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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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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3권 (37) 김장혁
2022년 08월 29일 11시 32분  조회:167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제3
                                   김장혁


 
                        47. 유서

      다이로교수는 산소호흡기를 단 채 구급실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옆 쪽걸상에는 춘희가 옹송그리고 앉아 보살피고 있었다.
     비운의 후지산 사망림에서 춘희가 다이로교수의 맥박을 보니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빨리 구급실에 실어갑시다.”
      그때 운전수가 먼저 다이로교수를 업고 사망림에서 령길쪽으로 내뛰였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운전수는 허망 넘어갔다. 너무 조급하게 내뛰다가 그만 해골을 밟고 넘어갔던 것이다. 운전수는 발목을 접질러 더는 다이로 교수를 업을 수 없었다.
“내 업을게.”
문걸은 배낭을 벗어 춘희한테 주고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었다.
“리선생님, 심장 좋잖은데요. 되겠는가요.”
“괜찮소. 죽는 사람을 어서 구해야지.”
“감사해요.”
문걸은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고 헐금씨금 사망림에서 내달렸다. 그런데 여기저기 미처 거둬가지 못한 해골들이 널려있어 등곬에 소름이 쭉 끼치게 했다.
문걸은 중간 쯤까지 다이로교수를 업고 나오다가 그만 쿵덩 쓰러졌다.
“리선생님, 괜찮아요?”
문걸은 다시 일어나 다이로교수를 둘춰 업었다. 그러나 몇발자욱도 못가 비틀거리다가 물앉고 말았다.
“제가 업을게요.”
춘희는 다이로교수를 빼앗다싶이 업고 안간힘을 다해 일어났다. 그녀는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겹게 다이로교수를 업고 나갔다.
숨을 돌린 문걸은 보다못해 소리쳤다.
“내려놓소. 내 업을게.”
문걸이 다시 다이로교수를 업고 비틀거리며 령길로 나갔다.
뒤이어 그들은 다이로교수를 도요다찌프에 싣고  도꾜 모 병원 구급실로 곧추 달려갔다…
구급실에서 춘희와 의료일군들은 다이로교수의 입과 항문에 고무호스를 꽂아넣고  의기로 그의 위와 밸에서 독물을 빨아내고 맨물로 몇번이고 희석해냈다. 다이로교수의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생사선에서 헤매던 다이로교수는 저승사자 문턱에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다이로교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춘희는 쿨쿨 자는 다이로교수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옆에 사람이 없는지라 그녀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야마구찌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을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선생님은 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어요? 그때 저는 금방 리혼하고 애까지 달고 일본에 류학왔지요. 알바하면서 눈을 집어뜯으며 공부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7년 동안이나 학비를 대주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선생님은 우리 모녀가 불쌍하다고 우리 생활비를 대주던데로부터 아예 본댁을 내보내고 우리 모녀를 집에 데려가 아버지마냥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지요. 제가 앓자 선생님은 저의 딸애를 집에 데려가 본댁에게 맡겨 보게 하고 저의 치료비를 대주고 뒤바라지까지 다 해주었지요. 나중에는 선생님 대학 소속병원에 입원시키고 무료치료수속까지 해주면서 정성을 다했지요. 선생님은 저의 박사도사이시자 저에게 무엇이 인간애인가를 가르치신 분이죠. 선생님은 저의 인생스승이기도 하지요. 선생님은 늘 저에게 사람이란 베푸는 인생을 사는게 제일 행복하다고 했지요. 선생님은 한평생 그렇게 사셨죠. 황선희 언니, 저 모녀, 그리고 지금은 복화 오누이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요? 그 은혜 태산과도 같아요.”
춘희는 다이로교수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선생님, 어서 깨나십시오. 저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도 주지 않고 가시면 전 어떡해요? 저는 이렇게 비참하게 선생님을 보낼 순 없어요. 선생님은 저의 딸 마끼(허가은)를   친딸처럼 사랑하시고 일본 이름마저 지어주셨지요. 마끼도 아빠 은정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의 은혜를 갚기는 고사하고 저는 쓸데없는 못된 궁리까지 했댔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살긴 힘들어요. 어쩜 좋아요?”
춘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면서 끝없이 넉두리를 했다.
