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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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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9)
2017년 09월 02일 13시 22분  조회:1653  추천:1  작성자: 김장혁


           



                            12. 일망타진

      얼음 쪼각 같은 겨울 해가 벌겋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속으로 숨으면서 마지막 찬 빛을 뿌리더니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덮인 함흥 촌에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로 마을을 누비더니 촌공소에 들어섰다.
천룡구 부국장이 로야령에 내린 특무들을 몽땅 생포하고 그 길로 민경들을 데리고 함흥 촌으로 달려왔다.
그는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상순에게 경례했다.
“보고! 김 국장, 우리 현 공안국 민경들이 특무 잡으러 왔습니다.”
“천 국장, 들어가기요."
상순은 자기가 양성한 천룡구 부국장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천룡구를 데리고 촌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상순은 기둥에 매놓은 용천과 병수를 가리키면서 천용구 부국장에게 생포과정을 이야기하고 잔당을 나포할 작전방안을 얘기했다.
“참 좋습니다. 허나 충국의 집은 위험합니다. 제가 거기에 가고 김 국장은 여기서 전투를 지휘하면 어떻습니까?”
분명 천용구는 위험한 특무잡이에 여기에서 수장인 상순 국장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천용구가 하는 말에 상순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네. 내가 그래도 자네보다 충국이네 토성안집 형편을 더 잘 아네. 내 보건대 적들은 대낮의 총소리를 듣고 삼도만이나 다른 곳에 도망쳤을 수도 있소. 전소광은 삼도만과 이 지역을 손금 보듯 하네. 절대 소홀히 대적해선 안 되오. 내 소서구에 가고 자넨 여기서 쥐휘하게나.”
“알았습니다.”
천용구는 상순 국장의 포치에 따라 민경들을 분조를 나눠 포치했다. 동산 쪽의 계수동쪽과 소서구 쪽으로도 수색하라고 명령했다. 또 한 개 분조는 함흥 촌 촌공소를 위주로 지키면서 용천과 병수를 구하러 올 수 있는 적들을 나포하기로 했다.
모든 작전을 다 포치하자 상순은 허영호 과장과 민경 둘을 데리고 소서구 어귀 충국이네 집 북쪽으로 가서 토성 밑에 난 구멍으로 들어갔다.
상순이 민경들을 데리고 집안에 불쑥 들어가자 장학산 부부는 깜짝 놀랐다. 충국은 손을 베개 밑으로 넣다가 멈췄다. 리국은 그만 두라고 충국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상순은 눈치를 채고서도 구들에 뛰어 올라가며 물었다.
“권총은 어쨌는가?”
충국은 베개 밑에서 권총을 꺼내 자루 쪽을 공손히 내밀었다. 허영호 과장과 민경은 충국을 쏘아보며 권총집에 손이 갔다.
상순은 권총을 받아 탄창을 빼보았다. 놀랍게 촘촘히 박힌 싯누런 탄알을 보고 상순은 세 귀 눈으로 충국을 쓸어보았다.
“탄알은 어데서 났니?”
“전번에 전소광이 준 게다.”
“왜 전번에 바치지 않았니?”
“탄알이 없는 총으로 어떻게 전소광을 대적하니?”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권총을 되돌려줬다.
“너를 믿는다. 전소광이 오면 가차 없이 쏴.”
충국은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집안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왔다 간 놈이 없는가?”
“오늘 저녁에 먹을 걸 가지러 올 날이네.”
“음. 등잔불을 켜라.”
상순의 호령에 충국은 이상해 했다.
“특무 놈들이 혹시 집안을 들여다보고 김 국장을 발견하고 달아나면 어쩌자고?”
상순은 코웃음 쳤다.
“개뿔도 모르는 놈. 평소처럼 등잔불을 켜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다고 특무들이 놀라 달아날 게 아닌가?”
“오~”
“장탄했니?”
그제야 충국은 머리를 끄덕이며 등잔불을 켠 후 권총에 장탄했다.
상순은 허영호를 보고 한 민경을 데리고 주방에 나가 숨어 있게 하고 한 민경은 북쪽 구들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게 했다. 자기는 남쪽 구들에 펴놓은 미련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워 머리만 내놓고 동정을 살폈다.
미련은 부끄러워 키득거리었다.
“오빠, 내 이불 속에 들어가면 난 어디에서 자오?”
“옆에다 이불을 펴고 누워라. 딴전을 부렸다간 죽을 줄 알아.”
“오빠한테 몇 번 죽었는지 모르겠소. 쩍 하면 죽인다고 해?”
“시끄럽다. 어서 누워!”
미련은 별 수 없이 상순의 옆에 누웠다.
상순은 충국을 보고 “혹시 특무들이 들어와 옆에 누운 게 누군가 하면 미련의 신랑감이라고 해라.”라고 했다.
미련은 키득거렸다.
“웃지 마라.”
충국은 이불을 덮고 누워 베개 밑에 권총을 넣고 매만지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전번에 전소광은 나를 보고 지주들로 유격대를 조직해 장백산에서 유격전을 벌리자고 했다. 국민당 천하를 되찾으면 우리 땅을 다 찾아 주겠다고 했다. 이 권총으로 상순을 쏴 죽일 순 있다. 하지만 건너 방의 민경 둘이 인차 덮쳐 올 거야. 안돼. 대만에 쫓겨 간 국민당 군이 언제 대륙으로 되돌아온다고 그래? 몇몇 특무들이 와서 유격전을 해서야 언제 공산당군의 천하를 뒤엎을 수 있겠는가? 800만 대군을 가지고서도 200만도 안 되는 공산군을 이기지 못해 대만에 도망친 주제에 유격전을 해? 봐라, 전소광이 온지 며칠이 안 돼 벌써 상순까지 와서 천라지망을 치지 않는가? 괜히 잘 못 서둘러서 보석된 내가 목이 댕강 날아나라고? 상순의 말대로 로실히 국민당 특무 잡이에 협조해 주고 관대처리나 받으면서 연명하는 수밖에 없다.)
한참 후 마당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미련이가 자꾸 이불 밑으로 발을 내밀어 상순의 허벅다리를 툭툭 치며 지껄이었다.
상순은 미련의 발을 이불 밑에서 밀어내고 바깥 동정에 귀를 도사렸다. 창 밖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며 모래알을 쥐여 뿌리는 듯이 창호지를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한참 후 바깥에서 눈을 밟는 빠드득빠드득 소리가 급촉하게 나다가 집 앞에서 잠간 멈추는 것 같았다. 이윽고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순은 이불 밑에서 권총 안전띠를 풀고 문에 겨눴다.
“왕형이 왔구만.”
