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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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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6)
2017년 08월 07일 16시 59분  조회:1622  추천:1  작성자: 김장혁






                                         

                 6. 동족상잔

       공포에 휩싸인 어두운 장막이 포화에 그은 해를 서서히 삼키더니 무서운 비명을 지르는 하늘에 아기별을 하나, 둘 낳기 시작했다. 천진란만한 아기별들은 동족끼리 피를 말리는 결투를 벌리는 전장을 내려다보고 깜짝 놀라 공포에 바르르 떨며 피로 얼룩진 먹장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무명고지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 멜로디에 뒤이어 성칠 연대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산악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리석은 괴뢰군 장병들아, 난 영용한 조선인민군 연대장 김성칠이다. 당신들의 연대장 김용천은 일찍 간도에서 나와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전우이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빨갱이었다. 그래 그에게 속아 우리와 싸워 볼 테냐? 우린 다 같은 피가 흐르는 동족이다. 진정 평화를 희망하는 정의적인 사람들은 동족의 피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총부리를 동족에게 겨누겠는가? 총부리를 당신들을 대포 밥으로 내몬 미제 놈들에게 돌려라! 남조선 인민들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려는 미제 양키놈들과 싸우라!”

성칠의 말소리를 확인한 이병수는 망원경으로 무명고지를 올려다보았다.

조명탄을 대낮같이 밝힌 환한 무명고지 절벽아래 지휘소에 확실히 성칠 삼촌이 고음확성기 옆에서 고함치는 모습이 보였다. 두번 다시 보아도 김성칠 삼촌이 틀림없었다.

이병수 대대장은 권총을 쥔 채 용천 연대장한테 돌아왔다.

“김 연대장, 성칠이 508고지에 있다더니 진짜 저게 뭔가요? 진짜 삼촌과 총을 맞대고 죽기내기로 싸워야 해요?”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어리둥절해 용천 연대장과 병수 대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걸음도 전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흥! 빨갱이 놈들의 이간책이 참 고명하구나. 대대장까지 전의를 상실하다니. 이걸 어쩌노(어쩌지)?”

용천 연대장은 병수 대대장과 웅성거리며 몰려오는 병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도 몰라, 왜 이북과 싸워야는지.)
     용천은 자기 피 묻은 손을 들어 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 악독한 손으로 하나 밖에 없는 사촌동생 칠백의 옆구리에 총칼을 박았다. 한철주 놈이 동생 가슴에 총을 쏘는 걸 뻔히 보면서도 난 멍청히 서 있었다. 동생한테 총을 쏜 경호원을 아직도 내 곁에 살려두었다. 나도 사람인가?)
      그는 무명고지를 바라보며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제 또 성칠 형과 총칼을 싸워야 하는가?  성칠 형은 내가 명천에서 유격대에 끌어들인 항일유격대 전우가 아닌가. "
     이렇게 중얼거리는 용천의 눈 앞에는 눈보라치는 장백산 기슭 원시림에서 성칠과 함께 일제와 최후격전을 벌리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어깨겯고 장백산 협곡 근처 갱도에서 일제와 싸우다가 포위됐다. 그들은 두개 소조로 나뉘여 갱도에서 포위를 돌파해나갔다. 그후 서로 생사를 모르고 갈라졌다.
(건데 5년 만에 총칼을 맞대고 전쟁터에서 만나다니? 금방 이 더러운 손으로 사촌동생을 죽였는데 또 친형제와 같은 전우마저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래 성칠은 진짜 죽어야 할 대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이대로 성칠한테 장병들이 흔들려서는 목숨도 건지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다. 살기 위해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됐다.

용천도 할수 없이 고음확성기를 들고 무명고지를 향해 목청을 가다듬어 고함쳤다.

“성칠아, 나 용천이야. 이 빨갱이 놈아, 입방아를 그만 찧고 군인답게 한번 통쾌하게 붙어보자! 우리 한 개 사단과 세계 최강군 미군의 공군과 탱크대대가 이제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불바다로 만들 거야. 우린 이제 마천령을 넘어 두만강까지 돌진할 테야. 어서 투항들 하지 못해?!”

고지에서도 성칠 연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 항일유격대 출신 조선인민군은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네놈들이 정 미제 양키놈들의 강박에 못 이겨 강제로 전장에 끌리어 나온 걸 다 안다. 불쌍하구나. 허허허. 싸우겠으면 어디 덤벼봐라! 죽음이 네 놈들을 기다릴 뿐이야.”

기침소리가 좀 나더니 또 성칠의 걸걸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용천아, 우린 네가 죽었는가 했어. 오랜 만에 만나 기쁘구나. 허나 총을 맞대고 죽기내기로 싸우려고 전장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진달래가 네 아들 경주를 데리고 간도 함흥촌에 피신했다. 난 진달래와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보았다. 절대 오해하지 말라. 네가 죽은 줄 알고 그렇게 됐어. 이것도 운명의 조화야. 우리 둘 중 누가 살아남든 간에 진달래와 경수, 경주는 근심할 게 없다.”

“뭐라고? 진짜 내 아내를 빼앗아 살았어? 더러운 놈!”

무명고지에서 고함소리가 울렸다.

“용천아, 오해하지 말라. 내 진달래를 빼앗은 건 아니야. 네 죽은 줄 알고 그렇게 됐어.”
(뭐? 내 죽은줄 알고 그렇게 됐다고? 흥! 거짓말. 작작 구실을 대. 가령 내 죽어도 그치. 어찌 그럴 수 있어? 어찌 제수 데리고 살아 애까지 낳아? 내 눈 펀히 뜨고 살아 있는데. 내 얼마나 진달래를 찾았는데.  발바닥이 다 다슬어 떨어지게 조선 팔도 서캐훑듯 찾아 헤맸는데. 헛참, 기막혀!)

용천은 온 몸의 피와 분노가 꼭뒤에 치솟았다. 그는 확성기를 들어 고래고래 고함쳤다.

