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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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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83)
2017년 09월 30일 09시 16분  조회:129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8. 합작사
소서구 남쪽 천지꽃산에 먹장구름이 덮쳐왔다.  먹장구름을 헤가르며 불 뱀 몇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대지를 내리 채찍질 했다.
우르릉 꽝!
천지를 진동하는 우레 소리와 함께 대살 같은 소낙비가 창창 억수로 쏟아졌다.
한참 쏟아지던 소낙비가 갑자기 뚝 멎고 서쪽 하늘이 건뜻 들리더니 구름이 말끔히 씻겨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곱게 비끼었다.
병완은 이마에 호미를 쥔 손을 얹고 맑게 개이는 하늘을 둘러보더니 촌공소에서 나가 호미로 늙은 비술나무에 건 종을 댕, 댕, 댕 두드렸다.
“일하러 나오오!”
“장마가 지기 전에 기음을 매야겠소.”
상순이 제일 먼저 토성 안 촌공소에 들어갔다. 촌공소 옆집 상우 형님이 아주머니와 함께 호미를 쥐고 나왔다.
병완이 한참이나 종을 두드려서야 대여섯 사람이 마지못해 호미를 쥐고 토성 안에 들어섰다.
병완은 너무 기차서 중얼거렸다.
“합작사에서 양식을 나눌 때는 너도 나도 앞장서 주머니를 들고 달려오더니 일하러 나오라고 하면 모두 자라목이 되니 어쩌겠니?”
상순은 할아버지 팔을 받치고 서서 나직이 말했다.
“할아버지, 아마 사원들이 집체 일을 자기 집 일처럼 여기지 않는 거 같습니다.”
병완은 벌칵 성을 냈다.
“에끼, 이 놈아, 그게 동길 녀석 말과 다를 배 뭐냐?”
“건 사실입니다. 사원들이 집체 일을 자기 집 일처럼 생각하고 일하게 하려면 맑스- 레주의, 모택동 사상과 사회주의 이론으로 사상교양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는 도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병완은 상순을 쳐다보았다.
(정말 막내손자 말처럼 종이나 쳐서 나오라고 해 억지로 붙들어 일을 시키는 수야 없지.)
그날 병완과 상순은 사원들을 데리고 소서구 옛날 상우네 상우지와 상길이네 밭 강냉이 기음을 맸다.
이튿날부터 마을에서 사람들이 뒤에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렸다.
"아침에 소낙비가 왔는데 어떻게 기음을 맨다고 이러오?"
한 사원이 호미에 찰떡처럼 들어붙은 흙을 손으로 뜯어내면서 두덜거렸다.
“김 촌장은 농사군 같지 않소."
"자기 자손들의 밭 자리 기음부터 맨다.”
“합작사를 해도 노동력이 많은 김 촌장 자손들이나 잘 살겠는지 노동력이 적은 집은 어디 입에 풀칠이나 하겠소?”
마을에 별의별 소리가 다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참말 답답했다.
(자기가 자손들을 데리고 피땀으로 일군 밭을 몽땅 합작사에 내놓지 않았는가?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집집마다 쌀독을 꼴딱꼴딱 채워놓고 잘 살게 하려고 밤낮 헤매는데 뒤에서 통통한 말을 하다니!)
병완은 원통했다.
이튿날 아침 상순이 촌공소로 찾아왔다.
“할아버지, 밤새 무사했습니까?”
상순이 호미를 놓고 구들에 올라왔다.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마을 사람들이 통 말이 아니다. 호조조 때까진 괜찮았다. 우리 집안에서 애나게 일군 소서구 밭을 수태 내놓으니 입이 함박만 했다. 그런데 합작사를 한 후부터 쩍 하면 비쭉거리거든.”
상순은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위로해 주었다.
“할아버지, 마을 사람들이 합작사에 대해 미처 이해하지 못한 탓입니다. 세세대대로 개체로 농사를 지어온 그들을 보고 하루 아침에 양 무리를 몰듯이 집체로 일하라니까 그러는 겁니다. 또 노동력이 적은 집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가을에 차례질게 적으니까 일 할 열성이 없는 것입니다.”
병완은 상순을 힐끔 가로보면서 볼 부은 소리를 했다.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은 사회주의 분배원칙이 아니냐? 사회주의 분배원칙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정말 코 막고 답답하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이전에 저 소서구 밭을 대여섯이 달려들면 일주일 안에 다 매지 않았고 뭐니? 그런데 합작사 사원 3, 40명이 사흘 김을 매도 다 매지 못한다. 모두 날일 공만 벌자고 일축은 내지 않고 호미를 쥐고 언제 해지겠는가고 멀뚱멀뚱 하늘만 쳐다본단 말이야.”
상순은 내심하게 할아버지에게 말씀 드렸다.
“그들에게 사상교양을 해서 사회주의 분배원칙과 우월성을 알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병완은 곰방대에 담배를 재우다가 정중하게 말했다.
“얘야, 넌 군정대학에 다녀서 사회주의 이론을 잘 알지 않고 뭐야? 네가 촌 당 지부 서기를 맡고 저 깨지 못한 마을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사상교양을 해라.”
상순은 더는 사양하지 못했다.
며칠 후 상순은 당 지부회의에서 당원들의 민주선거를 거치고 진수해향 당위의 비준을 거쳐 정식으로 함흥 촌 당 지부 서기를 맡게 됐다. 병완은 당 지부 서기를 내놓고 촌장만 했다.
상순은 서기를 맡자마자 사원들에게 사회주의 합작화의 우월성에 대한 사상교양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상순은 사전에 맑스와 엥겔스, 레닌, 쓰딸린, 모택동주석의 초상을 촌공소 벽에 정중하게 모셔놓고 그날 저녁에 사원대회를 열었다.
사원들은 촌공소에 모여들어와 벽에 걸어놓은 도사들과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에 눈이 끌렸다.
학수는 상순을 보고 “허, 김 서기 오더니 촌공소에 수염이 좋은 영감들을 많이 모셨구먼.”라고 했다.
사원들도 웅성거렸다.
“정말 그래, 저 서양영감 하얀 구레나룻이 정말 멋있소.”
지군선이 제일 첫 초상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영감은 누구요?”
“우리 혁명의 도사 맑스오.”
상순의 대답에 군선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오, 맑스! 이름도 별나구나. 그래 성이 '맑'이고 이름이 '스'란 말이요?"
"세상에 ‘맑’씨도 있소?”
상순은 속에서 치미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설명했다.
“혁명의 도사 맑스의 성은 맑스고 이름은 칼이오. 보통 ‘칼. 맑스’라고 부르오.”
성수가 또 물었다.
“어째 이름이 앞에 있고 성이 뒤에 있소? 성이 칼이고 이름이 맑스인 걸 그러지 않소?”
“서양 사람들은 우리 동양과는 달리 이름을 앞에 쓰고 뒤에 성을 쓰오.”
“오~ 서양은 별나구나.”
상순은 맑스에 뒤이어 엥겔스와 레닌, 쓰딸린,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를 가리키면서 일일이 소개해드렸다.
그런데 성근이 또 빈정거렸다.
"에이, 난 저 네번째 령감은 보기도 무섭소."
"누구기에?"
"우리 쏘련 쓰딸린이요."
"어째?"
사원들은 또 궁금했다.
"아무래나 말할 일이 아니오."
성근은 용케도 목구멍까지 올라와 간질거리는 말을 꾹 참아냈다.
       상순은 사원들한테 맑스의 “자본론” 핵심인 잉여가치학설로부터 시작해 자본주의 페단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에 이르기까지 쭉 이야기 했다. 사원들은 흥미진진하게 듣기 시작했다.
      상순이 레닌과 쓰딸린이 세운 소련 사회주의 정황을 간단히 소개하자 모두들 귀를 도사리고 들었다.
학수는 제일 앞에 앉아서 공책에 뭐라고 적으면서 상순의 연설을 도정신해 골똘히 들었다.
드르릉 드르릉
상순이 살펴보니 제일 뒤에서 박성근이 무릎 우에 세운 팔꿈치에 길죽한 번들머리를 고인 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성근이!”