충국은 상순을 들으라고 소리쳤다.
상순은 눈을 슬며시 뜨고 이불귀 밑으로 문어귀에 선 놈을 쏘아보았다.
“초저녁부터 자는가?”
“혼자 왔소?”
“응, 전 퇀장이 나보고 먹을 거 가지고 오라고 했네.”
상순이 충국을 보니 베개 밑을 더듬는 것이었다.
“남쪽 구들에 왜 두 사람이야?”
“오, 내 매부감이 왔네.”
“오, 그래?”
충국은 불시에 베개 밑에서 권총을 꺼내 특무에게 총을 겨눴다.
“꼼짝 말라!”
“자네 무슨 장난이야?”
그때 상순이가 이불을 젖히며 뒤에서 총을 겨누었다.
“꼼짝 말라!”
왕발은 사태가 틀린 것을 알고 되돌아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 주방 문 뒤에서 허영호 과장이 총을 들고 막아섰다. 허나 왕발은 최후발악을 하려고 권총을 뽑아 들었다.
땅!
“억!”
상순이 쏜 총소리와 함께 왕발이 허벅다리를 틀어쥐고 털썩 쓰러졌다. 그 놈은 땅바닥에 누워 총으로 맹호와 같이 덮쳐나가는 상순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땅!
총소리가 울리며 천정이 펑 구멍 뚫렸다. 상순은 덮쳐들어 발로 왕발의 손을 꽉 밟고 총을 빼앗아냈다.
왕발은 권총을 들고 멍청히 서있는 충국을 보고 고함쳤다.
“이놈아, 빨리 빨갱이들을 쏴! 안 그러면 넌 한평생 후회할 거야! 아이고, 저 멍청이야.”
허영호와 상순은 충국의 눈치를 살폈다.
충국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총을 구들바닥에 내려놓았다. 허영호 과장은 충국의 총을 몰수했다.
“김 국장, 어떻게 돼 저 놈의 손에 권총이 있습니까?”
“고험했어. 탄창에는 탄알이 없어.”
허영호가 탄창을 뽑아보니 빈 탄창이었다. 충국은 상순의 놀라운 솜씨에 놀라 축 늘어뜨린 머리를 쳐들지도 못하고 구들에 풍덩 물앉아 한숨을 후 내쉬는 것이었다. 상순은 미리 빈 탄창을 가지고 가서 충국의 장탄한 탄창을 검사할 때 제꺽 바꿔 넣었던 것이다.
다른 민경도 뛰어 들어와 바로 왕발을 꽁꽁 묶었다.
상순은 민경을 보고 나가 바깥에서 보초 서라고 한 후 왕발을 심문했다.
“우린 네놈들의 계획을 다 알고 있어. 로실하게 탄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호되게 징벌할 테다.”
“장관, 죽여 달라! 고달프게 굴지 말고 빨리 죽여라!”
"남조선 특무 용천과 병수도 다 잡혔다. 전소광과 장광우는 지금 어데 있는가?”
왕발은 충국을 쏘아보았다.
“네 놈이 우릴 팔아먹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구나.”
“너도 전소광을 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목숨을 내놓겠는가? 탄백하겠는가?”
상순은 권총으로 왕발의 대갈통을 툭툭 찔러댔다. 죽음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놈은 없었다.
“김 국장, 총살해 버립시다.”
허영호 과장(소장)이 재촉했다.
상순이 바깥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한족말로
“저 동쪽 계수동에서 적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하늘로 날아올라갔소. 이젠 이 놈이 필요 없게 됐소.”
라고 하더니 권총을 왕발의 대갈통을 겨눴다.
왕발은 황급히 새된 고함질을 쳤다.
“제발 살려주오. 장관, 탄백하겠소. 탄백해!”
그제야 상순은 권총을 거두었다.
“말해라. 쓸데 있는 말인가 보자!”
왕발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탄백했다.
원래 아침에 함흥 촌에서 총소리가 울리자 대만특무 전소광은 대뜸 용천이네가 잘 못 됐겠다고 짐작하였다. 그는 왕발을 보고 장충국이네 집에 가서 밥과 이불을 가지고 계수동 막바지 도가집 부근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거짓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넌 죽어!”
상순이 을러메자 왕발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비굴하게 빌었다.
“장관, 내 어찌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겠습니까?”
상순은 계수동 쪽에서 적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올라간 적도 없었지만 기민하게 꾸며대 왕발의 속을 뽑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민경을 보고 촌공소에 대만 특무 왕발을 끌어가게 하고 허영호 과장과 함께 쏜살같이 동쪽 계수동쪽으로 달려갔다.
“김 국장, 나도 가겠네.”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장충국은 권총을 쥐고 달려 와서 숨이 차 헐떡거렸다.
“아니. 왕발이 가지 못하면 전소광이 의심할게요. 내라도 가면 그 놈이 마음 놓아서 체포하기 편리할 거 같소.”
“음, 그게 그럴 법 하구나. 가자.”
상순은 계수동 막바지에 있는 도가 집으로 향해 올라갔다. 그들은 도중에서 계수동 골 안을 수색하던 천용구 부국장을 만나 작전방안을 꾸몄다.
그들은 인차 왕발 대신 충국을 앞세우고 포위 습격해 전소광과 장광우 두 대만특무를 체포하기로 했다.
민경들이 상순과 천용구의 지휘아래 충국을 앞세워 도가 집 부근을 거의 포위해 올라갔을 때었다.
도가집 부근 어둠 속에서 웅글진 목소리가 들렸다.
“왕발인가?”
“예.”
“왜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당지 지주들을 데리고 오오.”
“먹을 건 푼푼히 가져 왔는가?”
“예. 한 가마 밥을 다 가져 왔소.”
이때 도가 집 부근에서 한 놈이 앉아 송수하기를 걸고 무전기를 삑, 삑, 삑 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동남쪽 하늘에서 비행기가 신호등을 번쩍이면서 날아왔다.
새로운 정황이었다.
상순은 인차 천용구와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즉시 전소광을 체포해야 하오.”
“예.”
상순이 손을 홱 앞으로 휘둘렀다. 숱한 민경들이 쏜살같이 도가 집으로 짓쳐 올라갔다.
“뭐 하는 짓이야?”
전소광은 놀라하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허나 그때는 늦었다. 숱한 민경들이 덮쳐들었다.
“충국이, 뭐 하는 거야?”
“네 놈을 생포하러 왔다!”
“아야, 마야(어머니!)”
전소광은 황급히 권총으로 충국을 쏘았다. 충국은 어깨를 붙잡고 쓰러졌다.
“사격!”
