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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작 대하소설
제2권
19. 고민
비둘기가 창문 밖에 날아와 구구거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 주인이 주는 먹이를 쪼아먹기보다 행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체로 먹이를 찾아 쪼아먹기 퍽 힘들었을 것 같았다.
(집을 떠난 비둘기도 살기 힘든가?)
문걸은 창 밖을 내다보다가 새우깡을 한줌 쥐어 종지에 담아 창턱에 내다 놓았다. 비둘기는 창턱에 날아와 창 너머 주인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구구거리더니 새우깡을 톡톡 쪼아 맛있게 먹었다.’
“감사해요. 주인님. 주인님도 그간 잘 계셨지요? 건강은 회복된 거죠?”
문걸은 비둘기가 먹이를 쪼아먹으면서 하는 말을 듣는 상 싶었다.
“그래. 나 건강해. 암도 나았다.”
문걸은 누구와 말할 사람이 없어 비둘기하고 대화했다.
“건데 요즘 고민 있어. 조강지처가 암에 걸렸어. 몹쓸 코로나까지 걸렸다. 이걸 어쩌나?”
비둘기가 구구거렸다.
“그럼 정성 다해 치료하구, 구구구. 돈도 대주구. 구구, 간병도 잘해 주렴. 필경 조강지처 아니오?”
(그래, 건데 우린 리혼했어. 영희는 리혼하자고 나한테 얼마나 압력을 가했다고 그래. 배신자야.)
문걸은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앓는 영희를 어떻게 죽게 놔두겠느냐? 부부간은 돌아누우면 남이라지만 마음이 약한 난 그렇게 못해. 최저한도로 인도주의에 어긋나잖니? 남이라도 그런데 조강지처한텐 차마 그렇게 못하겠다. 필경 오누이를 낳아준 어머니 아니냐? 필경 나하구 30년 가까이 산 전 안해 아니냐? 사선에서 헤매는 전 처를 꼭 살려야겠는데. 난 돈 만원을 주고는 아무 일도 할수 없구나. 내가 만약 의사라고 해도 암세포가 전신에 퍼진 영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잖아. 지금 의료기술이 높고 약이 좋아 어떨진 모르겠다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누이도 코로나에 걸렸다. 어쩌면 좋겠느냐?”
비둘기는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새우깡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종지 빤빤하게 다 쪼아먹자 푸르르 푸르른 하늘로 날아갔다.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문걸은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한참 후 그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옷궤를 들췄다.
“주인님, 무슨 고민거리 있는가요?”
이때 미녀로봇이 다가와 손을 문걸의 어깨에 얹으며 물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다.”
“뭘 찾아요?”
“네가 알 일이 아니야.”
문걸은 트렁크를 내리워 뒤적였다.
“여기 있구나.”
“가옥소유증을 해 뭘 하는가요?”
미녀로봇은 콜알눈을 똥그랗게 치떴다.
“아니, 혹시 이 화실을 팔자고 그러잖는가요?”
“삐치지 말라.”
“아니, 이 화실 팔고 우린 어데 가 살겠는가요?”
“눈 펀히 뜨고 조강지처 죽어가는 걸 멀쩡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만금도 설거지를 하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이쪽 거실을 들여다보았다.
똑똑똑
이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굽니까?”
문걸은 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순정이 해시시 웃으며 찾오오지 않았겠는가.
“히사시부리데스네(오랜만인데요). 고노 헤야에 우쯔꾸시이 온낭아 이랏샤이마시다네(이 집에 이쁜 아가씨가 다 찾아왔네용). 호호호.”
미녀로봇이 일어로 비쭉거렸다.
“야메(그러지 마)!”
문걸이 객실에 자리를 권하자 순정은 거실로 들어갔다.
“조용히 할 말이 있는데요.”
문걸은 미녀로봇을 객실에 나가게 하고 순정한테 침대 옆의 쏘파에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이 있소?”
“생원이, 아니, 저, 리선생님,”
순정은 리혼한 문걸을 계속 생원이라고 부르기는 미안해 인차 호칭을 바궜다.
“제가 뭘 차리려고 하는데요. 간판글을 써 주겠습니까?”
문걸은 긴장했던 얼굴근육을 느슨히 풀었다.
“써주지. 뭘 차리려고 그러오?”
“오래잖으면 문화관에서 퇴직하겠는데요. 뭘 하겠어요. 자그마한 무용장을 차릴가 합니다.”
“오-“
“배운게 무용 밖에 없는데요.”
문걸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형, 한뉘 문화관에서 군중무용을 지도했는데 지루하지도 않소?”
그러나 순정은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았다.
“무용양성장 내놓고 다종다양하게 차릴 예산인데요. 음악술집과 안마원도 차리고 두루두루 다종경영 할 예산인데요.”
“그래? 자금이 많이 들겠는데.”
문걸은 지하 처형을 여전히 스스럼없이 대했다.
“최국장이 숱한 돈을 벌어 놨겠는데. 퇴직해 편안히 살게지. 무슨 애나게 돈 벌자고 그러오?”
