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애인파티
련인절날에 숱한 남녀들은 싱숭생숭해 황홀한 바깥세상에서 헤맸다.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에 해연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근사한 음식점 신선로에 마주앉아 잡답을 벌렸다.
왈패 향월이 첫포를 쏘았다.
“오늘 몽땅 다리 부러진 노루들만 모였구나. 련인절날에 남들은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놀았잖아. 그런데 우린 아무 재미도 없이 보냈더구나.”
얌전한 혜경이 맞장구쳤다.
“그래, 요즘 세상에는 애인바람이 불어서 애인이 없는 건 머저리라더라.”
해연은 슬그머니 역정냈다.
“얘들아, 애인, 애인 하는게 딱 애인게걸이 든 것 같다. 애인이란 말만 나와도 신경질이 난다.”
혜경은 개장국을 떠 후후 불다가 해연을 건너다보면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왈패 향월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어째 전번 남편이 한 단위에서 애인을 하더니 이젠 딱 질색이냐? 아니면 후에 얻은 나그네 눈치 보여?”
해연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내 나그넨 말이야. 련인절날에 자기는 실컷 밖에 나가 놀면서도 드문드문 집에 전화를 걸어 감시하잖겠어? 괘씸해 나도 나가 놀자니깐. 어디 애인이 있니? 돈이 있니? 호주머니를 들추니 글쎄 딱 2원 밖에 없더라. 원.”
“호호호. 광고회사 출납원이 돈이 없다고 하면 누가 곧이들을줄 알아?”
향월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혜경도 어처구니 없어했다.
“돈이 있는 놈일수록 없는 척해. 누가 꾸자니? 우리 앞에서 다신 간살을 부리지 말라.”
“출납원을 내놓은 걸 몰라 그러냐? 굉팔인지 나팔인지 하는 경리는 갈보년한테 출납 맡겼어.”
향월은 개장국을 떠먹던 숟가락을 상에 달랑 내려놓으면서 삿대질했다.
“선희, 그 년 한국에 간다더니 어째 아직 가지 않았니?”
“응. 의사를 꾀서 한국에 가고 어쩌고 하더니 안 갔어.”
해연은 목소리를 낮췄다.
“알고 보니 선희가 친한 의사는 글쎄 우리 단위 성호네 매형이라고 하잖니?”
“그래?”
모두들 눈자위가 희뜩 번져질 지경.
“무슨 렴치에 성호하구 머리를 맞대고 일한다니?”
해연은 코웃음쳤다.
“흥! 선희는 낯빤대기 돼지 엉덩이짝보다도 더 두텁단 말이야. 굉팔한테 철썩 들어붙어서 출납원자리를 차지했잖고 뭐냐?”
향월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옛날부터 칼자루를 쥔게 이겼지. 이젠 출납원 꿈 버리고 네 인생을 즐기라는데. 어떻게 나그네 손에서 돈을 얻어 살겠니? 나그넨 밖에서 제멋대로 놀고 넌 죽어 살아야 해. 쯧쯧쯧.”
향월은 봉이눈을 슴벅거리며 해연을 보더니 숟가락으로 개고기점을 떠 후후 불다가 입에 홀랑 밀어넣고 질근질근 씹었다.
“난 련인절날에 더 개팔자였어.”
혜경은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들어 향월을 보면서 끼여들었다.
“난 련인절 밤만큼 고독한 밤은 없더라. 우리 나그넨 감정이 무디기로 도끼등이야. 련인절날 저녁에 내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내미니 뭐라는지 아니?”
“응?”
“‘에이구, 이 머저리, 이건 뭐냐? 먹고 뚱뚱해져 빨리 죽으라는 거냐?’ 이러지 않겠니? ‘오늘 무슨 날인지 아오?’ 하고 물으니 ‘무슨 날이요?’ 하고 되반문하지 않겠니? 련인절이라고 하니 뭐라는지 아니? ‘오- 난 또 무슨 큰 일 난 날인가 했지. 어험, 이젠 나이 먹은 부부 사인데 이따위 짓 작작 하오. 이런 쓰레기를 사는 돈이면 마작이나 놀겠소.’ 이래더라. 얼마나 맹랑하기 짝이 없는 나그네야.”
해연이 향월을 보고 “너넨 련인절날에 어떻게 보냈니?” 하고 물었다.
향월은 오이랭채를 집으면서 시원하게 대답했다.
“장미꽃을 주자는 사람이 있어야 놀지. 토끼 제 굴에 들어간다고 해라.”
“거짓말!”
혜경이 향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삿대질했다.
“그날 밤에 우리 둘이 상점에 가서 초콜릿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았구 뭐냐? 밤 10시 넘어 너네 집에 전화를 쳤댔어.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디로 갔댔어? 로실히 말햇!”