이상하게 다이로교수 몸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 물론 선생님이   밤마다 저를 가지고 장난질하면 좀 힘들긴 했지요. 심지어 성학대를 하기까지 했지만요. 저는 모든 걸 꾹 참으면서 응대하기란 정말 진절머리났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에게 제대로 해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춘희는 다이로교수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선생님 이 세상에 저를 홀로 두고 가지 마십시오. 저는 어떻게 홀로 살아요? 흐흑흑.”
춘희는 노크소리에 눈물을 훔치고 오쫄 일어나 문께로 돌아섰다.
“들어오세요.”
뜻밖에 문걸이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어떠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요.”
문걸은 눈물을 훔치는 춘희를 가긍하게 바라보았다. 순간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괜히 내 와서 혹시 다이로교수 짧은 생각을 한 건 아닌지?”
“무슨 소립니까? 아닙니다. 절대 리선생님 때문이 아닙니다.”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다이로교수는 나이 들면서 점점 이상하게 변했어요. 아마 제가 자기를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노여워서 징벌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 제자가 배신하는 것 같아 세상에 믿을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균형이 좀 파괴된 거 같습니다.”
그래도 문걸은 미안했다.
“미안하오. 난 인차 돌아가야겠소.”
춘희는 문걸을 정정하게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전날 사망림에서 리선생님이 제때에 업어내오지 않았더라면 저의 선생님은 세상을 달리 했을 겁니다. 리선생님, 다이로교수도 정신 차리면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절대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간호원이 링겔을 바꾸러 들어왔다.
간호원은 문걸을 보고 부탁했다.
“환자가 휴식하게 너무 오래 문안하지 말기를 부탁드려요. 미안해요.”
문걸은 일어를 알아듣는지라 춘희한테 문안을 거듭하고 구급실에서 나왔다.
그는 춘희와 작별하고 복도를 스적스적 걸으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춘희 불쌍해 못 보겠다. 다이로교수는 확실히 춘희에겐 둘도 없는 은인이지. 그러나 은인과 애인이 같을 수 있는가? 은정과 애정 등호일 수 있는가? 참.)
그는 너무나도 안타까워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뭘 보고 저런 늙은 령감을 계속 따르지? 혹시 다이로교수 유산을 보고 저래? 박사 출신이 고향 병원에서 주임의사질해도 한달에 수만원씩 벌면서 넉넉하게 살겠는데. 아님, 딸애 앞날을 보고 저럴가? 딸애를 만금을 넘겨줘도 그저 그래? 딸이라고 다 심청처럼 당신한테 효성할 거 같은가? 나를 봐라. 아들 딸을 키워도 늘그막까지 설거지 시켜먹으면서 부려먹지 않았는가? 딸의 인생 따로고 네 인생 따로야.)
문걸은 자기가 아들딸 집에 가서 겪은 고통을 생각하자 절로 도리머리질났다. 그는 친히 겪은 인생경험교훈에 따라 춘희 모순된 내심 가까이에 다가가며 귀띔하고  있었다.
춘희는 확실이 내심이 복잡하게 모순돼 갈래판을 잡기 어려워 했다. 오래동안 모순되는 심리갈등에 시달리면서도 시종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녀는 딸애 야마구찌 마끼 앞날을 생각하면 억지로 다이로교수한테 붙어 살아야 했다. 다이로교수는 물론 엄청 큰 동정과 사랑을 몰부은 은인이였다. 하지만 날따라 변태적으로 변해가면서 거의 날마다 밤에 별의별 섹스를 다하며 장난질쳤다. 그게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무참히 성학대를 해댔다. 진짜 춘희 인격마저 무시당하는 “강간” 같은 성학대도 서슴치 않았다.
(내가 무슨 성노리갠가? 짐승 같은 다이로 정욕을 받아내는 도구인가?)
춘희는 이젠 다이로 변태적인 밤놀음에 신물이 났다. 밤이 다가오면 등곬에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활 뿌리치고 고향에 돌아가 의사질하며 피신해 살았다.
그녀는 우연히 만난 문걸한테 직방 자기 처지를 말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남편 다이로교수와 자기 지금 처한 처지를 보라고 일부러 문걸을 일본관광하자고 해 함께 일본에 날아왔던 것이다.
춘희는 문걸이 이번에 일본에 와서 모든 것을 짐작했으리라고 여겼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문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은은히 느꼈다. 어떤 때엔 딸애고 뭐고 다 뿌리치고 문걸과 함께 고향에 돌아가 참사랑을 즐기면서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또 아직 대학공부도 채하지 못한 딸애를 버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진짜 마음의 갈등을 정리할래야 정리할 수 없었다.
이런 때 다이로교수가 글쎄 극단적인 선택을 할줄이야.
그녀의 량심은 다이로교수를 홀대하지 못하게 했고 량심천평으로 마음갈등을 정리하도록 서서히 선회하고 있었다.
춘희는 다이로교수 벗어놓은 어지러운 옷을 보자 빨아주려고 와락와락 걷어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다이로교수 양복을 들고 호주머니를 들추다가 뭔가 만지우는 것이 있었다.
봉투 하나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춘희는 봉투에서 종이를 뽑아냈다. 펴보니 뭔가 깨알처럼 씌여 있지 않겠는가.
“뭐야? 유서?!”
그녀는 하마트면 고함칠 번했다. 그 유서를 내리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도 경악할 지경이였다.
 