민경들은 전소광을 향해 사격했다. 전소광은 숱한 총알을 맞고 즉살했다. 무전기를 치던 특무 장광우는 천용구와 상순의 씨꺼먼 총구 앞에서 두 손을 쳐들었다.
그런데 밤하늘에서 날아오던 적기는 장광우의 무전을 받고 황급히 기수를 건뜻 쳐들더니 황망히 고도를 높여 동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에끼, 이 놈새끼, 그새 도망치라고 무전을 쳐? 어서 무전기로 저 비행기를 돌아오라고 하지 못할까?”
허나 장광우는 무전기로 자기들은 이미 몽땅 나포되었으니 다시는 연변에 특무를 파견할 궁리를 하지 말라고 무전을 쳤던 것이다.
상순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사격!”
천용구 부국장이 거느리고 온 민경들은 고사기관총으로 꽁무니를 빼는 비행기를 조준해 불을 토했다. 상순은 성차지 않아 손수 고사기관총으로 멀어져가는 비행기를 사격했다.
따당 땅땅 땅땅땅!
불줄기가 적기를 향해 날아갔다. 허나 비행기는 어느 결에 어둠 속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다. 비행기가 사정거리를 벗어났던 것이다.
천용구와 김상순은 장광우 놈의 손에서 무전기를 빼앗아 냈다.
“네 놈은 사형을 면치 못해.”
상순과 천용구는 자동차를 불러 전소광의 시체를 싣고 장광우를 압송해 가지고 함흥 촌으로 개선가도 높이 돌아갔다.
한차례 인심을 격동시키는 특무잡기전투는 승리로 끝났다. 모두들 총을 높이 쳐들며 승리의 희열로 차 넘쳤다.
어둠 속에 잠긴 함흥 촌 상공에는 구호소리가 밤늦게까지 높이 울려 퍼졌다.
이튿날 천용구와 상순은 민경들과 함께 자동차에 용천과 왕발 등 특무들을 꽉 박아싣고 승리도 개선가도 높이 영월구로 귀로에 오르게 됐다.
함흥촌을 떠나기 전에 상순은 허영주 서기와 할아버지께 허리를 굽혀 경례를 드린 뒤 자동차에 뛰어 올라가 공안국을 대표해 간단히 연설했다.
“여러분, 우리는 공산당의 영도아래 미제의 훈련을 받은 남조선과 대만 특무들을 몽땅 나포했습니다. 보십시오. 특무 놈들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날아 내리든지, 땅 속에서 기어 나오든지 모두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상순은 격앙된 목소리로 고함쳤다.
"일체 반동파와 지주악당, 반혁명분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네 놈들이 감히 사회주의 조국과 우리 두 번째 고향 연변조선족자치구에 침략해 온다면 우린 인민무력의 강철의 힘으로 네 놈들을 견결히, 철저히, 모조리, 깡그리 소멸할 것이다!"
그는 뒤이어 군중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우린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재빨리 사회주의 개조를 진행하고 모두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군중들은 “와-” 고함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용천은 무릎을 꿇고 앉아 상순을 쳐다보며 통사정했다.
“나는 항일 유격대 대장 출신이여. 내 아들 경주를 데리고 대한민국 고향에 돌아가게 놔 달라.”
용천은 사람들 속에서 진달래와 경주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쳇, 이 놈이. 주둥이만은 살아서 목숨을 구걸하는가?”
상순이 욕지거리하며 용천의 죄악을 폭로했다.
“네 놈은 조선인민군 연대장, 내 큰아버지 김성칠 동지를 살해한 철천지 원쑤놈이야.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뒤엎으려고 침투해 들어온 악질특무 놈이다.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
군중들도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
이때 병수가 병완을 보고 고함쳤다.
“할아버지! 살려 주세요! 우린 한국 서울에서 용천 연대장과 함께 친일주구 한철주와 한선주 형제를 처단했어요. 입공속죄했으니 관용을 베풀어 주세요.”
병완은 병수를 되돌아보지도 않았다.
(자식, 누가 널 남조선 특무질하라고 했느냐?)
허나 그의 몸이 조금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병수는 자동차 위에서 두리번거리더니 눈보라 휘몰아치는 천지꽃산 중턱의 이성희 할머니 산소를 찾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병수는 미친 듯이 고함치더니 머리를 돌려 상순을 쳐다보고 말했다.
“상순아, 내가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모시지 못할 바엔 네가 후에 내 고향에라도 가면 아버지와 동생 영수한테 내가 여기서 죽었다는 거나 알려라.”
그 말에 상순은 기 딱 차서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병수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저 천지꽃산 왕고모 산소 옆에 묻어 달라. 할머니한테 구천에 가서라도 육친도 모르는 네놈들을 공소할테야!”
상순은 병수를 욕했다.
“내 할머니를 업고 똥구덩이에 뛰어들지 말라!”
옆에서 용천이 병수를 나무랐다.
"이제야 알겠어? 병완이랑 상순이랑 다 그래. 빨갱이들은 육친도 몰라. 혁명하다 필요하면 제 처남 손자도 마구 잡아먹어.허허허." 
병수는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뭔가 이제야 알렸는가?
용천은 계속 지껄여댔다.
"날 봐라. 항일유격대 대장이였잖아. 저놈들과는 전우였어. 그러나 항일유격대 대장도 죽인다니까."
그때 병완이 용천의 앞에 다가가 고함쳤다.
“용천아, 넌 이전에 항일투사였고 성칠의 전우였다. 허나 오늘은 우리 철천지원수로 됐다! 네놈은 성칠과 사촌동생마저 살해하지 않았느냐? 네놈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졌어. 또 우리 나라에 침투한 남조선 특무 죄를 졌다. 우리 인민정권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용천은 결박당한 채 자동차에 끌려가면서도 머리를 쳐들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때 용천이 노래를 불러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정신을 차린 병수는 이제야 자기가 남조선 특무라는 것을 알았는지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노랠 부르지 말엇!"
      흥수가 꽥 고함치면서 씽드르 자동차 위에 뛰여올라가 장총으로 용천과 병수의 주둥이를 마구 쑤시었다.
       "그만둬!"
      상순이 급히 흥수가 휘두르는 총을 밀막으면서 말렸다.
      "우린 인의 지사야! 절대 이러질 말아야 해!"
      상순이 말리자 흥수는 마지못해 총을 거두고 자동차에서 내려갔다.
     "남조선 특무놈들을 죽여라!"
      "죽여라!"
     군중들은 주먹을 쳐들며 격노해 고함쳤다.
    용천은 이제 당장 총살받을지도 몰라 사람들 속에서 재차 진달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뿌리 빠지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 빠져 흐리멍텅한 하늘을 쳐다보며 허무맹랑하게 웃어버렸다.