“얘, 생사람을 잡지 말라.”
해연은 왈패 같은 향월에게 애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말해. 퍽 재미있었지.”
혜경은 볼우물을 파면서 향월의 오똑한 코를 쥐여놓으며 익살을 부렸다.
“말해. 애인을 데리고 노는 재미 어떠냐? 재우리한테두 소개해주렴.”
그제야 향월은 풍만한 가슴을 쑥 내밀고 한바탕 자랑을 늘여놓았다.
“그래, 애인 있다, 있어. 너희들도 애인 바람에 휘말려들어봐라. 별 멋이야. 아주 달콤하고 짜릿짜릿한게 말이야! 집 나그네하구 10여년 산 거보다 더 화끈하고 전기에 붙은 것처럼 찡찡하더라.”
“와- 정말이구나.”
혜경은 놀란 나머지 입을 함박만큼 쫙 벌렸다.
해연은 원래 남편의 애인바람에 가정을 깨먹은 후 애인이라면 딱 질색이야. 그런데 웬 일인지 저도 몰래 점점 귀가 솔깃해지는 걸 어쩔 수 없잖겠니.
향월은 참대통에서 콩알을 굴려내듯이 잔뜩 늘여놓았다.
“내 로동자남편이겠니? 한다하는 경리다, 경리!”
“와- 돈도 좀 있겠지?”
혜경의 물음에 향월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래, 인물체격도 퍽 낫지. 그런데 내보다 열두살이나 이상이야.”
혜경은 궁금해 향월의 옆구리를 찔렀다.
“얘, 애인을 불러라. 우리 한번 보자.”
향월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라고 오겠어? 지금 세월에 애인 없는 건 바보야, 바보! 너네도 애인 얻어라. 우리 애인파티 열면 어때?”
해연과 혜경은 서로 어색하게 마주 보며 웃었다.
향월은 정색해서 뚜쟁이질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애인 찾고파 하는 걸 알만해. 에헴, 서경리한테 친구 여럿이 있던데 하나씩 소개해줄가?”
혜경은 속으로는 좋아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겉으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닌 보살을 떨었다.
“우리 무슨 애인게걸이 들었는가 해?”
“글쎄 말이야. 한 분은 지식도 있고 글도 아주 잘 쓰는 분, 한 분은 한국도 제 집 나들 듯하는 의사야. 특히 성의학에 이름이 있는 분이라더라. 혜경아, 어때?”
혜경은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갓 혼사말을 들은 숫처녀처럼 부끄러워하는 척했다.
“헛일 삼아 의사를 만나볼가?”
해연은 향월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불평을 부렸다.
“좁쌀 같은 글쟁이 싫어.”
향월이 툭 쏘아붙였다.
“봐라. 해연까지 나서는구만. 허허허. 그 분 얘길 하루종일 들어도 싫지 않을 거야!”
그 말에 해연은 다소 위안되였다.
웬 일인가? 해연은 저도 몰래 가슴이 설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장했나? 이전에 승호랑 따라다니면서 술을 마실 때도 이다지 가슴이 설레이지 않았는데. 문호 애비를 복수해야지.)
며칠 후 저녁에 해연이 금방 밥상을 갖춰놓고 숟가락을 들려는데 향월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해연아, 집구석에 처박혀 뭘 하니? 전번 그 일이…”
“잠간! 곧 나갈게. 향월아, 혜경도 불러라!”
해연은 옆에 앉은 후남편 철수를 도적눈으로 힐끔 곁눈질해보고 전화를 놓았다.
철수는 피씩 미소를 짓더니 빈정거렸다.
“요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녁도 안 먹고 나돌아? 흥!”
“별, 당신은 사나흘에 한번씩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돌아오다가도 검정개 돼지 흉을 봐? 녀자들이라고 매일 집구석을 지켜야 한다는 도리는 없잖은가요?”
철수는 꼬락서니 보기 싫어 숟가락으로 밥을 볼이 메지게 떠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해연은 곱게 화장하고 옷궤에서 빨간 라사천외투에 깜장 라사천치마를 꺼내 입고 나섰다.
(진짜 신바람이 났구나.)
그녀는 저도 몰래 웃음이 나갔다.
그녀가 애인파티 장소인 음식점에 갔을 때였다. 벌써 향월과 혜경이 깔끔하게 생긴 40대 중반의 한 남자와 함께 김이 물물 나는 개장국신선로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해연은 처녀시절에 맞선을 볼 때처럼 설레는 가슴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면서 제 좋은 생각을 굴렸다.
“자, 인사나 할가요?”
향월이 우쭐 일어나면서 인사시켰다.
