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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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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동화 게으름뱅이 차차 김장혁
2021년 08월 27일 09시 36분  조회:110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중편동화

               게으름뱅이 차차
                                                 
                                                    김장혁
   
                                          1
     아름드리통나무들이 꽃구름을 찌르는 원시림이예요. 울창한 수림 나무잎 새로 아침해살이 부채살처럼 비껴 들어왔어요.
곰이랑 다람쥐랑 모두 월동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한데요. 차차라는 토끼만은 얕다란 굴에서 늦잠을 콜콜 자고 있었어요.
다람쥐가 도토리를 물고 나무 우로 쪼르르 올라가 둥지에 내려놓은 후 얕다란 토끼 굴을 내려다 보고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당장 겨울이 닥쳐오겠는데요. 아직도 늦잠을 자는 차차를 보다못해 다람쥐는 바락 고함쳤어요.
“얘, 차차야, 해 엉덩이를 다 비춘다. 어서 일어나!”
차차는 눈도 뜨지 않고 돌아누으면서 도도거렸어요.
“아유, 시끄러워! 왜 아침부터 남의 별명을 부르면서 단잠을 깨워?”
토끼 차차가 어떻게 돼 “차차”라는 별명을 달게 됐을가요?
원래 이런 사연이 있어요.
토끼가 어찌나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했으면 다람쥐랑 곰아저씨랑 “차차”란 별명까지 지어 불렀겠어요.
그런데도 차차는 뭐나 “차차”, “차차” 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고질병을 고치지 못했어요.
다람쥐는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차차 굴어구에 와서 앞발로 삿대질하며 말했어요.
“얘, 차차야, 어서 일어나 먹을 것도 푼푼히 마련하고 미리 굴도 여러개 파놓으렴.”
차차는 핸들 돌아눕더니 굴 밖을 핼끔 내다보며 얹짢은 소리를 줴쳤어요.
“야, 네나 할게지. 왜 시끄럽게 굴어.”
다람쥐는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얘, 이웃사촌이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땐 일깨워 줘야지. 당장 큰 눈이 오겠는데 먹을게 모자라면 어쩌느냐?”
차차는 “큰 눈”소리를 듣자 뒤지개를 하더니 일어나 밖으로 나왔어요.
“아직 한창 가을인데 웬 큰 눈이냐? 차자 먹이를 마련해도 돼.”
다람쥐는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내는 차차가 얄미웠어요.
“또 차차? 남은 생각해서 말하는데 그게 뭐냐?”
다람쥐는 언짢아했어요.
“됐다, 됐어. 굶어죽어도 네 도토리 꿔다 먹지 않아.”
다람쥐는 바투 들이댔어요.
“어째 숱한 동물들이 널 ‘차차’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느냐? 뭐나 너처럼 ‘차차’ 해서야 되겠느냐? 좀 미리, 미리 하는 습관을 키워라.”
차차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에이구, 더운 밥 먹고 식은 걱정 좀 작작 해라.”
그러나 다람쥐는 토끼 굴을 들여다보더니 손가락질하면서 계속 충고하였어요.
“이 굴을 봐라. 이렇게 굴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서야 되겠느냐? 얼마나 위험하냐? 불여우나 승냥이나 오면 피할데도 없어 어쩌느냐? 굴을 미리 여러개  파놓는게 옳아.”
차차는 불여우와 승냥이 말이 나오자 온몸에 소름이 쪽 끼쳤어요.
“불여우랑 승냥이랑 말 좀 작작해라. 자꾸 고양이 방정을 떨다가 진짜 승냥이랑 오면 어쩌니?”
뒤이어 묻어나오는 차차의 뒤말은 어수선하기로 짝이 없었어요.
“아직 겨울이 멀잖아. 괜찮아. 소털 같은 날에 차차 굴을 파면 돼.”
다람쥐는 어이 없었어요.
“또, 또, 차차냐? 아이고, 게으름뱅이 차차야, 언제 그 놈의 차차를 떼버리겠느냐? 그 놈의 차차에 망하지 않는가 봐라. 충고한다, 충고해. 제정신을 좀 차려라. 쯧쯧쯧.”
“뭐라고?!”
차차는 바락 화를 냈어요.
“이젠 그따위 충고인지 애고인지 개코 같은 소릴 작작 쳐라! 아무리 좋은 노래도 두번 들으면 듣기 싫어!”
다람쥐는 어이없어  도토리를 주으러 쪼르르 가버렸어요.
                               2
차차는 한낮이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났어요. 그는 앞발과 뒤발을 쫙 벌리며 기지개를 쭉 하였어요.
“배 촐촐한데.”
그는 풀을 뜯어먹으러 깡충깡충 수림 속으로 뛰여갔어요.
이젠 마가을에 접어들면서 수림 속의 풀잎은 누렇게 마르기 시작해 파란 풀을 찾기 그리 쉽지 않았어요.
“진짜 다람쥐 말처럼 큰 눈이나 풍풍 쏟아지면 먹을 풀이 없어 고생하지 않을가?”
그러나 그때 뿐이였어요.
차차는 몇포기 파란 능쟁이를 뜯어먹자 인차 원래 생각으로 돌아가버렸지요.
“에라, 모르겠다. 눈 앞에 풀이나 배불리 먹고 굴은 차차 파지.”
차차가 한창 파란 풀을 찾아 헤매다가 아름드리통나무들이 우중충 솟아 있는 산중턱 수림에 이르렀어요.
그의 빨간 눈에 구새먹은 통나무가 들어왔어요. 순간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뇌리를 번개치며 스쳐지나갔어요.
“다람쥐 말처럼 굴도 얕은데 저 구새통 안에 들어가 겨울을 나면 어떨까?”
차차는 두 귀를 빨쭉 쳐들고 궁리하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그럼 그렇지. 힘들게 굴을 팔 필요없어. 불여우나 승냥이 와도 구새통에 살짝 피해 달려들어가면 물릴 근심도 없지.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지. 호호호.”
차차는 너무 기뻐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춤까지 당실당실 추었어요.
뒤이어 코노래를 부르며 구새통을 얼싸 안고 돌아가며 구새통을 찬찬히 여겨보았어요. 그런데 구새통 아구리가 둬메터나 높은 곳에 있어 키 작은 자기가 드나들 수 없을 거 같았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찬찬히 여겨보니 구새목에 웬 커다란 발톱에 긁히운 자리가 다닥다닥 나 있었어요.
(벌써 웬 놈이 먼저 차지했잖았는가? 한발 늦었구나. 참, 재수 없어!)
이때 산둔덕 아래 바위돌 밑에서 웬 씩씩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차차는 인차 풀숲에 뛰여들어가 두 귀를 빨쭉 일궈세우고 경각성 높이 아래 쪽을 살폈어요.
저게 뭔가요?
글쎄 곰아저씨가 새끼들을 데리고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있지 않겠어요.
차차는 한숨을 호- 몰아쉬였어요.
(곰아저씨 저기에 굴을 파는 걸 보면 이 구새통은 곰의 굴은 아니겠구나. 그럼 그렇지. 구새통은 내 굴이야. 흐흐흐.)
