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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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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21) 김장혁
2022년 06월 23일 11시 53분  조회:117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1. 허부장
 
       으리으리한 대학교 강당에서 숱한 대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시루속 콩나물처럼 들어앉아 연설을 듣고 있었다.
연단에서는 40대 중반 간부가 한창 숱한 사생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빨간 넥타이를 척 매고 양복차림을 한 그 간부는 안경을 닦아 다시 걸고 연변을 토했다.
      “교수님들, 학생 여러분, 아무리 금전시대이고 개혁개방세월이라고 해도 우리 대학교 사생들은 절대 금전에 미혹돼선 안됩니다. 특히 미인관을 잘 넘겨야 합니다. 옛말에 영웅도 미인관을 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학교 울 안의 사생들은 모두 미인관을 넘길 수 있는 영웅호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단 아래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연설자가 바로 허병칠 학생부 부장 겸 당총지 서기였다.
    “우리 간부들은 마땅히 청렴하고 금전과 주색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말아야 하고 무자비해야 합니다. 특히 학생들을 관리하는 담임교원을 비롯해 보도원, 학생부 매개 간부들은 학생들의 맥주 한잔, 돈 한푼 얻어가지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의 전도와 생활을 친자매처럼 관심해야 합니다. 우리 간부들은 사람마다 학생들의 훌륭한 스승으로 되기 위해 천방백계로 노력해야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젊은 간부는 연단 옆에 물러나 허리를 굽혀 구십도 경례를 하고는 턱을 쳐들고 연단에서 내려와 학생들 속으로 걸어갔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간부가 장내를 다 나갈 때까지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치며 경의를 표시하였다.
화는 눈섭 끝에서 떨어진다는가.
그 간부가 회의가 끝나 사무실에 걸어갔을 때였다.
문어귀에서 정희가 막아섰다.
“허병칠 부장 맞죠?”
허병칠 부장은 정희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네. 어떻게 돼 저를 찾아왔습니까?”
“아주 연설을 그럴듯하게 하더구만요.”
정희는 단통 표독스런 표정에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면서 독사처럼 혀바닥을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허부장, 아주 긴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는데요. 시간 좀 낼 수 있는가요?”
허부장은 정희 쪽 빠진 체격을 훑어보았다.
“네. 어서 사무실에 들어가 얘기합시다.”
허부장은 자기 신변에 아주 요사한 독사가 감겨들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정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개 똥 먹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고 그는 자꾸 정희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 눈길을 박았다.
(이놈 색마놈새끼, 언감 이 마마한테도 눈길을 팔아? 흥, 어디 죽어봐.)
정희가 속으로 윽벼르면서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길다란 사무상과 높다란 의자, 그리고 쏘파에 침대도 위풍스러운 감을 주었다.
“사무실이 꽤나 멋지군요.”
“예? 여기 앉으세요.”
정희가 침대에 앉는 것을 보고 허부장은 쏘파를 가리켰다.
정희는 눈귀에 독기를 흘리면서 일어날 념도 하지 않고 엉덩이로 침대를 굴러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침대 푹신푹신한게 아주 편하고 좋구만요.”
“아니, 이거.”
허부장은 귀찮은 눈길로 정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왔는지, 요건만 말하십시오. 전 바쁩니다. 학교 당위에 회의 있어 가야 합니다.”
정희는 픽 코웃음쳤다.
“날마다 회의해서 뭘하는가요?”
허부장은 이상한 녀자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말고 요건만 말하고 돌아가십시오. 집의 학생 때문에 왔는가요?”
“네- 비숫하게 맞췄군요.”
허부장은 틀스레 사무상에 척 앉으면서 물었다.
“집의 학생은 어느 학부에 다닙니까?”
“저의 녀동생인데요. 예술학원 성악전업에 다닙니다.”
“오- 그래요? 학생 무슨 난제 있습니까? 제가 도와드리죠.”
정희는 동문서답하며 먼 서산을 쳐다보았다.
“아까 강당에서 연설을 잘 하시더군요. 참말 대학교에서 참 훌륭한 스승님을 두었군요.”