드르릉 드르릉
상순이 고함쳐 불러도 성근은 계속 구들 고래가 다 꺼질 지경으로 코를 고르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눈길이 되로 쏠렸다.
그때 학수가 뒤에 대고 “성근이! 이 사람! 깨나지 못하겠는가?!” 하고 버럭 고함쳤다.
“엉?! 어쨌다고?”
그제야 성근은 깨여났다.
“사람이, 원, 코를 어찌나 세게 구르는지 구들 고래 다 꺼질 지경이오!”
상순이 고함쳐서야 성근은 입귀에 흐른 침을 손바닥으로 쓱 닦으면서 두덜거렸다.
“난 또 무슨 큰 일이 났다고.”
상순은 무섭게 성근을 쏘아보았다.
“당신 머나먼 소련에서 일가친척도 없이 함흥촌에 왔다고 불쌍해 좀 봐주니까 통 말이 아니구먼.”
성근은 마주 바라보지도 않고 게두덜거렸다.
“에이고, 소련에서 날마다 막 씃고 내리 씃고 해도 쓸데없습데. 배불리 먹고 잘 살면 다요.”
상순은 공책을 내리우면서 박성근을 노려보았다.
“뭐라오? 세계 혁명의 위대한 도사를 아무래나 말하겠소?”
그래도 성근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내 그 놈의 정치 학습이 싫어서 소련에서 여기 달아났소. 꼴호즈 하니 영 틀렸어. 꼴호쯔라면 그 우둔한 쏘련의 소들도 가기 싫어했소. 소들도 꼴호쯔에 가면 굶어서 빼빼 여윈다는 거 아니까 말이요. 그런데 여기 중국에서 꼴호즈를 잘 모르면서 그 길로 또 가려고 하니 참 답답하오.”
상순은 눈귀를 느슨히 풀었다.
사원들이 물었다.
“꼴호즈라는 게 뭐기에 그리 나쁘다고 그러오?”
박성근은 우쭐해서 올방자를 틀고 앉았다.
모두들 상순에게서 눈을 떼 성근의 쪽을 뒤돌아보았다.
“꼴호즈라는 건 세상 못쓸게요. 여기서 말하는 합작사와 같은 ‘집체농장’이오. 꼴호즈를 해놓고 집체로 농사를 지으니까 모두 일을 하지 않습데. 소련 마우재들이 특별히 게으르오. 일하기는 싫고 맨날 술병을 안고 돌아다니면서 주정만 부린단 말이요. 적극성이 없어 어디 일이 축나오?. 밭에 범이 새끼 칠 지경인데도 술만 처먹구 집에서 녀편네를 껴안고 그거만 하면서 씩식거린단 말이요. 같은 밭에 같은 사람이 농사를 짓는데 개체로 할 때보다 산량도 더 나지 않고 먹을 알이 없었소. 모두 어디 자기 집 일처럼 하오?"
     숱한 사원들은 상순의 강의는 제체놓고 돌아앉아서 성근의 하소연을 들었다. 상순은 강의를 그만두고 소피 보러 가는 척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성근이 마음대로 말하라고 내버려두고 바깥에서 엿들었다. 
     성근은 어깨 어쓱해 부쩍 열을 올려 연설을 계속 해재꼈다. 
     "쏘련엔 묵밭이 많아 좋았소. 밭이 또 비옥해서 부지런히 가꾸면 먹을 근심이 없어서 살만했소. 마우재들은 게으르다 못해 내물에 물고기 늙어죽어도 잡아 먹지 않소."
     그때 학수 령감이 끼어들었다.
     "에끼, 이 사람아, 혼자 다 아는 상하지 말게. 내 들은 건 마우재들이 냇물 고기를 먹지 않는다더라이,"
    "게을러 그래."
     "뭘 안다고 끼어들어?"
    학수도 지려고 하지 않고 목에 지렁이 같은 핏대를 세웠다.
    "마우재들은 바다 고기만 먹지 냇물 고기 먹지 않는다이."
 그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건 그렇다 치고 내말 들으라이. 쏘련에서 우리 조선 사람들이 일본 놈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일 본 놈들과 내통하는가 해서 밤중에 강제로 기차에 마구 실어서 울라부지또크에서 머나먼 내지로 실어갔소. 조선 사람들은 가지 않겠다고 울고 불고 비난사정해도 되오? 난 처자를 데리고 도망쳐 수림에 가서 납작 엎드려 있다가 겨우 소련을 떠나 중국에 달아났다니까. 야, 우리 조선 사람들이 저 훈춘 맞은켠 쏘련 해변가에 쭉 가면서 어떻게 일군 황무진데 두고 오자니 기 딱 찹데. 헌데 여기서두 꼴호즈를 할 줄은 몰랐소.”
사원들은 모두 귀 솔깃해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성근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닥치지 못하겠는가! 또 횡설수설 망발하면 가만나두지 않겠소.”
성근은 콧방귀를 뀌면서 눈을 감고 억지로 입을 꾹 다문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 날 회의는 성근이가 빈정대는 바람에 흐지부지해졌다.
“모두들 곤하겠는데 오늘 학습은 이만 하겠습꾸마.”
상순은 집에 돌아간 후 밤중이 되도록 성근의 말을 반박할 준비를 하느라고 등잔불 밑에서 동북군정대학 때 필기장을 뒤적이었다.
이튿날 기음을 매고 첫 쉼을 쉴 때다.
“여러분, 여기 모이십시오.”
“낮에 일하고 저녁에 곤하기에 오늘부터 쉼에 밭머리에서 회의를 하겠습꾸마.”
사원들은 상순의 눈치를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깡깡 마른 이론을 말해 누가 알아듣겠소?"
"글쎄 말이오. 여기 합작사지. 당학교오?"
      심지어 박성근은 상순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사원들 속에서 벌떡 일어나 목에 지렁이 같은 핏줄을 세우고 말했다.
      "상순이, 난 쏘련 홍군이 독일 침략군을 까부신 전쟁은 봤소. 그런데 중조 군대가 미군 놈들을 짓부신 전쟁은 보지 못했소. 조선에 나가 양키놈들을 족치던 전투얘기나 좀 해주오."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소. "
상순은 공책도 쥐지 않고 호미 자루를 짚고 서서 말을 시작했다.
“광복 전에 우리는 나라가 망해 일제 놈들과 조선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를 받아 손바닥만 한 땅도 없어 살길을 찾아 쪽박을 차고 이 간도에 들어왔습니다. 허나 천하의 까마귀는 다 검다고 중국 지주들은 조선 지주들보다 못지않게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었습니다. 황무지를 일구게 한 후 소작료를 8할씩 걷어 갔습니다. 우리는 항상 뼈 빠지게 일해도 해마다 보리 고개를 넘기 힘들었습니다.”
모두들 여기저기에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지주들이 무엇에 의해 배 터지게 먹고 살았겠습니까? 그들은 소작료를 혹독하게 걷어가면서 우리를 착취해 잘 살았습니다. 지주들은 고이 놀고서도 배 터지게 먹고 살고 우리는 날마다 소나 말처럼 일해도 죽물마저 먹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쪽 구석에 머리를 두 다리 새에 처박고 앉아 있는 장학산과 장충국을 쏘아보았다.
상순은 과거를 회고시킨 자기 말이 사원들의 마음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리 위대한 중국 공산당이 인민을 영도해 일제를 몰아내고 지주를 청산해 우리 빈농들에게 밭을 나눠주었습니다. 당과 정부에서는 민족 차별이 없이 조선에서 건너온 우리에게도 한족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밭을 주었습니다.”
이때 학수가 우쭐 일어나 “위대한 중국 공산당 만세!” 하고 구호를 불렀다.
“공산당 만세!”
“공산당 만만세!”
사원들도 따라 구호를 불렀다.
상순은 열의가 오른 군중들에게 사기 나 연설했다.