                            유서
나는 이젠 이 세상에서 살 멋이 없다. 후지산 사망림에 와서 이 세상을 떠나 후지산을 타고 천국에 날아올라가 태양신을 뵈러 간다.
어째 살 멋이 없는가고?
남들은 한창 잘 나가는 내가 왜 바보짓을 하는가고 할 것이리라. 유명한 생물학자, 교수, 박사생 도사 아닌가? 사회에서 지위와 명예가 없는가? 돈이 없는가? 재산이 없는가?
남들은 한뉘 모지럼 써도 별장 같은 내 아파트 같은 데서 살지 못할 거야.
그러나 사람이 사는게 지위와 명예만 가지고 살 수 있는가? 사랑이 없이, 아무런 새 자극도 없이 그래 황금을 씹어먹으면서 식충처럼 살 수 있겠는가?
       자유가 없고 새로운 자극도 없으면 살 멋이 없다. 죽기보다 못해.  나이를 먹어도 성생활에 만족받지 못하면 살 멋이 없다. 난 본댁과 30여년 동안 아마 몇 드람통은 싸 넣었을 거야. 허나 자식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어떻게 자식 하나라도 볼까고 본댁 모모에와 리혼했다. 그것도 모모에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내놓은 제의에 의해 결행된 허위적인 행위다. 물론 모모에한텐 참  죄송하다. 처가집에는 배은망덕한 죄인으로 됐다. 처가집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지 않았더라면 농가 출신인 내가 알바를 해서 대학공부를 제대로 했겠는가? 생물학 박사까지 됐겠는가?  장인은 내 생물학박사생 도사였지. 래세에는 꼭 모모에와 장인어른께 지은 죄 말끔히 씻고 한평생 은혜 갚으면서 살 거야.
     난 자식을 보려고 젊고 예쁜 녀제자 춘희를 후처로 맞이했어. 황선희도 어떨까 했는데 선희는 미국 생물연구소에까지 견학 보내줬건만 날 뿌리치고 고향에 돌아갔어. 어느 일본 녀자가 춘희처럼 늙은이한테 재가하려고 하겠어? 딸애를 가지고 생활고를 겪는 대륙의 춘희만이 재가할 수 있었지. 나는 춘희와 딸애를 동정하던데로부터 아끼고 사랑해주고 아낌없이 도와주면서 끝내 우리 아파트에 데려왔지.
그러나 춘희는 내 유일한 꿈인 애를 낳아주지 않았어. 콘돔을 끼고 살자면서 방패를 내들다 못해 나중엔 피임약을 너무 과하게 먹어서 임신 안됐어. 이젠 피임약을 십여년이나 먹었기에 춘희는 임신할래야 할 수 없게 됐어. 춘희는 점점 날 실망케 하고 있어. 잠자리에서도 마지 못해 그저 기계적으로 들이대고 있어. 그때면 어떻게 하나 내 정욕을 만족주려고 두 다리를 모두며 안간힘을 다 주던 본댁이 떠오른다. 남편을 만족주려고 신음소리마저 노래처럼 곱게 내고 얼굴 표정도 곱게 하려고 애쓰는 그런 일본 녀인 그립다. 본댁이 마구 그리웁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춘희는 침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거리다가도 실망해 도리머리질하며 맥없이 내리며 애나하던 다이로교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몰래 자책감을 느꼈다.
