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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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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진달래 소야곡(17)
2018년 04월 30일 11시 37분  조회:1779  추천:1  작성자: 김장혁




                32. 의심병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는 뻘건 불구렁이 몇마리가 대지에 내리박혔다가 능청스레 훌 사라졌다.
꽈르릉 꽝! 꽝!
하늘땅을 뒤흔드는 우뢰소리와 함께 대줄기 같은 소낙비가 대야로 퍼붓는듯이 창창 쏟아져내렸다.
승호는 패륜이 드러나 감옥관리대대에서 제명된 후 애비 덕에 겨우 백화상점 구입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머니 덕분에 큰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그걸 성형수술을 한 덕분에 무난히 영희와 결혼했다.
영희는 선금과 한 소학교에서 일하는 친구였다. 그녀는 선금의 중매로 승호를 알게 됐다. 승호가 훤칠한 체격에 사내답게 생긴 대학생인데다가 공안국 과장의 아들이라는데 유혹돼 경솔히 결혼했다. 치명적인 생리흠집이 있는 것도 알아볼 새 없었다. 그녀는 숫처녀여서 원래 남자 건 그렇게 생겼는가고 지나쳐버렸다. 그 바람에 승호는 근심하던 고비를 얼렁뚱땅 얼려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허송파네 깡패무리한테 보복당할가봐 결혼해 얼마 안돼 자그마한 세집을  맡고 세간났다. 승호는 집에 상점을 차려놓고 영희를 보고 교편을 내려놓고 상점을 돌보게 하였다.
영희는 잘 납득되지 않았지만 승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막무가내로 고양이 굴 같은 상점에 들어 앉고 말았다.
자기 밑구멍이 칫칫하면 남의 밑구멍도 더러운가 한다고 승호는 쩍하면 영희가 다른 남자들과 눈을 맞추는가고 의심했다.
어느날 승호는 외지로 복장을 구입하러 떠나면서 부탁이 끝이 없었다.
“영희, 이번에 심양에 가면 한 대엿새 걸릴 것 같소. 그거 알만하지?”
해말쑥하고 박씨처럼 걀쭉하게 생긴 영희는 앵두입술을 쫑깃하면서 눈을 곱게 흘기더니 종알거렸다.
“예- 이젠 몇번 말했는가요? ‘밤이면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잘 것!’ 맞지요?”
“빠진게 있어.”
영희는 제법 무릎까지 탁 치며 소리쳤다.
“‘상점에서 사내들과 작작 술을 마셔.’ ‘사교무도 작작 춰!’ 맞죠?  호호호.”
승호는 문고리를 쥐고 떠날 념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리더니 영희 어깨를 잡고 아주 정색했다.
“이번엔 두개 항목을 더 보태야겠소.”
“두개나?”
영희는 포도알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래. 첫째, 저금통장을 잘 건사해.”
“저금통장을 잘  건사해.”
영희는 승호를 따라 외웠다.
“둘째, 밤이면 일찌기 문을 꽁꽁 걸고 자라.”
“문을 꽁꽁 걸라.”
승호는 계속했다.
“또 있어!”
영희는 입이 귀 밑까지 째질 지경이다.
“또 있다고?”
“그래. 무릇 어떤 놈이 달려들 땐 목숨을 걸고 반항하라. 그저 당하지 말고. 좋기는 낯빤대기에 생채기를 낼 것!”
영희는 량미간을 찌프렸다.
“녀자 몸으로 그럴 새 있겠어요?”
“그래야 흉수를 추적할 수 있어. 그보다도 정조를 목숨처럼 여긴다는 걸 믿지.”
“제 색시 다 만들어놓고서 아직도 정조 말을 해요?”
“시집간 녀자라도 정조는 생명이야. 정조를 잘 지켜. 알만해?”
“알았어요.”
영희는 뾰로통해서 콕콕 찌르는 듯한 눈길로 승호를 곱게 흘겨보았다.
“별, 언젠 제가 청백하지 못했는가요? 믿지 못하겠으면 외지로 가지 마세요. 나 대신 상점을 지키세요. 대신 제가 구입하러 갈게요.”
승호는 슬슬 구슬렸다.
“믿지 못해 그러는게 아니요. 그저 강가에 내놓은 애처럼 항상 근심돼 그러지. 어쨌든 내 하라는대로 하면 랑패없을게요.”
“예,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요. 잘 다녀오세요.”
그제야 승호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키더니 문을 쾅 닫고 떠나갔다.
영희는 문을 닫아 걸면서 도도거렸다. 하긴 영희는 물 찬 제비같이 예쁜데다가 성격이 활달한 편이여서 처녀 때 숱한 총각들이 꽃편지를 보냈다. 다 뿌리치고 가정배경이 좋다고 승호한테 시집왔다. 그런데 외지로 구입하러 갈 때마다 색시를 믿지 못하는지 항상 의심병이 도질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희는 울고 불며 자기를 믿지 못하는가고 한바탕 행악질했다.
승호는 익살을 피워대며 구슬리군 했다.
“색시가 너무 귀여워 강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시름놓지 못해 그래. 이건 영희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표징이 아니고 뭐요?”
승호가 영희를 의심하는데는 조금 그럴만한 리유도 있었다. 좀 예쁜 영희를 보고 사내들은 게침을 질질 흘리면서 상점에 찾아왔다. 술군들은 영희가 떠준 술이 더 시원한지 상점이 꽉 차게 들어서서 선술을 마셨다. 항상 영희를 안주로 해 지껄여대며 얼근히 취해 밤중에야 아쉬운대로 돌아갔다. 어떤 때에는 보다못해 역겨워 영희를 불러 집 안에 들여보내고 승호가 대신 상점에 나왔다. 그제야 사내들은 술맛이 없다면서 가버렸다.
코수염쟁이와 멀쑥이 나그네는 승호네 상점의 단골손님이였다. 코수염쟁이는 상점에 와서 척 들어앉으면 영희를 안주로 해 지껄이면서 맥주 열병을 굽내지 않고서는 밤이 깊어도 자리를 뜰 념을 하지 않았다.
코수염쟁이는 상점에 걸어놓은 결혼사진을 피뜩 보더니 흠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게 신랑이요?”
영희는 별로 개의치 않고 “예.” 하고 대답했다.
코수염쟁이는 술잔을 쥔 채 결혼사진 가까이에까지 가서 찬찬히 뜯어보더니  돌아와 술잔을 들어 영희한테도 권했다.
그는 영희 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주고나서 맞잔을 했다.
“야, 이런 각시를 얻은 나그네는 얼마나 좋겠는가?”
