨비네 맏아들 천용구가 일등을 하고.”
그래도 상순이 미더워하지 않는 눈치여서 촌장은 목소리를 낮춰 “허영호는 허백호 서기의 사촌동생이오.”라고 한마디 덧보탰다.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만호와 창남과 눈길을 맞추고 촌장네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토론하고 일단 먼저 허영호를 영월구에 데려다 고찰해 보기로 하고 다시 허영호네 집으로 찾아 갔다.
그들은 집 울안에 들어서다가 때마침 집안에서 벼 마대를 안아내다가 수레에 싣는 허영호와 마주 띄웠다.
(아니, 저 작달막한 양반이 보기와는 다르게 힘꼴을 쓰는데.)
상순은 다가가면서 수레에 벼 마대를 쾅 내려놓는 허영호의 가슴과 팔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혀를 끌끌 찼다.
“키는 작아도 힘꼴을 꽤나 쓰는구먼.”
그러자 안에서 머리 하얀 어머니가 나오면서 말했다.
“금방 벼 마대를 양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나가는 걸 내가 말렸소. 힘을 믿고 그러다가 상하면 어쩌자고.”
“어디 한두 번 그랬다고 그럽니까?”
허영호가 하는 말에 상순은 마침 잘 됐다고 힘을 떠보기 싶어졌다.
“그래, 정말 양옆구리에 벼 마대를 안아 내 올만 하오?”
“예, 김 조장.”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허영호는 집안에 들어가더니 벼 마대 두 개를 양 옆구리에 끼고 그 좁은 문을 비비닥거리며 나오는 것이었다.
상순과 만호는 황급히 양쪽에서 벼 마대를 하나씩 받아 수레에 올리려고 했다. 허나 허영호는 기어이 혼자 수레에 척 올려놓았다. 별로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숨도 차서 헐떡거리지도 않았다. 영호는 숨도 돌리지 않고 벼 마대를 대여섯 마대를 실은 수레를 소처럼 끌고 정미소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영호 어머니는 수레 뒤에서 따라오면서 “에이유, 난 저 애가 힘을 믿고 어찌나 날치는지 허리라도 상할 까봐 맨날 근심이라오. 저 애를 믿고 사는데 상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살겠소?”라고 했다.
그날 오전 상순이네는 영호를 도와 정미소에서 벼를 찧어 집에 실어다 주고 허영호를 데리고 영월구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영호가 생각 밖으로 사양할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내 영월구에 가면 우리 엄마는 누가 모십니까? 난 안보 촌에 있으면서 민병들을 영솔해 토지개혁을 하겠습니다. 어디서나 엄마를 잘 모시면서 혁명을 하면 한 가지 아닙니까? 딱 공안일군이 돼야 혁명을 합니까?”
상순과 창남이 아무리 설복하려고 해도 허영호는 듣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상순과 창남, 만호는 할 수 없이 영월구로 돌아왔다.
상순은 허백호 서기를 찾아가 안보 촌에 갔던 정황을 회보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허 서기, 미안합니다. 작달막한 허영호 연장이 씨름 2등까지 한 힘장사인 줄 몰라 봐줘 정말 미안합니다. 우린 공안일군으로 채용하려고 하는데 허 연장이 오지 않으려고 합디다.”
허백호 서기는 희죽이 웃더니 “그 앤 김조장이 키 작다고 자기를 깔본다고 삐진 거 같소. 내 가서 설복해보지. 허허허.”라고 했다.
정말 오후에 허백호 서기가 가더니 영호를 데리고 와서 상순에게 인사시켰다.
“김상순 조장의 밑에서 일을 잘 해라.”
“옛!”
영호는 상순에게 군례를 척 올렸다.
“김 조장,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허 서기는 영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이후에 숱한 사람이 모인 데서 절대 형님이라고 하지 말라. 남들이 우리 관계를 다 알면 이후에 네 발전에 불편해진다. 알만 하니?”
영호는 납득되지 않아 “형님을 형님이라는데 어쨌단 말이오?”라고 하며 시끄러워 했다.
상순은 못 들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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