       (세상은 얼마나 허무한가. 저렇게 무정한 진달래를 안해라고 얼마나 발바닥이 다슬게 조선 팔도를 다 찾아헤맸던가! )
       순간 그의 눈 앞에는 돌팔매질로 자기 머리를 까던 진달래, 이를 악문 질달래가 떠올랐다. 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넌 근본 날 사랑하지 않았어. 뭐? 너거 첫사랑은 성칠이라고? 그럼 내캉 결혼은 왜 했어? 왜?!)
    용천은 전쟁으로 인해 사랑이 원한으로 뒤바뀐 것에, 사랑과 원한이 뒤엉킨 세상을 애절하게 한탄했다.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의 북소리가 둥둥 요란하게 울린다. 그의 눈에는 염라전이 어슴푸레 보이는 상 싶었다. 전쟁 악마의 보이지 않는 갈퀴 같은 검은 손이 하늘에서 길다란 올가미를 내려보내 서서히 용천의 목을 휘감았다. 전쟁 악마가 없었더라면  용천은 진달래와 함께 경주를 키우면서, 아니, 아들딸을 한구들 낳아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다. 그러나 용천의 그 아름다운 꿈은 전쟁이란 악마에 의해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전쟁 악마는 용천으로 하여금 사촌동생 칠백이, 전우 성칠과 총칼을 비껴들고 생사결판으로 싸우게 내몰지 않았던가! 그들을 죄악의 손으로 총칼을 들고 살해하지 않았던가.
 
      용천은 사람들 속에서 피뜩 덕성을 발견하고 목청껏 고함쳤다.
"작은아버지! 경주를 보우해 주시예!"
그는 진달래를 보지도 못했지만 어데라 없이 하늘에 대고 고함쳤다. 
"진달래야! 장차 경주를 남조선에 보내달라!”
상순은 용천을 쏘아보며 호통쳤다.
"주둥일 다물지 못해?!"
뒤이어 상순은 정책을 말해주었다. 
"너희들 친일주구 한철주 형제를 사살하고 똘만을 나포하는데 공이 있어. 때문에 우리 정부에서는 가능하게 관대하게 처리할 수도 있다. 특히 용천은 항일에도 공이 있어 고려할 거야. 그러나 이건 내 생각이지 국가 공안부문의 결정이 아니야."
용천은 머리를 툭 떨어뜨리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눈보라 소리에 사람들은 그가 자동차 위에서 뭐라는지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용천은 자동차에 실려가면서도 머리를 돌려 원망에 찬 눈길로 누구를 찾는 듯이 사람들 속을 누비었다. 그러나 진달래는 끝내 보이지도 않았다. 덕성은 자동차에 실려 끌려가는 조카를 차마 보기 힘들어 머리를 숙였다.
(아, 처자를 만나자고 얼마나 찾아 헤맸는가? 진달래 사랑을 찾기는 고사하고 원수치부할 줄은 몰랐제이, 헤이, 내 끝장 이렇단 말인고? 얼마나 그리던 진달랜데. 얼마나 사랑한 진달랜데?  마지막길일 수도 있는데, 머리도 내밀지 않어? 경주라도 보이지 못하고. 헛참, 진짜 몰인정한 빨갱이야.)
      그는 진달래가 원망스러웠다. 진달래와 자기를, 아들과 자기를 갈라놓은 전쟁이 원망스러웠다. 자기를 만주 사지에 특무로 보낸상관 허군호 사단장과 미군을 원망했다. 진달래와 같은 무정한 여자를 아내라고 이런 불구덩이에 뛰여든 것을 후회했다. 아니, 이제 누굴 원망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백번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병수는 천용구 부국장과 공안전사들이 압송하는 자동차에 실려가면서도 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흐리멍텅한 남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머리를 홰홰 저었다. 그러는 병수를 보고 상순은 천지꽃산 중턱에 모신 할머니 산소를 올려다 보며 머리를 숙였다.
      구경 무엇이 전우였던 그들로 하여금 총창을 비껴들고 서로 생사결판으로 싸우게 했던가? 구경 무엇이 사촌형제끼리, 친혈육끼리 총창을 비껴들도 맞붙어 서로 찔러 죽이게 했는가. 구경 무엇 때문에 항일유격대 전우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결투하게 하였던가! 구경 무엇이 그렇게 그리워 찾아헤맨 부부를 서로 원수로 만들었는가!
      바로 미제의 참혹한 침략전쟁이 그렇게 만들었다. 미제가 인천에 등륙하지 않았더라면  조선 인민들이 자기 조국의 문제를 자체로 해결했을 것이며 통일된 조선을 후대들에게 넘겨주었을 것이다. 미제가 남조선을 식민통치하지 않았더라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미제 침략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제일 큰 범죄자였다. 바로 참혹한 침략전쟁이 부부도, 사촌형제도, 전우도 서로 원수로 되여 싸우게 만들지 않았던가!  아, 이 땅에 다시는 침략전쟁, 동족상잔전쟁이 일어나지 말고 평화가 깃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몸부림치는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 까마귀떼들이 꽁지를 달싹이며 까욱까욱 무섭게 울어대며 발톱으로 부리를 닦으며 먹이를 쪼을 준비를 했다.
     용천이 자동차에 실려 갈 때 기실 진달래는 다리 총상을 오줌찜질을 해 지혈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양손에 경주와 경수의 손을 잡고 아픈 다리를 끌면서 마을 동구에까지 나가 눈보라 속에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바래였다. 자동차가 어두워 가는 하늘 아래 눈보라 속에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경주를 꼭 끌어안고 한없이 서럽게 통곡쳤다.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비록 항일전재시기 밀림에서 한해도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필경 그들은 부부였다. 그럼 그녀가 용천을 동정해서 통곡칠까?
     아니다. 그보다도 애비 없이 살 경주가 불쌍해 우는것이리라. 
     그날 밤이였다.
"여보, 내 왔어. 경주 얼마나 보고 싶은지."
밤중에 용천이 장백산 밀림의 통나무집, 그들이 결혼해 첫날 밤을 보내던 그 통나무집에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당신 어떻게 돼 왔는가요? 당신은 남조선 특무 아닌가요?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가요? 어서 나가요!"
"그래, 또 날 붙잡아 중공군에 보낼 예산인기여?"
용천은 두덜거리며 구들에 나란히 누워 쌔근쌔근 자는 경주의 얼굴을 매만지였다. 뒤이어 경수의 얼굴에 갈퀴 같은 검은 손을 뻗쳤다.
"손 떼라!"