“어째? 질투라도 나는가요?”
“질투는 무슨? 저네 나그네 얼마나 훤칠한게 잘 났소?”
“어머, 반신사진을 보고 훤칠한지 난쟁인지 어떻게 알아요?”
영희의 말에 콧수염쟁이는 “아, 그런가? 실수했구먼.” 하고 술을 들며 다시 결혼사진을 쳐다보았다.
그 후부터 코수염쟁이는 상점에 들어설 때면 나그네가 혹시 있지 않는가 살핀 후  구렁이처럼 스리슬쩍 기여들어 술을 마시군 했다.
기실 코수염쟁이와 멀쑥이는 모두 송파네 깡패무리였다. 그들은 시내에 도처로 싸다니면서 승호가 어디 숨었는가고 서캐 훑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승호 녀석을 찾아낼줄은 몰랐다. 그것도 자기네가 단골이 돼 쓸어다니는 상점의 아주 예쁜 녀주인이 바로 승호의 색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영희는 영업액을 올리려고 날마다 싶이 코수염쟁이와 멀쑥의 안주로 돼 술판에 끼여들었다. 승호가 코수염쟁이만 탓할게 아니였다. 코수염쟁이나 멀쑥이가 상점에 오지 않는 날에는 영희가 오히려 궁금해 할 정도였다.
그녀는 손님이 없는 날에는 상점문을 철컥 닫아 걸고 부근에 있는 사교무청에 가서 황홀하게 반짝이는 샨데리아불빛 아래에서 격조 높고 우아한 음악에 맞춰 뭇사내들의 품에 안겨 빙글빙글 돌아갔다. 승호는 집에 왔다가 문에 자물쇠가 잠겨있는 것을 보면 사교무청에 갔는가고 찾아가 볼 때가 잦아졌다. 승호가 말려도 영희는 혼자 상점을 돌보느라고 받은 스트레스를 푸느라고 그러는데 괜히 의심한다고 했다.
어떤 때에는 사교무청에서 춤 추던 사내들을 하얀 찰떡에 고물을 묻히듯이 수태 묻혀가지고 상점에까지 달고 와서 술판을 벌리고 술을 부어주기까지 하는 판이였다.
(송파 깡패무리에는 코수염쟁이들이 욱실거리는데 혹시 그 놈 코수염쟁이가 송파 무린지 어떻게 아는가? 암컷이 꼬리를 치지 않고서야 어찌 수컷이 매달리겠는가?)
사내들은 아예 사교무청에 가기보다 영희네 상점에 와서 술도 마시고 록음기를 틀어놓고 예쁜 영희와 춤을 추니 좀 좋아서.
승호는 외지에 나갔다가도 돌아와 상점 안에서 뭇사내들에게 안겨 돌아가는 영희의 꼴을 보기도 역겨웠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
물과 녀자는 에우기에 달린다고 생각한 승호는 영희 안전을 고려해서라도 단단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외지로 구입하러 떠날 때마다 영희한테 행동규범까지 몇 조목 내놓고 한바탕 훈계해놓고서야 떠나군 했다.
그날 저녁 영희는 승호의 말대로 일찌감치 상점문을 닫아 걸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는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했는데 단골손님인 코수염쟁이가 와서 헤벌죽거리면서 서 있지 않겠는가.
“문을 여오. 단골손님을 이렇게 문 밖에 세워놓겠소?”
“오늘부터 저녁엔 영업하지 않아요.”
“야, 불시에 무슨 소리요? 난 이젠 이 집에 오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소.”
코수염쟁이는 징글스레 금니를 드러내며 웃기까지 하며 수작을 부렸다.
“야, 시꺼먼 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소낙비 오겠는구나. 좀 비나 피하게 문을 여오.”
“안돼요. 래일 낮에 오세요.”
영희는 문발을 꼭 닫기까지 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야, 비 오는구나. 너무 하는구먼.”
코수염쟁이는 별 수 없이 가버렸다.
멀쑥이도 왔다가 문발까지 꼭 친 상점을 기웃거리다가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가버렸다.
바깥에서는 소낙비가 대살처럼 창창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영희는 일찌기 이불을 펴고 자려고 하다가 사랑에 치워둔 저금통장이 근심되였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이라고 그래?’
영희는 우산을 들고 사랑방에 나가서 구석에 놓인 소금단지에서 9천원짜리 저금통장을 꺼내 품 속에 간직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집안을 돌아보다가 침대 밑이 안전할 것 같아 침대 아래 장판지를 들고 살짝 밀어넣었다. 거기에 눌러두면 침대 우에 누어서 수시로 감시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그 곳도 안전한 것 같지 않아 천정을 쳐다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저기야.”
그녀는 걸상을 들어다놓고 중천정 종이를 가위로 썩썩 금을 내고 그 위에 저금통장을 슬쩍 올려놓고 밥풀로 종이를 붙여놓았다. 그런데 그녀는 천정을 쳐다보다가 그것도 안전한 것 같지 않았다. 도적이나 강도가 들어와 천반을 쳐다보면 눈에 잘 띄여 인차 들통이 날 것 같았다.
한참 궁리하다가 그래도 사랑칸의 소금단지가 도적들의 눈에 잘 들지 않아 안전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녀는 천정에서 저금통장을 꺼내 사랑칸으로 나갔다. 그녀는 소금단지에 저금통장을 파묻은 후 손으로 소금을 고루고루 공글러놓고서야 안도의 숨을 호~ 내쉬면서 돌아섰다.
집 안에 들어서자 그녀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앞뒤 문께에 방치를 세워놓았다. 그리고 특별히 위험구역이라고 생각되는 뒤문께에는 녀성의 특유한 깐깐한 솜씨로 “반침략대책”을 댔다. 어느 놈인지 뒷문으로 덮쳐든다면 펄러덩 빠지라고 부엌의 널장판을 둬장 슬쩍 빼놓고 그 옆에 뜨물을 가득 담은 뜨물통을 놓아두었다.
밤이 깊어지자 대살 같은 소낙비가 창 밖에서 쫙쫙 쏟아졌다.
갑자기 뒤울 안에서 철써덕 소리 났다.
“뭐지?”
영희는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면서 뒤울안을 경계했다.
“혹시 비물에 사랑채 벽이 무너졌는가? 아니면 토성이?”
영희는 발뼘발뼘 뒤문께로 발끝 걸음으로 다가가 문발을 살며시 젖히고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니, 저 놈이!”
그녀는 하마트면 고함칠번했다.