“최국장 말은 관두세요. 바람둥이하구 리혼하겠습니다.”
순정은 보름달 같던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대뜸 화를 냈다.
“뭐라오?”
문걸은 눈이 데꾼해졌다.
“리혼이라니? 내 영희하구 리혼하자니 그렇게 말리더니. 원, 참.”
“바람쟁이한테 한뉘 얼리워 산 걸 생각하면 억울해 죽겠습니다.”
“쯔, 쯔, 쯔.”
순정은 정색해 말했다.
“이제 졸혼하고 홀로 내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문걸은 저으기 놀란 눈길로 순정을 바라보았다.
"졸혼? "
"그래요.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 졸혼 바람이 불잖아요? 참 도리 있어요."
"아니오."
문걸은 손사래를 쳤다.
“처형, 절대 리혼하지 마오. 일본과 한국에서 말하는 졸혼은 리혼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의 생활을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걸 말하오. 절대 졸혼을 잘못 알고 따라 하지 마오. 나도 졸혼해서 자기만의 삶을 살자고 이러는데. 어떻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하오.”
그러나 순정은 치를 떨었다.
“이젠 그놈한테 얼리워 산게 한입니다. 얽매여 한뉘 그렇다할만한 무용무대에도 올라보지 못한게 한입니다. 그 놈을 황제처럼 모셨지만 지금 보세요. 내게 차례진게 뭡니까? 배신자 같은 놈, 어디 잘 되는가 보자. 이젠 결혼생활 질려요. 전 일본과 한국 마님들의 졸혼도 아닌 나름대로 졸혼해 나만의 삶을 살고 파요.”
“한번 어쨌다고 리혼까지 하겠소? 혹시 가짜리혼이라도 하려는 거요?”
순정은 문걸을 리해되지 않는다는 눈길로 마주 바라보았다.
“생원이넨 누가 오입했다고 리혼했습니까? 한번 배신당해보세요. 진짜 죽여치우고 싶은데요. ”
문걸은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리혼을 계속 말려야 할지. 놔둬야 할지. 리혼을 계속 말리면 자기 리혼한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그는 지금 리혼한 것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아리숭했다. 하여 순정과 정호의 리혼에 대해 왈가불가 하기 어려웠다.
순정은 기실 속으로는 정호가 혹시 숨겨놓은 집이나 보물이나 있을까봐 리혼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였다. 그저 으름장을 놓으려고 하는 소리에 불과했다.
순정은 문걸의 외까풀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혀끝을 달싹였다.
“생원이, 한가지 알려줄게 있는데요. 절대 영희한테 내 말했다는 걸 말하지 마세요. 화도 내지 마세요.”
“무슨 일이오?”
문걸은 외까풀눈을 치켜뜨며 연지꼰지 명화장품을 귀신처럼 바른 순정의 얼굴을 긴장하게 쳐다보았다.
순정은 빨간 앵두입을 열고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망신스러워 어떻게 삽니까? 글쎄 정호란 놈이 영희하구 좋아했을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뭐라오? 무슨 증거라도 있소?”
문걸은 깜짝 놀라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순정은 계속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전번에 영희 상해에서 돌아온 날 밤입니다. 글쎄 정호란 놈이 지하주차장 차고에서 영희하구 그걸 하지 않았겠습니까."
문걸은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뭐라오?!”
순정은 문걸의 손을 빌어 정호를 죽여치울 잡도리였다.
순정은 문걸의 눈치를 핼끔 쳐다보며 몸까지 옹송그렸다.
문걸은 순정이 죽 회고하는 말을 들으면서 눈 앞이 아찔해났다.
정호는 색갈음란테프를 돌려보고 동영상의 아가씨들처럼 성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쩍하면 선희나 아가씨들을 찾아가군 했다.
"아니, 우린 이젠 그만 둔 사이 아닌가요? 이쁜 선녀를 집에 두고 왜 아직도 자꾸 찾아오는가요?"
황선희는 핼끔 흘겨보았다.
"아니, 우린 함께 살지 못해도 성생활친구로 계속 사귈 순 있잖소?"
"쳇,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가요? 날 어떻게 보고."
황선희는 정호를 정파답지 못하게 보았다.
"련애 그만 뒀으면 모든것이 끝난거지. 자꾸 이러면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가요? 중혼죄로 감옥에 가고파요? 흥!"
"혼외련이란 것도 있잖소? 개방세월에 딱 련애하고 약혼해서 결혼해야만 하오? 그밖에도 항홀한 세상은 쌔고버렸소. 모든 건 우리 둘에게 달렸소."
(더러운 놈.)
황선희는 속으로 이를 옥물었다.
(이놈이나 원장놈이나 다 색마야. 악마야. 사내들이란 다 이렇게 말승냥인가? )
황선희는 정색했다.
"우리 약혼하지 않기를 잘했어요. 알고 보면 우린 둘 다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오?우린 진정 성애(性爱)를 하고 있잖소?"
"아니, 깨끗한 성애가 아니죠. 우린 둘 다 작풍이 단정하지 못해요."