“서경리, 내 딱친구 해연인데요.”
서경리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습니다. 전 서일철이라고 부릅니다.”
해연이 뭐라고 인사하려는데 향월이 그녀를 마구 자리에 눌러앉혔다.
“얘, 이 분은 서경리야. 절대 빼앗지 말라.”
그제야 해연은 긴장했던 마음의 탕개를 활 풀면서 한숨을 호- 내쉬였다.
“왈패, 똑똑히 말해야지. 하마트면 내게 소개해준다던 선빈가할 번했어.”
“호호호.”
혜경이 옆에서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서일철은 일찍 가정교사로 들어간 연화를 돈으로 유혹해 해친 색마였다. 그는 여기저기 거미줄을 늘이며 돌아다니면서 이쁜 녀성들을 나꿔채 릉욕하고 있었다. 해연은 서일철 경리가 색마인줄도 모르고 돈깨나 있다고 묻어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이윽고 안경쟁이 키꺽다리와 호리호리하고 작달막한 사내가 들어왔다. 모두다 서경리보다 나이 먹은 것 같았다.
향월은 사내들한테 삿재질하면서 지껄여댔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 멋진 신사들이 척척 들어서는군요. 자, 자, 서로 인사하세요.”
향월은 해연에게 키꺽다리를 인사시켰다.
“자, 먼저 이 한쌍부터 인사시키죠. 여긴 문필가 최룡학 선생, 요 참대처럼 미츨한 선녀는 해연인데요.”
최선생이 해연을 여겨보니 복숭아 얼굴에 깜장 쌍겹눈이 꽤나 매력이 있었다.
해연은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최선생의 눈길을 피해 숫처녀처럼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면서 손을 내밀었다.
최룡학은 해연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만나서 기쁩니다.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최선생님을 만나 영광인데요.”
해연은 이상하게 처녀 때 첫선을 보는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여서 가슴이 무척 부풀어올랐다.
그때 수를 붙여주느라고 향월이 놀려주었다.
“얘, 손 한번 줴보고 즐겁다니? 벌써 전기 찡 통하는 모양이지?”
해연은 진짜 얼굴이 달아올라 귀 밑까지 홍당무우처럼 새빨개졌다.
“아니, 제수도, 쯧쯧쯧, 익지 않은 감이 무슨 맛있다고 번개불에 콩을 닦아먹을 소릴 하오?”
최룡학의 말에 해연은 속으로 먹물을 먹은 작가가 확실히 다르구나고 못내 감탄했다.
향월은 이번엔 난쟁이를 혜경한테 인사시켰다.
“여긴 한국 회장들의 웅심까지 살려준 명의사 리철웅선생인데요. 이쪽은 얌전한 미인사회자 혜경이예요.”
리의사는 혜경의 손을 잡고 점잖게 인사했다.
“유명한 사회자를 만나게 돼 기쁘오.”
혜경은 리의사 우멍눈이라든가, 작달막한 키를 보는 순간 눈에 차지도 않아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아프면 찾지요.”
“호호호. 명사회자 무슨 인사 그래? 원, 쯧쯧쯧.”
향월은 어색한 국면을 돌려세우려고 술잔을 들었다.
“가만!”
그때 서일철 경리 황급히 향월의 술잔을 내리누렀다.
“가만, 오늘 애인파티 개막식 연설을 최선생한테 맡기기오.”
모두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치며 최룡학을 건너다보았다.
최룡학은 허리를 쭉 펴고 안경을 춰올리더니 정색해 입을 열었다.
“그럼 분부대로 개막사를 한마디 올리지.”
최룡학은 샘물까지 반고뿌 마시고 고뿌를 내려놓고 정색했다.
“저- 해마다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이 오면 봄아가씨가 사뿐사뿐 다가오는 봄날입니다. 오늘 예쁜 아가씨들과 함께 애인 파티에 앉으니 기분이 한결 유쾌하고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여기에 오신 꽃향기 다분한 아가씨들이 련인절의 빨간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할 걸 미리 축원합니다. 생활은 우리 모두가 마음 맞춰 조직하고 가꿔가기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자, 오늘 우리 세쌍이 만난 애인파티를 축원해 한잔 듭시다. 우리 만남을 마련한 향월양과 서경리한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자, 이런 의미에서 첫잔을 듭시다.”
모두들 잔을 들어 통쾌하게 굽냈다.
해연은 최선생의 말재간에 취할 것만 같았다. 혜경과 향월도 혀를 끌끌 차면서 최선생에게 흠모의 눈길을 보냈다.
향월이 술잔을 들었다.
“감사해요. 이 첫잔을 세쌍이 모두 교배주로 마시면 어때요?”
“좋소.”