차차는 다시 생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그는 시꺼먼 아구리를 쩍 벌리고 있는 구새통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구새통에 드나들 수만 있으면 참 좋은 굴인데. 어떻게 드나들지?”
차차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구새통에 걸쳐 있는 마른 나무가지를 보았어요.
“옳지. 다람쥐처럼 저걸 타고 올라가면 되겠지.”
차차는 용기를 내서 마른 나무가지를 타고 살금살금 구새통 아구리로 한발자욱한발자욱 기여올라갔어요.
“에헴! 누구냐?!’
갑자기 수림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차차는 깜짝 놀라 그만 아래로 퉁 떨어졌어요.
“아이고!”
차차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오만상을 쫑그렸어요.
이윽고 어마어마하게 큰 곰아저씨가 새끼들을 데리고 산꼴짜기에서 올라오지 않겠어요.
“어, 차차 아니냐?”
곰은 뒤따라 올라오는 새끼들을 돌아보며 빈정거렸어요.
“이게 해 서산에서 돋지 않겠느냐? 어떻게 돼 우리 굴에 다 찾아왔어? 허허허.”
차차는 아파 엄살을 부리면서 마지못해 알은 체했어요.
“곰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냐, 그래. 월동준비는 다 됐느냐?”
“차차 하면 되죠.”
“또, 또, 차차냐? 흥!”
곰아저씨는 토끼 아래우를 훑어보며 물었어요.
“응, 그래, 나무가지에서 떨어져 상하진 않았느냐? 건데 우리 구새통굴에 올라가서 뭘 하느냐?”
차차는 눈알이 새똥그래났어요.
“뭐라구요? 이게 어디 곰아저씨네 굴인가요? 저 아래 굴을 파면서도. 욕심이 너무 과하잖아요?”
곰아저시는 억이 막혔어요.
“어째 여지껏 몰랐느냐? 저기 구새통 아구리에 난 발톱자국을 봐라. 우리 곰 발톱자국이 아닌가?”
차차는 실망에 빠져 고개를 숙였다가 일루의 희망을 품고 한마디 해보았지요.
“곰아저씨네는 바위 밑에 굴을 파더군요. 이 구새통굴이 이젠 필요없잖아요?”
“허허허.”
곰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쳤어요.
“오- 대개 알만해. 혹시 이 구새통에서 살가 해서 그러잖느냐?”
차차는 곰아저씨가 화를 낼가 봐 망설이다가 겨우 목구멍에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종알거렸어요.
“네. 그래요. 얕은 흙굴보다 이 구새통이 더 든든해 안전할 거 같아 그래요.”
그는 곰아저씨 앞에 깡충깡충 뛰여가 목멘 소리로 애원했어요.
“곰아저씨, 아저씬 힘도 세서 불여우랑 승냥이랑 대수롭잖고 뭔가요? 요 약자 토끼를 좀 도와주십시오. 난 불여우나 승냥이한테 물려 죽을가 봐 날마다 발편잠을 자지 못해요. 꿈만 꾸면 그놈들한테 목을 물려 바둑거리는 악몽을 꿔요. 아저씨, 불쌍한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러나 곰은 뿔룩한 배때기를 내밀고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요.
“구새통을 내놓고 추운 겨울에 우린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
차차는 아니꼬와 빨간 눈을 흘기면서 앞발로 산꼴짜기 바위를 가리켰어요.
“곰아저씬 항상 이웃사촌이라더니요. 헛소리군요. 아저씨네는 저게 파는 흙굴에서 살면 안돼요? 보자보자 하니 있는 놈일수록 더 욕심쓰는구만요.”
새끼곰들은 어처구니없어했어요.
“얘, 차차야, 건 우리 예비굴이야.”
 “진짜 굴러온 돌이 배긴 돌을 뺄 작정이군.”
새끼곰들은 우르르 쓸어와 차차를 몰아내려고 했어요.
“얘들아, 그만 둬!”
곰아저씨가 말려서야 새끼곰들은 공격을 멈췄어요.
곰아저씨는 차차에게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며칠 전에 웬 사냥군한테 이 구새통이 발견됐어. 사냥군은 이 구새통을 꽤나 욕심내는 거 같더라. 품으로 안아보며 둘레를 재여보기도 하고 구새통 아구리에 자기 키를 대보면서 높이도 재여보는 거 같더라.”
차차는 빨쭉귀를 곤두세우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곰아저씨, 사냥군이 구새통을 해서 뭘 할가요? 속이 텅 비여서 재목으로 쓰긴 틀렸는데요. 혹시 구새통 안에서 사는 곰아저씨네를 잡자고 그러지나 않을가요?”
“글쎄 말이야.”
곰아저씨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어요.
“아마 구새통을 베여다가 집에 구새를 세우자고 그러는 거 같기도 하더라. 우린 국가 보호동물이니깐. 사냥군이 감히 손이야 대겠니?”
“그래도 경각성을 높여야죠.”
곰은 머리를 끄덕였어요.
“음, 그래 혹시나 해서 저 아래 바위돌 밑에 예비굴을 판다.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해놔야지. 코밑에 가서 굴을 얻자고 하다가 한지에 방아를 걸가 봐.”
이윽고 차차는 무슨 령감이 떠올랐는던지 하얀 얼굴에 생기를 띠였어요.
“그럼 곰아저씨네는 아예 저 예비굴에 가서 사세요. 이젠 당장 겨울이 닥쳐오겠는데요. 내 언제 새 굴을 파겠어요. 이 구새통에서 살게 줘요.”
곰은 억이 막혔어요.
“차차야,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해놔야 해. 이 구새통은 널 준대도 사냥군한테 들키워서 장원하지 못해.”
차차는 대수로워하지도 않았어요.
“아저씬 근심말고 예비굴에 이사나 하세요. 내 인차 여기 이사와서 살게요.”
곰은 저으기 근심됐지만요. 당장 겨울이 닥쳐오는데 변변한 굴도 없는 차차가 불쌍했어요.
“정 살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이웃사촌이라고 구새통을 줄게.”
차차는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였어요.
곰아저씨는 “사냥군이랑 승냥이랑 불여우랑 주의해라.” 하고 한마디 하고는 새끼곰들을 데리고 당장 구새통 안에서 먹이랑 꺼내 메고 바위돌 아래 예비굴로 이사해갔어요.
                                      3
차차는 구새통 밑에서 코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낮잠을 잤어요.
쿵!
산골짜기 아래 나무에서 육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사냥군이 오지 않았는가?)
차차는 화닥닥 놀라 발딱 일어나 풀숲을 헤치고 내려다 보았어요.
아니, 저게 뭔가요?
글쎄 곰들이 나무에 바라올라갔다가는 아래로 퉁퉁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안되겠다. 어서 더 사냥해 먹어라!”
“호호호.”
차차는 너무 우스워 코를 싸쥐고 웃었어요.
“호호호. 배부르니 할 노릇도 없군. 저라다가 상하면 어쩌자고 저래? 흥!”
그는 보다못해 너무나도 이상해 산골짜기로 깡충깡충 뛰여내려갔어요.
“곰아저씨, 뭐, 군사훈련이라도 하는 겁니까?”
곰아저씨는 차차를 돌아보며 량 앞다리를 벌려보이면서 희죽이 웃었어요.
“아니야. 우린 월동준비를 하는 거야.”