“우린 더는 지주들의 착취를 받지 않고 마음껏 농사를 짓고 살게 됐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이제 우리를 영도해 더 잘 살게 하려고 옛날에 없는 호조조, 합작사를 차리게 하였고 이제 사회주의 인민공사를 꾸려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을 믿고 합작사, 인민공사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 우린 소련 사회주의련방공화국에서 꼴호즈를 차린 경험과 교훈을 잘 섭취해 이 땅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지상낙원을 건설합시다. 공산당을 믿고 사회주의 길로 나가면 행복한 앞날이 있습니다. 여러분, 신심이 있습니까?”
사원들은 호미를 높이 쳐들면서 고함쳤다.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린 절대 소련의 꼴호즈나 우리 나라 사회주의 합작사가 나쁘다는 말을 믿지 말고 당을 따라 사회주의 길로 나갑시다.”
모두들 박수갈채까지 보냈다.
땅땅 마른 이론보다 과거를 들어가면서 한 그의 연설은 성공하였던 것이다. 사원들 속에서 병완은 상순을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진 상순은 오후 첫 쉼에는 항미원조전쟁 때 얘기도 한 대목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원들은 앞다퉈 우르르 밭머리에 모여들었다.
       상순은 사원들 속에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따발렬을 넘어 남조선 땅에 잘못 들어갔을 때오. 갑자기 한개 대대는 될 미군 양키놈들이 괴뢰군을 앞세우고 우리 운송차대를 포위했소. 그 놈들은 비행기 폭격에 뒤이어 땅크(탱크)까지 앞세우고 우릴 공격했소."
사원들은 상순의 이야기를 귀 솔깃해 들었다.
"그런데 우린 글쎄 탄알이 거덜났단 말이요."
"저런!"
성근마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걸 어쩌오?"
사원들은 모두 손에 식은 땀을 쥐고 하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장충국은 젤 뒤에서 반쯤 비스듬히 누워 빈정거렸다.
"또, 또, 제 자랑을 잔뜩 늘여놓는구만. 쯧쯧."
그러나 상순의 이야기는 충국의 예측과는 퍽 달랐다.
"우린 육박전을 벌리며 생사결판으로 적들과 싸웠소. 그번 무명고지 육박전에서 저 병수는 연신 양키놈들을 세놈이나 찔러눕혔소. 저 병수 아니면 내 양옆에 불시에 나타난 양키놈들한테 양옆구릴 허망 찔려 죽을번 했소. 그때 저 병수가 '싸' 하고 고함치면서 그 두 양키놈들을 연속 찔러눕혔지."
"병수, 참 대단하오!"
상순은 젤 뒤에 앉은 성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성수 패장은 마흔대나 되는 긴 운수차대를 이끌고 적들의 포위를 뚫고 승리적으로 후방에 있는 김인섭 연대장부대와 지원군 부대를 찾아갔소. 참 큰 공훈을 세웠소." 
모두들 성수랑 병수랑 태수랑  돌아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 여간 찬탄해마지 않았다.  
그때 태수가 옆에서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저기, 흥수는 뭐겠소. 눈에 달이 올라서 옆에서 돌격해나가는 김영장을 마구 찌르지 않았겠소."
"하하하."
여기저기서 이런 말도 들렸다.
"행방이 없구만."
"흥수는 말씨럭은 잘 해도 싸울줄 개뿔도 모르오."
그러자 사원들 속에서 춘실이 눈물을 흘리면서 도도거렸다.
"남은 나그네 잃어버려 속태우는데. 뒤에서 흉허물 하겠소. 별, 저네만 잘 싸웠겠구만."
성수도 낯이 불그락푸르락해나 씩씩거렸다.
"너거(너네) 그리 잘 싸웠어? 반장하나 주어 하지 못하고서도! 흥!" 
그러자 상순이 황급히 밀어나 태수를 흘겨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흥수 반장도 아주 용감히 싸웠소. 그번 전투에서 병수하구 태수 탱크 기관총과 기관포로 양키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댔소. 야, 얼마나 통쾌하던지. "
그러자 태수가 손사래를 치면서 일어났다.
"아니오. 상순 영장은 더 용감히 싸웠소."
뒤이어 병수와 태수가 네 한마디 내 한미디 이야기했다.

    상순은 괴뢰군은  놔두고 양키놈들을 추격해 산 아래로 짓쳐 내려갔다. 갑자기 바위 뒤에서 쇠기둥 같은 놈이 상순을 나꿔채  쓰러눕혔다. 상순은 벌떡 일어나며 발길로 시꺼먼 놈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그 놈이 허리를 굽히며 가달 두새를 붙잡으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치는 순간, 상순은 공병삽을 잡은 채 날래게  오른 팔로 그 놈의 목을 끌어안으며 원숭이처럼 잔등에 날래게 날아올라갔다.
상순은 공병 삽을 쳐들고 호통쳤다.
"죽고파?! 손들엇!"

"NO! NO!"
"너? 너?! 뭐야?! 핸드 들엇!"
상순은 쳐들었던 공병삽을 반공중에 쳐들며 호통쳤다.
"I Surrender!(난 투항하겠어.)"
"뭐? 아이?!  손 아이 들겠어?! 이놈 핸드(손) 들엇! "
"OK! OK! Hand! hand! My hand!"
상순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그 놈이 손을 쳐드는 걸  보고 투항하겠다는 걸로 짐작했다.
"세계 최강군이란 미군은 맨 이런 놈들이야?!  마이(많이) 마이 핸드 들더라. 흥!  누런 대가리나 쌔까만 놈이나 다 겁쟁이들이구나! 날창도 아니고 공병삽을 들이대도 손을 번쩍번쩍 드니까. 물알 같은 놈들, 진짜 싸울 멋도 없어!"
그는 허무맹랑해 흑인놈을 조롱하면서 공병삽으로 반공중을 가리키더니 호통쳤다.
" 핸드 들엇!"
흑인놈은 목마를 탄 상순을 되돌려보며 자기 손을 쳐들어보이면서 물었다.
"My hand?(내 손?)"
상순은 호통쳤다.
"네 놈은 까짜로 투항하는 건 아니겠지?  핸드 들엇!"
"Yes, I hands up. Den't kill me!(예, 내 손들게. 날 죽이지 마시오.)"
씨꺼먼 흑인놈은 사위를 둘러보며 두 손을 쳐들었다.
"또 아이냐? 엉?! 아이 투항하겠다고?!"
상순은 공병삽을 버리고 그 놈의  잔등에서 미끌어져내려왔다. 곰 같은 흑인놈은 주위를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순간 주위에 지원군이 없는데다가 자기보다 엄청 덩치 작은 상순을 보고 왼눈에도 차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흑인 놈은 상순의 목을 틀어쥐고 곰처럼 깔고 들어앉았다. 왼팔을 부상당한 상순은 곰 같은 놈에게 깔려 숨이 꺽 막혔다. 그는 오른 손으로 흑인놈의 사타구니 두새 커다란 X알을 꽉 틀어쥐었다.
"A! No! No!"
흑인놈은 너무 아파 상순을 훌 놓으며 아우성쳤다.
땅!
총소리와 함께 곰 같은 흑인놈은 옆으로 스르르 너부러졌다.
"흥! 양키놈들도 그저 그렇군!"
상순이 모젤권총으로 쐈던 것이다. 그는 코웃음쳤다. 세계에서 최고강군이란 자들이 이 모양이라는 것에 너무 허무맹랑해 냉소했다.
전사들은 김영장이 앞장서 용감히 싸우는 것을 보고 용기백배 돼 양키놈들을 추격해 내려갔다.
한 개 대대나 되는 괴뢰군은 한개 소대 밖에 안 되는 중국인민지원군을 남북으로 협공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제 탱크와 육군마저 덮쳐 와 지원군 전사들은 용감히 싸우다가 하나하나 영용히 희생됐다.
상순은 쓰러진 전사의 옆구리에서 수류탄을 뽑아들고 태수와 병수를 돌아보며 한어로 고함쳤다.
“탱크를 빼앗자! 엄호해라!”
“옛!”
명사수 태수가 반자동보총으로 탱크 뒤의 양키들을 본때 나게 쓸어 눕혔다. 병수는 뛰여내려가며 연이어 양키놈들을 찔러눕혔다. 양키놈들은 무기 자랑이나 했지 육박전에는 기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그 틈에 상순은 탱크 앞으로 뛰어갔다. 탱크가 그의 옆으로 우르릉 거리며 지나갈 때다. 그는 탱크 위에 훌쩍 뛰어 올라가 탱크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뿌려 넣고 훌쩍 뛰어내렸다.