서경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향월을 부둥켜안고 팔을 걸더니 잔을 다 비웠다. 해연과 혜경도 뒤따라 최선생과 리선생과 교배주를 마셨다.
한참 술문화를 화제에 올리면서 화끈하게 술을 마시다나니 모두 얼근하게 되였다.
왈패 향월이 버릇처럼 손삿대질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자, 여러분, 애인 파틴데요. 제가 묻는 말에 선생들이 먼저 척척 대답해요. 물론 아가씨들도 완미하게 보충해야 되죠. 어떤가요?”
“예, 좋습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대답했다.
향월은 사회자나 된듯이 마른기침을 깇더니 첫물음을 내놓았다.
“애인이란 무엇인가요? 먼저 대답할 분, 손 드세요.”
최룡학은 해연의 눈치를 흘끔 훔쳐보더니 아닌 보살을 떨며 덤덤히 앉아 있다가 손을 척 들었다. 룡학의 입에서 왕청 같은 말이 나올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야 애인을 해보지 못한 게 어떻게 애인을 알겠소? 서경리나 경험담을 말하게나.”
리의사는 우멍눈을 끔쩍이며 서경리를 쳐다보았다.
향월이 또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애인놀음을 실컷 해본 선배야 서경리하구 내지. 우리 둘이 도맡아 얘기해야겠군. 호호호. 이 능청스러운 년놈들을 어쩌겠어? 한대 탁 박아주고 싶어! ”
서경리는 향월의 삿대질하는 손을 훌 잡아 내리며 언짢은 기색을 띄우며 억지로 부드럽게 말했다.
“스스럼없는 장소니까. 얘기하지. 향월과 눈이 맞아서 사귀여보니까. 짜릿한 감정에 이젠 죽자살자 하는 판이요. 등록하지 않은 부부라고나 할가. 아니, 부부보다 감정이 더 깊은 새로운 부부로나 된 거 같소.”
향월은 서경리 이마에 키스를 뻑 안겼다. 그 바람에 서경리 이마에 빨간 입술도장이 딱 박혔다.
“만점이야! 만점! 애인은 등록하지 않은 부부, 바깥에서 만난 새 부부야! 난 우리 집 나그네 딱 질색이야. 요 서경리를 만난 다음에야 진짜 짜릿한 사랑을 홀랑 빼먹었어. 참 맛있어. 해해해.”
향월이 아양을 떨다가 옆에 앉은 최룡학한테 눈길을 돌렸다.
“최선생, 그대 차롄데요. 애인을 뭘로 알고 해연을 만나려고 했는가요?”
“야~ 이거 과거시험보다도 더 진땀이 나는 문젠데.”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아 건 후 뒤말을 이었다.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소? 우리 별로 길지 않은 인생에 행복하게 정신감옥 같은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유를 찾자. 마음이 통하는 애인하구 마음껏 즐기자. 아무런 부담도 없이 홀가분한 심정으로 즐겁게 보냅시다.”
향월이 눈이 데꾼해졌다.
“애인이란 서로 즐기기 위해 만난 상대란 말인가요?”
최룡학은 안경을 벗어 닦으면서 향월을 가슴츠레 건너다보며 자기 견해를 고집했다.
“그렇소이다. 애인이란 향락을 누리고 서로 즐기려고 만난 쌍방이지. 미안하오. ‘동록하지 않은 부부’라는 서경리 말과는 좀 다르오. 만약 애인이 등록하지 않은 부부로 된다면 정신감옥 같은 가정을 간신히 떠났는데 또 새 정신감옥의 부부로 되오. 애인도 마찬가지로 가정의 부부처럼 경제상, 정신상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기게 되오. 서로 지겹고 무거운 정신부담을 느끼게 되고 피로해지고 권태감이 나게 되지 않겠소? 나중엔 서로 경제문제로 티격태격 싸우고 갈라지게 되오. 때문에 애인이란 새로운 부부로 생각하지 말고 잠간 서로 화끈하게 즐기는 상대로 돼야 하오.”
향월은 술잔을 들다가 맥없이 놓았다.
“어마나! 정말 술맛이 다 떨어지게 논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의무감도 없이 놀아대겠다는 건가요? 그럼 애인이 오래 가지 못해 헤여질 거예요. 누가 그런 남자와 애인이라고 놀겠어요. 원, 참.”
향월은 못 마땅한 나머지 투덜거리면서 최룡학에게 눈까지 흘겼다. 좌중의 사람들 보기에도 너무 민망하였다.
“괜찮아요. 서경리하구 최선생의 말씀이 다 지당하다고 봐요.”
해연이 어색한 국면을 타개했다.