허부장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뭐, 우리 대학교 교수님들과 간부들은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아직 상급 조직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데유.”
정희는 쓴 외 바라보듯 허부장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특히 대학교 교수님들과 간부들은 금전관과 미인관을 잘 넘긴 영웅호걸이겠지요? ㅎㅎㅎ.”
허부장은 자리에서 훌 일어났다.
“집의 학생이 무슨 일 있습니까? 찾아온 요건만 말하십시오. 여기서 아줌마하구 한담이나 할 그런 시간이  없습니다. “
“아니, 손님 두고 가겠다는건가요?”
허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회의하러 가야 합니다.”
정희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허부장의 앞에 다가가 사무상을 꽝 쳤다.
“허부장, 영원히 회의하러 가기나 할 거 같은가!”
“아니, 무슨 일입니까?”
허부장은 죄를 지은 놈이여서 그런지 다소 얼굴 근육이 굳어지면서 눈덕이 푸들푸들 뛰였다.
그는 의자에 되앉으면서 경계하는 눈길로 정희를 가늠해보았다.
정희는 문께를 핼끔 곁눈질하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대학교 간부들 문제 많아. 몇십년 전에 여기서 무용교원질 하던 최정호를 알겠지?”
“네. 최선생님은 저의 스승인데요.”
“참 훌륭한 스승에 그럴듯한 제자 있군요. 정호 선생님을 나도 잘 알아. 허부장은 정호한테 돈을 먹이구 학교에 남아서 학생부장까지 바라올라갔다는 것도 다 아오.”
허부장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 녀자 정체 뭔가?)
그러나 허부장은 인차 랭정해졌다.
“아니, 무슨 내 래력 조사하러나 왔습니까? 집에 학생 무슨 일인지 말하고 갑소. 바쁜 사람 붙잡고 이러지 말고.”
정희는 침대에 앉으면서 날카롭게 허부장을 쏘아보았다.
“허부장, 여기 이 침대에서 녀대생들을 몇이나 강간했소?”
허부장은 속이 띠끔해나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고 천천히 의자에 앉으면서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아니, 이 아줌마, 지금 무슨 헛소릴 치오? 점점 망탕소릴 치는구만. 난 이 대학교에서 청렴하고 훌륭한 학생공작간부로 이름이 높소. 이 상장과 축기를 보십시오.”
“호호호. 이따위가 무슨 소용있는가? 허부장은 숱한 사람들 앞에서는 청렴하고 깨긋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암암리에 부뚜막에 올라 엉덩이로 호박씨를 까지 않았소? 뭐, 날 보고 망탕소리 한다고? 호호호. 그래, 망탕소린가. 들어보겠어?”
정희는 허부장한테 다가가 표독스런 눈길로 자기 사냥물을 노려보았다.
“허부장, 좀 똑똑하게 노오.”
정희는 허부장의 빨간 넥타이를 틀어쥐어 당기기까지 하면서 혀바닥을 날름거렸다.
“허부장, 하영이라고 알지?”
“네? 하영이? 어째? 이걸 놓고 말합소. 하영이 무슨 일 생겼습니까?”
허병칠은 입술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눈이 데꾼해졌다.
“허병칠 부장님, 임하영은 내 녀동생이야. 허부장, 넌 학생총회 부회장 자리를 미끼로 내 녀동생을 유인해 처참하게 유린했지.”
허병칠은 손사래를 마구 쳤다.
“아니, 생사람을 잡지 마십시오.”
정희는 허병칠한테 점점 다가들었다.
“그래 다 잊었단 말인가? 넌 이 침대에서 3년 동안이나 사흘이 멀다하게 하영을 짓밟았다. 그러고도 수염을 쓱 닦을 작정인가? 네놈한테서 정치를 잘 못 배워서 하영은 가무단에 가서도 몸을 팔아 가무단 단장으로 되려고 했다. 하영은 네놈의 모든 죄악을 내게 다 말했다. 그래도 변명할테냐? ”
정희의 말마디마다 비수로 돼 허병칠의 허위에 찬 허파를 찔러 더러운 피를 줄줄 흘리게 했다. 이른바 “미인관을 잘 넘긴 청렴한 간부”의 허울이 한벌한벌 벗겨지는 순간이였다.