차차는 어안이 벙벙해 빨간 눈알마저 새똥그래졌어요.
“월동준비?”
“살이 어느만큼 졌는가 시험해보는 거야. 떨어져서 엉덩이 아프면 아직 월동할 수 있으리만큼 살이 지지 않았다고 보지. 그럼 우린 나무에서 떨어져서 아프지 않을 때까지 살이 지게 사냥해 미리 더 먹는 거야.”
“호호호.”
“우둔한게 범 잡는다고 별의별 우둔한 놈들을 다 보겠어유. 우둔한 도깨비 같은게 누굴 훈계해? 제 새끼들이나 나무에서 떨어져 죽지 말게 잘 건사하라고나 해라.”
차차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곰을 노엽힐가 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꼴깍 삼켰어요.
그러나 한참 지나자 참지 못하고 끝내 한마디 말했어요.
“아니, 아직 겨울도 먼데 차차 먹어도 되겠는데요. 왜 지금부터 그렇게 많이 먹어요? 한꺼번에 폭식했다가 소화불량에 걸리겠어요.”
곰은 헤쭉 웃었어요.
“넌 아직 몰라. 우리 곰들은 뭐나 차차 하는 네하구 달라. 우린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월동준비로 온 겨울 먹을 걸 다 미리 먹어 살을 지워둔다. 우린 겨울에 아무 것두 안 먹고 잠만 자지. 그래도 미리 먹어둔게 있어서 배고픈 줄 몰라. 그래서 월동준비로 미리 사냥두 많이 해 배터지게 먹는다. 그 다음 살이 졌는가 나무에 올라가 떨어져 보지. 그래 엉덩이 아프면 아직 살이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걸 알지. 그럼 또 사냥해서 더 먹지.”
“네- ”
그제야 차차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렸어요.
곰은 겨울나이먹이도 준비하지 않고 항상 낮잠만 콜콜 자는 게으름뱅이 차차 근심돼 귀띔해주었어요.
“얘, 차차야, 일어나. 뭐나 여지를 두고 살아야 해. 뭐나 차차 할 생각해선 안돼. 너도 낮잠만 자지 말고 미리 월동준비를 해놔라. 큰 눈이 뒤덮기 전에 풀도 푼푼히 마련해놓구. 땅이 얼기 전에 미리 예비굴도 파놔라.”
“됐어요, 돼! 차차 알아서 하지 않으리라고, 흥! 어쩜 다람쥐하구 똑 같습니까! 모두 잔소리대장이구만요. 잔소리를 하루라도 하지 못하면 못 삽니까? 픽!”
차차는 픽픽거리며 곰과 다람쥐 귀띰해주는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그는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파란 풀을 하나라도 더 먹느라고 눈알마저 새빨개 헤맸어요. 그러나 이젠 파란 풀은 쌀에 뉘처럼 찾기 힘들었어요.
차차는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구새통 그늘 밑에서 네발로 타리대를 치고 들어누워 낮잠만 콜콜 잤어요.
어쩌다가 깨나 높다란 구새통 아구리를 쳐다보다가 거기에 다리를 놓을가고 궁리하다가도 “에이, 차차 하지.” 하고 또 코를 다랑다랑 굴렀어요.
똘랑!
“아가갸!”
뭔가 낮잠을 자는 차차의 이마에 떨어졌어요. 깨나보니 도토리 떨어지지 않았겠어요.
차차가 두 빨쭉귀를 빨쭉하고 도리반거리며 나무 가지를 살펴보니 다람쥐란 놈이 구새통에 놓으려던 마른 나무가지에 올라가다가 되내려 오지 않겠어요.
“차차야, 미안해. 금방 도토리를 주어가다가 떨어뜨렸어.”
차차는 볼멘 소리를 했어요.
“이후엔 주의해라. 재수없이 남의 낮잠 깨우면서.”
그런데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고 가지 않고 주춤 물앉더니 이런 말을 꺼냈어요.
“얘, 낮잠만 자지 말고 먹이풀이랑 미리 푼푼히 장만해둬라…”
“큰 눈이 내리면 어쩌겠니?”
차차는 발딱 일어나면서 뒤말을 외워대지 않겠어요.
“차차 하지 않으리라고 자꾸 잔소리냐? 귀못이 박히겠다. 흥!”
다람쥐는 차차 발름거리는 코를 쥐여 흔들었어요.
“에이고, 도리는 잘 아는구나. 날마다 자기나 하고 언제 굴이랑 파겠느냐?”
차차는 다람쥐를 훌 밀어놓으면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어요.
“얘, 근심두 팔자다. 나두 이젠 땅굴에 이 구새통까지 굴이 두개나 있잖느냐?”
뒤이어 도토리를 주어 볼록하게 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른 나무 잎을 바스락바스락 밟으며 사라졌어요.
차차는 둥지로 쪼르르 올라가는 다람쥐를 쳐다보았어요.
“얘, 다람쥐야, 검정개 돼지 흉 하지 말라. 고 쪼꼬만 둥지에 도토리를 장만한댔자 몇알이나 장만하겠느냐? 고걸로 겨울 나겠느냐?”
다람쥐는 도토리를 앞발로 들어 둥지에 쌓아놓으면서 대답했어요.
“이건 지금 먹을 게구. 겨울에 먹을 건 따로 땅굴 파고 수태 장만해 둘 예산이야.”
“오- ”
차차는 감탄할뿐이였어요. 그러나 미리 굴을 파고 먹이를 장만할 예산은 꼬물만치도 없었어요.
                        4
이젠 원시림에 락엽이 우수수 지기 시작하였어요.
다람쥐와 곰들은 월동준비에 걸음이 더 바빠졌어요.
그러나 차차는 미리 먹이풀을 장만해 두지 않아 하루살이처럼 그날 그날 풀을 뜯어먹군 했지요.
이날도 차차는 먹이풀을 얻으려고 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되물앉았어요.
그의 눈에는 굴어구에 내리드리운 파란 능쟁이 잎이 띠였어요. 차차는 앞발로 굴어구 풀 한대를 후려쥐고 입으로 풀잎을 뜯어 오물오물 맛있게 먹기 시작했어요.
“잠간만!”
이때 다람쥐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흠칫 놀란 차차토끼는 이깔나무 우의 둥지를 보고서야 안심됐어요.
“얘, 좀 작작 소리쳐! 간 떨어져.”
다람쥐는 둥지에서 이깔대를 타고 쪼르르 내려와 능쟁이를 빼앗아냈어요.
“얘, 굴어구 풀을 먹어선 절대 안돼.”
차차는 새빨간 눈을 새똥그랗게 치켜떴어요.
“왜? 내 굴어구 풀을 내 먹는데도 안돼? ”
다람쥐는 내심하게 타일렀어요.
“생각해 하는 말이야. 굴어구 풀을 다 뜯어먹으면 굴이 빤이 드러날게 아니냐?”
차차는 의아해했어요.
“어째? 굴에 습기 차 찐찐한데 해볓도 잘 들어오고 좀 좋아?”
다람쥐는 타일렀어요.
“승냥이랑 불여우랑 굴어구를 쉽게 발견하면 목숨이 위험해.”