웬 꺽다리놈이 글쎄 뒤담장을 넘어와 사랑칸의 자물쇠를 비트는 것 같았다. 피뜩 보니 코수염쟁이 같았다.
“저 놈이, 저거! 그 안에 어떻게 번 돈이 있다고.”
영희는 황급히 문께에 세워둔 방치를 찾아들고 당장 뛰쳐나갈 판이였다. 그녀가 문 걸개를 절컥 벗겼다. 웬 걸, 그때를 기다리가나 한듯이 그놈이 홱 돌려 문을 활 열어제끼더니 집 안에 뛰어들어왔다.
“어마나! 사람 살…”
외마디 비명도 지를 새도 없이 그 놈이 영희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장판바닥에 죄악적인 “침략”의 발을 내딛였다. 기다리기나 한듯이 그녀는 몸을 움츠려 살짝 뺐다.
덜커덩! 꽈다당!
그 놈이 장판널을 두개나 빼놓은 함정에 빠졌다. 그놈은 나자빠지면서 뜨물을 들썼다. 은희가 발길로 잽싸게 뜨물통을 걷어찼다.
쫘르르- 쏴-
“에- 퉤, 퉤, 퉤!”
“이 놈, 어디 된방매 맞아봐! 이 놈, 이 놈!”
영희는 문께에서 방망이를 찾아들고 그 놈의 대가리를 호되게 족쳤다.
“아이구, 나 죽는다, 죽어. 그만, 그만! 아이고!”
“뭐, 어찌고 어째, 이 놈, 죽어봐라! 이놈!”
욕지거리와 방망이벼락이 계속 안겨졌다. 그 놈이 머리를 싸쥐고 신음소리를 내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방망이벼락을 막아내며 문께에 있던 스위치를 더듬어 쥐여당겼다.
찰칵!
졸지에 전등불이 대낮같이 켜졌다.
“어마나!”
영희는 겁기어린 눈길로 그 “침략자”를 노려보다가 깜짝 놀랐다. 넌덜거리는 국수오리와 사래기를 푹 뒤집어 쓴 그 놈, 뻘 건 피가 줄줄 흐르는 대가리를 두손으로 싸쥔 그놈, 뜨물을 괴죄죄하게 푹 들쓴 그 음흉한 침략자, 그 놈이 바로 의심 많은 신랑 승호일줄이야!
영희는 방망이를 훌 던지고 풀렁 물앉았다. 그녀는 복잡한 심태를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면서 한바탕 통곡쳤다.
그녀는 자기를 의심하는 승호가 괘씸했다. 자기를 믿지 못해 이런 음험한 수로  떠보는 승호가 야속했다. 의심이 많은 승호한테 시집온 것이 후회됐다. 의심병 환자를 어떻게 믿고 살겠는가.
생각할수록 앞날이 캄캄했다. 교단을 때려치우고 상점에 나앉은 것이 후회막급이였다.
영희가 가엽었다.
한참 후에야 영희는 제 정신이 들어 부엌바닥에서 기여나오는 승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따지고 들었다.
“왜 이래요? 절 믿지 못하겠어요? 예?”
승호는 수도물에 피투성이 된 더러운 머리통으로부터 온 몸을 툭툭 털고 쓱쓱 닦으면서 대답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한다는 말은 삶은 소대가리 다 웃다 꾸러미 터질 지경이었다.
“이번 고험에 만점이야! 경각성 O K!”
능구렁이 같은 승호는 능청스레 횡설수설했다.
“지금 송파 깡패무리들이 날 찾아 보복하자고 쌍불을 켜도 쏘다니오. 우리 집에 왔던 코수염쟁이가 별로 허송파 깡패무리 같아더란 말이요. 경각성을 높이지 않고 되오? 강가에 내놓은 애처럼 난 항상 근심된단 말이요.”
방망이에 맞아 피투성이 돼가지고서도 입만은 성해 잔소리 끝이 없었다.
“수건 가져 오지 못해?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서도 잘한 것처럼. 눈길이 곱지 않소? 에이, 울어?”
영희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철면피한 인간도 있어?)
그녀의 눈길이 고울리 만무했다.
밤중까지 티격태격 말다툼이 끊지 않았다.
“어쩜 사람을 그렇게 믿지 못해요?”
영희가 장판널을 제자리에 놓고 걸레로 뜨물이랑 국수오리랑 닦으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승호는 할 말이 없었지만 영희를 구슬려야 했다.
“경각성을 떠보았다지 않았소?”
“아버지와 말해서 깡패들을 몽땅 붙잡아 감옥에 처넣으면 다죠.”
승호는 영희의 두덜거리는 소리를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승호는 이젠 자기 일로 아버지를 더 애태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아버지가 허철만 서기와 암거래를 한 사건이 탄로났는지 공안국에서 아버지를 조사한다고 하지 않는가. 승호는 믿던 기둥이 와그르르 무너져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얼얼한 얼굴을 매만지면서 침대로 가서 벌렁 드러누웠다.
영희는 계속 도도거렸다.
“나그네새끼, 허우대나 컸지, 허수아빌줄은 몰랐어. 깡패들 앞에서 벌벌 떨면서  색시나 떠보고 감시해라. 옛날부터 바깥에서 어쩌지 못하는 사내들이 집 안에서 안해하고나 우쭐거리다더라. 에이고, 내 눈이 멀었지. 저런 허수아비를 뭘 보고 시집 왔어? 아이고, 분해라. 원통해라. 엉~ 엉~”
그녀는 밤중까지 서럽게 울고불며 대성통곡쳤다.
며칠 후에 또 사단이 생겼다.
영희가 창고에서 맥주상자를 들고 상점에 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개새끼, 이런 쥐굴에서 숨었구나.”
영희가 황급히 나가 보니 훤칠한 처녀가 옆구리에 두 손을 찌르고 콤파스처럼 벋티고 서서 떠들어댔다.
“아니, 누군데요. 아침부터 재수없이 이래요?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그래, 승호 애비한테 신고해. 날 잡아갈 거야. 흥!”
처녀는 허경옥이였는데 겁기 하나 없었다.
“아마 승호 색시 같은데요. 몇번째 색신지? 불쌍하구나, 불쌍해.”
그때 승호가 집 안에서 나오다가 딱 마주쳤다.
승호는 깜짝 놀라 쥐구멍에라도 숨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어디로 도망쳐?!”
경옥은 승호의 팔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이 놈, 얼마나 많은 처녀들을 짓밟았느냐? 뻔뻔스레 색시를 차고 사니?”
숱한 구경군들이 모여들자 경옥은 더 목청을 돋궈 승호의 죄악을 공소했다.