“개소릴 작작 쳐. 내 없는 틈에 남의 아내를 빼앗아? 양심 없는 승냥이놈아! 도적놈은 살려줘도 내 안해 빼앗은 놈, 형제 신의를 저버린 놈은 살려둘 수 없어!"
용천은 한참 모르고 있었다. 진달래의 첫사랑이 성칠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네 죽든 내 죽든 생사결투하자. 대갈통을 콩가루 내줄테야!”
    옹천은 격분해 거친 황소숨을 씩씩 내쉬며 무명고지 지휘부를 노려보았다.
   (내 손으로 짐승보다 못한 배신자를 처치할 테야. 저 놈이 죽으면 진달래가 나한테 돌아올 거야.)

용천은 돌아서서 권총을 빼들고 고함쳤다.

“돌격!”

허나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면서 전진할 궁리를 하지 않았다. 분명 성칠 연대장이 쓴 심리전술이 효과를 본 것이었다.

황차 이병수 대대장은 자기 오촌숙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제밀할, 성칠 삼촌이 무명고지에 없다더니. 나를 고의로 삼촌과 싸우라는 건가?)

“이 대대장! 뭐라고 꾸물거려? 빨리 무명고지로 전진하라!”

허나 병수는 권총마저 권총집에 찔러 넣으면서 용천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빨갱이들이 보낸 간첩 아냐? 돌격? 흥!”

용천은 성칠의 이간책에 놀아나는 병수가 답답했다.

이때 고음확성기에서 허 사단장의 명령이 울렸다.

“용천 연대장! 뭘 꾸물거려? 빨리 무명고지를 점령하지 못해? 이제 더 질질 끌면 총살할테다!”

"옛! 곧 진공하겠습니다."
(성칠 놈을 죽여야제이!)

용천 연대장은 권총을 휘두르며 제일 앞장서 돌격했다.

“자랑찬 나의 장병들이여, 돌격!”

장병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권총을 들고 돌격하는 용천을 따라 “와!” 고함치며 무명고지를 향해 돌격했다. 절벽에서 쏘아대는 기관총 소리와 함께 남조선 병사들은 산비탈에서 무리로 쓰러졌다.
       남조선 괴뢰군 장병들은 진짜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넘어 산마루로 전진했다. 진짜 피어린 발자욱마다 동족상잔의 참극이 밟히고 있었다.
     

조명탄이 하늘로 날아올라가 불길이 내뿜는 산비탈을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조명탄아래 무명고지에서 번쩍번쩍 번쩍이는 섬광이 몇이 되지 않는 것이 보이었다.

용천은 인민군이 몇 십 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명고지에서는 조선인민군 여전사의 노래 소리가 폭탄이 작렬하는 굉음 속에서 들릴가 말가 하면서도 용케도 간간히 가냘프게 울려 퍼지었다.

때마침 미군 전투기들이 편대를 지어 날아와 무명고지를 향해 맹렬히 폭격했다. 탱크들도 미친 듯이 무명고지를 향해 포격하며 덮쳐 올라갔다.

꽝꽝! 쿵! 쾅!

절벽이 쿵 무너져 내렸다. 돌과 흙덩이들이 무너져 내려 지휘소를 덮어버렸다. 여 전사 순희와 고음확성기도 파묻혀 버렸다. 다시는 여전사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순희!”

조철호는 흙덩이들을 마구 파헤치며 여 전사를 애타게 불렀다.

“순희! 순희!”

그가 순희를 흙더미 속에서 파냈을 때 그녀는 머리에서 뻘건 피에 흥건히 젖은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마지막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고 있었다.

“우린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해.”

“오빠, 고, 고향은 어, 어디?”

“영월구 차조촌이오. 동무 고향은?”

“안, 안보촌.”

“우린 한 고향 전우구만.”

“예~”

여전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결, 결혼했소?”

“결혼한 지 반년이오.”

“새, 색시 이름 ...?”

“김옥선-”

“오~ 이, 이름 고, 곱구나.”
"동문 결혼했소?"
여전사는 피를 머금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도리머리를 천천히 힘겹게 저었다.
그들은 피로 물든 손을 맞잡고 서로의 고향과 이름을 되뇌었다.

전쟁판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화에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혹시 누가 살아남으면 고향에 소식이라도 전하게 하려는 불쌍한 바램이었다.

꽈르릉 꽝꽝!

절벽이 탱크의 포격에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조철호는 자기 몸으로 떨어지는 암석을 막으며 쓰러졌다. 여전사 순희를 구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무정한 바위돌은 순희마저 사정없이 파묻어버렸다.

성칠은 산비탈로 둔중한 엔징 소리를 내며 아득바득 덮쳐 올라오는 탱크를 쏘아보며 주먹으로 전호 벽을 꽝 쳤다.

이때 억복이 수류탄묶음을 안고 전호에서 뛰쳐나갔다. 뒤이어 데굴데굴 뒹굴어 달려오는 탱크 앞으로 덮쳐갔다.

꽝!

수류탄 폭발굉음이 하늘을 찔렀다.
제일 앞장서 달리던 탱크가 화염 속에 멈춰 섰다. 탱크 웃뚜껑이 열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몇몇 미군 탱크병사들이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희생된 줄 알았던 억복이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탱크 병사들에게 반자동보총을 휘둘렀다.

뚜르륵 뚜르륵

억복이 한 배짐을 풀자 숱한 미군 탱크병사들이 쓰러졌다.

땅!

이병수 대대장이 쏜 총탄에 억복이 푹 꺼꾸러졌다.
땅!
용천의 경호원이 쓰러졌다가 기여 일어나려는 억복에게 재차 권총을 쏘아 끝장을 내줬다.

미제의 전투기들이 산등성이 뒤로 날아 가버리자 무명고지에서 탄알이 빗발치듯이 산비탈로 날아왔다. 괴뢰군은 공군의 우세를 빌어 철갑모를 번쩍이며 산마루를 향해 슬금슬금 기어 올라갔다.

“우리 저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저 놈들이 우릴 죽인다! 형제들, 돌격!”
"죽여라!"

용천이 돌격해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며 총을 휘둘렀다.  이병수 대대장도 뒤따라오는 것이  피뜩 보이었다.