그제야 차차는 다람쥐한테서 능쟁이를 빼앗아 먹으려다가 그만 뒀어요.
“죄꼬만게 아는 척도 하긴? 좀 작작 승냥이 말 해라. 범도 자기 흉을 하면 온다는 말이 있잖아. 괜히 자꾸 방정을 떨어서 승냥이를 불러 오겠다. 흥!”
다람쥐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엄숙하게 충고했어요.
“명심해라. 속담에도 토끼는 굴어구 풀을 먹지 않는다고 했잖아. 굴어구 풀을 먹어선 절대 안돼.”
차차는 다람쥐를 항상 “죄꼬만게 뭘 알아 그래?” 하고 비웃었지만 속으로는 철리가 담긴 속담까지 인용하는 다람쥐가 이 시각처럼 커보인 적은 없었어요.
다람쥐가 간 후 차차는 굴 안에 누워 바깥을 내다보았어요. 그만 꽃구름과 통나무들을 배경으로 굴어구에 내리 드리운 능쟁이를 보는 순간 군침이 꼴깍 넘어갔어요.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까지 났어요.
그는 살금살금 굴어구에 기여가 능쟁이를 헤치고 이깔나무 우의 다람쥐 둥지를 살펴보았어요.
다람쥐는 어데로 갔는지 아무런 동정도 없었어요.
(에라, 모르겠다. 배고파 못 견디겠어.)
차차는 다람쥐 충고를 귀등으로 흘려보냈어요.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발로 굴어구 능쟁이를 후리고 들어앉아 파란 잎을 오물오물 뜯어먹었어요.
순식간에 굴어구 능쟁이가 거덜났어요. 앙상한 가지만 내놓고 이파리는 다 뜯어먹었지요.
이젠 차차의 굴어구에 풀이 없어져 굴이 환히 드러났어요.
다람쥐는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얘, 무슨 짓을 했니? 이젠 목을 승냥이한테 내놓은 짓이야.!”
“작작 승냥이 말을 해라. 고양이 방정을 떨다가 진짜 승냥이 오겠다. 쳇!”
차차는 뭐라고 또 입을 벌리려는 다람쥐를 마구 떠밀어 쫓아보냈어요.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한참 욕하다가 네다리를 쭉 뻗고 해볕을 쪼이며 낮잠을 콜콜 잤어요.
어느날, 차차는 굴에서 낮잠을 한창 자고 있었어요.
웬 일인가요?
낮잠을 자던 차차는 굴어구에 나와 기지개를 하자 어깨에 나래라도 돋힌듯이 온몸이 하늘로 둥둥 떠올라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씽씽 날아 강남의 한 원시우림에 이르렀지요. 북방과는 달리 강남의 원시우림은 사시장철 여름처럼 따뜻했고 락엽이 질줄을 몰랐어요. 잔나무 수림 속에는 초겨울인데도 차차가 제일 먹기 좋아하는 능쟁이랑 풀숲을 이룬 채 파릇파릇 키돋음하고 있었어요.
“호호호.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도 다 있어. 다람쥐랑 자꾸 근심하는 눈이 내리지 않지, 풀이 사시장철 마르지 않고 파랗게 살아 있지. 얼마나 좋은가! 이젠 그 아쓸한 북방 원시림에서 살지 말고 여기서 살자꾸나.”
그런데 강남의 원시우림에는 승냥이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 저으기 근심되였어요.
그가 배터지게 파란 풀을 뜯어먹고 낮잠을 자는에요. 이상하게 풀숲을 버스락버스락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차차는 발딱 일어나 굴어구에 엎뎌 빨간 눈을 딱 부릅뜨고 바깥 동정을 살폈어요.
“아이구머니!’
불여우가 아니겠어요.
그 놈은 어슬렁어슬렁 굴어구에 다가왔어요.
차차는 깜짝 놀라 굴 안에 들어가 숨어버렸어요. 그러나 굴이 어찌나 얕은지 불여우놈이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자 차차는 피할래 피할 데조차 없었어요.
불여우놈은 차차를 발견하고 헤벌쭉 랭소하였어요. 그 놈은 앞발로 굴을 마구 파헤쳤어요. 이젠 삐죽한 주둥이를 굴에 쑥 들이밀고 차차 토끼를 당장 물려고 덮쳐들었어요.
“살려주세요!”
차차는 고함치며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것은 열대원시우림에서 꾼 한낱 악몽이였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차차는 금방 꿈을 생각만 해도 잔등에 소름이 쪽 끼쳤어요.
그는 악몽이 어쩐지 꿈 같지 않았어요. 그리하여 다람쥐랑 곰아저씨랑 충고대로 굴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한뼘이나 더 파나 마나 해 할딱할딱하며 힘들어서 그만 뒀어요.
“에라, 모르겠다. 꿈이잖아. 낮잠이나 자고 보자.”
차차는 굴에 핸들 들어누워 빨간 눈을 사르르 감아버렸어요. 
씩씩-
갑자기 빨쭉귀에 웬 놈이 냄새를 씩씩 맡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또 꿈인가 했는데요. 차차가 빨간 두 눈을 반짝 떴어요.
아니, 글쎄 이번엔 불여우가 아니라 승냥이란 놈이 주둥이를 굴 안에 쑥 들이밀고 냄새를 맡지 않겠어요.
“아이고!”
차차는 비명을 지르며 굴 안으로 물러앉아 놀란 가슴을 할딱거렸어요.
(다람쥐 고양이 방정을 떨더니 진짜 승냥이를 불러 왔구나. 어쩌지?)
“요놈 토끼야, 어델 도망쳐?!”
승냥이놈은 아가리를 쫙 벌리고 앞발로 마구 토끼 굴을 파재꼈어요. 토끼는 굴이 얕아서 이젠 뒤로 물러설 자리도 없었어요.
승냥이놈은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더니 굴막장에 숨어 가슴을 할딱거리는 차차리를 발견했어요.
“으악!”
승냥이놈은 삐죽한 아가리를 쫙 벌려 톱날 같은 이로 차차를 깨물려고 미쳐날뛰였어요.
“앗!”
차차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홱 탈며 피했어요. 다행히 몸은 물리지 않았지만요. 대신 꼬리를 물려 뭉텅 끊어져나갔어요.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둥지 우에 숨었던 다람쥐가 다급히 찍찍거리며 소리쳤어요.
“승냥이 왔어요!”
“차차를 구해주세요!”
굴 밖에서 곰아저씨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렸어요.
“이 놈 승냥이!”
승냥이는 주춤 물러서며 나무숲을 힐끔거리다가 수림 속으로 도망쳐 버렸어요.
그 틈을 타 차차는 황급히 굴에서 빠져나가 수림 속으로 도망갔어요. 그러자 승냥이는 도망치는가 했더니 몸을 홱 돌리더니 차차를 쏜살같이 뒤쫓아갔어요.
“곰아저씨, 살려줘요!”
“아니, 저 놈 승냥이! 차차를 놓지 못하겠니?!’
곰아저씨가 헐금씨금 뒤쫓아갔어요.
당장 승냥이가 토끼를 거의 뒤쫓아 꼬리를 물 지경이였어요.
곰아저씨는 뒤쫓아가면서 고함쳤어요.
“차차야, 빨리 구새통에 뛰여들어가라!”