“애인을 찾는게 가정울타리를 벗어나 집사람하구 즐겨보지 못한 걸 다른 사람하구 보충해 즐겨보자는 거죠. 누가 정신부담을 가지자고 애인을 찾겠어요. 허나 애인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오래가지 못할 걸요.”
해연은 최룡학의 눈치를 피뜩 곁눈질해보았다.
룡학은 담담한 표정이였다.
이제껏 덤덤히 앉아 있던 리의사가 술을 권하면서 한잔 쭉 내고 우멍눈을 버릇처럼 끔쩍이면서 입을 열었다.
“애인을 얻는 건 안해나 남편한테서 얻지 못한것을 보충해 향수하기 위한 게 옳다고 보오. 안해한테서 모든 녀성들의 진맛을 볼 수 있소? 녀자들마다 성격이 다르고 향기도 맛도 다르오. 안해한테서 느껴보지 못한 걸 바깥 애인한테서 보충받아야 하오. 그래야 생활이 새롭고 다채로울 게 아니오?”
그 땡땡 여문 말에 옆에 앉은 혜경의 새침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고 있었다. 우멍눈에 작달막한 리의사가 외모는 엉망이여도 속은 땡땡 여문 것 같아보였다.
리의사는 혜경의 그런 마음의 변화를 꿰뚫어본듯이 우멍눈을 끔쩍거리면서 흥이 도도해 뒤말을 이었다.
“즐겨야죠. 그러나 애인들도 믿음과 책임감이 있어야 하오. 돈을 내밀 데는 척척 내밀고. 경제시대에 경제적으로 애인을 책임져야 하오. 돈이 없으면 바깥녀자들을 엿보지도 말아야 하오.”
“가만, 가만!”
향월이 리의사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럼 돈이 없는 사람은 애인도 찾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요? 애인이면 딱 남자 돈을 써야 한단 법은 없잖아요?”
리의사는 손을 가로 저었다.
“아니요. 오해하지 마오. 애인이라면 녀자 돈을 좀 써도 괜찮소. 애인놀음은 매음과 기생놀이와는 다르오. 그래도 사내가 돈을 쓰는 게 옳소.”
혜경이 바투 딱 들이댔다.
“리의사는 애인이 집을 사달라고 해도 척척 사줄 수 있는가요?”
리의사는 그 엄청나게 각박한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건 고급매음을 하는 고급기생의 요구지. 만약 애인이 진짜 좋으면 경제조건이 허락되는 사람은 집도 사줄 수 있지.”
서경리도 뒤질세라 나섰다.
“집을 사줄 정도면 한뉘 살 애인이여야지. 애인도 단기, 장기로 나누는 게 옳은 거 같소.”
향월이 눈이 데꾼해졌다.
“전 단기인가요? 장기인가요?”
서경리는 한발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감정 어떤가 두고 봐야지.”
이때 리의사가 술잔을 들며 그 어색하고 각박한 장면을 타개했다.
“자, 자, 이젠 애인토론을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기요. 개장국이 다 식겠소.”
그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오늘 술값은 내가 물겠으니 근심하지 마오. 자, 쭉 굽을 내기요.” 라고 했다.
그 시원한 소리에 모두들 거나하게 마시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밥사발이 세 사발 밖에 오르지 않았다.
서경리는 상을 찡그렸다.
왈패 향월이 우렁찬 목소리로 엉뚱한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등록하지 않은 부부로 됐어요. 우린 한 집에서 한 가마밥은 먹지 못해도 바깥에서나마 한 사발 밥을 먹게 됐소이다. 밥 속의 메추리알은 신랑들이 쿡쿡 찔러 드세요. 신랑들 잊지 마세요. 알은 혼자 먹지 말고 옆의 신부한테도 맛을 보게 좀 주세요.”
그때 해연이 맞장구를 쳤다.
“신부들이야 신랑 메추리알을 먹으면 되지. 뭘, 호호호. ”
“히히히. 아주 걸작이구만.”
“저 애가, 저게.”
모두들 그 소리에 배를 끌어안고 웃고 떠들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그들 세쌍은 음식점에서 나오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고 끌어안고 웃고 떠들며 밤이 가는줄도 모르고 질탕하게 놀았다.
해연은 호랑이 같은 난쟁이 남편이 눈을 흘길가봐 두려워 노래방에서 나오기 바쁘게 택시를 불러 타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서경리가 최룡학을 불러 이쪽에 대고 뭐라고 하며 손가락질하였다.
이윽고 최선생이 해연의 택시쪽으로 총총히 다가왔다.
“슴슴하게 갈라질 순 없잖소? 다방에 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기요.”
해연은 막무가내로 최선생을 태우고 가자는대로 달려갔다.