(그래. 따라오지 않을 수 있어?! 군법에 의해 총살해버릴 테야.)

허나 이병수는 다른 궁리를 하면서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망원경으로 절벽 밑의 지휘소 자리를 자꾸 살폈다.

성칠이 한창 권총을 휘두르며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민군 전사들은 목숨을 내걸고 결사적으로 고지를 사수하며 맹사격을 가했다.

갑자기 산 위에서 총소리가 뜸해졌다.

“김 연대장! 탄알이 떨어졌습니다.”

“돌멩이로 까라!”

“옛!”

산 위에서 총소리 대신 소 대가리만큼 한 돌멩이가 마구 날아 내려왔다. 몇몇 괴뢰군 병사들이 돌멩이에 철갑모와 어깨, 다리를 맞고 비명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이때라고 용천 연대장은 고함쳤다.

“놈들이 탄알이 떨어졌어. 돌격!”

“돌격!”

남조선 군 장병들은 사기를 높여 산마루 절벽 밑에까지 돌격해 올라갔다.

이때 성칠 연대장이 권총으로 몇 놈을 쏘아 눕히며 고함쳤다.

“육박전! 고지를 사수하라!”

성칠 연대장이 쓰러진 괴뢰군 병사의 손에서 총창을 빼앗아들고 전호 속에서 제일 먼저 맹호와 같이 뛰어 나갔다. 인민군 장병들은 그를 뒤따라 조명탄 불빛과 활활 타오르는 불빛에 서슬푸른 총창을 번뜩이며 돌격해 내려갔다. 산마루에서는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총소리와 아우성이 뒤섞여 어지럽게 울렸다. 여기저기에서 죽음의 비명소리도 울렸다.

용천은 앞장서 총창으로 연신 몇몇 병사들을 찔러 눕히며 달아내려오는 성칠을 똑똑히 보았다.

용천은 이를 옥물고 권총을 들어 성칠을 겨누었다.

성칠이 총창으로 용천의 가슴을 푹 찔렀다.

땅!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은 성칠이 아니라 용천이었다. 용천은 황급히 뒤로 벌렁 드러누우면서 총을 쏘았다.

땅! 땅!

뒤따라오던 병수가 용천의 손목을 쏘았다. 그 바람에 성칠은 어깨에 흉탄을 빗맞았다. 성칠이 총창으로 재차 들누운 용천을 찌르려고 할 때다. 용천의 경호원이 뛰어나가면서 성칠을 쏘았다.

땅!

총소리와 함께 배에 흉탄을 맞은 성칠은 총창을 툭 떨구더니 산비탈에 푹 꺼꾸러졌다.

그때 용천이 황급히 경호원을 보고 고함쳤다.

“누가 죽이라 했어? 저 놈은 생포해야 해!”

용천은 권총을 주어들고 산비탈로 올라가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성칠, 이 놈, 내 아내를 빼앗은 날강도야! 내 손에 죽여야제!”

성칠은 쓰러져 선지피가 쿨룩쿨룩 솟구치는 가슴을 높뛰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나 용천이가 권총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순간 스르르 기어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권총이 천천히 쳐들리었다.

“죽어라!”

땅!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둘 다 눈 덮인 산비탈에 쓰러졌다.

성칠과 장 꼬마가 용천을 쏘았고 용천이 성칠을 쏘았다.

눈보라치는 장백산 밀림 속에서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항일유격대 두 전우, 그들 둘은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다 동족의 피로 얼룩진 눈 덮인 산비탈에 쓰러졌다.

장꼬마도 따발총으로 마지막 끝까지 싸우다가 몸을 휘청하더니 총을 툭 떨어뜨리며 푹 꺼꾸러졌다.

무명고지를 사수하던 영용한 조선인민군 전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총창으로 싸우다가 하나하나 쓰러졌다.

임호는 날창으로 찌르고 치고 하며 혼자 남아 고지에서 싸웠다. 그가 어찌나 힘껏 총창으로 찔렀는지 총창이 괴뢰군 병사의 늑골 사이에서 빠지지 않았다. 발로 병사의 시체를 탁 차서야 겨우 빠졌다. 그새 한 병사가 총창으로 임호의 가슴을 찔렀다. 임호는 날아드는 총창을 옆으로 피하면서 총창으로 찔러 눕혔다. 뒤에 쫓아온 두 병사가 총창을 채 빼지 못한 임호의 양옆구리를 푹 찔렀다. 임호는 슬쩍 피하면서 두 총창을 양손에 쥐여 홱 나꿔채 옆으로 휘둘렀다. 두 병사가 거꾸로 박히며 곰 같은 임호의 괴력에 질겁해 뒤로 비실비실 엉덩이걸음을 쳤다. 임호는 일어나려는 두 병사의 목덜미를 쥐여 대가리를 맞쪼아 놓았다. 두 병사는 서로 머리를 맞부딪혀 쓰러졌다. 열이 부쩍 오른 한국 병사들은 셋이 동시에 덮쳐나가면서 적수공권의 임호를 총창으로 찔렀다. 배와 옆구리, 허리를 총창에 찔리운 임호는 비칠거리다가 피로 뻘겋게 묻은 눈 위에 쓰러졌다. 악이 날대로 난 괴뢰군 병사들은 총창으로 임호의 가슴을 벌집처럼 찔러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절한 참경이었다.

무명고지는 언제 총포소리가 우레 울듯 했는가 싶게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명고지 절벽 위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펄펄 휘날렸다.

미군 탱크 병사들은 무명고지를 발로 쾅쾅 구르다가 절벽 밑 돌무지에서 조철호와 바위돌의 시체 밑에서 여전사 순희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직도 숨이 붙어있어 간간히 신음소리를 냈다.

“오케이(OK)!"

미군 병사들은 희죽거리며 달려들어 순희의 옷섶으로 털이 부스스한 손을 넣어 젖가슴을 어루만지었다.

한 양키 놈은 순희의 바지를 벗기고 짐승처럼 죽어가는 순희를 강간하려고 들었다.

땅!