그제야 토끼는 앞에 보이는 구새통 쪽으로 도망쳤어요. 드디여 구새통에 놓은  나무가지를 타고 깡충깡충 뛰여올라갔어요. 그런데 나무가지를 미처 구새통 아구리에 받쳐놓지 않아 아구리 중턱까지 밖에 올라가지 못했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토끼가 주춤 멈춰선 순간 승냥이가 씽 날아가면서 토끼를 앞발로 탁 쳤어요. 토끼는 허망 땅바닥에 날려가 떨어졌어요.
차차의 생사관두에 곰아저씨가 날래게 덮쳐와 승냥이를 주먹으로 탁 쳤어요.
“아이쿠!”
승냥이는 저만치 날려가 처박혔어요. 깨갱거리던 승냥이는 사타구니에 꼬리를 끼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차차는 피 줄줄 흐르는 몽당꼬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바들바들 떨면서 다가왔어요.
“에구머니, 이 피!”
다람쥐가 새된 소리를 질렀어요.
그제야 곰아저씨는 승냥이한테 물려 차차 꼬리가 몽탕 끊어진 것을 발견했어요.
곰아저씨는 차차의 꼬리 상처를 풀잎으로 동여매주면서 말했어요.
“내 뭐라 했냐? 미리 예비굴을 파놔라는데. 그리 얕은 굴에 숨었다가 하마트면 죽을 번했잖았느냐? 에이구, 빨쭉귀 이리 큰데 왜 통말이 안 들어가느냐?”
뒤이어 곰아저씨는 거의 다 파헤쳐진 토끼 굴을 내려다보면서 뒤말을 이었어요.
“굴이 이렇게 얕고서야 어떻게 승냥이를 피할 수 있겠느냐? 출구도 하나 밖에 없지. ”
그때라고 다람쥐도 끼여들었어요.
“우리 뭐라 했느냐? 굴어구 풀을 뜯어먹지 말라는데. 뭐냐?”
토끼는 그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후회했어요.
다람쥐는 뒤말을 이었어요.
“미리 굴을 깊게 파놓으라는데. 항상 차차 하지, 차차 하지 하면서 질질 끌더니. 오늘 얼마나 위험했느냐?”
차차는 다람쥐를 작작 잔소리 해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5
차차는 승냥이한테 혼빵난 다음에야 이른 아침부터 양지바른 언덕 아래에 새 굴을 파기 시작했어요.
“에이, 굴을 파야지. 살아 남겠으면 굴을 파야지. 출구도 여러개 빼야지.”
차차는 진짜 아가리를 쫙 벌리고 톱날 같은 이발을 드러낸 채 앞발로 자기 굴을 파헤치던 승냥이 상통만 생각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어요.
곰아저씨는 말을 꺼낸바 하고는 침을 한대 더 놨어요.
“봐라. 저 구새통 아구리에 올라갈 다리두 미리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전번에 다리 없어서 구새통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죽을 번했잖았느냐?”
“네- 곰아저씨.”
곰아저씨는 사냥하러 떠나가면서 신신당부했어요.
“땅이 땅땅 얼기 전에 어떻게 하나 굴 몇개 파놔라.”
“네- 근심하지 말고 어서 사냥하러 가세요.”
차차는 속으로 곰아저씨가 로파심이 너무 많다고 여기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굴을 팠어요.
그런데 땅이 좀 얼어서 굴을 파기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아무리 앞발 발톱이 다슬게 허비고 긁어대도 좀체로 축이 나지 않았어요.
차차는 맥없이 락엽더미 우에 핸들 드러누워 버렸어요. 그는 새빨간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면서 어떻게 더 쉬운 방법이 없을가고 궁리했어요.
그의 시선에 아름드리 구새통 아구리가 들어왔어요.
“옳지. 굴은 차차 파구 먼저 구새통 아구리에 다리나 놓자.”
차차는 낑낑거리면서 팔뚝만한 나무가지를 구새통 아구리까지 올려놓으려고 빠둑거렸어요. 그러나 그의 가냘픈 힘으로 다리를 놓는다는 건 아름찬 일이였어요.
“에라, 모르겠다.”
차차는 또 물러앉고 말았어요. 그는 구새통 아구리 밑에 핸들 누워 두귀를 빨쭉거리며 량미간을 쪼프렸어요. 그는 한참 궁리하다가 도리머리를 살래살래 저었어요.
“안돼. 구새통에 나무다리를 놔도 쓸데 없어. 내 나무다리를 타고 구새통 안에 달려들어가면 승냥이도 그 나무다리를 타고 뛰여들어올게 아닌가?”
한참 궁리를 굴리고 굴리던 차차는 무릎을 착 치고 발딱 일어났어요.
“옳지. 가느다란 마른 나무가지로 다리를 놔야지. 승냥이놈이 밟으면 툭 부러지게.”
이때 다람쥐가 쪼르르 달려왔어요.
“잘하는구나. 굴을 파지 않고 뭘 하니?”
차차는 자기 궁리를 말했어요.
그러자 다람쥐가 팔을 걷고 나섰어요.
“함께 다리를 놓자.”
다람쥐는 구새통 아구리에 쪼르르 올라가더니 가는 마른 나무 한쪽 끝을 묶은 끈을 앞발로 힘껏 당겼어요. 차차는 뒤에서 한쪽 끝을 물어 떠미느라고 낑낑거렸어요. 그러나 어찌나 무거운지 다람쥐와 차차 힘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았어요.
이때 때마침 곰아저씨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이 정경을 보고 나섰어요.
곰아저씨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나무가지를 들어 구새통 아구리에 다리를 놔주었어요.
“곰아저씨, 감사해요.”
곰아저씨는 아직도 시름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더 하고야 떠나갔어요.
“차차야, 이후엔 나만 쳐다보면서 또 차차 하는 고질병이 도져선 안돼.”
차차는 “네-” 하고 곱도록 대답하고 구새통 아구리에 놓은 마른 나무가지 다리를 보고 한숨을 호- 내쉬였어요.
                                    6
며칠 후 큰 일 났어요.
사냥군이 한키나 되는 커다란 톱을 메고 구새통 밑에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뭘 하려고 저럴까?”
차차는 구새통 아구리에 납작 엎드려 두뀌를 빨쭉하고 숨까지 딱 죽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냥군의 거동을 면밀히 살폈어요.
저게 뭔가요?
사냥군은 글쎄 톱으로 구새통 밑을 쓰르륵쓰르륵 켜지 않겠어요.
다람쥐가 보다못해 새된 소리를 쳤어요.
“아니, 이보세요, 왜 함부로 남의 집을 켜는가요?”
사냥군은 피끗 다람쥐 둥지를 쳐다보더니 톱질을 멈추지도 않았어요.
“연통감으로 쓰자고 그래. 네하고 무슨 상관이냐?”
차차는 눈 앞이 캄캄해났어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차차도 어디서 그런 용기 났는지 목청을 다해 소리질렀어요.
“아니, 렴치 있는가요? 남의 집을 베가면 이 추운 겨울에 난 어떻게 살라는가요?”
사냥군은 어처구니 없어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허허허. 고놈들이 진짜 웃긴다.”