똑,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춘희는 보던 유서를 제꺽 핸드빽에 걷어넣었다.
문이 열리며 한 50대 돼보이는 일본 녀성이 들어섰다.
“다이로!”
그녀는 침대에 다가가며 부르짖었다.
“좀 소리 낮춰요.”
그러나 그녀는 힐끔 춘희를 흘겨볼뿐 “다이로! 다이로!” 하고 부르며 손을 잡고 통곡쳤다.
춘희는 그녀가 바로 다이로교수의 본댁 모모에리라고 짐작했다.
이전에 옷장 안을 정리하다가 다이로 교수의 양복 웃호주머니에서 다이로교슈와 그녀가 찍은 사진을 피뜩 본 적이 있었다.
도꾜대학 교수의 딸로 자란 그녀는 젊어서 꽤나 이뻤겠다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녀는 60대였지만 피뜩 보면 50대 중반 녀성으로 보일만큼 젊고 예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눈물을 훔치면서 춘희한테 얼굴을 돌렸다.
“저는 다이로교수 본댁인데요. 잠간 자리를 비워줄 수 없겠는지요?”
춘희는 허리 굽혀 인사하며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다이로교수한테 무슨 짓 할가 봐 저으기 근심됐다.
그때 간호원이 마끼와 복화를 데리고 들어섰다.
“너넨 어째 왔니?”
“아빠를 보러 왔어요?”
마끼는 “아빠! 눈을 떠요!” 하고 울며 불며 침대에 다가갔다.
복화도 눈물을 흘리며 다이로교수한테 다가갔다.
“센세이, 저가 왔어요. 깨나세요. 네? 다이로선생님.”
복화는 다이로교수의 머리 쪽에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피햇!”
본댁은 복화 손을 탁 쳐버렸다.
“어데다 더러운 손을 대?!”
민족기시 눈치가 확연히 보였다.
춘희는 보기 구차했다.
“진희야, 여기 나오너라.”
그러나 마끼는 “아빠, 일어나세요. 흑흑.” 하며 다이로교수를 보고 엉엉 울었다.
춘희는 마끼와 복화를 내버려두고 씻을 옷들을 챙겨가지고 구급병실에서 나와버렸다.
그녀는 유서 생각이 떠오르자 부랴부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유서를 펼쳐들고 보는 그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시울마저 점점 파들파들 떨렸다.
 