쓰러졌던 용천이 왼손으로 총을 들어 쏘았다. 한 미군 놈이 팔을 맞고 뒤로 벌렁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군 탱크병사들이 총을 꼬나 들고 뒤로 물러섰다. 그 놈들은 눈깔을 희번뜩거리며  용천을  겨누었다.

땅!

용천은 총을 쏘아 고통스레 신음하는 순희의 숨을 거둬주었다.

그제야 양키 놈들은 상을 찡그리면서 부상당한 놈의 상처를 싸매주고 산비탈 중턱의 탱크 쪽으로 내려갔다.

경호원과 병사들이 용천 연대장을 끌어안아 일으키었다.

용천 연대장은 손목과 어깨에 관통상을 당하였었다. 그는 피못 속에 쓰러진 성칠을 보더니 주먹으로 뜨거운 눈물을 훔치었다. 그는 경호원과 병수를 돌아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잘 묻어줘.”

그는 뒤이어 바지가 벗겨진 여전사 순희를 보더니 외면하며 명했다.

“인민군 여전사 바지를 입혀 주고 잘 묻어줘라.”

병사들은  인민군 여전사에게 피 묻은 바지를 춰입혀주고 공병삽으로 구덩이를 대충 파고 여전사를 절벽 밑에 묻어주었다.

병수는 피눈물을 흘리며 경호원과 함께 성칠을 묻을 구덩이를 팠다.

용천은 자기 총에 맞은 성칠의 가슴에서 아직도 시뻘건 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리었다.  

“히야(형), 용서해. 내 살아 남으려니께, 내 팔간 집과 처자를 지키려니께. 히야(형)도 죽여야 했어.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는 내 손에 뒈졌어. 시름 놓고 잘 가. 구천에 가면 우리 진짜 친형제처럼 살제(살지).”

화광 속에서 성칠은 하늘 어디 한 곳을 쏘아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개마고원에서 맨 주먹으로 호랑이마저 때려 잡은 천하장사, 장백산 림해설원에서 일본 놈들과 영용히 싸우던 김성칠 대장, 그는 동족상잔 전쟁터에서전우의 손에 처참히 희생되였다. 그것도 총탄이 빗발치는 항일전쟁 때 그를 항일빨찌산에 이끌어준 전우- 용천의 흉탄에 맞아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 이런 동족상쟁, 형제와 전우 상잔의 비극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참말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온 겨레가 통탄할 일이 아닌가!

용천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성칠의 뚝 부릅뜬 눈을 피 묻은 손으로 스르르 쓸어 감겨주었다.

그는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 차기하듯 경호원을 닦아세웠다.
"개자식! 어데다 총질이냐? 이 놈을 심문해 알아볼 거 많고도 많아!"
용천은 성칠을 붙들고 진달래와 자기 아들의 신상을  묻고 또 묻고 싶었다.  왜 자기한테 진달래를 붙여놓고 자리를 몇해 비운 틈에 빼앗아갔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성칠이 죽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순간 경호원을 죽여치우고 싶었다.
      경호원은 용천이 허리춤에 손이 가는 것을 힐끔 곁눈질하였다. 그는 머리를 뚝 떨어뜨리며 너무 당황해 발끝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뒤이어 용천은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성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희야(형아), 아무리 형제라도 글치(그렇지). 색시와 돈은 분명해야 해.”
용천은 그런 말로 전우, 형을 잃은 공허함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드는 것 같았다.
"용천이, 진달래의 첫사랑은 나야! 내란 말이야. 내가 언제 자네 색시를 빼앗았어? 난 진달래 첫사랑을 돌려준 것 뿐이야!"
웬 일인가?
(어데서 울리는 우렁우렁한 소리야?)
용천은 성칠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어둠컴컴한 하늘 어느 한 곳을 쏘아보는 쌍까풀눈, 그 쌍까풀눈에는 원망과 원한, 쓸쓸한 기운이 얼기설기 어리어 있었다.  성칠의 가슴에서는 아직도 뻘건 선지피가 쿨쿨 솟구치고 있지 않는가? 용천은 먹구름이 지지누르는 하늘을 둘러보며 아픈 가슴을 꽝꽝 쳐댔다.   
 

이병수 대대장이 권총으로 용천을 겨누었다.

“개새끼, 너거(네가) 내 삼촌 죽였어. 씹할!”

용천의 경호원이 덮쳐들어 이병수의 권총을 빼앗아냈다.

이병수의 경호원이 용천의 경호원을 탁 밀쳤다.

“누구한테 손을 대?!”

병수는 꿇어앉아 아직도 온기 있는 성칠의 몸을 끌어안고 대성통곡 쳤다.

“삼촌, 만나자마자 생이별, 이거 웬 말이우? 어~ 헉헉, 헉헉.”

처량한 울음소리가 산마루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괴뢰군 장병들은 인민군 장교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치는 이 대대장이 제 정신인가 해 눈이 휘 동그래 흘겨보며 쑤군거렸다.
“묻어줘.”

용천의 말에 정신이 펄쩍 든 병수는 손으로 피 즐벅한 돌을 마구 파내기 시작했다. 호위병과 용천도 거들었다.

구덩이라고 파놓고 대충 성칠의 피가 랑자한 시체를 눕히고 돌을 들어다 덮어주었다.

“삼촌, 잘 가!”

병수는 피눈물로 삼촌을 무명고지 돌무지에 묻어놓고 목 놓아 대성통곡쳤다. 그 통곡소리 무명고지 절벽에 부딪쳐 슬픔으로 부서지며 오래도록 메아리치며 흐느꼈다.

그 처참한 정경을 보는 용천의 마음도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 때다.

참모장 겸 대대장 김인삼의 지휘아래 산아래 개활지대에서 매복습격전을 벌리던 조선인민군 한 개 대대 용사들이 동족의 피로 뻘겋게 물든 무명고지로 돌격해 올라왔다. 용사들은 산비탈의 괴뢰군의 뒤통수를 호되게 쳤다. 

또 피비린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치열한 공방전은 엎치락뒤치락 하며 새벽까지 벌어졌다.

인민군의 세배나 되는 괴뢰군은 미군의 전투기와 탱크의 엄호를 받으면서 무명고지와 508고지를 재탈환했다.