" 다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전통관년이오. 무슨 정조요, 일편단심이오. 다 쓸데 없는 거요."
"개방된 정조관념 가졌으면 왜 저하고 약혼하지 않는가요?"
"건, 글쎄..."
"우린 함께 살 수 없어요. 약혼하지 않고 갈라지길 잘했어요. 결혼하면 이후에 꼭 바람 피운게 들통나서 살인이라도 날 겁니다."
"허허허. 그럼 애인으로 친하면 되지."
그러나 황선희는 그후부터 정호를 만나주지 않았다. 후에 알아보니 일본에 류학갔다고 했다...
영희를 마중하러 비행장에 갔던 날 지하주차장에서도 정호는 습관처럼 영희를 보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 안이 비좁은데다 영희가 울며 불며 반항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걸은 순정의 공소를 듣고 너무 한심해 벌떡 일어났다.
(정호새끼 영희를 다치다니?)
그러나 그는 인차 쏘파에 천천히 되앉으면서 진정했다.
“리혼했는데 이젠 영희하구 무슨 관계 있소?”
“리선생님, 왜 그렇게 골기 없이 놉니까? 우린 둘 다 피해자입니다. 이번 기회에 중혼죄로 그 년놈들을 다 감옥에 걷어넣읍시다. 그뿐인줄 압니까?”
순정은 문걸이 정호를 딱 떼닮은 것 같다는 말도 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인차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켜버렸다. 아직 명확한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괜히 살인 나겠다.)
그쯤하면 정호와 문걸, 이른바 “극진한 친구” 사이에 쐐기를 팍 박아놓은 것이였다.
“괜히 쓸데 없는 말 해서 미안해요. 그저 그렇다는 걸 알면 좋을 것 같아 말했는데요 절대 화내지 마세요.”
(고약하구나.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판이구나. 아무리 리혼했다 해도 30년 데리고 산 녀자를 남이 데리고 살았다면 화를 내지 않겠는가.)
순정은 악어가죽핸드빽에서 종이장 하나를 달랑 꺼내 내밀었다.
“가게 간판 이렇게 쓰면 어떤가 보세요.”
문걸은 꼭두까지 치민 화를 가까스로 참으면서 종이장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보름달빛음악무용술집? 아니, 무용양성장 아니고 술집이오?”
순정은 정색했다.
“간판은 그렇게 걸고 무용양성장, 안마원도 겸해 차릴 예산이라고 하잖았습니까?”
“오- 알았소. 그거야 공상국에 가서 경영허가증 낼 때 잘 교섭하면 되지.”
“돈은 귀신 보고 매돌을 돌리게 한다고. 흥!”
순정은 아주 자신만만해했다.
“이제 돈을 벌면 가난하게 사는 독거로인과 장애인, 고아들을 도울 예산입니다.”
“경영목적은 아주 가상하오. 보름달빛음악술집 잘 차리길 기대하오.”
“감사해요.”
문걸은 순정을 따라 쏘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음악술집 분위기에 걸맞는 벽화도 몇장 그려줄게.”
“고맙습니다. 우리 비록 옛날처럼 생원과 처형관계는 아니지만요. 인연인데요.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그러기오.”
순정은 떠나면서 핸드빽에서 금팔찌 한쌍 꺼내 차탁 위에 달랑 내놓았다.
“아니, 이건 뭐요?”
“간판에 벽화까지 부탁해요.”
“아니, 처형, 우리 사이에 이럴 필요있소?”
“받아두세요. 그러잖으면 마음에 내려가지 않아요.”
문걸은 금팔찌를 쳐들고 보다가 되돌려주었다.
“아니, 이건 정호 준 결혼기념금팔찌 같은데. 가져가오.”
“필요없어요. 이젠 그 금팔찌 보면 짜증나요. 절 도와 처리해준 셈 치지요.”
순정은 기어이 밀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문걸은 금빛이 번쩍번쩍 나는 금팔찌를 쳐들고 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순정의 말이 진실일가? 아니야, 영희는 피해자야. 정호, 너도 인간이냐? 어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를 그럴 수 있니? 그것도 친구 안해를, 처제를. 짐승 같은 놈. 어디 녀자 없어 처제를 다 다친단 말인가? 그러고도 친구냐? 그러고도 동서간 관계를 떠나 친구 되자고? 흥!”
똑, 똑, 똑.
“누구십니까?”
“정호야.”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무슨 낯으로 또 찾아왔어?)
문걸은 괘씸한대로 문을 절컥 열었다.
정호는 헤벌쭉거리며 들어서 여기저기 흘끔거렸다.
“그간 잘 있었니?”
“음."
문걸은 꾹 참고 어찌는가 굿을 보았다.
"너 코로나 다 치료됐느냐?”
“그래. 지금 약이 좋고 의사들 의료기술이 높아서 그깟 코로나 다 뭐냐? 완치돼 출원했다."
“그래? 의사들 참 대단하구나.”
정호는 어깨 으쓱해 한바탕 으시댔다.
“내겐 의사 친구도 있고 별의별 애인 다 있다. 지금 애인 없는 건 상등바보라잖니? ㅎㅎㅎ.”