      이젠 믿을만한 녀자 하나도 없다. 내가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해 사랑한 춘희도 배신하고 고향에 돌아가 다른 남자를 따라가려고 한다. 춘희는 심지어 남친을 일본에까지 데리고 와서 관광을 시키고 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 사람을 환대해주었다. 교타이모리 스시도 대접하고 500만엔이나 들여 가꾼 숫처녀 나나 영양가 높은 몸에서 배출한 대변도 대접했다. 그러나 문걸씨는 근본 입에도 대지 않았다.
    물걸씨를 환대하면서 나는 그를 세밀히 관찰해보았다. 그는 개방세월에 보기 드문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외까풀눈 눈빛에는 춘희에 대한 사랑이 찰랑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춘희를 처음부터 의심한게 아니였다. 그러나 문걸씨를 본 다음부터 춘희를 의심할만도 했다.
 
     춘희는 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 읽어내려가기 힘들어 유서를 접어 쓰레기통에 훌 처넣고 나왔다. 그러나 뒤에 또 뭘 써놨는가 더 보고싶어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녀는 화장실에 되들어가 더러워진 유서를 주어들고 다시 대변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보기 싫은대로 다시 다이로교수의 유서를 펼쳐들었다.
 
문걸씨는 안해가 없는 모양이야. 그의 안해라는 아사꼬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미녀이다. 내가 오사까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악수하면서 처음 이상한 감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아주 일반녀인의 손과는 아주 선뜩한 감이 들었다. 그 감각은 우리 집 연회석상에 왔을 때 악수하면서도 또 느꼈다.
누굴 속이려고?
문걸씨 안해라고 날 속인 점을 봐도 춘희는 나를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나는 더는 속히우면서 살 멋이 없다.
난 이젠 춘희와 살아선 아들도 딸도 더 볼 수 없게 됐다. 춘희는 불임증에 걸렸다. 그렇다고 황선희나 나나로 대신할 수도 없잖은가? 나는 춘희와 살아서 내 자식을 보려고 사랑하는 본댁을 밀어냈는데. 또 애를 보려고 춘희를 밀어내고 나나를 들여앉혀야 하겠는가? 글쎄 나나 하들하들한 우유빛몸매는 탐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황선희는 이젠 갱년기에 들어섰는데 애를 낳을 수 있겠는가? 황선희 이전에 자기와 재혼하면 애 몇이라도 낳아줄 수 있다고 했지. 그때 그녀와 사는게 옳았는데. 참 후회막급이야.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여기까지 읽고 춘희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선희 언니 이런 일 있을줄은 진짜 몰랐는데. 언니는 좀 개방성적인 성격이여서 그저 다이로선생님과 은사라고 존경한다고만 여겼지. 이제껏 나한텐  속여왔구나.”
춘희는 몇번이고 은밀한 비밀이 적힌 그 대목을 몇번이고 읽어보고서야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였다.
유서는 기막힐 지경이였다.
다이로교수는 죽기 전에 아마 한평생 숨겨뒀던 진실과 비밀을 몽땅 남기려고 한 것 같았다.
 
이제라도 좋긴 나나를 들여앉히는 거지. 어리지. 이쁘지. 애도 낳기 좋은 한창 나이지. 살자고 버둑질하는 그 애가 정말 가엽다. 그 녀자애는 나와 함께 살자고 하면 오누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선뜻이 대답할 거야. 그러나 춘희한테 얼마나 미안한가? 마끼에게도 미안하구. 정신타격이 클게 아닌가?
이젠 진짜 살기 싫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봤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보았다. 생물연구도 할만큼 다해보았다. 이젠 생물연구는 제자들에게 넘겨주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자식도 볼 수 없고 무슨 재미에 사는가? 이제 죽는 거 한가지 못해보았다.
죽는 재미만이 새로운 자극을 받을 거야. 이제 그 새 자극 어떤가 맛을 봐야지. 후지산 기슭에서 죽어 혼이나마 후지산을 타고 솟아올라가 태양신을 만나야지. ㅋㅋㅋ.
아차 한가지 잊었구나.
내 죽으면 유산을 가지고 모두 싸우지 말라. 유산을 다섯몫으로 나누라. 본댁 모모에가 나와 함께 30여년 살았잖은가. 5분의 2 를 모모에한테 주고 춘희 나하구 10여년 살았으니깐. 5분의 1주고, 내 동생 야마구찌 이찌로한테 5분의 1 주고 나머지 한몫은 양딸 마끼와 불쌍한 나나 오누이한테 절반씩 나누줘라.
 
     나는 이제 약 먹고 안락사해 태양신 만나뵈러 간다.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 놈아, 안녕히!
 
                                 야마구찌 다이로
 
     유서에는 날자가 씌여져 있지 않았다.
     춘희는 유서를 접어 핸드빽에 넣으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선생님, 미안해요. 제가 잘 못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화장실에서 살며시 나오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복도에서 복화와 딱 마주쳤다. 복화는 어색하게 가는 미소를 지으면서 스쳐지나갔다.
춘희는 복화를 다른 안목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면서 목송하였다. 그녀는 이제껏 복화 오누이를 불쌍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서를 본 다음부터는 어쩐지 나어린 라이벌로 보이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구급실에 들어가 다이로교수 손을 잡고 우는 본댁을 보고 되돌아나왔다. 어쩐지 늙은 본댁도 무서운 라이벌로 보였다.
    (유서에 황선희 언니 유산 몫이 없잖은가. 다행이야. 우, 미칠 거 같아.)
    아, 이제 숱한 라이벌 속에서 춘희는 어떻게 해야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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