태양이 포화에 그은 어둠을 서서히 삼키며 동녘이 희붐히 밝아 올 때다. 중국인민지원군이 피로 물든 무명고지와 508고지에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나가면서 덮쳐들었다. 평안북도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 혼쌀 난 미군은 질겁해 괴뢰군을 떨궈놓고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한 시간 좌우 치열한 공방전 끝에 고지에는 진 붉은 오성붉은기가 훨훨 휘날렸다.

하루 밤 사이에 무명고지와 508고지는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었다.

인삼 참모장이 나머지 병력을 점검해보니 성칠 연대장을 비롯하여 최동욱 대대장과 억복 중대장, 임호 중대장, 조철호 소대장, 바위돌 소대장, 장꼬마, 여아나운서 김순희 등 300여명 장병들이 희생됐던 것이다.

용천 연대장은 찌프에 누워 후퇴할 때에야 이병수 대대장에게서 한개 대대 병력을 손실보고 미군이 탱크 세대나 손실 보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용천 연대장은 머리를 돌려 옆에서 자기를 지키는 병수에게 나직이 말했다.

“내캉(나와) 성칠 대장은 항일전쟁 때 친형제와 같은 전우였네. 우린 이번에 사내답고도 군인답게 결투를 벌였어. 자넨 날 욕하지 말게. 서로 자기 살작코(살자고)  벌린 결투였네. 바꿔놓고 내 너거 색시 뺏앗아 살면 닌도(너도) 날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거야. 맞지?”

병수는 머리를 숙인 채 한숨을 후 내쉬며 중얼거리었다.

“내 살작코(살자고) 전우끼리 원수로 돼 생사결판으로 싸워야 되나요? 형제캉(형제와) 숙질 간도 적이 돼. 도리어 친일주구캉 전우로 되다니요? 이 놈 세상 대체 어떻게 된기우?”

“난세에 무슨 수 있어? 헤이,”

용천 연대장은 병수를 쳐다보면서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난 성칠 히야캉(형과) 할 말도 많았는데. 만나자마자 총질해 죽이다니? 어참,"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쌍까풀눈을 딱 감았다.
"성칠 연대장의 시체는 잘 묻었지?”

“인민군이 가져간 거 같시우.”

“그랬어?”

순간 용천 연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들썩이는 찌프에 맥없이 드러눕더니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의 눈귀에서는 뜨거운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 귀밑으로 두르르 굴러 들어갔다…

                       7. 장백산 원시림에 공중낙하

어느덧 전쟁의 포화에 그은 봄도 가고 무더운 여름도 흘러 지나갔다. 선들선들한 가을 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와 육군병원 창문발이 흐느적이었다.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용천은 다행히 부산 육군병원에서 일년 반 남짓이 치료한 덕에 팔과 다리 상처도 완전히 치료됐고 다리와 팔, 어깨에까지도 다소 힘이 오기 시작하는 감각이 왔다.

용천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포탄에 잿더미로 된 주둔지는 볼품 없었지만 부산 육군병원에서는 전방처럼 귀청을 째는 폭음을 들을 수 없었다. 드문드문 전투기들이 북으로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용천은 아직도 전방은 전투가 아주 치열하겠다고 추측했다.

용천은 상한 왼쪽 팔에 힘을 주어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괜찮았다.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리웠다 해보아도 괜찮았다.

(전쟁터에 나가야 해. 북으로 쳐들어가 마천령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함흥 촌에 가서 내 처자를 찾아와야 해.)

그의 귀전에는 무명고지에서 울리던 성칠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진달래와 재혼해 아들 경수까지 보았다. 우리 둘 중 누가 살아남든 간에 진달래와 경수, 경주는 근심할 게 없어.”

“용천아, 네 아내를 빼앗은 게 아니야. 네가 죽은 줄로 알고 그렇게 된 게야. 이게 다 운명의 조화야!”

용천은 주먹으로 벽을 꽝꽝 치며 노호했다.

“아니야, 아니. 절대 아니야.”

그가 미친 듯이 고함칠 때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허군호 사단장과 경호원이 병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용천 연대장, 새 전투임무 내려왔네.”

용천은 허연 회가루가 묻은 주먹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허 사단장, 난 마천령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곧추 간도에까지 쳐들어가겠어요. 꼭 내 처자를 데려와야 하겠어요.”

“좋아.”

허 사단장은 용천의 어깨를 다독여 침대에 앉혀놓고 침대 옆의 걸상에 앉아 용천을 응시했다.

“육군을 영솔해 쳐들어가서야 언제 마천령을 넘어 두만강을 건너겠는가? 아직도 항일유격대 사유를 해?”

그 말에 용천은 허군호 사단장의 네모진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허군호 사단장은 기대에 찬 눈길로 용천을 마주보며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전번 전투에 성칠 연대장을 비롯한 숱한 빨갱이들을 소멸한 공훈을 세웠어. 때문에 자네와 병수 대대장이 한철주 형제를 암살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상부에 보고했네. 계속 입공속죄하게나.”

용천과 병수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그들의 살기 띤 얼굴에는 얇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용천은 벌떡 일어나면서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떠들었다.

“친일주구 놈은 죽어 마땅해요. 허나 우리 죽인 건 절대 아니랑께.”

“됐네. 변명 필요 없네. 별동대를 데리고 간도로 가게나. 자넨 장백산 밀림의 지형이나 사람들을 잘 알지 않나. 그 곳에 가서 두만강 변경의 기상을 관측해 수시로 무전기로 보고하게나. 그럼 미군 공군은 자네가 제공한 기상정황에 근거해 두만강 지역 후방에 날아가 폭격할걸세.”

“기상자료를 제공하는 일 같은 건 여자들을 보내도 될 건데요.”

“잔말 말고 듣게나. 지금 전선은 대치상태에 들어갔네. 중공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파괴하고 차단해야 우린 조선반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네. 후방공급을 차단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전투임무네.”

용천은 그제야 벌떡 일어나 군례를 붙였다.