꽝!
요란한 폭파소리와 함께 탱크가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나머지 탱크는 계속 돌진해왔다.
상순은 수류탄마저 없어 주위를 애타게 둘러보았다. 그는 길에서 활활 타번지는 자동차에 눈길이 멎었다.
"죽어봐라!"
상순은 불길이 이는 자동차에 뛰여갔다. 그는 바곤에 뛰여올라가 불이 반쯤 달린 군복을 안고 덮쳐드는 탱크 위에 뛰여내렸다. 그는 불타는 군복으로 부르릉거리며 연기를 내뿜는 탱크 꽁무니를 꽉 막아버렸다. 순간 탱크 안에 자욱한 연기가 들어가 양키놈들이 탱크 안에서 견디기 힘들었다. 탱크  멈춰서더니 웃덮개 훌 열렸다. 양키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기여나와 뛰여내렸다.
뚜르륵 뚜르륵
그때 태수가 돌격총을 휘둘러 쓰러눕혔다.
"잘 했어!"
상순은 손을 홱 젓더니 탱크 웃뚜껑을 열고 탱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병수와 태수도 뛰어들어갔다. 상순이 탱크를 부릉부릉 몰고 아군의 자동차대오가 도망친 쪽으로 달려나갔다.
"어디로 가는가?"
병수가 의아해 물었다.
"굽인돌이에 가서 뒤따르는 탱크를 없애버리자! 장탄하라!"
"알았소."
그들은 삼도만에서도 손을 맞춰 탱크를 몰고 토비들을 족친 전투경험이 있었다.
병수가 장탄하고 태수가 기관포 방아쇠를 잡았다. 상순은 탱크 헤드라이트까지 켜고 달리면서 멀리 산기슭 큰 길 쪽을 쳐다보았다. 아군의 트럭대오의 헤드라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뒤의 탱크를 제거하지 않으면 몇참 못가 추격당하고 말 것이었다.
그는 굽인돌이를 돌자 탱크를 돌려세우더니 굽인돌이에서 몇마장 떨어진 두번째 굽인돌이에 달려가 은페해 멈춰섰다.
뒤따르던 탱크 두대는 상순이 몬 탱크를 동료 탱크인가고 무작정 뒤따라왔다.
그 놈 탱크 두대가 굽인돌이를 돌아설 때다. 
"사격!"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앞장섰던 미제 탱크는 명중탄을 맞고 웃뚜껑과 포신이 허망 날아났다. 앞의 탱크에서 화염이 충천하자 뒤따르던 탱크는 급정거하더니 도망치려고 대가리를 돌리고 있었다.
"사격!" 
쾅!
두번째 포탄이 날아갔다.
오른쪽 무한궤를 얻어맞은 탱크는  페철이 돼 풀썩 물앉고 말았다. 양키놈들은 탱크 웃덮개를 열고 비명을 지르며 뛰여내리었다. 태수는 탱크 기관총으로 양키놈들을 소사했다. 놈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따르던 양키놈들과 괴뢰군은 굽인돌이에서 무 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도망쳤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탱크 웃덮개를 열고 산기슭에서 싸우는 전사들에게 한어로 명령했다.
“우리 트럭대오가 안전하게 전이했다. 동쪽 마을로 철퇴!”
"옛!"
 성수와 흥수 등 십여 명 전사들이 어둠 속으로 철퇴했다. 
상순과 병수 태수는 탱크를 몰고 도망치는 괴뢰군 트럭을  추격해가면서 기관포와 기관총을 갈기며 소분대의 철퇴를 엄호했다. 괴뢰군 트럭은 보기 좋게 불이 활활 일었다. 괴뢰군들의 비명소리, 아우성 소리로 일대 아수라장을 이뤘다.
이때 남쪽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날아왔다.
쿵! 쾅! 꽈르릉!
전투기들은 길에 늘어선 트럭을 지원군의 트럭으로 알고 폭격하고 소사해댔다. 그러나 상순이네 모는 탱크만은 자기들 탱크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발견하지 못했는지 폭격하지 않았다. 숱한 괴뢰군 트럭들이 폭파돼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제길, 우리에게 폭탄을 던져!”
괴뢰군 병사들은 하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어떤 병사들은 쌕쌔기를 사격까지 해댔다. 그 틈에 상순이네는 탱크를 몰고 좌충우돌하면서 불에 타는 적들의 자동차와 트럭을 마구 절벽 아래에 떠밀어버리고 짓뭉개버렸다. 
"포탄과 기관총탄이 다 떨어졌네."
태수의 말에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저놈 자동창까지 없애버리고 철퇴!"
상순은 탱크를 몰고 도망치는 괴뢰군 트럭을 쫓아가 꽝 냅따떴다. 자동차는 아우성치는 괴뢰군들을 실은 채 허망 절벽 아래로 꺼꾸로 처박혔다.
그는 병수와 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탱크를 양키놈들한테 넘겨줄순 없어!"
"옳소! 없애버리기오!"
상순은 탱크를 돌려 오던 길로 한참 달리다가 불붙는 괴뢰군 자동차에 딱 붙여세우고 탱크(땅크)에서 내렸다. 순식간에  자동차의 불이 탱크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 저쪽 뒤에서 괴뢰군과 양키놈들이 이쪽으로 덮쳐오고 있었다. 탱크가 탈 시간이 될 거 같지 않았다. 태수는 철갑모를 주어들고 자동차 휘발유통응로 다가갔다. 그는  비수를 뽑아  휘발유통을 쿡쿡 찔렀다. 휘발유가 쌕 쏘리 내며 내 뿜겼다. 태수는 철갑모에 휘발유를 꼴똑 받아 탱크 뒤꽁무니에 툭 쳤다. 조급해난 상순은 돌격총을 들어 자동차 휘발유통을 뚜르륵 갈겼다. 휘발유통이 탕 폭발하며 탱크에 불길이 더 거세게 옮겨 붙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사원들은 너무나 통쾌해 고함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야, 통쾌하다!"
"미군 양키놈들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놨다이!"
상순은 도리머리질 했다.
"세계 최강군이라고 우쭐렁거리던 미군은 종이범이오. 원자탄이나 비행기, 땅크를 믿고 우쭐거렸지. 육박전만 하게 되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꼬리빳빳해 도망친단 말이오. 미처 도망치지 못한 놈들은 쩍하면 손을 번쩍번쩍 든단 말이오."
"허허허."
박성근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그 놈들 겁난 파란 눈 보는 거 같소. 그런데 '요 핸드, 마이 핸드' 그게 뭐라는 거요?"
상순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 사단 비서과 과장질 할 때 우리 비서과 영어통역관과 물어보고 배를 끌어안고 웃었댔소. 난 '요 손 들어라'고 '요 핸드' 했는데 '요 핸드'란 영어로 '네 손'이란 말이라오. 그러니 '네 손 들어라'란 말이어서 그 놈 양키놈과 말이 통했단 말이오. 그러니 그 놈은 '마이 핸드' 하고 손을 번쩍 들잖겠소. 영어통역관의 말에 의하면 영어로 '마이 핸드'는 '내 손'이란 말이라오. 그런데 난 '많이 손 들더라.'라고 했지."
성근은 웃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하하, 김영장, 참 대단하오- 보리영어에 조선말까지 섞어서 양키놈을 손 들게 했으니까."
"핫하하."
      사원들도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조용해지자 상순이 또 이런 말을 꺼냈다.
       "미군 양키놈들 이름도 참 괴상한 이름이 다 있소."
       상순의 말에 박성근은 누런 말이발을 다 들여다보이게 허 벌리고 하회를 기다렸다. 
       "우리 비서과 영어통역이 한 양키놈들 포로들을 신문할 때오. 그 놈의 이름을 물어보니깐  '萝卜头(Lo bother :로버터)'라고 하지 않겠소. 또 한 흑인놈은 '톱(톰:Tom)"이라고 하지 않겠소."