성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용천과 진달래가 돌아보니 장소는 어떻게 돼 장백산 통나무집 아니고 함흥촌 촌공소인데 어떻게 돼 성칠이 유령처럼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이 양심 없는 놈아! 어째 내 아내 빼앗아 살았어! 조 쥐새끼까지 낳기까지 했잖어?!"
용천은 욕설을 퍼부으며 성칠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더니 머리로 떵 들이받았다. 성칠도 주먹으로 반격했다.
애들이 깨나 어른들 싸우는 걸 보고 엄마 품에 와락와락 안겨 엉엉 울었다.
진달래가 새된 소릴 지르며 뜯어 말렸다.
"그만하지 못해요? 진짜 죽어서 귀신 됐어도 싸워요?"
"염라전에 가도 저 놈 용서할 순 없어! 흥!"
용천이 입귀의 피를 손으로 쓱 닦으며 주먹 쥐고 덮쳐들며 계속 야단쳤다.    
성칠은 용천의 주먹을 손으로 막으며 진달래를 가리켰다.
"진달래한테 물어봐라. 널 사랑하기나 했겠구나."
'뭐라고?"
용천은 주먹을 내리고 진달래를 돌아보았다.
"그래요. 전 근본 용천 대장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럼 왜 내캉 결혼했어?"
진달래는 차마  "저의 첫사랑은 성칠 오빤데요." 하고 입을 떼기 힘들었다. 그는 자기 첫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자기를 용천한테 떠밀어보낸 성칠 오빠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기실 통나무집에서 번개식 결혼한 첫날 밤에  진달래는 사랑하지도 않는 용천한테 강간당하는 기분에 잠겼다. 그녀는 성칠 오빠 얼굴을 련상하면서 육체와 마음의 아픔을 간신히 참아냈던 것이다. 진달래는 용천과 우연히 갈라져 조선에 나가 성칠 오빠와 재혼해 산 5년 동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그러나 죄악의 전쟁은 성칠 오빠를 빼앗아갔다. 아니, 남북 분단의 비극적인 마수가 그들의 단란한 가정을 산산 박산나게 만들었다.
아니, 저게 뭔가요?
글쎄 성칠은 경수를 안고  용천은 경주를 안고 서로 진달래를  바줄당기기를 하듯 밀고 당겼다.
"여보, 날 따라 조선에 가기오!"
"여보, 당신은 내 본처야, 날따라 남조선에 가자!"
진달래는 그들 둘의 사이에서 각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이걸 놔요! 놔!"
진달래가 아무리 고함치며 발악해도 그들 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마구 대성통곡치며 몸부림쳤다.
"엄마!"
"엄마!"
애들의 울음소리에 진달래는 벌떡 일어났다. 깨고 보니 괴이한 꿈이 아니겠는가! 
진달래는 꿈을 깼는데 딱 꿈 같지 않았다. 아직도 용천과 성칠한테 꽉 붙잡혔던 두 손이 얼얼하게 아파났고 가슴마저 미여지는듯이 아파났다. 그녀는 자기 팔자가 안타깝고 용천과 성칠 오빠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워 울었다. 아마 용천과 성칠은 구천에 가서도 그녀 때문에 서로 싸우며 빼앗을내기 하면서 그녀를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에 마음이 아파났다.
그녀는 고사리손으로 눈을 부비며 엉엉 우는 애들이 불쌍해 한손에 하나씩 품에 꼭 껴안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아, 미제의 침략전쟁과 동족상잔전쟁으로 인해 그 얼마나 많은 부부가 헤여지고 심지어 원수로 돼 싸웠던가. 그 얼마나 많은 가정이 풍비박산났는가! 그 얼마나 많은 초가삼간이 미제 공중날강도들의 폭격을 맞아 재더미로 되였던가! 
      진달래는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끊임없이 꾸었다.
   
      어느날 밤 진달래는 또 무서운 악몽을 꾸었다.
     글쎄 남조선에 도망쳐 괴뢰군이 된 경주와 조선인민군 경수가 서로  퉁사발눈을 부릅뜨고 서슬푸른 총칼을 맞대고 죽기내기로 육박전하며 싸우지 않겠는가!
금강산인가, 설악산인가. 깎아지른 누런 절벽 위에서 경수가 서슬푸른 총창으로 경주를 찌르며 고함쳤다.
"이 놈, 네 애비 내 아빠를 살해했어!"
경주는 날창을 비껴치우며 총창으로 찔렀다.
"원수놈 새끼야, 네 애비 엄마를 빼앗아갔어. 어디 죽어봐!"
"닥쳐라!"
진달래는 황급히 고함쳤다.
그녀는 절벽 위로 쫓아올라가며 연신 돌멩이를 날렸다.
쟁강!
돌멩이가 날아가 서로 얽힌 총창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
경수와 경주는 어머니가 뛰여올라온 것을 보고 주춤 날창질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이였다. 또다시 이를 악물고 죽기내기로 육박전을 벌렸다.
"그만두지 못해?!"
진달래가 고함치며 두 아들 중간에 뛰여들어 두 손으로 두 총창을 틀어쥐여 허공에 쳐들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친형제야."
그러나 동시에 이런 고함소리가 절벽을 아프게 때릴줄이야.
"친형제는 무슨 친형제?!."
"원수야!"
두 아들이 또다시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날창질을 하였다. 진달래는 마음이 너무 미여지는듯해 두 아들을 뜯어 멀리면서 눈물을 팡팡 쏟았다.
        "너희들  둘 다 엄마 한배로 배아프게 난 아들들이야.  친형제간에 계속 싸울래? 엄마 죽는 걸 보겠어?! 친형제간에 서로 애비 죽인 원수치부를 해서야 되느냐?"
그 말에 두 아들은 총창질을 멈췄다가 또다시 날창질을 했다.  진달래 힘으로는 둥글소처럼 싸우는 억대우 같은 아들들을 뜯어말릴래야 말릴 수 없었다.
      다섯살이나 이상인 억대우 같은 경주가 글쎄 경수의 날창을 비껴치우고 날창으로 푹 찔렀다. 경수가 가슴에 피를 내뿜으며 비칠거릴 때였다. 경주가 발길로 경수 아랫배를 걷어찼다. 경수는 뒤로 자빠지며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지 않았겠는가
"경수야!"
진달래는 만신창이 돼 죽은 경수를 보고 경주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고함쳤다.
"이 지독한 놈 새끼야, 친동생을 죽여?!"
그러나 경주는 눈깔을 뚝 부릅뜨고 시퍼런 총창으로 엄마를 겨눴다.
" 엄마도 배신자야! 아빠하구 결혼해가지고 왜 경수 애비캉 바람 피웠어?!"
"뭐라고? 어떻게 돼 내 경수 아빠한테 재가했는지 알기나 하고 이래?"
경주는 이를 악물며 고함쳤다.