“꼭 전투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허 사단장은 용천을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 있네. 멀쩡히 기상만 관측하지 말고 자넨 간도, 아니, 연변의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해 적들의 후방인심을 교란시키고 후방병원과 후방공급을 파괴하게나. 유격대를 잘 조직해 연변, 나아가서 길림과 장춘, 심양에까지 손을 뻗치란 말일세.”

그 말이 용천의 마음에 쏙 들었다.

“좋아요. 사내대장부가 그쯤은 싸워야제이, 걸케(그렇게) 해야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보람이 있죠.”

허 사단장은 가까이 다가와 용천의 어깨를 다독였다.

“자넨 일제의 철 발굽 아래에서도 장백산 일대 독립군으로부터 항일유격대를 조직했잖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보네.”

용천은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보내며 길게 숨을 들이 그었다.

“자신 있어요. 헌데 그 곳까지 가려면 이북을 경과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이북은 빨갱이들 점령구이죠. 자칫 두만강을 넘기도 전에 체포될 수도 있잖아요?”

“근심 말게나.”

허 사단장은 제자리에 가서 앉으면서 용천의 쪽에 얼굴을 돌렸다.

“미 공군이 자네들 싣고 밤중에 안전하게 장백산 원시림에 날아가 내려놓는다네.”

“예- 알았어요.”

용천은 당장 처자를 만날 것 같아 만면춘풍이 됐다.

“언제 출발해요?”

“오늘 밤일세. 병수 대대장도 함께 가게나."
 그 말에 용천은 상을 찡그렸다.
(병수는 성칠과 5촌 숙질간이 아닌가. 함흥촌에 가서 혹시 병수가 병완과 상순 앞에서 딴전을 부리면 어떡하노?)
여기까지 생각하자 용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병수 대대장은 여기서 싸우는게 나아요. 간도를 잘 모르는 병수를 데리고 가면 되려 짐이 돼요."
그러나 허 사단장은 함경도 말투로 무뚝뚝하게 딱 잡아뗐다.
"안되오. 데리고 가라면 가야 해. 이건 상부의 명령이야."
용천은 자기네를 간도 죽음의 구렁텅이에 보낸다고 여기면서도 찍 소리 못했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뜩 멈췄다.
(혹시 병수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우릴 은페할 수도 있잖을까? 병수를 잘 이용해 병완과 상순 따위들을 스리슬쩍 얼려넘겨야제. 흥!)
여기까지 생각하자 극구 병수를 따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허 사단장은 용천의 속내를 꿰뚫어본 듯이 계속 뒷말을 이었다. 
"간도에 가면 자네들 인맥을 잘 이용해야 하네. 진달래라던가, 당신 아내 말이야. 글구 병수네 친척들 말이야. 이게 얼마나 큰 인맥 재산인가."

그는  계속 말했다. 
"이전에 간 특무들은 모두 대만 국민당 특무 아니면 동북지구에서 도망친 국민당세력이었지. 건데 그 곳에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임무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빨갱이들에게 체포됐네. 이번에 자네한테 병수 대대장이하 특수훈련을 받은 꼴꼴한 특공인원 3명을 함께 보내겠네.”
     조선전쟁이 터지자 장개석은 중국 대륙을 반격해들어갈 좋은 챤스라고 여기고 국민당군을 조선반도에 파견해 중국인민지원군과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백악관에서는 장개석의 참전청구를 반대했다. 그러나 암암리에 국민당특무들을 대륙 장백산 지역에 파견해 후방을 파괴하고 교란하게 하였다.  국민당군 특무들은 대거 파조선반도 전선에도 기여들어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회유악선전도 감행하였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조선반도에 기여들어 참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남조선 이승만 괴뢰대통령이 반대해나섰다. 그는 조선반도에 일본 제국주의 욱일기가 재차 휘날리는 것을 보기 싫었고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멈추었다.

“장백산 원시림에 들어가면 은폐하긴 좋은데 먹을 양곡이 제일 문제죠.”

“우린 자네들이 무전기로 연락하면 며칠에 한 번씩 비행기로 먹을 걸 공중 투하할 예산이네. 오늘 밤 날씨도 좋으니까 당장 출발하게나.”

“충성!”

용천은 일어나 두 발뒤꿈치를 척 붙이고 군례를 붙였다.

“승리의 희소식을 기다리겠네.”

허군호 사단장은 용천과 병수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그는 장백산 원시림의 낙엽이 지기 전에 용촌 일행을 보내야 은페하기 좋을 것  같다는 미군 8군단 사령부와 대한민국 백선엽 장군의 의도에 따라 급히 서둘렀다.
     상부에서는 조선 함경도 출신 백골부대 장병들보다도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면서 장백산 일대 지리를 잘 알고 인맥이 있는 용천과 똘만이 등을 파견하기로 했던 것이다. 특히 용천은 만주에서 항일할 때 이른바 "빨갱이"들과 휩쓸렸다는 전과를 감안해 그의 천적이었던 일제 특무출신 똘만이를 파견해 감시하게 하였다. 한편 허사단장은 친일주구 똘만이를 만주에 보내 용천과 병수 손에 죽게 만들려고 들었다. 그도 용천과 똘만이네가 만주에 가면 불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친일주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생각하는 허군호 사단장도 이번이야 말로 똘만 같은 친일주구를 처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똘만은 친일주구 한철주가 허사단장한테 별동대에 추천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똘만은 일제가 망하자 부랴부랴 만주에서 도망쳐 곧추 명천을 거쳐 서울에 도망쳐왔었다. 그는 서울바닥에서 권총으로 강도질하면서 돌아다니다가  한선주네 파출소 경찰로 돼 사울 바닥을  횡행하던 건달이오, 꺼먼 경찰놈이었다. 특수임무를 맡은 똘만은 이번 기회에 철천지 원수 용천을 없애버리기로 작심했다. 

허 사단장의 명을 받은 용천은 환자복을 활활 벗어 침대에 던지고 병수가 주는 군복을 갈아입었다. 그는 자기 신변에 검은 그림자가 따라붙는 것도 모르고 성큼성큼 복도로 나갔다. 