       "허허허. 성이 로고 이름이 버터라, 에이, 양키놈들은 원래 '무우대가리' 오. 개놈들은 원래 최강군은커녕 '톱'으로 '무우대가리'나 켜먹고 살 놈들이라니깐."
       "허허허."
       "호호호."
       사원들은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상순은 쉼시간마다 항일유격대 항전, 삼도만토비숙청전투,  남조선 특무와 국민당 특무 잡은 전투, 항미원조 전투 이야기를 섞어 이야기하면서 사원들에게 사상교양을 진행했다. 그러자 그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사원들은 상순의 말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상순의 두리에 뭉쳐 하자는대로 따라 아주 잘 해나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병완이가 촌공소 마당에 걸어놓은 합작사의 종을 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사원들은 스스로 호미를 쥐고 촌공소에 모여들었다.
밭에 나가서도 병완이나 상순이 시키지 않아도 사원들은 밭머리를 가로타고 기음을 매나가는 것이었다. 박성근도 별 군소리 없이 호미를 휘둘러 기음을 수걱수걱 매는 것이었다.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르며 낙조가 산과 들을 붉게 태우며 밭고랑마저 벌겋게 물들였다. 허나 사원들은 흥겨운 노랫소리도 높이 계속 기음을 맸다.
병완과 상순은 코 기러기들처럼 사원들의 제일 앞에서 기음을 매나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하루 명옥이 집안에서 걷다가 발밑에 뭔가 물렁 밟히는 것이었다. 그녀가 구들을 보니 발에 밟힌 낡은 까래 톱에 누런 똥이 묻어있지 않겠는가?
명옥은 벽 밑에 누워 있는 시어머니를 보고 편찮은 시어머니를 몰라온 것이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두 말 없이 바깥에 나가 쑥을 쥐고 들어와 똥 꼬치를 닦아 밖에 던졌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오자 명옥은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상순은 벽 밑에 누운 어머니 곁에 가서 이마도 짚어보고 손맥도 짚어 보았다.
“어머니, 어디 편찮습니까?”
“아니, 아프잖소.”
상순은 어머니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내 혁명을 하느라고 사처로 헤매다나니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병원에 가깁소.”
상순은 잔등을 돌려대고 아내를 보고 “어머니를 부축해 업히오.”라고 했다.
그러나 사련은 며느리 손을 마구 밀어버렸다.
“그만 두오. 없는 살림살이에 무슨 병원이오. 늙어서 그런 건데. 나를 편안히, 편안히 누워 있게 놔, 놔두오.”
사련은 말을 마치자 눈을 스르르 감고 바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준이가 윗방에서 내려와 보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되겠다. 윗방에 눕혀라.”
상순과 명옥은 황급히 윗방을 싹 걷고 누더기 이불이라도 편 후 어머니를 안아다가 모셨다.
연 며칠 상순이네 부부가 아무리 효성을 다해 모시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최사련은 정든 고향 개성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함경북도 명천군 상우남면의 기준에게 시집와서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았다. 그녀는 남편 기준을 따라 1925년에 간도 함흥 촌에 들어와 살자고 애쓰다가 갓 예순이 넘어 자손을 도합 스물대여섯이나 남겨두고 총망히도 세상을 떠나갔다.
상순은 죽물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돌아 간 어머니가 불쌍해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상우 부부와 명옥도 꺼이꺼이 곡을 하면서 눈물을 훔치었다. 동선과 순자, 금숙, 금자도 흐느껴 울었다.
사흘 후 함흥 촌 동산 마루에는 새 묘지가 하나 더 생기었다. 상순과 상우 형제는 피 눈물과 함께 어머니를 누런 흙 속에 모시고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병완은 집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꽝꽝 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내 죽어야 되는데. 오래 살아 별 꼴을 다 보는구나. 아들과 며느리 둘에 손자까지 앞세우고 오래 살아 뭘 하겠는가? 에이고, 불효한 자식들이 나를 외롭게 두고 먼저 가는구나.”
하얀 두루마기와 베옷이 뒤덮인 동산 마루에서는 아직도 구슬픈 곡성이 울리고 있었다.
                   9. 산등성이의 쓸쓸한 무덤
매서운 동지섣달 바람이 총총한 뭇별들을 밝게 씻어놓았다. 칼바람에 밝아지는 달은 똑 마치 바람에 점점 밝아지는 숯불 쪼각 같았다. 삼태성도 온 밤 자지 않고 별빛을 뿌리느라고 곤했던지 하품을 하며 서산으로 넘어가고 동녘하늘에는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명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문을 열고 바깥에 나와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계가 없어 명옥은 항상 학교로 다니는 애들이 지각할까봐 새벽에 일어나 져가는 삼태성과 샛별을 보고 시간을 맞춰 새벽조반을 짓 군 했다.
(아직 일찍 하구나.)
명옥은 집식구들을 깨울 세라 살금살금 집 안에 들어와 구들에 올라가 바느실을 찾아들고 새벽 별빛을 빌어 손으로 만지며 옷을 기우면서 동녘하늘이 좀 더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남편의 옷을 한 뜸 한 뜸 기우면서 미소를 지었다. 성미 급한 남편이 마을에 돌아와서 시할아버지를 도와 마을 사람들을 묶어세워 합작사 농사를 잘 지어 마을 사람들이 호평을 받자 마음이 흐뭇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모래알 같은 눈이 날아와 환히 밝아오는 창호지를 무섭게 두드렸다.
명옥은 이로 실끝을 물어뜯어 끊은 후 부랴부랴 부엌으로 내려가 죽을 쑤기 시작했다.
아침을 지어 놓고 명옥은 곤하게 자는 순자랑 금숙이랑 두드려 깨웠다.
“일어나라. 해가 엉덩이를 다 비추겠다. 어서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라.”
순자와 금숙은 부랴부랴 일어나 죽물을 대충 먹네 했다. 그때면 상순은 딸애들의 책보를 열고 필기장에 자대를 대고 줄을 쪽쪽 쳐 주군 했다.
순자와 금숙은 아버지 사랑에 눈시울을 붉히며 책보를 싸안고 학교로 떠났다.
명옥은 심한 쌀 고생으로 왕복 30리 통학하는 애들에게 점심 도시락도 싸주지 못하고 보내는 것이 내내 마음이 아팠다.
순자는 늘 이른 아침에 책보를 싸쥐고 학교로 반달음질 쳐 갔는데 지각을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점심때가 되면 숙사 학생들은 모두 점심을 먹으러 숙사 식당에 갔다. 잘 사는 집 애들은 진수해 애들을 내놓고 모두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맛나게 밥을 먹었다. 그럴 때면 함흥 촌과 조개덕의 순자랑 경산이랑 모두 군침을 흘리면서 남들이 밥을 먹는 것을 부러워 했다. 그들은 쌀쌀해 나는 배를 끌어안고 바깥에 나가 물앉아 있다가 오후 시간이 되면 교실에 들어왔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오후에 시간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배고파 걷다가도 길옆에 물앉자 쉬다가 또 걷곤 했다.
가을이면 해동 굽인 돌이 길 옆 밭에 퍼런 무랑 누워 있었고 과수원에는 노란 배가 주렁주렁 달려 싱그러운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순자는 귀전에 아버지 우렁찬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참외밭과 무밭에 가면 신 끈을 다시 매지 말고 사과 배 밭에 가 모자를 벗어 다시 쓰지 말고 수건을 다시 매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남에게 무와 배를 훔쳐 먹었다는 의심을 사거나 말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순자는 아버지에게 무서운 매질을 당할 가봐 손을 내밀어 무를 뽑지 못했고 손을 들어 배를 뜯어 먹지 못했다.
순자는 한 마을에서 함께 학교로 다니는 잘 사는 동갑들인 성환이랑 고모사촌동생 칠군에게서 누룽지라도 얻어먹을 때도 있었다. 그때면 순자는 그 애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배고파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순자는 기진맥진해 쓰러지군 했다. 허나 저녁이라고 죽물을 마시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전등불 아래에서 끄떡끄떡 졸면서도 공부를 했다.