“이 놈은 련애하는 척하면서 숱한 처녀들을 해쳤습니다. 이 놈의 녀동창생 홍희는 이 놈에게 무참히 짓밟혀 자살까지 했습니다. 은영이란 녀학생은 이 놈한테 짓밟혀서 정신병에  걸렸어요. 나도 이 놈에게 당해, 아이구. 이 놈을 어쩜 좋아? …”
경옥은 더 말이 나가지 않아 땅바닥에 물앉아 엉엉 대성통곡쳤다. 그 새 승호는  구경들 속으로 빠져나갔다.
“이건 정신환자요. 무슨 구경할게 있다고 그러오?”
승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흩어지는 사람들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영희는 멍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옥은 땅바닥을 치면서 공소했다.
“저 놈이 얼마나 많은 처녀들을 망쳐놓았는데 뻔뻔스레 법망 밖에서 산단 말입니까. 어이구, 하늘도 무심하지. 저런 놈을 어째 생벼락이 쳐가지 않는가?”
영희는 경옥의 공소를 듣고 불쌍했다. 또 눈이 멀어 승호한테 시집온 자기 신세가 한없이 가엾었다.
(더러운 새끼, 제 놈  밑구멍이 더러워가지고 남을 내내 의심했구나.)
영희는 경옥한테서 승호의 과거사를 다 들었다.
한참 후 경옥은 간신히 일어나 떠나가버렸다.
영희는 구들에 펄러덩 물앉아 엉엉 대성통곡했다. 동네 망신을 당한 건 둘째고 앞날이 캄캄해 구들을 치면서 상치기 난 집 상주처럼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후부터 승호네 집은 밤낮 초상난 집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 투닥투닥 패대는 소리, 영희의 통곡소리 그칠 새 없었다.
영희는 막 자살하고 싶었다. 그러나 불어오르는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가  불쌍했다. 몇번이고 긁어버릴가고 하다가도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당장 승호와 리혼하고 싶었다. 그녀는 농촌시골에서 무남독녀로 자랐다. 부모가 불쌍해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야, 농민의 딸이 불쌍하지.)
그녀는 잘 사는 총각한테 시집가 시내에 남아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승호가 세상에 둘도 없는 색마일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고민의 심연에서 갈팡질팡 사선을 헤맸다.
잘라당! 퉁탕!
코수염쟁이 쇠파이프를 든 깡패무리를 끌고 들이닥쳤다. 그런데 깡패무리 속에는  교활한 두목 송파나 경옥이 보이지 않았다.
“왜 이래요?”
영희가 막아서자 코수염쟁이는 영희를 활 밀어제끼고 상점 안으로 쳐들어갔다.
“어제 저녁에 왜 문을 열지 않았어?”
코수염쟁이는 멀쑥 등 무리한테 손을 홱 휘둘렀다.
“박살냇!”
“야!”
깡패무리들은 상점 유리창문과 매대를 쇠파이프로 퉁퉁 부셨다.
잘라당! 잘라당!
그 놈들은 매대에서 술병과 명태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독사들처럼 꼬리를 감춰버렸다.
영희의 외씨같이 걀쭉한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바위돌처럼 굳어져버렸다.
경찰들이 뛰여왔다. 경찰들은 사건현장을 일일이 사진을 찍고 영희한테서 사건경과와 깡패들의 생김새를 묻더니 파출소로 돌아갔다.
며칠 후에 코수염쟁이와 멀쑥은 파출소에 붙잡혀 치안구류를 당했고 상점을 파괴한 배상도 했다. 그러나 깡패들을 막후조종해 승호네 집과 상점을 부신 허송파는  의연히 법망 밖에서 너덜거리면서 유유히 싸다녔다.
이튿날, 승호와 영희는 남몰래 다른 세집에 이사해갔다.
깡패는 잠시 피할 수 있었지만 승호네 집에는 더 무서운 “정신깡패”가 들이닥쳤다. 그 “정신깡패”가 바로 그들 신혼부부의 “의심병”이였다. 경옥에게서 승호 과거를 알게 된 영희도 승호와 살면서도 색안경을 끼고 승호의 일거일동을 모두 의심하게 되였다. 승호의 의심병이야 더 말해 뭘 하겠는가. 치명적인 의심병에  걸린 그들 부부는 행복할 리 만무했다.
영희는 승호가 바깥에서 들어오면 친절히 마중하는 척하면서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코개처럼 웬 녀자 냄새 나는가고 냄새를 맡았다. 옷을 벗겨  걸면서도 다른 녀자의 긴 머리카락이 없는가, 수상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이 없는가를 서캐 훑듯 하였다. 또 집을 비운 틈에 승호가 외간녀자를 끌어들여 침대에서 뒹굴지나 않았는가 의심해 침대에 혹시 길다란 노란 머리카락이랑 없는가 살피군 했다.
(한번만 들키는 날엔 그걸  밑둥까지 베버릴테야. 다신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승호는 의심병에 걸린 영희한테서 무서운 기운은 눈치채지 못하고 깡패들 때문에 장탄식했다.
(송파 깡패무리를 제거하지 않고선 발편잠을 잘 수 없어. 아버지만 과장 자리에서 철직당하지 않았더라도 송파 무리를 무난히 제거하겠는데. 재수 없어. 아버지가 허서기와 짜고들어 송파와 나를 서로 봐준 일이 탄로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웬 놈이 아버지가 허서기와 나눈 담화내용 록음테프마저 공안국에 제공했단 말인가? 웬 음흉한 놈이 우리 집과 허서기 집을 은밀히 노려보면서 도청했단 말인가? 강운룡 과장이 아버지 자리에 올라가더니 그런 짓 한게 아닐가? 성호는 소 궁둥이를 치러 갔으니 그럴 새 없고. 아니, 걔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아무렴 성호는 착하고 순박한 농부의 아들인데.”
승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성호, 그 자식만 곁에 있어도 겁날게 없는데. 헤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자식을 시내에 들여와야지.”
승호는 온 시내에 바람둥이로 소문나서 취직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송파네 깡패무리가 시시각각 보복하려고 혈안이 돼 미쳐 날뛰는 바람에 항상 자기 목에 칼이 날아들지 않는가 조심해야 했다.
집에서도 영희가 칼로 목이거나 그 걸 썩뚝 자를가봐 겁났다. 그는 공포에 휩싸인 어두운 밤에 집에서도 항상 다리를 옹송그리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
(진짜 생지옥살이구나. 숱한 처녀들한테 진 죄값을 치르는 걸가?) 