다람쥐와 차차가 아무리 사정하고 말려도 사냥군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계속 톱질을 슬겅슬겅 했어요.
그때 곰아저씨가 저쪽 바위 밑 굴에서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였어요.
차차는 바다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만난듯이 곰아저씨한테 소리쳤어요.
“곰아저씨, 이놈 사냥군을 쫓아버려 주세요.”
그런데 곰아저씨는 도리머리질하더니 인차 굴 속으로 숨어버렸어요. 불법 사냥군에게 쫓기워다니는 처지에 곰아저씨인들 불법사냥군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어쩌는 수 있는가요.
차차는 어쩔 수 없이 구새통에서 나와 마른가지 나무를 타고 깡충깡충 뛰여 도망쳤어요.
눈이 뒤덮인 수림 속에서 그는 어데로 가야 할지 몰랐어요.
쿵!
반나절이나 지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구새통이 맥없이 눈덮인 수림에 쓰러졌어요.
차차가 그렇게 믿던 구새통집이 절망과 함께 무너졌어요.
(이젠 굴도 없어 어데서 살지?)
그제야 차차는 후회됐어요.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땅이 얼기 전에 미리 예비굴을 여러개 파놓으라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못내 후회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진짜 후회막급이였어요.
차차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나는 배를 붙안고 눈덮인 수림 속에서 먹이풀을 찾아 헤맸어요. 그런데 한키도 넘는 눈이 온 수림을 덮어버려서 마른 풀을 찾기도 힘들었어요.
그제야 차차는 뭐나 “차차 하지.” 하면서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눈이 내리기 전에 먹이풀이랑 푼푼히 갖춰놓으라던 충고를 듣지 않은 것도 후회됐어요. 그러나 이 세상에 어디 후회약이 있는가요?
차차는 눈을 파헤치면서 겨우 마른 풀을 허비여 먹으며 요기했어요.
그런데 토끼 꼬리만한 겨울해가 지자 잘 굴이 없었어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고 이제라도 굴을 파야 했어요.
그때 차차는 기발한 생각이 뇌리를 쳤어요.
(눈굴을 파고 자면 어떨까?)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난 그는 금방 마른 풀을 뜯어먹은 자리로부터 눈굴을 파기 시작했어요.
한참 앞발이 다슬 지경으로 역사질하니 눈보라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 깊숙한 눈굴이 마련됐어요.
이때 다람쥐가 쪼르르 눈굴에 달려왔어요.
“아이유, 이전에 뭐라 했니? 땅이 얼기 전에 굴을 파놓으라는데.”
다람쥐는 도토리 알을 딱딱 깨물어 깨서 차차한테 내밀었어요.
배고픈 차차는 체면을 가릴 새 없이 도토리알이라도 받아 오물오물 씹어 먹었어요.
“내 뭐라던? 눈이 오기 전에…”
“먹이풀을 푼푼히 갖추라는데. 맞지? 이젠 귀에 못이 박힌다.”
차차는 발끈 성냈어요.
이윽고 다람쥐는 눈굴을 이리저리 살표보더니 이런 제의를 내놓았어요.
“얘야, 눈굴에서 자지 말고 내 굴에 가서 잘가? 눈굴이 든든하지 못해 승냥이나 불여우가 오면 위험할 거 같애…”
차차는 시끄러워했어요.
“또, 또. 방정 떤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제 진짜 불여우 오겠다.”
차차는 말을 그렇게 하고서도 섬찍한 다람쥐 귀띔에 도리 있다고 여겼어요. 그는 다람쥐를 따라 눈굴에서 나갔어요.
다람쥐가 이깔나무 그루터기에 싸인 눈을 싹싹 헤치자 그루터기 밑에 파놓은 땅굴 굴어구가 드러났어요.
다람쥐는 예비땅굴에 쏙 들어갔는데요. 토끼는 다람쥐보다 커서 아무리 들어가려고 몸을 비비닥거려 보아도 전혀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들이 실망해 도리머리를 흔들 때였어요.
갑자기 꼬리 기다란 불여우가 어데서 나타났는지 씽 덮쳐들지 않겠어요.
“아이구머니!”
다람쥐는 황망히 눈굴 옆 이깔나무에 쪼르르 바라올라갔어요.
차차는 몸을 홱 돌려 눈굴 속으로 뛰여들어갔어요.
그는 눈굴 막장까지 뛰여가 놀란 가슴을 할딱거리며 숨을 딱 죽이고 빨쭉귀를 빨쭉 곤두세우고 굴어구 동정에 귀를 기울였어요.
불여우놈은 눈굴 어구를 앞발로 마구 파헤치다가 삐죽한 주둥이를 쑥 들이밀고 냄새를 씩씩 맡는 것이 아니겠어요.
“요놈 고기 숨었구나. 어디로 도망가?”
그 놈은 이젠 눈굴을 파헤치지도 않고 눈 우에서 냄새를 씩씩 맡으며 막장에 있는 차차 쪽으로 덮쳐왔어요.
차차는 후회하며 애탄했어요.
(아이구, 이걸 어쩌나?)
차차가 미리 땅속 깊이 예비굴을 파놨더라면 무슨 이런 일이 생겼겠는가요.
빠드득빠드득.
눈굴 우에서 여우놈이 굳은 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자욱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어요.
(아이구, 끝장이구나. 하느님이여, 제발 날 살려주세요.)
차차는 질겁해 오들오들 떨며 눈을 딱 감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어요.
탁!
불여우놈은 앞발로 면바로 차차를 탁 내리쳤어요.
불여우놈의 발이 눈굴로 쑥 들어오는 순간이였어요. 차차는 화닥닥 피해 눈굴어구로 도망쳤어요.
헛물을 켠 불여우놈은 차차를 따라오면서 앞발로 연신 눈굴 속을 탁탁 내리쳤어요. 그 바람에 차차는 불여우 발에 치워 빨쭉귀가 여러군데 피가 흘렀어요.
이 위기일발의 시각이였어요.
“곰아저씨, 빨리 차차를 구해주세요!”
분명 이깔나무 둥지에서 다람쥐가 고함치는 목소리였지요.
총명령리한 다람쥐는 잔꾀를 부렸어요.
“저걸 봐라! 곰아저씨 온다. 잘 됐어, 잘 돼! 여우놈 이젠 어디로 도망칠 테냐!”
깜짝 놀란 불여우는 몸을 홱 돌려 여기저기 눈에 뒤덮인 수림 속을 살폈어요. 아름드리나무 뒤에서 진짜 곰아저씨가 헐금씨금 뛰여왔어요.
“에크!”
불여우놈은 뒤쫓던 차차를 놔버리고 부랴부랴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그 틈을 타 차차는 다리야 날 살려라고 곰아저씨 쪽으로 달아났지요.
다람쥐와 곰아저씨가 이젠 더 충고하지 않아도 차차는 망그라진 눈굴을 보며 피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가자, 우리 굴에 가자!”
곰아저씨가 차차 손을 잡아 끌었어요.
차차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7
이듬해 이른 봄이였요. 원시림을 뒤덮었던 하얀 눈이 녹기 시작하였어요.
차차는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는 눈굴을 돌아보면서 끝없는 참회에 잠겼어요.