어느 날 순자는 책보를 안고 가마 목에 서서 아버지 밥상에 밥을 퍼 놓는 것을 보고 몸을 탈며 떼를 썼다.
“엄마, 도시락을 싸 줍소. 다른 애들은 다 점심을 먹는데 난 항상 굶어 배고파 죽겠습니다.”
“얘, 우리 집 유일한 노동력이 아빠가 아니냐? 아빠하구 할아버지 밥 잡숫지 않고 어떻게 일하러 가니? 일하지 못하면 가을에 쌀을 타지 못해.”
“응, 안 돼, 나도 도시락을 싸 달라. 응~ 응, 응~”
이때 밥상에 마주 앉았던 상순이 성질을 썼다.
“어서 학교로 가! 얻어맞기 전에.”
순자는 바깥으로 뛰어나가 학교로 반 달음치어 달려갔다.
그날부터 순자는 선생님이 한자를 세벌 쓰라고 하면 필기장이 없어 나무꼬챙이로 땅바닥에 다섯 번씩 쓰고 열 번씩, 지어 스무 번씩 썼다.
순자와 경산 그리고 성환은 공부를 잘해 항상 그들의 100점 맞은 모범시험지가 학교 흑판보에 나붙었다. 어떤 때 100점짜리 시험지를 집으로 가지고 오면 상순은 맏딸이 너무 귀여워 와락 끌어안고 빙빙 돌려주었다. 순자도 눈물이 글썽해졌다.
상순이네 집은 어찌나 가난했는지 먹을 쌀이 모자라 금숙이랑 봉자랑 학교를 가지 못하고 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벼 모 내기와 기음을 매야 했다. 소학교 문에도 가보지 못한 상순과 명옥은 자식들까지 까막눈을 만드는 것 같아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랐다. 허나 합작사를 한 후에 웬 영문인지 쌀독을 빡빡 긁어 먹어야 했다.
어느 날, 명옥은 밥상에 마주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순자를 보자 부지중 글을 배우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순자야, 날 좀 글을 배워 달라.”
순자는 포도 눈이 대꾼해 물었다.
“엄마, 이제 공부를 해 뭘 하겠습니까?”
명옥은 공책까지 갖춰 가지고 순자가 공부하는 밥상머리에 다가앉으면서 말했다.
“순자야, 내 할아버지는 이전에 서당 방 훈장이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여자애들한텐 글을 배워주지 않았단다. 그래서 우리 오빠랑 서당에서 공부를 할 때면 난 늘 옹이구멍으로 오빠한테 배워주는 할아버님 말씀을 듣고 천자문을 익혔다. 헌데 지금 넌 얼마나 좋니? 새 사회를 만나서 여자인데도 공부를 하고. 엄만 옛날에 공부를 하지 못 한 게 한평생 한이 됐다. 좀 배워 달라.”
순자는 포도눈알을 말똥거리더니 종알거렸다.
“엄마, 그럼 내 엄마한테 글을 배워 주면 김 선생이라고 부릅소. 돈도 좀 주고.”
그러자 명옥은 순자를 쏘아보더니 공책을 식탁 안에 넣어 버렸다.
“요 죄꼬만 계집년아, 내 공부를 못하면 못했지. 너를 선생이라고 부를 것 같아? 흥!”
“그럼 안 배우겠으면 마오.”
순자도 틀을 차리면서 앵돌아졌다.
모녀간이 수가 틀리는 바람에 명옥은 다시는 글을 배우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철없는 순자도 엄마한테 글을 배워 주지 않고 한뉘 후회 할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명옥은 순자가 배워주지 않는데 순자 옆에서 공부하는 금숙에게서라도 글씨를 배워달라고 할가고도 궁리해보았다.
(에이, 그만두자. 맏이 배워 주지 않는데 둘째가 배워주겠니? 헤이, 이제 공부를 해 밥이 나온다니. 싹 걷어치우자.)
어느 날, 명옥은 사과 한 알을 얻어다가 본가 집 아버지가 짜준 궤안에 넣었다.
이튿날 일요일이여서 먼 학교로 갔던 순자까지 애들이 다 모이자 명옥은 사과를 쪼개 나눠주려고 농궤를 들췄다. 그런데 아무리 옷가지 속을 들추고 또 들춰도 없지 않겠는가?
“누가 사과를 먹었니?”
“응? 우린 모르오.”
명옥이 아무리 몽당비자루를 쳐들고 돌아가면서 물었다.
“사과를 모르니?”
순자와 금숙은 다 “모르오.” 하고 도리머리 질 했다.
명옥이 셋째 딸 봉자에게 몽당비자루를 겨누며 “니 먹었니?”하고 바투 들이댔다.
“아이, 모르오.”
봉자는 하얀 얼굴이 귀밑까지 홍시처럼 빨갛게 상기되면서 “난 먹지 않았소. 난 먹지도 않았는데 어째 나와 이럽니까?” 하고 당황해했다.
순자는 얼마간 짐작이 가서 봉자를 보고 “너 사과를 먹을 때 누가 봤니?” 하고 물었다.
봉자는 어망 간에 “내 사과를 먹는 걸 누구도 못 봤는데 뭐.”라고 얼버무렸다.
명옥과 순자는 눈길을 맞추면서 배를 끌어안고 웃고 말았다.
봉자는 자체 무안에 빠져 구들에 나뒹굴면서 “와-”하고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명옥은 벼 짚을 주어 새끼를 꼬면서 밥상 옆에 조롱조롱 앉아 공부하는 순자와 금숙이 그리고 옆에서 구경하는 봉자를 보면서 한숨을 호 내쉬었다. 생기라는 아들은 생기지 않고 넷째 금자까지 낳다나니 이젠 딸을 넷이나 낳았으니 기막힐 일이 아닌가.
신경질이 난 상순은 넷째 금자의 생일을 쇠지도 않으려고 했다.
그때 웃새집 사랑방에 들어있던 중이 지나가다가 상순이네 집에 문뜩 들어왔다.
“에헴, 이 집 넷째 오늘 생일날인 거 같은데 지나가던 중에게 시주를 좀 하지 않겠소?”
불청객 같은 중이 들어서서 하는 말에 상순은 불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 중이 어떻게 오늘 금자 생일인 거 알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상순은 짐짓 왕청 같은 말을 내 뱉었다.
“생일은 무슨 놈의 생일,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웬 참견이오?”
“생일날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겠소? 환히 아는데 누굴 속이려오?”
“어서 물러가오. 지금 공산당의 세상에 무슨 뚱딴지같은 미신사상을 퍼붓소?”
허나 중도 끈질기게 들어붙어 떠나가지 않았다.
“내 그래도 한다하는 풍수쟁이라오.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으흠, 이 집 넷째 딸이 금자라던가? 저 애를 거저 애라고 보지 마오. 저 애를 잘 대접하면 이제 4년 후에 이 집에 소가 밟아도 우그러들지 않는 떡돌 같은 아들을 태여 날 거오.”
“4년 후에? 쳇, 다 늙어 죽겠소. 언제 마흔이 넘어 아들을 본다고 그러오?”
상순은 곧이듣지도 않는척했지만 은근히 호기심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럼 한 가지만 묻기오. 저기 내 아내가 또 임신했소. 저 배 속의 애는 아들일 거 같소?”
중 영감은 우쭐 일어나더니 “쯧쯧쯧, 내 말을 명심해 두오. 4년 후에 소가 밟아도 우그러들지 않고 세 개 신을 업은 떡돌 같은 아들애가 태어 날 거요.”라고 곱씹어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4년, 4년, 또 그 말이구나. 4년 후면 내 마흔 살인데 애기를 낳을 수 있는가? 전탕 황당한 미신의 소리만 치면서.”
상순은 중의 뒤 잔등에 대고 삿대질하면서 신경질을 쓰다가 돌아서더니 명옥의 배를 쏘아보더니 횡 하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명옥은 배 속에서 노는 애를 느끼며 배를 쓰다듬었다.
“요 불쌍한 것아, 네가 또 아들이 아니면 난 네 애비 아들 비위 성화에 어떻게 배기겠느냐? 네가 어미 고충을 헤아려 제발 아들로 태어나렴.”