용천과 병수가 병원에서 나가자 바깥에는 찌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둘은 허군호 사단장에게 마지막 군례를 척 올리고 찌프에 앉아았다. 그런데 뒤좌석엔 캡을 딱 눌러쓴 뱁새눈이 앉아 있었다. 용천은 똘만을 몰라보았다. 그러나 병수는 자주 병영에 찾아와 한선주를 만나던 똘만을 알아보고 저으기 놀랐다. 
(이자는 어째 왔지?)
병수는 똘만의 과거를 잘 몰랐다. 그러나 한선주네 파출소에서 경찰을 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찌프는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쏜살같이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허군호 사단장은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인은 총살당하기보다 전쟁터에서 용감히 죽는 것이 낫지.)

용천 일행은 부산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갔다.

한 시간도 되나마나 해 내린 곳은 중국 연변 장백산이 아니라 일본 오끼나와 미 공군기지였다.

그들 둘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선글라스를 낀 코 큰이 미군 장교 서넛이 마중 나왔다.

미군 장교는 그들에게 군례를 척 붙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며 악수했다.

“환영해요. 미스터 킴, 미스터 이. 나는 클라크대좌.”

용천과 병수도 군례를 올리고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클라크를 비롯한 미군 장교들은 그들 둘을 다시 밀봉군용자동차에 태운 후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참 달린 후 자동차에서 내려 보니 사면이 바다인 무인도이었다. 섬에는 철조망 속에 자그마한 판자 집 몇 채 있고 경계가 삼엄했다.

순간 용천과 병수는 서로 공포에 질린 눈길을 주고받았다.

(혹시…?)

우두커니 서서 사위를 둘러보는 그들 둘을 보더니 미군 장교 클라크 대좌는 판자 집에서 나오는 동양인들을 가리키면서 한국말로 지껄였다.

“대만에서 온 당신들의 교관들이오. 이제부터 당신들은 이 무인도에서 특무훈련을 받아야 하네.”

“교관?”

그제야 용천과 병수는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며 서로 미소가 담긴 눈길을 마주쳤다.

그날로부터 한 달 동안 용천과 병수는 대만에서 온 중국 동북적 특무들과 함께 기상과 지형지리 관측, 비행과 낙하 상식, 격투, 무전기 사용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격투연습을 할 때다. 교관은 용천과 똘만을 불러냈다. 맞대결을 시켰다.
용천은 처음에는 작달막하고 똥똥한 똘만을 업신여겼다. 용천은 주먹을 쳐들고 팔자를 그리며 날아들어가며 똘만의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연신 날렸다. 똘만은 이리저리 머리 숙여 옆으로 피했다. 그는 틈새를 노리다가 발길을 날려 용천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억!"
용천이 허리를 굽히는 순간 똘만이 무릎으로 재차 턱을 걷어올렸다.
꺽다리 용천은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입귀에서 피 터져 흘렀다.똘만은 덮쳐들어가며 용천의 머리를 걷어찼다. 용천은 홱 몸을 움츠리더니 발길로 달려드는 똘만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똘만은 허공 넘어갔다. 용천이 훌쩍 뛰여일어나며 발길로 똘만의 배를 걷어찼다.
   "스톱(그만)!"
  교관은 용천과 똘만에게 엄지를 내 휘둘렀다.
   사격연습을 할 때다. 똘만은 용천한테 뒤지고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하긴 똘만은 일제 수하에서 특무질하면서 격투는 많이 배웠기에 용천을 당할 수 있었지만 사격은 근본 용천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관에게서 먼저 파견한 숱한 특무소조가 실패해 체포된 경험과 교훈도 상세히 들었다. 아마 하루속히 장백산 원시림에 잠복해야 된다고 판단된 것 같았다. 미군 특무조직에서는 단기 훈련을 끝내고 용천과 병수에게 대만 특무 셋을 주어 급급히 비행기로 중국 장백산 지구에 잠입시키기로 결정했다.

미군 특무기지 장교 클라크 대좌는 용천을 단독으로 만났다.

“미스터 킴, 우린 당신을 믿네. 당신은 일찍 2차 대전 때 장백산 원시림을 중심으로 동북 만주벌에서 유격대 대장으로 일본 놈들과 유격전을 벌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 지형과 사람들을 잘 아는데다가 능숙한 한어회화능력 참 좋아요.”

“아니, 과찬에 황송하구먼. 전 북만에서 위주로 싸웠는데요.”

용천의 말에 클라크 대좌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팔을 펴보이었다.

“NO, NO! 당신 장백산 일대 파견 O-K! 당신들은 제때에 연변과 두만강 지역의 기상과 적정을 우리들에게 제공하시오. 우리 미 공군은 이제 당신들이 제공한 기상 정황과 적정에 근거해 두만강 연안 중공군의 후방을 여지없이 폭격해 군사물자공급을 차단할 것입니다.”

용천은 허군호 사단장에게서 다 듣던 말인지라 지루한 감을 느꼈다.

그 눈치를 차리고 클라크 대좌는 될 수 있는 한 짧게 말하려고 애썼다.

“김 조장은 유격대 대장이고 유격전 전문가라고 들었네. 연변에 가면 그 곳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하고 중공 간부들을 암살하십시오. 당신이 유격대를 연변뿐만 아니라 전 동북에 확장해 중공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파괴한다면 우리 미군과 이승만 대통령은 당신의 공훈을 잊지 않을 거네.”

“충성!”

용천은 발뒤꿈치를 딱 붙이며 군례를 척 붙이었다.

클라크대좌 일행은 용천 일행과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용천은 무전기와 건량과, 통졸임, 권총을 차고 그들과 작별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먹칠한 듯한 어둠 속에서 고공비행하면서도 용천은 다른 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유격전이고 낫자루고 난 몰라. 비행기가 왔다 갔다 할 수만 있다면 진달래와 경주를 싣고 돌아와야지. 될 수 있다면 삼촌도 싣고 와야지. 칠백을 잃은 거 알면 삼촌이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파하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어둠이 끝없이 두껍게 뒤덮인 하늘로 날아올라 북상하면서도 용천은 계속 속궁리를 굴렸다.