승호는 그제야 모든 것은 인과보응이란 말이 맞는다는 것을 느꼈다. 무참히 짓밟힌 경옥과 은영 그리고 자살까지 한 홍희의 혼이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무시로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것 같았다.
의심병에 걸린 승호와 영희의 예측하기 어려운 앞날은 칠칠흑야처럼 캄캄했다.
구경 그들이 어떻게 암흑한 앞날을 저벅저벅 걸어나갈가?
하늘도 땅도 모두 다 짐작하기 어려웠다.
 
 
 
 
 
 
 
 
                             33. 구입과장
승호는 이젠 지옥 같은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었다. 영희의 의심에 찬 눈길을 받으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딱 징역살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밤에 잠을 자다가도 영희가 면도칼로 자기 뭘 베버릴가봐 겁났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의심병에  걸린 것은 털끝만치도 반성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그는 사회나 단위에서도 립지가 점점 졻아졌다. 아버지가 과장을 하는 세월에는 대학교에서 숱한 처녀를 참혹하게 짓밟고서도 퇴학과 당적제명 처분을 피했다. 그러나 이젠 승호의 아버지도 철직받고 감옥의 문지기로 된 처지여서 더 바바볼 수 없게 됐다. 대학교 규률검사위원회 허철만 서기도 리철갑 과장과 짜고들어 승호와 깡패두목 아들을 덮어준 일이 탄로나서 서기직에서 철직당했다.
승호는 이젠 뿌리가 허망 뽑힌 나무로 돼버렸다. 그는 취직하려고 헤매다가  백화상점 구입과에 간신히 들어갔다. 그런데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백화상점 총경리는 바로 경옥의 어머니일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뜻밖에 안수련 총경리는 승호에게 눈을 흘기지 않았다.
(아무리 흉금이 넓어도 이럴 수야?)
승호는 안수련 총경리가 더욱 두려웠다.
(속담에도 짖지 않는 개 더 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안수련 총경리라고 왜 자기 무남독녀를 짓밟은 승냥이 같은 승호가 곱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여태껏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승호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어느날, 안수련 총경리가 승호를 불렀다.
(끝내 올게 왔구나.)
승호는 한숨을 후~ 내쉬며 승강기를 타고 총경리실로 올라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경옥 때문일가? 극상해야 백화상점에서 쫓겨나겠지.)
순간 이상하게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승호는 총경리실에 들어서면서 높다란 의자에 틀스럽게 앉아 있는 안총경리한테 마지막이라고 허리를 구십도로 굽혀 인사했다.
“여기 쏘파에 와 앉소.”
생각 밖으로 안총경리는 반색하면서 맞아주었다.
(호랑이 사슴을 잡아먹기 전에 베푸는 선심인가?)
승호는 치를 떨었다. 세상에서 내노라던 자기가 이렇게까지 취약해질줄은 몰랐다.
그는 안총경리 뜻밖의 말에 놀랐다.
“승호, 난 개인 감정으로 사업을 대하지 않소. 물론 승호가 경옥과 련애하다가 헌신짝처럼 차버린 건 괘씸하오. 그러나 사랑을 어찌 강요할 수 있겠소.”
그녀는 컵에 따뜻한 차물까지 부어주면서 뒤말을 이었다.
 “경옥의 아버지나 내나 승호를 용서하기로 했소. 깡패들이 저네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린 것과 우리 일가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성호는 머리를 점점 더 숙이면서 콩크리트바닥을 쏘아보았다.
안총경리는 높다란 의자에 돌아가 앉으면서 정색했다.
“승호, 구입과 과장을 맡아주오.”
“예?”
승호는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안총경리를 쳐다보았다.
“웬 말씀을? 전 죄인입니다.”
안총경리는 분명히 말했다.
“나는 인간적으로는 승호를 곱게 보지 않지만 사업에선 승호를 믿소. 승호는 구입 과장을 잘 해낼 수 있는 재목이오. 대학교 때  학생총회 부회장에 체육위원이였다지?”
승호는 머리를 숙였다.
“경력이 얼마나 출중하오. 조직능력 있고 장사도 잘하지. 구입과를 이끌어 질 좋은 현대상품을 잘 구입해들여오오.”
승호는 손사래를 쳤다.
“감사합니다. 안총경리, 전 과장 재목이 아닙니다. 다시 고려해보십시오.”
“사내대장부가 어찌 연약한 말을 하오? 오래동안 고민해보고 내린 결정이오. 잘해보오.”
안수련 총경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승호의 어깨까지 툭툭  다독여주면서 말했다.
승호는 재삼 “감사합니다.” 하고 허리를 굽신거리고 나서 총경리실에서 비실비실 물러나왔다.
그는 꼭 닫긴 총경리실 문을 되돌아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저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병 주고 약 주고. 혹시 나를 안심시켜놓고 잡아먹자는 건가?)
승호는 더 깊은 고민의 수렁에 빠졌다.
(어떤 때는 ‘바람둥이 과부네 아들’이라는지, ‘더러운 피 섞인 과부네 새끼’라는지 별의별 욕을 다하더니, 오늘 짧은 바지를 잔뜩 춰올려? 불여우 같은 년. 내게 인심을 베풀어주고 깡패무리들 행패는 자기네 일가와 무관하다는 걸 말하자는 건가?)
그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구입과로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를 그렇게 업신여기지 않았어도 경옥하구 그 지경까진 되지 않았을 거요.” 
승호는 구입과 과장으로 제발되긴 했지만 항상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자기 사람들을 구입과에 끌어다넣고 기반을 닦을 예산이였다.
승호의 시선에 제일 먼저 성호가 떠올랐다.
(자식, 소궁둥이를 친다던데. 그 놈만 곁에 있으면야 세상 무서울게 없이 든든하겠는데.)
승호는 인차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이전에 아버와 말해서 공안국 경찰대대에 넣어주겠다고 했을 때도 성호는 배부른 흥정하던 일이 속에 걸렸다.
(자식, 이번에야 말을 듣겠지. 소궁둥이를 치고 있겠어? 시내에 들어와서 구입원을 하면 돈도 벌고 정희와 함께 한 시내에서 살면 좀 좋아서? 흥!)
승호는 그날로 구입과 소형자동차를 몰고 행인들한테 길을 물으면서 태평거촌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태평거촌에 이르러 늙은 비술나무 아래 차를 세워놓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천지꽃산의 칼날 같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성호의 고향 마을은 진짜 범이 새끼를 칠 듯한 심심산골이였다.
(진짜 개천에서 룡이 났구나. 못난 자식, 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골 안에서 소궁둥이를 쳐?”
그는 비술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창 한담하는 로인들한테로 다가가 공손히 물었다.