이미 생긴 애야 어떻게 딸이든 뭐든 아들로 뜯어고치랴?
괜히 중이 지나가면서 뜨거운 밥을 먹고 이빨이 부러질 식은 걱정을 해 놓아서 명옥이만 속을 태우면서 애를 낳기를 기다리게 되고 말았다.
개체농사를 지을 때엔 밭이 얼마 있으면 농사를 얼마 지으면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다 자기 식량으로 남겨 쌀독이 꼴딱꼴딱 찼다. 허나 합작사를 한 다음 상순이네나 상우네나 숱한 밭을 집체합작사에 들여놓고 뼈 빠지게 일했는데도 쌀독이 홀쪽했다.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긴단 말인가?)
명옥은 늘쌍 공부를 하는 애들이 학교로 늦어가 지각을 할까봐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하다나니 늘 곤기에 몰려 초저녁이면 끄떡끄떡 졸군 했다.
애들은 갓 돌이 지난 금자를 업은 채 새끼를 꼬다가 끄떡끄떡 조는 엄마를 보고 입을 싸쥐고 캐득캐득 웃었다.
순자는 어머니를 깨울까봐 입에 식지를 대고 동생들에게 “쉿-” 하고 말렸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에 명옥은 끄덕끄덕 조아리던 머리를 멈추고 곤기가 몰린 눈길로 겨우 애들을 희미하게 보고는 또 도정신해 새끼를 꼬고 또 꼬았다.
상순은 집에서 나가자 그 길로 토성안집에 가서 상우 형님을 만났다.
집에는 때마침 상우 형님과 아주머니가 있었다.
“형님, 맏조카 앓는다더니 어떻소?”
상우는 울상이 돼 머리를 숙이며 한숨을 지었다.
새금이 두덜거렸다.
“저 영감은 한숨만 쉬면서 아들을 죽이겠다는데. 병원에 가보지 않고.”
그때 뜻밖에도 상우가 머리를 들고 새금을 쏘아보면서 고래고래 고함쳤다.
“내 가보면 어찌겠소? 병원의 의사니까 제절로 제 병원에서 의사를 보이고 치료하겠지. 날마다 가서 붙들고 앉아 있으면 죽을 게 살아나오? 이젠 세월이 바뀌어서 합작사를 한 후에는 집체 일 하러 나가지 않으면 공수를 벌지 못해 쌀도 타지 못하는 거 알면서도 그러오?”
허나 새금은 혀를 끌끌 차면서 나그네를 흘겨보면서 나무랐다.
“어쩜 저렇게 몰인정할 까? 제 새끼 죽어 가는데 병원에 딱 다섯 번 밖에 가지 않고 일 밖에 모른다니까.”
아주머니가 나무라는 말에 상순은 속이 찔리는 데가 있었다. 삼촌으로서 제일 큰 조카가 앓는데 조선 전쟁터로 뛰어다니다나니 한 번도 문안을 가지 못했던 것이 못내 속에 걸렸다.
“아주머니, 그래 그 새기는 어쨌소?”
“누구? 벽선 말이오?”
“양.”
“헤이, 사돈보기까지 다 하고 올 음력설 후에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는데 이게 뭐요? 결혼이고 뭐고 살려 놔야 어쩌지. 참 답답하오.”
상순은 무릎을 탁탁 치면서 하소연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너무나도 미안해 “아주머니, 함께 공학이를 보러 가기요.”라고 했다.
“오늘?”
“양? 조카가 앓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미안하오.”
새금은 그제야 바위처럼 퍼렇게 굳었던 얼굴을 좀 펴면서 단통 해시시해 했다.
“그래도 항상 생원이 사리에 밝다니까.”
상순은 공부를 하는 순애를 보고 “너도 방학을 했지. 앓는 오빠를 보러 가자.”라고 했다.
순애는 공부를 하다가 좋아 퐁퐁 뛰며 다가와 삼촌의 손을 잡았다.
상순이가 아주머니와 조카 순애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개산툰병원에 가 병실의 문을 떼고 들어가 보았을 때다.
공학은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맞이했다. 옆에서 벽선이가 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서는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이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어디 보자. 부스럼이 이렇게 중하단 말이냐?”
“삼촌, 괜찮습니다. 이전에 영자 앓던 부스럼은 아닙니다. 치료하면 나을 겁니다.”
“아니, 이 동무는 병세가 중한데도 그저 일 없소, 일 없소 합니다. 이 병원에서는 안됩니다. YB병원이거나 장춘 성병원에 가야 합니다.”
상순이 보니까 목덜미에 부스럼이 난 곳이 팅팅 붓고 고름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상순은 조카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얘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저 부스럼이 아니구나. 이 시골 병원에서 널 죽이겠다. 안 된다. 당장 YB병원으로 가자.”라고 했다.
공학은 “삼촌,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자기 병원에서 치료해야 보살핌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YB병원에 가면 아는 사람도 없지 치료비나 많이 팝니다.”라고 했다.
상순은 급한 성미였다.
“얘, 당장 짐을 꾸려 가지고 연길에 들어가자. 할아버지 친구의 아들 정규상이 의사질 한다. 큰집 혁내 조카도 연길에서 중의로 소문이 높은 용한 의사다. 우리 두 집에서 집을 팔고 소를 팔아서라도 너를 구해야 한다.”
벽선은 조카에 대한 삼촌의 친 혈육의 정을 가슴 깊이 느낀 나머지 뜨거운 눈물을 이불에 똑똑 떨어뜨리면서 보짐을 꾸린 후 퇴원수속까지 마쳤다.
상순은 조카를 부축해 병원 밖으로 나갔다. 공학은 조선인민군 부상병들을 구급하면서 일해 온 병원을 둘러보았다. 그때 병원의 원장과 의료일군들이 너도 나도 얼마간씩 공학에게 쥐워 주면서 치료비에 보태라고 하며 바래었다.
공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꼭 병을 치료하고 다시 돌아와 여러분과 함께 이 병원에서 일하겠습니다.”라고 답례했다.
YB병원에 입원한 후 상순은 맏조카를 자기 친자식처럼 아주머니와 함께 간호했다. 그는 또 YB병원에서 수소문해 심 혈관 내과에 정규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후 찾아갔다.
기실 정규상은 YB의학원에서 교수를 하면서 YB병원 심혈관내과에 나와 환자들의 병도 보고 있었다.
상순이 공학을 데리고 찾아 갔을 때 정규상은 한창 곱살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여인과 무슨 답답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상순이가 찾아 들어가자 정규상은 상순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그 여인과 주고 받던 말을 뚝 끊었다.
상순은 그들의 주고받던 말을 중둥무이 할 수도 없어 옆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정규상이 그 여인을 보고 “신랑이 이름이 조철호였던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예, 그때 그 집 아버지께서 우리 혼사 말을 해줘서 내 로투구로 시집가지 않았고 뭣입니까?”
“그 일은 알만 하오. 신랑이 일이 정말 답답하오. 그래 부대에 연계해 보았소?”
“예. 부대에서 신랑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가지고 조선에 나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갔던 그 부대 한 개 사단이 몽땅 전멸하고 없어져 찾을 길이 없답니다.”
그 여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깨를 들먹였다.
기실 조철호는 성칠 연대장이 영솔한 사단의 정찰병이었다. 무명고지 쟁탈전 때 그는 성칠 연대장의 명령에 따라 무명고지에 가서 한국군 대대장 이병수를 혀로 붙잡아온 후 무명고지를 탈환하고 사수하다가 미군 쌕쌔기의 폭격과 탱크의 포격에 맞아 바위돌과 흙무지에 파묻혀 장열하게 희생됐던 것이다. 그 후 성칠 연대장 부대는 전멸하다 시피 돼 조철호를 비롯한 숱한 열사들이 장열하게 희생된 일을 누구도 알 수도 증명설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옥선은 찾고 또 찾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었던 것이다.
“그래 열사증이라도 줍데?”
“아니, 언제? 난 열사 증을 주려는 걸 받지 않았습니다. 난 열사증이 필요 없습니다. 신랑을 찾아내야지. 내 신랑은 꼭 살아 있습니다. 꼭 찾아올 겁니다.”