“뭘? 그래 어느 의사 네 애인이냐?”
“놀라지 말라. 전번에 영희 병실에 들어온 의사 둘 봤지?”
“그래. 봤지.’
“어느 의사 더 곱니? 아니, 어느 의사 내 애인 하면 좋겠니?”
(이 자식, 혹시 춘희도 건드렸어?)
“얘,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
정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황선희의사 젤 오랜 애인이야. 친구니깐 말하지만, 선희는 순정보다 썩 전에 나하구 친했지."
그는 문걸이 자기를 지금 어떤 눈으로 보는지도 모르고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희는 대단한 의사야. 일본 류학한 박사야. 졸업할 때 영어와 일어로 졸업의학론문을 써서 잡지에까지 발표했는데 말이야. 미국 한 생물의학연구소에서 그 론문을 보고 의학인재라고 초빙했단다. 그래서 미국에까지 가서 박사후 공부까지 하고 그 생물의학연구소에서 사업했단다. 그런데 그 미국의 이른바 의학연구소는 생물전염병바이러스를 연구하더란다. 그게 일본 731부대에서 연구하던 생물화학무기 아니겠어? 선희박사는 미국 놈들의 생물의학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애국심으로 조국으로 돌아왔지. 지금 숱한 사람들이 돈 밖에 모르는 세월에, 한달에 로임 만딸라 넘게 준다는데. 훌 뿌리치고 온다는게 어디 쉽니? 선희의사는 암증뿐만 아니라 녀성병이나 남성병도 잘 치료한다고 해.”
“그럼 영희 살아날 가망이 있잖니?”
“모르지. 그러나 우리 선희박사를 믿어보자.”
“그래. 그날 찾아왔던 춘희의사도 박사야. 그 의사도 대단한 의사야. 죽어가는 날 살려냈잖아. 춘의의사와 선희의사가 합심하면 영희 암병과 코로나를 꼭 치료할 거야.”
“야, 배고파 죽겠다.”
“집에 가 보았느냐?”
“난 집도 없어.”
정호는 뜻밖에 주방으로 쑥 들어갔다.
“문걸아, 먹을게 좀 없니?”
“있을 거야.”
문걸은 만금을 보고 눈치했다.
만금이 식탁에 밥과 채를 서너접시 올려놓았다.
정호는 수저를 들기바쁘게 밥과 채를 볼이 메지게 퍼넣고 대충 씹네하고 꿀꺽꿀꺽 삼켰다.
“야, 술 한잔 하자.”
“아침 술을 마시겠니?”
“에이구, 답답한데. 술로 답답한 가슴을 지지면 좋을 거 같애.”
문걸은 식탁에 다가가 마주 앉으며 빈정거렸다.
“자, 한잔 들자.”
“카, 답답할 때 그래도 술이 좋고 친구 제일이야. ㅎㅎㅎ.”
“최국장이 굶긴 굶었구만. 집에 가지 않았댔니?”
“집에? 집에 가보니 팔렸더라. 순정이, 그년 글쎄 내 코로나 때문에 격리된 틈을 타서 집을 훌 팔아먹지 않았겠니? 지하주차장에 가보니 차까지 없어졌더라.”
“?”
문걸은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인차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호는 뜨거운 국을 떠넣었다가 따가와 입을 하 벌리고 뜨거운 김을 후- 뱄다.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운 격이지. 순정을 너무 믿고 가옥소유증을 순정 혼자 이름으로 등록했댔지. 순정한테 믿음을 주려고 그랬어. ‘순정아, 난 너한테 뭐든 다 줄 수 있어. 난 너 밖에 사랑하는 녀인 없어.’ 이렇게 믿음을 주려고 했지. 그 절대적인 믿음을 파괴하고 리혼하자고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난 재산을 다 찾기 전엔 절대 리혼하지 못하겠어.”
“차는 네 이름으로 됐겠지?”
“아니야. 차도 다 순정의 이름으로 등록했지. 그땐 어애 같은게 그렇게 해주면 날 믿으리라 생각했지. 또 국장 재직 때니까. 고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지. 다 오산이었어. 하루 새 빈털털이 됐어. 집도 없는 나그네 됐어. 흐흐흑, 흑흑.”
문걸은 순정의 말이 사실이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순정의 한쪽 말을 듣고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봐라. 우리 보고 리혼하지 말라고 하더니. 쯧쯧, 그래 순정은 어째 리혼하자고 그러니?”
“아직 수속은 하지 않았어.”
정호는 술잔을 기울이고 장국을 후룩후룩 마시고나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는 화제를 떠나 교묘하게 동문서답해버렸다.
“사실 나도 순정한테 정 떨어졌다. 뭘 보고 그 쌍년하고 살겠니? 우리 충주 최씨 가문에 아들을 하나 낳아줬는가? 대를 끊는 건 칠거지악이야.”
정호는 또 이렇게 실토하고 싶었다.