이윽고 그들은 어슴푸레한 불빛아래 조용한 다방에서 마주앉았다. 은은한 분위기 속에 해연은 커피를 홀짝 마시느라니 밤중이건만 후남편이고 뭐고 머리 속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길죽한 말상을 한 최룡학은 안경 너머 해연의 온몸을 누볐다. 안경알 밑에서 그의 눈길이 이상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해연은 그의 거칠어가는 숨소리가 고즈넉한 다방의 정적을 달래고 있음을 온몸으로 듣고 있었다.
“짧은 밤에 긴 얘길 할 게 없소. 아까는 깊이 말하기 불편했소. 툭 까놓고 말해서 애인관계의 핵심은 성관계가 아니겠소?”
“어마나!”
해연은 깜짝 놀랐다. 점잖아보이던 선비의 입에서 구렁이 같은 말이 스르르 기여나올줄은 천만뜻밖이였다.
“어째? 납득 안되오?”
“남녀 사이엔 성관계 외에 진정한 우정은 없는가요?”
“그런 말은 오빠하구나 하오.”
최룡학은 피씩 웃더니 권연을 꺼내 붙여 물었다.
“애인이란 정신과 육신이 한데 융합돼 화로불처럼 연소해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승화시켜야 하오. 그러잖으면 무슨 재미로 애인을 하오?”
해연은 뭇사내들이 다 그러하듯이 최선생이 그 다음 어떤 대답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 만난 최선생한테 경솔히 대답할 수 없었다.
최룡학이 불시에 차탁 우에 놓인 해연의 손을 덥썩 잡았다.
해연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어이구, 숫처녀 상을 하오. 어디 손금이나 보기요.”
해연은 그제야 참새처럼 놀라 할딱거리는 가슴을 천천히 진정하며 손을 맡겼다.
최룡학은 안경을 춰올리며 해연의 오른손바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횡설수설했다.
“남편 손금이 짧고 복잡한 걸 보니 남편 복은 없구나. 이게 뭐냐? 평생 나그네 셋은 해야 되겠구만. 뭐냐? 후에 만난 나그네 바람둥이구나.”
“픽, 제 후남편은 얼마나 정파답다고 그래요?”
최룡학은 계속 능청스레 뒤말을 이었다.
“아니요. 내 천리혜안을 속이지 못하오. 이 명금도 나쁘구먼. 꼭 명이 무슨 액에 막혀 피바람에 죽을 거 같소. 오행설에 의하면 사람마다 타고난 사주팔자는 다 정해진 게 돼서 고치지 못한다오. 우리 어떻게 액운을 피하고 짧디짧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기요. ”
“아니, 당장 죽을 사람이 무슨 재미를 본다고 그래요? 그런 미신 믿지 않아요.”
“너무 근심하지 마오. 천천히 그 액운을 피할 방도를 말해줄게. 양말을 벗겠소?”
“왜?”
“발바닥금을 봐줄게.”
“아니, 세상에, 발바닥금을 다 봐요?”
“그럼.”
최룡학은 해연의 발바닥 중간에서 조금 웃쪽을 만져보더니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뭐요? 새파란 녀자가 부부생활이 조화롭지 못하구만. 풍만하던 젖가슴도 젖밸만 남았구나.”
해연은 깜짝 놀랐다.
(이 나그네 진짜 천리혜안 가졌는가? 내 가슴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
최룡학은 계속 지껄였다.
“부부 간에 그 일이 잘 조화돼야 인슐린과 엔돌핀이 많이 배출돼 면역력도 높아지고 신경질이 나지 않소. 몸도 좋아지고.”
최룡학의 손이 장단지 우로 구렝이처럼 슬슬 기여올라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만! 밤도 깊었어요.”
최룡학은 고개를 기우뚱할뿐 아무 일도 없은듯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후에 자주 만나기요.”
해연은 집으로 돌아가 도적고양이처럼 집문을 살짝 떼고 들어서면서 남편 철수의 눈치를 핼끔 살피면서 침대에 다가가 사르르 이불을 홀랑 들고 들어가 누워버렸다. 철수한테서 역한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서려오르던 미안한 감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흥! 개자식! 내 없는 틈을 타서 또 밤중돌이를 했군. 사흘이 멀다하게 술집에 드나들면서 아가씨들과 흥청망청 놀아대? 나도 이젠 바깥에서 한바탕 놀테야.)
작달막한 철수는 해연이 송철한테 보복하려고 고의로 찾은 난쟁이후남편이다. 철수는 남의 차수리부에서 정비공이나 하면서 호주머니에 돈도 없어가지고 뱁새눈을 해가지고 어데 고운 아가씨가 있는가 살피며 오금을 쓰지 못하는 바람둥이였다.