“어떠냐? 억울하면 변명해라.”
허병칠은 머리를 푹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다.
“아주머님, 미안합니다. 사실 우린 련인관계입니다. 절대 강간한 건 아닙니다. 하영하고 물어보십시오. 하영이 날 좋아서 따라다녀 생긴 사고입니다.”
“이 놈아, 애 둘이나 달린 유부남이 녀대생, 응? 그것도 숫처녀를 깔고들어앉아 련애한다는게 말이나 되니? 너도 박사라는게 뭐야? 될 말인가, 아닌가 좀 가려 해라. 알겠지? 넌 하영의 전도를 짓뭉개버린 나쁜 놈이야. 그러고도 숱한 사람들 앞에서 훌륭한 학생공작간부인 척 해?”
허부장은 그래도 변명하려고 들었다.
“아줌마는, 아니, 저 선생님은 내막을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기실 나는 하영의 전도를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나는 하영을 보고 우리 네식구 가정을 깨지 말라고 교육해 겨우 마음을 돌리게 해 떼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사생관계를 리용해 정호 국장한테 다리를 놔서 하영을 가무단에 배치해줬고 성악조 조장까지 시켰습니다. 이제 하영은 부장, 아니, 단장도 될 겁니다.”
“뭐라고?!”
정희는 사무상을 꽝 쳤다. 그녀는 허병칠을 의자에서 밀어내고 자기사 부장자리에 덜렁 들어앉아 허병칠을 심문하듯 했다.
“허부장, 하영을 해치고서도 도와준 척 하는구나. 봐라. 나쁜 스승 하나만 있으면 그 아래 숱한 학생들이 화를 입어. 정호 그 나쁜 놈, 제자한테 나쁜 인생관을 관수했기에 너도 이런 기로에 들어섰지. 또 너 같은 량면파, 위선자 학생공작간부가 하영과 같은 정치허영심에 들뜬 불쌍한 녀대생들을 나쁜 정치를 하게 유인했어. 숫처녀마저 너 같은 놈한테 바치게 했다. 네놈은 이 사무실에서 기실 전문 녀대생들에게 못쓸 인생관과 련애관, 혼인관, 가정관을 관수하는 공작이나 했지? 뭐 했느냐?”
허병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목석처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떠냐? 네놈 오늘 이 아줌마한테서 정확한 정치관, 인생관, 미인관 교육을 받았지? 좀 정신 차렸느냐?” 
허병칠은 가만 있을수만 없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난 절데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하영과 물어보십시오. 걔가 주동적으로 내 품에 안겼댔습니다.”
“으흠, ㅎㅎㅎ. 부장 자리 꽤나 푹신푹신하구나.”
정희는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대고 빙그르 돌아 허병칠과 마주 앉았다.
“그럼 좋다. 네 말대로 련인관계이구, 강간이나 간음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럼 우리  대학교 당위나 기률검사위원회에 가서 내놓고 시비하자.”
“아, 아니, 건 아니구,”
허병칠은 기겁해 황급히 문께로 가더니 문 고리를 절컥 잠갔다.
“뭐 하자는 거야? 이 침대에서 날 강간이라도 하려는 거냐? 아님, 죽이려는 거야?”
정희는 의자에서 발딱 일어났다.
“어째, 소리친다.”
허병칠은 당황한 나머지 손사래를 마구 쳐댔다.
“아니, 아닙니다. 조용히 말합시다.”
그는 부장 틀을 차리며 거만하게 놀던 아까와는 달리 허리까지 굽신거리면서 컵에 커피까지 타서 공손히 드렸다.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어째 당위에 회의하러 가지. 시간 없잖은가? 나도 대학교 당위하구 기률검사위원회 어떤 곳인가 구경도 하구. 일거량득이 아닌가? 오면서 보니 아래층에 기률검사위원회구 당위구 나란히 있더구만.”