( 부부간이라면 잠자리에서 한껏 짜릿하게 만족을 줘야는데. 부부는 살뜰한 안해이자 애인이고 아가씨로 돼야는데. 헛참.)
그러나 아무리 친구지간이라도 국장님은 여지를 좀 두었다.
“이젠 사랑도 식고 정열도 식고 정도 다 떨어졌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돈 팔아 관광이나 하고 쏘핑이나 하는 멋에 살았다.”
정호는 숟가락을 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어, 덕분에 아침 맛있게 먹었다. 이제 리혼하면 새 세상이 열릴 거야. 내 돈이 없니 뭐 없니? 이제 젊은 녀자 얻어서 아들도 보고 딸도 보고 남 부럽잖게 살 거야. 흐흐흐.”
(철면피한 놈!)
문걸은 속으로 욕했다. 그러면서도 넌짓이 물어보았다.
“도대체 어째 리혼하니?”
정호는 헤벌쭉거리며 주방에서 나와 객실 쏘파에 앉더니 자랑삼아 말했다.
정호는 만금의 눈치를 흘끔 보더니 목소리까지 낮췄다.
“어애 하구 리혼하구 풍만한 젊은 미녀를 얻어 아들딸 보자고 그래. 어허허허.”
(개자식, 량심없는 놈.)
문걸이 속으로 욕하는줄도 모르고 정호는 자기 좋은 소리를 쳤다.
“야, 나도 이제 너처럼 집에 보모도 두고 미녀로봇도 두고 살겠어. 그러나 너처럼 미녀로봇과 살자고 그러는 건 아니고. 그저 심부름군으로 두고 싶어.”
이때 침실에서 미녀로봇이 사이문을 살며시 열고 표독스런 눈길로 정호를 쏘아보았다.
정호는 개의치 않고 중얼거렸다. 말수 적은 정호는 오늘 따라 말이 많아졌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래도 친구지간이 제일이야. 믿을 건 그래도 친구지간뿐이야. 동생들도 내 이렇게 되고보니 녀편네하구 나그네 눈치를 보면서 내게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아. 퇴직한 다음에 보면 더욱 그래. 남은 건 친구뿐이야. 결국 인생에 너만한 친구도 몇이 없구나. 국장할 땐 내 권력 앞에 누구나 무릎을 꿇었지. 내게 손을 내밀었지. 돈을 가져다 줬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되고보니 지원의 손을 내밀긴 고사하고 우물에 빠진 사림한테 돌을 던져넣지 않으면 다야.”
(개자식, 숱한 말을 해도 어느게 하나 진실한 말이 있느냐? 허위적인 놈. 너 같은 놈도 친구냐?)
문걸은 속으로 욕하면서도 속내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정호는 계속 제 좋은 소리를 했다. 그는 문걸의 곁에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순정은 내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몰라. 순정 몰래 진작 이런 날이 올 거 같아 가만히 아파트하구 도요다차도 갖춰놓았어. 난 저금통장엔 일전한푼 없어도 비밀금고에 숱한 돈을 치워두었어. 흐흐흐. 나도 리혼하면 도망칠 뒷구멍을 여러개 파놓았어. 국장을 몇십년 해먹은 내 어디 머저리냐? 순정은 그런줄도 모르고 날 알거지로 만들었다고 미친듯이 고아대더구나. 흐흐흐.”
문걸은 놀라운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고 난생처음 끊임없이 씨벌이는 정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내 어디서 돈이 나와서 영희 앓는다고 10만원이나 줬겠니? 내겐 10만원 쯤은 소가죽에서 털 몇대 뽑아낸 거야. 흐흐흐.”
정호는 외투 웃호주머니에서 두툼한 돈묶음을 꺼내 차탁 위에 척 내놓았다.
‘받아라.”
“이건?”
정호는 몇대 없는 머리카락을 버릇처럼 번대머리 뒤로 쓸어넘겼다.
“전번에 내 아가씨 놀다가 경찰한테 붙잡혔을 때 쓴 돈이야 갚아줘야지. 수고비까지 만원이야.”
“아니,”
문걸은 돈 묶음을 되밀어주었다.
“받아라. 친구지간에 감은할줄도 알아야지. 그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럴 때 부를만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으냐? 그래서 엄마를 팔아서라도 친구를 친한다고 하잖니? 그때 네가 구원의 손길을 보냈기에 반년 로동개조를 피했잖니? 명색이 국장인데 로동개조를 다 하면 얼마나 창피하니? 국장자리도 떼우고.”
“어째 좋은 처남을 찾지 못했니? 륙촌처남이 공안국장이 아니냐?”
문걸의 속뽑이에 정호는 손사래를 쳤다.
“야, 야, 임마, 그게 풀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여드는게 아니고 뭐냐? 처남한테 들키우면 순정이 날 가만 놔두겠니?”
정호는 돈묶음을 되밀어주었다.
“이후에도 내 그런 일 당하면 도와달라. 돈은 근심하지 말라.”
“야야, 이젠 나이도 든게 공동변소로 작작 다녀라. 누가 너 같은 바람둥이한테 시집 와서 아들딸을 낳아주겠느냐?”