한번은 백원짜리 몇장 밖에 안되는 로임을 손에 쥐자 향월의 이모사촌녀동생이 차린 술집인 것도 모르고 아가씨부터 찾더라는가.
“여기 춘란 아가씨가 제일 이쁘다던데. 이쪽에 인차 들여보내오.”
춘란은 원래 백화상점 출납원이였다. 그녀는 백화상점의 현금 1만원을 절도한 죄로 5년 유기징역형을 받았다. 만기석방된 후 승호의 추천을 받아 광고회사의 출납원으로 들어갈가해서 기웃거린 적도 있었다. 감옥살이를 한 딱지가 딱 들어붙어 출납원으로 되려던 꿈이 수포로 돌아가자 술집으로 떠돌아다니며 아가씨질이나 하면서 마구 뒹구는 판이였다.
이윽고 요염하게 화장을 한 춘란이 들어왔다. 그녀는 백화상점 출납원을 하다가 절도죄로 감옥살이를 했다. 만기석방된 후 신분을 속이고 여기저기 술집이나 돌아다니면서 아가씨질을 하는 판이였다.
춘란은 철수의 팔을 끌어안고 바싹 다가앉아 아양을 떨며 술을 부어올렸다.
“어서 한잔 드세요. 신사님.”
“오- 그래.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시니 술맛이 참 좋구나.”
철수는 춘란의 보름달 같은 얼굴을 꼬집어놓으면서 수작을 피웠다.
“아이유, 요것아, 네한테 홀딱 반해버렸구나. 춘향과 자매간이지? 예쁜데다가 이름도 춘향하구 비슷하고. 하하하.”
정비공 출신과는 달리 양복을 쭉 빼입고 넥타이까지 척 매고 신사처럼 허풍치며 거들먹거리는 철수를 보고 춘란은 돼지고기점을 집어 입에 넣어주면서 종알거렸다.
“신사님, 오늘 팁을 얼마나 주겠나요?”
“오? 무역공사 경리를 하는 내가 돈이 없겠니? 자, 받아라! 200원이야!”
“어마나! 경리 진짜 짱인데요. 호호호!”
철수는 100원짜리 두장을 꺼내 춘란의 풍만한 가슴에 마구 쑤셔넣었다.
저걸 보라. 철수는 처자 앞에서는 항상 돈이 없다고 죽는 상하다가도 아가씨들 앞에서는 한달 로임 절반도 탕탕 메치는 멍청이, 허풍쟁이다. 그는 이 구실 저 구실 대서 로임에서 탐오해낸 돈으로 색갈을 하는 판이였다.
향란의 녀동생이 들을라니 철수는 춘란이 앞에서 한바탕 허풍을 치며 희극을 놀았다고 한다.
“난 그저 경리가 아니야. 아주 유식한 문학가란 말이야. 춘란아, 내 보지 못한 소설책이 어디 있겠느냐?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는 책은 전문 강철을 어떻게 제련하는가하는 과학지식을 쓴 책이란 말이요. 그런데 번역을 잘못한 거 같애. 강철을 제련한다 하지 어디 단련한다고 해?”
“호호호. 그 책 내용이 어디 그런 건가요? 빠웰의 단련, 성장 과정을 썼지.”
“뭐? 오, 그래, 그 책을 봤단 말이지. 아마 내 본 책과 다른 거 본 거 같구나.”
“그래요? 호호호.”
그 말을 들은 향월의 녀동생은 코웃음이 나 눈물까지 찔끔 나올 지경이였다고 한다.
해연은 생각할 수록 최룡학선생의 말처럼 사주팔자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죽마고우 첫사랑 송철과 결혼해 아들 문호를 낳았지만 송철이 선희와 바람나서 리혼했지. 두번째로 만난 철수도 이런 방탕아지. 이 세상 누굴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기구한 운명을 생각할 수록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베개잇을 적시였다.
(혹시 진짜 최선생과 살면 어떨가? 내 리상형이야, 훤칠한 꺽다리지. 유식하지. 이제껏 작달막한 나그네들과 살았는데, 꺽다리와 살아본다? 헤이, 문호만 달리지 않아도 최선생한테 재가를 갔으면 좋겠는데.)
그후 해연은 꺽다리 최룡학과 사흘이 멀다하게 애인파티를 가졌다. 광고회사도 리굉팔이 독점하고 선희를 데려다 출납원을 시켰지. 설상가상으로 전번에 리굉팔이 공금을 람용한 사실을 암암리에 신고한 “죄” 때문에 굉팔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야지. 성호와 승호마저 그녀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하긴 해연은 자기가 신고해놓고 리굉팔을 말에서 끌어내리우지 못하자 승호화 성호한테 덮어씌우려 했던 것이다. 때문에 성호와 승호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위에 나갈 멋도 없었다. 갑갑한 울타리를 벗어나 최선생과 애인파티를 벌리군 했다. 상점이나 작은 음식점에서 마주 앉아 명태나 건두부쪼각에 맥주를 마시고 냉면을 한사발 먹으면서 얘기를 나눠도 그렇게 시원하고 별맛이였다.