허병칠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여기서 조용히 말합시다.”
정희는 자기 날린 화살을 맞고 쓰러져 바들바들 떠는 사냥물을 쏘아보며 흐뭇해  외까풀눈에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허부장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겨서 먼저 여길 찾아왔소. 내 당위나 기률검사위원회에 찾아가면 허부장 어떻게 되겠소? ㅋㅋㅋ”
허병칠은 정희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하영이 뭐라고 합디까?”
정희는 이젠 단도직입했다.
“그래, 하영은 널 갈기갈기 찢어놔도 원쑤를 다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요? 그럴 것까지야. 참.”
“이놈, 참 철면피하구나. 네놈은 대학생들을 우습게 보는구나. 네놈은 하영을 여기 사무실에 데려다가 개별조직담화하는 척하면서 노리개로 데리고 놀았지. 또 하영을 보고 뭐라고 했니? 무슨 ‘승급하려면 몸이라도 바쳐야 한다.’고? 다 네놈이 그렇게 삐뚤렁 정치를 관수한 죄과야. 하영이는 미인계로 가무단 단장해먹고 정호 국장나부랭이를 삼자고 망아산에 갔댔어. 강도한테 쇠몽치에 대갈통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뭐라고? 하영이 지금 어데 있습니까?”
“구급실에 있어.”
정희는 눈이 데꾼해진 허병칠을 쏘아보며 랭소했다.
“찾아갈 필요없어. 네놈을 보기도 싫어하니깐.”
정희는 마지막 속내를 드러냈다.
“허부장, 어떻게 하겠소? 내 당위 기률검사위원회를 찾아갈가?”
허병칠은 이제껏 숱한 투자를 해 쌓은 부장자리가 닭알무지처럼 와그르르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정호 선생을 비롯해 위 간부들한테 숱한 돈을 먹여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아니, 제발 가지 마십시오. 사사로이 조용히 해결하깁소.”
허병칠은 황망히 정희 앞에 무릎까지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었다.
그때라고 정희는 최후일격을 가했다.
“그럼 좋소. 나도 전도창창한 허부장을 해치고 싶진 않아.  허부장 전도는 허부장 본인의 태도에 달렸소.”
허병칠은 벌벌 기여 정희 발 밑에까지 다가와 두 손을 맞잡고 물었다.
“대체 바라는게 뭡니까? 저를 살려주십시오. ”
정희는 활을 거두면서 요구를 내놓았다.
“간단하오. 당장 배상금으로 50만원을 가져오오. 하영의 구급치료비에 보태게.”
“50만원이나?!”
허병칠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였다.
“제게 무슨 돈이 50만원이나 있다고 이럽니까? 애 둘을 공부시키느라고 근근득식하는데…”
녀사냥군은 활을 활집에 걷어넣으면서 치마를 툭툭 털었다.
“별 수 없군. 당장 당위에 찾아가 결판내기오.”
허병칠은 눈물까지 글썽해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아니,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돈 좀 구해보죠. 그러나 당장 무슨 수로 50만원이나  구하겠습니까?”
정희는 허병칠의 볼까지 매만지면서 나지막이 을러멨다.
“내 수를 대줄가?”
허병칠은 눈이 퀭해 간사한 요정의 입에서 무슨 사악한 말이 떨어질지 기다렸다.
“집을 팔아라.”
“집이 인차 팔리겠소?”
“그럼 당장 각서를 써라. 네놈의 집을 이 정희한테 준다고.”
“하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아줌마한테?”
“그래. 허부장, 시간이 없어. 사흘 내에 돈 50만을 명도다방에 가져와. 알만해?”
정희는 말을 마치자 자리를 훌 털고 일어났다. 녀협잡군은 되돌아보지도 않고 독사마냥 허병칠의 사무실을 스르르 나와버렸다.
허병칠은 그제야 무서운 협잡군한테 협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였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 아니야.”
그는 황급히 웃호주머니를 들추며 바깥으로 뛰여나갔다.