“또, 또, 또.”
정호는 번대머리에 돋은 땀을 손수건으로 뚝뚝뚝 찍으며 문걸을 힐난했다.
"넌 언제 그 봉건통에서 해탈되겠니? 리몽룡 일편단심. 아니야, 네 인생 불쌍하다, 불쌍해.”
“내사 네 인생 보기 구차하다.”
“온 세상에 이쁜 아가씨들이 북실거리는데. 지금 세월에 열집 사위 돼도 모자랄 판에. 흥, 어떻게 한 안해한테 목 매여 살 겠느냐? 꽃마다 아름다움과 향기 다 판판 달라.”
정호는 또 색마의 속심을 드러냈다.
“친구지간이니깐 말하지만. 들어봐라. 으흠,”
만금은 설거지를 마치고 이쪽 눈치를 흘끔 보더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집안이 비지 정호는 목소리를 높여 실토정했다.
“ 난 순정 하나만 믿고 욕구를 만족할 수 없어. 그는 가슴이 비행장 활주로처럼 빤빤해. 그런데 처녀 때 내 발견 못해 속히웠어. 글쎄 부래지어에 해면을 불룩하게 넣어가지고 다닌 걸 눈치채지도 못했어. 그땐 또 언제 그런 걸 면밀히 검사하고 결혼할 처지는 아니였지. 순정이 아버지 권력을 빌어 출세해야 했지. 그래서 그런대로 결혼했지. 그러나 가슴이 풍만한 녀자를 순정이 먼저 맛을 볼대로 본 내야. 황금희선생이랑 선희랑 자매간 다 진짜 죽여준다. 번마다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야. 눈앞이 노래질 지경으로 황홀해. 자유 깃발 휘날리는 푸른 하늘을 훨훨 날 것만 같은 기분이야.”
“그럼 황금희선생이나 황선희하고 결혼할게지. 왜 순정과 결혼했어? 지금 보면 넌 순정과 결혼한게 아니라 순정의 아버지 권력과 결혼한 거야.”
정호는 미녀로봇이 가져온 차물을 후후 불어마셨다.
그는 물끄러미 마주보며 묵묵히 듣고만 있는 문걸을 힐끔 건너다보면서 계속 색마의 론리를 늘여놓았다.
“너 동남아에 관광가보았니?”
“아니, 가본 적이 없어.”
“동남아 비률빈,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아가씨들 죽여준다. 특별히 태국 아가씨들이 정말 남자들을 사람대접한다. 오색령롱한 밤에 기생거리에 가면 참대다락집 층층계에 예쁜 아가씨들이 한 층계마다 둘씩 딱딱 앉아 손님들을 기다린다. 높은 층계에 올라갈수록 더 이쁘고 나이도 어린 아가씨들이 앉아 있지. 값도 층층계를 올라갈수록 더 비싸지. 젤 마지막 층계 아가씨는 엄청 비싸.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돈을 팔고 노는 바 하고야 비싸면 어떻구. 젤 곱고 나이 어린 아가씨를 데리고 놀 판이지. 태국 어린 미녀들 죽여준다. 죽여줘!”
정호는 열변을 토하면서 흥분돼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문걸은 묵묵히 속궁리를 굴렸다.
(혹시 순정의 말이 맞는 거 같구나. 그날 지하주차장에서 영희 보고 그랬잖을가?)
그런줄도 모르고 정호는 한참 목석처럼 듣기만 하는 문걸을 보고 화제를 돌렸다.
“순정이 가슴이 비행장 활주로일줄 알았더면 그때 차라리 영희하구 살았겠다. 아차!”
열이 올라 숱한 말을 늘여놓다나니 실수도 했다. 그는 앞에 목석처럼 앉아 있는 사내가 문걸이라는 것도 잊은듯이 열변을 토해버렸다.
“미안해.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량해해라.”
정호는 문걸의 눈치를 힐끔 보며 횡설수설했다.
“하긴 너네 이젠 리혼한 사이니깐. 괜찮겠지?”
그래도 문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호는 담도 커졌다.
“친구니깐. 이젠 제대로 말하지만. 기실 난 순정보다 영희를 더 좋아했다. 그런데 출세를 위해 순정을 택했다. 난 정말 영희를 사랑했어. 진짜 아쉬운대로 영희를 너한테 소개해주었다.”
“개자식!”
문걸은 차탁 위 커피잔을 쥐어 정호 번대머리에 뿌렸다.
딱!
“앗!”
정호는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붙잡았다. 검은 기미 박힌 번대머리에서 더러운 피가 주르르 흘렀다. 손가락 사이에서까지 뻘건 피가 뱀처럼 괴여나왔다.
“개자식! 너도 친구냐? 내 참고 참았다.”
문걸은 벌떡 일어나 외까풀눈을 부릅뜨고 정호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대성질호했다.
“말햇! 영희를 몇번 다쳤니?”
“무슨 소리냐?”
정호는 멱살을 틀어쥔 손을 풀며 맞쏘아보았다.