(저런 눈굴을 믿고 살겠다고? 저 눈굴에 들어갔다가 불여우놈한테 물려 하마트면 죽을 번하지 않았는가.)
그는 지난 해 자기가 얼마나 한지에 방아를 걸었는가 돌이켜생각하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어요.
그때 승냥이한테 물려 끊어진 몽당꼬리랑 불여우 앞발에 치워 긁히운 귀랑 매만지면서 다시한번 뼈저린 교훈을 느꼈어요.
이젠 차차는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하던 고질병을 떼버렸어요.
그는 이른 봄부터 일찌기 손을 써서 곰아저씨 땅굴 옆 잔 나무숲이 우거진 든든한 바위돌 밑에 굴을 여러개 파놓았어요.
한번은 출구를 파다가 굴 어구 옆에 파란 능쟁이 잎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을 발견하였어요.
차차는 이슬방울이 맺혀 해빛을 반짝이는 능쟁이 이파리를 매만지면서 군침을 꼴딱 넘겼어요.
“토끼는 굴 어구 풀을 절대 먹어선 안돼!”
갑자기 다람쥐 목소리가 귀전을 아프게 때렸어요.
차차는 먹음직한 능쟁이 이파리를 매만지다가 용케도 그 유혹을 물리치고 스르르 놔주었어요.
다람쥐가 이깔나무 둥지 우에서 차차의 그 모습을 보고 찬탄을 보냈어요.
“참 잘했어. 굴 어구 풀은 절대 먹어선 안돼.”
“승냥이한테 죽자고 먹겠느냐.”
차차는 파란 능쟁이를 떠나 굴 안에 들어가더니 계속 굴을 파재꼈어요.
차차는 곰아저씨네 굴 옆에 굴을 팠기에 수시로 곰아저씨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요.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궁리 끝에 굴마다 출구도 미리 여러개씩 더 파놓았어요. 일단 전번처럼 승냥이랑 불여우랑 이쪽 굴어구를 파헤치면서 덮쳐오면 저쪽 출구로 도망칠 예산이였죠.
그뿐이 아니죠.
차차는 그때부터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미리 해놓았지요.
그는 다람쥐 충고대로 굴어구 풀은 절대 다치지 않았어요. 먹이풀도 미리 푼푼히 뜯어다가 굴마다에 차곡차곡 쌓아놓았지요.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하는 좋은 습관을 키우기 시작했기에 차차는 산과 들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살 수 있게 되였지요.
어느날, 고질병을 떼버리고 탈바꿈한 토끼를 보고 다람쥐와 곰아저씨는 너무 기뻐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토끼는 이른 아침 일찌기 부지런히 풀을 굴에 물어들이였어요.
다람쥐는 나무둥지에서 쪼르르 내려와 토끼를 불러세웠어요.
“얘, 차차야, 이젠 뭐나 ‘차차 하지’, ‘차차 보지.’ 하던 나쁜 습관관을 뚝 떼버렸구나.”
차차는 지난 세월의 자기를 돌이켜보고 부끄러웠던지 그저 뒤더수기만 긁적거렸어요.
곰아저씨도 기뻐 어쩔줄 모르며 앞발로 삿대질하며 한마디 했어요.
“고질병을 뚝 떼니 딴 토끼로 됐구나. 허허허.”
차차는 고개를 숙이고 발끝으로 땅을 허비였어요.
“다 곰아저씨와 다람쥐 충고해준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람쥐는 앞발을 살래살래 저었어요.
“아니야, 이제부터 명심해서 고질병이 도지지 말아야 해.”
차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람쥐는 곰아저씨를 돌아보며 이런 말을 꺼냈어요.
“곰아저씨, 이젠 조 차차가 뭐나 ‘차차’, ‘차차” 하던 고질병을 뗐는데요. ‘차차’란 별명도 떼버릴 때 된 거 같아요.”
“오- 그래.”
곰아저씨는 앞발로 량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기우뚱하였어요.
“새 별명 뭐라고 지으면 될까?”
총명령리한 다람쥐가 뭐나 빨랐어요.
“’미리’라고 지으면 어때요.”
곰아저씨가 의아해 물었어요.
“미리? 건 무슨 뜻이냐?”
차차도 빨쭉귀가 빨쭉해졌어요.
다람쥐가 붓 같은 실한 꼬리를 봄하늘에 휘날려대며 ‘미리’라는 글자를 써가면서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토끼는 이젠 뭐나 미리, 미리 하지 않고 뭡니까. 그래서 ‘미리’라는 새 별명을 지어주면 좋을 거 같아요.”
곰아저씨는 퉁사발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허허허. ‘미리’, ‘미리’. 참 좋아.”
그는 가슴을 쭉 내밀고 앞발을 휘두르며 뒤말을 이었어요.
“나도 토끼한테 새 별명을 지어주지.”
다람쥐는 박수끼지 쳤어요.
“좋아요!’
곰아저씨는 한참 궁리하고나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여지’! 차차는 이젠 뭐나 여지를 두고 미리 하잖고 뭐냐? 그러니깐 ‘여지’라고 지은 거야.”
다람쥐는 또 수림이 떠나가게 깔깔깔 웃어댔어요.
“얘, 미리야!”
곰아저씨도 껄껄껄 웃었어요.
“얘, 여지야!”
차차는 그저 머리만 숙였어요.    
                                 8
차차는 아직도 승냥이를 시름놓고 살지 못했어요.
“헤이, 아무리 굴을 여러개 미리 파놓아도 승냥이 덮쳐오는 걸 미리 발견하지 못하면 굴에 달아들어가기 전에 죽잖아. 전번에도 봐. 곰아저씨가 제때에 오지 않았으면 승냥이나 불여우 밥이 될번 했잖아. 곰아저씨도 항상 내 곁에서 승냥이를 방비할 순 없고...”
고민에 빠진 차차가 아무리 고개를 갸우뚱하고 궁리해도 뾰족한 수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때 다람쥐가 나무둥지에서 쪼르르 내려왔어요.
“얘, 혼자 머리를 썩이지 말고 사냥군아저씨한테서 가르침을 받아라.”
“오, 그래. 만물의 령장인 사냥군은 무슨 묘수가 있을 거야.”
곰아저씨가 말렸어요.
“사냥군한테 잡혀도 죽어.”
차차는 주춤 멈춰 섰어요.
다람쥐가 도리머리질했어요.
“지금 국가동물보호법이 나와서 사냥군은 우릴 잡지 않아. 승냥이를 잡지.”
“그 말이 맞아.”
이때 수림 속에서 사냥군아저씨가 나타났어요.
“에크!”
곰아저씨는 질겁해 황급히 수림 속에 몸을 숨겨버렸어요.
“겁내지 말아. 난 이 수림에서 너희들을 해치는 불법사냥군들과 승냥이들을 살피는 중이야.”
그제야 차차는 시름놓고 사냥군아저씨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아저씨, 듣는 말에 의하면 인간세상에는 크롱복제기술이 있다던데요. 내 몸뚱이를 승냥이보다 더 크게 만들면 어떨가요?”
그러자 사냥군아저씨는 렵총을 둘러메면서 말했어요.
“안돼, 몽뚱이 크면 승냥이가 더 잡아먹자고 미쳐 날뛸게 아니야?”