“말씀 물읍시다. 성호네 집을 알려주겠습니까?”
때마침 상진이 로인들 속에서 일어나 승호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딱 누구 같은데 기억 속에서 아물거렸다.
“어디서 왔소?”
“성호 대학동창생입니다.”
“오, 그렇소? 난 성호 아버지요.”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상진은 속으로 어쩜 성호처럼 생긴 동창생이 다 있는가고 이사야릇했다.
승호가 볼라니 어깨가 쩍 벌어지고 세귀눈이 부리부리한 성호 아버지는 젊었을 때 호랑이도 때려잡았을 것 같았다.
“자, 우리 집에 가기요.”
“성호는 어데 있습니까?”
“저기 천지꽃산 골안 어구지 우사에 있을게요.”
승호는 성호 아버지를 찌프에 모시고 성호네 집으로 가면서 그간 성호의 형편을 대충 들었다.
승호는 성호네 집 마당에 이르러 찌프 뒤바곤에서 돼지고기를 꺼내 상진한테 주었다.
“처음 뵙는데요. 적은대로 성의를 받으십시오.”
“아니, 뭘 들고 왔소? 잘 먹겠소.”
드디여 승호는 찌프를 몰고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며 곧추 서쪽 천지꽃산 골짜기 어귀로 달려갔다.
상진은 찌프차가 아물거릴 때까지 눈바램을 했다. 처음 보는 청년이지만 성호처럼 생겨서 퍽 인상이 깊었다.
진흙탕 호박길이여서 찌프차는 소사양실을 얼마 두지 않고 덜커덩 멈춰섰다. 승호는 찌프에서 내려 골안으로 헐금씨금  걸어갔다.
(자식, 이런 골 안에서 소궁둥이를 쳐? 짐승은 골안으로 들이몰고 사람은 시내로 몰아라는데. 진짜 호박을 쓰고 돼지 굴에 들어온 격이구나.)
승호는 돌토성안 대문으로 들어가 커다란 우사를 들여다보고 너무 한심해 입을 쫙 벌렸다.
토성 안에 돼지무리가 우글거리고 개들이 “왕, 왕, 왕” 짖어댔다.
승호는 개들이 두려워 코 싸쥐고 멀직이 서서 우사 안을 재차 들여다보았다.
“지개!”
성호는 소똥 구린내 물씬 풍기는 우사에서 한창 소똥을 치다가 주춤 일손을 멈추고 내다보았다.
“승호야!”
뜻밖에 나타난 승호를 보고 성호는 소똥을 치던 삽을 구유에 기대세워놓고 대문어귀로 달려나왔다.
 “성호야!”
 “얘, 네가 어떻게 돼 이런 우사에 다 왔니?”
성호는 반년만에 만난 승호를 보자 손을 내밀다가 그만뒀다.
“소똥이 묻은 손이 돼서…”
“자식!”
승호는 성호의 손을 덥썩 잡아 흔들었다.
“어떻게 사는가 보고 싶더라.”
승호는 소똥물이 튕긴 성호의 옷을 보고 상을 찡그렸다.
“야, 이게 뭐야? 시내에 가서 함께 살자.”
성호는 삽을 구유에 기대 세워놓으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난 시골이 편안해 좋아. 물고뜯는 시낸 딱 질색이야.”
“에이구, 대학 졸업생이 소궁둥이를 쳐?”
성호는 기다란 소채찍을 들더니 대문을 열어제끼고 소무리를 몰아 천지꽃산으로 떠났다.
승호는 하는 수 없이 성호를 따라 천지꽃산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소들은 풀을 뜯어먹으면서 천지꽃산 기슭으로 올라갔다. 어떤 소들은 성호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다가 옥수수밭으로 뛰여 들어가 옥수수이파리를 뜯어먹었다. 어떤 소들은 산기슭에 있는 혁명렬사기념비와 그  옆에 누워 있는 산소에 마구 뛰여올라가 밟았다.
“저 놈 소새끼!”
성호는 돌팔매를 휙휙 날렸다.
한마리는 산소에서 달아났지만 몇마리는 계속 옥수수 이파리를 뜯어먹었다.
황급해난 성호는 사냥개들을 추겼다.
“축! 축!”
사자 같은 누렁이들은 왕왕왕 짖으면서 소들한테 덮쳐갔다. 그러나 소들은 대가리를 낮추더니 사냥개들을 뜰 상했다.
황급해난 성호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옥수수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금방 눈 소똥을 밟고 미끌어져 그만 허망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성호는 창피해 승호의 눈치를 흘끔 보면서 제꺽 뛰여일어났다. 궁둥이에는 시누런 소똥이 묻어 꼴불견이였다.
그는 이젠 습관됐는지 소똥을 닦을 새도 없이 소들한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옥수수밭으로 들어간 소들을 쫓아내고나니 성호의 옷은 이슬에 흠뻑 젖어버렸다. 성호는 옥수수 이파리를 훑어 엉덩이에 묻은 시누런 소똥을 쓱쓱 닦고 대수롭지도 않아했다.
그는 승호를 건너다보면서 헐레벌쭉 웃었다.
“성호야, 뉘네 저렇게 밭 가운데 산소를 썼니?”
승호는 묘지 옆의 진달래를 손으로 쭉 훑다가 “아가!” 하고 새된 소리를 쳤다.
진달래 나무가시에 찔렸다.
“봐라! 우리 조상들하구 큰형님이 자기 묘지 진달래를 꺾었다고 노여워 하는 모양이야.”
“이건 네 형님 묘지냐?”
“응, 그래. 밭도 우리 밭이야. 우리 아버진 제 집 밭에 항일투사들을 모셨구 그 아래쪽에 맏아들 산소를 썼지.”
“네 큰형님은 언제 세상떴냐?”
“내 나기도 전에 뇌출혈로 사망했다더라.”
“오- 그래?”
“큰형님은 사돈보기까지 한 약혼녀도 있었다는데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더라.”
“쯧쯧, 참 안됐구나.”
승호는 그 산소를 바라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머리를 돌려 성호를 바라보면서 본 화제를 꺼냈다.
“백화상점 구입과에 들어가서 나와 함께 일하자. 잘하면 한해에 상금까지 한 2천원 탈수 있을 거야. 정희도 아마  54원 밖에 못타는데. 2천원이면 어디 적은 돈이냐? ”
“그만 둬라! 난 우사가 제일 좋아. 깡패들하구 악연을 끊으니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어.”
승호는 성호를 비웃었다.
“대학졸업생이라는게 이런 골 안에서 소궁둥이나 쳐? 부모와 고향 사람들 볼 면목이 있니?”