"다 알아! 엄만 배신자야! 죽어도 싸!"
"맞아!  배신자야!"
뜻밖에 용천이 구름 속에서 절벽 위에 날아내려오지 않겠는가!
그는 진달래한테 총을 겨누며 지껄여댔다.
"너거 엄만 돌멩이로 내 머리를 까 빨갱이들한테 붙잡아 바쳤어!"
"닥쳐!"
아니, 성칠이 절벽에 기여올라오며 고함치지 않겠는가.
"진달랜 날 사랑했지. 널 사랑하지도 않았어!"
용천은 총으로 진달래를 먼저 쏘았다. 뒤이어 절벽에 기어오른 성칠을 쏘았다.
"여보!'
진달래가 손을 뻗쳐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성칠의 손을 잡아끌어당겼다.
그때 용천은 한발에 성칠과 진달래를 절벽 아래로 차 떨어뜨렸다.
"앗!"
진달래는 성칠과 함께 떨어지면서 경주의 종아리를 붙잡았다. 그런데 글쎄 경주는 발길로 진달래를 걷어차며 너털웃음을 쳤다.
"배신자는 죽어야 해! 허허허."
성칠은 절벽에서 떨어졌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권총을 뽑아들더니 용천과 경주를 쏘았다.
용천과 경주는 절벽에서 허망 떨어져내려왔다.
진달래는 경주를 받아안으려고 두 팔을 벌리고 절벽 밑에 뛰여갔다.
"경주야!"
그러나 경주는 절벽에서 떨어져내려오면서 고함쳤다.
 "배신자야!"

그 고함소리에 꿈에서 깨난 진달래는 와닥닥 일어났다. 그녀는 쌔근쌔근 자는 애들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꿈만 같지 않았다.
        죄악의 38선악마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휴전해 숨고르기를 하는 한 소국의 약소민족은 항상 형제간, 부부간, 전우간에도 원수로 돼 생사결판으로 싸우는 전쟁악몽은 끝없을 것이 아닌가!
       지구촌에서 국제경찰행세를 하는 패권주의자 - 미제  호전광들이 남조선 땅에 있는 한 항상 전쟁의 불씨는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나라가 남과 북으로 쪼각나 있는 한,  작은 나라,  약소민족의 비극은 끝없을 것이 아닌가! 





                                            제23장 충신과 효자
                                                                
                                
                                                                                    1.
귀향

눈보라가 기승스레 불어치더니 맵짠 겨울의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들었다. 박달나무가 얼어 탁탁 터질 듯하고 여우가 추워서 눈물을 흘릴 맹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병완은 촌공소 바깥에 나가 마루 위에 서서 눈보라치는 산과 들을 바라보며 이 추운 겨울에 성칠은 어느 무명고지 눈 속에 파묻혔는지? 승냥이가 물어 갔는지? 근심이 태산 같은 돼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조선에서 배불리 먹으면서 살자고 간도에 와서 중국 공산당의 덕분에 일본 놈을 몰아낸 후 광복을 맞았다. 친일주구와 지주들을 청산하고 땅을 분배 받아 쌀독에 쌀을 꼴딱꼴딱 채워놓고 잘 살까 하니 애를 먹이는 놈들도 많았다.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이 못살게 굴었고 토비들이 성화를 부렸다. 국민당 잔여세력과 토비들을 숙청하고 전국을 해방하고 강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이젠 근심 없이 살겠다고 발편잠을 자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군이 파견한 특무 놈들이 성화를 부렸다. 맏아들마저 미제를 몰아내려고 조선 전쟁에서 희생됐다.
(저 어린 손자 경수를 어쩌겠는가? 경수와 경주는 이부동복 형제간이지만 장차 서로 원수의 아들이라 서로 복수하려고 하지 않을까?)
병완은 이일 저일 근심이 태산 같았다.
(주책없이 오래 사니 맏아들을 다 앞세웠구나. 어지러운 난시야. 전우와 형제가 원수로 돼 서로 죽여야 되는 전쟁! 이 놈의 전쟁이 언제 끝날까?)
병완은 저도 몰래 밭고랑처럼 파인 이마 쌀을 찌푸리더니 주름살이 조글조글한 두 볼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때 상순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원수를 다 갚았는데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백발머리 늙은이가 검은머리 아들을 앞세운 비길 데 없는 마음을 누가 다 알겠느냐?”
병완은 막내손자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바닥으로 눈귀에 글썽한 눈물을 쓱 닦으며 몸을 돌려 촌공소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내 공안사업을 그만두고 조선 전선에 나가 큰아버지 원수를 갚겠습니다.”
“뭐라니?”
병완은 자리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너 공안국장을 하지 않고 전선으로 가다니?”
“여기 미군 특무도 다 잡아냈지. 할 노릇이 있습둥? 미군이 여기까지 쳐들어오기 전에 총을 메고 미군 양키놈들과 통쾌하게 싸워 봤으면 좋겠습니다.”
병완은 한참 궁리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전도를 잘 생각해봐라. ”
상순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할아버지, 미제를 몰아내고 제가 퇴대하면 이 마을에 돌아와서 할아버지와 함께 백성들이 쌀독과 물독을 꼴딱꼴딱 채워놓고 잘 사는 사회주의 새 마을로 건설하면 안 됩니까? 이젠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연세가 계시는데 제가 옆에서 조석으로 보살펴드려야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예로부터 충신은 효자 아니야.”
상순은 정중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혁명사업을 잘하는 나라의 충신이 될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부모를 효성을 다해 모시는 효자로 되겠습니다.”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 충신과 효자 다 될 수 없느니라. 어느 한 가지는 버려야 한다. 우리 근심하지 말고 공안국장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나 상순은 이미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내 하루 이틀 생각한 게 아닙꾸마. 혁명사업과 효성을 위해서라면 난 벼슬도 초개같이 여깁니다. 마을에 돌아와 혁명사업과 효성을 모두 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둥? 딱 공안사업만 사업입둥? 마을에 와서 사회주의 건설을 잘 해 마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잘 살게 해도 역시 혁명을 하는겝꾸마.”
병완은 촌공소에서 나가는 너부죽한 상순의 잔등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쩌자고 낮은 돌을 밟아? 효자로 되려는 걸 보니 큰 일 하긴 틀렸구나.”
상순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명옥을 보고 물을 끓이라고 하였다. 그는 괭이와 삽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 마당 눈 밑에서 흙을 꺼 버치에 담아 정지에 들여왔다.
기준은 옆구리가 아파 상을 찡그리면서 윗방에서 일어나 앉았다.
“뭐하려고 그래?”