층층계까지 가니 정희가 2층에 내려가 당위 쪽을 기웃기웃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니, 하느님 맙시사!)
허부장은 체모도 잃고 뛰여가며 소리쳤다.
“정희선생님, 여기 좀 봅시다.”
정희가 이쪽으로 돌아서며 표독스런 눈길을 보냈다.
“웬 일이오? 허부장.”
허병칠은 정희를 층계 저쪽 수도실로 끌고 갔다.
“선생님, 택시나 타고 가십시오.”
그는 웃호줘머니에서 백원짜리 몇장을 꺼내 들었다.
“이러지 말라고.”
정희는 지전을 수도실 구석에 훌 쥐여 뿌렸다.
“내 세살짜리 앤가 해?”
요정은 언성을 낮췄다.
“이 따위로 얼리려고 말고 당장 50만원 가져와. 알았어? 50만원!”
“예. 알았습니다.”
그때 50대 간부가  컵을 씻으러 수도실에 들어섰다.
“김서기님, 안녕하십니까?”
김서기라는 간부는 그들 둘을 이상한 눈길로 번갈아보았다.
“어째 회의하러 오지 않았소?”
“네. 긴급한 일이 있어서요. 네. 곧 가겠습니다.”
정희도 맞장구를 쳤다.
“네, 허부장과 아주 긴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김서기는 땅바닥에 널린 지전을 보고 허부장을 돌아보았다.
“네, 금방 떨어뜨려서…”
허병칠은 황급히 흩널린 지전을 주으면서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마조마해 어쩔줄 몰라했다.
정희는 깨고소해 허병칠을 핼끔 쳐다보면서 손사래를 쳤다.
“허부장, 그럼 잊지 마세요. 빠이, 빠이!”
“예, 예. 잘 다녀가십시오.”
허병칠은 수도실에서 김서기와 정희와 갈라지자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그날 무슨 정신으로 당위 확대회의에 참가했는지 몰랐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허병칠은 택시를 타고 저금소에 달려갔다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협잡군년한테 가져다 줘서야 밑굽 빠진 항아리에 물 붓기지. 하영을 찾아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봐야지.)
그는 연신 길죽한 낯에 흐르는 식은 땀을 훔쳤다. 눈 앞이 아찔해나고 뇌리에서는 우뢰가 울고 번개가 번쩍였다.
(하영도 한심해. 어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일을 저런 년한테 공개한단 말인가?)
허병칠은 병원 구급실에 달려가 간호원과 물어서 인차 하영이 입원한 구급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병실을 열고 들어가니 하영이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영이, 어떠오?”
하영은 세귀눈이 화등잔이 돼 허병칠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앓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모로 탈더니 외면했다.
허병칠은 허겁지겁 침대에 다가갔다.
“어떠오? 강도한테 당했다더니.”
하영은 대답도 하지 않고 이불을 들썼다.
허병칠은 누가 들어올가봐 프롤로그를 접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영이, 어쩜 우리 둘 일을 다 공개하오? 그러고서야 가무단 단장은커녕 이담 어떻게 시집가겠소?”
하영이 이불을 홱 제쳤다.
“뭐라고? 내 전도를 망친게 어느 놈인데. 작작 고양이 쥐 생각하는 척하세요.”
허병칠은 또 한번 하영을 얼리려고 다가들었다.
“내야 항상 하영을 생각해 말하지. 보오. 학교 때 저를 얼마나 도와 주었소? 일반학생인 하영을 입당시켰지, 학생총회 부회장을 시켰지. 가무단에 배치해주었지. 뭐가 모자라오? 왜 배은망덕하오? 뭐가 모자라서 언니까지 보내 협박하오?”
“픽.”
하영은 코웃음쳤다. 그녀는 정희가 자기한테 알리지도 않고 선수를 칠줄은 몰랐다.
(안되겠어. 주동을 쟁취해야지.)
그녀는 와닥닥 일어나 세귀눈으로 독살스레 허병칠을 노려보았다.