성호에게는 그따위 격장법이 근본 통하지도 않았다.
“빛갈 좋은 개살구 따위 무슨 소용있어? 이제 한해만 소를 치면 2천원이겠니?”
승호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에이유, 돈 밖에 모르는 새끼, 수전노로 돼버렸어? 사람이 돈만 따지면 눈이 어두워지는 법이야.”
“돈보다 시골이 편안해서 좋단 말이야. 날마다 순진한 소들과 동무해 고향 산에 올라 시원한 산공기를 들이켜면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몰라. 하하하.”
승호는 자극하면 말을 듣겠는가 오해했다.
“너 인생관에 문제 있어. 골 안에서 범이 물어가도 모르겠다. 우리 백화상점에 가서 한데 뭉치자.”
“야, 임마, 네나 련애관을 고쳐라.”
그 말에 심장이 찔린 승호는 머리를 좀 숙이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고쳐야지. 네처럼 진짜 서로 사랑하는 녀자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하면서 살고 싶구나.”
성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소들은 풀을 뜯어먹으면서 순순히 천지꽃산 기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시름놓고 너럭바위 우에 앉아서 잠간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송파 깡패무리는 어떻게 됐니?”
승호는 또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전번에 은영일 륜간한 놈들은 처단됐어.”
“송파는 어떻게 됐니?”
“증거가 부족해 놔준 것 같아. 주악은 처음엔 송파가 시켰다해놓고 후엔 몽땅 부인했어.”
“후환을 남겼구나.”
성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이번엔 뿌리 뽑혔다. 허철만 서기도 철직맞았어. 그런데 그 놈새끼 계속 코수염쟁이랑 멀쑥이랑 시켜서 날 못살게 굴어.”
그는 전번에 코수염쟁이와 멀쑥이 등 무리가 집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린 일을 쭉 이야기했다.
성호는 바위 우에 서서 멀리 내다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자식, 허서기랑 누구한테 끝장 난 걸 알기나 하면서 종알거려? 흥!)
그는 코방귀를 뀌더니 몸을 승호 쪽으로 돌렸다.
“승호야, 백화상점을 즉시 떠나라. 지금 위험해.”
“무슨 소리야? 경옥의 어머닌 생각 밖으로 흉금이 넓은 분이더라.”
그는 안수련 총경리와 나눈 이야기도 상세히 말했다.
성호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안팎이 다른 사람이 더 무섭다. 미운 개한테 떡을 더 줄 수도 있잖니?”
“흥!”
승호는 코방귀를 꼈다.
“안경리는 딸을 짓밟은 건 괘씸하지만 사업을 개인감정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성호는 어린애처럼 천진한 승호를 보고 갑갑했다.
“생각해보았니? 널 슬쩍 제발시켜 놓고 송파 무리가 널 못살게 구는 건 나와 상관없어. 이런 묘한 발뺌 말이야.”
승호도 바보는 아니였다.
“간대로?”
그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송파가 살아있는 한 내가 무사할 리 없어. 내 옆에 네가 있으면 든든하겠는데 말이야. 우리 시내에 가서 한데 뭉치자.”
성호는 구렁텅이에 빠진 승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소와 돼지, 개들을 어쩌고 간단 말인가? 진짜 난감했다. 그보다도 어쩐지 승호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넌 지금 위험하다. 백화상점을 인차 떠나라. 아무리 세집을 옮겨도 쓸데 없어. 깡패들은 네 뒤를 밟아 계속 박살낼 거야.”
승호는 성호의 예리한 분석에 머리를 끄덕였다.
승호는 자기 설계한 방어선이 물거품으로 되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성이 나 씩씨거리면서 발길로 바위 틈에 자란 애어린 진달래를 마구 걷어찼다.
“야, 바위틈에서 얼마나 의악스레 자란 진달랜데 걷어차?”
승호는 개의치 않고
“권총만 있었으면 그 놈새끼들이 무섭지 않겠는데.” 하고 또 걷어찼다.
“앗!”
승호는 발길질하다가 그만 소똥을 밟고 허망 엉덩방아를 찧었다. 재수없는 놈은 뒤로 번져져도 코등을 깬다고 승호는 칼날같이 뾰족뾰족한 나무그루가시에 엉덩이를  찔려 오만상을 다 찡그렸다.
성호는 코웃음쳤다.
“야, 야들야들한 진달래라고 업신여기지 말라. 우리 고향산에 자란 진달래는 키는 크지 않고 수수하게 생겼지만 생명력이 아주 강한 꽃나무야. 걸 봐라, 바위틈에도 뿌리 박고 악착같이 살아남지 않았니? ”
승호는 진달래를 산에서 처음 보았다. 꽃은 진지 오래고 수수한 이파리만 앙상한 가지에 붙어있을뿐이였다. 그리 희한한 꽃도 아니건만 성호가 장황히 춰올리는 것이 우스웠다.
“진달래도 가시 돋쳤나?”
“아니야. 그러나 자기를 못살게 구는 놈만 보면 사정없이 찔러주지. 허허허.”
승호는 피 즐벅한 엉덩이를 씃더니 일어나면서 “어참, 재수 없어.” 하고 두덜거렸다.
말 속에 말이 있는 성호의 그 말은 바늘처럼 승호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성호는 너럭바위 우에 올라가 서더니 길다란 채찍을 잽싸게 휙휙 휘둘렀다.
쨩! 쨩! 쨩!
성호는 소를 몰면서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진달래 곱게 피면 다시 온다고
이 손을 잡던 그 사람
갈대가 흐느끼는 가을이 가도
울리고 떠나간 그 사람…
 
성호는 천지꽃산에서 소를 방목할 때도 답답한 심정을 달래려고 항상 바위에 서서 고향산 아래 들과 벌 그리고 사래긴 밭을 내려다보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이 농촌을 떠나겠는가 궁리하며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나면 이상하게 갑갑하던 가슴이 열리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 시각 성호는 승호와 자기 처지가 너무 갑갑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승호도 멋을 모르고 성호를 따라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다. 승호가 경옥이, 은영이, 홍희를 짓밟은 대가가 얼마나 큰가? 이제 또 무슨 경을 치를지 누가 알겠는가?
승호는 성호와 갈라져 돌아온 후에도 불운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성호한테 코를 떼우자 궁리 끝에 범송을 방패막이로 점찍었다.
“꺽다린 씨름도 잘했지.”
일요일에 승호는 종수를 불러 정희와 범송이 교편을 잡은 천수해중학교로 놀러 갔다.