(경수는 어쩌지? 그 놈의 할배한테 떼놓아야지. 성칠을 내가 쏘아 죽였다는 거 알면 병완 영감이 날 용서할까?)

용천은 기실 장백산 유격대 조직이나 기상관측이나 적정수집이나 모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군이나 허군호 사단장이나 모두 자기를 총살하지 못해 이용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육군 연대장을 특무소조 조장으로 내리쓰는 짓을 봐도 그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어둠 속을 고공비행하여 그들은 어느덧 장백산 원시림 상공에까지 날아왔다. 저 멀리 밭 전자로 우등 불이 피어오르는 것이 내려다 보이었다.

미군 비행사는 중공군에 격추될까봐 겁나 비행고도를 낮추지도 못하고 용천이네를 보고 낙하하라고 명령했다. 비행고도가 높을수록 낙하특무들은 중공군에 발각될 위험이 컸던 것이다.

용천은 조수자리에 앉아 자기네를 돌아보는 미군 장교를 보고 고도를 낮추라고 손시늉 했다. 허나 미군은 뛰어내리라고 손시늉 했다.

용천은 권총을 뽑아 미군 비행사를 겨누었다.

“비행고도를 낮춰!”

그제야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춰 우등 불 근처로 날아가 선회했다.
땅땅땅! 꽝! 꽝! 꽝!
원시림에서 숱한 불줄기가 날아왔다. 비행기 날래 좌우에서 포탄이 작렬했다. 고사기관총알이 날개에 와 맞으면서 무서운 죽음의 노래를 불렀다.
     당시 길림성 공안총대에서는 벌써 장백산 원시림에 기관포부대를 매복시켜 특무들을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자지러진 기관포 소리에 특무들은 깜짝 놀라 기내에서 두 손으로 대갈통을 싸쥐고 목을 움츠려뜨렸다.

용천은 병수 등 특무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낙하!”

세 대만특무들이 먼저 뛰어내렸다. 용천과 병수는 군수물자를 투하한 후 마지막에 뛰어내렸다.

미군 비행기는 질겁해 동북 쪽으로 고공비행해 꽁무니를 빼다가 일본해에로 날아갔다.

용천 등이 낙하하자 지상에 있던 한국 백골부대 특무가 황급히 용천 네를 마중했다. 백골부대는 대부분 함경도 혹은 동북에서 남조선으로 도망친 지주나 불량배들로 정치보복을 하려고 조직된 부대로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대단히 악질들이었다.

“보고!”

“멍청한 놈! 왜가리 목을 달았어? 목소리를 낮춰! 주위에 중공군이 있으면 어떡해?”

“옛.”

“당장 우등 불부터 꺼버려!”

“예.”

특무들은 밭전자로 피운 우등 불부터 꺼버렸다.

용천은 낙하산을 잘 개여 큰 멜 가방에 넣어 둘러멨다. 용천이 허리를 굽히고 떠나려고 할 때다. 뱁새눈이 등뒤에서 허리춤의 권총을 빼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뭘 해?"
"네? 에, 헤헤헤."
똘만은 뱁새눈에 간사한 눈빛이 어리었다. 
그는 권총을 허리춤에 되찼다.
(개자식, 아무때건 내 총에 죽을줄 알아라. 흥!)
땅딸보 똘만은 원래 서울 한 거리의 경찰서에서 서장을 하는 한선주와 극진한 사이었다.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와 그는 거의 주일마다 만나 기생집을 나들면서 술판을 벌리고 사향의 정을 나누군 하였다. 항일시기 철천지 원수, 항일유격대 대장 용천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안 후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와 똘만은 처음에는 용천을 서울에서 제거하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그러나 친일주구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가 암살당하자 똘만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기도 언젠가는 친일주구라고 처단당할 것을 직감하였다.  그는 한선주와 한철주 형제의 사전 거천에 의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붙잡고 장백산 지역에 파견될 특무조직에 기어들었다. 그는 한선주 형제의 부탁대로 만주에 기여드는 특무조직에 가입해 만주에 들어오는 기회에 용천을 암살하기로 작심하였던 것이다. 
    그는 금방 용천이 락하산을 거두는 기회에 손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용천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자 발톱을 감추었던 것이다.

“빨리 이 곳에서 떠나야 해.”

“옛.”
대답소리는 높았지만 특무들은 모두 동상이몽이었다.
용천은 만주에 들어와 진달래와 아들을 데려가려는 일념 밖에 없었다. 다급해진 그의 속은 뿌지직뿌지직 애타기만 했다. 그는 똘만의 신분을 몰랐기에 자기 신변에 위협이 어둠 속의 이새끼츠럼 스물스물 기어와 붙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병수는 왕고모 할머니 일가(성칠 일가)를 만나뵙고 싶었고 성칠 삼촌을 살해한 원수 용천을 이번 기회에 제거하려고 작심했다. 그러나 친일주구와 딱 붙어다니던 뱁새눈한테 용천이 잘 못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병수도 똘만이 일찍 만주를 휩쓸고 다니던 친일주구, 특무 출신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하긴 똘만과 이름이 뭔가고 물을 때마다 "똘만"이라고 제대로 안대고 "허극호"라고 주어대고 고향이 어덴가 하니 황해도라고 얼렁뚱땅 속여넘긴데야. 그러나 병수는 어쩐지 요놈 땅딸보의 음침한 뱁새눈에 음흉한 눈빛이 어리어 있는 것을 보아냈다. 그리하여 줄곧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한편 용천은 어둠침침한 수림을 누벼보며 자기 좋은 생각을 했다. 
(진달래, 내 왔어. 이제 너거(너)와 아들놈을 만날 때 왔어. 흐흐, 너거 모자를 얼마나 찾았는데. 이번에 꼭 데려갈 거야.) 

용천은 특무들을 끌고 재빨리 낙하지점에서 어둠 속에 쏴쏴 몸부림치는 원시림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낙엽이 우수수 지면서 장백산 원시림은 무시무시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주먹으로 낯을 쥐여쳐도 보지 못할 어둠은 허둥지둥 잠복하는 용천 등 남조선과 대만 특무들을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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