“허부장, 죄값을 톡톡이 치를줄 아세요. 숫처녀 정조를 짓밟고서도 아주 떳떳하구만요. 당년에 허부장이 사무실 침대에서 저를 몇백번 강간했어?"
"몇백번이나 강간했다고? 흥, 처음에는 글세 그렇다고 치자."
순간 허부장이나 하영이나 모두 그때 정경이 피뜩피뜩 떠올랐다.

"하영이, 그저 노래만 불러서야 언제 출세하겠소? 최저한도로 대학교 때 학생총회 간부랑 해야 사회에 나가 정치자본으로 삼아 문예귀족이 되지."
허부장은 하영을 사무실에서 이른바 조직담화를 하는 척하면서 꼬시기 시작했다.
"이 허부장 한마디면 저를 2만여명이나 되는 학생총회 부회장으로 만들 수 있소."

"네? 허부장, 저를 도와주세요."
"이전에도 말했지만 조직적으로 발전하려면 허부장한테 좀 뭔가 해줘야지."
"조직문제를 해결할 때처럼 또 돈을 가져오랍니까?"
"아니, 이젠 돈 싫어."
"그럼?"
허부장은 하영의 보들보들한 손을 스리슬쩍 잡고 매만졌다.
"정치를 하려면 자기를 희생할줄도 알아야 하오. 이건 한 스승님이 나한테 가르친 인생철학이오. 참 인생철리 있다고 보오. 생각해보오. 세상에 어디 공게 있소? 뭔가 주지 않으면 누가 저를 발전기키겠소?"
허부장은 쏘파에 다가와 하영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러지 마세요."
하영은 허부장의 손을 풀어 떠밀었다.
"이럼 가겠어요."
허부장은 하영을 활 놓아주었다.
"가겠으면 가오. 다신 날 찾지 마오."
하영은 가도오도 못하고 물앉고 말았다.
"하영은 참 이쁘오. 딱 평양아가씨처럼 청순미가 있단 말이오. 요 쌍까풀에 청포도눈, 요 빨간 앵두입은 더 이쁘단 말이오."
쪽-
허부장은 하영의 입에 키스를 살짝 안겼다. 어망간에 당한 일이라 하영은 당황해 어쩔줄 몰라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허부장을 쏘아보았다.
허부장은 음충한 눈길로 하영을 곁눈질하면서 와닥닥 끌어안았다.  색마는 청렴한 간부, 미인관을 넘긴 간부의 허울을 훌렁 벗어버리고 색마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
 

"허부장이 날 강간한 증거가  다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걸 들고 학교 당위에 찾아가 시비를 따질가요?”
허병칠은 하영이 나오는 걸 보고서야 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 무슨 증거?”
“몰라서 물어요? 그날 제가 강간당할 때 허부장 손으로 침대에 깔았던 피 묻은 손수건이 있습니다. 이건 피로 물든 철증이란 말입니다.”
“아니, 날 잡아먹으려고 아직도 건사했어?”
“그래.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놔도 원쑤 되지 않아.”
하영은 허부장의 창백한 낯빤대기를 보고 깨고소해했다.
허부장은 괴변을 부렸다.
"3년 동안이나 강간했다면 누가 믿어?"
하영은 허부장을 치켜보았다.
"생각해보오. 첫날엔 학생총회 부회장을 시키기로 흥정하고 한 게 아니오? 그 후엔 내 싫으면 그만 뒀을게 아니오? 강간했으면 그때 왜 사법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소? 분명 저도 좋아한게 아니고 뭐요?"
하영은 가랑잎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아웅하는 색마의 몰골을 쏘아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그럴듯한 궤변이구만. 날 3년 동안이나 사흘이 멀다하게 유린하고서도 뻔뻔하게 놀겠어? 그럼 좋다." 
하영은 벌떡 일어나면서 대성질호했다.
“래일 숱한 남친들을 거느리고 학교 당위에 찾아가 한바탕 네놈의 강간죄를 가지고 시비를 따질 거야.”
허병칠은 황급히 가방에서 돈꾸러미를 꺼냈다.