“냉수에 생이 부러질 헛소릴 작작 쳐라! 내 사랑하는 영희까지 네한테 줬는데 뭐 모자라 이래?”
“그래, 아까워서 지하주차장에서 영희를 간음했어?”
“뭘? 뭐라더니?”
“로실히 말해라. 영희를 그랬니? 안 그랬니?”
“생사람 잡지 말라. 이걸 놓고 말하자.”
문걸이 활 놓아줬다.
정호는 쏘파에 되앉으면서 번대머리에 흐르는 피를 쓱 문질렀다.
“야, 재수 없어. 이거야 말로 버선목이니 번져 보이겠니?”
색마는 억울한 척 했다.
“그날 지하주차장에서 아무 일도 없었어. 우리 집에 올라가 저녁 먹고 가라고 잡아당겼을뿐이야.”
“거짓말! 아직도 속이겠니? 그러고도 친구야? 친구지간에 돈과 녀자 관계는 분명해야 해. 내 녀자 네 녀자 분명히 가르고 다치지 말아야지. 그게 친구 의리지. 서문경처럼 그럼 못써. 그러고도 제 명에 죽을 거 같아.”
정호는 황급히 문걸의 두 손을 꽉 붙잡았다.
“야, 좀 랭정하게 생각해봐라. 내가 그럴 사람인가?”
“이제 영희하구 물어보면 다 알아.”
“순정이 리간도발하는 거짓말을 믿지도 말라.”
문걸은 간신히 참아냈다.
“친구 안해를 희롱하고서도 무슨 놈의 친구야?!”
뜻밖에 미녀로봇이 달려나와 정호의 번대머리를 손가락질하며 질책했다.
“네가 뭘 알아 삐쳐?!”
정호는 벌떡 일어나 미녀로봇을 활 밀쳤다.
“이 나쁜 놈!”
미녀로봇은 약한 팔을 휘둘러 정호 목을 끌어안고 조였다.
“처제를 간음하고서도 친구야? 이 색마놈아!”
미녀로봇은 필경 기계여서 팔은 약해도 정호는 당하기 힘들었다.
“문걸아. 말려라! 나 좀 살려달라. 빨리!”
“야메!”
그제야 미녀로봇은 풀어주었다.
정호는 아픈 목을 만지면서 두덜거렸다.
“아이구, 죽을 번했다. 조게 모슨 힘이 저리 세. 나도 이후에 미녀로봇을 경호원으로 둬야겠다.”
“까딱 우리 녀자들을 릉욕하기만 해봐라. 죽여치우겠다. 순정 언니한테서 다 들었어. 네 놈이 어떤 놈이란 걸.”
“순정이 여기 왔댔어?”
정호는 미녀로봇과 문걸을 번갈아보았다.
“그래. 네 놈 죄행을 다 공소했어.”
“그런 판이구나.”
정호는 황급히 신을 신었다.
문걸은 차탁 위 돈묶을 주어 정호한테 뿌려던졌다.
"더러운 돈 가져가! 다신 네놈 더러운 밑구멍씃개질 할 것 같애?!"
정호는 출입문어귀에 널린 돈을 주었다.
미녀로봇 아사꼬가 정호를 손가락질하면서 호통쳤다.
“다시 오기만 해봐라. 죽여치운다. 량심없는 놈! 개 같은 색마! 누구 앞이라고 거짓말을 줄줄 늘여놔. 내 머리엔 거짓말 측정기 장치됐어. 흥!”
정호는 부랴부랴 바깥에 나가자마자 까마반지르한 새 도요다표 찌프를 타고 먼지를 쌔뽀얗게 일구면서 씽 달아났다.
그는 공원에 달려가 차를 멈춰세웠다.
행인이 적은 공원 정자에 올라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순정아, 하긴 잘 했구나. 집도 팔아먹구, 차두 팔아먹구.”
“널 알거지로 만들어 내쫓을 거야.”
"차 안에 뭐 있었는지 알고 팔았어?"
"뭣이 들어 있든 걱정도 팔자지."
"전화로 말하기 불편하니깐. 만나자. 당장 공원 대문 어귀에 오라."
이윽고 그들은 공원 대문 어귀에서 만났다.
정호는 순정을 보자 손가락으로 삿대질했다.
"따라와!"
순정은 공포에 질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순순히 따라갔다.
늙은 비술나무 밑에 이르러 행인이 보이지 않자 정호는 단도직입했다.
"차 후미상자 밑바닥 도구상자에 숱한 돈과 액세사리를 치워뒀댔어."
"뭐라고?!'
순정은 아연실색했다.
정호는 핸드폰을 꺼냈다.
"차매입자 전화번호를 대라."
"늦었어. 늦어."
"주은 물건 돌리지 않는 건 범죄야."
"그럼 공안국에 신고할텐가?"
"아니, 건 좀. 법은 멀고 주먹이 운다."
순정은 차매입자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두덜거렸다.
"보험궤 걸 도둑질해 차 안에 치웠댔구나. 잘 됐구나. 음험한 도둑놈, 부패분자."
"보험궤에 너무 많으면 그렇잖아. 차 안이 젤 안전하지. 이동보험궤!"