상순은 바가지로 가마 안에서 김이 물물 나는 뜨거운 물을 퍼서 흙에 부었다.
“벽을 발라야겠습구마.”
“야, 어떻게 겨울에 언 벽을 바르니?”
상순은 삽으로 흙을 이겼다.
“지금 바르지 않고 어떻게 추워서 이 겨울을 나겠습둥?”
기준은 눈을 치켜떴다.
“참군할 예산이야?”
“예. 미국 놈들이 우리 연변에까지 특무를 보내는 거 봅소. 어디 여기서 마음 놓고 살게 합둥? 조선 전선에 나가 통쾌하게 미군 놈들을 쓸어 눕히겠습꾸마. 그간 아버지 아픈 몸으로 수고하겠습구마. 조선전쟁이 끝나면 마을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조석으로 모시겠습꾸마.”
“뭐라고? 공안국장은?”
“근심하지 맙소. 마을 혁명도 혁명입꾸마. 아버지와 처자들을 굶게 할 순 없습꾸마.”
기준은 흙에 뜨거운 물을 쳐 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얘, 네가 국장인데 우리 이 기회에 영월구로 이사 가면 안 되니? 대대손손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아들 덕에 시내 사람으로 살면 좀 좋니?”
상순은 흙을 이기던 삽을 짚고 서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내라고 어째 아버지와 처자들을 시내호구로 올리고 시내에서 편안히 잘 살게 하고 싶지 않겠습둥? 허나 공산당원은 권력을 빌어 사심을 챙겨선 안 됩니다. 더구나 조직에 손을 내밀어 부담을 끼쳐선 안 됩니다. 내 마을에 돌아오면 모든 게 다 풀릴 겁니다.”
기준은 완전 다른 사람이 돼버린 상순을 보고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큰형님을 조선 전쟁에 잃었는데 또 너를 생사를도 모를 전쟁터에 내보내? 정말 근심스럽구나.”
“근심하지 맙소. 난 항일유격대원 때부터 일본 놈과 국민당 군, 토비, 미군특무들과도 싸웠습꾸마. 내 전투경험과 무예면 얼마든지 미군 양키 놈들을 까부실 수 있습꾸마.”
상순은 외양간에 들어가 소똥을 퍼내 진흙에 이겨 구새 목으로부터 돌아가면서 벽을 발랐다. 허나 인차 흙이 얼어 바르자마자 인차 떨어졌다. 그리하여 상순과 기준은 더운 물을 끓여가지고 흙을 이겨 얼기 전에 벽을 발랐다.
원래 기둥을 세우고 수수대로 에를 대충 엮어놓고 흙을 대충 바른 얇은 벽이어서 겨울에 집안이 이가 덜덜 떨릴 지경으로 추웠다. 쑥대 같은 마른 풀대로 불을 때서 밤중은커녕 초저녁도 되기 전에 구들이 얼어들기 일쑤였다.
그런데 눈보라 치는 초 겨울에 언 벽에 소똥을 바른들 제대로 붙겠는가? 바람을 어찌 막으랴?
허나 상순은 그렇게라도 벽을 발라놓아야 조금이라도 시름 놓고 집을 떠나 부대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때 앞마당이 대성통곡치는 소리 들렸다. 시끌벅쩍 시끄러워졌다.
“누가 저래?”
아버지 말에 상순이 앞마당에 나갔다.
윗집 덕성이 주먹으로 벽을 쿵쿵 쳐대며 대성통곡을 치는 것이었다.  그는 상순을 보자 씽 덮쳐들어 멱살을 틀어쥐었다.
“야, 이 놈 새끼야, 죽고 살고 해 보자. 네 놈이 내 조카를 죽였어! 난 이젠 아들딸도 조카도 없어. 아내도 손자도 없어! 무서울 거 없어!”
상순은 덕성 영감을 콱 밀쳤다. 덕성 영감은 울바자 굽에까지 뿌리어나가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다행히 뒤에 울바자에 걸려 뒤 골은 깨지 않았다.
“영감! 적반하장이라고 누가 할 소리를 합둥? 용천은 우리 성칠 큰아버지를 쏴 죽였어!”
“병수가 말하지 않던? 그들 둘은 진달래 때문에 깨끗한 결투를 했다고! 성칠은 용천의 경호원이 쐈더랬어.”
“결투? 이 놈 영감 정말 정신 있어? 어째 남조선 특무 둘이나 영감네 집에 들었댔어? 영감도 남조선 특무를 도운 혐의가 있어!”
상순은 세 귀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마을 사람들이 울바자 밖에 와 웅성거렸다.
지군선은 때를 맞났다고 지껄여댔다.
“공안국장질을 하더니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긴. 흥! 이 마을이야 병완 영감과 상순이 쥐락펴락 하는 세상이 아니고 뭐요?”
상순의 세귀눈에 독기가 서리었다.
덕성은 머리를 상순의 가슴팍에 들이대고 떠밀었다.
“이 자식아, 그 권총으로 날 죽여! 내 남조선 특무여. 죽여라! 죽여! 이 놈아!”
상순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며 참다못해 손바닥으로 덕성 영감의 머리를 콱 떠밀었다.
덕성 영감은 밑둥 잘린 썩박나무처럼 나가 쓰러졌다.
“영감, 한 고향 영감이라고 놔두는 줄 아오.”
상순의 말에 덕성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더니 울바자 밖으로 나가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펼치며 소리쳤다.
“아들 딸이 다 죽고 없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어허허!”
상순은 마을 사람들이 쑤군거리자 안 되겠다 싶어 고함쳤다.
“칠백은 용천이 죽였소! 사촌형제가 총창으로 육박전 하다가 찔러 죽였소!”
처음 듣는 상순의 그 말에 덕성 영감은 천천히 돌아섰다.
“너거 어찌 알아?”
“병수 형님에게서 다 들었어!”
“그래? 맞다! 알고 보니 너도 특무의 동생이라. 병수 특무를 너 형이라면서? 허허허. 이 특무 동생 놈아, 너도 특무야!”
기준은 듣다못해 한발 나섰다.
“형제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 죽이는 이 놈의 난세에 용천은 남조선을 지키느라고 우리에게 총을 겨눴고 우린 우리 중국을 보위하기 위해 용천을 나포했소.”
사람들 속에서 흥수 옆에 선 춘실이 빨간 입술을 앵두 알처럼 쫑긋했다가 입귀를 씰룩거렸다.
“픽! 권총을 찼다고 우쭐거리긴!”
상순은 가까이에 있었으면 춘실의 귀쌈이라도 한 대 찰싹 갈겨주고 싶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흩어져 간 후 아버지와 함께 벽을 대충 한 벌 발라 놓았다.