승호는 찌프에 돼지고기랑 맥주상자랑 주어싣고 신문사에 들려 종수를 싣고 천수해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천수해중학교 당징실에서 쉽게 범송을 찾을 수 있었다.
범송은 당직실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게 숙사야.”
승호와 종수는 입을 딱 벌렸다.
6평방메터 되나마나 한 당직실 외통방에서 당직교원이 앉아 있는 책상 옆에 침대가 놓여있고 침대 머리에 놓인 자그마한 책궤 우에 이불과 요가 달랑 놓여있었다.
범송이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자 당직교원은 바깥으로 훌 나가버렸다.
“간고하구나.”
승호는 돼지고기를 들고 어디에 놓을가 서성거리면서 당직실 구석에 놓인 쟁개비와 전기밥가마를 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뭘 사들고 왔니?”
범송은 돼지고기를 쟁개비 안에 놓고 돌아서더니 “우리 식당에 가서 한잔 하자. 여기서 언제 저 걸 끓여 먹겠니?”라고 했다.
범송은 일요일에 불시에 나타난 승호와 종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이상해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지?)
범송은 대학교 때부터 승호를 인간적으로 썩 좋아하지 않았다. 미꾸라지처럼 매그러운 승호한테 꼭 밑지고 마니깐.
승호는 종수와 범송을 찌프에 태우고 천수해식당으로 달려갔다.
“정희도 데리고 오겠는 걸.”
종수의 말에 승호는 코방귀를 뀌였다.
“놔둬라. 괜히 주흥을 깨뜨리겠다.”
승호의 말이 지나치긴 했지만 모두 함구무언하였다. 그들도 승호와 정희 알륵을 알고 있었다.
원래 승호는 교수네 규수이자 예쁘고 활발한 정희를 눈독 들이고 호시탐탐 손에 넣을 기회를 노렸다. 그는 문예위원인 정희를 학생회에서 회의를 할 때면 스리슬쩍 건드렸다. 그러나 정희는 홍희를 치근거리면서도 자기를 지껄이는 승호가 역겨워 곁을 주지 않았다. 비록 과장네 아들이고 학생회 체육위원이였지만 그녀는 승호와  금을 그어놓고 지냈다.
정희는 승호가 찌프를 몰고 교정에 들어서는 것을 진작 보았다. 또 한 교연실의  범송을 복도에서 만나 데리고 가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왕따 된 기분보다도 부르지 않아 더 홀가분했다.
승호는 곁을 주지 않는 정희가 아니꼬와 부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가?
뜻밖에도 승호가 통이 크게 한상 차리지 않겠는가.
범송은 성호 생각이 났다.
“야, 정희도 우리 학교에 있는데 일요일이 돼서 아마 성호네 집으로 간 것 같아. 정희와 성호도 데려오면 좋겠는데.”
승호는 코방귀를 뀌였다.
“그만둬라. 언제 걔까지 데려오겠니.”
범송은 일어나 승호의 팔소매를 당겨 일궈세우려고 했다.
“좋은 찌프를 뒀다 뭘 하니? 10분에서 더 걸리겠니? 어서 갔다가 오라.”
승호는 일어설 념도 하지 않았다.
“어제 갔다 왔어. 걔는 소궁둥이를 치다나니 올 새도 없어.” 
그는 찌프에 싣고 간 맥주를 한병 따서 종수와 범송의 잔에 찰찰 넘치게 따랐다.
“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시원하게 한잔 마시자.”
“감사하다.”
범송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종수는 술잔을 들고 승호를 마주 보았다.
“승호가 이번에 백화상점 구입과 과장으로 제발된 걸 축하해 한잔 들자.”
사실 “승호가 깡패들한테 병신이 된 내막”을 종수가 삐라로 찍어 온 시내에 뿌리지 않았더라도 가능하게 성호는 수사대대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종수는 악의적으로 삐라를 날린 건 아니였지만 성호에게 죄송했다.
승호는 범송의 앞에 돼지고기점을 집어놓았다.
“당직실에 있으면서 얼마나 고생했니? 많이 먹어라.”
범송은 돼지고기점을 우물우물 씹더니 고생살이를 늘여놓았다.
“야, 이 놈 독신생활이 언제 끝나겠는지 진짜 말이 아니야. 코흘리개들과 맨날 교탁이나 두드려대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목이 쉬게 경찰질을 해야지. 자기절로  전기밥가마에 밥을 해먹어야지. 강에 가서 옷을 씻어입어야지. 이젠 신물이 난다.”
승호는 찾아온 본의를 말할까하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너무 이른 것 같아서였다.
“자, 그간 고생했는데 한잔 들자.”
승호는 범송과 종수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 셋은 맥주잔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범송은 학교 숙사생활이 힘들어 술맛이 없어 한숨을 풀풀 내쉬였다.
그때라고 승호가 홀딱 벗고 나섰다.
“범송아, 이 학교에 어떻게 있겠니? 차라리 우리 백화상점에 가자.”
종수도 맞장구를 쳤다.
“옳다. 당장 전근해라. 우리 시내에 모여 살자.”
범송은 승호를 멍하니 건너다보면서 “감사하다. 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라고 하더니 승호의 맥주잔에 술을 따랐다.
“근심하지 말라. 내 총경리하구 부탁하면 될거야. 우리 서로 의지해 살자.”
범송은 승호의 두 손을 꽉 잡았다.
흐뭇해난 승호는 그날 점심에 술을 취토록 마시고 찌프를 어떻게 몰고 백화상점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이튿날 그는 범송을 데리고 안수련 총경리한테 가서 범송을 구입과에 전근시킬 의향을 회보했다.
안수련 총경리는 훤칠한 범송을 첫눈에 마음에 들어 동의했다.
승호는 아예 범송을 자기 매부로 만들어 혈연적으로 얽어놓으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의향을 내비치자 범송은 대뜸 이게 웬 떡이냐고 맞선을 보자고 나섰다. 일이 되자고 그랬는지 선금도 훤칠한 범송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범송과 선금은 부모의 동의를 거쳐 국경절 쯤에 사돈보기를 하고 양력설 쯤에 결혼하기로 했다.
범송은 승호 덕분에 백화상점 구입과에 진출했을뿐만아니라 승호의 녀동생 선금과 결혼하게 돼 입이 합박만해질 지경이였다.
승호는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하는 범송의 모습을 보다가 불시에  성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물고기를 팔러 다니는 보따리장사군, 천지꽃산에서 소채찍을 쨩쨩 울리며 소방목을 하는 루추한 꼴이  떠올랐던 것이다.
(흥, 성호야, 세상에 후회약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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