“자, 받소. 5만원이오.”
“요까짓 걸로 내 입을 틀어막으려고? 어림도 없어!”
하영은 돈따발을 툭 쳐버렸다. 땅바닥에 돈이 지저분하게 널렸다.
“이러지 마오. 요구 있으면 천천히 말하오. 언니는 자기네 명도다방에 돈을 가져오랍데. 하영을 믿고 병문안하러 찾아온게오.”
“헛소리장단 그만하라고. 죄값으로 당장 60만원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두고 봐!”
허병칠은 돈을 주어 하영의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빌었다.
“하영이, 급히 오다나니 불시에 돈 더 구하지 못했소. 이제 돈 구하면 더 가져올게.”
“숱한 대학생 간부들한테서 얻어먹은 건 다 어쨌어? 허부장, 그 얼마나 많은 녀대생 간부들 전도를 망쳤어? 내게선 얼마나 악랄하게 몸도 빼앗고 돈도 얻어먹었어? 우리 엄마 아빠 한국에서 얼마나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번 돈인데. 네놈은 쩍하면 몸을 빼앗고서도 돈 달라고 윽박질렀지. 이제 학교 기률검사위원회에 신고해 조사해볼가? 아님, 공안국이나 검찰원에 신고해 수사에 붙힐가?”
“하영이, 옛 사제간 정을 봐서 제발 다 그만두오. 그래 돈 가져다주면 이전에 그 일 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지?”
하영은 이젠 내놓고 탐욕을 드러냈다.
“돈만 가져오면 그럴 수도 있죠.”
“다신 정흰지 뭔지 학교에 보내지 마오.”
“어째 겁나지?”
하영은 허병칠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허병칠은 태연자약하게 능청을 떨었다.
“가무단 단장 되겠으면 나하구 말할게지. 내 최정호 국장을 잘 아오. 최국장은 내 예술학원 때 스승이잖아.  돈을 많이 팔 필요도 없소.”
하영은 허병칠을 대성질호했다.
“그만하지 못할가? 여기 어디 흥정하는 장마당인가? 네놈은 최국장이란 색마정객한테서 더럽게 사람잡이정치와 색갈을 배웠어. 그래서 지금 죄값을 톡톡이 치러.  더 할 말 없어. 당장 60만원 가져오든지 당위에 찾아가 시비하든지 둘 중 하날 선택하라고.”
“알았소, 알아. 병문안하러 왔는데. 받아두오. 돈 구하면 더 가져올게.”
허병칠은 돈꾸러미를 침대머리 차탁에 놓아두고 자리를 떴다.
그때 문소리가 나더니 정희가 들어와 허병칠과 딱 마주쳤다.
“호호호. 허부장, 급하긴 급하구만.”
하영은 돈꾸러미를 훌 이불안에 치웠다.
허병칠은 정희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영은 정희 들으라고 꽥 소릴 질렀다.
“허부장, 다시 빈 손으론 찾아오기만 해 봐라. 가만 놔두는가 봐라.”
허부장 나으리는 소낙비를 맞은 쥐새끼처럼 어깨 축 처진 채 복도에서 비틀거리며  나갔다.
“아니, 저 놈,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어? 그래 빈손으로 왔댔니?”
간사한 두 녀자는 병실에서 아닌 보살을 떨면서 연극을 놀았다.
“그래요. 불시에 병문안 오느라고 빈손에 왔다지 않겠소.”
하영은 다가오는 정희를 보면서 이불을 꽁꽁 여몄다.
(뺑덕이에미, 어떻게 돼 허부장과 내 일을 속속들이 알가?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사실 정희는 최정호 국장한테서 하영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아냈던 것이다.
한편 허병칠은 병원 대문을 나서다가 주춤 멈춰섰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면 그래도 최정호 선생님을 찾아가야 해. 필경 하영은 최정호 국장 수하 아닌가.)
허부장은 이번 사건의 막후조종자가 바로 요사한 정호라는 것도 모르고 헤덤볐다. 그의 앞날은 갈수록 암담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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