"아주 로련한 도둑놈이구나."
순정은 빈정거렸다.
"내 몰래 훔쳐가더니 쌍통맹통이야. 진짜 알거지로 됐구나.호호호."
정호는 정색했다.
“한가지만 말해두자. 아무리 리혼해도 필경 우린 30년 가까이 산 원팀 부부 아니야?”
“퉤! 한뉘 얼리워 산게 한이다 !”
“우린 글쎄 부부간이 아니라 해도 필경 서로 사랑하던 사제간이 아니냐?”
“더럽다. 내 입이 터지는 날엔 넌 지옥에 갈줄 알아라!”
“우린 리혼해도 원쑤지간은 아니야."
"누가 리혼한댔어? 어느 간나새끼 좋은 노릇하자고? 네놈 꼭 리혼계획 세우고 아파트나 숱한 재산 감춰뒀지?"
"토끼도 굴이 세개라더라. 너하구 못 살면 새 출발할 준비 언제나 해둬야지."
정호는 꼬리를 밟히기 전에 꼬리를 자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겉으로는 순정을 또 병 주고 약주며, 얼리고 닫치고 할 예산이였다.
"우리 서로 나쁜 일은 잊고 좋은 일만 기억해두자. 서로 해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이제부턴 졸혼해서 상대방을 간섭하지 말고 자기만의 삶을 살자.”
정호는 우멍눈을 부릅뜨고 정색했다.
“경거망동하지 말 걸 다시 한번 충고한다.”
“누굴 지금 위협하는 거야.”
정호는 떠나가면서 이를 악물었다.
(네깐년이 날 해치기만 해보지. 네 년도 편치 못할 거야. 내 얻어먹은 돈을 물쓰듯 하면서 금은보화로 올리감고 내리감고 해가지고 뭐 모자라 그래? 내 감옥에 가면 너한테도 감옥문이 열려 있다. 너네 아버지 사망했지만 명예 땅바닥에 떨어질 거야. 검은 금고 우리 집 거보다 엄청 크잖니? ㅋㅋ.)
한편 문걸은 정호가 떠나간 후 수렁텅이 같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영희와 리혼했지만 순정한테서 정호가 영희를 릉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더 없는 릉욕감을 느꼈다. 더구나 정호가 영희를 사랑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더 모멸감을 느꼈다. 마치 한뉘 속히운 감, 안해를 미친 색마한테 빼앗긴 감이 들었다. 진짜 자기 데리고 살진 않아도 남이 빼앗는 건, 짓밟는 건 좋지 않았다. 아니, 분개하고 막 죽여치우고 싶었다.
(개를 쳐도 주인을 보고 치라고. 흥! 누구 안해를 감히 건드려? 감히 짓밟기까지 해?)
문걸은 끊임없는 고민에 빠졌다.
“정호 마음 속에는 확실히 영희가 깊이 박혀 있었구나.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는가. 난 한뉘 속혀 살았단 말인가?”
한편 홀가분한 감도 났다.
(이젠 리혼한 마당에 영희하구 정호 살았다면 어떻고 살지 않았다면 어떠냐? 다 파묻힌 세월의 뒷이야기인데. 다만 군철과 지예 앞날에 영향 줄가 봐 근심될뿐이야. 군철과 지예도 리혼했다는데. 새 며느리나 사위가 영희가 정당하지 못한 녀자였다는 것을 알면 한뉘 애들하고 거정질을 할게 아닌가. 그러면 애들이 한뉘 눌리워 살게 아닌가.”
문걸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군철이 며느리를 내놓은 건 아까워하지 않았다. 며느리 잔소리 하던 일을 생각하면 치떨렸다. 심지어 자기가 마지막으로 상해를 떠날 때 며느리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도 자가용으로 포동비행장까지 환송하기는 고사하고 시아버지 떠나가는데 문 밖으로 낯짝 하나 내밀지도 않았다.
“잘 다녀가세요.”
며느리면 이렇게 말하며 최저한도로 집 밖에까진 나와 바래야 하지 않겠는가. 며느리와 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 그런 인정도 례절도 없는 며느리를 떼버리니 아쉽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홀가분하고 기분 좋았다.
문걸은 저도 몰래 호주머니에서 권연을 꺼내 물었다.
“피우지 마세요.”
미녀로봇이 권연을 입에서 쏙 빼갔다.
“심혈관질병에 나빠요.”
미녀로봇은 대신 사탕을 꺼내 입에 물려주었다.
문걸은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영희 일을 완전히 잊자. 영희하구 대질해도 그런 일 있다고 하겠니?)
뒤이어 문걸의 눈앞에는 영희 병실에 왔던 춘희의사가 떠올랐다.
(진짜 오리무중이야. 어찌 일본 나그넬 해서 살아? 일본에서 딸애 야마꾸찌마끼까지 낳구. 진짜 아리숭한 미스터리야.)
문걸은 고민에 빠진 채 영희와 춘희를 다 시선에서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후- 어쩜 사람이 사는게 이다지도 힘들고 괴로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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