오후에 공학과 벽선이 상순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큰조카, 얼른 올라오라.”
상순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상순은 딸을 넷이나 줄줄 낳으면서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섯째 애는 아들을 보려고 넷째 딸의 이름을 금자라고 지었다. 그는 조카들인 공학과 동선을 자기 아들처럼 귀해 하면서 각별히 아꼈다.
“무슨 일이냐?”
“삼촌, 벽선과 결혼해야겠습니다.”
벽선은 조왕칸 쪽으로 앉아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 채 손가락으로 까래 톱을 매만졌다.
“그래, 내 입대하기 전에 너희들 사돈보기도 해주고 결혼식을 올려주면 시름 놓겠다. 아버지하구 엄마는 어쩌더냐?”
공학은 너부죽한 얼굴에 만면춘풍이었다.
“부모들은 우리 둘의 약혼을 동의했습니다. 삼촌과 함께 사돈인사를 가면 어떻겠는가고 합디다.”
“좋아. 내 사돈인사를 하러 가지 뭐.”
공학은 그저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다.
벽선은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김 동무, 그 뒷덜미 부스럼이나 잘 치료하오.”
“어째? 무슨 부스럼이기에 결혼을 미뤄?”
공학은 머리를 숙이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뒷덜미를 가리켰다.
“전번에 조선인민군 한 부상병에게 내 피를 뽑아 수혈했는데 부스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부스럼이 점점 더 커지면서 띠끔띠끔 아픕디다.”
상순은 공학에게 다가가 부스럼을 들여다보며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병원에 있는 게 자기 병도 소홀히 하지 말고 제때에 치료해라.”
그러나 공학은 대수로워 하지 않았다.
“언제 부스럼을 치료할 새 다 있겠습니까? 생사를 다투는 부상병들이 수태 들어오는 때.”
상순은 공학이가 병원에 있으니까 후에 잘 치료하리라고 믿고 화제를 돌렸다.
“새애기 고향이 어데요?”
“국자가에 있습니다.”
“음, 시내 처녀구만.”
뒤이어 상순은 벽선의 가정정황을 죽 물어 보고 아버지를 보고 사돈보기와 결혼 택일을 해 형님한테 보냈다.
조카들이 돌아가자 상순은 명옥과 함께 마당에 나가 도리깨를 휘둘러 콩 타작을 했다.
이튿날 상순이 정미소에서 벼를 찧어 수레에 실을 때다.
영월구에서 천룡구 부국장과 허영호 과장이 찾아왔다.
“김 국장, 어서 공안국으로 돌아갑시다.”
상순은 겨 먼지가 묻은 손을 탁탁 쳐 털고 손을 내밀었다.
“천 국장한테 정식으로 말하자 했는데 잘 왔소.”
뒤이어 상순은 권총집을 벗어 천룡구 국장에게 내밀었다.
“왜 이럽니까? 김 국장.”
천룡구는 놀랐다. 허영호도 깜짝 놀랐다.
허나 상순은 아주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었다.
“국장을 하지 않고 항미원조 전선에 나가겠소.”
천용구 국장은 입을 헤 벌렸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여기도 전선입니다. 여기서도 미제와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상순은 정미소 안에서 큰아버지랑 사촌형님이랑 내다보자 천룡구와 허영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나직이 말했다.
“난 혁명을 위해서라면 벼슬 같은 건 초개같이 여기네. 전선에 나가 미제 대부대와 통쾌하게 싸워보고 싶소.”
“공안국 사업은 어쩝니까?”
“난 동무들이 꼭 공안사업을 잘하리라고 굳게 믿소. 내 상급 공안부문에 이미 제기했소. 내 대신 천 국장을 국장으로 제발하고 허영호 과장을 부국장으로 제발시켜달라고.”
“안됩니다! 김 국장!”
“못갑니다. 김 국장!”
천룡구와 허영호는 이구동성으로 상순을 말리었다.
상순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난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돌아가 허백호 서기와 전 현 공안일군들에게 전해주오. 바쁜데 다신 나를 찾아오지 마오. 난 인차 마을의 청년들과 함께 참군해 전선에 달려 나가야겠소.”
그래도 천룡구는 상순의 팔을 잡고 눈물이 글썽해 말리었다.
“왜 이럽니까? 그래도 난 김국장이 집 근심을 할까봐 김국장네 집식구들을 영월구에 모셔가자고 했는데. 왜 이럽니까?”
그러나 상순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오. 절대 안 되오. 난 조직에 부담 끼치지 않겠소.”
천룡구 부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우리 공안국엔 김국장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김 국장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김 국장, 우리와 함께 영월구로 돌아갑시다.”
허영호가 쌀 마대를 수레에 싣는 사이에 천룡구는 상순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나지막이 뒷말을 이었다.
“허백호 서기도 이젠 진수해향당위 서기로 전근해 간답니다. 근심 말고 돌아갑시다.”
“허 서기 때문이 아니요. 갓 일떠선 우리 중국을 지키기 위해 조선 전선에 나가려는 거요.”
천룡구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허영호도 쌀 마대를 수레에 실어다 상순이네 집에 부리어 주고 나서 돌아가자고 극구 권고했다.
허나 상순의 마음은 바위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상순은 조왕간 쪽에 죽 세워놓은 쌀독을 열어 보이면서 말했다.
“보오. 내 서른이 넘도록 우리 집 쌀독에 이렇게 새하얀 입쌀이 꼴딱꼴딱 찬적은 없었소. 난 우리 온 마을 나아가서 우리 중국 조선족들이 배불리 먹는 사회를 목숨으로 지키고 싶소.”
상순은 천룡구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탁했다.
"소서구 장리국이 사라졌소. 혹시 대만특무들과 련관되지 않았는지 면밀히 주시하오."
"예, 꼭 잘 감시하겠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장리국은 대만특무들과 함께 휩쓸려 특무활동을 하다가 대만특무들을 데리러 온 비행기에 앉아 대만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한편, 천룡구 부국장과 허영호는 민병이던 자기들을 공안전사로, 공안간부로 양성, 제발시킨 은사님인 상순과 차마 리별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팔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놓으며 영월구로 돌아갔다. 
       산과 들에는 스승과 제자들이나 다름없는 그들 리별의 눈물로 하얗게 바래진 눈보라가 윙윙 기승스레 불어쳤다.


       저자 주: 천룡구 부국장은 김상순(당시 실재한 공안국장 김진임.)의 제발을 받아 김상순의 후임으로  안도현공안국 국장으로 제발됐으며 선후하여 왕청현공안국 국장, 왕청현인민검찰원 검찰장으로 오래동안 사업하다가 정년리직휴양한 력사적으로 실재한 리직로간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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