“곰아저씨만큼 몸뚱이 뚱뚱하면 승냥이가 겁나 덤벼들지 못하잖을가요?”
“코끼리만큼 크면 몰라도…”
차차가 지꿎게 달라붙어 통사정을 하자 사냥군아저씨는차차의 꿈대로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차차는 사냥군아저씨의 가르침대로 주사기로 곰아저씨 앞다리에서DNA를 축출해냈어요.
뒤이어 수림에서 덩치 제일 큰 벨지끄토끼를 불러다가 주사기로   뒤다리에서DNA를 축출해냈어요.
 뒤이어 차차는 사냥군아저씨의 가르침을 일일이 받으면서 크롱기술로 몸뚱이 엄청 큰 곰토끼를 만들어냈어요.
어느날, 수림 속에 승냥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어요.
“승냥이! 승냥이 왔다!”
다람쥐가 나무가지 우에서 소스라쳐 고함쳤어요.
승냥이는 수림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에크! 저게 뭐냐?”
수림 속에서 커다란 곰처럼 생긴 놈이 풀쩍풀쩍 뛰노는 것이 아니겠어요.
승냥이는 수림에 납짝 엎드려 대가리만 쳐들고 그 괴물 같은 놈을 살펴 보았어요. 몽뚱이는 곰처럼 펑퍼짐하고 머리는 곰머리 같았는데 뒤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았어요. 이상한 건 곰처럼 고기를 뜯어먹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풀을 뜯어먹는 것이 아니겠어요. 또 곰처럼 엉기정엉기정 네발로 걷거나 두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네발로 토끼처럼 풀쩍풀쩍 뛰는 것이 아니겠어요.
(몸뚱이는 커도 곰처럼 힘차고 날랠 건 같잖아. 혹시 저 놈이 곰가죽을 쓴 뭐가 아닐가?”
승냥이는 괴물을 떠보려고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마른 기침을 깇어보았어요.
뜻밖에 그 놈은 오히려 질겁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지 않겠어요. 담대해진 승냥이는 아가리를 쩍 벌리며 조심스레 몇발자국 덮쳐들어 보았어요.
갑자기 그 놈 괴물은 땅바닥에 힌들 들어눕더니 네발로 덮쳐드는 승냥이를 탁탁 올리차는 것이 아니겠어요.
승냥이는 황급히 몇발자국 뒤로 물러섰어요.
(딱 어디서 보던 동작인데.)
이윽고 승냥이는 피뜩 떠오르는 뭔가 있었어요. 하늘에서 덮치는 독수리를 핸들 누워 네발로 차던 토끼 동작이 떠올랐지요.
(혹시 이 놈이 토끼 아닌가? 건데 이제껏 보지도 못한 너무 큰 괴물이잖아.)
승냥이는 도리머리질하다가 재차 덤벼들었어요.
괴물은 또 힌들 눕더니 네발로 탁탁탁 올리차는 것이였어요.
(오호, 곰은 무슨 놈의 곰, 흥! 올리 차는 재간 밖에 없는 토끼등속이구나.)
승냥이는 이빨을 빼물고 차차한테 덮쳐들었어요.
땅!
“사냥군이 온다!”
총소리, 고함소리를 듣고 승냥이는 차차를 놔두고 황망히 수림 속으로 도망쳤어요.
이윽고 곰아저씨와 사냥군 아저씨가 달려왔어요.
사냥군아저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차차를 위안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몸뚱이만 커서야 어찌 자기를 보호할 수 있겠느냐?”
차차는 도리머리를 저었어요.
“곰토끼는 어쩜 곰의 용맹한 성격은 하나도 닮지 못했을가요?”
사냥군아저씨는 차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위안해주었어요.
“괜찮아. 아마 곰 유전자보다 토끼 유전자가 더 복제돼 그런 모양이야. 이제 곰 유전자를 더 복제하면 될 거야. 곰처럼 덩치나 용맹성보다도 더 중요한게 있어. 이젠 야수들도 날따라 현대과학기술로 무장하는 새 시대에 현대과학기술로 무장해 승냥이를 대처해야 해.”
사냥군아저씨 말씀은 참 새 시대에 걸맞는, 원견 있는 말씀이였어요.
차차가 커다란 몸뚱이를 숨기려고 커다랗고 깊은 동굴을 여러개 파놓고 굴어귀에 나무도 심어 가려놓았지만 별 쓸모없었어요. 교활한 승냥이는 전자상점에서 훔쳐온  지뢰탐측기 같기도 하고 정구채 같기도 한 최첨단 냄새추적기를 주둥이에 물고 수림 속이랑 동굴이랑 돌아다니면서 차차 같은 약자동물들의 냄새를 탐지해내 덮쳐들군 했어요. 전번에도 다행히 다람쥐가 보초를 서다가 미리 기별해주었으니 말이지 하마트면 봉변을 당할 번하였어요. 어떤 때에는 사냥군아저씨랑 곰아저씨랑 제때에 쫓아와 으름장을 놨으니 말이지 목숨도 보존하기 힘들었지요.
차차는 동굴에 숨어 숨을 헐떡거리면서 속궁리를 베아링처럼 굴렸어요.
“괜히 덩치를 부풀려서 과녁만 더 커지고 미리 파놓은 동굴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됐잖아. 수림에 숨어도 쉽게 드러나고. 에이, 참.”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차차는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났어요.
“옳지. 그래야지.”
차차는 사냥군아저씨를 찾아가 자기 생각을 말했어요. 그리고 사냥군아저씨 도움을 받아 전자상점에 가서 최첨단위치추적기와 9G핸드폰을 샀어요. 그는 최첨단위치추적기를 동둘 옆의 나무가지에 장치해놓고 원격조종 전자톱날덫을 사다가 새로 파놓은 커다란 굴어귀마다 일일이 장치해놓았어요.
어느날, 차차가 동굴에서 핸드폰 위치추적기를 들여다보다가 승냥이가 또 정구채 같은 냄새추적기를 물고 수림 속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어요.
승냥이는 어슬렁어슬렁 벨지끄토끼가 숨은 동굴어귀로 기여들었어요.
차차는 원격조정기 단추를 꼭꼭 눌렀어요.
“철꺽!”
승냥이는 커다란 전자톱날덫에 주둥이를 치워 버둑거리며 깨갱거렸어요.
“이놈!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
현대첨단과학무기로 무장한 차차는 슬기롭게 승냥이를 나포하고 이제부터 수림 속에서 곰아저씨랑 다람쥐랑 함께 편안하게 살게 됐지요.
사냥군아저씨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껄껄 웃었어요.
“차차는 별명도 많구나. 뭐나 ‘차차” 하지 하며 게으름 피웠을 땐 ‘차차’.”
다람쥐도 나무 우에서 쪼르르 바라내려와 곰아저씨 어깨에 폴짝 뛰여내리며 종알거렸어요.
“뭐나 여지 두고 미리, 미리 할 때는 ‘여지’, ‘미리’!”
곰아저씨도 수림이 떠나가게 고함쳤어요.
“이젠 ‘곰토끼’!”
“아니야! 이젠 ‘총명한 벨지끄토끼’!”
차차는 뒤더수기를 긁적거리며 게을렀던 과거에 참회의 고개를 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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