정규상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참 답답하오. 이젠 전쟁이 끝 난지 반년도 넘고 해가 지났는데도 신랑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 여인은 눈물을 훔치면서 하소연했다.
“난 신랑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디엔가 살아만 있으면 세상 끝이라도 찾아 가겠습니다. 저녁이면 달빛이 비껴드는 빈 방에서 신랑 생각에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면서 밤을 새다가도 구새 목에서 쿵쿵 발자국 소리가 나면 혹시 신랑이 웃으면서 문을 뚝 떼고 들어서기나 할 것 같지 않겠습니까? 그래 후닥닥 일어나 달아가 문고리를 쥐고 바깥을 내다보면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동네 나그네 발걸음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난 맥이 풀려 문고리를 쥔 채 물앉아 흐느껴 울군 했습니다. 흐흐흑, 흑흑흑.”
상순이가 들어도 기막힌 사연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을 다 주고 받기를 기다리느라고 바깥에 나가 복도에서 왔다 갔다 했다.
한참 후 그 여인이 정규상의 바램을 받으면서 복도로 나왔다. 머리 태를 땋아 늘인 어깨를 들먹이면서 옆으로 지나갔다. 상순이 그 여인을 보니 아주 젊고 예뻤는데 너무나도 불쌍했다.
정규상은 상순을 들어오라고 하면서 의사사무실로 들어가며 “에이, 무슨 쓸데없는 전쟁을 해서 숱한 여인들이 남편을 잃게 만들 게 뭐요? 그 것도 동족끼리 죽일 내기 하면서 숱한 열사와 과부를 만들었단 말이오.”
정규상이 너무 험한 말을 하는 것 같아 상순은 맞은쪽에 있는 의사의 눈치를 보니 그 의사는 보던 신문을 들어 험상궂은 얼굴을 막는 것이었다.
그런 눈치는 모르고 정규상은 “우리 아래 마을에 있는 김옥선이라고 부르는 저 예쁜 각시를 로투구에 있는 조철호란 총각에게 내 소개해서 시집갔소. 신랑이 돌아오지 못해 어찌 하오? 에이 참, 더러운 세월이란 말이오.” 하고 계속 중얼거리었다.
한참 후 정규상은 상순에게 눈길을 주었다.
“참 오랜만이오. 무슨 일로 찾아 왔소?”
상순은 맏조타의 병 정황을 말하고나서 “내 큰조카를 살려 주오. 어떻게 연줄을 놓아 피부병에 용한 의사를 찾아 병을 봐게 해주오.”라고 간청했다.
“오, 그런 일이오?”
정규상은 상순을 데리고 2층에 있는 피부과에 있는 한 여성의사에게 뭐라고 하더니 데리고 나와 곧추 공학이가 입원한 병실로 총망히 찾아갔다.
그 여성의사는 공학의 혹처럼 팅팅 부어오른 고름 투성이로 돼버린 덜미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상을 찡그리는 것이었다.
“어째 이제야 왔어요? 치료기일을 좀 늦추면 위험해요.”
상순은 의사의 손을 꼭 잡고 “의사선생님, 우리 큰 조카를 꼭 살려 주십시오. 예? 내 머리털로 신을 지어서라도 그 구명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라고 비난 사정을 했다.
“노력해봅시다. 먼저 우리 피부과 입원 처에 입원시킵시다.”
그 여성의사의 분부대로 상순은 벽선과 함께 뛰어다니면서 입원수속을 한다, 조카를 입원실에 업어간다 하면서 채바퀴 돌듯이 맴돌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던데 이건 웬 일일까?
7촌 조카 혁내도 불러 중약도 달여 먹였건만 공학의 뒷덜미 부스럼의 고름은 멎지 않고 병세가 점점 심해져 이젠 목으로부터 얼굴까지 팅팅 부어올랐고 목으로 죽물도 넘기기 어려워했다.
새금은 공학을 붙안고 엉엉 서럽게 울었다. 상순은 죽어가는 맏조카를 뻔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성의사를 찾아가 최대한 의료대책을 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벽선은 어머니와 삼촌이 병실을 비운 틈이면 공학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들먹이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공학은 팅팅 붓긴 얼굴 속에 겨우 보이는 눈으로 벽선을 바라보면서 손을 꼭 잡았다.
“벽선이, 슬퍼하지 마오. 나는 내 피를 빼서 죽어, 죽어 가는 조선인민군 전사를 구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소.”
벽선은 공학의 손을 잡고 애타게 흔들었다.
“동무, 동무 피를 뽑아 수혈하지 않았어도 동문 이런 병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공학은 벽선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한 가지 부탁하기요. 의학적으로 고혈압환자가 피를 뽑아 남에게 수혈하면 이런 부스럼에 걸려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가 꼭 연구해 보오. 정말 고혈압환자가 피를 뽑으면 죽는가? 이후에는 나처럼 고혈압환자가 남에게 수혈하려고 피를 뽑았다가 사망하는 일이 생기지 말게 말이오. 나는 아마 사랑스러운 벽선을 이 세상에 홀로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떠나가야 할 것 같소.”
“그런 말 말아요.”
벽선은 공학의 품에 와락 안기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동무는 내 마음 속으로 제일 사랑하는 선생이요. 꼭 병을 치료한 후 저와 결혼하자요. 약한 말 말아요. 힘내세요. 우린 의사들이예요. 꼭 치료해낼 수 있어요. 으흐흑, 흑흑.”
이때 새금이 들어와 벽선을 공학의 품에서 왈 일으켜 앉혔다.
“정신 있소? 아픈 사람한테 이렇게 엎뎌 있으면 어찌 하오? 숨이 막히겠소.”
그러자 벽선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의 눈물을 훔치면서 한쪽 구석으로 가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공학은 겨우 손을 들어 벽선을 가리켰다.
“엄마는 어째 내 벽선과 말하자 하면 들어와 이러오?”
“응? 네 병 치료에 방해될까 봐 그런다.”
이때 상순이가 들어와 새금을 불러 복도로 나가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학은 나지막하게 “벽선이, 여기 오오.”라고 했다.
벽선이 다가가자 공학은 벽선의 손을 꼭 잡고 떠듬떠듬 말했다.
“벽선이, 사랑하오. 미안하오. 난 글렀으니까 새로운 출발을 하오. 좋은 신랑을 만나 행복하게 사오.”
벽선은 손을 들어 공학의 입을 막았다.
“안 돼요. 전 동무를 영원히 사랑해요. 사랑해. 어, 허헉헉.”
병실에는 벽선의 울음소리에 반죽해 공학의 하늘이 무너질 듯한 한숨소리가 가슴을 허비며 들려왔다. 복도에서는 그러는 공학과 벽선을 들여다보며 새금과 상순이 눈물을 훔쳤다.
공학은 알지도 못할 부스럼을 치료하지 못하고 끝내 이 세상을 떠나갔다.
자식을 앞세운 상우와 새금이 그리고 형님과 오빠를 잃은 동선과 순애의 마음들이야 오죽하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벽선은 병실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상순은 조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정성을 다했지만 끝내 조카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털썩 물앉았다.
“야, 조카를 잃고 나니 엄마 세상 떠났을 때보다도 더 슬프다. 중이 자기 머리를 깎지 못한다고 의사 하는 공학이 제 부스럼을 떼지 못하고 삼촌보다 먼저 떠나가다니. 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이틀 후 상우와 상순은 공학이를 함흥 촌 동산에 피눈물과 함께 묻어주었다. 공학이 생전에 애지중지하던 의서 한 궤짝도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 고혈압환자가 피를 빼 수혈하면 죽을 수 있는가하는 미지의 의학과제와 함께 영영 묻어두었다.
상순은 조카의 무덤을 안고 어루 쓸며 슬프게 울었다.
함흥 촌과 계수동 사이에 솟아오른 무덤 위로 한 겨울의 매서운 눈보라가 쓸쓸히 휘몰아쳤다.
저쪽 백양나무 앙상한 가지에서 까마귀가 부리를 다시더니 까욱까욱 을씨년스럽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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