해연은 난쟁이, 바람쟁이 나그네를 보지 않으니 좋았다. 범상치 않은 최룡학의 신기한 얘기를 들으니 더욱 즐거웠다. 참말로 최룡학의 얘기를 듣노라면 모든 고민거리를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롭고 황홀한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아 이를데 없이 기분 좋았다.
어느날, 해연은 회사에 나가 광고를 얻으러 나간다고 리굉팔 경리한테서 청가를 맡았다. 사흘이 멀다하게 광고를 하러 간다고 나돌아다녀도 광고 하나 얻어오지 못한 해연이 보기도 싫어 청가만은 계속 주었다.
해연은 굴레를 벗은 들말처럼 최룡학과 함께 슈퍼마켓에 가서 맥주랑 명태랑 사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망아산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해살이 부채살처럼 비켜뜨는 울창한 나무숲 속은 어찌나 조용한지 간혹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천연주단처럼 깔린 푸른 잔디에 비닐돗자리를 펴고 맥주랑 명태랑 꺼내놓고 마주 앉았다. 실로 속세를 벗어나 그들만 사는 자유로운 선경에 들어선 것 같아 황홀하기만 했다.
그들은 맥주를 따서 컵에 부어 딩둥댕 마주치고나서 한잔씩 쭉 마셨다.
“야, 시원하다.”
“기분 참말로 좋아요.”
해연은 명태를 쪽 찢어 고추장에 찍어 룡학의 입에 쏙 밀어넣어주었다.
“최선생을 만난후 제 인생이 새로 활딱 바뀐 거 같애요. 최선생을 늦게 알게 된 게 참 아쉬워요.”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교배주를 마실가?”
“교배주뿐이겠어요? 뭐나 다 해드릴 게요.”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맥주를 쭉쭉 들이켰다.
최룡학은 서너잔 얼근히 되자 점점 로골적으로 나왔다.
“야, 고 야들야들한 입에 키스를 했으면 좋겠다.”
“아이유- 그럼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해연은 애교를 부리면서 최룡학의 품에 안겼다. 최룡학은 이게 웬 떡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드는가고 꽉 끌어안았다…
“꼼짝 말엇!”
갑자기 수림 속에서 생벼락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해연이 와뜰 놀라 황홀한 꿈에서 깨나 둘러보니 구레나룻을 기른 사내와 땅딸보사내가 옆구리에 손을 찌른채 다리를 쩍 벌리고 떡 서서 그들을 노려보는 것이였다.
“어머나! 빨리 가자요!”
“가긴 어델 가?! 시퍼런 대낮에 바람을 피워! 흥!”
해연은 질겁해 바들바들 떨었다.
그래도 최룡학이 능글거리면서 림기응변했다.
“바람이라니? 부부간에 들놀이를 왔는데.”
구레나룻들은 희죽거리며 을러멨다.
“뭣이 어찌구 어째? 부부간?! 그럼 신분증을 내놔. 사업단위도 대라.”
“당신들이 뭐기에 우릴 보고 호통질이야?”
구레나룻은 룡학을 발로 탕 걷어찼다. 룡학은 얼굴이 피투성이 돼서 저만치 나뒹굴었다.
“우린 경찰이야. 전문 너희들 년놈처럼 수림에 와서 오입하는 오입쟁이들을 붙잡고 있어. 톡톡이 망신당하지 못해 대들어? 어서 파출소로 가자. 단단히 벌금해야겠군.”
말이 변설인 최룡학도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 놈들이 경찰이 아니라 날강도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서 그 놈들의 함정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 두장을 꺼내 주면서 빌었다.
“맥주나 사 마시고 우릴 놔주오.”
구레나룻이 홱 채가더니 을러멨다.
“요걸로?”
옆에서 땅딸보가 해연한테 눈길을 돌리더니 꽥 고함쳤다.
“돈이 없으면 아가씨라도 두고 가라!”
해연은 룡학의 뒤에 비실비실 물러서다가 돌아서서 걸음아 날 살려라고 선불 맞은 노루처럼 줄행랑을 놓았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룡학도 뒤따라 껑충껑충 큰 길 쪽으로 달아났다.
혼줄이 난 그들은 련 며칠 만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공포가 지나가자 보름도 지나지 않아 야성이 머리를 숙였던 잔디처럼 고개를 쳐드는 것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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